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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고뇌

민수기 14: 1 ~ 10

김지철 목사

2007.08.12

지도자가 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민족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은 자기의 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이름은 가장 천하게 여기는 백정의 백자와 평범한 사람이란 범을 합친 것으로 가장 낮은 사람을 뜻하네.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든 사람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못난 나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백범이라 이름 지었네.”
백범을 우리 민족의 지도자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백성의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삼았고, 백성의 번영을 자신의 번영처럼 기뻐했던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1948년 2월, 분단된 조국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3천만 동포에게 눈물로 고함”이라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선언했습니다. 그중에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의 헐벗고 굶주린 동포들의 원망스러운 용모가 눈앞에 어릿거린다. 붓이 여기에 이르매 가슴이 막히고,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잇지 못하겠노라.”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힘들고 괴로우며 안타까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결혼해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직장과 공동체의 장이 된다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민족과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가슴으로 껴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삶의 헌신과 생명의 드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품었던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사람이었던 모세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기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가나안까지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그는 거절했습니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안가겠다고 버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나셔서 진노하시는 장면이 성경에 나타납니다.
모세는 왜 그토록 지도자 되기를 거절했을까요? 그는 백성들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를 향해 열열이 환호하던 이들이 등을 돌려 비난하고 적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길을 가기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을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리저리 변하는 백성들보다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비전이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과 약속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영광된 축복의 역사를 허락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꿈을 품으면서 그는 지도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영광과 축복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애굽 땅에서 가나안까지 그냥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시나이 반도의 황량한 광야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꿈과 약속을 이루기 위한 성취의 대가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고난과 헌신도 필요하고, 생명도 바치는 아픔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에서 지도자는 꿈과 비전을 보았지만, 백성들은 꿈과 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미래에 약속된 것을 향해 나가지만 백성들은 현실의 괴로움 때문에 탄식하고 슬퍼하며 주저앉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이 도약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삶을 마칠 수밖에 없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정적인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품은 비전에 대한 의견이 확연하게 두 가지로 갈렸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다는 말을 선포하면서 12지파 중 지도자 한명씩 뽑아서 가나안으로 보내어 정탐하고 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각 지파의 지도자 12명이 약 40일 동안 가나안에 가서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과 온 백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보고대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가지 의견이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하나는 10명의 지도자의 의견이었고, 하나는 2명 지도자의 의견이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이었고, 하나는 긍정적이었습니다. 10명의 지도자들은 보고 온 땅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우리는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칠 수 없으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고,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라.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와 같은 존재이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 거대한 백성을 우리는 쳐들어 갈수가 없느니라.”
그때 두 명의 지도자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12지파가 돌아와 서로 상반된 두 가지 보고를 했을 때 백성들은 어느 보고에 반응했을까요? 그들은 부정적이며 비관적인 보고에 더 귀를 열고 받아 들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부정적인 말이 더 영향을 줍니다. 부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말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비율은 여기 나타난 비율과 같습니다. 부정적인 말이 5배 이상의 힘을 갖고 우리를 뒤흔듭니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말은 기껏해야 하나 정도의 힘과 영향력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적인 말, 비난하는 말, 잘못된 말에 대해서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긍정적이며 비전과 미래를 향한 말에 대해서는 귀를 닫아놓은 경향이 있습니다.
정치가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비전과 미래를 말하고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이야기하면서 부정적인 전략을 취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것이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쳐 자기가 돋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부정적인 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를 향해서 긍정하고 자기의 삶을 바꾸려면 다른 때 보다 5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신앙도 비슷합니다. 부정적인 생각, 불신앙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으로 성경을 읽으면 쉽게 들어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으려면 잘 안 들어오기에 5배 이상 약속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세운 지도자임을 거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관적인 태도는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경험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 대한 반역은 거칠고 무시무시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운 지도자임을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고 집행하는 지도자임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세에 대한 반역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정탐꾼 10명 지도자들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토해냈던 것은 불평과 불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슬피 울면서 모세와 아론 때문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원망하며 탄식했습니다.
이스라엘의 10명의 지도자들과 이에 동요했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재이기에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자유와 해방을 향해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습니다. 신앙을 가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부심이 사라지면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 삶 전체를 뒤흔듭니다. 이들은 너무 오랫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에 익숙해 있어서 진정한 자발성이 없는 종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꿈과 비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기 자리를 보전하며 지금 있는 곳에서 만족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현실 안주적인 사고에 붙잡혀있었습니다. 익숙한 사고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 때 그들의 사고는 과거 지향적이 되고, 미래에 대한 도전의식이 결여되었습니다.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했기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루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애굽 땅에서 죽는 게 낫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는 말을 할 때 조금만 힘들면 ‘죽으면 좋겠다’, ‘피곤해 죽겠다’, ‘괴로워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 “죽겠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비신앙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가능성을 다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피곤하면 ‘피곤해 죽겠다’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피곤하다고 하세요. 괴로우면 ‘괴로워 죽겠다’ 고 말하지 말고 그냥 괴롭다고 하세요. 배고프면 ‘배고파 죽겠다’고 말하지 말고 그냥 배고프다고 하세요. 우리가 갖고 있는 죽음 대한 생각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모든 사고에 영향을 미쳐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우리를 부정적으로 만듭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없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노가미 히로유키라는 사람이 “미래를 바꾸는 습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에 무언가를 성취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감에 제로가 되고, 큰 잘못이나 실패를 했다면 그것은 반성의 자료가 된다. 좋아도 나빠도 과거는 학습의 재료이며 그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단순하게 질질 끌기만 하는 과거라면 깨끗하게 내버리라. 미래를 사는데 과거가 어떠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래를 살 때 과거의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재료로 과거가 존재할 뿐이다. 만일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과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당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 과거가 어떠했든 당신은 과거를 토대로 하여 미래를 얼마든지 다시 창조할 수 있다.”
우리가 과거에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면 자존감을 키워서 더 큰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혹 과거에 실패하고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면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과거에 집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과거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배주의적인 발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되면 패배주의적인 발상을 하게 되어 더 이상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체념 상태에 빠져들어 더 이상 인생에 가망성이 없는 끝이라고 말합니다.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세계 제 2차 대전의 위기를 겪으면서 히틀러의 위협으로 영국 국민들이 치욕적인 패배의 위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존재의 위협 속에서 수치심을 느끼며 독일에게 패망한다고 절망감을 느끼고 있을 때, 처칠은 어떻게 하면 영국 백성들의 패배주의를 극복해 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들에게 영웅심을 불러 일으켜주며 1940년 6월 4일 하원 연설에서 이렇게 연설합니다. “우리는 포기하지도 좌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진격하여 프랑스 전선에서 싸울 것입니다. 바다와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충천하는 사기와 영양으로 공중전을 펼칠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조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도 싸우고, 상륙지점에서도 싸울 것이며 들판에서, 시가지에서,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굴의 용기만이 우리의 유일한 방패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단결해야 합니다.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인들은 이런 처칠의 연설을 들으면서 그들이 갖고 있었던 패배주의적 사고를 극복합니다. 그들은 처칠을 믿었고 그의 말대로 역사가 진행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이 연합군과 합하여 승리했고 독일이 패망했습니다.

지도자 모세에게도 격려가 필요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국가의 단위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도 이런 위기가 다가옵니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이제 다 망했구나’, ‘모든 가능성은 다 끝났다’라는 고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의 도전하는 말, 사랑으로 격려하는 말이 필요합니다.
이명박 장로님이 쓴 “어머니”라는 책에서 그는 새벽마다 기도하셨던 어머니의 신앙심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6.3 사태 때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찾아 오셔서 말씀하셨던 질문이 자기인생 전체를 변화시키고 용기를 주는 충격적인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공부는 하느냐? 기도는 하느냐? 성경은 읽느냐?” 이 세 가지 질문을 하시면서 “나는 너를 믿는다. 네 소신대로 행하거라.”는 말씀을 듣고 다시 용기를 내어 기도하며 말씀을 보고 공부할 마음을 가지게 되어 그의 인생이 변화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삶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가 갈 수 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저 땅을 우리의 것으로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지도자의 고뇌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것 때문에 깊이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사실 모세도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돌을 들어 모세를 향해 던지려고 했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가 갖고 있던 고뇌를 기도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고뇌하며 기도하는 지도자가 있을 때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지도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고뇌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 고뇌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처럼 여호와께서 기뻐하시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됩니다. 광복 62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런 지도자를 기대해 봅니다.

고뇌할줄 알되, 고뇌를 넘어서 기도할줄 아는 지도자!
위기에 봉착할 때 담대함으로 극복할 수 있는 지도자!
가난의 아픔을 취득했으면서도 풍요의 축복을 감사할줄 아는 지도자!
슬픔과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조국의 비전을 제시할줄 아는 지도자!
민족 분단의 상처를 가슴으로 느끼면서도 민족의 자주 민주 평화통일의 미래를 가꿔나가기를 원하는 지도자!
가진 것에 대한 효과적인 나눔의 원리를 알면서도 창조적인 생산성과 시장경제의 가치를 아는 지도자!
국민을 위해 사랑으로 섬길 줄 알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할줄 아는 지도자!
갈라지고 부서진 국민의 갈등과 분열을 통합하고 그것을 하나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도자!
지구촌의 평화를 향한 문화를 창출해나가는 지도자!

지도자가 고뇌하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지도자가 고뇌하며 기도하기 시작하면 축복의 길이 열립니다. 어떤 유능한 지도자가 나오는 것도 우리의 기도와 기대의 제목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세상의 지도자로 세움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민족의 힘들고 어려운 역사를 다시 복된 역사로, 북녘의 고통 받는 역사가 복음과 사랑의 역사로 회복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부정적이고 비관적이 되어 인생을 어떻게 살지 알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기에 감히 앞으로 나갑니다. 문제를 알면서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역사로 바꾸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이 시대의 하나님이 쓰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시고, 예수 믿는 이들이 이 시대의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믿음의 지도자인 것을 알고 순종하며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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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 1 ~ 10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지도자가 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민족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은 자기의 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이름은 가장 천하게 여기는 백정의 백자와 평범한 사람이란 범을 합친 것으로 가장 낮은 사람을 뜻하네.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든 사람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못난 나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백범이라 이름 지었네.”
백범을 우리 민족의 지도자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백성의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삼았고, 백성의 번영을 자신의 번영처럼 기뻐했던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1948년 2월, 분단된 조국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3천만 동포에게 눈물로 고함”이라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선언했습니다. 그중에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의 헐벗고 굶주린 동포들의 원망스러운 용모가 눈앞에 어릿거린다. 붓이 여기에 이르매 가슴이 막히고,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잇지 못하겠노라.”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힘들고 괴로우며 안타까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결혼해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직장과 공동체의 장이 된다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민족과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가슴으로 껴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삶의 헌신과 생명의 드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품었던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사람이었던 모세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기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가나안까지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그는 거절했습니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안가겠다고 버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나셔서 진노하시는 장면이 성경에 나타납니다.
모세는 왜 그토록 지도자 되기를 거절했을까요? 그는 백성들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를 향해 열열이 환호하던 이들이 등을 돌려 비난하고 적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길을 가기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을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리저리 변하는 백성들보다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비전이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과 약속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영광된 축복의 역사를 허락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꿈을 품으면서 그는 지도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영광과 축복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애굽 땅에서 가나안까지 그냥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시나이 반도의 황량한 광야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꿈과 약속을 이루기 위한 성취의 대가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고난과 헌신도 필요하고, 생명도 바치는 아픔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에서 지도자는 꿈과 비전을 보았지만, 백성들은 꿈과 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미래에 약속된 것을 향해 나가지만 백성들은 현실의 괴로움 때문에 탄식하고 슬퍼하며 주저앉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이 도약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삶을 마칠 수밖에 없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정적인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품은 비전에 대한 의견이 확연하게 두 가지로 갈렸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다는 말을 선포하면서 12지파 중 지도자 한명씩 뽑아서 가나안으로 보내어 정탐하고 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각 지파의 지도자 12명이 약 40일 동안 가나안에 가서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과 온 백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보고대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가지 의견이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하나는 10명의 지도자의 의견이었고, 하나는 2명 지도자의 의견이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이었고, 하나는 긍정적이었습니다. 10명의 지도자들은 보고 온 땅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우리는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칠 수 없으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고,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라.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와 같은 존재이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 거대한 백성을 우리는 쳐들어 갈수가 없느니라.”
그때 두 명의 지도자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12지파가 돌아와 서로 상반된 두 가지 보고를 했을 때 백성들은 어느 보고에 반응했을까요? 그들은 부정적이며 비관적인 보고에 더 귀를 열고 받아 들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부정적인 말이 더 영향을 줍니다. 부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말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비율은 여기 나타난 비율과 같습니다. 부정적인 말이 5배 이상의 힘을 갖고 우리를 뒤흔듭니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말은 기껏해야 하나 정도의 힘과 영향력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적인 말, 비난하는 말, 잘못된 말에 대해서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긍정적이며 비전과 미래를 향한 말에 대해서는 귀를 닫아놓은 경향이 있습니다.
정치가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비전과 미래를 말하고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이야기하면서 부정적인 전략을 취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것이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쳐 자기가 돋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부정적인 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를 향해서 긍정하고 자기의 삶을 바꾸려면 다른 때 보다 5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신앙도 비슷합니다. 부정적인 생각, 불신앙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으로 성경을 읽으면 쉽게 들어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으려면 잘 안 들어오기에 5배 이상 약속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세운 지도자임을 거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관적인 태도는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경험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 대한 반역은 거칠고 무시무시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운 지도자임을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고 집행하는 지도자임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세에 대한 반역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정탐꾼 10명 지도자들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토해냈던 것은 불평과 불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슬피 울면서 모세와 아론 때문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원망하며 탄식했습니다.
이스라엘의 10명의 지도자들과 이에 동요했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재이기에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자유와 해방을 향해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습니다. 신앙을 가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부심이 사라지면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 삶 전체를 뒤흔듭니다. 이들은 너무 오랫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에 익숙해 있어서 진정한 자발성이 없는 종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꿈과 비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기 자리를 보전하며 지금 있는 곳에서 만족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현실 안주적인 사고에 붙잡혀있었습니다. 익숙한 사고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 때 그들의 사고는 과거 지향적이 되고, 미래에 대한 도전의식이 결여되었습니다.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했기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루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애굽 땅에서 죽는 게 낫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는 말을 할 때 조금만 힘들면 ‘죽으면 좋겠다’, ‘피곤해 죽겠다’, ‘괴로워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 “죽겠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비신앙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가능성을 다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피곤하면 ‘피곤해 죽겠다’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피곤하다고 하세요. 괴로우면 ‘괴로워 죽겠다’ 고 말하지 말고 그냥 괴롭다고 하세요. 배고프면 ‘배고파 죽겠다’고 말하지 말고 그냥 배고프다고 하세요. 우리가 갖고 있는 죽음 대한 생각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모든 사고에 영향을 미쳐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우리를 부정적으로 만듭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없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노가미 히로유키라는 사람이 “미래를 바꾸는 습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에 무언가를 성취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감에 제로가 되고, 큰 잘못이나 실패를 했다면 그것은 반성의 자료가 된다. 좋아도 나빠도 과거는 학습의 재료이며 그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단순하게 질질 끌기만 하는 과거라면 깨끗하게 내버리라. 미래를 사는데 과거가 어떠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래를 살 때 과거의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재료로 과거가 존재할 뿐이다. 만일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과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당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 과거가 어떠했든 당신은 과거를 토대로 하여 미래를 얼마든지 다시 창조할 수 있다.”
우리가 과거에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면 자존감을 키워서 더 큰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혹 과거에 실패하고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면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과거에 집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과거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배주의적인 발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되면 패배주의적인 발상을 하게 되어 더 이상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체념 상태에 빠져들어 더 이상 인생에 가망성이 없는 끝이라고 말합니다.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세계 제 2차 대전의 위기를 겪으면서 히틀러의 위협으로 영국 국민들이 치욕적인 패배의 위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존재의 위협 속에서 수치심을 느끼며 독일에게 패망한다고 절망감을 느끼고 있을 때, 처칠은 어떻게 하면 영국 백성들의 패배주의를 극복해 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들에게 영웅심을 불러 일으켜주며 1940년 6월 4일 하원 연설에서 이렇게 연설합니다. “우리는 포기하지도 좌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진격하여 프랑스 전선에서 싸울 것입니다. 바다와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충천하는 사기와 영양으로 공중전을 펼칠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조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도 싸우고, 상륙지점에서도 싸울 것이며 들판에서, 시가지에서,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굴의 용기만이 우리의 유일한 방패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단결해야 합니다.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인들은 이런 처칠의 연설을 들으면서 그들이 갖고 있었던 패배주의적 사고를 극복합니다. 그들은 처칠을 믿었고 그의 말대로 역사가 진행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이 연합군과 합하여 승리했고 독일이 패망했습니다.

지도자 모세에게도 격려가 필요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국가의 단위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도 이런 위기가 다가옵니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이제 다 망했구나’, ‘모든 가능성은 다 끝났다’라는 고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의 도전하는 말, 사랑으로 격려하는 말이 필요합니다.
이명박 장로님이 쓴 “어머니”라는 책에서 그는 새벽마다 기도하셨던 어머니의 신앙심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6.3 사태 때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찾아 오셔서 말씀하셨던 질문이 자기인생 전체를 변화시키고 용기를 주는 충격적인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공부는 하느냐? 기도는 하느냐? 성경은 읽느냐?” 이 세 가지 질문을 하시면서 “나는 너를 믿는다. 네 소신대로 행하거라.”는 말씀을 듣고 다시 용기를 내어 기도하며 말씀을 보고 공부할 마음을 가지게 되어 그의 인생이 변화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삶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가 갈 수 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저 땅을 우리의 것으로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지도자의 고뇌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것 때문에 깊이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사실 모세도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돌을 들어 모세를 향해 던지려고 했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가 갖고 있던 고뇌를 기도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고뇌하며 기도하는 지도자가 있을 때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지도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고뇌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 고뇌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처럼 여호와께서 기뻐하시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됩니다. 광복 62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런 지도자를 기대해 봅니다.

고뇌할줄 알되, 고뇌를 넘어서 기도할줄 아는 지도자!
위기에 봉착할 때 담대함으로 극복할 수 있는 지도자!
가난의 아픔을 취득했으면서도 풍요의 축복을 감사할줄 아는 지도자!
슬픔과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조국의 비전을 제시할줄 아는 지도자!
민족 분단의 상처를 가슴으로 느끼면서도 민족의 자주 민주 평화통일의 미래를 가꿔나가기를 원하는 지도자!
가진 것에 대한 효과적인 나눔의 원리를 알면서도 창조적인 생산성과 시장경제의 가치를 아는 지도자!
국민을 위해 사랑으로 섬길 줄 알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할줄 아는 지도자!
갈라지고 부서진 국민의 갈등과 분열을 통합하고 그것을 하나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도자!
지구촌의 평화를 향한 문화를 창출해나가는 지도자!

지도자가 고뇌하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지도자가 고뇌하며 기도하기 시작하면 축복의 길이 열립니다. 어떤 유능한 지도자가 나오는 것도 우리의 기도와 기대의 제목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세상의 지도자로 세움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민족의 힘들고 어려운 역사를 다시 복된 역사로, 북녘의 고통 받는 역사가 복음과 사랑의 역사로 회복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부정적이고 비관적이 되어 인생을 어떻게 살지 알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기에 감히 앞으로 나갑니다. 문제를 알면서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역사로 바꾸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이 시대의 하나님이 쓰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시고, 예수 믿는 이들이 이 시대의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믿음의 지도자인 것을 알고 순종하며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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