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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대왕 퍼시’라는 서양 동화에 나오는 왕은 핑크색을 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부터 시작해서 궁전의 모든 것을 핑크색으로 칠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궁전 밖으로 나가면 핑크색 아닌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왕의 권력을 이용해서 백성들에게 보이는 것마다 핑크색으로 바꾸라고 명령했습니다. 나무를 핑크색으로 칠했습니다. 도로와 집과 동물들도 핑크색으로 바꿨습니다. 주위의 모든 것이 핑크색으로 바꿔지니까 왕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절대 핑크색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그는 푸른 하늘을 볼 때마다 화가 났습니다. 불평하면서 어떻게 하늘을 핑크색으로 칠할지 조언을 얻으려고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스승이 해결책 하나를 주었는데 그것은 핑크색 안경이었습니다.
핑크 대왕이 핑크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니까 하늘도 핑크색이 되었고, 모든 것이 다 핑크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심리학 교수인 최인철이 쓴 「프레임」이라는 책에 나오는 동화입니다. 심리학에서 프레임(frame)이란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가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개인이 문제와 사물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바뀝니다. 불평을 갖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불평할 것들이어서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감사가 가득하면 세상을 기쁨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이 기다려지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기대감에 가득 차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심리적으로 어떤 안경을 쓰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신앙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프레임 이상입니다. 좋은 관점은 인생을 바꾸고 사람이 변화시킵니다. 관점이 사람의 삶을 계속 이끌면 신념이 됩니다. 신념이 반복되면 신념 체계가 됩니다. 신념 체계가 반복되면 사상이 됩니다. 사상이 세상을 풍미하면 세상이 변화됩니다. 그런데 신앙이란 관점의 중심에 인간의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있습니다. 인간의 기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더 큰 것입니다. 인간의 기대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크고 위대한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삶 속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생각과 기대가 바뀝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언어와 생각이 바뀌는 것이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심리학의 프레임을 넘어 서서 하나님의 계시 체계 속에 들어갑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잘못된 것을 넘어서게 됩니다. 불평과 부정적인 사고를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으로 사람과 사물을 보고 시간을 대하고 삶의 모든 사건들을 만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축복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찼다는 것을 깨달으면 마음속에 감사가 넘치고 찬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남은 인생도 기대하면서 살고 싶은 기대와 소망을 품는 것이 신앙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본문의 다윗왕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니까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찬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누구이며 얼마나 초라한 인간이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사무엘하 7:18)
다윗은 자기가 작은 자였던 것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목동이었던 그는 들판에 혼자 있으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뜬 눈으로 지내며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아와서 불러주셨습니다. 별 볼일 없는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보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나 같은 자를 축복해 주십니까? 나는 별 볼일 없는 인물이었는데,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는데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했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시편 144:3)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시고 하나님이 인생에 참여하셔서 삶의 한걸음, 한걸음을 인도하여 이 자리까지 오게 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사무엘하 7:20)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아시고 자신이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고백뿐만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함께 있을 때 신앙이 풍성해지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앎의 단계에 불평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원망과 고난이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인생의 위기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나와 더불어 동행해 주십니다. 우리 삶을 인도해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에 놀라우신 축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원래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무(無)와 같은 영점 인생이었습니다. 아니 마이너스 인생이었습니다. 불면 없어질 먼지와 흙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알아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탐욕도 있었고 하나님 앞에 부정하고 부패된 것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야망만을 위해서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되돌아보니 때로는 힘들고 어려웠던 여정이었지만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다윗은 여기까지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해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서 노래를 부르는 멋진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두려움을 내쫒는 용기를 갖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는 불평이 다가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는 근심이 다가옵니다.
감사하 없는 사람에게는 걱정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근심이 다가올 때 찬양합니다. 걱정이 다가올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두려움을 이겨나가는 용기를 갖는 것은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두 번째,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하나님께 찬양할 때 내 것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 부족함과 연약함을 깨달으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고백하는 것이 감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한 소년이 며칠 동안 감기 몸살로 누워서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잠도 못 자고 간호하는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소년은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어 가족(FAMILY)이 무엇인지 영어의 알파벳 여섯 글자를 따서 다음과 같은 약자로 고백했습니다.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자녀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격어 봐야 어머니와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분들인지 깨닫습니다. 지난 15일 수능 고사를 본 고등학생 3학년 학생들을 인터뷰한 방송을 보았습니다. 덩치만 큰 학생들이 무슨 말을 할까 보았더니 놀랍게도 학생들마다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부모님을 부르면서 그들의 눈가에 이슬방울이 맺혔습니다. 어떤 친구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하고 고마워요! 나보다도 늦게 주무시고 나를 위해서 늦게 까지 근심하면서 기도해 주신 엄마, 아빠 고맙고 사랑해요!”
인생에 시험이 있는 것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자녀들이 시험을 보면서 고생하는 것이 안쓰럽지만 그것은 인생을 파괴하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때로 고난 받고 어려움에 있는 것은 우리 인생에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반드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인생을 되돌아보며 위기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인생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건강할 때 감사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는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위기가 닥치고 무엇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오히려 감사를 배웁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을 때는 너무 늦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다 낭비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축복이지만 우리 삶을 이미 다 소모해 버린 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빚지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 빚을 지지 않았다는 말은 세상 사람들의 말입니다.
러시아의 문호였던 도스토예프스키가 1864년에 「지하에서 온 편지」라는 글에서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간은 바보가 아닌 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른다. 놀라울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 사실 나는 인간에 대한 최고의 정의가 ‘감사할 줄 모르는 두 발 달린 짐승’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때로 자율적인 존재, 홀로 설 수 있는 존재, 스스로 창조한 존재라고 자랑하면서 하나님 없이도 살 것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참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인생을 다 보내고 시간을 낭비한 후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가서야 감사를 배우지 말고 건강할 때, 호흡하고 있을 때, 눈이 보일 때, 귀가 들릴 때,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때, 손과 발이 마음대로 움직일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인생을 기쁘게 사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3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일본인 의사 이무라 가즈키오가 있었습니다. 그는 암으로 투병생활을 했고 얼마 남지 않은 자기의 생명을 생각하면서 자녀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서전을 준비했습니다. 그가 쓴 자서전 중에 나오는 ‘종이학’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왜 모두 기뻐하지 않을까?
당연하다는 사실들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손이 두개고 다리가 둘
가고 싶은 곳을 자기 발로 가고
손을 뻗어 무엇이든지 잡을 수 있다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나온다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기뻐하지 않아
“당연한 걸”하며 웃어버린다
세끼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잠들 수 있고
그래서 아침이 오고 바람을 실컷 들이 마실 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 뛰어 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두가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걸
아무도 기뻐할 줄 모른다
고마움을 아는 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뿐이다
왜 그럴까? 당연한 일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며 선물입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루 세끼 먹고 잘 소화하여 건강을 잃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보면 건강한 것,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감사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산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산다는 것은 감사입니다.
산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산다는 것은 노래입니다.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마음껏 기뻐하고 감사하며 누리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 마음에도 문제가 있고 어려운 고난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찬양하며 감사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과 여건을 바꿔주실 것입니다. 환경과 여건이 바뀌지 않는다 해도 우리 속에 있는 감사를 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기대와 심리적 프레임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혹 인생의 전반전을 불평하며 시기와 원망으로 살았다면 다 내려놓고 이제는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다시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삶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안을 통하여 인생을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평과 원망으로 살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 우리가 다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알게 해주시고 축복에 감사하며 은혜를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이 새롭게 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무엘하 7: 18 ~ 22
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19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20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21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22
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핑크대왕 퍼시’라는 서양 동화에 나오는 왕은 핑크색을 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부터 시작해서 궁전의 모든 것을 핑크색으로 칠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궁전 밖으로 나가면 핑크색 아닌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왕의 권력을 이용해서 백성들에게 보이는 것마다 핑크색으로 바꾸라고 명령했습니다. 나무를 핑크색으로 칠했습니다. 도로와 집과 동물들도 핑크색으로 바꿨습니다. 주위의 모든 것이 핑크색으로 바꿔지니까 왕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절대 핑크색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그는 푸른 하늘을 볼 때마다 화가 났습니다. 불평하면서 어떻게 하늘을 핑크색으로 칠할지 조언을 얻으려고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스승이 해결책 하나를 주었는데 그것은 핑크색 안경이었습니다.
핑크 대왕이 핑크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니까 하늘도 핑크색이 되었고, 모든 것이 다 핑크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심리학 교수인 최인철이 쓴 「프레임」이라는 책에 나오는 동화입니다. 심리학에서 프레임(frame)이란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가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개인이 문제와 사물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바뀝니다. 불평을 갖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불평할 것들이어서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감사가 가득하면 세상을 기쁨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이 기다려지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기대감에 가득 차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심리적으로 어떤 안경을 쓰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신앙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프레임 이상입니다. 좋은 관점은 인생을 바꾸고 사람이 변화시킵니다. 관점이 사람의 삶을 계속 이끌면 신념이 됩니다. 신념이 반복되면 신념 체계가 됩니다. 신념 체계가 반복되면 사상이 됩니다. 사상이 세상을 풍미하면 세상이 변화됩니다. 그런데 신앙이란 관점의 중심에 인간의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있습니다. 인간의 기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더 큰 것입니다. 인간의 기대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크고 위대한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삶 속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생각과 기대가 바뀝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언어와 생각이 바뀌는 것이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심리학의 프레임을 넘어 서서 하나님의 계시 체계 속에 들어갑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잘못된 것을 넘어서게 됩니다. 불평과 부정적인 사고를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으로 사람과 사물을 보고 시간을 대하고 삶의 모든 사건들을 만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축복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찼다는 것을 깨달으면 마음속에 감사가 넘치고 찬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남은 인생도 기대하면서 살고 싶은 기대와 소망을 품는 것이 신앙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본문의 다윗왕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니까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찬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누구이며 얼마나 초라한 인간이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사무엘하 7:18)
다윗은 자기가 작은 자였던 것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목동이었던 그는 들판에 혼자 있으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뜬 눈으로 지내며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아와서 불러주셨습니다. 별 볼일 없는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보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나 같은 자를 축복해 주십니까? 나는 별 볼일 없는 인물이었는데,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는데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했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시편 144:3)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시고 하나님이 인생에 참여하셔서 삶의 한걸음, 한걸음을 인도하여 이 자리까지 오게 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사무엘하 7:20)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아시고 자신이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고백뿐만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함께 있을 때 신앙이 풍성해지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앎의 단계에 불평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원망과 고난이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인생의 위기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나와 더불어 동행해 주십니다. 우리 삶을 인도해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에 놀라우신 축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원래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무(無)와 같은 영점 인생이었습니다. 아니 마이너스 인생이었습니다. 불면 없어질 먼지와 흙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알아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탐욕도 있었고 하나님 앞에 부정하고 부패된 것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야망만을 위해서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되돌아보니 때로는 힘들고 어려웠던 여정이었지만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다윗은 여기까지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해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서 노래를 부르는 멋진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두려움을 내쫒는 용기를 갖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는 불평이 다가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는 근심이 다가옵니다.
감사하 없는 사람에게는 걱정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근심이 다가올 때 찬양합니다. 걱정이 다가올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두려움을 이겨나가는 용기를 갖는 것은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두 번째,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하나님께 찬양할 때 내 것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 부족함과 연약함을 깨달으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고백하는 것이 감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한 소년이 며칠 동안 감기 몸살로 누워서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잠도 못 자고 간호하는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소년은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어 가족(FAMILY)이 무엇인지 영어의 알파벳 여섯 글자를 따서 다음과 같은 약자로 고백했습니다.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자녀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격어 봐야 어머니와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분들인지 깨닫습니다. 지난 15일 수능 고사를 본 고등학생 3학년 학생들을 인터뷰한 방송을 보았습니다. 덩치만 큰 학생들이 무슨 말을 할까 보았더니 놀랍게도 학생들마다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부모님을 부르면서 그들의 눈가에 이슬방울이 맺혔습니다. 어떤 친구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하고 고마워요! 나보다도 늦게 주무시고 나를 위해서 늦게 까지 근심하면서 기도해 주신 엄마, 아빠 고맙고 사랑해요!”
인생에 시험이 있는 것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자녀들이 시험을 보면서 고생하는 것이 안쓰럽지만 그것은 인생을 파괴하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때로 고난 받고 어려움에 있는 것은 우리 인생에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반드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인생을 되돌아보며 위기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인생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건강할 때 감사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는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위기가 닥치고 무엇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오히려 감사를 배웁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을 때는 너무 늦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다 낭비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축복이지만 우리 삶을 이미 다 소모해 버린 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빚지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 빚을 지지 않았다는 말은 세상 사람들의 말입니다.
러시아의 문호였던 도스토예프스키가 1864년에 「지하에서 온 편지」라는 글에서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간은 바보가 아닌 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른다. 놀라울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 사실 나는 인간에 대한 최고의 정의가 ‘감사할 줄 모르는 두 발 달린 짐승’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때로 자율적인 존재, 홀로 설 수 있는 존재, 스스로 창조한 존재라고 자랑하면서 하나님 없이도 살 것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참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인생을 다 보내고 시간을 낭비한 후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가서야 감사를 배우지 말고 건강할 때, 호흡하고 있을 때, 눈이 보일 때, 귀가 들릴 때,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때, 손과 발이 마음대로 움직일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인생을 기쁘게 사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3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일본인 의사 이무라 가즈키오가 있었습니다. 그는 암으로 투병생활을 했고 얼마 남지 않은 자기의 생명을 생각하면서 자녀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서전을 준비했습니다. 그가 쓴 자서전 중에 나오는 ‘종이학’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왜 모두 기뻐하지 않을까?
당연하다는 사실들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손이 두개고 다리가 둘
가고 싶은 곳을 자기 발로 가고
손을 뻗어 무엇이든지 잡을 수 있다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나온다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기뻐하지 않아
“당연한 걸”하며 웃어버린다
세끼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잠들 수 있고
그래서 아침이 오고 바람을 실컷 들이 마실 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 뛰어 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두가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걸
아무도 기뻐할 줄 모른다
고마움을 아는 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뿐이다
왜 그럴까? 당연한 일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며 선물입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루 세끼 먹고 잘 소화하여 건강을 잃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보면 건강한 것,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감사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산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산다는 것은 감사입니다.
산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산다는 것은 노래입니다.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마음껏 기뻐하고 감사하며 누리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 마음에도 문제가 있고 어려운 고난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찬양하며 감사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과 여건을 바꿔주실 것입니다. 환경과 여건이 바뀌지 않는다 해도 우리 속에 있는 감사를 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기대와 심리적 프레임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혹 인생의 전반전을 불평하며 시기와 원망으로 살았다면 다 내려놓고 이제는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다시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삶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안을 통하여 인생을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평과 원망으로 살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 우리가 다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알게 해주시고 축복에 감사하며 은혜를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이 새롭게 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