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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말라기 3:16~4:3:

김지철 목사

2010.11.14

우리는 질병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질병에 걸리면 당황하고 놀랍니다. 언제 내 몸 안에 이렇게 몹쓸 병이 있었는지 묻습니다. 마치 질병이 나를 모욕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내 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었는데 내 몸이 나를 반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배신감마저 들 때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어떻습니까? 건강합니까? 우리 몸에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한 순간에 건강을 잃어버린 어떤 사람의 말입니다.
“저혈당증, 그것은 심장마비와도 같은 내 심장으로부터의 외침이었습니다. 마침내 내 몸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온 몸의 반란, 이것을 네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라는 협박 섞인 반란이었습니다. 39세의 나이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기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병이 아니었으면 나는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몸을 죽여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최후통첩을 받았을 때조차 나는 내가 죽음의 문턱에 서있으며 내 인생이 위험에 처해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내 병의 요인이 설탕 때문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설탕이라는 단어가 점점 나에게 수치심이라는 단어로 바뀌었습니다. 내 인생은 아파하고 있었고 설탕은 그 수치를 알려준 것에 불과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내 몸에 가했던 모든 것들이 부끄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저혈당증, 그것은 나의 자아를 무시했기 때문에 생긴 병이었습니다. 수치심이란 단어는 자각이란 단어로 바뀌었고 다시 나의 자아에 대한 이해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질병에 걸리면서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몸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몸을 얼마나 소홀히 했는지, 건강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말입니다.
“체력이 쇠해질 때마다 나는 강렬한 위기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수차례 발작을 일으킨 결장염은 몇 주 동안 나를 꼼작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큰 고통과 분노와 모욕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그 병이 내 인생을 구해주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병은 나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어느 누가 질병을 원하겠습니까? 질병은 마치 저주와 분노처럼 우리를 향해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병을 앓으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하고 건강한 것이 축복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조화롭게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장육부를 얼마나 조화롭게 만드셨습니까? 60조나 되는 세포 하나하나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몸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 안에 면역체계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병균이 침입했을 때 우리의 몸은 비상등을 켭니다. 몸을 방어하라는 명령이 온 세포에 전달됩니다. 어디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몸 전체가 아픈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손이 상처를 입으면 이 정보가 온 몸으로 순식간에 전달됩니다. 내가 머리로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내 몸이 저절로 그렇게 합니다. 마치 이성을 가진 존재처럼 대응합니다. ‘어떻게 하면 감염될 것을 막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혈액을 빨리 응고시키고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온 세포가 총출동을 합니다. 골수에서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낼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몸의 모든 세포들이 병균을 향해서 대응합니다. 마치 서로가 송신기와 수신기로 연락하는 것 같습니다. 약점은 서로가 보완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건강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의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뛰던 세포들의 치유 과정이 더디어지다보면 이제 세포들이 견딜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면 그때 질병이 내 속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질병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올 때 몸이 우리를 향해서 말합니다. “몸의 주인이신 영혼이여, 당신의 몸이 지금 아픕니다. 당신의 몸에 질병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신 전체가 질병에 들면 안 되니 몸의 주인이여 지금 바로 깨달으시옵소서.”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질병이 때로는 생명 전체를 구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육체보다 정신세계를 먼저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몸의 기능과 영의 기능, 심리적 갈등과 생리적 갈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심리적 차원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걱정과 근심이 나를 억누릅니다. 그러면 몸이 이것을 다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몸은 질병에게 그것들을 양보합니다. 그리고는 주인을 향해서 정신 차리라고 말합니다. “지금 위험합니다. 지금 이 병을 퇴치하지 않으면 온 몸이 망가질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우리를 향해서 SOS를 외칩니다.
우리에게 생리적 갈등보다 심리적 갈등이 훨씬 더 큰 에너지가 소요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심리적인 갈등이 더 증폭되지 않도록 그것을 받아드립니다. 그런데 심리적 갈등이 너무 커서 몸이 견디지 못하면 생리적 갈등과 질병으로 바뀝니다. 우리의 몸이 심리적 갈등보다는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는 생리적 갈등과 질병으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질병은 몸의 생존전략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보았을 때 병원균은 음식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은 곳을 통해서 침범합니다. 또는 산소가 모자라는 곳을 향해서 침범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상태도 중요합니다. 우울한 생각을 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 자리를 통해서 병원균이 들어옵니다. 또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리를 통해서도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우리의 육체를 아뢰기 전에 정신세계를 하나님 앞에 아뢰어야합니다. “하나님, 내가 예배드립니다. 내 영혼이 만족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쁩니다. 내가 주님을 즐거워합니다.” 그렇게 주님 앞에 고백하며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몸과 영혼이 함께 하나님께 찬양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주님 앞에 토해내면서 우리의 연약함에 치유가 일어납니다. 또한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치료하시는 광선을 우리의 몸과 영혼에 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사랑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사랑 때문에 건강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질서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질서대로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조화와 아름다움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몸의 주인인 영혼이 삐뚤어져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교만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몸이 아프고 힘든 것입니다. 몸은 주인을 따라서 움직이려고 하는데 주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몸이 영혼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것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며 질병을 야기시키는 것입니다.

외양간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도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자가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 영혼과 몸이 건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나가는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리하여 영혼이 무서움에 움츠러들면 육체도 움츠러들게 되어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세포들이 자유롭고 활발하게 움직여야하는데 영혼이 움츠러드니까 몸도 흔들리고 연약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 4: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치유하는 광선을 비추시면 어둡고 냄새나는 외양간에서 벗어나 푸른 초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풀을 먹고 뛰노는 송아지처럼 우리의 몸과 영혼이 뛰놀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외양간을 만들고 거기에 꽉 묶여 있으려합니다. 때로는 육체적인 외양간 속에 갇혀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육체적인 질병과 고통을 그대로 껴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외양간에서부터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때는 정신적인 외양간에 갇혀 있습니다. 고민과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맡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혼자만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계속 한이 맺혀서 큰 울타리를 쌓아놓고 거기에 주저앉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흐트러뜨리십니다. 나를 붙들어 매고 있는 열등감, 우울감, 패배의식을 다 깨뜨리십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도 외양간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만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방자하고 교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짓과 악 행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우리의 영적불감증을 때려 부수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생명의 자리로 우리를 초청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피라미드와 같습니다. 영혼이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합니다. 정신이 건강해야 육체가 건강합니다. 우리는 이 축복을 누려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면서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 내 영혼이 만족하게 하옵소서. 내 영혼이 기뻐 뛰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내 몸의 세포들이 영혼과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배드릴 때 우리의 영혼도 고쳐주시고 육체의 질병도 고쳐주십니다.

오늘의 삶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노래하십시오

의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환자의 병만을 고치려하지 말고 환자 그 사람을 고쳐라.” 병과 환자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질병은 약물로 치료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난치병과 같이 어려운 병은 환자와 함께 묶여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그들의 생각과 태도를 묻습니다. 명의는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환자를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묶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서부터 해결의 열쇠를 찾습니다.
그러면 환자는 어떠할까요? 끌로드 사바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지 치유를 위해 치유되기 원하는 사람은 치유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도 이와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 병만 고쳐주세요. 하나님,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왜 가만히 계세요? 하나님 이 병을 고쳐주어야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나님된 것을 보여주세요!’ 우리는 이렇게 치유자체만을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치유만을 위해서 치유 받게 될 때에는 치유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끌로드 사바는 이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사랑하고 삶을 즐거워하기 원하는 사람만이 치유될 것이다.”
이 말을 신앙적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인생의 목적이 있는가? 인생의 의미가 있는가? 인생을 보람되게 살려고 하는가? 내가 갖고 있는 인생의 방향과 꿈이 명백한가? 그리고 이것을 내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가? 그로 인해 내 영혼이 하나님을 노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이것을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질병이 치유 받는 비결입니다.
우리의 몸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우리의 육체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오늘이라고 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어제 그토록 내일까지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기다렸던 오늘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이 축복의 삶을 감사할 줄 알아야 우리 삶의 문제들이 풀려나기 시작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치료하는 광선을 비춰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제 인생이 하나님만으로 만족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제 육체도 저의 영혼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노래하게 하옵소서.”
주석학자들은 본문 말씀의 공의로운 해가 떠올랐다는 말이 오실 메시아를 뜻한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볼 때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공의로운 해입니다.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병든 자를 만지시고 고통 받는 자를 쓰다듬으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육체의 질병까지 치료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몸이 강건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몸이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있다가 주님 앞으로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혹 육체의 연약함이 있다면 먼저 내 영혼이 만족함으로 기뻐 뛰놀 수 있도록 하나님께 나아가셔야 합니다. 내 영혼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도 고쳐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몸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와 법칙으로 만들어주신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 앞에 나가게 될 때, 우리의 영혼과 몸이 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앞에서 기뻐 뛰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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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3:16~4:3:

우리는 질병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질병에 걸리면 당황하고 놀랍니다. 언제 내 몸 안에 이렇게 몹쓸 병이 있었는지 묻습니다. 마치 질병이 나를 모욕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내 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었는데 내 몸이 나를 반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배신감마저 들 때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어떻습니까? 건강합니까? 우리 몸에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한 순간에 건강을 잃어버린 어떤 사람의 말입니다.
“저혈당증, 그것은 심장마비와도 같은 내 심장으로부터의 외침이었습니다. 마침내 내 몸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온 몸의 반란, 이것을 네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라는 협박 섞인 반란이었습니다. 39세의 나이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기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병이 아니었으면 나는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몸을 죽여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최후통첩을 받았을 때조차 나는 내가 죽음의 문턱에 서있으며 내 인생이 위험에 처해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내 병의 요인이 설탕 때문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설탕이라는 단어가 점점 나에게 수치심이라는 단어로 바뀌었습니다. 내 인생은 아파하고 있었고 설탕은 그 수치를 알려준 것에 불과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내 몸에 가했던 모든 것들이 부끄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저혈당증, 그것은 나의 자아를 무시했기 때문에 생긴 병이었습니다. 수치심이란 단어는 자각이란 단어로 바뀌었고 다시 나의 자아에 대한 이해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질병에 걸리면서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몸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몸을 얼마나 소홀히 했는지, 건강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말입니다.
“체력이 쇠해질 때마다 나는 강렬한 위기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수차례 발작을 일으킨 결장염은 몇 주 동안 나를 꼼작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큰 고통과 분노와 모욕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그 병이 내 인생을 구해주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병은 나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어느 누가 질병을 원하겠습니까? 질병은 마치 저주와 분노처럼 우리를 향해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병을 앓으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하고 건강한 것이 축복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조화롭게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장육부를 얼마나 조화롭게 만드셨습니까? 60조나 되는 세포 하나하나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몸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 안에 면역체계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병균이 침입했을 때 우리의 몸은 비상등을 켭니다. 몸을 방어하라는 명령이 온 세포에 전달됩니다. 어디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몸 전체가 아픈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손이 상처를 입으면 이 정보가 온 몸으로 순식간에 전달됩니다. 내가 머리로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내 몸이 저절로 그렇게 합니다. 마치 이성을 가진 존재처럼 대응합니다. ‘어떻게 하면 감염될 것을 막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혈액을 빨리 응고시키고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온 세포가 총출동을 합니다. 골수에서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낼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몸의 모든 세포들이 병균을 향해서 대응합니다. 마치 서로가 송신기와 수신기로 연락하는 것 같습니다. 약점은 서로가 보완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건강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의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뛰던 세포들의 치유 과정이 더디어지다보면 이제 세포들이 견딜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면 그때 질병이 내 속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질병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올 때 몸이 우리를 향해서 말합니다. “몸의 주인이신 영혼이여, 당신의 몸이 지금 아픕니다. 당신의 몸에 질병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신 전체가 질병에 들면 안 되니 몸의 주인이여 지금 바로 깨달으시옵소서.”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질병이 때로는 생명 전체를 구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육체보다 정신세계를 먼저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몸의 기능과 영의 기능, 심리적 갈등과 생리적 갈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심리적 차원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걱정과 근심이 나를 억누릅니다. 그러면 몸이 이것을 다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몸은 질병에게 그것들을 양보합니다. 그리고는 주인을 향해서 정신 차리라고 말합니다. “지금 위험합니다. 지금 이 병을 퇴치하지 않으면 온 몸이 망가질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우리를 향해서 SOS를 외칩니다.
우리에게 생리적 갈등보다 심리적 갈등이 훨씬 더 큰 에너지가 소요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심리적인 갈등이 더 증폭되지 않도록 그것을 받아드립니다. 그런데 심리적 갈등이 너무 커서 몸이 견디지 못하면 생리적 갈등과 질병으로 바뀝니다. 우리의 몸이 심리적 갈등보다는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는 생리적 갈등과 질병으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질병은 몸의 생존전략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보았을 때 병원균은 음식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은 곳을 통해서 침범합니다. 또는 산소가 모자라는 곳을 향해서 침범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상태도 중요합니다. 우울한 생각을 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 자리를 통해서 병원균이 들어옵니다. 또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리를 통해서도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우리의 육체를 아뢰기 전에 정신세계를 하나님 앞에 아뢰어야합니다. “하나님, 내가 예배드립니다. 내 영혼이 만족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쁩니다. 내가 주님을 즐거워합니다.” 그렇게 주님 앞에 고백하며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몸과 영혼이 함께 하나님께 찬양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주님 앞에 토해내면서 우리의 연약함에 치유가 일어납니다. 또한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치료하시는 광선을 우리의 몸과 영혼에 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사랑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사랑 때문에 건강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질서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질서대로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조화와 아름다움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몸의 주인인 영혼이 삐뚤어져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교만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몸이 아프고 힘든 것입니다. 몸은 주인을 따라서 움직이려고 하는데 주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몸이 영혼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것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며 질병을 야기시키는 것입니다.

외양간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도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자가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 영혼과 몸이 건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나가는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리하여 영혼이 무서움에 움츠러들면 육체도 움츠러들게 되어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세포들이 자유롭고 활발하게 움직여야하는데 영혼이 움츠러드니까 몸도 흔들리고 연약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 4: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치유하는 광선을 비추시면 어둡고 냄새나는 외양간에서 벗어나 푸른 초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풀을 먹고 뛰노는 송아지처럼 우리의 몸과 영혼이 뛰놀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외양간을 만들고 거기에 꽉 묶여 있으려합니다. 때로는 육체적인 외양간 속에 갇혀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육체적인 질병과 고통을 그대로 껴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외양간에서부터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때는 정신적인 외양간에 갇혀 있습니다. 고민과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맡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혼자만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계속 한이 맺혀서 큰 울타리를 쌓아놓고 거기에 주저앉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흐트러뜨리십니다. 나를 붙들어 매고 있는 열등감, 우울감, 패배의식을 다 깨뜨리십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도 외양간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만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방자하고 교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짓과 악 행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우리의 영적불감증을 때려 부수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생명의 자리로 우리를 초청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피라미드와 같습니다. 영혼이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합니다. 정신이 건강해야 육체가 건강합니다. 우리는 이 축복을 누려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면서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 내 영혼이 만족하게 하옵소서. 내 영혼이 기뻐 뛰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내 몸의 세포들이 영혼과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배드릴 때 우리의 영혼도 고쳐주시고 육체의 질병도 고쳐주십니다.

오늘의 삶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노래하십시오

의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환자의 병만을 고치려하지 말고 환자 그 사람을 고쳐라.” 병과 환자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질병은 약물로 치료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난치병과 같이 어려운 병은 환자와 함께 묶여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그들의 생각과 태도를 묻습니다. 명의는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환자를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묶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서부터 해결의 열쇠를 찾습니다.
그러면 환자는 어떠할까요? 끌로드 사바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지 치유를 위해 치유되기 원하는 사람은 치유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도 이와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 병만 고쳐주세요. 하나님,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왜 가만히 계세요? 하나님 이 병을 고쳐주어야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나님된 것을 보여주세요!’ 우리는 이렇게 치유자체만을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치유만을 위해서 치유 받게 될 때에는 치유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끌로드 사바는 이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사랑하고 삶을 즐거워하기 원하는 사람만이 치유될 것이다.”
이 말을 신앙적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인생의 목적이 있는가? 인생의 의미가 있는가? 인생을 보람되게 살려고 하는가? 내가 갖고 있는 인생의 방향과 꿈이 명백한가? 그리고 이것을 내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가? 그로 인해 내 영혼이 하나님을 노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이것을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질병이 치유 받는 비결입니다.
우리의 몸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우리의 육체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오늘이라고 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어제 그토록 내일까지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기다렸던 오늘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이 축복의 삶을 감사할 줄 알아야 우리 삶의 문제들이 풀려나기 시작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치료하는 광선을 비춰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제 인생이 하나님만으로 만족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제 육체도 저의 영혼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노래하게 하옵소서.”
주석학자들은 본문 말씀의 공의로운 해가 떠올랐다는 말이 오실 메시아를 뜻한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볼 때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공의로운 해입니다.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병든 자를 만지시고 고통 받는 자를 쓰다듬으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육체의 질병까지 치료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몸이 강건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몸이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있다가 주님 앞으로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혹 육체의 연약함이 있다면 먼저 내 영혼이 만족함으로 기뻐 뛰놀 수 있도록 하나님께 나아가셔야 합니다. 내 영혼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도 고쳐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몸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와 법칙으로 만들어주신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 앞에 나가게 될 때, 우리의 영혼과 몸이 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앞에서 기뻐 뛰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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