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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서, 특별히 현충일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전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날입니다. 얼마 전에는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서 46명의 젊은 국군 장병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모윤숙 시인이 쓴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이 시는 그가 6.25 전쟁 중 산골짝에서 죽어 쓰러져있는 한 국군의 시신을 보면서 지은 시입니다. 그중에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 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국립현충원을 가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평안히 누워있는 우리의 선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분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젊음과 생명을 바친 국군장병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우리가 평화롭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독재자였던 히틀러에 대항하여 독일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본회퍼 목사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안전하게 난 평화의 길은 없다. 평화는 과감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는 커다란 모험이다.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참된 평화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단순한 길도 아닙니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내놓은 대가가 무엇입니까? 뜨겁게 흘렸던 눈물과 땀이었습니다. 생명을 담보로 내놓았던 피의 사건들이었습니다.
신앙인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독교는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예찬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국수주의에 몰입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서 애국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나라 없는 백성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는 사랑하는 조국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할 이유입니다.
1905년 일본이 한국과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었을 때, 당시 민족지 중 하나였던 대한매일신보에 나라를 위한 위국기도문이 실렸습니다. 그 내용은 대한민국은 일본제국의 보호가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보호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도문은 다음과 같이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주를 믿는 우리는 구약 때의 선지자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다니엘의 기도로 이스라엘과 유대가 구원 얻은 것 같이 대한도 구원 얻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하옵세다.”
그리고 매일 신시(오후 2시~4시)에 나라를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제시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시여, 우리 한국이 죄악으로 침륜에 들었으매 오직 하나님밖에 빌 데 없사와 우리가 일시에 기도하오니 한국을 불쌍히 여기사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다니엘이 자기 나라를 위하여 간구함을 들으심같이 한국을 구원하사 전국 인민으로 자기 죄를 회개하고 다 천국 백성이 되어 나라가 하나님의 영원한 보호를 받아 지구상에 독립국이 확실케 하여주심을 예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당시 한국의 성도들은 구약의 예언자들과 예수 공동체의 전통을 이어받아 나라가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렵고 힘든 위기의 현실 속에서 신앙인의 태도를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거부해야할 몇 가지 태도를 말합니다. 먼저는 이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원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지상의 나라는 무시한 채 영적인 나라만 추구하는 현실 도피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분을 참지 못하고 혈기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군사지식 없이 단지 충천한 의분심만 가지고 의병으로 싸우는 무력의 방법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음으로 반성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도 이런 어려움과 위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들은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 떠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이라는 고통의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순식간에 이동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썩어빠진 정신을 고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노예근성과 남에게만 얻어먹으려 하는 거지근성에서부터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조금만 괜찮으면 그 자리에 안주하려는 미지근한 태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라는 자리에 집어넣으셨습니다. 며칠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종이었던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큰 결단이 필요한지, 그동안 묶여있었던 노예근성, 거지근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지를 그들에게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를 기억하고 한 가지를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억해야할 첫 번째 것은 과거의 은혜였습니다. 네 본래 모습이 어떠했는지, 네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네가 얼마나 비참한 자리에 있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너를 일으켜 세우시고 거기로부터 끄집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과거를 기억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애굽기 19: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애굽 사람들 사이에 있었을 때 너희는 어떤 존재였느냐? 자유가 없지 않았느냐? 핍박 받지 않았느냐? 인간으로서의 품격이 없지 않았느냐? 그래서 내가 애굽 백성을 징계했노라. 애굽의 바로 왕을 징계했노라. 그리고 너희를 끄집어내서 여기까지 인도했노라.”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비참했고 부끄러운 존재였는지를 기억하고, 그러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신앙은 허깨비에 불과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교만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나를 업고 여기까지 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만나면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해라. 다시 용감해져서 네가 지금 걷고 있는 광야를 이겨나가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미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번째 기억해야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미래의 약속을 기억하라고 부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만 기억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 새 약속을 가슴에 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 19: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감히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지만 인간은 죄인입니다. 둘 사이에는 커다란 담으로 막혀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물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모든 민족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고 가는 사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생명과 구원을 베풀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특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웃을 위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았지만 이제는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사명까지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물질에 대한 사명까지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그것은 기업에 대한 사명까지 받은 것입니다. 달란트의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내가 가진 달란트로 어떻게 하면 이 땅의 백성들을 풍요롭게 할지에 대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권력의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그 권력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 땅에 공의와 정의를 세울 수 있을지에 대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축복에 사명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 축복은 저주가 되고 맙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고서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물질이 저주가 될 것입니다. 기업의 풍성함을 받았는데 그것의 사명을 잃어버리면 기업이 저주가 될 것입니다. 권력과 힘을 차지했는데 사명을 놓치면 그 권력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독재자의 권력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사랑과 은총으로 섬기는 나라가 되라고 그들을 초청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들은 노예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백성은 망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저급한 것이었습니다. 짐승처럼 먹고 마시고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면 그만이었습니다. 생각이 없으면 거룩함이 결여됩니다. 생각이 없으면 소망 없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생각 없는 노예들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온 세계를 향한 빛의 사명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로부터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이제는 세계를 향해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선교사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다가 이제는 전 세계를 향해서 선교사를 보내고 복음과 사랑을 나누는 민족이 되었다는 것은 이 민족이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풍요의 축복, 자유의 축복, 민주주의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축복은 저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말씀해주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애굽기 19:5)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내게 속하였으니 내 말을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너희를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출애굽기 20장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하면 그 백성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제사장 나라로,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이 땅에 축복의 역사를 허락하십니다
18세기 영국은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때 영국을 구한 것은 사회개혁이나 정치개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 웨슬레라는 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그에게는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 시대 속에 선포했습니다. 그 당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유혈혁명을 일으켰지만, 영국만은 무혈혁명을 통해 새롭게 세워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삶에 정치개혁, 사회개혁, 교육개혁이 요청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신적인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으로 이 시대에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배만 불리고 내 등만 따뜻하게 하라고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어둠이 있는 곳에 가서 빛을 비추라고 말씀하십니다. 낙심과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한 곳에 생명의 역사와 치유의 역사를 선포하라고 초청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이 땅에 축복의 역사를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축복의 통로로 세우시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민족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이 귀한 역사가 우리 믿음의 성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출애굽기 19: 1 ~ 6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서, 특별히 현충일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전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날입니다. 얼마 전에는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서 46명의 젊은 국군 장병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모윤숙 시인이 쓴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이 시는 그가 6.25 전쟁 중 산골짝에서 죽어 쓰러져있는 한 국군의 시신을 보면서 지은 시입니다. 그중에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 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국립현충원을 가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평안히 누워있는 우리의 선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분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젊음과 생명을 바친 국군장병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우리가 평화롭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독재자였던 히틀러에 대항하여 독일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본회퍼 목사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안전하게 난 평화의 길은 없다. 평화는 과감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는 커다란 모험이다.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참된 평화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단순한 길도 아닙니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내놓은 대가가 무엇입니까? 뜨겁게 흘렸던 눈물과 땀이었습니다. 생명을 담보로 내놓았던 피의 사건들이었습니다.
신앙인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독교는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예찬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국수주의에 몰입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서 애국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나라 없는 백성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는 사랑하는 조국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할 이유입니다.
1905년 일본이 한국과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었을 때, 당시 민족지 중 하나였던 대한매일신보에 나라를 위한 위국기도문이 실렸습니다. 그 내용은 대한민국은 일본제국의 보호가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보호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도문은 다음과 같이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주를 믿는 우리는 구약 때의 선지자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다니엘의 기도로 이스라엘과 유대가 구원 얻은 것 같이 대한도 구원 얻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하옵세다.”
그리고 매일 신시(오후 2시~4시)에 나라를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제시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시여, 우리 한국이 죄악으로 침륜에 들었으매 오직 하나님밖에 빌 데 없사와 우리가 일시에 기도하오니 한국을 불쌍히 여기사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다니엘이 자기 나라를 위하여 간구함을 들으심같이 한국을 구원하사 전국 인민으로 자기 죄를 회개하고 다 천국 백성이 되어 나라가 하나님의 영원한 보호를 받아 지구상에 독립국이 확실케 하여주심을 예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당시 한국의 성도들은 구약의 예언자들과 예수 공동체의 전통을 이어받아 나라가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렵고 힘든 위기의 현실 속에서 신앙인의 태도를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거부해야할 몇 가지 태도를 말합니다. 먼저는 이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원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지상의 나라는 무시한 채 영적인 나라만 추구하는 현실 도피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분을 참지 못하고 혈기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군사지식 없이 단지 충천한 의분심만 가지고 의병으로 싸우는 무력의 방법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음으로 반성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도 이런 어려움과 위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들은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 떠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이라는 고통의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순식간에 이동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썩어빠진 정신을 고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노예근성과 남에게만 얻어먹으려 하는 거지근성에서부터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조금만 괜찮으면 그 자리에 안주하려는 미지근한 태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라는 자리에 집어넣으셨습니다. 며칠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종이었던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큰 결단이 필요한지, 그동안 묶여있었던 노예근성, 거지근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지를 그들에게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를 기억하고 한 가지를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억해야할 첫 번째 것은 과거의 은혜였습니다. 네 본래 모습이 어떠했는지, 네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네가 얼마나 비참한 자리에 있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너를 일으켜 세우시고 거기로부터 끄집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과거를 기억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애굽기 19: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애굽 사람들 사이에 있었을 때 너희는 어떤 존재였느냐? 자유가 없지 않았느냐? 핍박 받지 않았느냐? 인간으로서의 품격이 없지 않았느냐? 그래서 내가 애굽 백성을 징계했노라. 애굽의 바로 왕을 징계했노라. 그리고 너희를 끄집어내서 여기까지 인도했노라.”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비참했고 부끄러운 존재였는지를 기억하고, 그러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신앙은 허깨비에 불과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교만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나를 업고 여기까지 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만나면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해라. 다시 용감해져서 네가 지금 걷고 있는 광야를 이겨나가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미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번째 기억해야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미래의 약속을 기억하라고 부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만 기억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 새 약속을 가슴에 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 19: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감히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지만 인간은 죄인입니다. 둘 사이에는 커다란 담으로 막혀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물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모든 민족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고 가는 사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생명과 구원을 베풀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특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웃을 위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았지만 이제는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사명까지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물질에 대한 사명까지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그것은 기업에 대한 사명까지 받은 것입니다. 달란트의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내가 가진 달란트로 어떻게 하면 이 땅의 백성들을 풍요롭게 할지에 대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권력의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그 권력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 땅에 공의와 정의를 세울 수 있을지에 대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축복에 사명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 축복은 저주가 되고 맙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고서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물질이 저주가 될 것입니다. 기업의 풍성함을 받았는데 그것의 사명을 잃어버리면 기업이 저주가 될 것입니다. 권력과 힘을 차지했는데 사명을 놓치면 그 권력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독재자의 권력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사랑과 은총으로 섬기는 나라가 되라고 그들을 초청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들은 노예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백성은 망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저급한 것이었습니다. 짐승처럼 먹고 마시고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면 그만이었습니다. 생각이 없으면 거룩함이 결여됩니다. 생각이 없으면 소망 없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생각 없는 노예들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온 세계를 향한 빛의 사명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로부터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이제는 세계를 향해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선교사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다가 이제는 전 세계를 향해서 선교사를 보내고 복음과 사랑을 나누는 민족이 되었다는 것은 이 민족이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풍요의 축복, 자유의 축복, 민주주의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축복은 저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말씀해주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애굽기 19:5)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내게 속하였으니 내 말을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너희를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출애굽기 20장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하면 그 백성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제사장 나라로,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이 땅에 축복의 역사를 허락하십니다
18세기 영국은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때 영국을 구한 것은 사회개혁이나 정치개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 웨슬레라는 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그에게는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 시대 속에 선포했습니다. 그 당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유혈혁명을 일으켰지만, 영국만은 무혈혁명을 통해 새롭게 세워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삶에 정치개혁, 사회개혁, 교육개혁이 요청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신적인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으로 이 시대에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배만 불리고 내 등만 따뜻하게 하라고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어둠이 있는 곳에 가서 빛을 비추라고 말씀하십니다. 낙심과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한 곳에 생명의 역사와 치유의 역사를 선포하라고 초청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이 땅에 축복의 역사를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축복의 통로로 세우시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민족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이 귀한 역사가 우리 믿음의 성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