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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가며…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 52

김지철 목사

2016.05.01

부모는 자녀를 통해 사랑을 배웁니다.

어린아이들은 찡그리거나 울어도 보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게 합니다. 생명이 그 모습 속에 약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납니다. 자녀가 갓 태어났을 때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렸지만,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고마웠습니까? 자녀가 처음으로 스스로 몸을 뒤집고, 걸음을 떼었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습니까? 자녀가 “엄마, 아빠!” 하며 고사리 같은 손을 활짝 벌리고 다가올 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물론 늘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자녀를 키우면서 귀찮을 때도 있었고, 힘든 때도 있었습니다. 미움이 생길 때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느라 내 꿈을 포기해야 했던 아픔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통해 우리는 사랑을 배웠습니다. 신뢰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즐거움과 사랑의 위대함을 가르쳐 준 존재가 바로 자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전인적인 복을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다음 두 구절로 요약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들에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도 제목이 다 들어 있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 2:40)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52)

성경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 축복을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몸이 건강했습니다. 둘째, 정신이 건강했습니다. 셋째, 영적으로도 건강했습니다. 몸의 건강, 마음과 생각의 건강, 그리고 영적인 영혼의 건강. 이 세 가지는 인생을 지탱하는 삼각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을 때 우리는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인적인 복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의 자람을 통해 육체적 성장을 경험합니다.

40절의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와 52절의 ‘키가 자라가며’에서 알 수 있듯이 몸의 건강의 첫 번째 비결은 ‘자라난다’입니다. 자녀가 어렸을 때 우리가 늘 기도한 것이 이것 아닙니까? “하나님, 우리 아이가 잘 자라나게 해 주세요.” 아이가 때에 맞게 자라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픕니까? 자란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모든 성장에는 변화와 위험에 대한 부담이 있습니다. 자라난다는 것은 나의 옛 모습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세계로부터 탈출한다는 뜻입니다. 불확실성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도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장을 위해서는 모험을 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자녀가 혹시라도 위험에 처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자녀를 쫓아다닙니다. 물론 사랑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녀를 계속 쫓아다닌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자녀가 어릴 때는 잘 움직이지 않으니까 붙들거나 누워 있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부모가 아이를 계속 따라다닐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부모와 자녀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거리를 좁게 유지하려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쫓아다니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집착’입니다. 자녀에게 집착하게 되면 자녀는 자율성을 키울 수 없습니다. 자신을 방어하는 힘도 상실하게 됩니다.
자녀가 성숙하게 자라나기를 원한다면, 그의 성장이 시작될 때 조금 거리를 두고 멀리서 바라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자녀의 성장통을 알아야 합니다.
성장기 아이들 10명 중 3명 내지 4명이 성장통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뼈의 성장 속도를 근육이나 신경 세포, 또는 피부가 따라가지 못하여 통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특히 성장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밤 10시부터 12시 사이에 통증을 호소합니다.
성장통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뼈와 근육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보충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 담긴 마사지입니다. 어렸을 때 배가 아프면, 엄마가 “엄마 손은 약손 ○○ 배는 똥배”라고 하며 배를 문질러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마사지가 아이의 통증을 약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생각이 커지면서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성장통에는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 성장통도 있습니다. 생각이 자라남에 따라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40절의 ‘지혜가 충만하며’와 52절의 ‘지혜가 자라가며’가 생각의 성장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정신적인 성장의 핵심이 지혜와 총명 아닙니까?
예수님은 열두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모의 시야에서 벗어났습니다. 요새 말로 하면, 일시적인 가출을 감행한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이 따라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된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랍비들과 함께 율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교 시절에 사춘기가 시작됩니다. 착하기만 하던 아들딸이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신적인 자기 확대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동안은 부모에게 속해 있었지만, 이제는 자아의식이 강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는 부모의 길을 똑같이 가지 않을 거야. 내 인생 내가 살 거야. 내 꿈을 이룰 거야!’ 자녀의 이러한 정신적 성장통을 부모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스스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랑의 신뢰를 통해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세 번째 성장통은 영적 성장통입니다. 40절의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와 52절의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를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매우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잘 통했습니다. 감성적인 공감도 일어났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참 예뻐하셨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무척 신뢰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영적인 공감은 감성적인 공감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감성의 리더십』이란 책을 쓴 대니얼 골먼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가정이란 우리가 맨 처음 감정을 학습하는 배움터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감정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배운다. … 희망과 두려움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배운다.”
부모가 자녀의 신앙을 키워나갈 때 자녀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녀의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녀가 갖는 슬픔이나 기쁨은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부모는 자녀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꾸짖고 벌을 주기도 합니다. 또는 자녀의 감정에 너무 연연해서 자녀에게 아첨을 하기도 합니다.
감정을 이해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신뢰의 감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신뢰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신 것을 봅니다.
어린 아기 때부터 사랑의 신뢰를 받은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 웬만한 배신을 당해도 다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 사랑의 신뢰를 받지 못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비난의 소리를 들었을 때 감당해 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신뢰입니다. 이것은 사랑으로 인해 생깁니다. 물론 예수님은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신뢰를 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경험한 최고의 신뢰는 하나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신뢰로 인해 예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사랑을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예수님을 보시며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반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사랑의 신뢰를 다시 덧입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를 신뢰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내 인생이 소중하다. 그러니 인생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내게 주어진 사람들은 모두 내가 신뢰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심정이 돼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예배드리러 나올 때는 어린아이의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하나님을 어린아이처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신뢰를 다시 받겠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신뢰 가운데에서 내게 주신 인생의 축복을 누리겠습니다.’ 이처럼 어린아이의 심정이 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과 신뢰의 역사가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로서 우리의 자녀들을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특별히 자녀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사랑의 신뢰를 갖고 살아가라”라고 전하십시오. 이곳에 모인 모든 성도님과 성도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스러운 존재로 살아가는 주의 자녀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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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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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부모는 자녀를 통해 사랑을 배웁니다.

어린아이들은 찡그리거나 울어도 보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게 합니다. 생명이 그 모습 속에 약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납니다. 자녀가 갓 태어났을 때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렸지만,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고마웠습니까? 자녀가 처음으로 스스로 몸을 뒤집고, 걸음을 떼었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습니까? 자녀가 “엄마, 아빠!” 하며 고사리 같은 손을 활짝 벌리고 다가올 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물론 늘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자녀를 키우면서 귀찮을 때도 있었고, 힘든 때도 있었습니다. 미움이 생길 때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느라 내 꿈을 포기해야 했던 아픔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통해 우리는 사랑을 배웠습니다. 신뢰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즐거움과 사랑의 위대함을 가르쳐 준 존재가 바로 자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전인적인 복을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다음 두 구절로 요약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들에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도 제목이 다 들어 있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 2:40)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52)

성경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 축복을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몸이 건강했습니다. 둘째, 정신이 건강했습니다. 셋째, 영적으로도 건강했습니다. 몸의 건강, 마음과 생각의 건강, 그리고 영적인 영혼의 건강. 이 세 가지는 인생을 지탱하는 삼각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을 때 우리는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인적인 복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의 자람을 통해 육체적 성장을 경험합니다.

40절의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와 52절의 ‘키가 자라가며’에서 알 수 있듯이 몸의 건강의 첫 번째 비결은 ‘자라난다’입니다. 자녀가 어렸을 때 우리가 늘 기도한 것이 이것 아닙니까? “하나님, 우리 아이가 잘 자라나게 해 주세요.” 아이가 때에 맞게 자라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픕니까? 자란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모든 성장에는 변화와 위험에 대한 부담이 있습니다. 자라난다는 것은 나의 옛 모습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세계로부터 탈출한다는 뜻입니다. 불확실성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도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장을 위해서는 모험을 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자녀가 혹시라도 위험에 처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자녀를 쫓아다닙니다. 물론 사랑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녀를 계속 쫓아다닌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자녀가 어릴 때는 잘 움직이지 않으니까 붙들거나 누워 있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부모가 아이를 계속 따라다닐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부모와 자녀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거리를 좁게 유지하려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쫓아다니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집착’입니다. 자녀에게 집착하게 되면 자녀는 자율성을 키울 수 없습니다. 자신을 방어하는 힘도 상실하게 됩니다.
자녀가 성숙하게 자라나기를 원한다면, 그의 성장이 시작될 때 조금 거리를 두고 멀리서 바라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자녀의 성장통을 알아야 합니다.
성장기 아이들 10명 중 3명 내지 4명이 성장통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뼈의 성장 속도를 근육이나 신경 세포, 또는 피부가 따라가지 못하여 통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특히 성장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밤 10시부터 12시 사이에 통증을 호소합니다.
성장통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뼈와 근육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보충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 담긴 마사지입니다. 어렸을 때 배가 아프면, 엄마가 “엄마 손은 약손 ○○ 배는 똥배”라고 하며 배를 문질러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마사지가 아이의 통증을 약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생각이 커지면서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성장통에는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 성장통도 있습니다. 생각이 자라남에 따라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40절의 ‘지혜가 충만하며’와 52절의 ‘지혜가 자라가며’가 생각의 성장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정신적인 성장의 핵심이 지혜와 총명 아닙니까?
예수님은 열두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모의 시야에서 벗어났습니다. 요새 말로 하면, 일시적인 가출을 감행한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이 따라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된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랍비들과 함께 율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교 시절에 사춘기가 시작됩니다. 착하기만 하던 아들딸이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신적인 자기 확대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동안은 부모에게 속해 있었지만, 이제는 자아의식이 강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는 부모의 길을 똑같이 가지 않을 거야. 내 인생 내가 살 거야. 내 꿈을 이룰 거야!’ 자녀의 이러한 정신적 성장통을 부모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스스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랑의 신뢰를 통해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세 번째 성장통은 영적 성장통입니다. 40절의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와 52절의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를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매우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잘 통했습니다. 감성적인 공감도 일어났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참 예뻐하셨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무척 신뢰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영적인 공감은 감성적인 공감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감성의 리더십』이란 책을 쓴 대니얼 골먼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가정이란 우리가 맨 처음 감정을 학습하는 배움터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감정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배운다. … 희망과 두려움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배운다.”
부모가 자녀의 신앙을 키워나갈 때 자녀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녀의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녀가 갖는 슬픔이나 기쁨은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부모는 자녀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꾸짖고 벌을 주기도 합니다. 또는 자녀의 감정에 너무 연연해서 자녀에게 아첨을 하기도 합니다.
감정을 이해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신뢰의 감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신뢰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신 것을 봅니다.
어린 아기 때부터 사랑의 신뢰를 받은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 웬만한 배신을 당해도 다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 사랑의 신뢰를 받지 못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비난의 소리를 들었을 때 감당해 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신뢰입니다. 이것은 사랑으로 인해 생깁니다. 물론 예수님은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신뢰를 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경험한 최고의 신뢰는 하나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신뢰로 인해 예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사랑을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예수님을 보시며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반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사랑의 신뢰를 다시 덧입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를 신뢰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내 인생이 소중하다. 그러니 인생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내게 주어진 사람들은 모두 내가 신뢰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심정이 돼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예배드리러 나올 때는 어린아이의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하나님을 어린아이처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신뢰를 다시 받겠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신뢰 가운데에서 내게 주신 인생의 축복을 누리겠습니다.’ 이처럼 어린아이의 심정이 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과 신뢰의 역사가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로서 우리의 자녀들을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특별히 자녀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사랑의 신뢰를 갖고 살아가라”라고 전하십시오. 이곳에 모인 모든 성도님과 성도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스러운 존재로 살아가는 주의 자녀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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