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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하나님 사랑의 시작

창세기 1: 1 ~ 5

김지철 목사

2018.01.28

생명으로 가득한 창조 세계는 경이롭습니다.

저는 종종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다큐멘터리나 동물의 세계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창조세계의 신비입니다. 바다의 물고기와 지상의 동물들이 어떻게 이토록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열대 바다의 물고기의 모양과 색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현대 디자이너와 패션가들이 모방해도 참 좋을 법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너무나 멋진 풍경입니다. 신비롭고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광경을 볼 때마다 ‘이 모든 게 저절로 된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우주가 팽창하면서 이렇게 거대한 우주의 질서가 형성되었을까?’라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아마 방법론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바이러스 같은 작은 생명체가 생겼고, 그것이 수십억 년이 지나면서 각종 생물로 진화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응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틀 안에서 투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진화론 대 창조론의 갈등입니다.
과학은 실험과 검증을 통해 결론을 도출합니다. 그러나 진화론이나 창조론, 어느 것도 완벽하게 과학 검증의 대상이 되지는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신화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허구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둘 다 신념의 체계 아래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과학으로 그 모든 체계를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분적인 진화는 일어나고 있으나, 진화론은 생명의 비밀을 그저 ‘우연’ 아래 닫아두고 있습니다. 때로는 수억 년, 수십억 년이라는 긴 세월 아래 진화 과정을 파묻어 둡니다. 이 역시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생명 없는 어떤 것도 그냥 내버려 둔다 해서 질서로 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질서로 향합니다. 아름다움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혼돈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만약 질서 혹은 아름다움으로 향하고자 한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생명은 사랑이란 원동력이 있어야 추진이 가능합니다. 생명은 늘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이 생명을 낳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존재가 서로 만날 때 생명의 축복이 발생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해야 그 사랑 안에서 생명을 잉태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의 신앙과 생명의 신앙을 가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의 서언을 읽어 나갔습니다. 창세기는 믿음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에너지가 듬뿍 담긴 책이 창세기입니다. 이 사랑 가득한 멋진 언어가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언어로 고백하건대,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에는 목적과 목표가 있습니다. 생명체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밝히는 것이 창조 신앙입니다. 생명의 근원자이신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의 근원자이신 하나님이 이 우주를 질서와 조화 가운데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 신앙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요? 창조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우주의 원리와 가능성을 우연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발생하는 돌연변이 정도로 모든 과정과 생성을 몰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즉 이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증언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는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가, 계시지 않는가’를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질문은 한 발 앞서나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그분은 무엇을 하실까?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이 세계를 만드신 목적은 무엇일까?’ 등의 질문을 놓고 고민하고 연구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요, 만물을 주관하시는 섭리자요, 온 세계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주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두 가지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유(有)’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1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하나님의 창조 기사를 한마디로 요약한 말씀입니다. 성경의 메시지 또한 여기서 출발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시간 속에 참여하시지만, 결코 시간에 묶여 계시지 않습니다. 공간 속에 참여하시지만, 공간에 묶여 계시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도 계속 흘러나오는 메시지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 ‘자존자(自存者)’라는 것입니다. ‘창조자’이시기에 ‘자존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태초에’라는 표현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우주의 시작을 알리는 표현입니다. 또한 ‘천지를’에서 천지는 하늘과 땅 곧 세계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온 세계의 창조주시라는 것을 선포함으로써 성경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도 읽어보면, 요한복음에서 성부 하나님뿐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창조에 참여하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그’는 헬라어로 ‘로고스(logos)’입니다. 로고스란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합니다. 그러니까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며, 예수님 없이는 지어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선언입니다.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중 2절부터는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보여줍니다. 먼저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2)

혼돈과 공허, 흑암에 잠겨 있던 이 세계에 하나님의 터치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어루만짐이 시작된 것입니다. 흐트러진 것, 버려졌던 것, 혼돈에 빠졌던 것들이 하나님에 의해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등장합니다. ‘영’이란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호흡’ 또는 ‘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호흡이 피조 세계에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세계에 임하니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카오스의 세계가 코스모스의 세계로 변화되어 갑니다.
한편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는 말씀은 어미 새가 알을 품는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무질서한 세계를 하나님이 품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때 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졌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하나님의 ‘사랑’의 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터치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무질서한 카오스의 세계를 사랑으로 어루만질 때, 생명 태동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창조 신앙을 믿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이 세상을 우연의 법칙에 내맡길 수 없습니다. 세상은 분명 하나님의 섭리로 창조되었습니다.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무질서나 혼돈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 가운데 있던 세상을 사랑으로 어루만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조 과정에는 하나님의 열정과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와 조화를 향한 아름다움입니다. 뒤죽박죽 엉켜져 있던 것들에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공허를 만지시니 충만함이 일어납니다. 흑암을 어루만지시니 빛이 비추어집니다. 또한 창조를 마치실 때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셨다는 뜻입니다.
한편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은 질서의 세계에서 무질서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창조 신앙과는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 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3)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세계가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창조되었다고.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되’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이 하나님의 창조 때마다 계속 등장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뒤에는 ‘그대로 되니라’는 말씀도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을 통해 일어나는 하나님의 능력의 사건을 목도하며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저 역시 “하나님, 제게도 이 말씀을 허락하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강단에 서기 전 잠시 기도 드릴 때도 두 가지를 하나님께 아룁니다. 첫 번째는 ‘너는 오직 나를 위하여’라는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제 자신이 신앙적으로 갈등하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 받은 말씀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염려, 걱정, 불안을 내려놓고 ‘너는 오직 나를 위하여’ 즉 ‘하나님만을 위하여’를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근심과 걱정 대신 힘과 용기를 주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예배 가운데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 성도들에게 사건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이 우리 삶에 사건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예배드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분의 말씀도 받습니다. 말씀을 증거하면서 저 역시 간구합니다. 사탄의 권세가 무너지게 해 달라고, 사죄의 은총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질병에 억압 받는 성도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신념이나 생각이 아니라, 어떤 관습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며 선언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이자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빛이란 태양보다 본원적인 빛을 뜻합니다. 한편 빛은 생명의 원천을 말합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생명의 빛입니다. 예수님이 이 빛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4)

여기서 ‘그’란 ‘로고스(logos)’입니다.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풀이하면,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생명의 주님, 생명의 빛을 내게도 비춰 주옵소서. 내 안에 생명이 약동하게 하옵소서.” 시편 36편 9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 36:9)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 안에서 우리가 생명을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 생명과 사랑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해 다가서는 것입니다.

천하 만물에 하나님의 손길이 깃들어 있습니다.

저는 종종 책상 앞에 놓인 작은 지구본을 들여다봅니다. ‘왜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서 태양을 돌고 있는 것일까? 왜 하루는 24시간일까? 1년이 왜 365일일까? 태양계의 수많은 별들이 태양을 주기별로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이유는, 그리고 그 원리는 무엇일까? 이 우주에는 어떤 에너지가 있어서 이토록 오랫동안 멈추지도 않고 돌아가는 것일까? 그 원동력이 어디서부터 발생하는 것일까?’ 수많은 질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누구도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해 낼 수가 없습니다. ‘대기에 산소와 질소 양이 이렇게 절묘하게 배합된 것은 어떤 원리일까? 산소가 조금이라도 더 많으면 화재가 일어날 것이고, 산소가 적으면 생물들이 산소결핍에 걸릴 텐데,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운행되고 있을까?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라며 결국에는 질문이 감탄으로 끝나곤 합니다.
여러분, 생명은 기적입니다. 내 몸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 소리, 이 역시 생명의 기쁨, 생명의 노래, 생명의 경탄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창조 역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그것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축복이 되는지 감사 고백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 19편 1절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시편 19:1)

온 천지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창조 신앙은 우리에게 노래를 가르칩니다.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노래하게 합니다. 더불어 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하게 합니다. 시인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터치를 느끼면서 노래했습니다. 시편 104편 24절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편 104: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지금 이 순간 창조의 역사를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혹시 어둠이 엄습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언해야 합니다. “어둠아, 물러가라!” 아니, 이보다 더 확실한 선언은 이것입니다. “빛아, 내 안에 비추어라. 생명의 빛, 하나님의 사랑의 빛아, 나를 비추어라!” 하고 선언하면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혹시 혼돈과 방임 가운데 내 삶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질서와 조화의 주이신 하나님을 내 안에 초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내 안에 임재하셔서 창조의 조화, 창조의 질서를 허락하옵소서.”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어둠의 세력이 있습니까? 질병이 나를 억압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생명의 주님이시여, 이 질병을 쫓아주옵소서. 내 안에 생명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하고 간구하며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터치하도록 그분께 우리를 맡깁시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안에 새 창조, 사랑의 창조, 생명의 창조를 이루시게 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몸과 영혼이 회복되고 기쁨으로 뛰놀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창조해 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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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 1 ~ 5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생명으로 가득한 창조 세계는 경이롭습니다.

저는 종종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다큐멘터리나 동물의 세계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창조세계의 신비입니다. 바다의 물고기와 지상의 동물들이 어떻게 이토록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열대 바다의 물고기의 모양과 색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현대 디자이너와 패션가들이 모방해도 참 좋을 법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너무나 멋진 풍경입니다. 신비롭고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광경을 볼 때마다 ‘이 모든 게 저절로 된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우주가 팽창하면서 이렇게 거대한 우주의 질서가 형성되었을까?’라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아마 방법론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바이러스 같은 작은 생명체가 생겼고, 그것이 수십억 년이 지나면서 각종 생물로 진화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응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틀 안에서 투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진화론 대 창조론의 갈등입니다.
과학은 실험과 검증을 통해 결론을 도출합니다. 그러나 진화론이나 창조론, 어느 것도 완벽하게 과학 검증의 대상이 되지는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신화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허구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둘 다 신념의 체계 아래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과학으로 그 모든 체계를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분적인 진화는 일어나고 있으나, 진화론은 생명의 비밀을 그저 ‘우연’ 아래 닫아두고 있습니다. 때로는 수억 년, 수십억 년이라는 긴 세월 아래 진화 과정을 파묻어 둡니다. 이 역시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생명 없는 어떤 것도 그냥 내버려 둔다 해서 질서로 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질서로 향합니다. 아름다움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혼돈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만약 질서 혹은 아름다움으로 향하고자 한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생명은 사랑이란 원동력이 있어야 추진이 가능합니다. 생명은 늘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이 생명을 낳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존재가 서로 만날 때 생명의 축복이 발생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해야 그 사랑 안에서 생명을 잉태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의 신앙과 생명의 신앙을 가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의 서언을 읽어 나갔습니다. 창세기는 믿음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에너지가 듬뿍 담긴 책이 창세기입니다. 이 사랑 가득한 멋진 언어가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언어로 고백하건대,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에는 목적과 목표가 있습니다. 생명체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밝히는 것이 창조 신앙입니다. 생명의 근원자이신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의 근원자이신 하나님이 이 우주를 질서와 조화 가운데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 신앙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요? 창조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우주의 원리와 가능성을 우연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발생하는 돌연변이 정도로 모든 과정과 생성을 몰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즉 이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증언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는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가, 계시지 않는가’를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질문은 한 발 앞서나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그분은 무엇을 하실까?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이 세계를 만드신 목적은 무엇일까?’ 등의 질문을 놓고 고민하고 연구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요, 만물을 주관하시는 섭리자요, 온 세계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주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두 가지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유(有)’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1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하나님의 창조 기사를 한마디로 요약한 말씀입니다. 성경의 메시지 또한 여기서 출발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시간 속에 참여하시지만, 결코 시간에 묶여 계시지 않습니다. 공간 속에 참여하시지만, 공간에 묶여 계시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도 계속 흘러나오는 메시지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 ‘자존자(自存者)’라는 것입니다. ‘창조자’이시기에 ‘자존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태초에’라는 표현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우주의 시작을 알리는 표현입니다. 또한 ‘천지를’에서 천지는 하늘과 땅 곧 세계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온 세계의 창조주시라는 것을 선포함으로써 성경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도 읽어보면, 요한복음에서 성부 하나님뿐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창조에 참여하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그’는 헬라어로 ‘로고스(logos)’입니다. 로고스란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합니다. 그러니까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며, 예수님 없이는 지어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선언입니다.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중 2절부터는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보여줍니다. 먼저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2)

혼돈과 공허, 흑암에 잠겨 있던 이 세계에 하나님의 터치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어루만짐이 시작된 것입니다. 흐트러진 것, 버려졌던 것, 혼돈에 빠졌던 것들이 하나님에 의해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등장합니다. ‘영’이란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호흡’ 또는 ‘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호흡이 피조 세계에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세계에 임하니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카오스의 세계가 코스모스의 세계로 변화되어 갑니다.
한편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는 말씀은 어미 새가 알을 품는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무질서한 세계를 하나님이 품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때 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졌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하나님의 ‘사랑’의 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터치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무질서한 카오스의 세계를 사랑으로 어루만질 때, 생명 태동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창조 신앙을 믿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이 세상을 우연의 법칙에 내맡길 수 없습니다. 세상은 분명 하나님의 섭리로 창조되었습니다.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무질서나 혼돈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 가운데 있던 세상을 사랑으로 어루만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조 과정에는 하나님의 열정과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와 조화를 향한 아름다움입니다. 뒤죽박죽 엉켜져 있던 것들에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공허를 만지시니 충만함이 일어납니다. 흑암을 어루만지시니 빛이 비추어집니다. 또한 창조를 마치실 때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셨다는 뜻입니다.
한편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은 질서의 세계에서 무질서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창조 신앙과는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 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3)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세계가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창조되었다고.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되’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이 하나님의 창조 때마다 계속 등장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뒤에는 ‘그대로 되니라’는 말씀도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을 통해 일어나는 하나님의 능력의 사건을 목도하며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저 역시 “하나님, 제게도 이 말씀을 허락하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강단에 서기 전 잠시 기도 드릴 때도 두 가지를 하나님께 아룁니다. 첫 번째는 ‘너는 오직 나를 위하여’라는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제 자신이 신앙적으로 갈등하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 받은 말씀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염려, 걱정, 불안을 내려놓고 ‘너는 오직 나를 위하여’ 즉 ‘하나님만을 위하여’를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근심과 걱정 대신 힘과 용기를 주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예배 가운데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 성도들에게 사건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이 우리 삶에 사건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예배드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분의 말씀도 받습니다. 말씀을 증거하면서 저 역시 간구합니다. 사탄의 권세가 무너지게 해 달라고, 사죄의 은총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질병에 억압 받는 성도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신념이나 생각이 아니라, 어떤 관습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며 선언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이자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빛이란 태양보다 본원적인 빛을 뜻합니다. 한편 빛은 생명의 원천을 말합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생명의 빛입니다. 예수님이 이 빛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4)

여기서 ‘그’란 ‘로고스(logos)’입니다.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풀이하면,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생명의 주님, 생명의 빛을 내게도 비춰 주옵소서. 내 안에 생명이 약동하게 하옵소서.” 시편 36편 9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 36:9)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 안에서 우리가 생명을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 생명과 사랑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해 다가서는 것입니다.

천하 만물에 하나님의 손길이 깃들어 있습니다.

저는 종종 책상 앞에 놓인 작은 지구본을 들여다봅니다. ‘왜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서 태양을 돌고 있는 것일까? 왜 하루는 24시간일까? 1년이 왜 365일일까? 태양계의 수많은 별들이 태양을 주기별로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이유는, 그리고 그 원리는 무엇일까? 이 우주에는 어떤 에너지가 있어서 이토록 오랫동안 멈추지도 않고 돌아가는 것일까? 그 원동력이 어디서부터 발생하는 것일까?’ 수많은 질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누구도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해 낼 수가 없습니다. ‘대기에 산소와 질소 양이 이렇게 절묘하게 배합된 것은 어떤 원리일까? 산소가 조금이라도 더 많으면 화재가 일어날 것이고, 산소가 적으면 생물들이 산소결핍에 걸릴 텐데,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운행되고 있을까?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라며 결국에는 질문이 감탄으로 끝나곤 합니다.
여러분, 생명은 기적입니다. 내 몸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 소리, 이 역시 생명의 기쁨, 생명의 노래, 생명의 경탄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창조 역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그것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축복이 되는지 감사 고백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 19편 1절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시편 19:1)

온 천지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창조 신앙은 우리에게 노래를 가르칩니다.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노래하게 합니다. 더불어 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하게 합니다. 시인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터치를 느끼면서 노래했습니다. 시편 104편 24절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편 104: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지금 이 순간 창조의 역사를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혹시 어둠이 엄습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언해야 합니다. “어둠아, 물러가라!” 아니, 이보다 더 확실한 선언은 이것입니다. “빛아, 내 안에 비추어라. 생명의 빛, 하나님의 사랑의 빛아, 나를 비추어라!” 하고 선언하면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혹시 혼돈과 방임 가운데 내 삶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질서와 조화의 주이신 하나님을 내 안에 초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내 안에 임재하셔서 창조의 조화, 창조의 질서를 허락하옵소서.”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어둠의 세력이 있습니까? 질병이 나를 억압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생명의 주님이시여, 이 질병을 쫓아주옵소서. 내 안에 생명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하고 간구하며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터치하도록 그분께 우리를 맡깁시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안에 새 창조, 사랑의 창조, 생명의 창조를 이루시게 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몸과 영혼이 회복되고 기쁨으로 뛰놀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창조해 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1월 28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창조, 하나님 사랑의 시작”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79장, 63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창 1:1~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종종 우주의 비밀을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또는 동물의 세계를 시청할 때 창조세계의 신비함에 놀랍습니다그런데 이 모든 것이 저절로 된 것일까어느 날 갑자기 우주가 팽창하면서 이런 우주의 거대한 질서가 만들어졌을까어느 날 바이러스와 같은 작은 생명체가 생겼고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각종 생물로 진화했을까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설교의 요약

   우리는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서 갈등합니다세상 사람들은 진화론은 과학이고창조론은 신화이다고 말합니다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허구입니다진화론도 창조론도 신념체계입니다진화론은 생명의 비밀을 우연과 세월로 설명합니다그러나 모든 것은 그냥 버려두면 질서와 아름다움이 아니라무질서와 혼돈으로 나갑니다그 반대방향으로 나가려면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합니다그것이 바로 생명의 에너지입니다이 생명은 사랑이라는 원동력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생명은 사랑이 필요하고사랑은 생명을 낳기 때문입니다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이런 사랑과 생명의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창세기는 믿음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우리가 보는 생명체의 목표와 이유를 말해주는 것이 바로 창조신앙입니다생명의 근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생명을 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우주를 질서와 조화로 창조하셨습니다성경은 이 세계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하나님의 창조이야기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이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그 분은 시간과 공간에 묶이지 않는 스스로 계신 분(자존자)이십니다그 분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잠겨 있는 세계 속에 하나님의 터치사랑으로 어루만지심으로 질서와 조화의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2).

    하나님께서는 이 창조를 하나님의 영(:루아흐 – 호흡바람)으로 시작하셨습니다하나님의 영이 무질서한 카오스의 세계를 만지시자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필연이요 하나님의 섭리라는 뜻입니다그것은 바로 새로운 질서와 조화의 아름다움입니다질서를 부여하고 공허함 가운데 충만함으로 어둠 속에서 빛이 밝게 비추도록 하셨습니다하나님의 창조의 자리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고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어서 사건이 되었습니다예수님의 말씀도 권위가 있었습니다말씀하실 때마다 죄 용서치유와 회복이 일어났으며귀신들이 쫓겨났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습니다그 말씀대로 우리 삶이 이루어진다고 선언하십시오.

    왜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서 태양을 돌고 있을까왜 하루는 24시간인가수많은 별들은 멈추지 않고 어떻게 태양을 주기별로 돌고 있는가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어느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데신앙의 선배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9:1)”. 창조주 하나님 외에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터치를 느끼고 있는 시인은 찬양합니다(104:24).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 선언하십시오. “내 속에 빛이 있으라무질서야 질서로 바뀌라혼돈아 자기 자리를 찾으라질병아 생명에게 네 자리를 물려주라!” 우리는 우연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하나님의 필연을 사는 존재입니다그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그리고 자랑스럽게 찬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오늘 내가 경험했던 이해할 수도 없고설명할 수도 없는 세상의 신비로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 우연이라고 생각했었는데뒤늦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다고 고백했던 일들이 있습니까?

    내 인생을 터치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3.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말씀대로 이루어진다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이 세상을 우연으로 바라보지 않고하나님의 사랑의 창조의 행위 속에서 바라보게 하옵소서.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며 내 속에 생명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 믿음의 위인들처럼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생명의 빛사랑의 빛을 비춰주셔서 날마다 축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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