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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뻐하라

시편 37: 1 ~ 6

김지철 목사

2007.12.30

불평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한 해 동안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면 마치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갑니다. 때로는 슬픈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고, 가슴 아파하며 고통 받았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해를 다 보내면서 고백하는 것은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며 도우심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살 걸. 그때 왜 내가 게을렀지. 조금 더 부지런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텐데. 그때 왜 내가 용납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살았지. 조금 더 사랑하면서 가슴을 열고 살 걸. 그때는 왜 내가 불평하고 질투하면서 남이 잘되는 것에 시기하면서 살았지. 오히려 칭찬하고 격려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걸.’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다시 귀한 결심을 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편 37:1)

우리 마음은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면서도 잘되는 것을 보면 자꾸만 불평이 나옵니다. “저 사람은 나쁜 친구인데, 거짓말도 잘하고 문제가 많은데 왜 성공가도를 달리고 나는 이게 뭐지?”
우리들 속에 이런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불평하지 말라. 악을 행하는 자, 불의를 행하는 자를 하나님께 맡겨라.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심판하실 것이고, 너는 나만을 바라보고 인생을 달려가라. 결코 불평이 네 인생에 중심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시기심이 네 인생을 좀먹지 않도록 깨달으라.”
불평은 불만족의 표현이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태도입니다. 내게 주어진 수많은 가능성을 불평과 시기심 때문에 땅속에 묻어두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평과 시기심은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오프라 윈프리가 방송인 레리 킹(Larry King)과 인터뷰하면서 그녀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는 어린 시절 살면서 항상 싸워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싸워야 했고, 삼촌들과 맞서 싸워야 했고, 오빠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녀는 가난하게 살았고, 많은 가족들 속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은 아주 큰 축복을 받아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축복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 제 자신을 항상 열어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입니다. 전 우리 모두를 창조한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우리가 스스로 꾸는 꿈보다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인생 핵심 키워드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꿈을 작게 꾸었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꿈을 크게 키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이것밖에 계획하지 못했는데,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아셔서 인생의 길을 더 크게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과 모든 가능성 앞에 절 열어두려고 합니다. 저는 항상 그 가능성이 어떠한 것이든 그 앞에 제 자신을 열어두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인용구가 있습니다. 에밀리 디킨슨이 한 말입니다. ‘나는 가능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제가 삶을 사는 방식입니다.’ 저는 가능성속에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일어날 어떤 가능성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능성들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평할 때입니다. 남의 것에 대한 시기심을 갖고 질투할 때 귀한 가능성들이 하나씩 닫힙니다. 우리는 남이 잘되는 것, 남이 잘사는 것을 못 봐 줍니다.
불평과 시기심이 보여주는 인간의 심리학적인 태도는 자존감이 아주 낮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이 자기를 붙잡을 때 우리들 속에는 알게 모르게 불평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시기심이 가득하면 나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너도 성공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실패했는데 너는 더 큰 실패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품습니다. 자기처럼 잘못되기를 바라는 소모적인 욕망이 불평과 시기심이 생깁니다.
시기심 속에는 늘 좌절의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불평과 시기심이 반복되면 마음속에 쌓이기 시작하고, 내면적으로 점점 커지면 슬픔과 낙심이 됩니다. 낙심이 자기포기가 되고, 자기포기는 마음 안에서 응어리가 되어 한 맺히는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밖으로 표출되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언어가 되고, 마음속에 있는 분노가 공격적인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여호와를 기뻐할 때 마음이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속에 불평과 시기가 인생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지배하시며 이끌어가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불평이 지배하고 시기심이 지배하게 되면 축복을 빼앗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37:4)

마음속에 소원이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기뻐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앙의 오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신앙이란 의무가 주어지는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이 내가 교회 안 나오고 예배 안 드리면 야단치고 징계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기 싫어서 교회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신앙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없습니다. 감사가 생기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거룩함과 기쁨이 서로 상충되고 충돌된다고 생각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첫 번째, 너무 기뻐하면 경건하지 못한 사람, 경박한 사람, 가벼운 사람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거룩함을 추구하면 가능한 기쁨은 절제해야 하고, 기쁨을 추구하면 거룩해지지 못하고 세속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기쁨을 자꾸만 줄여 가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거룩함이란, 참된 경건이란 무엇일까요? 기도할 때 앉아서 기도하지 않고 무릎 꿇으면 그것이 참된 경건일까요? 그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거기에는 거룩함의 전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찬양하면 거룩하게 되는 것일까요? 찬양하는 것은 소중한 것이지만 찬양 그 자체가 거룩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함이란 외형보다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거룩함이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기쁨을 갖고 계십니까? “하나님, 당신을 기뻐합니다. 하나님, 당신을 좋아합니다.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처럼 마음속에 전심으로 하나님에 대한 기쁨을 표현할 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거룩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이 기쁨을 선포하게 될 때 우리는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해야할 대상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 내게 주어진 가족, 내게 주어진 직장, 내게 주어진 인간관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뻐할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두 번째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의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에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37:4)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기뻐해요? 내게 있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기뻐해요? 내가 지금 고난 중에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가 있겠어요? 내 소원을 먼저 이루어 주세요. 내 환경을 먼저 바꿔주세요. 내 문제를 먼저 해결해주세요. 그러면 기뻐하고 충성하며 헌신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요구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얘야, 먼저 나를 기뻐해라. 그러면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 네가 먼저 나를 좋아해라. 그러면 네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의 사고를 먼저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것 해주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만 풀어주시면 헌금하겠습니다. 하나님, 이것만 해결되면 충성하겠습니다.”가 아니라 거꾸로 하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1-33)

순서를 바꾸어 먼저 하나님을 기뻐할 때 우리가 문제로 여기는 것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안에 있기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 존재가 괜찮다고 여겨질 때 기뻐합니다. 자신이 사람이나 조직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을 때 기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찮은 존재, 아무도 관심이 없고 누구도 눈 여겨 보지 않을 때, 소외된 사람이라고 여겨질 때는 기쁨이 생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때도 하나님을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비록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조차 나를 이해해주시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의 귀한 아들, 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5, 37-39)

사람들은 상황이 좋아질 때, 자기가 무엇인가 얻을 때 기뻐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상황에 관계없이 마음속에 기쁨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없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문제가 다 해결되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만족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잘 모르겠으나 먼저 하나님을 기뻐할 때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지금 볼 때는 잘 안되고 풀리지 않는 것 같은데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가장 선한 것으로 합력하여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기대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용기를 갖게 합니다. 내가 비록 지금 실패하는 것 같이 여겨져도 여기에서 내 인생 전체를 폐기처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십자가가 도움이 된다면 십자가를 질 것이며 불명예가 도움이 된다면 불명예를 당할 것이다. 우리 유익을 위한 것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 붙잡힐까 봐 도망갔던 이들이 사도행전 5장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면서 사람들에게 붙잡혀 매를 당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하는 구나.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구나.”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행전 5:41-42)

그들은 신앙적인 용기, 신앙적인 성숙으로 기뻐했습니다. 고난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의 목적을 발견했기 때문에 마음속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가족과 자녀와 직장과 명예가 있을 때 기뻐합니다. 그것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그것을 배설물처럼 여길 만큼 인생에 더 큰 축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빌립보서 3:8)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 되어서 세상에 모든 것이 없어도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죄 용서를 받는 구원과 생명이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인 것을 깨달으면 진리가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기뻐할 수가 있었습니다.

인생의 최고 목적인 하나님을 기뻐하기로 선택하고 결단하십시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항에서 사람의 최고 목적, 인생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은 취미, 식사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나님을 즐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을 즐겨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당신을 즐기겠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즐기고 친구를 만날 때도 즐기고 공부할 때도 즐기고 직장 나가서도 즐기겠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즐겨라. 나도 너를 즐거워 할 것이다. 나를 좋아해라. 나도 너를 좋아할 것이다. 나를 사랑해라. 나도 너를 사랑한다. 나를 기뻐해라. 나도 너를 보면 기쁘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3)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헤미야 8:10)

하나님을 즐거워하십시오. 그동안 살아오면서 불평과 시기심으로 삶을 붙들고 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기로 선택하고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갑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때로 잘 안 되는 것 같고, 실패하는 것 같아서 불평과 시기심이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불평과 시기심이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 마음을 열어놓게 하시고 모든 가능성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이 땅 위에 마음껏 누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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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7: 1 ~ 6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불평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한 해 동안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면 마치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갑니다. 때로는 슬픈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고, 가슴 아파하며 고통 받았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해를 다 보내면서 고백하는 것은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며 도우심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살 걸. 그때 왜 내가 게을렀지. 조금 더 부지런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텐데. 그때 왜 내가 용납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살았지. 조금 더 사랑하면서 가슴을 열고 살 걸. 그때는 왜 내가 불평하고 질투하면서 남이 잘되는 것에 시기하면서 살았지. 오히려 칭찬하고 격려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걸.’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다시 귀한 결심을 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편 37:1)

우리 마음은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면서도 잘되는 것을 보면 자꾸만 불평이 나옵니다. “저 사람은 나쁜 친구인데, 거짓말도 잘하고 문제가 많은데 왜 성공가도를 달리고 나는 이게 뭐지?”
우리들 속에 이런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불평하지 말라. 악을 행하는 자, 불의를 행하는 자를 하나님께 맡겨라.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심판하실 것이고, 너는 나만을 바라보고 인생을 달려가라. 결코 불평이 네 인생에 중심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시기심이 네 인생을 좀먹지 않도록 깨달으라.”
불평은 불만족의 표현이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태도입니다. 내게 주어진 수많은 가능성을 불평과 시기심 때문에 땅속에 묻어두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평과 시기심은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오프라 윈프리가 방송인 레리 킹(Larry King)과 인터뷰하면서 그녀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는 어린 시절 살면서 항상 싸워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싸워야 했고, 삼촌들과 맞서 싸워야 했고, 오빠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녀는 가난하게 살았고, 많은 가족들 속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은 아주 큰 축복을 받아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축복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 제 자신을 항상 열어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입니다. 전 우리 모두를 창조한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우리가 스스로 꾸는 꿈보다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인생 핵심 키워드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꿈을 작게 꾸었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꿈을 크게 키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이것밖에 계획하지 못했는데,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아셔서 인생의 길을 더 크게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과 모든 가능성 앞에 절 열어두려고 합니다. 저는 항상 그 가능성이 어떠한 것이든 그 앞에 제 자신을 열어두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인용구가 있습니다. 에밀리 디킨슨이 한 말입니다. ‘나는 가능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제가 삶을 사는 방식입니다.’ 저는 가능성속에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일어날 어떤 가능성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능성들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평할 때입니다. 남의 것에 대한 시기심을 갖고 질투할 때 귀한 가능성들이 하나씩 닫힙니다. 우리는 남이 잘되는 것, 남이 잘사는 것을 못 봐 줍니다.
불평과 시기심이 보여주는 인간의 심리학적인 태도는 자존감이 아주 낮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이 자기를 붙잡을 때 우리들 속에는 알게 모르게 불평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시기심이 가득하면 나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너도 성공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실패했는데 너는 더 큰 실패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품습니다. 자기처럼 잘못되기를 바라는 소모적인 욕망이 불평과 시기심이 생깁니다.
시기심 속에는 늘 좌절의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불평과 시기심이 반복되면 마음속에 쌓이기 시작하고, 내면적으로 점점 커지면 슬픔과 낙심이 됩니다. 낙심이 자기포기가 되고, 자기포기는 마음 안에서 응어리가 되어 한 맺히는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밖으로 표출되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언어가 되고, 마음속에 있는 분노가 공격적인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여호와를 기뻐할 때 마음이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속에 불평과 시기가 인생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지배하시며 이끌어가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불평이 지배하고 시기심이 지배하게 되면 축복을 빼앗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37:4)

마음속에 소원이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기뻐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앙의 오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신앙이란 의무가 주어지는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이 내가 교회 안 나오고 예배 안 드리면 야단치고 징계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기 싫어서 교회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신앙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없습니다. 감사가 생기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거룩함과 기쁨이 서로 상충되고 충돌된다고 생각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첫 번째, 너무 기뻐하면 경건하지 못한 사람, 경박한 사람, 가벼운 사람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거룩함을 추구하면 가능한 기쁨은 절제해야 하고, 기쁨을 추구하면 거룩해지지 못하고 세속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기쁨을 자꾸만 줄여 가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거룩함이란, 참된 경건이란 무엇일까요? 기도할 때 앉아서 기도하지 않고 무릎 꿇으면 그것이 참된 경건일까요? 그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거기에는 거룩함의 전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찬양하면 거룩하게 되는 것일까요? 찬양하는 것은 소중한 것이지만 찬양 그 자체가 거룩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함이란 외형보다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거룩함이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기쁨을 갖고 계십니까? “하나님, 당신을 기뻐합니다. 하나님, 당신을 좋아합니다.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처럼 마음속에 전심으로 하나님에 대한 기쁨을 표현할 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거룩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이 기쁨을 선포하게 될 때 우리는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해야할 대상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 내게 주어진 가족, 내게 주어진 직장, 내게 주어진 인간관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뻐할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두 번째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의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에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37:4)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기뻐해요? 내게 있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기뻐해요? 내가 지금 고난 중에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가 있겠어요? 내 소원을 먼저 이루어 주세요. 내 환경을 먼저 바꿔주세요. 내 문제를 먼저 해결해주세요. 그러면 기뻐하고 충성하며 헌신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요구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얘야, 먼저 나를 기뻐해라. 그러면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 네가 먼저 나를 좋아해라. 그러면 네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의 사고를 먼저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것 해주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만 풀어주시면 헌금하겠습니다. 하나님, 이것만 해결되면 충성하겠습니다.”가 아니라 거꾸로 하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1-33)

순서를 바꾸어 먼저 하나님을 기뻐할 때 우리가 문제로 여기는 것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안에 있기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 존재가 괜찮다고 여겨질 때 기뻐합니다. 자신이 사람이나 조직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을 때 기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찮은 존재, 아무도 관심이 없고 누구도 눈 여겨 보지 않을 때, 소외된 사람이라고 여겨질 때는 기쁨이 생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때도 하나님을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비록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조차 나를 이해해주시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의 귀한 아들, 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5, 37-39)

사람들은 상황이 좋아질 때, 자기가 무엇인가 얻을 때 기뻐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상황에 관계없이 마음속에 기쁨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없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문제가 다 해결되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만족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잘 모르겠으나 먼저 하나님을 기뻐할 때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지금 볼 때는 잘 안되고 풀리지 않는 것 같은데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가장 선한 것으로 합력하여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기대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용기를 갖게 합니다. 내가 비록 지금 실패하는 것 같이 여겨져도 여기에서 내 인생 전체를 폐기처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십자가가 도움이 된다면 십자가를 질 것이며 불명예가 도움이 된다면 불명예를 당할 것이다. 우리 유익을 위한 것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 붙잡힐까 봐 도망갔던 이들이 사도행전 5장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면서 사람들에게 붙잡혀 매를 당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하는 구나.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구나.”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행전 5:41-42)

그들은 신앙적인 용기, 신앙적인 성숙으로 기뻐했습니다. 고난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의 목적을 발견했기 때문에 마음속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가족과 자녀와 직장과 명예가 있을 때 기뻐합니다. 그것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그것을 배설물처럼 여길 만큼 인생에 더 큰 축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빌립보서 3:8)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 되어서 세상에 모든 것이 없어도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죄 용서를 받는 구원과 생명이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인 것을 깨달으면 진리가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기뻐할 수가 있었습니다.

인생의 최고 목적인 하나님을 기뻐하기로 선택하고 결단하십시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항에서 사람의 최고 목적, 인생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은 취미, 식사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나님을 즐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을 즐겨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당신을 즐기겠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즐기고 친구를 만날 때도 즐기고 공부할 때도 즐기고 직장 나가서도 즐기겠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즐겨라. 나도 너를 즐거워 할 것이다. 나를 좋아해라. 나도 너를 좋아할 것이다. 나를 사랑해라. 나도 너를 사랑한다. 나를 기뻐해라. 나도 너를 보면 기쁘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3)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헤미야 8:10)

하나님을 즐거워하십시오. 그동안 살아오면서 불평과 시기심으로 삶을 붙들고 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기로 선택하고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갑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때로 잘 안 되는 것 같고, 실패하는 것 같아서 불평과 시기심이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불평과 시기심이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 마음을 열어놓게 하시고 모든 가능성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이 땅 위에 마음껏 누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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