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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아내 사랑하기

에베소서 5: 25 ~ 33

김지철 목사

2015.05.17

결혼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축복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첫 번째로 만드신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이 혼자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첫 번째 인간 아담을 만드신 후에 홀로 있는 모습이 좋지 않다고 여기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세기 2:18)

그래서 아담을 깊게 잠들게 하신 후,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멈추지 않으시고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둘이 대면하게 하셨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나와 사위될 신랑의 손과 딸의 손을 마주잡게 하는 것은 결혼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을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이적을 행하신 곳이 어딥니까? 가나의 혼인 잔치입니다. 마지막까지 잔치의 즐거움이 지속될 수 있도록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자리입니다.
또 성경에는 누군가 예수님을 향해서 이혼에 대한 질문을 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혼을 해야 되겠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마가복음 10:6~8)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둘이 하나의 몸이 되고 함께 가정을 꾸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사건, 은혜의 사건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한 몸’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정이란 부부가 함께 사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즐거움이 가정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혼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부부들이 이혼하는 확률을 조사해 봤는데 지금부터 25년 전인 1990년에는 10명 중 한 명꼴로 이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0년에는 그 수가 25% 늘어서 네 명 중 한 명꼴로 이혼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40대, 50대의 이혼율이 전체 이혼 숫자의 절반 이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함께 살다가 이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두 사람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을까요? 서로에게 얼마나 모진 말들을 쏟아부었을까요? 그 결과 더 이상은 이 남자와, 이 여자와 함께 살 수 없다고 결론을 내고 이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사실 남편과 아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부모의 이혼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이혼하는 모습을 보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습니다. 혼란과 충격, 좌절과 환멸, 상실의 슬픔 가운데 몸부림치게 됩니다. 그 고통의 경험을 통해 자녀들은 ‘이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큰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소개할 글은 한 초등학생이 과거 부모의 이혼을 돌아보면서 쓴 것입니다. 이런 고통은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한 자녀들 거의 모두에게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나의 부모님이 이혼했을 때 나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나는 몹시 슬펐다. 나는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밤낮 울기만 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할 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자신과는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게 됩니다.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마른 남자는 약간 통통한 여자를 좋아합니다. 키가 큰 남자는 아담한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 후 어느 날, 자신과 달라서 매력을 느꼈던 그 모습이 보기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차이점 때문에 좋아했다가 차이점 때문에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남자의 과묵함에 반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말이 없는 남자 때문에 속이 상합니다. ‘이 남자하고는 말이 안 통해. 더 이상 대화를 할 수가 없어!’ 실망하게 되고 좌절하게 됩니다.
보건복지부 산하의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부부간 대화시간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하루 30분 이하가 거의 40%였습니다. 부부 세 쌍 중 한 쌍은 하루에 30분도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너무 바빠서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마지막에는 소리가 높아지고 결국 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울까봐 겁이 나서 미리 피한다는 사람이 대화를 안 하는 사람의 1/3을 차지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시간에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는지 물었습니다. 1위는 밥 먹을 때(약 60%)였습니다. 그런데 식사 시간의 대화는 깊은 대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상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로는 첫 번째가 자녀 교육과 건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배우자에게 애정 표현이나 칭찬, 격려하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는 질문에는 절반가량이 ‘아주 기분이 좋을 때 가끔’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머지는 ‘거의 안 한다’였습니다. 특별히 50, 60대 부부는 ‘애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아마 지금 여기 계신 50대, 60대, 70대 남자 분들에게 아내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이야기하라고 하면 간지러워서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혼한 남녀에게 과거 결혼생활 중 얼마나 자주 부부간에 대화를 했는지 물었습니다. 여성의 경우 약 50%가 하루 두세 마디가 전부였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재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재혼하게 되면 무엇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놓겠는가?’ 물었을 때 남녀를 불문하고 첫 번째로 이야기한 것이 ‘대화를 좀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은 행복과 즐거움이 넘치는 자리여야 합니다.

우리말에 님과 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님이라는 말에 획 하나만 그으면 남이 됩니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님 때문에 정성과 시간과 재물 등 내 모든 것을 쏟아서 결혼이라는 축복의 자리까지 왔는데, 어느 날 그 님이 나를 전혀 알아주지 않는 남으로 변합니다. 대화가 겉돌기 시작하면서 님은 남이 되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정서적인 이혼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더 이상은 이 사람과 함께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결심하게 되고 헤어지는 것이 이혼입니다.
이혼한 사람들이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는 이해하고 헤아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선 먼저, ‘결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스도인으로서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결혼을 얼마나 축복하는지 모릅니다. 남자들은 결혼하면 무조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결혼한 남자는 복 중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결혼하지 않은 남자 분들 계십니까? 특별히 청년 중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까? 결혼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축복을 누려야 됩니다. 신명기 24장 5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신명기 24:5)

이런 특권을 준다고 하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결혼을 조금 더 많이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 년 동안 군대면제, 직장면제, 일 년 동안은 오직 아내만을 즐겁게 하라.’ 영어 성경에 보면 “bring happiness to the wife he has married”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혼한 아내에게 행복을 주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특별히 남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가부장적인 유대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명확하고 정확합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잠언 5:18)

무슨 뜻입니까? 조금 전에 읽은 신명기 말씀이 아내에게 행복과 웃음을 주라는 것이었다면, 이것은 ‘너도 아내를 즐거워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이 하나님이 가정에 주신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결혼한 부부들, 삼십대, 사십대의 부부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들과만 즐겁게 놀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부끼리 즐거워하는 시간도 별도로 마련해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과 즐거워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그것은 가정에 있어야 할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편들과 아내들에게 부탁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남편들에게 아내를 소중히 여기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아내를 인격적으로 귀히 여기십시오. 아내를 말로 모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잔인하고 모진 말로 아내를 눈물 흘리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들 중에 사회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에게는 참 친절한 남자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관계가 좋은 것입니다. 예의가 바르고, 자상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정에 들어가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아내가 한 마디 하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툭하면 고함을 칩니다. 가족들에게는 자기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작은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아내를 사랑하며 배려할 줄 알아야 다른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 진정성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에베소서 5:25)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자기 목숨을 내놓으신 예수님처럼 남편은 생명을 걸고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아내를 보호할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내에게서 도망갈 생각만 하지 말고, 내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축복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에베소서 5:28)

아내를 사랑하는 길이 곧 자기를 위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할 줄 알아야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것이며, 곧 자신을 복되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큰 계명 중 하나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첫 번째 이웃을 ‘아내’라고 해석합니다. 유대 탈무드에는 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아내를 더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멋진 남편, 용기 있는 남편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남편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우리는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형편없는 존재였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버리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그 모습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남편들에게 말씀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내를 이렇게 배려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마다할 아내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직장에서 돌아오면 먼저 아내를 포옹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있어서 참 고맙다”라고 이야기해 보세요. 아무리 보석 같은 아들딸이 다가온다고 해도 아내를 먼저 껴안으십시오. 그래야 자녀들이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고 존중하는구나. 나도 앞으로 더욱 엄마를 존중해야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내들에게도 부탁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명망 있는 부자가 자신의 모든 부를 순식간에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난한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일당을 받고 열악한 노동자의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매일 밤 그의 아내는 예쁜 옷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를 한 채 마을 입구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저렇게 힘들게 돈을 버는데 도대체 저 여자는 뭐하는 짓이야?”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아내에게서 듣게 됩니다. “남편이 일터에서 돌아오면 그 무력한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마치 힘이 다 빠져 죽은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부자로 살다가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으니 오죽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의 영혼마저 깊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는 제 자신을 화려하게 꾸며 매일 밤 남편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나가 그를 기다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름답게 치장하고 얼굴에 미소를 품은 채 남편을 반겼어요. 남편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 말이지요.”

가정의 회복을 위해 서로 노력합시다.

사랑하는 아내 되신 성도님들, 남편의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해도 문 앞으로 달려 나가시기 바랍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놀다가도 “아빠 왔다!” 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을 껴안고 등을 두드려 주세요. “당신 오늘 참 수고 많았다”며 이야기해 주세요. 남편이 혹 밤늦게 들어오면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일어나 나가서 맞이하세요. 자녀들에게 쏟는 에너지를 남편에게도 좀 쏟아 주세요. 자녀는 쏟으려고 하지 않아도 쏟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은 떠나갈 이들입니다. 반면 남편은 평생 함께 있을 동반자입니다.
남편들에게 다시 부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들에게 가정에서의 영적인 리더십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내에게 말 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결혼하는 신랑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신랑아, 너는 태평양 바다처럼 넓어서 아내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넓은 마음으로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함께 가정에 주신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라고, 즐거워하고 즐기라고 주셨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자녀들에게도 생기가 넘칩니다. 신이 나는 것입니다. 이 가정의 달에 우리 남편들이 먼저 아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배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아내는 내가 지킨다’는 사랑의 선언을 해 보십시오. 그러한 변화를 통해 가정이 회복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역사가 성도님들의 가정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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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 25 ~ 33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결혼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축복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첫 번째로 만드신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이 혼자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첫 번째 인간 아담을 만드신 후에 홀로 있는 모습이 좋지 않다고 여기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세기 2:18)

그래서 아담을 깊게 잠들게 하신 후,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멈추지 않으시고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둘이 대면하게 하셨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나와 사위될 신랑의 손과 딸의 손을 마주잡게 하는 것은 결혼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을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이적을 행하신 곳이 어딥니까? 가나의 혼인 잔치입니다. 마지막까지 잔치의 즐거움이 지속될 수 있도록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자리입니다.
또 성경에는 누군가 예수님을 향해서 이혼에 대한 질문을 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혼을 해야 되겠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마가복음 10:6~8)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둘이 하나의 몸이 되고 함께 가정을 꾸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사건, 은혜의 사건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한 몸’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정이란 부부가 함께 사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즐거움이 가정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혼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부부들이 이혼하는 확률을 조사해 봤는데 지금부터 25년 전인 1990년에는 10명 중 한 명꼴로 이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0년에는 그 수가 25% 늘어서 네 명 중 한 명꼴로 이혼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40대, 50대의 이혼율이 전체 이혼 숫자의 절반 이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함께 살다가 이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두 사람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을까요? 서로에게 얼마나 모진 말들을 쏟아부었을까요? 그 결과 더 이상은 이 남자와, 이 여자와 함께 살 수 없다고 결론을 내고 이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사실 남편과 아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부모의 이혼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이혼하는 모습을 보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습니다. 혼란과 충격, 좌절과 환멸, 상실의 슬픔 가운데 몸부림치게 됩니다. 그 고통의 경험을 통해 자녀들은 ‘이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큰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소개할 글은 한 초등학생이 과거 부모의 이혼을 돌아보면서 쓴 것입니다. 이런 고통은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한 자녀들 거의 모두에게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나의 부모님이 이혼했을 때 나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나는 몹시 슬펐다. 나는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밤낮 울기만 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할 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자신과는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게 됩니다.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마른 남자는 약간 통통한 여자를 좋아합니다. 키가 큰 남자는 아담한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 후 어느 날, 자신과 달라서 매력을 느꼈던 그 모습이 보기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차이점 때문에 좋아했다가 차이점 때문에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남자의 과묵함에 반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말이 없는 남자 때문에 속이 상합니다. ‘이 남자하고는 말이 안 통해. 더 이상 대화를 할 수가 없어!’ 실망하게 되고 좌절하게 됩니다.
보건복지부 산하의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부부간 대화시간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하루 30분 이하가 거의 40%였습니다. 부부 세 쌍 중 한 쌍은 하루에 30분도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너무 바빠서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마지막에는 소리가 높아지고 결국 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울까봐 겁이 나서 미리 피한다는 사람이 대화를 안 하는 사람의 1/3을 차지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시간에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는지 물었습니다. 1위는 밥 먹을 때(약 60%)였습니다. 그런데 식사 시간의 대화는 깊은 대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상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로는 첫 번째가 자녀 교육과 건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배우자에게 애정 표현이나 칭찬, 격려하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는 질문에는 절반가량이 ‘아주 기분이 좋을 때 가끔’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머지는 ‘거의 안 한다’였습니다. 특별히 50, 60대 부부는 ‘애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아마 지금 여기 계신 50대, 60대, 70대 남자 분들에게 아내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이야기하라고 하면 간지러워서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혼한 남녀에게 과거 결혼생활 중 얼마나 자주 부부간에 대화를 했는지 물었습니다. 여성의 경우 약 50%가 하루 두세 마디가 전부였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재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재혼하게 되면 무엇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놓겠는가?’ 물었을 때 남녀를 불문하고 첫 번째로 이야기한 것이 ‘대화를 좀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은 행복과 즐거움이 넘치는 자리여야 합니다.

우리말에 님과 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님이라는 말에 획 하나만 그으면 남이 됩니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님 때문에 정성과 시간과 재물 등 내 모든 것을 쏟아서 결혼이라는 축복의 자리까지 왔는데, 어느 날 그 님이 나를 전혀 알아주지 않는 남으로 변합니다. 대화가 겉돌기 시작하면서 님은 남이 되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정서적인 이혼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더 이상은 이 사람과 함께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결심하게 되고 헤어지는 것이 이혼입니다.
이혼한 사람들이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는 이해하고 헤아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선 먼저, ‘결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스도인으로서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결혼을 얼마나 축복하는지 모릅니다. 남자들은 결혼하면 무조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결혼한 남자는 복 중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결혼하지 않은 남자 분들 계십니까? 특별히 청년 중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까? 결혼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축복을 누려야 됩니다. 신명기 24장 5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신명기 24:5)

이런 특권을 준다고 하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결혼을 조금 더 많이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 년 동안 군대면제, 직장면제, 일 년 동안은 오직 아내만을 즐겁게 하라.’ 영어 성경에 보면 “bring happiness to the wife he has married”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혼한 아내에게 행복을 주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특별히 남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가부장적인 유대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명확하고 정확합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잠언 5:18)

무슨 뜻입니까? 조금 전에 읽은 신명기 말씀이 아내에게 행복과 웃음을 주라는 것이었다면, 이것은 ‘너도 아내를 즐거워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이 하나님이 가정에 주신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결혼한 부부들, 삼십대, 사십대의 부부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들과만 즐겁게 놀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부끼리 즐거워하는 시간도 별도로 마련해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과 즐거워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그것은 가정에 있어야 할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편들과 아내들에게 부탁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남편들에게 아내를 소중히 여기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아내를 인격적으로 귀히 여기십시오. 아내를 말로 모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잔인하고 모진 말로 아내를 눈물 흘리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들 중에 사회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에게는 참 친절한 남자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관계가 좋은 것입니다. 예의가 바르고, 자상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정에 들어가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아내가 한 마디 하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툭하면 고함을 칩니다. 가족들에게는 자기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작은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아내를 사랑하며 배려할 줄 알아야 다른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 진정성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에베소서 5:25)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자기 목숨을 내놓으신 예수님처럼 남편은 생명을 걸고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아내를 보호할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내에게서 도망갈 생각만 하지 말고, 내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축복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에베소서 5:28)

아내를 사랑하는 길이 곧 자기를 위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할 줄 알아야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것이며, 곧 자신을 복되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큰 계명 중 하나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첫 번째 이웃을 ‘아내’라고 해석합니다. 유대 탈무드에는 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아내를 더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멋진 남편, 용기 있는 남편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남편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우리는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형편없는 존재였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버리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그 모습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남편들에게 말씀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내를 이렇게 배려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마다할 아내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직장에서 돌아오면 먼저 아내를 포옹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있어서 참 고맙다”라고 이야기해 보세요. 아무리 보석 같은 아들딸이 다가온다고 해도 아내를 먼저 껴안으십시오. 그래야 자녀들이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고 존중하는구나. 나도 앞으로 더욱 엄마를 존중해야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내들에게도 부탁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명망 있는 부자가 자신의 모든 부를 순식간에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난한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일당을 받고 열악한 노동자의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매일 밤 그의 아내는 예쁜 옷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를 한 채 마을 입구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저렇게 힘들게 돈을 버는데 도대체 저 여자는 뭐하는 짓이야?”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아내에게서 듣게 됩니다. “남편이 일터에서 돌아오면 그 무력한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마치 힘이 다 빠져 죽은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부자로 살다가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으니 오죽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의 영혼마저 깊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는 제 자신을 화려하게 꾸며 매일 밤 남편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나가 그를 기다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름답게 치장하고 얼굴에 미소를 품은 채 남편을 반겼어요. 남편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 말이지요.”

가정의 회복을 위해 서로 노력합시다.

사랑하는 아내 되신 성도님들, 남편의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해도 문 앞으로 달려 나가시기 바랍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놀다가도 “아빠 왔다!” 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을 껴안고 등을 두드려 주세요. “당신 오늘 참 수고 많았다”며 이야기해 주세요. 남편이 혹 밤늦게 들어오면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일어나 나가서 맞이하세요. 자녀들에게 쏟는 에너지를 남편에게도 좀 쏟아 주세요. 자녀는 쏟으려고 하지 않아도 쏟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은 떠나갈 이들입니다. 반면 남편은 평생 함께 있을 동반자입니다.
남편들에게 다시 부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들에게 가정에서의 영적인 리더십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내에게 말 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결혼하는 신랑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신랑아, 너는 태평양 바다처럼 넓어서 아내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넓은 마음으로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함께 가정에 주신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라고, 즐거워하고 즐기라고 주셨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자녀들에게도 생기가 넘칩니다. 신이 나는 것입니다. 이 가정의 달에 우리 남편들이 먼저 아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배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아내는 내가 지킨다’는 사랑의 선언을 해 보십시오. 그러한 변화를 통해 가정이 회복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역사가 성도님들의 가정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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