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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복덩어리

갈라디아서 3: 6 ~ 9

김지철 목사

2016.08.07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자녀를 낳았을 때, ‘이놈 복덩이야’ 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까? 우리는 종종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가정의 축복이 될 것이라는 마음의 소원과 함께 ‘복덩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실 때 하신 말씀도 그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인생의 여정에서 꼭 기억해라. 너는 하나님의 복덩어리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일흔 다섯인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앞으로 제2의 인생을 살라는 부탁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너는 그냥 살아왔다. 목적 없이 살았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다니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살라. 복덩이로 살라. 그것도 하나님의 복덩이로 살라”는 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2)

“내가 너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지금은 네가 자녀도 없이 혼자지만, 네가 앞으로 낳을 자녀를 통해서 민족이 탄생할 것이다. 너는 세상의 복덩어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면서 한 가지 말씀을 더 추가하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 (창세기 12: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덩이로 만들고 아브라함과 동행하실 것이니 남은 인생 여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큰 선물은 아브라함을 향해서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반대로 저주를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작은 여행이나 큰 인생 여정이나 비슷합니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우리에게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위험은 없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짧은 여행이나 인생의 여정을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에게서 배운 것들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좋은 여행의 원칙이 좋은 인생 여정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짐을 지시는 분이다. 둘째, 좋은 친구와 동행해야 한다. 예수님이 내게 좋은 친구다. 셋째,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집이 필요하다. 나의 영원한 집을 마련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살자. 이 세 가지였습니다.

두려움보다 기대하는 마음을 품으십시오.

오늘은 아브라함에게서 보이는 인생의 태도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기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앞으로 펼쳐질 인생 여정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인생 여정에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합니다.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어떡하지? 나를 공격하고 위협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낯선 환경에 익숙해질까?’ 등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다른 감정은 호기심입니다. ‘어떤 새로운 것이 나타날까?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내 앞에 어떻게 펼쳐질까?’ 등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익숙한 것은 편합니다. 그런데 금방 지루해지고 싫증이 납니다. 새로운 것, 낯선 것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삶에 활력을 주고 배움의 기회를 줍니다. 도전에 대한 용기도 낯선 것,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생깁니다. 그런데 그러한 용기를 갖기 위해선, 먼저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현장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다툼의 큰 장벽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마치 싸움터(battle field)와도 같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마귀는 우리를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거짓, 미움, 시기와 질투를 통해서 경쟁심을 유발하여 우리를 조정하려고 했습니다.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선과 악을 나누고 그 가운에 선을 행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옳은 것은 붙잡고 잘못된 것은 거절할 줄 알아야 이 치열한 싸움터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싸움터로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생은 싸움터가 아니라 놀이터(play ground)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에덴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인간에게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특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준 생명, 이 삶을 즐겨라. 즐겁게 먹고 마시며 행복하게 살라. 네 아내, 네 남편과 함께 이 땅에서의 삶을 즐거워하며 살라. 자녀와 함께 삶을 향유해라. 감흥을 갖고 네 삶의 복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그것을 경험해 보라.” 이러한 마음으로 만드신 것이 이 세상입니다. 인간에게 쉼과 평안을 주려고 세상을 만드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싸움터처럼 되어 버렸지만, 본래 하나님의 의도와 목표는 놀이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인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천박한 낙천주의자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생의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알지만, 근본적으로 낙관적 사고를 가지고 인생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다시 일어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새롭게 배우고 경험한 것을 누리겠다는 기대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면 그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동행해 주겠다고 말씀하시며 “나를 믿으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서 11:8)

여기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을 버리고 나가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용기 있게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큰 목표와 비전을 갖고 있어도 현실은 잘 안 보일 때가 있습니다. 미래는 내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의 현재와 마지막을 붙잡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오늘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끄실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낙관성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인생은 소중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과 살아 있음은 하나님의 축복이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낯선 것을 소중히 여기며 존중하십시오.

아브라함에게서 배우는 두 번째 믿음의 모습은 존중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만남을 존중할 줄 알아야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존중이란 나와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 들게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내게 친구가 없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밟는 땅의 환경을 존중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존중할 때 인생의 여정이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빨리 경계선을 긋습니다. 우리는 어린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길 가다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 줘도 그 사람 따라가면 안 돼. 그 사람 말 들으면 안 돼.” 사회가 악하다 보니, 자녀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 경계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현상 안에서는 필요한 말이지만, 참 가슴 아픈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신뢰해서는 안 되고, 사람을 존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심어 놓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비판적인 생각이 우리를 붙잡아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적대적인 관계에 먼저 접어들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또 어떻습니까? 좌파, 우파를 가르고 보수, 진보를 따지는 진영 논리로 사람을 쉽게 판단해 버립니다. 지역감정으로 갈등을 부추기는 현장을 얼마나 많이 목도했습니까? 사회적인 계층 논리로 갈등과 다툼을 증폭시키는 것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습니까? 우리는 나와 다르다는 것이 적대감으로 작용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최근에는 성별에 따른 공격이 늘고 있습니다. 여성 혐오나 남성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이나 인터넷 사이트들이 남녀 간 싸움을 붙이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모두가 고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은 서로 도우며 살라는 뜻이었습니다. 협력하며 공동체가 무엇인지 경험해 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서로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삶의 자리가 깨지고 있습니다.
짧은 여행이나 긴 인생의 여정에서, 낯선 곳을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낯선 사람에게 존중의 마음을 담아 말을 건네면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습니다.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좋은 점을 먼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바로 존중하는 마음이고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굉장히 비판적인 사람입니다. 문제를 빨리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대방이 갖고 있는 좋은 점, 멋진 점,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점을 귀하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세요’라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게 만남을 누리는 축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사람을 귀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낯선 사람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브리서 13:2)

아브라함은 자신을 방문한 사람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갖고 있는 천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다시 깨달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웃을 존중하며 대접하기를 좋아했던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었습니다.
인생의 제일 큰 복은 사람의 복입니다. 이 복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사람을 존중하십시오. 만나는 사람에게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서면 사람의 복이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사람의 복이 없습니까? 어렸을 때는 사람의 복이 없었습니까? 괜찮습니다. 남을 존중하는 마음만 가진다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 때,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복의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축복하십시오.

세 번째는, 축복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내게 주신 삶의 모든 자리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는 복이라( You will be a blessing).” 아브라함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덩어리가 되었으니 네가 서 있는 자리, 네가 서 있는 시간에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 3:8∼9)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우리도 똑같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복입니다. 그래서 복 중에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사랑하는 딸”이라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해야 할 대상은 세 가지입니다. 시간, 공간, 인간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축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나온 어제를 축복해야 합니다. 과거의 모든 것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과거가 일상성 속에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알고 생명의 기쁨을 갖게 되는 사건의 연속 속에서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끄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슬프고 외롭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현재와 미래를 축복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우리의 인생 여정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공간, 즉 내가 서 있는 장소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길을 걸으면서 그 땅을 축복하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축복하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삶의 현장을 축복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장소를 축복해 보신 적 있습니까? 그러면 내가 만나는 모든 것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다가옵니다.
세 번째,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축복입니다.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 사람에게 하늘의 복을 주세요. 생명의 복을 주세요. 기쁨을 복을 주세요”라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이 잘 안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런 생각이 잠시 지나갈 때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그 생각을 하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한 마음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메랑처럼 내게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실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집과 사람들을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받을 만하면 너희를 함께 축복하면서 영접할 것이고, 만약 그들이 거절하면 그 축복이 너희에게 다시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복입니다. 내 시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축복하고, 내가 서 있는 공간을 축복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영혼이 기쁨으로 뛰놀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합시다.

사랑하는 귀한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에는 우리의 짐을 다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와 동행하고, 돌아올 집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좋은 여행을 위한 원칙입니다.
오늘은 여행하는 태도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먼저 기대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내 삶을 열어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존중해야 합니다. 내가 만나는 새로운 환경과 만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마지막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시간을 축복하고 장소를 축복하고 사람을 축복하십시오. 축복하는 마음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거나 혹은 긴 인생 여정을 떠날 때 우리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일흔다섯 살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기대하고 존중하고 축복하면서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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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 6 ~ 9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자녀를 낳았을 때, ‘이놈 복덩이야’ 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까? 우리는 종종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가정의 축복이 될 것이라는 마음의 소원과 함께 ‘복덩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실 때 하신 말씀도 그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인생의 여정에서 꼭 기억해라. 너는 하나님의 복덩어리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일흔 다섯인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앞으로 제2의 인생을 살라는 부탁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너는 그냥 살아왔다. 목적 없이 살았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다니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살라. 복덩이로 살라. 그것도 하나님의 복덩이로 살라”는 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2)

“내가 너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지금은 네가 자녀도 없이 혼자지만, 네가 앞으로 낳을 자녀를 통해서 민족이 탄생할 것이다. 너는 세상의 복덩어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면서 한 가지 말씀을 더 추가하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 (창세기 12: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덩이로 만들고 아브라함과 동행하실 것이니 남은 인생 여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큰 선물은 아브라함을 향해서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반대로 저주를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작은 여행이나 큰 인생 여정이나 비슷합니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우리에게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위험은 없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짧은 여행이나 인생의 여정을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에게서 배운 것들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좋은 여행의 원칙이 좋은 인생 여정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짐을 지시는 분이다. 둘째, 좋은 친구와 동행해야 한다. 예수님이 내게 좋은 친구다. 셋째,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집이 필요하다. 나의 영원한 집을 마련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살자. 이 세 가지였습니다.

두려움보다 기대하는 마음을 품으십시오.

오늘은 아브라함에게서 보이는 인생의 태도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기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앞으로 펼쳐질 인생 여정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인생 여정에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합니다.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어떡하지? 나를 공격하고 위협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낯선 환경에 익숙해질까?’ 등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다른 감정은 호기심입니다. ‘어떤 새로운 것이 나타날까?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내 앞에 어떻게 펼쳐질까?’ 등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익숙한 것은 편합니다. 그런데 금방 지루해지고 싫증이 납니다. 새로운 것, 낯선 것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삶에 활력을 주고 배움의 기회를 줍니다. 도전에 대한 용기도 낯선 것,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생깁니다. 그런데 그러한 용기를 갖기 위해선, 먼저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현장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다툼의 큰 장벽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마치 싸움터(battle field)와도 같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마귀는 우리를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거짓, 미움, 시기와 질투를 통해서 경쟁심을 유발하여 우리를 조정하려고 했습니다.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선과 악을 나누고 그 가운에 선을 행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옳은 것은 붙잡고 잘못된 것은 거절할 줄 알아야 이 치열한 싸움터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싸움터로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생은 싸움터가 아니라 놀이터(play ground)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에덴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인간에게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특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준 생명, 이 삶을 즐겨라. 즐겁게 먹고 마시며 행복하게 살라. 네 아내, 네 남편과 함께 이 땅에서의 삶을 즐거워하며 살라. 자녀와 함께 삶을 향유해라. 감흥을 갖고 네 삶의 복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그것을 경험해 보라.” 이러한 마음으로 만드신 것이 이 세상입니다. 인간에게 쉼과 평안을 주려고 세상을 만드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싸움터처럼 되어 버렸지만, 본래 하나님의 의도와 목표는 놀이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인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천박한 낙천주의자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생의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알지만, 근본적으로 낙관적 사고를 가지고 인생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다시 일어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새롭게 배우고 경험한 것을 누리겠다는 기대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면 그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동행해 주겠다고 말씀하시며 “나를 믿으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서 11:8)

여기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을 버리고 나가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용기 있게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큰 목표와 비전을 갖고 있어도 현실은 잘 안 보일 때가 있습니다. 미래는 내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의 현재와 마지막을 붙잡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오늘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끄실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낙관성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인생은 소중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과 살아 있음은 하나님의 축복이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낯선 것을 소중히 여기며 존중하십시오.

아브라함에게서 배우는 두 번째 믿음의 모습은 존중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만남을 존중할 줄 알아야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존중이란 나와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 들게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내게 친구가 없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밟는 땅의 환경을 존중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존중할 때 인생의 여정이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빨리 경계선을 긋습니다. 우리는 어린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길 가다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 줘도 그 사람 따라가면 안 돼. 그 사람 말 들으면 안 돼.” 사회가 악하다 보니, 자녀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 경계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현상 안에서는 필요한 말이지만, 참 가슴 아픈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신뢰해서는 안 되고, 사람을 존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심어 놓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비판적인 생각이 우리를 붙잡아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적대적인 관계에 먼저 접어들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또 어떻습니까? 좌파, 우파를 가르고 보수, 진보를 따지는 진영 논리로 사람을 쉽게 판단해 버립니다. 지역감정으로 갈등을 부추기는 현장을 얼마나 많이 목도했습니까? 사회적인 계층 논리로 갈등과 다툼을 증폭시키는 것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습니까? 우리는 나와 다르다는 것이 적대감으로 작용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최근에는 성별에 따른 공격이 늘고 있습니다. 여성 혐오나 남성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이나 인터넷 사이트들이 남녀 간 싸움을 붙이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모두가 고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은 서로 도우며 살라는 뜻이었습니다. 협력하며 공동체가 무엇인지 경험해 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서로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삶의 자리가 깨지고 있습니다.
짧은 여행이나 긴 인생의 여정에서, 낯선 곳을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낯선 사람에게 존중의 마음을 담아 말을 건네면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습니다.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좋은 점을 먼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바로 존중하는 마음이고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굉장히 비판적인 사람입니다. 문제를 빨리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대방이 갖고 있는 좋은 점, 멋진 점,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점을 귀하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세요’라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게 만남을 누리는 축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사람을 귀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낯선 사람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브리서 13:2)

아브라함은 자신을 방문한 사람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갖고 있는 천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다시 깨달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웃을 존중하며 대접하기를 좋아했던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었습니다.
인생의 제일 큰 복은 사람의 복입니다. 이 복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사람을 존중하십시오. 만나는 사람에게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서면 사람의 복이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사람의 복이 없습니까? 어렸을 때는 사람의 복이 없었습니까? 괜찮습니다. 남을 존중하는 마음만 가진다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 때,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복의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축복하십시오.

세 번째는, 축복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내게 주신 삶의 모든 자리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는 복이라( You will be a blessing).” 아브라함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덩어리가 되었으니 네가 서 있는 자리, 네가 서 있는 시간에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 3:8∼9)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우리도 똑같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복입니다. 그래서 복 중에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사랑하는 딸”이라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해야 할 대상은 세 가지입니다. 시간, 공간, 인간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축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나온 어제를 축복해야 합니다. 과거의 모든 것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과거가 일상성 속에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알고 생명의 기쁨을 갖게 되는 사건의 연속 속에서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끄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슬프고 외롭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현재와 미래를 축복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우리의 인생 여정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공간, 즉 내가 서 있는 장소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길을 걸으면서 그 땅을 축복하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축복하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삶의 현장을 축복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장소를 축복해 보신 적 있습니까? 그러면 내가 만나는 모든 것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다가옵니다.
세 번째,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축복입니다.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 사람에게 하늘의 복을 주세요. 생명의 복을 주세요. 기쁨을 복을 주세요”라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이 잘 안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런 생각이 잠시 지나갈 때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그 생각을 하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한 마음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메랑처럼 내게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실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집과 사람들을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받을 만하면 너희를 함께 축복하면서 영접할 것이고, 만약 그들이 거절하면 그 축복이 너희에게 다시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복입니다. 내 시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축복하고, 내가 서 있는 공간을 축복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영혼이 기쁨으로 뛰놀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합시다.

사랑하는 귀한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에는 우리의 짐을 다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와 동행하고, 돌아올 집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좋은 여행을 위한 원칙입니다.
오늘은 여행하는 태도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먼저 기대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내 삶을 열어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존중해야 합니다. 내가 만나는 새로운 환경과 만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마지막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시간을 축복하고 장소를 축복하고 사람을 축복하십시오. 축복하는 마음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거나 혹은 긴 인생 여정을 떠날 때 우리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일흔다섯 살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기대하고 존중하고 축복하면서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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