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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엄마에 대해서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지난 4월 3일자 뉴욕 타임즈 북 섹션에 북 리뷰가 하나 실렸습니다. 신경숙이 쓴 소설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라는 소설에 대한 리뷰였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모성의 신비에 대한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찬사!” 그러면서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큰 틈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라고 호평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이름입니다. 너무나 가깝고 소중한 이름입니다. 너무 곁에 있어서 잘 아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엄마”라고 하는 이름의 주인공에 대해서 우리는 잊고 살 때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연히 엄마가 내 옆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실종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자 엄마의 존재가 가족에게 얼마나 크고 소중한 존재였는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다시 회상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엄마가 어떤 때 기뻐했는지, 어떤 때 화를 내고 짜증냈는지 도무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1주일째다.” 엄마는 아버지와 생일상을 받기 위해서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다가 서울역에서 그만 실종되었습니다. 엄마가 아버지의 손을 놓쳤습니다. 아니, 아버지가 엄마의 손을 놓쳤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뒤에서 따라올 거라 생각하고 전철을 탔는데 아무리 봐도 엄마가 없습니다. 치매 끼가 있었던 엄마가 실종이 된 것입니다. 보통 때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어디를 갈 때면 늘 몇 걸음씩 앞서 걷곤 했습니다. 뒤따라오던 엄마가 힘들어서 “좀 천천히 가면 좋겠네. 함께 가면 좋겠네. 무슨 급한 일이 있소?” 라고 말해도 아버지는 늘 앞서 걸었습니다. 그 무심한 습관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리고만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 어르신들이 참 많습니다. 늘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몇 걸음을 앞서 걸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뒤 따라 가려하지만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노년을 멋지게 살아가는 방법은 나이가 드실수록 옆에서 함께 나란히 걷는 것입니다. 손을 잡고 걷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 멋지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과거의 전통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엄마를 방치해서 잃어버린 딸과 아들과 남편의 눈으로 엄마를 회상하면서 엄마를 잊고 사는 사람들, 아니 아예 엄마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치 공기와 물처럼 나와 늘 함께 있어준 엄마가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엄마의 빈자리를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딸도, 남편도 죄책감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녀들에 대한 고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적극적으로 거역하지는 않았어도 비슷한 아픔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무관심해서 그들을 슬프게 했던 기억들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부모님에게 무관심하고 부모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9~3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인간을 상실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두십니다. 여기에 보면 죄와 불의의 목록이 20개 이상이 나옵니다.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 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등 수많은 악들이 열거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특징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도 말세에 고통의 때가 이를 것이라고 하면서 죄의 목록을 말하는데 그 중심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를 써놓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사랑을 선물로 주신 분입니다. 부모님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넘치게 주시기 위해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 6:2~3)
약속이 있는 첫 계명, 보이는 첫 계명,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아버지를 공경하고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보이는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돈과 재물의 축복, 명예와 직위의 축복, 이 세상에서 잘나가는 축복을 받는 첫 번째 비결은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내리 사랑은 쉬운 것 같은데 올라가는 치사랑은 쉽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곳에 계실 수가 없어서 그 대신 어머니를 세워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해석하면 무슨 뜻일까요? 모든 엄마가 있는 곳에 바로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뜻입니다. 엄마가 있으면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엄마아빠의 사랑을 일찍 잃은 고아를 그렇게도 불쌍히도 여기시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경외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부모님을 공경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성경은 놀랍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으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까? 목욕하면 거룩해 집니까? 어떻게 하면 거룩해집니까? 하나님을 말씀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네가 거룩해지는 것이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2下 ~3)
거룩하게 되는 첫 번째 명령이 부모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 예배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면 거룩함에 이를 수 없다는 엄정한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로새서 3:20)
본문 해석이 더 잘 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올바른 본문의 번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한 사랑과 부모님의 대한 효도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부모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부모님에게 휴식을 드리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가족 중에 누군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딸이 될 수도 있고, 아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입니다. 엄마는 남편의 사랑이 필요한 아내이고 때로는 아빠와 엄마를 불러보고 싶은 딸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바깥에 나가 친구와 수다를 떨고 싶은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아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소년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청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아직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빠라는 책임을 감당하느라 세상에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우리엄마 우리 아빠를 이해하면서 들어줄 마음이 있는 그런 것이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에 출발점이기도 한 것입니다.
두 번째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에게 휴식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앞만 보면서 일만 하시며 달려왔습니다. 이 나라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랬습니다. 어머니들은 똑같은 가정살림을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매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수고하고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모님에게 알게 모르게 윽박지릅니다. “더 일 하세요! 똑같은 일 그냥 열심히 하세요!” 이렇게 강요 아닌 강요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쉼이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외롭고 고독하고 가슴이 매어지는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 왔습니다. 한 노인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읊은 시가 있습니다.
아이인 내 눈에 세상을 새롭고 낯설었다.
온갖 신비로 가득했다.
새들은 왜 날까?
강물은 왜 아래로 흘러갈까?
태양은 한밤중에 어디로 숨어 있고 달은 대낮에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오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이여!
어른이 된 나는 정신없이 살았다.
새들이나 강물, 태양이나 달을 외면했다.
먹고 살아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말아야 했다.
이제 늙은 나는 비로소 새들에게 눈길을 준다.
하늘로 치솟는 새들, 강물에게도 눈길을 준다.
숲속을 가로질러 굽이쳐 흐르는 강물, 태양의 온기를 함빡 쬔다.
달빛에 온 몸을 적신다.
오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이여!
여러분, 열심히 수고하면서 사셨습니까?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참으로 충성스럽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조금의 쉼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과 내게 주신 삶을 다시 즐거운 마음과 경이로움으로 바라볼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부모님에게 사랑의 고백과 쉼을 드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주일에는 제가 특별히 부모님들께 2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오늘은 자녀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부모님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부모님에게 “엄마, 내가 사랑해요! 아빠 내가 사랑해요! 정말 고마워요! 정말 감사해요! 제가 존경해요!” 라고 고백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말이 잘 안되면 편지로, 혹은 문자로 그 사랑의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은 그 말 한마디를 듣고 기뻐하시고 감격하십니다.
두 번째로 부탁을 드립니다. 직장을 다녔든 혹 용돈을 모아두었든 여러분에게 모아놓은 것이 있으면 부모님에게 여유와 쉼을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혼자 계시면 가족과 함께 잠시 쉬는 시간을 드려보십시오. 5월이 아니어도 됩니다. 휴가를 맞이해서 그런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 내외가 함께 계시면 두 분에게만 따로 시간을 드려도 좋습니다. 잠시 쉼을 누리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부모님에게 드려보시길 바랍니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에 마지막 장면이 나옵니다. 큰딸은 로마 여행 중에 베드로 성당에서 미켈란젤로가 만들어 놓은 피에타 상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슴으로 품고 있는 상입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이 죽었을 때도 지속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마지막에 딸이 이렇게 독백을 합니다. “누군가 등을 쓸어내리는 것 같아 너는 얼른 뒤를 돌아다보았다. 너의 등 뒤에 엄마가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너는 깨달았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습관적으로 엄마를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엄마를 생각하면 무엇인가 조금 바로 잡히고 내부로부터 뭔가 다시 힘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으니까.”
성 어거스틴이 한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엄마, 사랑하는 엄마를 둔 자녀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부모님에게 마음의 평안과 쉼을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렇게 귀하고 복된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골로새서 3: 20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우리는 엄마에 대해서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지난 4월 3일자 뉴욕 타임즈 북 섹션에 북 리뷰가 하나 실렸습니다. 신경숙이 쓴 소설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라는 소설에 대한 리뷰였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모성의 신비에 대한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찬사!” 그러면서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큰 틈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라고 호평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이름입니다. 너무나 가깝고 소중한 이름입니다. 너무 곁에 있어서 잘 아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엄마”라고 하는 이름의 주인공에 대해서 우리는 잊고 살 때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연히 엄마가 내 옆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실종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자 엄마의 존재가 가족에게 얼마나 크고 소중한 존재였는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다시 회상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엄마가 어떤 때 기뻐했는지, 어떤 때 화를 내고 짜증냈는지 도무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1주일째다.” 엄마는 아버지와 생일상을 받기 위해서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다가 서울역에서 그만 실종되었습니다. 엄마가 아버지의 손을 놓쳤습니다. 아니, 아버지가 엄마의 손을 놓쳤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뒤에서 따라올 거라 생각하고 전철을 탔는데 아무리 봐도 엄마가 없습니다. 치매 끼가 있었던 엄마가 실종이 된 것입니다. 보통 때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어디를 갈 때면 늘 몇 걸음씩 앞서 걷곤 했습니다. 뒤따라오던 엄마가 힘들어서 “좀 천천히 가면 좋겠네. 함께 가면 좋겠네. 무슨 급한 일이 있소?” 라고 말해도 아버지는 늘 앞서 걸었습니다. 그 무심한 습관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리고만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 어르신들이 참 많습니다. 늘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몇 걸음을 앞서 걸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뒤 따라 가려하지만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노년을 멋지게 살아가는 방법은 나이가 드실수록 옆에서 함께 나란히 걷는 것입니다. 손을 잡고 걷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 멋지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과거의 전통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엄마를 방치해서 잃어버린 딸과 아들과 남편의 눈으로 엄마를 회상하면서 엄마를 잊고 사는 사람들, 아니 아예 엄마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치 공기와 물처럼 나와 늘 함께 있어준 엄마가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엄마의 빈자리를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딸도, 남편도 죄책감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녀들에 대한 고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적극적으로 거역하지는 않았어도 비슷한 아픔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무관심해서 그들을 슬프게 했던 기억들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부모님에게 무관심하고 부모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9~3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인간을 상실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두십니다. 여기에 보면 죄와 불의의 목록이 20개 이상이 나옵니다.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 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등 수많은 악들이 열거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특징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도 말세에 고통의 때가 이를 것이라고 하면서 죄의 목록을 말하는데 그 중심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를 써놓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사랑을 선물로 주신 분입니다. 부모님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넘치게 주시기 위해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 6:2~3)
약속이 있는 첫 계명, 보이는 첫 계명,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아버지를 공경하고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보이는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돈과 재물의 축복, 명예와 직위의 축복, 이 세상에서 잘나가는 축복을 받는 첫 번째 비결은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내리 사랑은 쉬운 것 같은데 올라가는 치사랑은 쉽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곳에 계실 수가 없어서 그 대신 어머니를 세워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해석하면 무슨 뜻일까요? 모든 엄마가 있는 곳에 바로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뜻입니다. 엄마가 있으면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엄마아빠의 사랑을 일찍 잃은 고아를 그렇게도 불쌍히도 여기시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경외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부모님을 공경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성경은 놀랍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으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까? 목욕하면 거룩해 집니까? 어떻게 하면 거룩해집니까? 하나님을 말씀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네가 거룩해지는 것이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2下 ~3)
거룩하게 되는 첫 번째 명령이 부모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 예배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면 거룩함에 이를 수 없다는 엄정한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로새서 3:20)
본문 해석이 더 잘 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올바른 본문의 번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한 사랑과 부모님의 대한 효도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부모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부모님에게 휴식을 드리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가족 중에 누군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딸이 될 수도 있고, 아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입니다. 엄마는 남편의 사랑이 필요한 아내이고 때로는 아빠와 엄마를 불러보고 싶은 딸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바깥에 나가 친구와 수다를 떨고 싶은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아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소년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청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아직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빠라는 책임을 감당하느라 세상에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우리엄마 우리 아빠를 이해하면서 들어줄 마음이 있는 그런 것이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에 출발점이기도 한 것입니다.
두 번째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에게 휴식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앞만 보면서 일만 하시며 달려왔습니다. 이 나라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랬습니다. 어머니들은 똑같은 가정살림을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매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수고하고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모님에게 알게 모르게 윽박지릅니다. “더 일 하세요! 똑같은 일 그냥 열심히 하세요!” 이렇게 강요 아닌 강요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쉼이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외롭고 고독하고 가슴이 매어지는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 왔습니다. 한 노인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읊은 시가 있습니다.
아이인 내 눈에 세상을 새롭고 낯설었다.
온갖 신비로 가득했다.
새들은 왜 날까?
강물은 왜 아래로 흘러갈까?
태양은 한밤중에 어디로 숨어 있고 달은 대낮에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오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이여!
어른이 된 나는 정신없이 살았다.
새들이나 강물, 태양이나 달을 외면했다.
먹고 살아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말아야 했다.
이제 늙은 나는 비로소 새들에게 눈길을 준다.
하늘로 치솟는 새들, 강물에게도 눈길을 준다.
숲속을 가로질러 굽이쳐 흐르는 강물, 태양의 온기를 함빡 쬔다.
달빛에 온 몸을 적신다.
오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이여!
여러분, 열심히 수고하면서 사셨습니까?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참으로 충성스럽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조금의 쉼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과 내게 주신 삶을 다시 즐거운 마음과 경이로움으로 바라볼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부모님에게 사랑의 고백과 쉼을 드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주일에는 제가 특별히 부모님들께 2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오늘은 자녀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부모님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부모님에게 “엄마, 내가 사랑해요! 아빠 내가 사랑해요! 정말 고마워요! 정말 감사해요! 제가 존경해요!” 라고 고백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말이 잘 안되면 편지로, 혹은 문자로 그 사랑의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은 그 말 한마디를 듣고 기뻐하시고 감격하십니다.
두 번째로 부탁을 드립니다. 직장을 다녔든 혹 용돈을 모아두었든 여러분에게 모아놓은 것이 있으면 부모님에게 여유와 쉼을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혼자 계시면 가족과 함께 잠시 쉬는 시간을 드려보십시오. 5월이 아니어도 됩니다. 휴가를 맞이해서 그런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 내외가 함께 계시면 두 분에게만 따로 시간을 드려도 좋습니다. 잠시 쉼을 누리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부모님에게 드려보시길 바랍니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에 마지막 장면이 나옵니다. 큰딸은 로마 여행 중에 베드로 성당에서 미켈란젤로가 만들어 놓은 피에타 상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슴으로 품고 있는 상입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이 죽었을 때도 지속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마지막에 딸이 이렇게 독백을 합니다. “누군가 등을 쓸어내리는 것 같아 너는 얼른 뒤를 돌아다보았다. 너의 등 뒤에 엄마가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너는 깨달았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습관적으로 엄마를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엄마를 생각하면 무엇인가 조금 바로 잡히고 내부로부터 뭔가 다시 힘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으니까.”
성 어거스틴이 한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엄마, 사랑하는 엄마를 둔 자녀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부모님에게 마음의 평안과 쉼을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렇게 귀하고 복된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