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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 내 길의 빛”

시편 119: 105 ~ 109

김지철 목사

2017.02.05

성경 읽기가 익숙합니까?

지난 주일 ‘교회, 말씀의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 육체의 근육을 키워야 하는 것처럼 마음과 영의 건강을 위해서는 마음과 영혼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과 영혼의 근육을 키우는 방법은 성경 읽기입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 영혼이 튼튼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고백합니다. “나도 성경을 읽고 싶습니다. 그런데 잘 읽히지가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지루해서 끝까지 못 읽겠다거나 읽다가 잠이 들어서 오히려 잠이 안 올 때 성경을 읽는다고 합니다. 즉, 읽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책처럼 여겨진다는 게 큰 이유였습니다.
또 다른 분들은 성경책이 너무 두껍다고, 언제 이 많은 분량을 다 읽어 나갈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창세기 1장을 읽고 마태복음 1장을 읽다가, 앞으로 남은 분량을 보면서 더 읽어 나갈 수가 없겠다고 단정 짓습니다. 그리곤 “마태복음 1장부터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족보 이야기가 반복되어 읽기가 힘들다.”고 변명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내용은 1분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인데 말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성경을 읽기는 읽는데 내용이 너무 낯설어 읽기가 쉽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와 시‧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니 낯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성경 읽기가 즐거우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혹시 축구를 좋아하십니까? 리오넬 메시라는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가 있습니다. 서른 살 된 축구 선수로 170cm의 비교적 작은 체구의 공격수입니다. 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포르투갈 선수가 있는데, 서른두 살로 185cm의 장신 공격수입니다. 이 두 선수가 경기장에 등장하면 웬만한 축구 팬들이 다 열광합니다. 그들이 골 넣는 장면을 포착하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집중할 수 있습니까?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골 넣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저렇게 멋진 골을 넣는구나!’ 하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나 농구,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경기거나 탁월한 선수가 있다면, 직접 가서 경기를 관람하고 TV로 시청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또한 나와 관련이 있다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국가 대항으로 축구 경기를 하면 경기장이 가득 메워지지 않습니까? 국민 전체가 흥분하며 경기를 관람합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관심을 가집니다. 일본을 이기는 우리나라 경기를 보고 싶어서, 그 승리에 도취되고 싶어서 열광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축구 선수를 잘 알지 못해도, 그 안에 우리나라라는 자부심이 있고 한 운명 공동체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처럼 나와 관련이 있거나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우리의 관심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성경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시각에서 성경을 생각해 본다면 어떻습니까? 성경을 즐겁게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 안에서 뛰어나고 탁월한 인물들을 발견합니다. 본받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이 그 안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을 배우고, 모세를 통해 민족을 향한 애정을, 다윗을 통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배웁니다. 신약으로 넘어와서 베드로를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신 인물이 된 비결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바울을 통해서는 사변에만 멈춰 선 지식인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하나님께 사용되었는지를 봅니다.
이러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성경을 통해 알게 되는 진리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최고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구보다 매력적이신 분, 지혜와 총명이 가득하신 분, 어떤 인간과도 비교할 수 없고 사랑이 넘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의 삶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아무리 훌륭한 진리와 부귀가 있다 해도 그것이 신앙에 위배된다면, 나는 그리스도 편에 설 것이다.”
여러분, 이 세상 누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라고 말씀했습니까? 예수님 외에 자유와 평안, 기쁨과 지혜가 충만한 분을 세상 어디에서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성경 속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성경은 읽고 또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세계 역사 가운데서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성경입니다. 바로 이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성경을 펴서 읽어야 합니다.
더욱이 이 성경은 나 자신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구약이란 옛날 약속이며, 신약은 새로운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말합니다. “얘야, 내일 아빠가 쉬는 날인데 네가 갖고 싶어 하는 레고 장난감 사줄게. 같이 사러 가자.” 그러면 아들은 그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레고 장난감을 갖고 노는 상상을 합니다. 이미 레고 장난감이 자기에게 주어진 것처럼 신이 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되새기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나를 위한 책이요, 나를 위한 말씀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배가 불러 있을 때는 더더욱 실감이 안 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고플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아플 때, 고통당할 때, 즉 내 실존이 위기에 빠지게 되면 성경을 찾게 됩니다.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인간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고심하면서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번에도 도스토옙스키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4년 내내 성경은 나의 베개 밑에 놓여 있었다. 혼자 성경을 읽을 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 주던 때도 있었다. 아아, 이 얼마나 위대한 책이며 이 얼마나 위대한 교훈인가! 이 성서란 얼마나 고마운 책이며 위대한 기적인가! 그리고 이 책은 인간에게 얼마나 큰 힘을 부여해 주는가!”
오늘 말씀에서도 시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107절 말씀입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편 119:107)

내 실존이 흔들릴 때, 고통과 고난의 자리에 들어설 때, 인생의 무의미성에 괴로워하며 전율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열등감과 자기 연민 속에서 힘들어할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내 말씀이 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산주의자들이 왜 그렇게 성경 읽기를 금했을까요? 북한의 주체사상을 외치는 권력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지 못하게 핍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수령 없이도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모든 인간 제도와 인물을 비판하는 기준과 척도가 되는 까닭입니다. ‘내가 최고의 인물이요, 공산주의가 최고의 사상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를 깨뜨릴 수 있는 힘이 바로 성경에 있기 때문에 성경 읽기를 금지한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새롭게 하고, 내 삶을 이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그것이 내 삶을 이끌어 갑니다. 뛰어난 과학자들과 섬세한 문학가,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탁월함이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서 발견됩니다. 생각하는 마음 말입니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과 사람을 분석합니다. 열린 눈으로 모든 것을 꿰뚫습니다. 트인 귀로 경청합니다. 마음의 감각으로 느끼며 가슴으로 수용하는 능력도 얻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 세상에 널려진 객관적인 것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보다 지혜롭고 개방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때문에 성경 읽기는 우리 삶과 신앙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성경 속 내용이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게 주어진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성경이 우리 속에 들어와 역사합니다. 특별히 성경은 세 가지 기능을 하며 우리 삶을 이끕니다.
첫째는 ‘거울’입니다. 성경은 거울입니다. 성경을 통해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 속에 나의 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속에 내 믿음도 있습니다. 야곱의 간사함 속에 내 간사함이 있습니다. 모세의 민족을 향한 헌신 속에 나라를 향한 나의 헌신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평범한 모습 속에 나의 평범함이 있고, 바울의 열정 속에 나의 열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회개도 하게 됩니다. 동시에 성경을 읽으면서 소망을 품게 되고 기도도 하게 됩니다. ‘나’라는 좁은 자아를 벗어나 ‘하나님의 세계’ 속에 나를 집어넣게 됩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은 ‘렌즈’ 또는 ‘창문’과 같습니다. 어떤 렌즈를 끼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이지 않습니까? 오목 렌즈 혹은 볼록 렌즈인지에 따라서도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처럼 성경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사물과 사건도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세계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렌즈가 되고 창이 되는 것, 그래서 성경적인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빛’, ‘등불’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웃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능력과 힘이 성경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므로, 그것이 내 속에서 등불이 되고 빛의 역사를 일으켜 준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중 105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주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며 내 길에 빛입니다. 그냥 등불이 아니라 나의 등불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비춰주는 나의 등불입니다. 또, 그냥 길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을 비춰주는 빛입니다. 성경은 그저 객관적인 책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만의 책이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는 나의 책이요, 나의 길이요, 나의 생명이 되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나의 책이 될 때, 성경 말씀이 내 삶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습도 보고, 아브라함의 모습도 보고, 모세와 베드로가 있었던 현장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도 경험합니다. 그렇게 내 삶이 변화되고, 나를 통해 내 주변과 이웃이, 나아가 우리를 통해 세계가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얼마나 읽어 보셨습니까? 또, 성경을 어떻게 읽어 나가야 되겠습니까? 오늘 이 성경 읽기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순서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구약은 창세기부터, 신약은 마태복음부터 읽어 나가는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 저희 교회에서 준비한 것이 있는데, ‘맥체인 성경 읽기 표’입니다. 19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목회를 하셨던 로버트 맥체인 목사님이 성도들의 성경 읽기를 돕기 위해 만든 성경 읽기 표입니다. 이 표대로 하루에 넉 장씩 읽으면 됩니다. 이대로 읽으면, 1년 동안 구약은 한 번, 신약과 시편은 두 번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이 2월 5일이니까 오늘 날짜에 적혀 있는 창세기 38장, 마가복음 8장, 욥기 4장, 로마서 8장을 읽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해진 분량을 읽다가 조금 더 말씀을 읽고 싶다면, 그전에 읽지 못한 1월 1일부터 2월 4일까지의 말씀을 읽으면 됩니다. 읽은 구절을 표시하고 매일매일 분량을 채우다 보면, 1년 후 구약 1독, 신약 2독을 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부터 읽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성경을 가장 좋아합니까?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중 가장 좋아하시는 책이 어떤 책입니까? 만약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의 역사를 좋아한다면, 출애굽기를 읽으면 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법이 궁금하다면 레위기를 읽으면 됩니다. 다윗이란 인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사무엘상‧하를, 기도와 찬양에 관심이 있다면 시편을, 인생의 지혜를 얻고 싶다면 잠언을 읽으면 좋습니다. 또, 인생이 왜 이렇게 무의미한지 혹은 인생에 왜 이렇게 고난이 많은지 궁금하다면 전도서와 욥기를 읽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예언서를 읽으면서는 시대를 바라보는 눈과 비판적 사고도 키울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삶을 조명하는 책 중에 가장 짧은 책이 마가복음입니다. 장수로 가장 긴 책은 마태복음이며,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책은 누가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은 요한복음입니다. 초대교회의 수난과 영광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사도행전을, 로마 세계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로마서와 바울 서신서를, 위기 속에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히브리서를, 인생의 종말이 궁금하다면 요한계시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선택해 성경을 읽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꼭 창세기부터, 마태복음부터 읽지 않아도 됩니다. 짧은 것부터 읽고 싶다면 빌레몬서부터 읽어도 됩니다. 그렇게 한 책을 읽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다음 책을 읽어 나가면 됩니다.
세 번째 방법은 ‘주제별 성경 읽기’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기쁨, 위로, 평안 등의 주제를 세우고, 이에 맞게 성경 말씀을 선별해 읽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다른 서적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또한 매우 유익한 성경 읽기 방법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방법은 ‘소망말씀나눔을 통한 성경 읽기’입니다. 매월 우리 교회에서 발간하는 소망말씀나눔을 통해 성경을 읽어 나갈 수 있습니다. 매 주 구약과 신약을 교체해 가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새벽기도회에 나와 말씀을 읽을 수도 있고, 인터넷 영상 예배를 통해 말씀을 함께 묵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하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말씀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됩시다.

제가 언젠가 어머니들께 가족 카톡 방을 만들 것을 권유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 중 한두 구절을 카톡 방에 적고 가족들을 축복하자고 했습니다. 저희 집에도 가족 카톡 방이 있는데, 제 아내가 열심히 말씀과 안부 등을 올립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대답을 안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 제가 가끔 경고를 합니다. “응답하라.” 그러면 자녀들이 한마디씩 응답을 올립니다. 그게 가족의 기쁨이 됩니다. 또, 가족이 소통하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축복을 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시편의 기자처럼 ‘주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삼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도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연애할 때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여러 번 읽지 않습니까? 군대에서 온 아들의 편지도 두고두고 여러 차례 읽어 보질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이가 보내온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역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면서 성경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어떤 형식이나 방법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거기서부터 신앙이 싹트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시인의 고백을 우리도 한번 따라해 봅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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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 105 ~ 109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성경 읽기가 익숙합니까?

지난 주일 ‘교회, 말씀의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 육체의 근육을 키워야 하는 것처럼 마음과 영의 건강을 위해서는 마음과 영혼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과 영혼의 근육을 키우는 방법은 성경 읽기입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 영혼이 튼튼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고백합니다. “나도 성경을 읽고 싶습니다. 그런데 잘 읽히지가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지루해서 끝까지 못 읽겠다거나 읽다가 잠이 들어서 오히려 잠이 안 올 때 성경을 읽는다고 합니다. 즉, 읽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책처럼 여겨진다는 게 큰 이유였습니다.
또 다른 분들은 성경책이 너무 두껍다고, 언제 이 많은 분량을 다 읽어 나갈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창세기 1장을 읽고 마태복음 1장을 읽다가, 앞으로 남은 분량을 보면서 더 읽어 나갈 수가 없겠다고 단정 짓습니다. 그리곤 “마태복음 1장부터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족보 이야기가 반복되어 읽기가 힘들다.”고 변명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내용은 1분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인데 말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성경을 읽기는 읽는데 내용이 너무 낯설어 읽기가 쉽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와 시‧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니 낯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성경 읽기가 즐거우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혹시 축구를 좋아하십니까? 리오넬 메시라는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가 있습니다. 서른 살 된 축구 선수로 170cm의 비교적 작은 체구의 공격수입니다. 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포르투갈 선수가 있는데, 서른두 살로 185cm의 장신 공격수입니다. 이 두 선수가 경기장에 등장하면 웬만한 축구 팬들이 다 열광합니다. 그들이 골 넣는 장면을 포착하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집중할 수 있습니까?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골 넣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저렇게 멋진 골을 넣는구나!’ 하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나 농구,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경기거나 탁월한 선수가 있다면, 직접 가서 경기를 관람하고 TV로 시청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또한 나와 관련이 있다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국가 대항으로 축구 경기를 하면 경기장이 가득 메워지지 않습니까? 국민 전체가 흥분하며 경기를 관람합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관심을 가집니다. 일본을 이기는 우리나라 경기를 보고 싶어서, 그 승리에 도취되고 싶어서 열광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축구 선수를 잘 알지 못해도, 그 안에 우리나라라는 자부심이 있고 한 운명 공동체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처럼 나와 관련이 있거나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우리의 관심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성경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시각에서 성경을 생각해 본다면 어떻습니까? 성경을 즐겁게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 안에서 뛰어나고 탁월한 인물들을 발견합니다. 본받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이 그 안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을 배우고, 모세를 통해 민족을 향한 애정을, 다윗을 통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배웁니다. 신약으로 넘어와서 베드로를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신 인물이 된 비결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바울을 통해서는 사변에만 멈춰 선 지식인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하나님께 사용되었는지를 봅니다.
이러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성경을 통해 알게 되는 진리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최고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구보다 매력적이신 분, 지혜와 총명이 가득하신 분, 어떤 인간과도 비교할 수 없고 사랑이 넘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의 삶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아무리 훌륭한 진리와 부귀가 있다 해도 그것이 신앙에 위배된다면, 나는 그리스도 편에 설 것이다.”
여러분, 이 세상 누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라고 말씀했습니까? 예수님 외에 자유와 평안, 기쁨과 지혜가 충만한 분을 세상 어디에서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성경 속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성경은 읽고 또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세계 역사 가운데서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성경입니다. 바로 이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성경을 펴서 읽어야 합니다.
더욱이 이 성경은 나 자신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구약이란 옛날 약속이며, 신약은 새로운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말합니다. “얘야, 내일 아빠가 쉬는 날인데 네가 갖고 싶어 하는 레고 장난감 사줄게. 같이 사러 가자.” 그러면 아들은 그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레고 장난감을 갖고 노는 상상을 합니다. 이미 레고 장난감이 자기에게 주어진 것처럼 신이 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되새기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나를 위한 책이요, 나를 위한 말씀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배가 불러 있을 때는 더더욱 실감이 안 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고플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아플 때, 고통당할 때, 즉 내 실존이 위기에 빠지게 되면 성경을 찾게 됩니다.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인간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고심하면서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번에도 도스토옙스키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4년 내내 성경은 나의 베개 밑에 놓여 있었다. 혼자 성경을 읽을 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 주던 때도 있었다. 아아, 이 얼마나 위대한 책이며 이 얼마나 위대한 교훈인가! 이 성서란 얼마나 고마운 책이며 위대한 기적인가! 그리고 이 책은 인간에게 얼마나 큰 힘을 부여해 주는가!”
오늘 말씀에서도 시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107절 말씀입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편 119:107)

내 실존이 흔들릴 때, 고통과 고난의 자리에 들어설 때, 인생의 무의미성에 괴로워하며 전율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열등감과 자기 연민 속에서 힘들어할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내 말씀이 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산주의자들이 왜 그렇게 성경 읽기를 금했을까요? 북한의 주체사상을 외치는 권력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지 못하게 핍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수령 없이도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모든 인간 제도와 인물을 비판하는 기준과 척도가 되는 까닭입니다. ‘내가 최고의 인물이요, 공산주의가 최고의 사상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를 깨뜨릴 수 있는 힘이 바로 성경에 있기 때문에 성경 읽기를 금지한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새롭게 하고, 내 삶을 이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그것이 내 삶을 이끌어 갑니다. 뛰어난 과학자들과 섬세한 문학가,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탁월함이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서 발견됩니다. 생각하는 마음 말입니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과 사람을 분석합니다. 열린 눈으로 모든 것을 꿰뚫습니다. 트인 귀로 경청합니다. 마음의 감각으로 느끼며 가슴으로 수용하는 능력도 얻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 세상에 널려진 객관적인 것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보다 지혜롭고 개방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때문에 성경 읽기는 우리 삶과 신앙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성경 속 내용이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게 주어진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성경이 우리 속에 들어와 역사합니다. 특별히 성경은 세 가지 기능을 하며 우리 삶을 이끕니다.
첫째는 ‘거울’입니다. 성경은 거울입니다. 성경을 통해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 속에 나의 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속에 내 믿음도 있습니다. 야곱의 간사함 속에 내 간사함이 있습니다. 모세의 민족을 향한 헌신 속에 나라를 향한 나의 헌신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평범한 모습 속에 나의 평범함이 있고, 바울의 열정 속에 나의 열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회개도 하게 됩니다. 동시에 성경을 읽으면서 소망을 품게 되고 기도도 하게 됩니다. ‘나’라는 좁은 자아를 벗어나 ‘하나님의 세계’ 속에 나를 집어넣게 됩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은 ‘렌즈’ 또는 ‘창문’과 같습니다. 어떤 렌즈를 끼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이지 않습니까? 오목 렌즈 혹은 볼록 렌즈인지에 따라서도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처럼 성경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사물과 사건도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세계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렌즈가 되고 창이 되는 것, 그래서 성경적인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빛’, ‘등불’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웃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능력과 힘이 성경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므로, 그것이 내 속에서 등불이 되고 빛의 역사를 일으켜 준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중 105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주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며 내 길에 빛입니다. 그냥 등불이 아니라 나의 등불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비춰주는 나의 등불입니다. 또, 그냥 길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을 비춰주는 빛입니다. 성경은 그저 객관적인 책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만의 책이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는 나의 책이요, 나의 길이요, 나의 생명이 되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나의 책이 될 때, 성경 말씀이 내 삶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습도 보고, 아브라함의 모습도 보고, 모세와 베드로가 있었던 현장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도 경험합니다. 그렇게 내 삶이 변화되고, 나를 통해 내 주변과 이웃이, 나아가 우리를 통해 세계가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얼마나 읽어 보셨습니까? 또, 성경을 어떻게 읽어 나가야 되겠습니까? 오늘 이 성경 읽기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순서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구약은 창세기부터, 신약은 마태복음부터 읽어 나가는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 저희 교회에서 준비한 것이 있는데, ‘맥체인 성경 읽기 표’입니다. 19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목회를 하셨던 로버트 맥체인 목사님이 성도들의 성경 읽기를 돕기 위해 만든 성경 읽기 표입니다. 이 표대로 하루에 넉 장씩 읽으면 됩니다. 이대로 읽으면, 1년 동안 구약은 한 번, 신약과 시편은 두 번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이 2월 5일이니까 오늘 날짜에 적혀 있는 창세기 38장, 마가복음 8장, 욥기 4장, 로마서 8장을 읽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해진 분량을 읽다가 조금 더 말씀을 읽고 싶다면, 그전에 읽지 못한 1월 1일부터 2월 4일까지의 말씀을 읽으면 됩니다. 읽은 구절을 표시하고 매일매일 분량을 채우다 보면, 1년 후 구약 1독, 신약 2독을 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부터 읽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성경을 가장 좋아합니까?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중 가장 좋아하시는 책이 어떤 책입니까? 만약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의 역사를 좋아한다면, 출애굽기를 읽으면 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법이 궁금하다면 레위기를 읽으면 됩니다. 다윗이란 인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사무엘상‧하를, 기도와 찬양에 관심이 있다면 시편을, 인생의 지혜를 얻고 싶다면 잠언을 읽으면 좋습니다. 또, 인생이 왜 이렇게 무의미한지 혹은 인생에 왜 이렇게 고난이 많은지 궁금하다면 전도서와 욥기를 읽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예언서를 읽으면서는 시대를 바라보는 눈과 비판적 사고도 키울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삶을 조명하는 책 중에 가장 짧은 책이 마가복음입니다. 장수로 가장 긴 책은 마태복음이며,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책은 누가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은 요한복음입니다. 초대교회의 수난과 영광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사도행전을, 로마 세계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로마서와 바울 서신서를, 위기 속에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히브리서를, 인생의 종말이 궁금하다면 요한계시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선택해 성경을 읽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꼭 창세기부터, 마태복음부터 읽지 않아도 됩니다. 짧은 것부터 읽고 싶다면 빌레몬서부터 읽어도 됩니다. 그렇게 한 책을 읽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다음 책을 읽어 나가면 됩니다.
세 번째 방법은 ‘주제별 성경 읽기’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기쁨, 위로, 평안 등의 주제를 세우고, 이에 맞게 성경 말씀을 선별해 읽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다른 서적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또한 매우 유익한 성경 읽기 방법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방법은 ‘소망말씀나눔을 통한 성경 읽기’입니다. 매월 우리 교회에서 발간하는 소망말씀나눔을 통해 성경을 읽어 나갈 수 있습니다. 매 주 구약과 신약을 교체해 가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새벽기도회에 나와 말씀을 읽을 수도 있고, 인터넷 영상 예배를 통해 말씀을 함께 묵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하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말씀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됩시다.

제가 언젠가 어머니들께 가족 카톡 방을 만들 것을 권유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 중 한두 구절을 카톡 방에 적고 가족들을 축복하자고 했습니다. 저희 집에도 가족 카톡 방이 있는데, 제 아내가 열심히 말씀과 안부 등을 올립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대답을 안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 제가 가끔 경고를 합니다. “응답하라.” 그러면 자녀들이 한마디씩 응답을 올립니다. 그게 가족의 기쁨이 됩니다. 또, 가족이 소통하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축복을 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시편의 기자처럼 ‘주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삼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도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연애할 때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여러 번 읽지 않습니까? 군대에서 온 아들의 편지도 두고두고 여러 차례 읽어 보질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이가 보내온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역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면서 성경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어떤 형식이나 방법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거기서부터 신앙이 싹트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시인의 고백을 우리도 한번 따라해 봅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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