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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성공과 실패

민수기 20: 10 ~ 13

김지철 목사

2017.04.30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제 9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지도자의 복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어떤 지도자를 택해야 할지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4월 24일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 1,028명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발표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지도자 상은 어떤 상인가’에 대한 설문조사였는데, 그중에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질문들을 들어보시면서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시길 바랍니다.
첫째, ‘후보가 신앙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그에게 투표하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답변이 63.3% 나왔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후보를 찍는다는 건 위험한 결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한국 교회가 기독교 가치에 맞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답변이 65.6% 나왔습니다. 교회가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지지하는 순간, 교회 내부에서부터 엄청난 정치적 갈등이 생길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 이슈에 교회가 휩쓸릴 위험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셋째, ‘한국 교회가 당선자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는지 감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여기서는 ‘그렇다’는 답변이 60% 정도 나왔습니다. 교회는 늘 제3자적인 입장에서, 아니 하나님이 지켜보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지도자가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그 가운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잊지 않으며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차기 대통령이 지녀야 할 성품 중 무엇을 첫 번째로 꼽을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첫 번째 성품으로 꼽겠습니까? 1위는 44.8%를 기록한 ‘정직’이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integrity입니다. 이는 진실성, 온전성과 같은 뜻으로 통전적인 성품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22.8%를 기록한 ‘책임감’, 세 번째는 11.6%를 기록한 ‘정의감’이었습니다.
다섯째,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적 국가적인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패거리 정치와 부패가 난무한 오늘의 정치 현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패 청산과 개혁’을 1위로 꼽았습니다. 무려 40%나 기록했습니다. 두 번째는 22.9%를 기록한 ‘국민 통합과 화합’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15.6%를 기록한 ‘도덕과 윤리성의 회복’이었습니다.
아마 성도님들 가운데는 이미 어떤 후보를 선택할지 결정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은 자율적인 선택의 결정입니다. 누구도 이 자율성을 훼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어떤 특성과 성품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까지 기도하시면서 결정하시면 될 것입니다.

지도자 모세에게는 ‘비전’, ‘사람’,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모세, 그는 정말 성공한 지도자였습니다. 모세만큼 뛰어난 지도력으로 백성을 이끈 자가 역사 속에 또 어디 있을까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전혀 훈련 받지도 못 한 오합지졸과도 같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인도하고 보살폈던 지도자가 모세라고 말입니다. 고난 속에서, 인고 속에서 인내하며 백성을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입니다.
물론 지도자로서의 모세의 성공 뒤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그가 그만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으로서, 지도자로서 모세에게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지니고 있던 지도자적 특성은 말로 할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세 가지 면모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모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이 비전이 너무 부담스러워 수차례 거절했습니다. 그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탈출 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자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은 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며 더 능력 있는 자를 쓰시라고 여러 차례 거부하고 도망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설득에 설득을 이어가신 하나님께 순복해 결국 하나님의 비전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이 비전이 모세가 지도자가 되는 데 핵심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비전을 붙잡으며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 그 안에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지도자는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목표를 향해 함께 갈 수 있도록 설득할 줄 알고, 구성원들이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끄는 자가 지도자인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옆에 갔는데 에너지를 빼앗긴다면, 그 사람은 지도자로서 여김 받지 못할 것입니다. 또, 그가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 곁에는 누구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에게는 공동체가 함께 지향할 수 있는 분명한 비전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모세에게는 좋은 ‘인간관계’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과정에 좋은 동역자와 참모를 두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먼저, 아론과 훌이 있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팔이 자꾸 내려오면 이스라엘 백성이 패배 쪽으로 몰렸습니다. 이를 안 아론과 훌이 그때 모세를 도왔습니다. 반석 위에 모세를 앉히고는 옆에서 두 팔을 받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동역자 덕분에 아말렉 전투를 승리로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또,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도 훌륭한 동역자였습니다. 홍해를 건넜을 때 모세와 함께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는 찬양을 했던 인물이 바로 이 미리암입니다. 또, 모세와 마지막까지 동행했던 동지이자 제자들이 있는데, 바로 갈렙과 여호수아입니다. 그중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그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자문을 받으며 공동체 조직 관리를 했습니다. 백부장과 천부장 제도도 세웠습니다. 동역자와 참모 그룹들도 선발했습니다. 이때 모세가 중간 지도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능력’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능력이란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입니다. 둘째, 신실함, 곧 불의한 탐욕을 취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런 능력 있는 자들을 모세가 중간 지도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모든 공동체의 책임은 지도자가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동역자들과 모든 사안들을 함께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참모도 지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의견을 종합하고 함께 지혜를 모아 용기를 갖고 결단해야 합니다. 모세가 바로 이러한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던 참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모세에게는 가슴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는 모세에게 있던 가장 중요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입니다. 일례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 백성들 사이에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곤 그것을 섬기며 숭배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신 하나님은 심히 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겠다고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때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 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이에요. 하나님이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백성을 여기서 멸망시키면 되겠습니까?” 자신의 생명까지 걸고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올린 모세입니다. 백성을 향한 사랑과 눈물 나는 헌신이 모세에게 있었습니다. 여기서 모세가 어떤 기도를 했는지 직접 읽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애굽기 32:32)

“하나님, 이 백성을 용서하세요.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잖아요. 제가 이끈 것 아니잖아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잖아요. 만약 이 백성을 용서하지 않으실 거면, 내 이름도 생명책에서 지워 주십시오. 여기서 모든 것 끝내도 되니까 그저 이 백성 주님께서 다시 붙들어 주세요!” 모세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충성스러운 지도자가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세를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 하게 막으셨습니다. 신명기에 이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모세가 모압평지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증거합니다. 그리고 느보 산에 올랐습니다. 그곳에 오르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이 내려다보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결국 그 땅에는 들어가지 못 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인데, 모세 또한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했던 땅인데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그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체력적으로 아주 튼튼했습니다. 신명기 34장 7절에 보면,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백이십 세가 되었는데도 시력과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럼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혹시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토록 모세를 힘들게 했던 그 백성들과 더 이상은 함께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그러나 이 또한 아닙니다. 모세는 정말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그 땅에 반드시 들어갈 것이라고, 또 들어가고 싶다고 간구했던 그입니다.
그럼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 한 건, 하나님이 가로막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넌 그 땅에 들어가지 못 한다. 너는 여기까지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3장 25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신명기 3:25 중)

하나님께서 주신 그 땅을 자신이 직접 보고 밟아야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의 소원을 아주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그 다음 구절인 26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신명기 3:26)

“모세야, 가나안에 들어가겠다고 말하지 마라. 넌 여기까지다. 이제 그만해도 족하다. 이 일로 다시는 내게 말하지 말거라!” 이렇게 하나님이 모세에게 선언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 우리는 오늘 본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진노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 1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 하리라 (민수기 20:12 중)

여기서 ‘너희’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모세야, 아론아.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그들의 두 가지 죄악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죄악, 두 번째는 이스라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첫 번째 죄악이었다면, 두 번째 죄악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지 않은 ‘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보다 자기 자신의 위대함, 자기자랑에 멈춰 있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불신앙’이 약속의 땅을 밟지 못 하게 했습니다.

그럼 먼저, 모세의 불신앙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그는 어떻게 하나님을 불신했습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 앞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로 가데스 바네아라는 장소입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백성들을 격려하시며 용기도 북돋아 주십니다. 신명기 1장 21절 말씀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신명기 1:21 중)

새 땅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도 말라고, 내가 약속한 대로 너희에게 그 땅을 주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올라가기를 주저합니다. 그 땅은 한 번도 밟아본 곳도 아니고, 그 속에 어떤 백성이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들어가느냐는 것입니다.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유리했으면서 정작 약속의 땅 앞에서 두려워 떨며 주저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담대하게 한걸음 내딛지 못 했고, 오히려 인간적인 꾀를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적인 전략을 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파의 지도자를 세우고,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모세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니다. 그냥 가자!”라고 발걸음을 내딛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그거 좋은 생각이다!”라고 제안을 받아들여 정탐꾼을 세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무서워하지 말라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믿음으로 발걸음을 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용기를 주셨는지, 신명기 1장 29~30절 말씀을 통해서도 살펴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명기 1:29~30)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안아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전에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이제 더는 두려워 말고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실 하나님을 기대하라고 하십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여기서 ‘먼저’라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그들보다 먼저, 앞서가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보다 하나님이 앞서가시니 그분만을 믿고 뒤따라가면 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발걸음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가는 길 대신 인간적인 전략을 짜 방책을 마련합니다. 그런 이스라엘, 아니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바라보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은 “너에게 믿음이 없구나. 나를 불신하고 있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는 자만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모세에게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신명기 1장 37~38절에 모세의 앞날이 이렇게 확정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 하리라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신명기 1:37~38 중)

불신앙에 빠졌던 모세는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 합니다. 그러나 열두 정탐꾼 중 갈렙과 여호수아, 즉 가나안 땅을 둘러보고 믿음의 고백을 했던 두 사람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됩니다.

모세의 ‘교만’이 약속의 땅을 밟지 못 하게 했습니다.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 한 두 번째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민수기 20:10 중)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반역한 너희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자신도 포함돼 있으면서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인데, 마치 모세 자신이 기적의 주체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뽐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보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너희들 누구 덕에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 나처럼 반석에서 물을 낼 사람이 세상에 있는 줄 알아?’ 이런 자만심이 그의 안에 있었습니다.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백성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고 분노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대하는 그의 모습입니다.
더욱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반석을 향해 명령하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위를 칩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쳤습니다. 즉, 그때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기 신분을 망각하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높이기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바로 이 교만이 모세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지도자입니다. 열 번의 성공보다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입니다. 시작은 잘했는데 마지막까지 지속이 안 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는 늘 인간의 탐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많이 맡긴 지도자를 더 엄히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늘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신뢰의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의 사람인가?’ 바로 이 사실을 기억하며, 나보다 하나님을 높이고 귀히 여길 줄 아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제 곧 새 대통령을 뽑습니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 그가 신실한 사람인지, 믿을만한 자인지, 그리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인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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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 10 ~ 13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제 9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지도자의 복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어떤 지도자를 택해야 할지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4월 24일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 1,028명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발표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지도자 상은 어떤 상인가’에 대한 설문조사였는데, 그중에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질문들을 들어보시면서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시길 바랍니다.
첫째, ‘후보가 신앙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그에게 투표하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답변이 63.3% 나왔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후보를 찍는다는 건 위험한 결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한국 교회가 기독교 가치에 맞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답변이 65.6% 나왔습니다. 교회가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지지하는 순간, 교회 내부에서부터 엄청난 정치적 갈등이 생길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 이슈에 교회가 휩쓸릴 위험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셋째, ‘한국 교회가 당선자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는지 감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여기서는 ‘그렇다’는 답변이 60% 정도 나왔습니다. 교회는 늘 제3자적인 입장에서, 아니 하나님이 지켜보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지도자가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그 가운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잊지 않으며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차기 대통령이 지녀야 할 성품 중 무엇을 첫 번째로 꼽을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첫 번째 성품으로 꼽겠습니까? 1위는 44.8%를 기록한 ‘정직’이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integrity입니다. 이는 진실성, 온전성과 같은 뜻으로 통전적인 성품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22.8%를 기록한 ‘책임감’, 세 번째는 11.6%를 기록한 ‘정의감’이었습니다.
다섯째,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적 국가적인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패거리 정치와 부패가 난무한 오늘의 정치 현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패 청산과 개혁’을 1위로 꼽았습니다. 무려 40%나 기록했습니다. 두 번째는 22.9%를 기록한 ‘국민 통합과 화합’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15.6%를 기록한 ‘도덕과 윤리성의 회복’이었습니다.
아마 성도님들 가운데는 이미 어떤 후보를 선택할지 결정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은 자율적인 선택의 결정입니다. 누구도 이 자율성을 훼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어떤 특성과 성품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까지 기도하시면서 결정하시면 될 것입니다.

지도자 모세에게는 ‘비전’, ‘사람’,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모세, 그는 정말 성공한 지도자였습니다. 모세만큼 뛰어난 지도력으로 백성을 이끈 자가 역사 속에 또 어디 있을까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전혀 훈련 받지도 못 한 오합지졸과도 같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인도하고 보살폈던 지도자가 모세라고 말입니다. 고난 속에서, 인고 속에서 인내하며 백성을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입니다.
물론 지도자로서의 모세의 성공 뒤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그가 그만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으로서, 지도자로서 모세에게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지니고 있던 지도자적 특성은 말로 할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세 가지 면모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모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이 비전이 너무 부담스러워 수차례 거절했습니다. 그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탈출 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자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은 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며 더 능력 있는 자를 쓰시라고 여러 차례 거부하고 도망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설득에 설득을 이어가신 하나님께 순복해 결국 하나님의 비전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이 비전이 모세가 지도자가 되는 데 핵심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비전을 붙잡으며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 그 안에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지도자는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목표를 향해 함께 갈 수 있도록 설득할 줄 알고, 구성원들이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끄는 자가 지도자인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옆에 갔는데 에너지를 빼앗긴다면, 그 사람은 지도자로서 여김 받지 못할 것입니다. 또, 그가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 곁에는 누구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에게는 공동체가 함께 지향할 수 있는 분명한 비전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모세에게는 좋은 ‘인간관계’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과정에 좋은 동역자와 참모를 두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먼저, 아론과 훌이 있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팔이 자꾸 내려오면 이스라엘 백성이 패배 쪽으로 몰렸습니다. 이를 안 아론과 훌이 그때 모세를 도왔습니다. 반석 위에 모세를 앉히고는 옆에서 두 팔을 받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동역자 덕분에 아말렉 전투를 승리로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또,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도 훌륭한 동역자였습니다. 홍해를 건넜을 때 모세와 함께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는 찬양을 했던 인물이 바로 이 미리암입니다. 또, 모세와 마지막까지 동행했던 동지이자 제자들이 있는데, 바로 갈렙과 여호수아입니다. 그중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그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자문을 받으며 공동체 조직 관리를 했습니다. 백부장과 천부장 제도도 세웠습니다. 동역자와 참모 그룹들도 선발했습니다. 이때 모세가 중간 지도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능력’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능력이란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입니다. 둘째, 신실함, 곧 불의한 탐욕을 취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런 능력 있는 자들을 모세가 중간 지도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모든 공동체의 책임은 지도자가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동역자들과 모든 사안들을 함께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참모도 지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의견을 종합하고 함께 지혜를 모아 용기를 갖고 결단해야 합니다. 모세가 바로 이러한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던 참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모세에게는 가슴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는 모세에게 있던 가장 중요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입니다. 일례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 백성들 사이에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곤 그것을 섬기며 숭배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신 하나님은 심히 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겠다고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때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 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이에요. 하나님이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백성을 여기서 멸망시키면 되겠습니까?” 자신의 생명까지 걸고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올린 모세입니다. 백성을 향한 사랑과 눈물 나는 헌신이 모세에게 있었습니다. 여기서 모세가 어떤 기도를 했는지 직접 읽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애굽기 32:32)

“하나님, 이 백성을 용서하세요.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잖아요. 제가 이끈 것 아니잖아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잖아요. 만약 이 백성을 용서하지 않으실 거면, 내 이름도 생명책에서 지워 주십시오. 여기서 모든 것 끝내도 되니까 그저 이 백성 주님께서 다시 붙들어 주세요!” 모세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충성스러운 지도자가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세를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 하게 막으셨습니다. 신명기에 이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모세가 모압평지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증거합니다. 그리고 느보 산에 올랐습니다. 그곳에 오르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이 내려다보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결국 그 땅에는 들어가지 못 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인데, 모세 또한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했던 땅인데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그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체력적으로 아주 튼튼했습니다. 신명기 34장 7절에 보면,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백이십 세가 되었는데도 시력과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럼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혹시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토록 모세를 힘들게 했던 그 백성들과 더 이상은 함께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그러나 이 또한 아닙니다. 모세는 정말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그 땅에 반드시 들어갈 것이라고, 또 들어가고 싶다고 간구했던 그입니다.
그럼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 한 건, 하나님이 가로막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넌 그 땅에 들어가지 못 한다. 너는 여기까지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3장 25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신명기 3:25 중)

하나님께서 주신 그 땅을 자신이 직접 보고 밟아야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의 소원을 아주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그 다음 구절인 26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신명기 3:26)

“모세야, 가나안에 들어가겠다고 말하지 마라. 넌 여기까지다. 이제 그만해도 족하다. 이 일로 다시는 내게 말하지 말거라!” 이렇게 하나님이 모세에게 선언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 우리는 오늘 본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진노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 1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 하리라 (민수기 20:12 중)

여기서 ‘너희’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모세야, 아론아.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그들의 두 가지 죄악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죄악, 두 번째는 이스라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첫 번째 죄악이었다면, 두 번째 죄악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지 않은 ‘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보다 자기 자신의 위대함, 자기자랑에 멈춰 있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불신앙’이 약속의 땅을 밟지 못 하게 했습니다.

그럼 먼저, 모세의 불신앙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그는 어떻게 하나님을 불신했습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 앞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로 가데스 바네아라는 장소입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백성들을 격려하시며 용기도 북돋아 주십니다. 신명기 1장 21절 말씀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신명기 1:21 중)

새 땅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도 말라고, 내가 약속한 대로 너희에게 그 땅을 주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올라가기를 주저합니다. 그 땅은 한 번도 밟아본 곳도 아니고, 그 속에 어떤 백성이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들어가느냐는 것입니다.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유리했으면서 정작 약속의 땅 앞에서 두려워 떨며 주저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담대하게 한걸음 내딛지 못 했고, 오히려 인간적인 꾀를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적인 전략을 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파의 지도자를 세우고,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모세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니다. 그냥 가자!”라고 발걸음을 내딛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그거 좋은 생각이다!”라고 제안을 받아들여 정탐꾼을 세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무서워하지 말라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믿음으로 발걸음을 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용기를 주셨는지, 신명기 1장 29~30절 말씀을 통해서도 살펴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명기 1:29~30)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안아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전에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이제 더는 두려워 말고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실 하나님을 기대하라고 하십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여기서 ‘먼저’라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그들보다 먼저, 앞서가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보다 하나님이 앞서가시니 그분만을 믿고 뒤따라가면 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발걸음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가는 길 대신 인간적인 전략을 짜 방책을 마련합니다. 그런 이스라엘, 아니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바라보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은 “너에게 믿음이 없구나. 나를 불신하고 있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는 자만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모세에게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신명기 1장 37~38절에 모세의 앞날이 이렇게 확정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 하리라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신명기 1:37~38 중)

불신앙에 빠졌던 모세는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 합니다. 그러나 열두 정탐꾼 중 갈렙과 여호수아, 즉 가나안 땅을 둘러보고 믿음의 고백을 했던 두 사람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됩니다.

모세의 ‘교만’이 약속의 땅을 밟지 못 하게 했습니다.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 한 두 번째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민수기 20:10 중)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반역한 너희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자신도 포함돼 있으면서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인데, 마치 모세 자신이 기적의 주체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뽐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보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너희들 누구 덕에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 나처럼 반석에서 물을 낼 사람이 세상에 있는 줄 알아?’ 이런 자만심이 그의 안에 있었습니다.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백성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고 분노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대하는 그의 모습입니다.
더욱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반석을 향해 명령하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위를 칩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쳤습니다. 즉, 그때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기 신분을 망각하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높이기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바로 이 교만이 모세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지도자입니다. 열 번의 성공보다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입니다. 시작은 잘했는데 마지막까지 지속이 안 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는 늘 인간의 탐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많이 맡긴 지도자를 더 엄히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늘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신뢰의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의 사람인가?’ 바로 이 사실을 기억하며, 나보다 하나님을 높이고 귀히 여길 줄 아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제 곧 새 대통령을 뽑습니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 그가 신실한 사람인지, 믿을만한 자인지, 그리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인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17년 4월 3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지도자의 성공과 실패”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03, 325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민 20:10-13 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4월24l일 한국기독교언론포럼에서 1028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입니다. ??후보가 신앙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그에게 투표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63.3%) ??한국교회가 기독교 가치에 맞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부정 65.6%) ??한국교회는 당선자가 향후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는지 감시해야 한다(60%) ??차기 대통령이 지녀야할 성품은?(1위 정직 44.8%)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국가과제는?(1위 부패청산/개혁 40.0%)

설교의 요약

이스라엘의 영적이 지도자이자 정치 지도자였던 모세를 살펴보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모세의 지도자적 특징은 무엇인가? (1)하나님께서 주신 비전. 이 비전은 이스라엘을 이끌게 된 핵심 동기였다. 이것은 바로 모세가 지닌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지도자는 에너지가 생기게 하는 사람이다. 목표를 향해 함께 가도록 설득하고 이끄는 사람이다. (2)인간관계 :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좋은 참모를 두어야 한다. 아론과 훌은 모세의 두 손을 들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했다. 마지막까지 훌륭한 제자이며 동지였던 갈렙과 여호수아도 있었다. 장인 이드로는 조직 관리에 대한 자문을 하기도 했다(출18:17-26). 백부장, 천부장 제도와 참모 그룹을 만들었다. 모세가 중간 지도자를 세우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불이한 이익을 미워하는 신실한 자들을 세웠다. 모든 책임은 지도자가 지지만, 중간 지도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혜안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3)지도자로서의 가장 소중한 점은 뜨거운 사랑의 열정과 헌신이다. 자기 백성을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모세였다. 눈물 나는 지도자의 용기와 사랑이다(출32;32).

이런 충성스러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건강이 쇄약해서가 아니다. 체력적으로 튼튼했다(신34:7). 배신의 배신을 거듭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기 싫어서였는가?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신3:25). 하나님께서 못 들어가게 막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소원을 거절하신 것이다(신3:26). 오늘 말씀에 답이 나와 있다. (1)‘나를 믿지 아니했다’ 모세의 불신앙 때문이다. 약속의 땅 바로 앞,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지만,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다. 올라가기를 두려워했다(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신1:29).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셨다. 아들을 안고 있는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렇게 안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신1:30-31). 그런데 아직도 믿음이 없다. 하나님을 불신한다. 이것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첫 번째 이유였다. (2)결정적으로 모세의 교만함 때문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이 아니라 모세 자신이 행한 행위로 뽐내고 싶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아니라 자기의 힘과 능력을 과신하고 싶었다. 누구 덕에 너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가? 긍휼로 물을 낸 것이 아니라 분노하며 조롱하면서 물을 낸 것이다. 반석에게 명령하라 하셨지만, 모세는 반석을 내려쳤다.(민20:10) 그것도 두 번이나. 격분하여 ‘사랑의 물’을 ‘증오의 물’로 바꾸어 버렸다. 교만이 모세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10번의 성공보다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이다. 많이 맡긴 자에게 더 엄하게 대하시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기억하자. ①나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②나는 교만하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마치 내가 한 것처럼 뽐내지는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겸손의 길을 걸어가자.

나누기

1. 나는 어떤 지도자인지 돌아보자. 믿음의 사람인가? 내게 맡겨준 공동체를 신뢰하는 사람인가?

2. 나는 교만하지 않은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내가 한 것처럼 착각하고 교만하게 행하였던 경험이 있는가? 다시 한 번 회개하며 믿음과 겸손을 결단해 보자.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앞서가신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뒤를 믿음으로 따라가게 하옵소서. 그러면서 겸손히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들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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