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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

마태복음 10: 34 ~ 39

김지철 목사

2018.09.23

오늘날 가족 해체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추석 명절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사랑하는 가족들과 만나고 계십니까? 앞으로 만날 예정입니까? 추석 명절은 우리와 함께했던 분들, 먼저 떠나보낸 분들을 기억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한편으로는 살아 있는 가족과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복된 시간입니다. 우리는 추석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가족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친밀한 사람들입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족입니다. 그래서 만나면 반갑고 기쁜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랑방에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자연환경을 찾아가 쉼을 누리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관계가 가족이고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도 있습니다. 함께 축복을 나눠야 할 가정이 깨지는 경우입니다. 가족이기에 당위성 때문에 만나기는 합니다. 하지만 반갑지가 있습니다. 때로는 싫기까지 합니다. 서로를 대면하는 게 귀찮아집니다. 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가족도 있습니다. 일종의 가족 해체가 우리 사회와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배우자조차 서로를 외면하고, 부모 자식 간에도 보기를 꺼립니다. 곳곳에서 이혼의 아픔과 탄식 소리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추석 명절이 지난 후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보도가 들립니다. 최근에는 페미니스트를 중심으로 추석 명절에 여성들의 모든 노동을 거절한다는 거부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독거중년이라고 불리는 40~50대 1인 가구 수가 181만 가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 가구 수 중 20%를 육박하는 수치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족 해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가정은 생명과 사랑, 지혜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가정이 무엇인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이란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는 공동체입니까? 가정에서 우리가 받은 많은 선물이 있지만,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여 우리라는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도 태초에 한 남자와 여성이 창조되었고, 그들이 가정을 꾸리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1:28 중)

가정이란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생명을 이어받는 축복의 역사가 가정에서 계속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귀한 생명을 얻었음에도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우연의 산물처럼 의미 없이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생명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요, 축복이라고 말입니다. 시편 139편 13~1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편 139:13~14 중)

시편 139편을 자세히 읽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나의 나 됨이 우연스럽게 된 게 아님을, 하나님이 의도하셔서 나를 만드셨고,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기묘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인디언 속담에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지만 사람들은 기뻐했다. 하지만 네가 죽을 때는 사람들은 울지만 너는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내 인생이 마감할 때 사람들은 울지만, 나 스스로는 그간의 인생에 감사하며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가정을 통해 주신 선물은 ‘사랑’의 복입니다. 우리는 핏덩이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어린아이 시절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 성년이 될 때까지는 20여 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즉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아야 자라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습니다. 형제와 자매들이 있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렇게 위대한지 몰랐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게 있는데, 엄마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며 섬기고, 모든 정성을 쏟아놓았습니다. 바로 거기서 사랑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사랑을 경험하고 배우는 곳입니다.
세 번째로 가정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자리입니다. 가정에서 최고의 선생은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들은 아버지를 모방하고, 딸은 어머니를 모방합니다. 말도 배우고 지식도 배우며 지혜도 배웁니다.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부모님이 계신 곳에 내가, 내가 있는 곳에 부모님이 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안심이 되고 편안함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서 우리는 독자적인 삶의 방향을 갖게 됩니다. 창조적인 지혜를 얻는 길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이 또한 돌이켜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도움과 사랑 덕분입니다. 우리 부모님에게서 인생의 지혜를 배운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복이요, 사랑과 지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 부모님 덕분에 얻게 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가정의 복입니다.

사랑의 방향성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파격적인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이 정말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34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34)

검이란 칼을 말합니다. 칼은 공격 무기, 곧 남을 상해하고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무기입니다. 그래서 칼은 친구가 아닌 원수를 맺는 살상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시대 비판에 앞장서고 계십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악한지 비판하시며, 기득권적인 삶의 자리를 뒤집어 놓으려 하십니다. “지금은 평안한 때가 아니라 위기다. 지금은 괜찮다고 여길 때가 아니라 회개할 때다.”라고 외치십니다. 그러면서 실제적인 예를 가정에 두십니다.
오늘 말씀을 읽다 보면 예수님이 가족 해체를 주장하시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가를 전하시고자 하십니다. 3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태복음 10:35)

우리가 가진 가정의 축복과는 반대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족 공동체의 질서요, 기초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오심 자체에 모든 삶의 질서를 뒤집는 하나님의 심판적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죄악을 죄악으로 드러내겠다는 선포입니다. 못된 것을 못된 것으로 인식하도록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죄악이 이러한 파괴적인 관계를 만들었다는 내용은, 예수님의 말씀 이전에 이미 구약의 미가 선지자가 선포했습니다. 미가 7장 5~6절입니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미가 7:5~6)

죄악 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혼돈이 가득한 사회상, 무너진 가정이 얼마나 악을 향해 나가고 있는지, 신뢰할 수 없는 분쟁의 가정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시대가 얼마나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찼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주님이라고 말할 때, 이 땅에 얼마나 죽음의 그림자와 고통이 가득한가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평강을 선포하실 때, 이 세상이 얼마나 근심하며 불안하고 걱정으로 가득한지를 보여주십니다. 생명을 선물하는 치유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자신이 이 카오스적인 무질서와 혼돈의 세상에 대한 엄한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러한 시대를 이겨나가는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사랑’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방향을 다시 잡으라고 촉구하십니다. 사랑의 우선권을 붙잡고 다시 결단하며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방향, 사랑의 결단의 우선성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0장 37절에서 예수님은 그 내용을 가르쳐 주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10:37)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강력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가족을 해체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족 사랑을 뛰어넘는 ‘하나님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해 확인해 보면, 예수님은 가정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뛰어넘는 하나님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 중 첫 번째 기적은 무엇입니까? 가나라는 마을에서 혼인잔치가 있었는데,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걱정했는데,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먹은 포도주보다 나중에 먹은 포도주가 더 좋은 포도주네. 더 맛있는 포도주네.” 이처럼 예수님은 혼인잔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셨습니다. 가정이란 소중한 것,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면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도 그와 같습니다. “네가 네 가족과 떨어져 지냈느냐? 이제 치유를 받으면 네 집으로 돌아가라. 네 가족을 만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의 일상성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를 경험해라.” 이처럼 말씀을 통해 가정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신 분도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아버지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 어머니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 네 아들과 네 딸을 사랑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 사랑과 예수님 사랑이 모든 사랑의 방향성이자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의 우선권이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우선순위라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갖고 있는 모든 사랑과 네가 갖고 있는 모든 관심을 잃어버려도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 사랑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이다.”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잃으면 인생 전체가 망가지고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 네 딸, 네 아내, 네 남편, 네 아버지, 네 어머니, 원초적인 사랑이 축복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제일 큰 슬픈 사건이 무엇일까요? 사랑할 대상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 마음속에 사랑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허무함의 자리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할 때, 우리 인생이 어둠의 터널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받지도 못하면, 인생 자체가 귀찮아지는 것입니다. 살아갈 의욕조차 사라집니다.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사랑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신 핵심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당신을 사랑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메시지가 신‧구약 성경 전체에 드러납니다.
다만 ‘사랑의 방향’을 바로잡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의 우선순위를 놓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네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을 마음이 있느냐? 네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마음이 있느냐? 네 아들과 네 딸을 사랑하는 것을 아는데, 그리고 네 아내, 네 남편을 사랑하는 것 아는데, 그보다 나를 사랑하는 게 더 우선이냐?” 이 우선순위를 바로잡아야 인생에서 새로운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다른 모든 것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생깁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푸른 하늘과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면서도, 자연만물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축복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먼저 사랑할 때, 이웃도 너그럽게 대하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 사랑이 내 안에 있으면, 내 속의 슬픔과 좌절, 불안과 근심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조롱과 비난도 이겨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것이 모든 사랑의 근원이자 힘입니다. 사랑에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사람도 변화됩니다. 사랑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이 없습니다. 난공불락(難攻不落)과 같은 사람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그 마음을 녹이는 힘이 사랑에 있습니다.
동시에 사랑은 아주 무력한 것이기도 합니다. 인격적인 특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사랑을 쏟아놓아도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그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상대의 동의가 동반되지 않은 사랑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내가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너를 위해 사랑으로 내놨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요청하셨습니다. “너도 나를 사랑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네가 사랑할 줄 알게 되고, 감사하며 기뻐할 줄 알게 되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늘의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에게 매몰되지 마십시오. 남편을 사랑하지만 남편에게 매몰되어서도 안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지만 그에게 매몰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집착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기적인 집착, 내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인격이란 서로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참다운 감사와 기쁨, 내 곁의 사람에 대한 존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한가위 명절에 가족들과 만나면서 함께 누리며 기뻐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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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 34 ~ 39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오늘날 가족 해체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추석 명절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사랑하는 가족들과 만나고 계십니까? 앞으로 만날 예정입니까? 추석 명절은 우리와 함께했던 분들, 먼저 떠나보낸 분들을 기억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한편으로는 살아 있는 가족과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복된 시간입니다. 우리는 추석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가족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친밀한 사람들입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족입니다. 그래서 만나면 반갑고 기쁜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랑방에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자연환경을 찾아가 쉼을 누리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관계가 가족이고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도 있습니다. 함께 축복을 나눠야 할 가정이 깨지는 경우입니다. 가족이기에 당위성 때문에 만나기는 합니다. 하지만 반갑지가 있습니다. 때로는 싫기까지 합니다. 서로를 대면하는 게 귀찮아집니다. 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가족도 있습니다. 일종의 가족 해체가 우리 사회와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배우자조차 서로를 외면하고, 부모 자식 간에도 보기를 꺼립니다. 곳곳에서 이혼의 아픔과 탄식 소리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추석 명절이 지난 후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보도가 들립니다. 최근에는 페미니스트를 중심으로 추석 명절에 여성들의 모든 노동을 거절한다는 거부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독거중년이라고 불리는 40~50대 1인 가구 수가 181만 가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 가구 수 중 20%를 육박하는 수치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족 해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가정은 생명과 사랑, 지혜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가정이 무엇인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이란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는 공동체입니까? 가정에서 우리가 받은 많은 선물이 있지만,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여 우리라는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도 태초에 한 남자와 여성이 창조되었고, 그들이 가정을 꾸리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1:28 중)

가정이란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생명을 이어받는 축복의 역사가 가정에서 계속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귀한 생명을 얻었음에도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우연의 산물처럼 의미 없이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생명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요, 축복이라고 말입니다. 시편 139편 13~1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편 139:13~14 중)

시편 139편을 자세히 읽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나의 나 됨이 우연스럽게 된 게 아님을, 하나님이 의도하셔서 나를 만드셨고,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기묘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인디언 속담에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지만 사람들은 기뻐했다. 하지만 네가 죽을 때는 사람들은 울지만 너는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내 인생이 마감할 때 사람들은 울지만, 나 스스로는 그간의 인생에 감사하며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가정을 통해 주신 선물은 ‘사랑’의 복입니다. 우리는 핏덩이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어린아이 시절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 성년이 될 때까지는 20여 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즉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아야 자라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습니다. 형제와 자매들이 있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렇게 위대한지 몰랐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게 있는데, 엄마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며 섬기고, 모든 정성을 쏟아놓았습니다. 바로 거기서 사랑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사랑을 경험하고 배우는 곳입니다.
세 번째로 가정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자리입니다. 가정에서 최고의 선생은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들은 아버지를 모방하고, 딸은 어머니를 모방합니다. 말도 배우고 지식도 배우며 지혜도 배웁니다.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부모님이 계신 곳에 내가, 내가 있는 곳에 부모님이 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안심이 되고 편안함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서 우리는 독자적인 삶의 방향을 갖게 됩니다. 창조적인 지혜를 얻는 길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이 또한 돌이켜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도움과 사랑 덕분입니다. 우리 부모님에게서 인생의 지혜를 배운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복이요, 사랑과 지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 부모님 덕분에 얻게 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가정의 복입니다.

사랑의 방향성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파격적인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이 정말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34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34)

검이란 칼을 말합니다. 칼은 공격 무기, 곧 남을 상해하고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무기입니다. 그래서 칼은 친구가 아닌 원수를 맺는 살상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시대 비판에 앞장서고 계십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악한지 비판하시며, 기득권적인 삶의 자리를 뒤집어 놓으려 하십니다. “지금은 평안한 때가 아니라 위기다. 지금은 괜찮다고 여길 때가 아니라 회개할 때다.”라고 외치십니다. 그러면서 실제적인 예를 가정에 두십니다.
오늘 말씀을 읽다 보면 예수님이 가족 해체를 주장하시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가를 전하시고자 하십니다. 3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태복음 10:35)

우리가 가진 가정의 축복과는 반대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족 공동체의 질서요, 기초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오심 자체에 모든 삶의 질서를 뒤집는 하나님의 심판적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죄악을 죄악으로 드러내겠다는 선포입니다. 못된 것을 못된 것으로 인식하도록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죄악이 이러한 파괴적인 관계를 만들었다는 내용은, 예수님의 말씀 이전에 이미 구약의 미가 선지자가 선포했습니다. 미가 7장 5~6절입니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미가 7:5~6)

죄악 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혼돈이 가득한 사회상, 무너진 가정이 얼마나 악을 향해 나가고 있는지, 신뢰할 수 없는 분쟁의 가정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시대가 얼마나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찼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주님이라고 말할 때, 이 땅에 얼마나 죽음의 그림자와 고통이 가득한가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평강을 선포하실 때, 이 세상이 얼마나 근심하며 불안하고 걱정으로 가득한지를 보여주십니다. 생명을 선물하는 치유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자신이 이 카오스적인 무질서와 혼돈의 세상에 대한 엄한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러한 시대를 이겨나가는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사랑’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방향을 다시 잡으라고 촉구하십니다. 사랑의 우선권을 붙잡고 다시 결단하며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방향, 사랑의 결단의 우선성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0장 37절에서 예수님은 그 내용을 가르쳐 주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10:37)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강력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가족을 해체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족 사랑을 뛰어넘는 ‘하나님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해 확인해 보면, 예수님은 가정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뛰어넘는 하나님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 중 첫 번째 기적은 무엇입니까? 가나라는 마을에서 혼인잔치가 있었는데,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걱정했는데,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먹은 포도주보다 나중에 먹은 포도주가 더 좋은 포도주네. 더 맛있는 포도주네.” 이처럼 예수님은 혼인잔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셨습니다. 가정이란 소중한 것,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면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도 그와 같습니다. “네가 네 가족과 떨어져 지냈느냐? 이제 치유를 받으면 네 집으로 돌아가라. 네 가족을 만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의 일상성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를 경험해라.” 이처럼 말씀을 통해 가정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신 분도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아버지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 어머니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 네 아들과 네 딸을 사랑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 사랑과 예수님 사랑이 모든 사랑의 방향성이자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의 우선권이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우선순위라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갖고 있는 모든 사랑과 네가 갖고 있는 모든 관심을 잃어버려도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 사랑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이다.”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잃으면 인생 전체가 망가지고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 네 딸, 네 아내, 네 남편, 네 아버지, 네 어머니, 원초적인 사랑이 축복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제일 큰 슬픈 사건이 무엇일까요? 사랑할 대상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 마음속에 사랑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허무함의 자리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할 때, 우리 인생이 어둠의 터널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받지도 못하면, 인생 자체가 귀찮아지는 것입니다. 살아갈 의욕조차 사라집니다.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사랑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신 핵심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당신을 사랑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메시지가 신‧구약 성경 전체에 드러납니다.
다만 ‘사랑의 방향’을 바로잡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의 우선순위를 놓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네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을 마음이 있느냐? 네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마음이 있느냐? 네 아들과 네 딸을 사랑하는 것을 아는데, 그리고 네 아내, 네 남편을 사랑하는 것 아는데, 그보다 나를 사랑하는 게 더 우선이냐?” 이 우선순위를 바로잡아야 인생에서 새로운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다른 모든 것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생깁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푸른 하늘과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면서도, 자연만물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축복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먼저 사랑할 때, 이웃도 너그럽게 대하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 사랑이 내 안에 있으면, 내 속의 슬픔과 좌절, 불안과 근심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조롱과 비난도 이겨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것이 모든 사랑의 근원이자 힘입니다. 사랑에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사람도 변화됩니다. 사랑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이 없습니다. 난공불락(難攻不落)과 같은 사람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그 마음을 녹이는 힘이 사랑에 있습니다.
동시에 사랑은 아주 무력한 것이기도 합니다. 인격적인 특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사랑을 쏟아놓아도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그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상대의 동의가 동반되지 않은 사랑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내가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너를 위해 사랑으로 내놨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요청하셨습니다. “너도 나를 사랑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네가 사랑할 줄 알게 되고, 감사하며 기뻐할 줄 알게 되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늘의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에게 매몰되지 마십시오. 남편을 사랑하지만 남편에게 매몰되어서도 안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지만 그에게 매몰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집착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기적인 집착, 내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인격이란 서로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참다운 감사와 기쁨, 내 곁의 사람에 대한 존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한가위 명절에 가족들과 만나면서 함께 누리며 기뻐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8년 9월 23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주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⑵ 찬송가 286, 30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⑷ 마 10:34~39절을 읽고 나눕니다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9월 2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사랑하는 사라들친밀한 사람들서로를 향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만나면 반갑고 기쁜 사람들이 바로 가족입니다그런데 축복을 받아야 할 가정이 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추석명절을 지나고 나면 이혼율이 급격하게 오른다고 보고합니다그렇다면 신앙적으로 가정이란 무엇일까가정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복을 받는 것일까?

설교의 요약

   우리는 가정을 통해서 첫째생명을 선물로 받습니다(1:28, 139:13~14). 둘째사랑의 복을 받습니다우리가 누군가에 의해서 사랑을 받고 자란 존재라는 뜻입니다마지막으로 부모님을 통해서 삶의 노하우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강력한 말씀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말씀입니다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칼이란 공격하는 무기인데칼을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실제적인 예로 가정의 화합이 아니라불화를 위해서 오셨다고 하십니다(35).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① 인간의 죄악이 이런 파괴적인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뜻입니다혼돈이 가득한 사회상무너진 가정의 평화를 상징적으로 그려주고 있습니다② 예수님의 사랑은 이 시대가 얼마나 미움과 분노가 가득 찼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진정한 해결책이란 무엇일까사랑을 회복하는 일입니다예수님께서는 가족 해체를 주장하신 것이 아니라(37),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가나에서 있었던 혼인잔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포도주가 떨어져가는 그 잔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셨습니다뿐만 아니라병든 자를 고치시며 네 집으로 돌아가라자녀가 아파 누운 것을 일으키시며 가정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모든 사랑보다 더 우선적인 사랑도 예수님이고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 사랑을 놓치면 모든 것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사랑은 최고의 축복입니다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네 자식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네 부모보다 더 사랑하는가사랑의 방향사랑의 우선순위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예수님 사랑이 내 삶의 첫 번째입니다. 1) 이 사랑을 가져야다른 것으로 모든 것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이 사랑을 가져야내 속에 있는 슬픔좌절불안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내 밖에서 오는 공격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이 사랑을 가지면 내가 홀로 있어도 버틸 수 있습니다모든 슬픔이 다가와도 하나님 사랑이 있으면 이 슬픔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이 사랑이 우선이 되어야만 합니다사랑의 본질인 하나님을 잊어버리면세상의 모든 사랑이 요동치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하나님 사랑은 일차적이며 우선적입니다그렇다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마음을 정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그런데 사랑은 이를 무너뜨리고 그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그래서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하지만 사랑은 무력합니다하나님의 사랑도 무력합니다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상대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그러면 내 아들아내남편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누기

1.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어떻게 그에게 사랑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함께 나눠보세요.

2.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 ? 5가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서로 함께 나눠보세요.

3. 사랑은 강력하지만 무력하기도 합니다그래서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깨닫고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축복하며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전하게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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