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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피의 화목제물 – 로마서 강해 12 –

로마서 3: 25 ~ 26

김지철 목사

2015.08.30

처칠의 연설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의 전시내각을 맡은 사람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었습니다. 독일의 나치 정권과 싸워 영국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5년 3개월 동안 나라를 위해 정열과 충성을 바친 인물입니다. 그는 1940년 5월 13일 영국 하원에서 수상과 국방상의 중책을 맡으면서 “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 밖에 없다”는 유명한 연설을 남깁니다. 이어 “여러분이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하나의 단어로 대답할 수 있다. 곧 승리, 승리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승리다. 어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승리다”라고 외칩니다. 당시 두려움과 좌절에 빠져 신음했던 영국 국민에게 결단과 용기를 북돋는 연설이었습니다. 책임자가 땀과 눈물과 피를 바쳐서 충성을 다하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땀은 인간의 노력을 의미합니다.

‘땀과 눈물과 피’는 우리가 생명과 정성을 다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오늘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 합니다. 먼저 땀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의 노력과 분투를 뜻합니다. 삶을 어떻게든 견뎌내려는 뚝심이 육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3:19)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땀’은 노동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만드시고 일하는 것, 노동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너도 일하라. 하나님이 노동했으니 너도 노동해 보라”며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인간에게 맡기신 것이 일이고 노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죄를 지은 다음부터는 그 노동이 즐거움이 되지 않고 괴로움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힘겨움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 상징성이 바로 땀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누가복음 22:44)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의 간절한 모습을 ‘땀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었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간절함과 노력이 들어있는 인간의 체액이 땀입니다.

눈물은 슬픔과 아픔을 나타냅니다.

눈물은 어떻습니까? 눈물은 슬픔과 애통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안에는 간절한 열망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 (시편 39:12)

고난을 당하는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부르짖음으로 확대되면서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바로 눈물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편 126:5)

황량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거둘 때를 허락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한복음 11:35)

이 구절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서 가장 짧은 구절입니다. 영어 성경은 “Jesus wept”이라고 표현합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의 자매 마르다, 마리아와 친지들이 우는 것을 보시면서 예수님께는 통분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셨다는 것입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

마지막으로 피는 무엇일까요? 피는 생명을 뜻합니다.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용기와 헌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피’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세 가지 인간의 체액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이 바로 피일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 때문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강한 성인 남성의 혈액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보통 5ℓ 내외라고 합니다. 우유 한 통이 1ℓ이니 그것 다섯 개 정도의 피가 몸 안에 흐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혈액이 조금 모자라는 것은 괜찮지만 30∼40%에 해당하는 약 2ℓ 가까이 모자라게 되면 쇼크가 오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피는 혈관을 통해 온몸을 돌면서 산소와 영양소를 각 기관에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노폐물을 거두어서 신장을 통해 배설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피가 하는 일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호르몬을 운반하고, 외부에서 병균이 들어오면 방어체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36.5℃의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피입니다.
그래서 피와 관련된 질병은 우리 몸에 아주 치명적인 위협을 가합니다. 혈액암이라고도 불리는 백혈병이 무엇입니까? 비정상적인 백혈구가 우리 혈액 안에 증식되는 질병입니다. 당뇨병은 무엇입니까? 인슐린 작용이 원활하지 않아 혈액 내에 당분이 과도하게 분포되어 생기는 질병입니다. 빈혈은 무엇입니까? 혈액 내 헤모글로빈의 농도가 낮아져 생기는 질병입니다. 혈우병은 혈액을 응고하는 인자가 부족하여 한 번 상처가 나서 출혈이 되면 피가 멈추지 않는 유전적 질환입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AIDS)은 바이러스에 의해 백혈구가 감염되어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질병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피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성경에는 피에 대한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인간의 몸에 중요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여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타납니다. ‘생명’, ‘피’, ‘죄의 속함’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같이 움직입니다. 생명이 곧 피고, 피가 곧 생명이며, 피의 제물이 있어야 용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 대가를 피의 생명으로 갚아야 할 만큼 인간의 죄와 불의는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피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피의 제물, 그것도 속죄제물, 희생제물, 화목제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요? 바로 구약에 나타나는 세 가지 전통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유월절 어린양의 전승입니다. 이스라엘이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라는 걸출한 인물을 택하시고 그에게 “네가 내 뜻대로 저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애굽 왕 바로 앞에 서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우리는 애굽을 떠나 저 광야로 나가겠다”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바로 왕은 그 요청을 거절하고 결국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애굽 땅에 열 번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 마지막 재앙은 첫 아들,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재앙이 유대인들에게 처음부터 면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재앙은 유대인에게나 애굽인에게 똑같이 내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면제해 주시겠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출애굽기 12:5∼7)

하나님이 열 번째 재앙을 위해 보내신 죽음의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향해서 올 때 문인방과 문설주에 양의 피가 발라진 것을 보면, ‘이미 죽음이 이곳을 왔구나’ 하고는 그 집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절기를 넘을 유(逾)에 건너갈 월(越)을 사용하여 유월절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The Passover입니다. 하나님이 피를 통하여 죽음의 천사를 뛰어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전승은 욤 키푸르(Yom Kippur)라는 이스라엘 대속죄의 날입니다. 대제사장이 숫양(염소) 두 마리를 잡습니다. 한 마리는 성막 안에서 잡아 속죄의 제물로 드립니다. 제사장은 제물을 들고 성막의 가장 깊숙한 곳,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모세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궤가 있습니다. 그 언약궤의 금뚜껑인 카포레트(kapporeth)에 피를 뿌리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합니다. 용서하신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성막에서 나와 하나님의 용서 선언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 마리에게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모두 전가시킵니다. 그리고 광야로 끌고 가 풀어놓습니다. 이 희생양(염소)은 짐승에게 잡혀 먹히든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이것을 아사셀의 희생양(염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이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이제는 다 사라져 버렸다는 선포입니다.
신약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언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즉 십자가의 길을 향해 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전승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입니다. 앞으로 오실 메시아는 이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5)

대속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여호와의 종에 대한 노래입니다. 놀랍게도 마태복음의 기자는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시고 질병을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태복음 8:16∼1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음으로 이해하고 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인 로마서 3장 25절이 다시 한 번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로마서 3:25)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예수님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죄를 싫어하십니다.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은 죄에 대한 징계를 요구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동물을 통해 죄지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일을 하시려고 합니다. 죄인을 의롭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딸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딜레마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죄를 심판하셔야 하는데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방법이 아들, 흠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피의 화목제물과 속죄제물이 되게 하셔서 인간이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모두 예수님에게 전가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피를 바라보고 믿는 사람들에게 용서받음의 특권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딸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깨달은 복음의 핵심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 나의 죄가 있습니다. 나의 걱정과 근심, 탄식과 신음, 두려움이 다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나의 연약함과 무지함과 어리석음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나를 회복시키시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3:26)

하나님은 당신이 의롭고, 예수 믿는 자도 의롭게 하시는 그 중심에 흠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같은 사랑이 너무나도 크고 위대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외칩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을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 9:12)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매년 반복한 것이 아니라 단번에, 한 번에 끝내셨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기뻐 노래하게 된 것은 이러한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증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 화목제물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흘리신 피 안에 우리의 구원이 있고 우리의 생명이 있고 우리의 죄의 용서가 있고 치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 앞에 서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죄책감이 우리를 억누르고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속의 두려움이 문득문득 살아 움직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불평과 불만과 걱정과 근심이 나를 사로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괜한 미움과 분노가 나를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육체의 연약함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네 무거운 짐을 내게 갖고 오라”고 말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렸다. 그러므로 나의 이 피로 너희가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고 치유를 받았음을 선언하면서 살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고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귀한 성도 여러분, 우리가 늘 예수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영적인 전투장인 세상을 향해 나갈 때, 예수님의 이름을 붙드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붙드셔야 합니다. “성령님이시여, 예수님의 보혈로 나를 덮으시옵소서. 내게 있는 죄악을 다 덮으시고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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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 25 ~ 26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처칠의 연설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의 전시내각을 맡은 사람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었습니다. 독일의 나치 정권과 싸워 영국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5년 3개월 동안 나라를 위해 정열과 충성을 바친 인물입니다. 그는 1940년 5월 13일 영국 하원에서 수상과 국방상의 중책을 맡으면서 “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 밖에 없다”는 유명한 연설을 남깁니다. 이어 “여러분이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하나의 단어로 대답할 수 있다. 곧 승리, 승리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승리다. 어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승리다”라고 외칩니다. 당시 두려움과 좌절에 빠져 신음했던 영국 국민에게 결단과 용기를 북돋는 연설이었습니다. 책임자가 땀과 눈물과 피를 바쳐서 충성을 다하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땀은 인간의 노력을 의미합니다.

‘땀과 눈물과 피’는 우리가 생명과 정성을 다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오늘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 합니다. 먼저 땀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의 노력과 분투를 뜻합니다. 삶을 어떻게든 견뎌내려는 뚝심이 육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3:19)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땀’은 노동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만드시고 일하는 것, 노동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너도 일하라. 하나님이 노동했으니 너도 노동해 보라”며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인간에게 맡기신 것이 일이고 노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죄를 지은 다음부터는 그 노동이 즐거움이 되지 않고 괴로움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힘겨움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 상징성이 바로 땀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누가복음 22:44)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의 간절한 모습을 ‘땀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었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간절함과 노력이 들어있는 인간의 체액이 땀입니다.

눈물은 슬픔과 아픔을 나타냅니다.

눈물은 어떻습니까? 눈물은 슬픔과 애통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안에는 간절한 열망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 (시편 39:12)

고난을 당하는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부르짖음으로 확대되면서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바로 눈물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편 126:5)

황량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거둘 때를 허락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한복음 11:35)

이 구절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서 가장 짧은 구절입니다. 영어 성경은 “Jesus wept”이라고 표현합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의 자매 마르다, 마리아와 친지들이 우는 것을 보시면서 예수님께는 통분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셨다는 것입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

마지막으로 피는 무엇일까요? 피는 생명을 뜻합니다.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용기와 헌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피’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세 가지 인간의 체액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이 바로 피일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 때문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강한 성인 남성의 혈액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보통 5ℓ 내외라고 합니다. 우유 한 통이 1ℓ이니 그것 다섯 개 정도의 피가 몸 안에 흐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혈액이 조금 모자라는 것은 괜찮지만 30∼40%에 해당하는 약 2ℓ 가까이 모자라게 되면 쇼크가 오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피는 혈관을 통해 온몸을 돌면서 산소와 영양소를 각 기관에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노폐물을 거두어서 신장을 통해 배설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피가 하는 일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호르몬을 운반하고, 외부에서 병균이 들어오면 방어체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36.5℃의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피입니다.
그래서 피와 관련된 질병은 우리 몸에 아주 치명적인 위협을 가합니다. 혈액암이라고도 불리는 백혈병이 무엇입니까? 비정상적인 백혈구가 우리 혈액 안에 증식되는 질병입니다. 당뇨병은 무엇입니까? 인슐린 작용이 원활하지 않아 혈액 내에 당분이 과도하게 분포되어 생기는 질병입니다. 빈혈은 무엇입니까? 혈액 내 헤모글로빈의 농도가 낮아져 생기는 질병입니다. 혈우병은 혈액을 응고하는 인자가 부족하여 한 번 상처가 나서 출혈이 되면 피가 멈추지 않는 유전적 질환입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AIDS)은 바이러스에 의해 백혈구가 감염되어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질병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피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성경에는 피에 대한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인간의 몸에 중요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여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타납니다. ‘생명’, ‘피’, ‘죄의 속함’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같이 움직입니다. 생명이 곧 피고, 피가 곧 생명이며, 피의 제물이 있어야 용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 대가를 피의 생명으로 갚아야 할 만큼 인간의 죄와 불의는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피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피의 제물, 그것도 속죄제물, 희생제물, 화목제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요? 바로 구약에 나타나는 세 가지 전통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유월절 어린양의 전승입니다. 이스라엘이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라는 걸출한 인물을 택하시고 그에게 “네가 내 뜻대로 저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애굽 왕 바로 앞에 서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우리는 애굽을 떠나 저 광야로 나가겠다”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바로 왕은 그 요청을 거절하고 결국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애굽 땅에 열 번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 마지막 재앙은 첫 아들,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재앙이 유대인들에게 처음부터 면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재앙은 유대인에게나 애굽인에게 똑같이 내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면제해 주시겠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출애굽기 12:5∼7)

하나님이 열 번째 재앙을 위해 보내신 죽음의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향해서 올 때 문인방과 문설주에 양의 피가 발라진 것을 보면, ‘이미 죽음이 이곳을 왔구나’ 하고는 그 집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절기를 넘을 유(逾)에 건너갈 월(越)을 사용하여 유월절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The Passover입니다. 하나님이 피를 통하여 죽음의 천사를 뛰어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전승은 욤 키푸르(Yom Kippur)라는 이스라엘 대속죄의 날입니다. 대제사장이 숫양(염소) 두 마리를 잡습니다. 한 마리는 성막 안에서 잡아 속죄의 제물로 드립니다. 제사장은 제물을 들고 성막의 가장 깊숙한 곳,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모세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궤가 있습니다. 그 언약궤의 금뚜껑인 카포레트(kapporeth)에 피를 뿌리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합니다. 용서하신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성막에서 나와 하나님의 용서 선언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 마리에게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모두 전가시킵니다. 그리고 광야로 끌고 가 풀어놓습니다. 이 희생양(염소)은 짐승에게 잡혀 먹히든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이것을 아사셀의 희생양(염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이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이제는 다 사라져 버렸다는 선포입니다.
신약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언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즉 십자가의 길을 향해 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전승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입니다. 앞으로 오실 메시아는 이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5)

대속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여호와의 종에 대한 노래입니다. 놀랍게도 마태복음의 기자는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시고 질병을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태복음 8:16∼1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음으로 이해하고 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인 로마서 3장 25절이 다시 한 번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로마서 3:25)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예수님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죄를 싫어하십니다.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은 죄에 대한 징계를 요구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동물을 통해 죄지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일을 하시려고 합니다. 죄인을 의롭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딸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딜레마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죄를 심판하셔야 하는데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방법이 아들, 흠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피의 화목제물과 속죄제물이 되게 하셔서 인간이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모두 예수님에게 전가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피를 바라보고 믿는 사람들에게 용서받음의 특권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딸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깨달은 복음의 핵심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 나의 죄가 있습니다. 나의 걱정과 근심, 탄식과 신음, 두려움이 다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나의 연약함과 무지함과 어리석음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나를 회복시키시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3:26)

하나님은 당신이 의롭고, 예수 믿는 자도 의롭게 하시는 그 중심에 흠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같은 사랑이 너무나도 크고 위대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외칩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을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 9:12)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매년 반복한 것이 아니라 단번에, 한 번에 끝내셨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기뻐 노래하게 된 것은 이러한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증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 화목제물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흘리신 피 안에 우리의 구원이 있고 우리의 생명이 있고 우리의 죄의 용서가 있고 치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 앞에 서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죄책감이 우리를 억누르고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속의 두려움이 문득문득 살아 움직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불평과 불만과 걱정과 근심이 나를 사로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괜한 미움과 분노가 나를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육체의 연약함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네 무거운 짐을 내게 갖고 오라”고 말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렸다. 그러므로 나의 이 피로 너희가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고 치유를 받았음을 선언하면서 살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고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귀한 성도 여러분, 우리가 늘 예수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영적인 전투장인 세상을 향해 나갈 때, 예수님의 이름을 붙드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붙드셔야 합니다. “성령님이시여, 예수님의 보혈로 나를 덮으시옵소서. 내게 있는 죄악을 다 덮으시고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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