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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면 말씀 읽는 것이 즐겁습니다
제가 성경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말씀은 제게 그다지 매력적인 책이 아니었습니다. 2000년도 더 된 아주 오래된 이야기였습니다. 구약성경은 마치 고조선 시대의 옛 설화처럼 느껴졌으며, 신약성경은 삼국 시대의 옛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의 언어는 제가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웠습니다.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중동지방의 문화와 지리적 환경은 성경을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재미없고 따분한 책처럼 여겨졌습니다. 단지 기독교 종교 교리에 관한 책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성경을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변화되었고, 성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준 첫 번째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구약의 잠언과 신약의 요한복음을 읽었습니다. 잠언에는 멋진 교훈의 말씀들과 인생을 사는 지혜가 담겨 있었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가꾸고 성숙시켜가야 하는지, 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구는 어떻게 사귀며 인간관계는 어떻게 해야 이 땅에서의 삶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지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결정적인 충격은 요한복음을 읽으며 다가왔습니다. 요한복음을 통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기록된 문자 속에서 이 땅에 살아가신 예수님의 생생한 인격과 대면하는 충격적인 경험이 제게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성경을 읽는 것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때로는 홀로,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성경을 묵상하고 공부하였습니다.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때 저는 성경을 읽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성경은 이성과 머리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성입니다. 우리는 이성을 통해 생각하고 분석하고 결단할 수 있습니다. 성경 안에 담긴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역사 그리고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이성으로만 보면 성경은 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와는 다른 차별적인 존재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둘째, 성경은 마음과 가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감성적으로 느끼고 공감하게 됩니다. 또 성경 안에서 살아계시는 예수님과 내 마음속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머리로만 읽던 성경을 가슴으로 읽으면 성경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헬라철학에서 이성은 매우 소중한 인식 기관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인식의 기능을 담당하는 이성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마음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을 통해 우리에게 접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소중한 인식의 자리는 마음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1:33)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여러분은 예수님을 무엇으로 믿습니까? 나의 이성과 지성 그리고 사변적인 능력과 분석의 능력으로는 하나님께서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십니다. 오히려 이러한 능력은 하나님을 거절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다가오십니다. 우리 마음에 영을 부어주시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깨닫게 하십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안 이후로 마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연주자가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작곡가의 곡조를 연주하는 연주자와 비교하려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성경에 담겨진 하나님의 곡조를 연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입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과 첼리스트 한나 장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올해 가을과 겨울에 연주회를 갖고자 한국에 온다고 합니다. 특별히 이번에 연주할 곡목 중 하나가 브람스의 곡입니다. 사라 장은 8살 때부터 미국 줄리아드 예비학교에서 브람스 협주곡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브람스의 곡을 연주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테크닉만 좋다거나 곡조만 잘 안다고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고 사라 장의 음악적 대부였던 쿠르트 마주어가 사라 장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사라 장은 18살 때부터 브람스를 본격적으로 연주하고 싶다고 계속 스승에게 졸라댔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애스트로는 너는 아직 어리다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마침내 브람스를 연주해도 좋다고 허락합니다. 그 때 마주어는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것은 예전에 배웠던 브람스를 완전히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마주어는 사라 장의 브람스를 아주 처참하리만큼 처음부터 다시하라고 하면서 끝까지 전체적으로 뜯어 고쳤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라 장은 지금도 브람스를 연주할 때마다 그것은 도전의 대상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브람스가 가진 드라마틱함 그리고 그 열정이 때로는 저를 힘들게 해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아무렇게나 분출하면 곧장 엉망이 되고 말거든요. 그 엄청난 감정과 에너지를 연주하는 내내 지적으로 컨트롤해야 하죠.” 그러면서 그녀는 브람스 곡에 담겨져 있는 감성적 충일함과 그것을 연주하려는 지적인 것이 같이 만나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장한나도 브람스의 곡에는 지치지 않은 음악적 액기스가 담겨져 있다는 고백을 똑같이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브람스는 베토벤을 아주 존경했던 인물로서 고전음악을 새롭게 완성해나간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첫 번째 교향곡을 쓰지 못했습니다. 베토벤의 곡이 너무나 위대했기에 어떤 면에서 그에게는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결국 1860년대에 제 1악장을 썼다가 1876년에 가서야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합니다. 장한나는 바로 이런 브람스의 곡을 연주하면서 그 속의 깊이를 경험합니다.
그녀는 스승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의 만남이 자신의 삶을 바꾸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11살의 첼리스트 장한나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할 때 그녀는 단순히 악보만 보고 연주하는 것이 연주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스승으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그녀는 스승을 통해서 작곡가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작곡가 한 명이 작곡한 곡조를 연주하려고 해도 연주가는 작곡가의 전 생애 속에 뛰어 들어가야 합니다. 곡조만 그대로 따라간다고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곡가의 마음과 그 속에 담겨있는 전체를 습득할 때 멋진 거장의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마치 작곡가가 그린 악보와도 같습니다. 작곡가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말씀은 문자에 불과하지만 그 문자 속에는 생명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그 문자를 쓰기 위하여 시편 기자와 모세와 엘리야와 바울과 요한은 그들의 삶 전체를 그 속에 쏟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은총의 역사를 함께 나누려는 열정을 가지고 말씀을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은 우리가 대충 읽으면서 지나쳐버려도 되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하는 멋진 연주가가 되려고 한다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내 것으로 삼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십시오
우리는 말씀을 읽을 때 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말씀과 멀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 내가 들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가슴에 박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말씀과 더불어 사는 삶이 될 때 말씀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질병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내가 네게 가르치는 성경 두루마리를 입으로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에스겔 3:1)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예레미야 15:16)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요한계시록 10:10)
여기서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종이를 씹어 먹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환상 속에서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여 이 말씀을 먹고 배로 소화시키고 혈관을 통해서 온몸에 흘러 살과 뼈가 되도록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받아야 합니다. 그 말씀은 내 입에 달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내 속에 들어오면 때로는 쓰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 몸살을 앓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흘러 내 영혼을 붙잡게 되면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혜, 치유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이 땅 위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하십시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편 19:7~8)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살리는 말씀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우리를 미련함에서 탈출시키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오랫동안 다닌다고 믿음이 저절로 커질까요? 우리가 직분을 받는다고 믿음이 성숙해질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마치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듣고 가슴으로 끌어내리며 말씀을 몸 곳곳에 흘려보내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 나를 소생시키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음악을 이 땅위에서 연주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곡조대로 장단을 맞추어 하나님과 함께 기뻐 춤추며 뛰놀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목격한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가을에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읽으십시오. 신앙이 없다고 불평하기 전에 말씀을 펴서 내 것으로 받으십시오. 내게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탄식하기 전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으로 품으십시오. 하나님의 음악과 곡조를 가지고 이 땅위에서 멋지게 연주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축복의 연주를 듣게 하십시오. 그 때 우리를 통해서 생명의 역사가 이 땅위에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9: 7 ~ 11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11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면 말씀 읽는 것이 즐겁습니다
제가 성경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말씀은 제게 그다지 매력적인 책이 아니었습니다. 2000년도 더 된 아주 오래된 이야기였습니다. 구약성경은 마치 고조선 시대의 옛 설화처럼 느껴졌으며, 신약성경은 삼국 시대의 옛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의 언어는 제가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웠습니다.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중동지방의 문화와 지리적 환경은 성경을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재미없고 따분한 책처럼 여겨졌습니다. 단지 기독교 종교 교리에 관한 책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성경을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변화되었고, 성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준 첫 번째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구약의 잠언과 신약의 요한복음을 읽었습니다. 잠언에는 멋진 교훈의 말씀들과 인생을 사는 지혜가 담겨 있었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가꾸고 성숙시켜가야 하는지, 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구는 어떻게 사귀며 인간관계는 어떻게 해야 이 땅에서의 삶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지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결정적인 충격은 요한복음을 읽으며 다가왔습니다. 요한복음을 통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기록된 문자 속에서 이 땅에 살아가신 예수님의 생생한 인격과 대면하는 충격적인 경험이 제게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성경을 읽는 것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때로는 홀로,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성경을 묵상하고 공부하였습니다.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때 저는 성경을 읽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성경은 이성과 머리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성입니다. 우리는 이성을 통해 생각하고 분석하고 결단할 수 있습니다. 성경 안에 담긴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역사 그리고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이성으로만 보면 성경은 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와는 다른 차별적인 존재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둘째, 성경은 마음과 가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감성적으로 느끼고 공감하게 됩니다. 또 성경 안에서 살아계시는 예수님과 내 마음속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머리로만 읽던 성경을 가슴으로 읽으면 성경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헬라철학에서 이성은 매우 소중한 인식 기관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인식의 기능을 담당하는 이성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마음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을 통해 우리에게 접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소중한 인식의 자리는 마음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1:33)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여러분은 예수님을 무엇으로 믿습니까? 나의 이성과 지성 그리고 사변적인 능력과 분석의 능력으로는 하나님께서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십니다. 오히려 이러한 능력은 하나님을 거절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다가오십니다. 우리 마음에 영을 부어주시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깨닫게 하십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안 이후로 마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연주자가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작곡가의 곡조를 연주하는 연주자와 비교하려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성경에 담겨진 하나님의 곡조를 연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입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과 첼리스트 한나 장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올해 가을과 겨울에 연주회를 갖고자 한국에 온다고 합니다. 특별히 이번에 연주할 곡목 중 하나가 브람스의 곡입니다. 사라 장은 8살 때부터 미국 줄리아드 예비학교에서 브람스 협주곡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브람스의 곡을 연주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테크닉만 좋다거나 곡조만 잘 안다고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고 사라 장의 음악적 대부였던 쿠르트 마주어가 사라 장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사라 장은 18살 때부터 브람스를 본격적으로 연주하고 싶다고 계속 스승에게 졸라댔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애스트로는 너는 아직 어리다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마침내 브람스를 연주해도 좋다고 허락합니다. 그 때 마주어는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것은 예전에 배웠던 브람스를 완전히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마주어는 사라 장의 브람스를 아주 처참하리만큼 처음부터 다시하라고 하면서 끝까지 전체적으로 뜯어 고쳤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라 장은 지금도 브람스를 연주할 때마다 그것은 도전의 대상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브람스가 가진 드라마틱함 그리고 그 열정이 때로는 저를 힘들게 해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아무렇게나 분출하면 곧장 엉망이 되고 말거든요. 그 엄청난 감정과 에너지를 연주하는 내내 지적으로 컨트롤해야 하죠.” 그러면서 그녀는 브람스 곡에 담겨져 있는 감성적 충일함과 그것을 연주하려는 지적인 것이 같이 만나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장한나도 브람스의 곡에는 지치지 않은 음악적 액기스가 담겨져 있다는 고백을 똑같이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브람스는 베토벤을 아주 존경했던 인물로서 고전음악을 새롭게 완성해나간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첫 번째 교향곡을 쓰지 못했습니다. 베토벤의 곡이 너무나 위대했기에 어떤 면에서 그에게는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결국 1860년대에 제 1악장을 썼다가 1876년에 가서야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합니다. 장한나는 바로 이런 브람스의 곡을 연주하면서 그 속의 깊이를 경험합니다.
그녀는 스승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의 만남이 자신의 삶을 바꾸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11살의 첼리스트 장한나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할 때 그녀는 단순히 악보만 보고 연주하는 것이 연주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스승으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그녀는 스승을 통해서 작곡가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작곡가 한 명이 작곡한 곡조를 연주하려고 해도 연주가는 작곡가의 전 생애 속에 뛰어 들어가야 합니다. 곡조만 그대로 따라간다고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곡가의 마음과 그 속에 담겨있는 전체를 습득할 때 멋진 거장의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마치 작곡가가 그린 악보와도 같습니다. 작곡가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말씀은 문자에 불과하지만 그 문자 속에는 생명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그 문자를 쓰기 위하여 시편 기자와 모세와 엘리야와 바울과 요한은 그들의 삶 전체를 그 속에 쏟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은총의 역사를 함께 나누려는 열정을 가지고 말씀을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은 우리가 대충 읽으면서 지나쳐버려도 되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하는 멋진 연주가가 되려고 한다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내 것으로 삼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십시오
우리는 말씀을 읽을 때 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말씀과 멀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 내가 들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가슴에 박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말씀과 더불어 사는 삶이 될 때 말씀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질병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내가 네게 가르치는 성경 두루마리를 입으로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에스겔 3:1)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예레미야 15:16)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요한계시록 10:10)
여기서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종이를 씹어 먹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환상 속에서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여 이 말씀을 먹고 배로 소화시키고 혈관을 통해서 온몸에 흘러 살과 뼈가 되도록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받아야 합니다. 그 말씀은 내 입에 달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내 속에 들어오면 때로는 쓰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 몸살을 앓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흘러 내 영혼을 붙잡게 되면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혜, 치유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이 땅 위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하십시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편 19:7~8)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살리는 말씀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우리를 미련함에서 탈출시키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오랫동안 다닌다고 믿음이 저절로 커질까요? 우리가 직분을 받는다고 믿음이 성숙해질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마치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듣고 가슴으로 끌어내리며 말씀을 몸 곳곳에 흘려보내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 나를 소생시키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음악을 이 땅위에서 연주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곡조대로 장단을 맞추어 하나님과 함께 기뻐 춤추며 뛰놀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목격한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가을에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읽으십시오. 신앙이 없다고 불평하기 전에 말씀을 펴서 내 것으로 받으십시오. 내게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탄식하기 전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으로 품으십시오. 하나님의 음악과 곡조를 가지고 이 땅위에서 멋지게 연주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축복의 연주를 듣게 하십시오. 그 때 우리를 통해서 생명의 역사가 이 땅위에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