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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우리의 지혜 – 성경주제 2 : 지혜-

골로새서 2: 1 ~ 3

김지철 목사

2013.09.15

많은 사람들이 처세술에 관심을 갖습니다.

온라인 취업포털에서 직장인 2,300명에게 ‘직장 생활에서 처세술이 필수적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무려 95.5%가 ‘필수적’이라고 대답을 했으며 실제로 직장인의 73%는 처세술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사용하는 처세술에 대한 복수응답으로는 첫째, 눈치, 상황 판단력과 같은 즉각적인 센스(60%), 성실한 태도(36%), 예의 바른 태도(33%), 그리고 사교성과 인내심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처세술을 사용하십니까?(복수응답)’라는 물음에는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68%), 업무처리 시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36%), 근무 분위기를 원활하게 할 수 있어서(35%)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사용하는 이러한 처세술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자기개발서들도 처세술에 관련된 내용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처세술을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남을 잘 설득할 수 있는, 그래서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드는 지혜라고 생각하며 이것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성경에도 처세술적인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타난 지혜에도 처세술적인 지혜가 담겨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잠언서와 구약외경인 집회서, 지혜서에도 이런 처세술적인 지혜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다만 앞서 말한 세상의 처세술보다 삶의 본질을 더욱 깊이 꿰뚫은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집회서에는 재물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너는 재물을 의지하지 말며, ‘이만하면 족하다’고 자만하지 말라. 지혜가 있는 사람은 가난해도 존경을 받고, 부자는 그 재산 때문에 존경을 받는다. 가난하면서도 존경을 받을 수 있다면 부자일 때 얼마나 더 큰 존경을 받겠느냐. 부자이면서 경멸을 받는다면 가난하게 되었을 때 그의 처지가 어떻겠느냐?”
또한, 부자와 가난한 자는 갈등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 주기고 합니다. “늑대와 개가 어떻게 평화롭게 살 수 있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가 어떻게 화평하게 살 수 있겠는가. 나귀가 광야에서 사자의 밥이듯 가난한 자는 부자의 밥이다. 오만한 자들이 겸손을 싫어하듯 부자는 가난한 자를 싫어한다. 부자는 남을 해치고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치지만 가난한 사람은 피해를 입고도 오히려 사과를 해야 한다.”
이천년 전 지혜자의 글인데 오늘날과 그리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곳곳에서 하지 않습니까? 돈과 재물에 대한 고통은 여전한가 봅니다.
말에 대해서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여라. 대답을 못해서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답할 때를 기다려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가 오기까지 침묵을 지키나, 어리석은 사람은 때를 분간 못하고 수다를 떤다. 실언하기보다는 길에서 넘어지는 편이 더 낫다. 매에 맞아 죽으면 매 자국이 날 뿐이지만 혀에 맞아 죽으면 뼈가 부러진다. 칼에 맞아 죽은 사람이 있지만 혀에 맞아 죽은 사람은 더 많다. 말 많은 사람과 다투지 마라. 그것은 불에 장작을 넣는 것과도 같다.”
말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말 한마디로 사람이 세워지기도 하고, 반대로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성품이기도 하기 때문에 말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에 대해서도 기록이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를 아끼지 않는다. 만년에 그 자식은 기쁨이 될 것이다. 자식을 엄격히 키우는 사람은 덕을 볼 것이며, 친지들 사이에서 그 자식이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길들이지 않는 말은 사나워지고, 제멋대로 자란 자식은 방자해진다.”
예쁘다고, 그저 오냐오냐 하고 키우면 나중에 결코 효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잘못했을 때 매를 들어야 그 자녀가 아버지, 어머니의 소중함을 알고 효도할 줄 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녀 양육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내 뱃속에서 태어난 내 아들이고, 내 딸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이렇듯 부모와 자식을 비롯한 삶의 수많은 인간 관계에서 필요한 지혜를 성경의 잠언서나 외경의 지혜서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혜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지혜와 성경의 지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세상의 지혜는 처세술적인 지혜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지혜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세상의 수많은 경험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의 흐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지혜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연 질서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지혜, 인간의 모습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형상, 이 모든 삶의 조화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에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침투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신앙의 지혜는 상승하게 됩니다.
또 한 번 예를 들자면, 우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떤 친구는 너의 식탁에는 잘 와서 앉으나 네가 불행하게 되면 너를 버린다. 네가 잘 살 때는 네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 네 하인들마저 마음대로 부리다가 네가 망하게 되면 등을 돌려 네 옆에서 자취를 감춰버린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못된 친구는 비슷하지 않습니까? 반면 성실한 친구에 대해서 신앙의 지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실한 친구는 안전한 피난처요, 그런 친구를 가진 것은 보화를 가진 것과도 같다. 성실한 친구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음이요, 그 우정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이런 친구를 얻을 수 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참된 벗을 만든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들이 성실한 친구를 만들고, 친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알며, 스스로도 성실한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에 대해서는 이런 재미있는 표현도 있습니다. “고약한 아내와 함께 살기보다는 사자나 공룡과 함께 사는 편이 차라리 낫다. 세상에 악처보다 더 고약한 것이 있으랴. 죄인들이 받을 보상은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는 것이다. 훌륭한 아내를 가진 남편은 행복하여라. 그는 곱절은 오래 살리라. 좋은 아내는 큰 행복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이 행복을 받는다. 말이 적은 아내는 주님의 선물이며, 교양 있는 아내는 돈으로도 살 수 없다. 정숙한 아내는 더할 바 없는 매력을 갖고 있어, 그 정결함이 어떤 저울로도 잴 수가 없다.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는 좋은 아내는 주님의 산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아름답다.”
함께 사는 부부의 관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을 알게 되고, 주님을 경외할 때 이런 축복이 주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왜 하늘과 땅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솜씨가 안 보이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솜씨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찬란한 태양을 보아라. 저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라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될 때부터 믿음의 지혜가 풍성해집니다. 그래서 구약의 시편, 잠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로 우주 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고 인정할 수 있어야 이 세상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비밀과 지혜가 보이기 시작하고 들리기 시작하고 가슴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비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유대학자였던 아브라함 요수아 헤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지혜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당신의 놀라는 감각을 잃어버리는 때, 헛된 자만심으로 인해 당신이 우러러보는 능력을 위축시키는 때, 우주는 당신 앞에 하나의 장터가 되고 만다. 경외의 상실이야말로 바르게 보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가장 위대한 통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그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세계가 보이고, 인간관계가 보이고,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그 속에서 신앙이 나오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도 나오고, 순종도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근본입니다. 지혜의 시작입니다. 이 세상에 감춰진 모든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자리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의 우상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들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저와 같은 이런 존재들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모세를 찾아오시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굳이 찾아오시는 이유였습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뜨거워지는 그 열정보다 더 큰 사랑의 열정으로 믿음의 사람들을 찾아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갖고 계신 이 사랑의 열정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너는 죄로부터 자유해라. 너는 사탄의 억압으로부터 자유자가 되라. 너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자가 되라. 이제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라. 내가 네게 가르쳐준 이 하늘의 모든 비밀과 지혜와 지식을 네가 넘치게 깨닫고 누리라.” 이렇게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주어집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의 열정을 가지신 구원의 주님을 신뢰할 때에 우리에게 열립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의 열정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 땅에 육체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놓을 정도로 우리를 향한 사랑의 열정이 가득한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곧 하나님의 열정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파토스입니다. 그분 안에 하나님이 함께 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모든 지혜와 지식의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는 우리가 누릴 선물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 2절에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그(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로새서 2:3)

예수님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이것이 지혜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온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것,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서 사랑할 줄 아는 그것이 지혜자가 갖고 있는 삶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예수님 안에 담겨 있는 모든 지혜와 지식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올해, 미국의 최고 부자인 버핏이 자기와의 점심 약속에 대한 경매를 붙였는데 백만백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120,000,000원에 버핏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작년 낙찰가는 역대 최고가로 346만 달러, 약 40억 원이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그는 주식투자의 귀재이자 현인으로 그동안 자기 자산을 지혜롭게 운영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한 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10억, 40억을 들여 그와 점심식사를 하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현인 중에 현인은 누구일까요? 지혜자 중에 지혜자가 누구일까요?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 아닙니까? 그런데 그 예수님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얼마가 들까요? 하루 종일 예수님과 만나려면 얼마가 들까요? 공짜 아닙니까! 그런대 왜 안 만나십니까? 왜 요청을 안 하십니까?
예수님 앞에 나올 때는 한 가지 조건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진정한 지혜이자, 내게 사랑의 열정으로 다가오신 그 분을 향해서 마음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버핏과 만나는 사람이 그냥 갔을까요? 버핏이 어느 주식에 언제, 얼마만큼 투자했고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연구하고 물어볼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지혜자라고 했을 때, 우리도 물어봐야 되지 않을까요? “예수님,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누구와 만나셨습니까? 어떻게 사셨습니까? 예수님이 왜 지혜자이십니까?”
왜 성경을 읽으십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하십니까? 예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 하늘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지혜와 지식을 얻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며 주님 앞에 나가게 될 때 지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와 지식, 이 모든 보화를 우리의 것으로 삼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말씀을 펴서 읽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경험하면서 하늘의 지혜와 지식에 충만한 우리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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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 1 ~ 3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처세술에 관심을 갖습니다.

온라인 취업포털에서 직장인 2,300명에게 ‘직장 생활에서 처세술이 필수적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무려 95.5%가 ‘필수적’이라고 대답을 했으며 실제로 직장인의 73%는 처세술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사용하는 처세술에 대한 복수응답으로는 첫째, 눈치, 상황 판단력과 같은 즉각적인 센스(60%), 성실한 태도(36%), 예의 바른 태도(33%), 그리고 사교성과 인내심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처세술을 사용하십니까?(복수응답)’라는 물음에는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68%), 업무처리 시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36%), 근무 분위기를 원활하게 할 수 있어서(35%)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사용하는 이러한 처세술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자기개발서들도 처세술에 관련된 내용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처세술을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남을 잘 설득할 수 있는, 그래서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드는 지혜라고 생각하며 이것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성경에도 처세술적인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타난 지혜에도 처세술적인 지혜가 담겨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잠언서와 구약외경인 집회서, 지혜서에도 이런 처세술적인 지혜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다만 앞서 말한 세상의 처세술보다 삶의 본질을 더욱 깊이 꿰뚫은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집회서에는 재물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너는 재물을 의지하지 말며, ‘이만하면 족하다’고 자만하지 말라. 지혜가 있는 사람은 가난해도 존경을 받고, 부자는 그 재산 때문에 존경을 받는다. 가난하면서도 존경을 받을 수 있다면 부자일 때 얼마나 더 큰 존경을 받겠느냐. 부자이면서 경멸을 받는다면 가난하게 되었을 때 그의 처지가 어떻겠느냐?”
또한, 부자와 가난한 자는 갈등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 주기고 합니다. “늑대와 개가 어떻게 평화롭게 살 수 있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가 어떻게 화평하게 살 수 있겠는가. 나귀가 광야에서 사자의 밥이듯 가난한 자는 부자의 밥이다. 오만한 자들이 겸손을 싫어하듯 부자는 가난한 자를 싫어한다. 부자는 남을 해치고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치지만 가난한 사람은 피해를 입고도 오히려 사과를 해야 한다.”
이천년 전 지혜자의 글인데 오늘날과 그리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곳곳에서 하지 않습니까? 돈과 재물에 대한 고통은 여전한가 봅니다.
말에 대해서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여라. 대답을 못해서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답할 때를 기다려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가 오기까지 침묵을 지키나, 어리석은 사람은 때를 분간 못하고 수다를 떤다. 실언하기보다는 길에서 넘어지는 편이 더 낫다. 매에 맞아 죽으면 매 자국이 날 뿐이지만 혀에 맞아 죽으면 뼈가 부러진다. 칼에 맞아 죽은 사람이 있지만 혀에 맞아 죽은 사람은 더 많다. 말 많은 사람과 다투지 마라. 그것은 불에 장작을 넣는 것과도 같다.”
말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말 한마디로 사람이 세워지기도 하고, 반대로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성품이기도 하기 때문에 말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에 대해서도 기록이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를 아끼지 않는다. 만년에 그 자식은 기쁨이 될 것이다. 자식을 엄격히 키우는 사람은 덕을 볼 것이며, 친지들 사이에서 그 자식이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길들이지 않는 말은 사나워지고, 제멋대로 자란 자식은 방자해진다.”
예쁘다고, 그저 오냐오냐 하고 키우면 나중에 결코 효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잘못했을 때 매를 들어야 그 자녀가 아버지, 어머니의 소중함을 알고 효도할 줄 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녀 양육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내 뱃속에서 태어난 내 아들이고, 내 딸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이렇듯 부모와 자식을 비롯한 삶의 수많은 인간 관계에서 필요한 지혜를 성경의 잠언서나 외경의 지혜서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혜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지혜와 성경의 지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세상의 지혜는 처세술적인 지혜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지혜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세상의 수많은 경험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의 흐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지혜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연 질서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지혜, 인간의 모습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형상, 이 모든 삶의 조화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에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침투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신앙의 지혜는 상승하게 됩니다.
또 한 번 예를 들자면, 우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떤 친구는 너의 식탁에는 잘 와서 앉으나 네가 불행하게 되면 너를 버린다. 네가 잘 살 때는 네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 네 하인들마저 마음대로 부리다가 네가 망하게 되면 등을 돌려 네 옆에서 자취를 감춰버린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못된 친구는 비슷하지 않습니까? 반면 성실한 친구에 대해서 신앙의 지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실한 친구는 안전한 피난처요, 그런 친구를 가진 것은 보화를 가진 것과도 같다. 성실한 친구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음이요, 그 우정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이런 친구를 얻을 수 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참된 벗을 만든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들이 성실한 친구를 만들고, 친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알며, 스스로도 성실한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에 대해서는 이런 재미있는 표현도 있습니다. “고약한 아내와 함께 살기보다는 사자나 공룡과 함께 사는 편이 차라리 낫다. 세상에 악처보다 더 고약한 것이 있으랴. 죄인들이 받을 보상은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는 것이다. 훌륭한 아내를 가진 남편은 행복하여라. 그는 곱절은 오래 살리라. 좋은 아내는 큰 행복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이 행복을 받는다. 말이 적은 아내는 주님의 선물이며, 교양 있는 아내는 돈으로도 살 수 없다. 정숙한 아내는 더할 바 없는 매력을 갖고 있어, 그 정결함이 어떤 저울로도 잴 수가 없다.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는 좋은 아내는 주님의 산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아름답다.”
함께 사는 부부의 관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을 알게 되고, 주님을 경외할 때 이런 축복이 주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왜 하늘과 땅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솜씨가 안 보이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솜씨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찬란한 태양을 보아라. 저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라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될 때부터 믿음의 지혜가 풍성해집니다. 그래서 구약의 시편, 잠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로 우주 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고 인정할 수 있어야 이 세상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비밀과 지혜가 보이기 시작하고 들리기 시작하고 가슴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비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유대학자였던 아브라함 요수아 헤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지혜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당신의 놀라는 감각을 잃어버리는 때, 헛된 자만심으로 인해 당신이 우러러보는 능력을 위축시키는 때, 우주는 당신 앞에 하나의 장터가 되고 만다. 경외의 상실이야말로 바르게 보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가장 위대한 통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그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세계가 보이고, 인간관계가 보이고,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그 속에서 신앙이 나오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도 나오고, 순종도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근본입니다. 지혜의 시작입니다. 이 세상에 감춰진 모든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자리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의 우상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들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저와 같은 이런 존재들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모세를 찾아오시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굳이 찾아오시는 이유였습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뜨거워지는 그 열정보다 더 큰 사랑의 열정으로 믿음의 사람들을 찾아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갖고 계신 이 사랑의 열정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너는 죄로부터 자유해라. 너는 사탄의 억압으로부터 자유자가 되라. 너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자가 되라. 이제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라. 내가 네게 가르쳐준 이 하늘의 모든 비밀과 지혜와 지식을 네가 넘치게 깨닫고 누리라.” 이렇게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주어집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의 열정을 가지신 구원의 주님을 신뢰할 때에 우리에게 열립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의 열정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 땅에 육체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놓을 정도로 우리를 향한 사랑의 열정이 가득한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곧 하나님의 열정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파토스입니다. 그분 안에 하나님이 함께 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모든 지혜와 지식의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는 우리가 누릴 선물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 2절에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그(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로새서 2:3)

예수님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이것이 지혜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온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것,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서 사랑할 줄 아는 그것이 지혜자가 갖고 있는 삶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예수님 안에 담겨 있는 모든 지혜와 지식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올해, 미국의 최고 부자인 버핏이 자기와의 점심 약속에 대한 경매를 붙였는데 백만백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120,000,000원에 버핏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작년 낙찰가는 역대 최고가로 346만 달러, 약 40억 원이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그는 주식투자의 귀재이자 현인으로 그동안 자기 자산을 지혜롭게 운영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한 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10억, 40억을 들여 그와 점심식사를 하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현인 중에 현인은 누구일까요? 지혜자 중에 지혜자가 누구일까요?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 아닙니까? 그런데 그 예수님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얼마가 들까요? 하루 종일 예수님과 만나려면 얼마가 들까요? 공짜 아닙니까! 그런대 왜 안 만나십니까? 왜 요청을 안 하십니까?
예수님 앞에 나올 때는 한 가지 조건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진정한 지혜이자, 내게 사랑의 열정으로 다가오신 그 분을 향해서 마음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버핏과 만나는 사람이 그냥 갔을까요? 버핏이 어느 주식에 언제, 얼마만큼 투자했고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연구하고 물어볼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지혜자라고 했을 때, 우리도 물어봐야 되지 않을까요? “예수님,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누구와 만나셨습니까? 어떻게 사셨습니까? 예수님이 왜 지혜자이십니까?”
왜 성경을 읽으십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하십니까? 예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 하늘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지혜와 지식을 얻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며 주님 앞에 나가게 될 때 지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와 지식, 이 모든 보화를 우리의 것으로 삼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말씀을 펴서 읽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경험하면서 하늘의 지혜와 지식에 충만한 우리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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