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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 대한 뜨거운 교육열이 주일 학교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기쁨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두려움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감사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무거운 짐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들었던 마음입니다.
아내가 임신하면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기도를 저절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나면서 이리 넘어지고, 저리 부딪히고, 자꾸 자빠지면서 상처가 생깁니다. 이제 부모님의 소원은 ‘제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기도로 변합니다. 그리고 곧 미운 일곱 살이 됩니다. 이때부터는 ‘말썽부리지 말고, 사고치지 않았으면….’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이제는 ‘내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사교육을 시켜서라도 내 아이는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또 기도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면 좋은 대학, 좋은 학과, 좋은 직장을 위한 준비를 아주 철저하게 시킵니다.
아마도 부모님들의 마음은 비슷하겠지만, 한국의 부모님들처럼 자녀에 대한 교육과 사랑의 열기가 뜨거운 분들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은 대한민국을 경제적으로 부흥하게 한 축복이자 한국교회가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것은 대한민국 부모님들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헌신과 교육열을 어느 나라 부모들이 뒤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으면서 배우기를 좋아했던 한국의 유교전통과 기독교의 전통이 맞물리면서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지 교회를 통해서 끊임없이 전달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부모님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 어른들이 자녀들을 서당에 보낸 것처럼 자녀들을 주일학교(Sunday School)에 보내는 신앙의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신앙교육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일주일은 168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은 일주일에 한 시간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습니다. 이것은 일주일 중에 100분의 1도 안 되는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교회에만 맡겨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부터 신앙교육을 시켜야 우리의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은 일주일의 168시간 중에 한 시간입니다. 이것도 축복이며 소중한 결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성숙하려면 더 큰 결심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새벽기도를 해보겠다. 아니, 한 달에 한 주일은 새벽기도를 해보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큐티를 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루를 시작해보겠다!’ 이렇게 마음속에 결단을 해야 신앙이 성숙하게 됩니다. 주일 한 시간의 예배로는 신앙이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을 생각해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하게 됩니다. 광야생활은 아주 위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저항과 도전, 모험과 긴장이 있었습니다. 광야생활을 하면서 신앙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더욱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용광로 속에서 견고하게 다져진 정금과 같이 빛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여기에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염려하십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들의 신앙이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혹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간섭을 받지 않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세계 속에 들어갑니다. 그때가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그때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소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녀교육을 해라! 신앙교육을 해라! 자녀를 바로 세워라! 너희는 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했지만, 저들이 살게 될 풍요의 자리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느낄 수 있는 사건들이 적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조상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이끄셨는지 그들에게 가르쳐라. 그들이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하라!”
신앙은 다음 세대로 전승되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전승입니다. 전승되지 않는 신앙은 사라지고 맙니다. 한 세대에서 끊기면 신앙은 사라집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많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가장 큰 위기중의 하나가 신앙의 연속 고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자녀들에게로 이어지는 신앙의 연결이 계속 단절되고 있습니다.
정말로 훌륭하신 성도님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런데 그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마음에 있는 큰 아픔과 탄식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제 자녀 때문에 걱정입니다. 자녀가 예수님을 잘 안 믿으려고 합니다. 교회에 그냥 건성으로 왔다갑니다. 제가 가졌던 신앙의 열정을 제 자녀에게도 갖게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튀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교육할지 몰라서 걱정하십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신앙교육을 포기하고 그냥 “교회만 가라!”고 합니다. 교회 가서 잠깐 있다가 오는 것에 만족하는 부모님들이 자꾸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신앙적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육부 교역자들에게 우리의 자녀들을 키울 때 다음의 세 가지를 핵심으로 삼으라고 자주 말합니다.
첫 번째, 성경교육과 성경에 기초한 가치관을 명백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냥 지식이 아니라 삶의 가치관으로 접목시켜야 합니다.
두 번째, 성경적인 리더십을 갖게 하고 주님 닮아 가는 성품으로 자녀들의 성품을 개발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위한 교재를 만들어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라고 부탁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믿음의 리더십, 교회를 섬길 줄 하는 리더십, 세상을 섬길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품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성품이 바뀌지 않고는 참된 리더십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 삶의 현장을 알게 해야 합니다. 때로는 산업현장, 사회현장도 알게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선배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생명까지 바치며 애쓴 현장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제 곧 6월이 됩니다. 6월에는 조국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생각하면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혹은 선생님들과 함께 현충원을 방문하기를 바랍니다. 그곳에 묻혀 있는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을 기억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전쟁기념관을 방문해서 우리의 선배들에게 어떤 고통이 있었는가를 느끼고, 독립기념관을 방문해도 좋겠습니다. 문산 쪽에 있는 자유의 집을 방문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저 북녘에도 복음의 역사, 하나님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인들의 순교지를 방문해도 좋습니다. 그곳에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영적인 전투로 이해했습니다. 자녀교육의 자리는 사탄이 가장 유혹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녀교육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가 되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신앙이 무너진다고 여겼습니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할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7)
집에서든지, 일어나든지, 앉든지, 눕든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자녀교육은 이러한 유대적 자녀교육과 흡사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교육의 열정을 세상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우리보다 더욱 멋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부모의 입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십시오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시편 78편 3절)
본문의 말씀은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 부모의 입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입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특별히 아버지들은 아내에게는 둘째 치더라도 자녀들에게조차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표현하지 못합니다. 속으로는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널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단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입으로는 그 말을 하지 못합니다.
어머니들에게 자녀를 안아주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다음과 같이 순서를 매겼습니다. 첫째, “세상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둘째, “엄마가 많이 미안해. 노력할게.” 셋째, “네가 있어서 엄마, 아빠가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 넷째, “엄마, 아빠의 아들,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단다.” 다섯째,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라.” 이것이 세상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는 말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부모입니다. 신앙의 부모로서 신앙의 자녀들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야 합니다. ‘성령님’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선물로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너를 키웠단다.”라고 고백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엄마와 아빠를 지켜준 것처럼 하나님께서 네 인생을 이끌어 줄 거야”라고 표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너도 사랑한단다.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한 것처럼 너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해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던 은총의 역사를 우리의 말로 표현하는 것이 신앙의 전승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부모님이신 분들은 5월을 맞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자녀들을 만나 표현하십시오. “참 네가 멋지구나. 네가 내 아들이구나. 네가 내 딸인 게 자랑스럽구나. 내가 너를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했단다.” 말로 하기가 힘들면 조그만 쪽지를 써서 자녀들에게 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그동안 지니고 있던 마음을 몇 마디만 써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사랑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왜 내 아들과 내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겠습니까? 자녀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십시오.
자녀들과 함께 신앙과 사랑의 추억을 만드십시오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편 78:4)
두 번째, 우리는 자녀들과 함께 신앙과 사랑의 추억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는 성경책을 읽어주고, 잠들기 전에 손을 잡고 기도해주십시오. 그들이 엄마, 아빠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도해야겠다.’ 엄마가 성경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성경책 읽어야지.’ 아빠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께 예배드려야지.’라고 깨닫게 하십시오.
또한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동안 만날 수도 있고, 봉사하는데 함께 참여할 수도 있고, 선교하는데 함께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함께 고생하면서 자녀들은 깨닫고 기억할 것입니다. ‘맞아! 아버지가 나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지. 내가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이 있었지. 그 때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있었지.’ 그리고 자녀와 함께 한 경험들은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신앙과 사랑의 추억을 갖는 것은 축복입니다. 본문 말씀도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과 능력과 그 기이한 일들을 자녀에게 함께 나누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신앙의 추억, 사랑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부모들의 책임입니다.
자녀에게 신앙의 비전과 꿈을 심어주십시오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시편 78:7)
세 번째, 자녀들에게 신앙의 비전과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얘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힘들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단다. 그러나 그때마다 너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란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지켜보고 계심을 믿는 것이란다. 그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란다.” 모든 것이 막혀있고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늘을 향해 기도할 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것, 그러한 믿음의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신앙의 부모들이 가진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때로 자녀들을 잘못 키울 때가 있습니다. 나보다 더 큰 믿음을 갖는 것을 때로는 두려워합니다. 자녀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면 내 곁을 떠날까봐,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드릴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알게 모르게 신앙을 폄하합니다. “신앙이 밥 먹여 주니? 교회 가는 게 우선이니? 공부 잘 하는 게 우선이지! 신앙은 성적을 올린 후에나 쌓아라! 교회는 대학 들어간 후에나 열심히 가라!” 그런데 그 아이들이 대학을 들어가면 아예 교회를 떠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앙은 위대한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을 넓히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배우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담대함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놀라운 믿음의 길을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보다 더 큰 신앙의 역사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전승하는 복된 부모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78: 1 ~ 8
1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3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6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8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자녀에 대한 뜨거운 교육열이 주일 학교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기쁨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두려움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감사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무거운 짐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들었던 마음입니다.
아내가 임신하면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기도를 저절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나면서 이리 넘어지고, 저리 부딪히고, 자꾸 자빠지면서 상처가 생깁니다. 이제 부모님의 소원은 ‘제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기도로 변합니다. 그리고 곧 미운 일곱 살이 됩니다. 이때부터는 ‘말썽부리지 말고, 사고치지 않았으면….’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이제는 ‘내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사교육을 시켜서라도 내 아이는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또 기도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면 좋은 대학, 좋은 학과, 좋은 직장을 위한 준비를 아주 철저하게 시킵니다.
아마도 부모님들의 마음은 비슷하겠지만, 한국의 부모님들처럼 자녀에 대한 교육과 사랑의 열기가 뜨거운 분들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은 대한민국을 경제적으로 부흥하게 한 축복이자 한국교회가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것은 대한민국 부모님들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헌신과 교육열을 어느 나라 부모들이 뒤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으면서 배우기를 좋아했던 한국의 유교전통과 기독교의 전통이 맞물리면서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지 교회를 통해서 끊임없이 전달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부모님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 어른들이 자녀들을 서당에 보낸 것처럼 자녀들을 주일학교(Sunday School)에 보내는 신앙의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신앙교육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일주일은 168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은 일주일에 한 시간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습니다. 이것은 일주일 중에 100분의 1도 안 되는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교회에만 맡겨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부터 신앙교육을 시켜야 우리의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은 일주일의 168시간 중에 한 시간입니다. 이것도 축복이며 소중한 결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성숙하려면 더 큰 결심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새벽기도를 해보겠다. 아니, 한 달에 한 주일은 새벽기도를 해보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큐티를 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루를 시작해보겠다!’ 이렇게 마음속에 결단을 해야 신앙이 성숙하게 됩니다. 주일 한 시간의 예배로는 신앙이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을 생각해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하게 됩니다. 광야생활은 아주 위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저항과 도전, 모험과 긴장이 있었습니다. 광야생활을 하면서 신앙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더욱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용광로 속에서 견고하게 다져진 정금과 같이 빛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여기에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염려하십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들의 신앙이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혹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간섭을 받지 않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세계 속에 들어갑니다. 그때가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그때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소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녀교육을 해라! 신앙교육을 해라! 자녀를 바로 세워라! 너희는 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했지만, 저들이 살게 될 풍요의 자리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느낄 수 있는 사건들이 적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조상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이끄셨는지 그들에게 가르쳐라. 그들이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하라!”
신앙은 다음 세대로 전승되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전승입니다. 전승되지 않는 신앙은 사라지고 맙니다. 한 세대에서 끊기면 신앙은 사라집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많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가장 큰 위기중의 하나가 신앙의 연속 고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자녀들에게로 이어지는 신앙의 연결이 계속 단절되고 있습니다.
정말로 훌륭하신 성도님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런데 그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마음에 있는 큰 아픔과 탄식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제 자녀 때문에 걱정입니다. 자녀가 예수님을 잘 안 믿으려고 합니다. 교회에 그냥 건성으로 왔다갑니다. 제가 가졌던 신앙의 열정을 제 자녀에게도 갖게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튀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교육할지 몰라서 걱정하십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신앙교육을 포기하고 그냥 “교회만 가라!”고 합니다. 교회 가서 잠깐 있다가 오는 것에 만족하는 부모님들이 자꾸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신앙적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육부 교역자들에게 우리의 자녀들을 키울 때 다음의 세 가지를 핵심으로 삼으라고 자주 말합니다.
첫 번째, 성경교육과 성경에 기초한 가치관을 명백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냥 지식이 아니라 삶의 가치관으로 접목시켜야 합니다.
두 번째, 성경적인 리더십을 갖게 하고 주님 닮아 가는 성품으로 자녀들의 성품을 개발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위한 교재를 만들어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라고 부탁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믿음의 리더십, 교회를 섬길 줄 하는 리더십, 세상을 섬길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품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성품이 바뀌지 않고는 참된 리더십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 삶의 현장을 알게 해야 합니다. 때로는 산업현장, 사회현장도 알게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선배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생명까지 바치며 애쓴 현장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제 곧 6월이 됩니다. 6월에는 조국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생각하면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혹은 선생님들과 함께 현충원을 방문하기를 바랍니다. 그곳에 묻혀 있는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을 기억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전쟁기념관을 방문해서 우리의 선배들에게 어떤 고통이 있었는가를 느끼고, 독립기념관을 방문해도 좋겠습니다. 문산 쪽에 있는 자유의 집을 방문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저 북녘에도 복음의 역사, 하나님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인들의 순교지를 방문해도 좋습니다. 그곳에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영적인 전투로 이해했습니다. 자녀교육의 자리는 사탄이 가장 유혹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녀교육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가 되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신앙이 무너진다고 여겼습니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할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7)
집에서든지, 일어나든지, 앉든지, 눕든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자녀교육은 이러한 유대적 자녀교육과 흡사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교육의 열정을 세상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우리보다 더욱 멋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부모의 입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십시오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시편 78편 3절)
본문의 말씀은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 부모의 입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입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특별히 아버지들은 아내에게는 둘째 치더라도 자녀들에게조차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표현하지 못합니다. 속으로는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널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단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입으로는 그 말을 하지 못합니다.
어머니들에게 자녀를 안아주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다음과 같이 순서를 매겼습니다. 첫째, “세상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둘째, “엄마가 많이 미안해. 노력할게.” 셋째, “네가 있어서 엄마, 아빠가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 넷째, “엄마, 아빠의 아들,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단다.” 다섯째,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라.” 이것이 세상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는 말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부모입니다. 신앙의 부모로서 신앙의 자녀들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야 합니다. ‘성령님’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선물로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너를 키웠단다.”라고 고백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엄마와 아빠를 지켜준 것처럼 하나님께서 네 인생을 이끌어 줄 거야”라고 표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너도 사랑한단다.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한 것처럼 너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해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던 은총의 역사를 우리의 말로 표현하는 것이 신앙의 전승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부모님이신 분들은 5월을 맞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자녀들을 만나 표현하십시오. “참 네가 멋지구나. 네가 내 아들이구나. 네가 내 딸인 게 자랑스럽구나. 내가 너를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했단다.” 말로 하기가 힘들면 조그만 쪽지를 써서 자녀들에게 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그동안 지니고 있던 마음을 몇 마디만 써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사랑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왜 내 아들과 내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겠습니까? 자녀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십시오.
자녀들과 함께 신앙과 사랑의 추억을 만드십시오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편 78:4)
두 번째, 우리는 자녀들과 함께 신앙과 사랑의 추억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는 성경책을 읽어주고, 잠들기 전에 손을 잡고 기도해주십시오. 그들이 엄마, 아빠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도해야겠다.’ 엄마가 성경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성경책 읽어야지.’ 아빠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께 예배드려야지.’라고 깨닫게 하십시오.
또한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동안 만날 수도 있고, 봉사하는데 함께 참여할 수도 있고, 선교하는데 함께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함께 고생하면서 자녀들은 깨닫고 기억할 것입니다. ‘맞아! 아버지가 나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지. 내가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이 있었지. 그 때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있었지.’ 그리고 자녀와 함께 한 경험들은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신앙과 사랑의 추억을 갖는 것은 축복입니다. 본문 말씀도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과 능력과 그 기이한 일들을 자녀에게 함께 나누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신앙의 추억, 사랑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부모들의 책임입니다.
자녀에게 신앙의 비전과 꿈을 심어주십시오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시편 78:7)
세 번째, 자녀들에게 신앙의 비전과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얘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힘들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단다. 그러나 그때마다 너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란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지켜보고 계심을 믿는 것이란다. 그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란다.” 모든 것이 막혀있고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늘을 향해 기도할 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것, 그러한 믿음의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신앙의 부모들이 가진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때로 자녀들을 잘못 키울 때가 있습니다. 나보다 더 큰 믿음을 갖는 것을 때로는 두려워합니다. 자녀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면 내 곁을 떠날까봐,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드릴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알게 모르게 신앙을 폄하합니다. “신앙이 밥 먹여 주니? 교회 가는 게 우선이니? 공부 잘 하는 게 우선이지! 신앙은 성적을 올린 후에나 쌓아라! 교회는 대학 들어간 후에나 열심히 가라!” 그런데 그 아이들이 대학을 들어가면 아예 교회를 떠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앙은 위대한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을 넓히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배우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담대함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놀라운 믿음의 길을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보다 더 큰 신앙의 역사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전승하는 복된 부모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