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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구신가?!

마가복음 8: 27 ~ 38

김지철 목사

2009.09.13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여론 조사를 지시하셨습니다

최근 여론 조사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지지도가 상승곡선에 들어간 것 자체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대통령으로서 하나님의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국정 수행을 잘 감당하기를 모든 성도님들이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아픔을 가슴으로 감싸면서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주는 지도자로 더욱 더 존경받고 사랑받기를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여론조사 결과가 참으로 반갑습니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2000년 전 제자들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조사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던 사람들, 예수님을 스쳐간 사람들이 도대체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대답을 모아서 예수님에게 보고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가복음 8:28)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에 하나’라는 대답은 그 자체로 아주 놀랍고 대단한 반응입니다. 세례 요한은 마지막 때 오실 메사아를 준비하는 선구자로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구약 성경에서 최대의 능력을 발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그런 능력을 행했던 선지자가 다시 등장했다고 말하는 것은 최고의 칭찬이자 찬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대답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질문했던 의도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는 그 대답이 너무 아마추어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더 본질적인 대답을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3인칭적인 여론조사를 끝내시고 제자들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3년 동안을 나와 함께 먹고 마시며 배웠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아주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3인칭으로 묻지 않으시고, 2인칭으로 직접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분은 어떤 인물입니까? 그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킨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또한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입니다. 인권의 소중함을 불러일으키며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 분입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 대학과 병원과 자선 기관을 만들도록 동기부여하신 분입니다. 새로운 문명과 문화, 예술을 창출하도록 격려하고 창조적 상상력을 주신 분입니다. 이런 분을 이 세상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도 수십억의 사람들이 주일만 되면 그분 앞에 나아와 찬양하고 경배하며 예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2000년 전 이 땅에 오셨을 때의 모습은 어떠하셨을까요?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적대적인 세력이 예수님의 생명을 위협하였습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을 잉태하였던 마리아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요? 오늘날 같았으면 부모에 의해서 강제로 낙태당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사렛 예수, 그 분은 당시 어떤 권력과도 멀리 떨어져있던 분입니다. 영광과 존귀와는 상관이 없었던 분입니다. 가장 처참한 죽음의 형틀이었던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왜 우리에게 소중한 분으로 다가오는 것일까요?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추앙하는 것일까요? 나사렛 예수는 과연 어떤 분일까요? 위대한 도덕 교사일까요? 4대 성인 중 한 사람일까요? 국가 전복의 반란 음모를 꾸미고 민중을 선동했던 혁명가일까요? 현실성이 결여된 미래의 예언을 함부로 퍼트렸던 묵시적인 몽상가일까요? 김삿갓처럼 방랑하면서 현실 세계를 조롱하는 냉소적인 연설가일까요? 아니면 속담이나 잠언의 말씀을 모아서 사람들을 가르친 지혜 선생님일까요? 이 모든 것을 다 동원해도 예수님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모습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종종 우리는 예수님을 말씀을 들을 때 아주 과격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때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감정이 뒤집어 집니다. 말씀 앞에 서면 기분이 아주 나빠지거나 아니면 너무 기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졌던 기존의 생각을 멈추게 하거나 도약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 삶의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자꾸만 간섭하시는 분으로부터 떠나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너무 과감한 주장이 우리에게 비상한 결단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그 메시지는 너무 강력해서 때로는 두려워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게로 오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의 짐을 다 풀어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오면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 위에서 살아갔던 사람들 중에 이런 말씀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율법의 명목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사람들이 당시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의 말처럼 예수님은 거짓말쟁이 혹은 미치광이였을까요? 아니면 추종자들이 꾸며낸 전설의 인물이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신앙을 원하십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자신을 누구로 생각하는지 확인하려고 묻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으로 보면 내가 누구더냐?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온 것을 너희가 알고 있느냐?’
이 물음은 우리 모두에게 아마추어 신앙이 아닌 프로의 신앙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돈을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전체인 인격과 마음을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아마추어처럼 하지 말고 전문가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제대로 알고 삶 전체를 드릴 용기를 가지고 따라오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전문가란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하거나 그 분야의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해서 다른 사람보다 깊이와 넓이를 갖춘 지혜와 기술을 갖춘 사람입니다. 국가나 단체는 전문가의 능력과 역할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격증을 부여합니다. 전문의사가 아닌 사람이 치료를 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돌팔이’라고 부릅니다.
인터넷을 보니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차이를 비교한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아마추어는 불을 쬐지만 프로는 불을 피웁니다. 아마추어는 남이 피워놓은 불에 가서 따뜻함을 즐깁니다. 그러나 프로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 속에서 불을 피워나가고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덕을 보게 합니다. 그것이 프로의 정신입니다.
또한 아마추어는 약자에 강하지만 프로는 강자에 강합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에게 큰 소리를 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강한 사람에게 큰 소리를 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프로입니다. 연약한 사람을 돌보려는 것이 전문가의 마음입니다.
아마추어는 돈을 소중히 여기지만, 프로는 사람을 소중히 여깁니다. 돈과 일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아마추어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그 속에서 진정한 프로 정신이 나옵니다.
아마추어의 무대는 관중석이지만 프로의 무대는 운동장입니다. 그러나 아마추어는 영원한 구경꾼일 뿐입니다. 프로는 땀 흘리고 수고하며 자신의 몸으로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으며 뛰는 사람입니다.
아마추어는 비난하지만 프로는 비판합니다. 아마추어는 남을 비난하고 조롱할 뿐입니다. 그러나 프로는 정당하게 상대방을 비판합니다. 그래서 아마추어는 ‘너 죽고 나 죽자’라고 하지만 프로는 ‘너도 살고 나도 살자’라고 말합니다.
아마추어는 자신의 일에 변명하지만, 프로는 자신의 일에 생명을 겁니다. 자기 삶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사람이 진정한 프로입니다.
또한 아마추어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지만, 프로는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합니다. 우리에게도 자신에게는 엄중히 묻고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남에게는 여유 있게 대할 줄 아는 프로 정신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아마추어같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프로같이 믿고 있습니까? 구경꾼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목숨과 전체의 삶을 그 속에 투자하고 있습니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십시오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쓴 말콤 글래드웰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독보적인 전문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10,000 시간을 연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천재나 둔재나 자기 분야에 10,000 시간을 쏟아야 전문가의 탁월성이 생긴다고 합니다. 예술가도 그렇고 사상가도 마찬가지입니다.
10,000 시간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일까요? 한 분야에 하루 3시간씩 쏟으면 일 년이 지날 때 약 1,000시간이 됩니다. 그렇다면 10,000시간을 채우려고 한다면 매일 3시간씩 10년 동안 전력해야 전문가적 탁월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떻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예배를 드리면 일 년이면 52시간이고, 10년이면 500시간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10,000 시간을 결코 채울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 외에 때로는 삼일저녁 기도회에 나와서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고,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새벽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리는 헌신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나의 삶이고 진리이며 나의 생명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성령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종교와 율법의 전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많은 백성들은 아마추어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이 등장했습니다. 진짜 전문가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공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바리새인들을 가르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택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앙의 전문가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길이다. 나의 길로 들어오너라. 나의 길에서 걸어가 보아라. 내가 생명이다. 죽음을 겁내지 마라. 내가 진리다. 헛된 것에 방황하지 말고 나를 믿어라. 내가 지혜다. 너희들이 참된 지혜자가 되려면 내게 와서 내 말씀을 듣고 배워라”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을 가지려면 최고의 전문가가 될 것을 요청하시며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교회에 예배드리러 와서 성전의 뜰만 밟고 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나와 인격적으로 만나보아라. 내가 생명인 것을 내 안에서 부딪히고 느껴보아라. 내게 네 생각을 주어라. 내게 네 마음을 주어라. 내게 네 생명까지도 맡겨보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새롭게 해주겠다. 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네가 참다운 생명과 말씀과 진리의 전문가가 되도록 하겠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한 가지 축복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약적으로 신앙의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온전히 주님 앞에 드릴 때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나에게 네 전부를 다오. 네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게 맡겨라. 그러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전부 네 것이 될 것이다.”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의 프로가 되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제자들이 고백합니다. “주님이 나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구원자이십니다. 주님이 생명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에게만 진리가 있습니다. 주님에게만 영원한 능력과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전문가로서 진실된 신앙고백을 할 때 예수님께서 쓰실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추어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영원한 신앙의 구경꾼이 될 뿐입니다.
신앙에도 전문가 정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맞부딪쳐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께서 우리의 고백을 통해서 새로운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실 수 있는 소중한 신앙의 인물로 우리를 세워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었지만 때로는 아마추어가 되어 구경꾼처럼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았던 것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진실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인격을 내 가슴으로 깨닫고 경험하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생명의 사람, 사랑의 사람, 하나님의 은혜의 사람으로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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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 27 ~ 38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38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여론 조사를 지시하셨습니다

최근 여론 조사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지지도가 상승곡선에 들어간 것 자체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대통령으로서 하나님의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국정 수행을 잘 감당하기를 모든 성도님들이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아픔을 가슴으로 감싸면서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주는 지도자로 더욱 더 존경받고 사랑받기를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여론조사 결과가 참으로 반갑습니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2000년 전 제자들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조사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던 사람들, 예수님을 스쳐간 사람들이 도대체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대답을 모아서 예수님에게 보고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가복음 8:28)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에 하나’라는 대답은 그 자체로 아주 놀랍고 대단한 반응입니다. 세례 요한은 마지막 때 오실 메사아를 준비하는 선구자로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구약 성경에서 최대의 능력을 발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그런 능력을 행했던 선지자가 다시 등장했다고 말하는 것은 최고의 칭찬이자 찬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대답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질문했던 의도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는 그 대답이 너무 아마추어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더 본질적인 대답을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3인칭적인 여론조사를 끝내시고 제자들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3년 동안을 나와 함께 먹고 마시며 배웠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아주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3인칭으로 묻지 않으시고, 2인칭으로 직접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분은 어떤 인물입니까? 그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킨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또한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입니다. 인권의 소중함을 불러일으키며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 분입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 대학과 병원과 자선 기관을 만들도록 동기부여하신 분입니다. 새로운 문명과 문화, 예술을 창출하도록 격려하고 창조적 상상력을 주신 분입니다. 이런 분을 이 세상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도 수십억의 사람들이 주일만 되면 그분 앞에 나아와 찬양하고 경배하며 예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2000년 전 이 땅에 오셨을 때의 모습은 어떠하셨을까요?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적대적인 세력이 예수님의 생명을 위협하였습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을 잉태하였던 마리아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요? 오늘날 같았으면 부모에 의해서 강제로 낙태당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사렛 예수, 그 분은 당시 어떤 권력과도 멀리 떨어져있던 분입니다. 영광과 존귀와는 상관이 없었던 분입니다. 가장 처참한 죽음의 형틀이었던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왜 우리에게 소중한 분으로 다가오는 것일까요?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추앙하는 것일까요? 나사렛 예수는 과연 어떤 분일까요? 위대한 도덕 교사일까요? 4대 성인 중 한 사람일까요? 국가 전복의 반란 음모를 꾸미고 민중을 선동했던 혁명가일까요? 현실성이 결여된 미래의 예언을 함부로 퍼트렸던 묵시적인 몽상가일까요? 김삿갓처럼 방랑하면서 현실 세계를 조롱하는 냉소적인 연설가일까요? 아니면 속담이나 잠언의 말씀을 모아서 사람들을 가르친 지혜 선생님일까요? 이 모든 것을 다 동원해도 예수님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모습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종종 우리는 예수님을 말씀을 들을 때 아주 과격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때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감정이 뒤집어 집니다. 말씀 앞에 서면 기분이 아주 나빠지거나 아니면 너무 기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졌던 기존의 생각을 멈추게 하거나 도약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 삶의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자꾸만 간섭하시는 분으로부터 떠나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너무 과감한 주장이 우리에게 비상한 결단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그 메시지는 너무 강력해서 때로는 두려워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게로 오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의 짐을 다 풀어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오면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 위에서 살아갔던 사람들 중에 이런 말씀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율법의 명목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사람들이 당시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의 말처럼 예수님은 거짓말쟁이 혹은 미치광이였을까요? 아니면 추종자들이 꾸며낸 전설의 인물이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신앙을 원하십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자신을 누구로 생각하는지 확인하려고 묻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으로 보면 내가 누구더냐?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온 것을 너희가 알고 있느냐?’
이 물음은 우리 모두에게 아마추어 신앙이 아닌 프로의 신앙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돈을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전체인 인격과 마음을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아마추어처럼 하지 말고 전문가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제대로 알고 삶 전체를 드릴 용기를 가지고 따라오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전문가란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하거나 그 분야의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해서 다른 사람보다 깊이와 넓이를 갖춘 지혜와 기술을 갖춘 사람입니다. 국가나 단체는 전문가의 능력과 역할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격증을 부여합니다. 전문의사가 아닌 사람이 치료를 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돌팔이’라고 부릅니다.
인터넷을 보니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차이를 비교한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아마추어는 불을 쬐지만 프로는 불을 피웁니다. 아마추어는 남이 피워놓은 불에 가서 따뜻함을 즐깁니다. 그러나 프로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 속에서 불을 피워나가고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덕을 보게 합니다. 그것이 프로의 정신입니다.
또한 아마추어는 약자에 강하지만 프로는 강자에 강합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에게 큰 소리를 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강한 사람에게 큰 소리를 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프로입니다. 연약한 사람을 돌보려는 것이 전문가의 마음입니다.
아마추어는 돈을 소중히 여기지만, 프로는 사람을 소중히 여깁니다. 돈과 일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아마추어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그 속에서 진정한 프로 정신이 나옵니다.
아마추어의 무대는 관중석이지만 프로의 무대는 운동장입니다. 그러나 아마추어는 영원한 구경꾼일 뿐입니다. 프로는 땀 흘리고 수고하며 자신의 몸으로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으며 뛰는 사람입니다.
아마추어는 비난하지만 프로는 비판합니다. 아마추어는 남을 비난하고 조롱할 뿐입니다. 그러나 프로는 정당하게 상대방을 비판합니다. 그래서 아마추어는 ‘너 죽고 나 죽자’라고 하지만 프로는 ‘너도 살고 나도 살자’라고 말합니다.
아마추어는 자신의 일에 변명하지만, 프로는 자신의 일에 생명을 겁니다. 자기 삶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사람이 진정한 프로입니다.
또한 아마추어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지만, 프로는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합니다. 우리에게도 자신에게는 엄중히 묻고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남에게는 여유 있게 대할 줄 아는 프로 정신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아마추어같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프로같이 믿고 있습니까? 구경꾼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목숨과 전체의 삶을 그 속에 투자하고 있습니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십시오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쓴 말콤 글래드웰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독보적인 전문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10,000 시간을 연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천재나 둔재나 자기 분야에 10,000 시간을 쏟아야 전문가의 탁월성이 생긴다고 합니다. 예술가도 그렇고 사상가도 마찬가지입니다.
10,000 시간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일까요? 한 분야에 하루 3시간씩 쏟으면 일 년이 지날 때 약 1,000시간이 됩니다. 그렇다면 10,000시간을 채우려고 한다면 매일 3시간씩 10년 동안 전력해야 전문가적 탁월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떻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예배를 드리면 일 년이면 52시간이고, 10년이면 500시간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10,000 시간을 결코 채울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 외에 때로는 삼일저녁 기도회에 나와서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고,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새벽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리는 헌신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나의 삶이고 진리이며 나의 생명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성령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종교와 율법의 전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많은 백성들은 아마추어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이 등장했습니다. 진짜 전문가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공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바리새인들을 가르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택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앙의 전문가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길이다. 나의 길로 들어오너라. 나의 길에서 걸어가 보아라. 내가 생명이다. 죽음을 겁내지 마라. 내가 진리다. 헛된 것에 방황하지 말고 나를 믿어라. 내가 지혜다. 너희들이 참된 지혜자가 되려면 내게 와서 내 말씀을 듣고 배워라”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을 가지려면 최고의 전문가가 될 것을 요청하시며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교회에 예배드리러 와서 성전의 뜰만 밟고 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나와 인격적으로 만나보아라. 내가 생명인 것을 내 안에서 부딪히고 느껴보아라. 내게 네 생각을 주어라. 내게 네 마음을 주어라. 내게 네 생명까지도 맡겨보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새롭게 해주겠다. 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네가 참다운 생명과 말씀과 진리의 전문가가 되도록 하겠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한 가지 축복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약적으로 신앙의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온전히 주님 앞에 드릴 때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나에게 네 전부를 다오. 네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게 맡겨라. 그러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전부 네 것이 될 것이다.”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의 프로가 되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제자들이 고백합니다. “주님이 나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구원자이십니다. 주님이 생명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에게만 진리가 있습니다. 주님에게만 영원한 능력과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전문가로서 진실된 신앙고백을 할 때 예수님께서 쓰실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추어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영원한 신앙의 구경꾼이 될 뿐입니다.
신앙에도 전문가 정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맞부딪쳐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께서 우리의 고백을 통해서 새로운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실 수 있는 소중한 신앙의 인물로 우리를 세워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었지만 때로는 아마추어가 되어 구경꾼처럼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았던 것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진실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인격을 내 가슴으로 깨닫고 경험하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생명의 사람, 사랑의 사람, 하나님의 은혜의 사람으로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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