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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경기에는 언제나 승리자와 패배자가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신문에 “배짱 넘버원 신지애, 큰 경기에 강하다! 우승 비결 3가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여자 골프 4대 메이저 LPGA 대회 중의 하나인 브리티쉬 여자 오픈에서 신지애 선수가 우승한 것을 보고 쓴 신문 기사입니다. 20살의 어린 나이와 156cm 밖에 되지 않는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대단한 결과를 나타날 수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기자는 그의 우승 비결을 3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비결은 강한 정신력과 낙천적인 성격입니다. 신지애 선수의 말입니다. “부담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승했던 선수는 우승에 대한 부담, 한 대회에서 저조했던 선수는 다음 경기에서 잘 해야 한다는 부담, 하지만 나는 그런 부담을 부담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심리상태로 여기고 그 긴장을 즐기는 편이다. 극도로 긴장상태에서도 짜릿한 감정을 느낀다.”
두 번째 빼놓을 수 없는 비결은 깊은 신앙심입니다. 신 선수의 말입니다. “긴장되는 상황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그러나 그 기도가 ‘볼이 홀인 되게 해주세요.’라는 식은 아니다. ‘단지 집중력을 달라.’ 고 기도한다.”
마지막 세 번째 비결은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신 선수의 말입니다. “내 플레이가 남들에게 완벽하게 보이고 쉬워 보여도 나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다. 플레이가 잘 되는 날도 골프는 어려운 것이다. 모든 샷은 고도의 집중과 치열한 준비작업의 결과다.”
대회의 우승에는 선수가 가지고 있는 정신력, 신앙과 기도 그리고 체력과 노력이 뒤따랐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만 갖추었다고 우승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자가 되면 언론은 아주 냉정하게 말합니다. “연습부족이다, 집중력이 부족이다, 게을렀다. 그리고 뭔가 기술이 모자란 것이다.” 승부 세계에 들어가 보면 우리는 비난이 아주 심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향해 도전하다 보면 성공과 실패가 있습니다.
운동경기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목표를 향해 달려온 사람들은 긴장의 연속에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팽팽한 긴장감을 이길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예 목표를 포기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긴장과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한평생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삶을 땅속에 묻어두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힘든 일과 실패가 있어도 또 때로는 비난과 조롱을 받아도 달려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 때문입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테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신념을 확고하게 말했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에 연연하지 말라. 그들은 자신들보다 힘센 사람들이 어떻게 걸려 넘어지는가를 찾아내려 한다.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을 잘 하는가 지켜보기나 하는 사람들이다. 경기장에서 뛰는 사람들을 보라. 그의 얼굴은 먼지와 땀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용감하게 싸운다. 그는 종종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실수와 결점이 없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는 대단한 열정을 소유하고 있으며,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할 줄 안다. 그는 최악의 경우에는 대담하게 일을 하는 동안 실패를 할 수도 있다. 회색 지대에 앉아서 기꺼이 고생을 감내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인생을 즐기지도 못한 채 승리의 기쁨이나 실패의 쓴 맛 중 그 어떤 것도 맛보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 부류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힘들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거나 온갖 실패를 무릅쓰고, 결국에는 영광스러운 성공을 얻는 것이 훨씬 낫다.”
인생은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면서 부딪쳐보는 것입니다. 인생에 정열을 쏟아 부을 수 있을 때 성공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낙담과 조롱도 있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성취되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도 실패자가 되어 낙심했습니다.
엘리야는 성공의 사람, 불같은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850 대 1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갈멜산에서 대결하여 승리한 사람입니다.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는 신앙의 인물입니다. 엘리야는 승리의 사건을 경험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당시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데 앞장섰던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선지자들이 엘리야에게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핍박하며 죽이겠다고 복수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잡아오라는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또한 그를 잡아오면 죽이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때 엘리야의 마음은 절망해서 두려워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엘리야는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광야 로뎀나무 밑에 앉아서 하나님께 탄식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불만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을 위해 애썼습니다. 제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나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성경말씀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열왕기상 19:4)
이 말씀은 엘리야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저들에게 죽기 싫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이 내 생명을 빼앗아 가옵소서. 나는 이제 모든 것을 하기가 싫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통해서 40일 동안 걸어가서 호렙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 굴에 있었던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향해 질문합니다. “엘리야여,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네가 왜 여기 있느냐? 네가 무엇 하러 여기 있느냐?”
그때 엘리야는 아직도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과 억울함 그리고 답답함이 풀리지 않아 묻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충성하며 모든 것을 다 바쳤는데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하시다니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엘리야의 이 마음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열왕기상 19:10)
엘리야만큼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었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질문에 두 번이나 반복하여 고백합니다. “나만 혼자 남았습니다. 주님의 선지자들이 죽고 나만 남았습니다.”아직도 엘리야의 마음속에 심술과 분노가 풀리지 않습니다. “나만 남았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됩니까?” 이것은 자신이 외롭다는 낙심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하나님마저 알아주지 않는 위기 속에서 대꾸하는 모습입니다. 엘리야를 적대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탄식이 엘리야 입에서 나왔습니다. 수고하고 열심히 했지만 성취되지 않은 것에 대한 고백입니다.
엘리야는 인간적으로 말하면 신앙의 영웅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는 아주 유약한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용기 없이 포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위기가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엘리야에게도 문제가 다가온 것을 보면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문제가 다가올 가능성이 큽니다.
엘리야의 육체적 탈진과 패배감과 고독감은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낙심하고 절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육체적인 탈진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 대결은 정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투쟁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얼마나 겁이 났겠습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투쟁하며 850 대 1로 싸웠습니다.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전쟁에서 승리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모아 넣고 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굴이 무릎 속에 들어가는 것은 요가를 한 사람은 쉬울지 모르지만 아주 어려운 자세입니다. 그만큼 엘리야는 큰 재난이 몰려올 때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 일곱 번 씩이나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비가 오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탈진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회복되기도 전에 아합과 이세벨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엘리야를 잡아라. 엘리야를 죽이자.” 그는 이 소리를 듣고 육체와 마음이 탈진했습니다.
여러분, 육체는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자신의 육체를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육체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육체가 망가지면 마음도 망가집니다. 육체가 아프면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육체가 귀찮아지면 도전하기 싫습니다. 무기력해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약해진 육체에서는 용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누구나 그럴 때는 잠시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먹고 운동하며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마음에 생긴 두 번째 고통은 패배감입니다. 권력자가 엘리야에게 강력한 창과 칼을 들고 왔습니다. 지금까지 견뎌왔던 스트레스가 마음속에 더 큰 아픔으로 부딪쳤습니다. 패배감이 찾아오면 그동안 잘 견뎌왔던 스트레스가 그것을 넘어서는 용기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패배하게 만드는 고통과 상처로 다가옵니다.
표독한 이세벨 왕비 앞에서 엘리야는 낭패감을 맛보았습니다. 실패를 경험하면서 유약해졌습니다. 유약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내적으로 유약해지면 자신을 죽이려 합니다. 자살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너무 유약하기 때문에 거칠어진 마음을 자기 자신에게 쏟아 붇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깥으로 표현되면 난폭해지고 인간관계가 사나워집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열등감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연약하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조차도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엘리야는 엄청난 외로움과 고독감에 휩싸였습니다.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 없고 자신만 홀로 남은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도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 남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하나님, 나 혼자 남았어요. 아무도 없어요. 나 혼자 외롭게 있어요.”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하나님 앞에 아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대한 기적이 아닌 새로운 사명을 통해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엘리야를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회복시켜 주실까요? 하나님은 거대한 기적의 요란한 방식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때로 낙심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거대한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손을 번쩍 들고 내게 와주세요. 기적을 보여주세요. 나를 좀 놀라게 해주세요. 나를 좀 특별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엘리야의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엘리야에게 강한 바람과 폭풍을 일으켜주셨습니다. 산과 바위가 쪼개질 정도의 강한 바람을 일으키셨는데 바람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지진도 일으켜주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불꽃을 일으켜주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강한 바람, 지진과 불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방법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면서 재단 불이 타는 것을 보고 엘리야는 하나님이 임재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데 그것을 본 사람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보아도 아무도 변하지 않고 더 완약해지고 포악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미세한 음성 중에 엘리야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나를 가르쳐주시는 구나.”
그때 하나님께서 두 번째 새로운 사명을 보여주셨습니다. “도망가지 말라. 문제가 있다고 도피하지 말라.” 여러분, 인생의 위기가 닥쳐올 때 잠시 쉬셔도 괜찮습니다. 너무 힘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용한 곳에 가서 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도피하기 위해서 도망가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도망가지 말라. 내가 너에게 해야 할 사명을 줄 텐데 네가 한 일을 돌이켜보라. 이렇게 도망 왔는데 다시 현장으로 가라. 사람들이 고통 받고 위험과 위기가 있는 자리로 돌아가라. 도망 다니지 말라. 거기에서 피신하지 말라. 다시 돌아가라.”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후계자 엘리사를 택해서 기름을 부어 새로운 지도자들을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을 때 그는 용기를 내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건강과 모든 것을 갖고 있어도 인생에 사명이 없으면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인생의 목표가 사라지면 용기가 없어지고 도전할 마음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네 길로 도로 돌아가라.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을 키워야할 일이 있다. 그것을 행해라.” 그는 말씀 속에서 다시 일어났기에 하나님의 뜻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동료와 후계자가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혼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남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너의 동료를 숨겨 놓았다. 네가 알지 못하는 칠천 명의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바알신에게 무릎 꿇지 않는 사람들, 지조와 신앙을 지킨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다. 낙망하지 말라. 네가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역사를 다 책임진다고 착각하지 말라. 쓸데없이 메시아인 척 하지 말라. 네가 모든 것을 다 행할 줄 안다고 스스로 모든 짐을 지지 말라. 너는 네 할 일만 하면 끝이다. 다른 것까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끝나면 나는 다른 사람을 쓸 것이다. 네가 못하면 내가 선택한 다른 사람도 있다.”
우리가 잘못된 메시아 의식을 가지면 세상 종교의 교주가 됩니다.
우리가 잘못된 메시아 의식을 가지면 혼자 모든 것을 독점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게 맡겨진 것에만 충성스럽게 순종해라. 그리고 네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라.”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시면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왕기상 19:18)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을 숨겨 놓았으니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네 길은 가라. 너는 네 길을 가다가 내 명령대로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어라.”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엘리야에게 큰 위로를 주십니다.
위기의 때 하나님의 말씀과 위로를 간구하며 나아갑시다.
우리는 광복 63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어느 곳에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큰 아픔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는데 왜 이렇게 무질서와 무법이 난무하고 있느냐고 탄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진정한 변화와 개혁이 일어나지 않느냐고 고통을 나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지도자와 예수 믿는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말씀이 필요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겠습니까?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겠습니까? 모든 국민의 마음을 가슴에 안고 달려가야 하는 고통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영적이고 정신적인 위기 속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뿐만 아닙니다. 기업을 하는 대표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 지도자, 한 가정의 가장도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까? 한 사람만 내 곁에 있어도 쉽지 않은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믿는 순간 영적인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맡겨진 일들을 순종합시다. 하나님 앞에 뜻을 물으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 교회, 사회, 나라에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을 믿고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민족을 축복해주시고 세워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지도자이오니 주님께서 축복해주시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하옵소서. 다만 순종하며 나아가게 하시고 믿음의 동역자들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며 포기하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붙들어주옵소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믿음의 장을 펼쳐나가며 이루어가는 나라와 민족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열왕기상 19: 9 ~ 18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운동경기에는 언제나 승리자와 패배자가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신문에 “배짱 넘버원 신지애, 큰 경기에 강하다! 우승 비결 3가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여자 골프 4대 메이저 LPGA 대회 중의 하나인 브리티쉬 여자 오픈에서 신지애 선수가 우승한 것을 보고 쓴 신문 기사입니다. 20살의 어린 나이와 156cm 밖에 되지 않는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대단한 결과를 나타날 수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기자는 그의 우승 비결을 3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비결은 강한 정신력과 낙천적인 성격입니다. 신지애 선수의 말입니다. “부담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승했던 선수는 우승에 대한 부담, 한 대회에서 저조했던 선수는 다음 경기에서 잘 해야 한다는 부담, 하지만 나는 그런 부담을 부담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심리상태로 여기고 그 긴장을 즐기는 편이다. 극도로 긴장상태에서도 짜릿한 감정을 느낀다.”
두 번째 빼놓을 수 없는 비결은 깊은 신앙심입니다. 신 선수의 말입니다. “긴장되는 상황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그러나 그 기도가 ‘볼이 홀인 되게 해주세요.’라는 식은 아니다. ‘단지 집중력을 달라.’ 고 기도한다.”
마지막 세 번째 비결은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신 선수의 말입니다. “내 플레이가 남들에게 완벽하게 보이고 쉬워 보여도 나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다. 플레이가 잘 되는 날도 골프는 어려운 것이다. 모든 샷은 고도의 집중과 치열한 준비작업의 결과다.”
대회의 우승에는 선수가 가지고 있는 정신력, 신앙과 기도 그리고 체력과 노력이 뒤따랐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만 갖추었다고 우승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자가 되면 언론은 아주 냉정하게 말합니다. “연습부족이다, 집중력이 부족이다, 게을렀다. 그리고 뭔가 기술이 모자란 것이다.” 승부 세계에 들어가 보면 우리는 비난이 아주 심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향해 도전하다 보면 성공과 실패가 있습니다.
운동경기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목표를 향해 달려온 사람들은 긴장의 연속에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팽팽한 긴장감을 이길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예 목표를 포기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긴장과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한평생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삶을 땅속에 묻어두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힘든 일과 실패가 있어도 또 때로는 비난과 조롱을 받아도 달려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 때문입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테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신념을 확고하게 말했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에 연연하지 말라. 그들은 자신들보다 힘센 사람들이 어떻게 걸려 넘어지는가를 찾아내려 한다.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을 잘 하는가 지켜보기나 하는 사람들이다. 경기장에서 뛰는 사람들을 보라. 그의 얼굴은 먼지와 땀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용감하게 싸운다. 그는 종종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실수와 결점이 없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는 대단한 열정을 소유하고 있으며,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할 줄 안다. 그는 최악의 경우에는 대담하게 일을 하는 동안 실패를 할 수도 있다. 회색 지대에 앉아서 기꺼이 고생을 감내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인생을 즐기지도 못한 채 승리의 기쁨이나 실패의 쓴 맛 중 그 어떤 것도 맛보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 부류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힘들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거나 온갖 실패를 무릅쓰고, 결국에는 영광스러운 성공을 얻는 것이 훨씬 낫다.”
인생은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면서 부딪쳐보는 것입니다. 인생에 정열을 쏟아 부을 수 있을 때 성공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낙담과 조롱도 있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성취되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도 실패자가 되어 낙심했습니다.
엘리야는 성공의 사람, 불같은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850 대 1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갈멜산에서 대결하여 승리한 사람입니다.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는 신앙의 인물입니다. 엘리야는 승리의 사건을 경험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당시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데 앞장섰던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선지자들이 엘리야에게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핍박하며 죽이겠다고 복수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잡아오라는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또한 그를 잡아오면 죽이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때 엘리야의 마음은 절망해서 두려워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엘리야는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광야 로뎀나무 밑에 앉아서 하나님께 탄식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불만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을 위해 애썼습니다. 제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나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성경말씀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열왕기상 19:4)
이 말씀은 엘리야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저들에게 죽기 싫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이 내 생명을 빼앗아 가옵소서. 나는 이제 모든 것을 하기가 싫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통해서 40일 동안 걸어가서 호렙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 굴에 있었던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향해 질문합니다. “엘리야여,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네가 왜 여기 있느냐? 네가 무엇 하러 여기 있느냐?”
그때 엘리야는 아직도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과 억울함 그리고 답답함이 풀리지 않아 묻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충성하며 모든 것을 다 바쳤는데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하시다니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엘리야의 이 마음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열왕기상 19:10)
엘리야만큼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었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질문에 두 번이나 반복하여 고백합니다. “나만 혼자 남았습니다. 주님의 선지자들이 죽고 나만 남았습니다.”아직도 엘리야의 마음속에 심술과 분노가 풀리지 않습니다. “나만 남았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됩니까?” 이것은 자신이 외롭다는 낙심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하나님마저 알아주지 않는 위기 속에서 대꾸하는 모습입니다. 엘리야를 적대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탄식이 엘리야 입에서 나왔습니다. 수고하고 열심히 했지만 성취되지 않은 것에 대한 고백입니다.
엘리야는 인간적으로 말하면 신앙의 영웅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는 아주 유약한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용기 없이 포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위기가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엘리야에게도 문제가 다가온 것을 보면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문제가 다가올 가능성이 큽니다.
엘리야의 육체적 탈진과 패배감과 고독감은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낙심하고 절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육체적인 탈진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 대결은 정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투쟁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얼마나 겁이 났겠습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투쟁하며 850 대 1로 싸웠습니다.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전쟁에서 승리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모아 넣고 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굴이 무릎 속에 들어가는 것은 요가를 한 사람은 쉬울지 모르지만 아주 어려운 자세입니다. 그만큼 엘리야는 큰 재난이 몰려올 때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 일곱 번 씩이나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비가 오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탈진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회복되기도 전에 아합과 이세벨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엘리야를 잡아라. 엘리야를 죽이자.” 그는 이 소리를 듣고 육체와 마음이 탈진했습니다.
여러분, 육체는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자신의 육체를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육체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육체가 망가지면 마음도 망가집니다. 육체가 아프면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육체가 귀찮아지면 도전하기 싫습니다. 무기력해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약해진 육체에서는 용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누구나 그럴 때는 잠시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먹고 운동하며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마음에 생긴 두 번째 고통은 패배감입니다. 권력자가 엘리야에게 강력한 창과 칼을 들고 왔습니다. 지금까지 견뎌왔던 스트레스가 마음속에 더 큰 아픔으로 부딪쳤습니다. 패배감이 찾아오면 그동안 잘 견뎌왔던 스트레스가 그것을 넘어서는 용기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패배하게 만드는 고통과 상처로 다가옵니다.
표독한 이세벨 왕비 앞에서 엘리야는 낭패감을 맛보았습니다. 실패를 경험하면서 유약해졌습니다. 유약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내적으로 유약해지면 자신을 죽이려 합니다. 자살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너무 유약하기 때문에 거칠어진 마음을 자기 자신에게 쏟아 붇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깥으로 표현되면 난폭해지고 인간관계가 사나워집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열등감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연약하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조차도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엘리야는 엄청난 외로움과 고독감에 휩싸였습니다.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 없고 자신만 홀로 남은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도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 남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하나님, 나 혼자 남았어요. 아무도 없어요. 나 혼자 외롭게 있어요.”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하나님 앞에 아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대한 기적이 아닌 새로운 사명을 통해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엘리야를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회복시켜 주실까요? 하나님은 거대한 기적의 요란한 방식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때로 낙심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거대한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손을 번쩍 들고 내게 와주세요. 기적을 보여주세요. 나를 좀 놀라게 해주세요. 나를 좀 특별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엘리야의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엘리야에게 강한 바람과 폭풍을 일으켜주셨습니다. 산과 바위가 쪼개질 정도의 강한 바람을 일으키셨는데 바람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지진도 일으켜주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불꽃을 일으켜주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강한 바람, 지진과 불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방법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면서 재단 불이 타는 것을 보고 엘리야는 하나님이 임재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데 그것을 본 사람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보아도 아무도 변하지 않고 더 완약해지고 포악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미세한 음성 중에 엘리야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나를 가르쳐주시는 구나.”
그때 하나님께서 두 번째 새로운 사명을 보여주셨습니다. “도망가지 말라. 문제가 있다고 도피하지 말라.” 여러분, 인생의 위기가 닥쳐올 때 잠시 쉬셔도 괜찮습니다. 너무 힘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용한 곳에 가서 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도피하기 위해서 도망가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도망가지 말라. 내가 너에게 해야 할 사명을 줄 텐데 네가 한 일을 돌이켜보라. 이렇게 도망 왔는데 다시 현장으로 가라. 사람들이 고통 받고 위험과 위기가 있는 자리로 돌아가라. 도망 다니지 말라. 거기에서 피신하지 말라. 다시 돌아가라.”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후계자 엘리사를 택해서 기름을 부어 새로운 지도자들을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을 때 그는 용기를 내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건강과 모든 것을 갖고 있어도 인생에 사명이 없으면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인생의 목표가 사라지면 용기가 없어지고 도전할 마음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네 길로 도로 돌아가라.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을 키워야할 일이 있다. 그것을 행해라.” 그는 말씀 속에서 다시 일어났기에 하나님의 뜻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동료와 후계자가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혼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남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너의 동료를 숨겨 놓았다. 네가 알지 못하는 칠천 명의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바알신에게 무릎 꿇지 않는 사람들, 지조와 신앙을 지킨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다. 낙망하지 말라. 네가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역사를 다 책임진다고 착각하지 말라. 쓸데없이 메시아인 척 하지 말라. 네가 모든 것을 다 행할 줄 안다고 스스로 모든 짐을 지지 말라. 너는 네 할 일만 하면 끝이다. 다른 것까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끝나면 나는 다른 사람을 쓸 것이다. 네가 못하면 내가 선택한 다른 사람도 있다.”
우리가 잘못된 메시아 의식을 가지면 세상 종교의 교주가 됩니다.
우리가 잘못된 메시아 의식을 가지면 혼자 모든 것을 독점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게 맡겨진 것에만 충성스럽게 순종해라. 그리고 네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라.”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시면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왕기상 19:18)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을 숨겨 놓았으니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네 길은 가라. 너는 네 길을 가다가 내 명령대로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어라.”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엘리야에게 큰 위로를 주십니다.
위기의 때 하나님의 말씀과 위로를 간구하며 나아갑시다.
우리는 광복 63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어느 곳에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큰 아픔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는데 왜 이렇게 무질서와 무법이 난무하고 있느냐고 탄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진정한 변화와 개혁이 일어나지 않느냐고 고통을 나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지도자와 예수 믿는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말씀이 필요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겠습니까?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겠습니까? 모든 국민의 마음을 가슴에 안고 달려가야 하는 고통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영적이고 정신적인 위기 속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뿐만 아닙니다. 기업을 하는 대표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 지도자, 한 가정의 가장도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까? 한 사람만 내 곁에 있어도 쉽지 않은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믿는 순간 영적인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맡겨진 일들을 순종합시다. 하나님 앞에 뜻을 물으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 교회, 사회, 나라에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을 믿고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민족을 축복해주시고 세워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지도자이오니 주님께서 축복해주시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하옵소서. 다만 순종하며 나아가게 하시고 믿음의 동역자들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며 포기하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붙들어주옵소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믿음의 장을 펼쳐나가며 이루어가는 나라와 민족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