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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의 리더십, 모세

민수기 12: 3 ~ 7

김지철 목사

2018.06.03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6월 한 달 동안은 성경에 나타난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대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올해 12월이면 저는 소망교회 담임목사로서의 16년간의 목회를 마칩니다. 작년에 당회에서 청빙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결정했고, 올해 1월에는 12분의 청빙위원회 구성을 마쳤습니다. 이후 우리 교회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께 3대 목사님을 추천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드렸습니다. 또 한국 교회에 소망교회 3대 담임목사를 구하는 청빙 광고도 냈습니다. 많은 분의 목회자가 추천되었고, 청빙위원회가 소위원회까지 구성했으며, 20여 차례 회의로 모이면서 청빙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3대 담임목사님은 6월이나 늦어도 7월까지는 결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구로 결정될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청빙위원회가 잘 진행되도록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청빙위원회에서 새로운 3대 목사님이 결정되면, 그다음엔 당회를 열고 이후 공동의회를 거쳐 성도님들께 최종 승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분, 곧 좋은 설교자가 오시기를 기대합니다.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분, 가슴 따뜻한 목회자가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한국 교회를 지혜와 분별력으로 이끌 수 있는 분, 영적인 지도자로서 한국 교회를 인도할 분을 모시길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 애국지사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 용사를 기억하는 달입니다. 또 이번 13일에는 광역, 자치 단체장, 서울시장과 도지사, 구청장과 교육감 선거가 있습니다. 어떤 지도자가 공동체에 세워지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건강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더욱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올바른 정치적 판단력을 가지고 정당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할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모세는 온유한 지도자였습니다.

오늘은 성경에 나타난 지도자 중 첫 번째 인물로 ‘모세’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가나안까지 이끈 지도자입니다. 그는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적인 탁월성을 지닌 지도자였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사용하신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지도력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에 관해 다 말하자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은 모세를 참된 지도자로 세워 나갔던 기초적 성품, 곧 ‘온유함’에 관해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모세의 성품을 증언합니다. 민수기 12장 3절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기 12:3)

모세의 온유함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질문이 생깁니다. ‘모세가 정말 온유한 사람이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모세의 온유하지 않은 모습도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화도 자주 냈습니다.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고, 하나님을 향해 항변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온유하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먼저 온유함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온유함이란 자기 연민이나 열등감, 또는 비굴함 때문에 조용히 있는 게 아닙니다. 또는 태만하고 게을러터진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삶을 뭉그적거리며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연약함이나 무기력을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강인한 용기와 활력을 지닌 모습이 온유함입니다. 상처 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포용력을 지닌 것도 온유함입니다. 즉 온유함이란 자기 자신에게 힘이 있지만, 그 힘을 통제할 줄 아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초기 생애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모세는 난폭했습니다. 급한 성격을 지녔습니다. 나름대로 영웅 의식도 있었습니다. 정치적 메시아니즘에 함몰돼 있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광야로 도망간 것을 보면, 살인의 내용 가운데 반역죄가 포함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히브리 백성을 통해 민중 봉기를 꿈꾸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더는 애굽 바로 궁에 머물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그는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모세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를 뒤덮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모세의 그림자는 버림받음의 경험입니다. 그것은 아주 충격적인 경험입니다. 그는 태어나 얼마 되지도 않은 때 고아처럼 버림받았습니다. 부모가 그를 직접 키울 수 없었던 까닭입니다. 그는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조차 부를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이 그의 삶을 그렇게 내몰았습니다. 어린 모세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경험입니다. 버림받았다는 외로움이 모세의 삶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자기 민족에게도 버림받음을 경험했습니다. 청년이 된 후 그는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애굽의 압제 아래 고난 받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정치적 메시아가 될 수 있겠다고,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 앞에 나선 모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지도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세가 행한 살인죄를 고발하려 했습니다. 때문에 모세는 어쩔 수 없이 겁을 먹고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이러한 버림받음의 상처가 모세에게 쉽게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그는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는데, 그 세월 동안에도 치유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실 때도 모세는 거절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라’는 명령에 그는 자신은 못 간다고, 능력이 안 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끊임없이 거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한 번 자기 민족에게 거절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4장 1절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출애굽기 4:1)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자신을 의심할 것이라고 두려워합니다. 그의 마음에 깨진 신뢰에 대한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답 속에는 하나님마저 불신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다가 토사구팽하면, 그야말로 나는 부끄러운 신세가 되고 마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하나님의 동행과 인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사용하길 원하셨습니다. 모세의 어두운 그림자마저 복이라고, 그의 실패마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에게도 모세와 같은 어둠과 그림자가 있지 않습니까? 슬픔은 경험해 본 적 있지 않습니까? 나만 홀로 남았다는 절망스런 탄식이 있지 않습니까? 광야 생활을 했던 기억들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길 원하십니다. 부족하고 모난 우리의 성품 가운데서 온유함을 자라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약 이런 어둠의 시간과 경험이 없다면, 모든 게 내가 잘나서, 내가 능력이 많아서, 내가 지혜로워서 그런 줄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삶의 주권이 네게 있는 게 아니라 내게 있다.” 오늘 모세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치려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출애굽기 3장 10,1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애굽기 3:10,12 중)

여기서 주어는 ‘나’입니다. ‘나’는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고,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 백성을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40년 동안 모세를 광야에서 훈련시키면서 알려주신 내용도 이런 것입니다. “모세야,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모든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어떤 것도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니, 네가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 말에 순종하며 나아가면 된다.”
여러분, 모든 리더십의 시작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내 가정입니까, 기업이 내 기업입니까? 국가가 내 국가입니까? 교회가 내 교회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네게 잠시 맡겨 준 가족이다. 네게 잠시 맡긴 기업이다. 네 교회가 아니라 내 교회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어이십니다. 주체는 오직 하나님, 주인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 의식을 지도자가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사적인 욕망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을 지닌 지도력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큰 권력을 가져도 나보다 더 큰 권력자가 하늘에 계심을 알아야 겸손하고 온유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지도자는 위험합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 지도자가 될 때는 더더욱 위험합니다. 정치적 메시아니즘, 영적인 메시아니즘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기억하면서 더 큰 비전과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어야 복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온유함의 비결이라고 말입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백성을 위해 투신하는 결단에서 드러납니다.

한편 위의 내용이 모세의 초기 사역 내용이라면, 광야에 있었던 시기는 모세의 중기 사역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또 한 번 모세의 온유함이 드러나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섰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 절하며 춤추며 즐겼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진노하시며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2장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출애굽기 32:7)

이때 하나님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전에는 ‘내 백성’, ‘내가 인도한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이제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며 ‘네 백성’이란 표현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바로 이때 모세의 온유한 지도력이 드러납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겁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며 탄원합니다. 이 순간 모세의 기도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1절을 읽겠습니다.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출애굽기 32:11)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내가 인도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친히 인도하셨는데, 왜 제가 인도했다고 하십니까?” 여기서 그는 ‘주의 백성’, ‘당신의 백성’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께 ‘어찌하여’라는 질문을 할 만큼 용기와 베짱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연속해서 여러 질문들을 퍼붓습니다. 이리하여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였고, 진멸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습니다. 지도자를 위해 공동체가 있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공동체를 위해 지도자를 뽑는 것입니다. 정치 권력자가 있는 것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지 정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를 위해 교회가 있는 게 아니라 교회를 위해 목사가 있는 것이고 교회 직분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세 역시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맞습니다. 이 백성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게 맡겨 주셨기에 충성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와 대면하기도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모세의 온유함입니다. 고통 받고 힘들어하고 아파하며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고, 그 내용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모세의 온유함이자 지도력이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지도력 승계에서도 돋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세 인생의 말기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 바로 앞에 섰습니다. 그 역시 너무나 들어가고 싶어 했던 땅입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다가 그 앞에 선 것입니다. 그때 모세의 나이 120살이었지만, 건강 상태도 양호했습니다. 신명기 34장 7절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신명기 34:7)

눈도 잘 보이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너의 사명은 여기까지다. 너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 아마 모세도 상심했을 것입니다. 이 본문을 구약과 신약의 넓은 틀에서 보면, 하나님이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모세야, 너는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이란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약속의 땅, 복음을 대표하는 여호수아에게 갈 길을 열어 주거라. 너는 여기까지다.”
흥미로운 것은 여호수아란 이름이 예수란 이름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나아가 놀랍게도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여호수아의 길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모세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의 모습이 아름답고, 여호수아에게 지도력을 넘겨주는 모세도 참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온유함입니다. 자신의 한계성을 바로 알고, 그와 동시에 최선을 다했던 모세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정과 교회, 나라, 이 사회의 지도자입니다. 우리가 온유한 성품을 가져야 다른 사람을 아우를 수 있고 인생을 감사히 열어 나갈 수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잠시 맡겨 주신 것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도자로 세우신 것은, 우리 가정의 아픔, 교회의 아픔, 사회의 아픔을 조롱하거나 비난할 게 아니라 그 속에 내 죄악이 함께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에게 온유함이 자랍니다.
모세의 온유함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세대를 준비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훌륭한 부모님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과 딸이 스무 살이 넘고 서른이 넘고 마흔이 다 돼 가는데도 그들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좀 놓아 주셔야 합니다. 그들을 신뢰하고, 그들 스스로 다음 길을 가도록 놔 주는 것이 온유한 모습입니다. 모세 역시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고, 바로 그때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온유함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고, 하나님이 내 삶에 동행하심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제3대 목사님을 결정하기 전까지 기도하고, 또 결정된 뒤에도 함께 도우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 교회와 이 땅에 세워 나가는 것이 소망교회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이 귀한 사명을 우리 모두가 함께 기쁨과 감사로 감당하길 원합니다. 이 걸음에 동참하는 귀한 성도님들과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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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2: 3 ~ 7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6월 한 달 동안은 성경에 나타난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대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올해 12월이면 저는 소망교회 담임목사로서의 16년간의 목회를 마칩니다. 작년에 당회에서 청빙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결정했고, 올해 1월에는 12분의 청빙위원회 구성을 마쳤습니다. 이후 우리 교회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께 3대 목사님을 추천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드렸습니다. 또 한국 교회에 소망교회 3대 담임목사를 구하는 청빙 광고도 냈습니다. 많은 분의 목회자가 추천되었고, 청빙위원회가 소위원회까지 구성했으며, 20여 차례 회의로 모이면서 청빙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3대 담임목사님은 6월이나 늦어도 7월까지는 결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구로 결정될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청빙위원회가 잘 진행되도록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청빙위원회에서 새로운 3대 목사님이 결정되면, 그다음엔 당회를 열고 이후 공동의회를 거쳐 성도님들께 최종 승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분, 곧 좋은 설교자가 오시기를 기대합니다.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분, 가슴 따뜻한 목회자가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한국 교회를 지혜와 분별력으로 이끌 수 있는 분, 영적인 지도자로서 한국 교회를 인도할 분을 모시길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 애국지사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 용사를 기억하는 달입니다. 또 이번 13일에는 광역, 자치 단체장, 서울시장과 도지사, 구청장과 교육감 선거가 있습니다. 어떤 지도자가 공동체에 세워지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건강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더욱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올바른 정치적 판단력을 가지고 정당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할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모세는 온유한 지도자였습니다.

오늘은 성경에 나타난 지도자 중 첫 번째 인물로 ‘모세’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가나안까지 이끈 지도자입니다. 그는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적인 탁월성을 지닌 지도자였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사용하신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지도력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에 관해 다 말하자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은 모세를 참된 지도자로 세워 나갔던 기초적 성품, 곧 ‘온유함’에 관해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모세의 성품을 증언합니다. 민수기 12장 3절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기 12:3)

모세의 온유함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질문이 생깁니다. ‘모세가 정말 온유한 사람이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모세의 온유하지 않은 모습도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화도 자주 냈습니다.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고, 하나님을 향해 항변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온유하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먼저 온유함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온유함이란 자기 연민이나 열등감, 또는 비굴함 때문에 조용히 있는 게 아닙니다. 또는 태만하고 게을러터진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삶을 뭉그적거리며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연약함이나 무기력을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강인한 용기와 활력을 지닌 모습이 온유함입니다. 상처 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포용력을 지닌 것도 온유함입니다. 즉 온유함이란 자기 자신에게 힘이 있지만, 그 힘을 통제할 줄 아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초기 생애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모세는 난폭했습니다. 급한 성격을 지녔습니다. 나름대로 영웅 의식도 있었습니다. 정치적 메시아니즘에 함몰돼 있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광야로 도망간 것을 보면, 살인의 내용 가운데 반역죄가 포함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히브리 백성을 통해 민중 봉기를 꿈꾸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더는 애굽 바로 궁에 머물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그는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모세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를 뒤덮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모세의 그림자는 버림받음의 경험입니다. 그것은 아주 충격적인 경험입니다. 그는 태어나 얼마 되지도 않은 때 고아처럼 버림받았습니다. 부모가 그를 직접 키울 수 없었던 까닭입니다. 그는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조차 부를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이 그의 삶을 그렇게 내몰았습니다. 어린 모세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경험입니다. 버림받았다는 외로움이 모세의 삶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자기 민족에게도 버림받음을 경험했습니다. 청년이 된 후 그는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애굽의 압제 아래 고난 받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정치적 메시아가 될 수 있겠다고,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 앞에 나선 모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지도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세가 행한 살인죄를 고발하려 했습니다. 때문에 모세는 어쩔 수 없이 겁을 먹고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이러한 버림받음의 상처가 모세에게 쉽게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그는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는데, 그 세월 동안에도 치유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실 때도 모세는 거절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라’는 명령에 그는 자신은 못 간다고, 능력이 안 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끊임없이 거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한 번 자기 민족에게 거절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4장 1절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출애굽기 4:1)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자신을 의심할 것이라고 두려워합니다. 그의 마음에 깨진 신뢰에 대한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답 속에는 하나님마저 불신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다가 토사구팽하면, 그야말로 나는 부끄러운 신세가 되고 마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하나님의 동행과 인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사용하길 원하셨습니다. 모세의 어두운 그림자마저 복이라고, 그의 실패마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에게도 모세와 같은 어둠과 그림자가 있지 않습니까? 슬픔은 경험해 본 적 있지 않습니까? 나만 홀로 남았다는 절망스런 탄식이 있지 않습니까? 광야 생활을 했던 기억들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길 원하십니다. 부족하고 모난 우리의 성품 가운데서 온유함을 자라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약 이런 어둠의 시간과 경험이 없다면, 모든 게 내가 잘나서, 내가 능력이 많아서, 내가 지혜로워서 그런 줄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삶의 주권이 네게 있는 게 아니라 내게 있다.” 오늘 모세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치려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출애굽기 3장 10,1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애굽기 3:10,12 중)

여기서 주어는 ‘나’입니다. ‘나’는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고,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 백성을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40년 동안 모세를 광야에서 훈련시키면서 알려주신 내용도 이런 것입니다. “모세야,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모든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어떤 것도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니, 네가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 말에 순종하며 나아가면 된다.”
여러분, 모든 리더십의 시작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내 가정입니까, 기업이 내 기업입니까? 국가가 내 국가입니까? 교회가 내 교회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네게 잠시 맡겨 준 가족이다. 네게 잠시 맡긴 기업이다. 네 교회가 아니라 내 교회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어이십니다. 주체는 오직 하나님, 주인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 의식을 지도자가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사적인 욕망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을 지닌 지도력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큰 권력을 가져도 나보다 더 큰 권력자가 하늘에 계심을 알아야 겸손하고 온유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지도자는 위험합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 지도자가 될 때는 더더욱 위험합니다. 정치적 메시아니즘, 영적인 메시아니즘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기억하면서 더 큰 비전과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어야 복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온유함의 비결이라고 말입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백성을 위해 투신하는 결단에서 드러납니다.

한편 위의 내용이 모세의 초기 사역 내용이라면, 광야에 있었던 시기는 모세의 중기 사역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또 한 번 모세의 온유함이 드러나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섰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 절하며 춤추며 즐겼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진노하시며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2장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출애굽기 32:7)

이때 하나님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전에는 ‘내 백성’, ‘내가 인도한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이제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며 ‘네 백성’이란 표현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바로 이때 모세의 온유한 지도력이 드러납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겁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며 탄원합니다. 이 순간 모세의 기도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1절을 읽겠습니다.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출애굽기 32:11)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내가 인도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친히 인도하셨는데, 왜 제가 인도했다고 하십니까?” 여기서 그는 ‘주의 백성’, ‘당신의 백성’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께 ‘어찌하여’라는 질문을 할 만큼 용기와 베짱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연속해서 여러 질문들을 퍼붓습니다. 이리하여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였고, 진멸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습니다. 지도자를 위해 공동체가 있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공동체를 위해 지도자를 뽑는 것입니다. 정치 권력자가 있는 것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지 정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를 위해 교회가 있는 게 아니라 교회를 위해 목사가 있는 것이고 교회 직분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세 역시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맞습니다. 이 백성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게 맡겨 주셨기에 충성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와 대면하기도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모세의 온유함입니다. 고통 받고 힘들어하고 아파하며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고, 그 내용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모세의 온유함이자 지도력이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지도력 승계에서도 돋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세 인생의 말기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 바로 앞에 섰습니다. 그 역시 너무나 들어가고 싶어 했던 땅입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다가 그 앞에 선 것입니다. 그때 모세의 나이 120살이었지만, 건강 상태도 양호했습니다. 신명기 34장 7절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신명기 34:7)

눈도 잘 보이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너의 사명은 여기까지다. 너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 아마 모세도 상심했을 것입니다. 이 본문을 구약과 신약의 넓은 틀에서 보면, 하나님이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모세야, 너는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이란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약속의 땅, 복음을 대표하는 여호수아에게 갈 길을 열어 주거라. 너는 여기까지다.”
흥미로운 것은 여호수아란 이름이 예수란 이름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나아가 놀랍게도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여호수아의 길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모세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의 모습이 아름답고, 여호수아에게 지도력을 넘겨주는 모세도 참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온유함입니다. 자신의 한계성을 바로 알고, 그와 동시에 최선을 다했던 모세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정과 교회, 나라, 이 사회의 지도자입니다. 우리가 온유한 성품을 가져야 다른 사람을 아우를 수 있고 인생을 감사히 열어 나갈 수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잠시 맡겨 주신 것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도자로 세우신 것은, 우리 가정의 아픔, 교회의 아픔, 사회의 아픔을 조롱하거나 비난할 게 아니라 그 속에 내 죄악이 함께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에게 온유함이 자랍니다.
모세의 온유함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세대를 준비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훌륭한 부모님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과 딸이 스무 살이 넘고 서른이 넘고 마흔이 다 돼 가는데도 그들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좀 놓아 주셔야 합니다. 그들을 신뢰하고, 그들 스스로 다음 길을 가도록 놔 주는 것이 온유한 모습입니다. 모세 역시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고, 바로 그때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온유함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고, 하나님이 내 삶에 동행하심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제3대 목사님을 결정하기 전까지 기도하고, 또 결정된 뒤에도 함께 도우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 교회와 이 땅에 세워 나가는 것이 소망교회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이 귀한 사명을 우리 모두가 함께 기쁨과 감사로 감당하길 원합니다. 이 걸음에 동참하는 귀한 성도님들과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6월 3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온유함의 리더십, 모세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88장, 44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민12:3~7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6월 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우리는 소망교회 3대 담임목사님 청빙을 위해서 기도해야만 합니다첫째로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좋은 설교자둘째로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으로 이끌 수 있는 가슴이 따뜻한 목회자마지막으로 한국교회를 지혜와 분별력으로 이끌 수 있는 한국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를 모시도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설교의 요약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종되었던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약속의 땅까지 인도한 지도자입니다그렇다면 모세 지도력의 특성은 무엇입니까모세는 온유한 사람입니다(12:3). 하지만 모세가 젊었을 때는 난폭하고 급한 성격이었습니다모세의 생애 전체를 뒤덮고 있었던 어두운 그림자는 버림받음의 경험입니다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고아처럼 버림받았고청년이 된 후에는 자기 민족에게 버림받았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의 어두움 그림자실패의 나락에서 끄집어내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에 대해 세 가지만 언급하려 합니다첫째 모세는 자신의 힘과 능력지혜와 용기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확인하며 시작하였습니다그는 자기 한계를 늘 기억하면서 큰 목표를 향해 나갔습니다둘째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진멸하겠다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셨을 때자기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자기 백성을 위해 탄원/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32:11). 하나님을 향하여 어찌하여?’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었습니다마지막으로 후계자 여호수아를 세운 일입니다모세는 가나안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그가 가나안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그의 건강은 양호했습니다(34:7).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모세를 하나님께서 나의 종이라 부르셨습니다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말씀을 나눈 사람이 모세입니다그것이 모세의 온유함의 정점이었습니다모세를 통해서 그 다음 지도자 여호수아가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이것이 멋진 축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정교회사회와 나라의 지도자들입니다우리는 온유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까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내 삶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시대의 고통과 고난을 직시하며 우리의 이웃의 아픔을 함께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태도입니까? “내가 다 할 수 있다나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오히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고그 은혜에 놀라워하는 사람입니다.

나누기

1. 모세는 참으로 온유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오늘 나는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입니까?

    온유한 마음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무엇이 있습니까함께 나눠보세요.

2.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자기의 한계성을 확인하였지만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세의 온유함을 본받을 수 있도록 서로를 축복하며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온유한 성품의 소유자인 모세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겸손히 그의 일을 감당하였습니다우리에게도 이런 온유함과 겸손함이 있게 하시고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귀한 역사를 감당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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