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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우리의 자랑!

갈라디아서 6: 14 ~ 17

김지철 목사

2017.10.01

소망교회의 40년은 주님 안에서 하나 된 역사입니다.

오늘은 10월의 첫째 날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소망교회를 세워주신 지 40년이 되는 기념주일입니다. 교회와 성도님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아가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올해 들어 우리 교회는 ‘소망아띠’라는 미취학 아동과 부모가 함께하는 베이비카페를 신설했고, ‘소망풍경’ 이전 및 ‘소망, 책과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도서관도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또한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신년새벽기도회로 올해를 시작했고, 신앙수련회를 통해 일과 영성에 관한 심포지엄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어 통일선교 콘퍼런스도 시행하며 민족 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협력교회 농어촌 목회자들을 초청해 선교 현장 보고를 나누며 동역하는 시간도 가졌고, 교육박람회를 통해서는 다음세대를 어떻게 품고 양육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한 주간에는 ‘종교개혁과 한국교회개혁’이라는 주제 아래 발제 및 토론회를 가졌고, ‘아드폰테스’라는 제목으로 창작뮤지컬을 공연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멋지고 감동적인 무대였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어제는 500명 가까운 성가대와 소망 오케스트라가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했습니다. 무대에 가득히 올라선 찬양대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참여하고 동참해 주신 모든 찬양대원들과 주차 봉사를 해 주신 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 주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 직원들도 밤늦게까지 행사를 준비하느라 애를 많이 썼습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강단 꽃꽂이 봉사에 애써 주신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소망교회에 부임한 지 어느덧 15년이 흘렀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돌아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감사, 또 감사할 제목뿐이라는 고백을 드립니다. 소중한 성도님들과 장로님들을 만난 것도 제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한 목소리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바 아버지이시며,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자 맏형님이 되십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모두 한 형제와 자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가족 공동체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랑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인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자랑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자랑한다고 말씀합니다.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예수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중 세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본래 우리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지시고 골고다 십자가 길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길, 죽음을 향한 그 길이 우리를 치유하셨고, 우리를 회복하시며,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선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인생의 모든 슬픔과 아픔, 외로움, 절망, 탄식, 죄악과 허물을 짊어지고 가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말하며,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 5장 8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못난 아들은 사실 부모도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랑해 주시는 분이 우리 어머니들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허물 많은 죄인임에도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당신의 아들을 내어줄 정도로 우리를 아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19)

사랑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또한 아들까지 포기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에 이 모든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친구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려 주셨는데, 바로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3~14절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3~14)

이 말씀 직전 구절인 12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예수님도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3~14)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 놓으실 예수님의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우리를 각별히 사랑하고 아끼신다고, 그러한 사랑과 애정이 우정을 가능하게 하며 친구 관계를 맺어 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시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다른 특권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권한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생명의 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이 마지막 역사를 주관하시는 재림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우리에게 때로는 환난과 고통이 닥쳐올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가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 선포합니다. 로마서 8장 37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7)

이기고 또 이긴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사랑 때문에 이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 사랑 속에 모든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 구원의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진리 수호, 신앙 전승, 일상 영성에 힘쓰는 소망교회가 됩시다.

오늘 우리 교회는 창립4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50주년, 70주년의 미래를 바라보며 우리 교회에 부과된 세 가지 과제가 있음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우리는 ‘치열한 사상 논쟁’을 이겨 나가야 합니다. 반 기독교적인 사상과 공격이 계속될 것입니다. 21세기에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적대하는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다원주의적 사상입니다. 다원주의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가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객관적인 진리는 없다’, ‘진정한 진리는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선과 악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난무합니다. 이렇게 되면 도덕성이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은 독재자를 뜻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독선적인 종교도 아닙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유일성’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포용적인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당신의 아들과 딸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통일성이지, 다른 사상이나 사람을 내치거나 배격하려는 하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또한 진화론적 과학주의 사상도 경계해야 합니다. 과학이란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에 매몰된 과학주의는 위험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신념입니다. 과학이라기보다는 신념 체계에 가깝습니다. 이 사상에 의하면, 사람도 진화에 의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소통도 거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심성이 메말라지고 맙니다. 인간의 영혼이 시들어가게 될 뿐입니다.
소망교회는 많은 분들이 공존하는 소중한 교회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상가들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신학자와 목회자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 과학자들, 수학자들, 경제인들, 사업가들, 의사들, 법률가들, 교육자들, 문화예술인들 등이 배출되면 좋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영역을 개척하고 선하게 이끌어 가는 전문가들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믿음으로 자신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주신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보여줘야 합니다. 신학자와 목회자, 각 분야의 평신도 전문가,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실천가들이 만나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세워 가도록 함께 고민하고 고뇌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는 그동안 제가 끊임없이 가져왔던 바람이자 우리 교회 성도님들께 드리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는, ‘다음세대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30대에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성도님들이 벌써 70세가 넘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20대, 30대, 40대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신앙은 전승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승이 깨지면 모든 신앙의 유산들이 사라지고 맙니다. 유럽의 신앙 위기가 바로 이 전승의 단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교회는 있는데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는 있는데 하나님은 없습니다. 여러분, 나만 예수님을 잘 믿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 자녀를 믿음으로 축복하며 이끌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얼마나 매력적인 분이신지, 예수님이 왜 진리이신지, 예수님이 왜 생명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인간성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를 깨닫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그리고 앞으로 우리 교회에 주어진 중대한 과제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현장을 연결하는 과제’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라면 이때 어떻게 하셨을까? 어떻게 생각하시고 말씀하셨을까? 어떻게 행동하실까?’ 그렇게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애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수고와 땀 흘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헌신과 주님을 향한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8~39)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품고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의 발자취를 영상을 통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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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 14 ~ 17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소망교회의 40년은 주님 안에서 하나 된 역사입니다.

오늘은 10월의 첫째 날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소망교회를 세워주신 지 40년이 되는 기념주일입니다. 교회와 성도님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아가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올해 들어 우리 교회는 ‘소망아띠’라는 미취학 아동과 부모가 함께하는 베이비카페를 신설했고, ‘소망풍경’ 이전 및 ‘소망, 책과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도서관도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또한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신년새벽기도회로 올해를 시작했고, 신앙수련회를 통해 일과 영성에 관한 심포지엄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어 통일선교 콘퍼런스도 시행하며 민족 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협력교회 농어촌 목회자들을 초청해 선교 현장 보고를 나누며 동역하는 시간도 가졌고, 교육박람회를 통해서는 다음세대를 어떻게 품고 양육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한 주간에는 ‘종교개혁과 한국교회개혁’이라는 주제 아래 발제 및 토론회를 가졌고, ‘아드폰테스’라는 제목으로 창작뮤지컬을 공연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멋지고 감동적인 무대였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어제는 500명 가까운 성가대와 소망 오케스트라가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했습니다. 무대에 가득히 올라선 찬양대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참여하고 동참해 주신 모든 찬양대원들과 주차 봉사를 해 주신 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 주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 직원들도 밤늦게까지 행사를 준비하느라 애를 많이 썼습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강단 꽃꽂이 봉사에 애써 주신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소망교회에 부임한 지 어느덧 15년이 흘렀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돌아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감사, 또 감사할 제목뿐이라는 고백을 드립니다. 소중한 성도님들과 장로님들을 만난 것도 제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한 목소리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바 아버지이시며,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자 맏형님이 되십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모두 한 형제와 자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가족 공동체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랑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인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자랑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자랑한다고 말씀합니다.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예수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중 세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본래 우리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지시고 골고다 십자가 길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길, 죽음을 향한 그 길이 우리를 치유하셨고, 우리를 회복하시며,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선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인생의 모든 슬픔과 아픔, 외로움, 절망, 탄식, 죄악과 허물을 짊어지고 가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말하며,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 5장 8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못난 아들은 사실 부모도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랑해 주시는 분이 우리 어머니들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허물 많은 죄인임에도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당신의 아들을 내어줄 정도로 우리를 아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19)

사랑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또한 아들까지 포기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에 이 모든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친구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려 주셨는데, 바로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3~14절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3~14)

이 말씀 직전 구절인 12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예수님도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3~14)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 놓으실 예수님의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우리를 각별히 사랑하고 아끼신다고, 그러한 사랑과 애정이 우정을 가능하게 하며 친구 관계를 맺어 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시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다른 특권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권한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생명의 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이 마지막 역사를 주관하시는 재림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우리에게 때로는 환난과 고통이 닥쳐올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가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 선포합니다. 로마서 8장 37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7)

이기고 또 이긴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사랑 때문에 이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 사랑 속에 모든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 구원의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진리 수호, 신앙 전승, 일상 영성에 힘쓰는 소망교회가 됩시다.

오늘 우리 교회는 창립4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50주년, 70주년의 미래를 바라보며 우리 교회에 부과된 세 가지 과제가 있음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우리는 ‘치열한 사상 논쟁’을 이겨 나가야 합니다. 반 기독교적인 사상과 공격이 계속될 것입니다. 21세기에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적대하는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다원주의적 사상입니다. 다원주의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가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객관적인 진리는 없다’, ‘진정한 진리는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선과 악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난무합니다. 이렇게 되면 도덕성이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은 독재자를 뜻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독선적인 종교도 아닙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유일성’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포용적인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당신의 아들과 딸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통일성이지, 다른 사상이나 사람을 내치거나 배격하려는 하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또한 진화론적 과학주의 사상도 경계해야 합니다. 과학이란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에 매몰된 과학주의는 위험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신념입니다. 과학이라기보다는 신념 체계에 가깝습니다. 이 사상에 의하면, 사람도 진화에 의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소통도 거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심성이 메말라지고 맙니다. 인간의 영혼이 시들어가게 될 뿐입니다.
소망교회는 많은 분들이 공존하는 소중한 교회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상가들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신학자와 목회자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 과학자들, 수학자들, 경제인들, 사업가들, 의사들, 법률가들, 교육자들, 문화예술인들 등이 배출되면 좋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영역을 개척하고 선하게 이끌어 가는 전문가들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믿음으로 자신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주신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보여줘야 합니다. 신학자와 목회자, 각 분야의 평신도 전문가,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실천가들이 만나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세워 가도록 함께 고민하고 고뇌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는 그동안 제가 끊임없이 가져왔던 바람이자 우리 교회 성도님들께 드리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는, ‘다음세대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30대에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성도님들이 벌써 70세가 넘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20대, 30대, 40대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신앙은 전승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승이 깨지면 모든 신앙의 유산들이 사라지고 맙니다. 유럽의 신앙 위기가 바로 이 전승의 단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교회는 있는데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는 있는데 하나님은 없습니다. 여러분, 나만 예수님을 잘 믿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 자녀를 믿음으로 축복하며 이끌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얼마나 매력적인 분이신지, 예수님이 왜 진리이신지, 예수님이 왜 생명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인간성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를 깨닫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그리고 앞으로 우리 교회에 주어진 중대한 과제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현장을 연결하는 과제’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라면 이때 어떻게 하셨을까? 어떻게 생각하시고 말씀하셨을까? 어떻게 행동하실까?’ 그렇게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애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수고와 땀 흘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헌신과 주님을 향한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8~39)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품고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의 발자취를 영상을 통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2017년 10월 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예수, 우리의 자랑”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86, 21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갈 6:14-17 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소망교회 40주년, 종교개혁 500주년. ‘소망아띠’와 ‘소망풍경’, ‘소망 책과 사람들’까지, 하드웨어의 변화에 이어 ‘일과 영성’, ‘신앙수련회’, ‘통일컨퍼런스’, ‘선교사초청대회’, ‘교육박람회’, ‘종교개혁과 한국교회개혁의 심포지엄’, ‘아드폰테스’, 그리고 ‘헨델의 메시야’까지.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의 참여와 사랑으로 많은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소망교회와 함께 한 15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감사의 제목 뿐 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고백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이면서, 맏형이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다 형제요 자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예수 공동체입니다.

설교의 요약

우리가 예수님을 자랑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의로운 자로 세우시고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을 걸으셨습니다(요1:29), 사랑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요일4:19). 둘째,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하시고 친구로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요15:13). 셋째,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요1:12). 넷째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예수이며, 작은 그리스도입니다(요14:12-13). 다섯째, 부활하시고, 다시 이 땅에 오실 재림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고 또 이깁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8:37).

우리는 다시 소망의 50주년, 70주년의 미래를 바라보며, 시대로 부터 세 가지 과제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첫째, 치열한 사상논쟁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21세기에 우리가 접할 종교다원주의가 깊이 우리 삶에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객관적이고 진정한 진리는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선과 악의 절대적인 기준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유일한 하나님은 단순한 독선과 독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으로 하나 되는 통일성입니다. 또한 진화론적 과학주의를 이겨야 합니다. 하나의 신념체계일 뿐인 과학주의를 절대시하며 우리를 공격해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인격적인 만남과 소통을 거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상가들을 배출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신학자 뿐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해당됩니다. 즉 신학자, 목회자, 평신도 전문가와 현장의 실천가들이 모여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 땅에서 구현할 것인지 논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둘째, 다음 세대를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 30대에 헌신하였던 분들이 벌서 70대를 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20대, 30대, 40대를 위한 준비를 계속해야 합니다. 신앙은 전승이기 때문입니다. 구라파의 위가가 바로 이 전승의 단절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신앙과 삶의 현장을 연결해야 합니다. 내 직업과 내 일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펼치는 현장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소망의 미래, 비록 어렵고 힘든 일에 부딪힐 때에도 주님께서 내 눈물을 닦아 주실 미래가 확실한 것을 믿고 오늘을 용기 있게 도전하며 살아가기를 결단하며 주님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귀한 자녀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누기

1. 우리 예수님을 자랑할 이유, 우리 교회를 자랑할 이유를 나눠 봅시다.

2. 소망 40년, 2017년 40주년 행사 중에서 가장 은혜로웠던 사역들은 무엇이었나요. 그 이유와 은혜를 함께 나눠 봅시다.

3. 앞으로의 소망 100년을 바라보며,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바람을 나누고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40년의 세월을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앞으로의 40년, 100년의 미래를 바라보며 우리를 맡깁니다. 예수님 사랑하며 자랑하며 우리의 삶을, 교회의 미래를 열어가겠습니다. 성령님 우리와 동행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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