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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픔, 모세의 아픔이 되다 – 모세 이야기 5 –

출애굽기 3: 5 ~ 10

김지철 목사

2016.11.27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아픔에 동참합니다.

어제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과 함께 ‘순종’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종족 전쟁 등 내전 이후의 우간다의 한 마을과 현재 시리아 난민들이 겪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엮은 영화입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그곳에 버려진 아이들의 신음을 듣고, 또 그들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가장 낮고 비천한 곳,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귀한 작품입니다.
영화에서 그들이 한결같이 고백하는 증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 함께 계신다는 증언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실까?’ 하고 묻곤 합니다. 이 질문에 영화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간의 눈물이 있는 곳, 슬픔과 탄식이 있는 곳, 아픔과 외로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선교사들도 자신도 힘들고 어려운 처지였지만, 하나님께서 아파하시며 함께하시는 그곳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고백합니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며, 우리는 그 사명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이러한 고백은 비단 선교사들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계신 성도님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선교사들을 위해,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와 자녀들을 위해,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장애우와 독거노인, 탈북민들을 위해, 그리고 가난한 신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며 섬기고, 시간과 물질, 정성으로 그들을 섬기는 여러 공동체가 우리 교회 안에 있습니다. 권사회와 남녀선교회, 제직부서들도 이러한 역할들을 소리 없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이요, 진정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섬김을 어떻게 자발적으로 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기쁨으로 섬길 수 있었는지, 그 힘의 근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물어보면, 모두 동일한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온 것이라고, 그것도 하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이렇게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진 것입니다.

백성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의 속마음도 그에게 보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속마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모세야, 내가 관심을 갖는 게 있는데, 내가 자꾸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네가 내 마음을 품을 수는 없겠느냐? 네가 나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 주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모세에게 물으십니다.
사실 진정한 지도자의 표상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진정한 지도자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들어 보십시오. “남을 이끌려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불쌍히 여기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공의와 정의를 선포하는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마음만 가지고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안타깝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곧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 긍휼의 마음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중 7절의 앞부분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출애굽기 3:7 중)

고통 받는 백성을 하나님께서 보셨다 하십니다.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고 계신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애민 정신입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정신, 바로 이 마음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지도자의 마음엔 백성이 가장 먼저 들어와야 한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지도자가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말입니다.
또, 오늘 본문에 ‘내 백성’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영어로는 ‘my people’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란 뜻입니다. “모세야, 네가 지도자가 된다고 해도 결코 네 백성이라고 주장하지 마라. 이 백성은 내 백성이란다. 내 소유란다. 그러니 모세야, 네가 권력자가 된다고 해도 네 욕심대로 이 백성을 다스려서는 안 된다. 이 백성은 내가 택한 나의 백성, 내가 사랑하는 내 백성이다.” 이렇게 강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강조하시다가 어느 순간 그 호칭을 멈추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곤 모세에게 “이들은 네 백성이다.” 하고 떠넘기셨습니다. 그게 언제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 대신 그것을 섬길 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진노케 한 백성입니다. 그런 백성을 보시며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르셨습니다. “모세야, 이들은 네 백성이다. 내가 이 백성을 진멸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들이 왜 내 백성입니까? 왜 모세의 백성입니까? 하나님의 백성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 백성을 여기까지 인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이잖아요!”라고 묻고,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 답변한 모세입니다. 즉,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을 일깨우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참다운 지도자는 백성의 아픔에 눈을 뜨는 자입니다.

7절 말씀에 ‘분명히 보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보고 또 보았다는 뜻입니다. 주목해 보았다는 것, 관심을 두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관심의 초점을 두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모세야, 너도 하나님의 시력을 가지고 이 백성을 보아라. 내가 보는 것을 너도 좀 볼 수 없겠느냐? 눈을 크게 뜨고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당하는 모습을 네가 보아야 한다.”라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일러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자녀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수많은 아이들이 그 안에서 뛰어놀아도 내 아이가 보입니다. ‘내 아들, 내 딸이 저기 있구나.’ 하고 금방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내 아이를 주목해서 봤기 때문에 내 아이의 뛰노는 모습, 그의 표정이 늘 내 안에 살아 있습니다. 사랑하면 보입니다. 사랑하면 주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의 고통을 내가 분명히 보았다.”
더욱이 이 말씀은 하나님의 결심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제 내가 내 백성의 고통에 참여하겠다. 그러니 너도 함께 참여해라. 너의 눈을 크게 뜨고 나처럼 그들을 바라보아라.’ 이런 마음으로 “모세야, 네가 내 대신 나의 뜻을 이룰 수는 없겠느냐?” 하고 모세를 달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참다운 지도자가 될까요? 민중의 아픔을 알고, 국민의 아픔을 아는 자가 좋은 정치 지도자가 됩니다. 성도의 슬픔을 알고, 그 슬픔에 동참하는 자가 훌륭한 영적 지도자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토록 모세에게 백성의 고통을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백성의 고통에 눈을 열어야 한다고, 그것이 참다운 지도자의 실력이고, 하나님의 실력이며, 모세가 좇아야 할 실력이라고 말입니다.

참다운 지도자는 백성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는 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7절 후반부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출애굽기 3:7 중)

보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됩니다. ‘듣는 힘’, ‘청력’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부탁하십니다. 그리고 내 백성이 지금 억압당하며 부르짖고 있으니, 그 음성을 들으라고 명하십니다.
듣는다는 것은 뭘까요? 귀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경청한다는 뜻입니다. 내 모든 신경과 마음을 집중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 소리를 그렇게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경청자이십니다. 백성의 소리,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입니다. 그 마음으로 모세도 가르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경청이 없다면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그러니 너도 백성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모세를 가르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청력이란 어떤 것일까요? 구약 사무엘상에 보면, 들으시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아이를 갖지 못한 한나가 고통 받고 괴로워하면서 하나님께 탄식합니다. 음식도 먹지 않고 자신의 아픔을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녀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어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허락하십니다. 또, 요나라는 인물도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사람이지만,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다 깊은 곳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요나의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셨고,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아침에 이곳에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들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이므로, 내 소리, 내 신음, 내 탄식까지도 들으시고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안으시는 분이시기에, 오늘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가정에는 가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장이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청력이 사라지면 난폭한 가장이 되고 맙니다. 공동체의 장이 듣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지도자가 듣지 않는다면, 그 나라에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듣는 힘이란 모든 지도자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듣는 자세가 그들 중심에 자리 잡혀야 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지도자는 백성의 아픔을 알고, 그 아픔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해력까지 가지라고 요청하십니다. 7절 후반부 제일 끝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 근심을 알고 (출애굽기 3:7 중)

‘알라’는 것입니다. 보고 들었다면, 이제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깊이와 그 크기를 네가 좀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시는 하나님의 그 마음에 너도 참여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보고 들으신 후, 모세로 하여금 보고 듣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신 것처럼 모세에게 깨달으라 하십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가슴으로 알아야 그들을 이끄는 참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모세를 가르치십니다.
그런 후, 솔선수범하시는 하나님의 모습도 보여주십니다.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낮은 곳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8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출애굽기 3:8)

본문에 동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가겠다’ 하십니다. ‘건져내겠고’, 그들은 ‘인도하겠다’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낮은 곳을 향해 내려오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회상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감격하는 기간이 대림절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저 하늘 위에서 팔레스틴 작은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베들레헴의 좁은 마구간 구유에 아기 예수님이 되어 내려오셨습니다.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가장 비천한 곳에 내려오신 예수님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우리의 문제를 당신의 가슴으로 안으시려고,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행하셔야 했을까요? 그분이 ‘약속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누구와의 약속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입니다. 6절 말씀에 보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약속하셨습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게 하리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 이렇게 아브라함과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기억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난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더불어 사셨습니다.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약속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의 부활에 힘입어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을 허락하셨습니다.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네 죄가 사함 받을 것이다. 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너를 받아 줄 것이다.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이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사랑하는 딸이다.”
오늘도 우리는 이 약속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결코 네 인생이 비천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지금 네 인생이 부끄럽다고 여기지도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하니 그 무엇보다 빛나는 네 인생이다. 그러니 다시 용기를 내고, 다시 인내하고, 네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일어서거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았고, 들었고, 알고 있다고, 그러니 이 백성의 아픔에 모세 너도 동참하라고, 하나님의 아픔을 모세 너의 아픔으로 삼으라고 요청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모세가 스스로 잘난 줄 알았을 때는,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는 것이 너무 위험했습니다. 자기가 잘나서 지도자가 되는 줄 알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 탐욕에 빠져 자기 욕망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데 권력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모든 교만을 내려놓을 때까지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모세의 교만 뒤에는 그의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이 트라우마까지도 하나님은 다 버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를 황량한 광야로 내모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모세를 새롭게 부르십니다. 모세가 서 있는 떨기나무 불꽃, 그 앞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 받을 수 없다고, 이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야 한다고 이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란 긍휼히 여기는 마음, 곧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백성의 상처와 고난에 동참하려는 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뒤 “네가 깨달았느냐? 이제 네가 내 마음을 가졌느냐? 그러면 이제 가라!”라고 단호하게 명하시는 하나님입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출애굽기 3:9)

내가 보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모세 너도 나처럼 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는 것처럼 너도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10)

이제 모세 네가 애굽 왕 바로 왕에 나아가야 한다고, 그것이 너의 임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바로, 그 앞에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라고,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안고 그 앞에 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모세 너와 함께할 것이라고, 그러니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이 백성이 아파하며 울지 않느냐고, 고난 속에서 신음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러니 어서 너는 내 마음을 품고 나아가라고. 또, 내가 들었던 것처럼 너도 내 마음으로 들어보라고, 내가 본 것처럼 너도 내 마음을 품고 바라보라고, 내가 가슴앓이했던 것처럼 너도 가슴으로 그들을 품으며 그들을 알고 이해하라고, 그러면 네가 이스라엘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삼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앞장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지도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기 욕심을 채우는 거짓 종교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국민의 이름을 앞세우며 자기 탐욕을 채우는 거짓 정치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주위에서 너무 쉽게 그런 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기초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로 인해 전 국민이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백성들, 국민들의 문제라기보다 지도자들의 문제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의 고통을 보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픔을 가슴에 품지 않고서는 진정한 지도자도, 권력자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권력을 갖고 있습니까? 어떤 지도자입니까? 집안에서 가장입니까? 그렇다면, 배우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가장입니까? 자녀들과 가족의 간절한 소리를 경청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공동체의 장이며 어떤 집단의 장입니까? 공동체가 힘들어 하고 아파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까? 혹시 나라의 지도자도 있습니까? 국민의 아우성, 국민의 탄식에 경청하고 있습니까? 영적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의 아픔과 눈물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영적 지도자입니다.
만약 경청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 공동체는 회복이 가능합니다. 무너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회복이 불가능한 게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공동체에 있다면, 그것은 괜찮은 공동체입니다. 질병에 걸려도 회복이 가능하면, 질병이 무섭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회복이 가능할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 하나님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회복이 시작됩니다. 그들을 통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삶의 현장에서 이 하나님의 아픔을 가슴으로 안으면서 내가 속한 공동체를 바르게 이끌어 가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삼고, 이를 통해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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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 5 ~ 10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아픔에 동참합니다.

어제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과 함께 ‘순종’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종족 전쟁 등 내전 이후의 우간다의 한 마을과 현재 시리아 난민들이 겪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엮은 영화입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그곳에 버려진 아이들의 신음을 듣고, 또 그들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가장 낮고 비천한 곳,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귀한 작품입니다.
영화에서 그들이 한결같이 고백하는 증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 함께 계신다는 증언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실까?’ 하고 묻곤 합니다. 이 질문에 영화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간의 눈물이 있는 곳, 슬픔과 탄식이 있는 곳, 아픔과 외로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선교사들도 자신도 힘들고 어려운 처지였지만, 하나님께서 아파하시며 함께하시는 그곳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고백합니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며, 우리는 그 사명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이러한 고백은 비단 선교사들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계신 성도님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선교사들을 위해,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와 자녀들을 위해,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장애우와 독거노인, 탈북민들을 위해, 그리고 가난한 신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며 섬기고, 시간과 물질, 정성으로 그들을 섬기는 여러 공동체가 우리 교회 안에 있습니다. 권사회와 남녀선교회, 제직부서들도 이러한 역할들을 소리 없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이요, 진정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섬김을 어떻게 자발적으로 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기쁨으로 섬길 수 있었는지, 그 힘의 근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물어보면, 모두 동일한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온 것이라고, 그것도 하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이렇게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진 것입니다.

백성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의 속마음도 그에게 보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속마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모세야, 내가 관심을 갖는 게 있는데, 내가 자꾸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네가 내 마음을 품을 수는 없겠느냐? 네가 나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 주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모세에게 물으십니다.
사실 진정한 지도자의 표상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진정한 지도자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들어 보십시오. “남을 이끌려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불쌍히 여기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공의와 정의를 선포하는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마음만 가지고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안타깝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곧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 긍휼의 마음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중 7절의 앞부분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출애굽기 3:7 중)

고통 받는 백성을 하나님께서 보셨다 하십니다.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고 계신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애민 정신입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정신, 바로 이 마음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지도자의 마음엔 백성이 가장 먼저 들어와야 한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지도자가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말입니다.
또, 오늘 본문에 ‘내 백성’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영어로는 ‘my people’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란 뜻입니다. “모세야, 네가 지도자가 된다고 해도 결코 네 백성이라고 주장하지 마라. 이 백성은 내 백성이란다. 내 소유란다. 그러니 모세야, 네가 권력자가 된다고 해도 네 욕심대로 이 백성을 다스려서는 안 된다. 이 백성은 내가 택한 나의 백성, 내가 사랑하는 내 백성이다.” 이렇게 강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강조하시다가 어느 순간 그 호칭을 멈추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곤 모세에게 “이들은 네 백성이다.” 하고 떠넘기셨습니다. 그게 언제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 대신 그것을 섬길 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진노케 한 백성입니다. 그런 백성을 보시며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르셨습니다. “모세야, 이들은 네 백성이다. 내가 이 백성을 진멸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들이 왜 내 백성입니까? 왜 모세의 백성입니까? 하나님의 백성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 백성을 여기까지 인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이잖아요!”라고 묻고,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 답변한 모세입니다. 즉,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을 일깨우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참다운 지도자는 백성의 아픔에 눈을 뜨는 자입니다.

7절 말씀에 ‘분명히 보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보고 또 보았다는 뜻입니다. 주목해 보았다는 것, 관심을 두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관심의 초점을 두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모세야, 너도 하나님의 시력을 가지고 이 백성을 보아라. 내가 보는 것을 너도 좀 볼 수 없겠느냐? 눈을 크게 뜨고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당하는 모습을 네가 보아야 한다.”라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일러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자녀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수많은 아이들이 그 안에서 뛰어놀아도 내 아이가 보입니다. ‘내 아들, 내 딸이 저기 있구나.’ 하고 금방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내 아이를 주목해서 봤기 때문에 내 아이의 뛰노는 모습, 그의 표정이 늘 내 안에 살아 있습니다. 사랑하면 보입니다. 사랑하면 주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의 고통을 내가 분명히 보았다.”
더욱이 이 말씀은 하나님의 결심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제 내가 내 백성의 고통에 참여하겠다. 그러니 너도 함께 참여해라. 너의 눈을 크게 뜨고 나처럼 그들을 바라보아라.’ 이런 마음으로 “모세야, 네가 내 대신 나의 뜻을 이룰 수는 없겠느냐?” 하고 모세를 달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참다운 지도자가 될까요? 민중의 아픔을 알고, 국민의 아픔을 아는 자가 좋은 정치 지도자가 됩니다. 성도의 슬픔을 알고, 그 슬픔에 동참하는 자가 훌륭한 영적 지도자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토록 모세에게 백성의 고통을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백성의 고통에 눈을 열어야 한다고, 그것이 참다운 지도자의 실력이고, 하나님의 실력이며, 모세가 좇아야 할 실력이라고 말입니다.

참다운 지도자는 백성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는 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7절 후반부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출애굽기 3:7 중)

보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됩니다. ‘듣는 힘’, ‘청력’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부탁하십니다. 그리고 내 백성이 지금 억압당하며 부르짖고 있으니, 그 음성을 들으라고 명하십니다.
듣는다는 것은 뭘까요? 귀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경청한다는 뜻입니다. 내 모든 신경과 마음을 집중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 소리를 그렇게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경청자이십니다. 백성의 소리,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입니다. 그 마음으로 모세도 가르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경청이 없다면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그러니 너도 백성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모세를 가르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청력이란 어떤 것일까요? 구약 사무엘상에 보면, 들으시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아이를 갖지 못한 한나가 고통 받고 괴로워하면서 하나님께 탄식합니다. 음식도 먹지 않고 자신의 아픔을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녀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어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허락하십니다. 또, 요나라는 인물도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사람이지만,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다 깊은 곳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요나의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셨고,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아침에 이곳에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들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이므로, 내 소리, 내 신음, 내 탄식까지도 들으시고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안으시는 분이시기에, 오늘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가정에는 가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장이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청력이 사라지면 난폭한 가장이 되고 맙니다. 공동체의 장이 듣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지도자가 듣지 않는다면, 그 나라에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듣는 힘이란 모든 지도자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듣는 자세가 그들 중심에 자리 잡혀야 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지도자는 백성의 아픔을 알고, 그 아픔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해력까지 가지라고 요청하십니다. 7절 후반부 제일 끝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 근심을 알고 (출애굽기 3:7 중)

‘알라’는 것입니다. 보고 들었다면, 이제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깊이와 그 크기를 네가 좀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시는 하나님의 그 마음에 너도 참여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보고 들으신 후, 모세로 하여금 보고 듣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신 것처럼 모세에게 깨달으라 하십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가슴으로 알아야 그들을 이끄는 참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모세를 가르치십니다.
그런 후, 솔선수범하시는 하나님의 모습도 보여주십니다.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낮은 곳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8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출애굽기 3:8)

본문에 동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가겠다’ 하십니다. ‘건져내겠고’, 그들은 ‘인도하겠다’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낮은 곳을 향해 내려오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회상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감격하는 기간이 대림절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저 하늘 위에서 팔레스틴 작은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베들레헴의 좁은 마구간 구유에 아기 예수님이 되어 내려오셨습니다.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가장 비천한 곳에 내려오신 예수님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우리의 문제를 당신의 가슴으로 안으시려고,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행하셔야 했을까요? 그분이 ‘약속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누구와의 약속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입니다. 6절 말씀에 보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약속하셨습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게 하리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 이렇게 아브라함과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기억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난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더불어 사셨습니다.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약속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의 부활에 힘입어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을 허락하셨습니다.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네 죄가 사함 받을 것이다. 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너를 받아 줄 것이다.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이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사랑하는 딸이다.”
오늘도 우리는 이 약속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결코 네 인생이 비천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지금 네 인생이 부끄럽다고 여기지도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하니 그 무엇보다 빛나는 네 인생이다. 그러니 다시 용기를 내고, 다시 인내하고, 네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일어서거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았고, 들었고, 알고 있다고, 그러니 이 백성의 아픔에 모세 너도 동참하라고, 하나님의 아픔을 모세 너의 아픔으로 삼으라고 요청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모세가 스스로 잘난 줄 알았을 때는,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는 것이 너무 위험했습니다. 자기가 잘나서 지도자가 되는 줄 알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 탐욕에 빠져 자기 욕망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데 권력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모든 교만을 내려놓을 때까지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모세의 교만 뒤에는 그의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이 트라우마까지도 하나님은 다 버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를 황량한 광야로 내모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모세를 새롭게 부르십니다. 모세가 서 있는 떨기나무 불꽃, 그 앞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 받을 수 없다고, 이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야 한다고 이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란 긍휼히 여기는 마음, 곧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백성의 상처와 고난에 동참하려는 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뒤 “네가 깨달았느냐? 이제 네가 내 마음을 가졌느냐? 그러면 이제 가라!”라고 단호하게 명하시는 하나님입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출애굽기 3:9)

내가 보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모세 너도 나처럼 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는 것처럼 너도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10)

이제 모세 네가 애굽 왕 바로 왕에 나아가야 한다고, 그것이 너의 임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바로, 그 앞에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라고,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안고 그 앞에 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모세 너와 함께할 것이라고, 그러니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이 백성이 아파하며 울지 않느냐고, 고난 속에서 신음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러니 어서 너는 내 마음을 품고 나아가라고. 또, 내가 들었던 것처럼 너도 내 마음으로 들어보라고, 내가 본 것처럼 너도 내 마음을 품고 바라보라고, 내가 가슴앓이했던 것처럼 너도 가슴으로 그들을 품으며 그들을 알고 이해하라고, 그러면 네가 이스라엘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삼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앞장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지도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기 욕심을 채우는 거짓 종교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국민의 이름을 앞세우며 자기 탐욕을 채우는 거짓 정치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주위에서 너무 쉽게 그런 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기초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로 인해 전 국민이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백성들, 국민들의 문제라기보다 지도자들의 문제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의 고통을 보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픔을 가슴에 품지 않고서는 진정한 지도자도, 권력자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권력을 갖고 있습니까? 어떤 지도자입니까? 집안에서 가장입니까? 그렇다면, 배우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가장입니까? 자녀들과 가족의 간절한 소리를 경청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공동체의 장이며 어떤 집단의 장입니까? 공동체가 힘들어 하고 아파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까? 혹시 나라의 지도자도 있습니까? 국민의 아우성, 국민의 탄식에 경청하고 있습니까? 영적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의 아픔과 눈물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영적 지도자입니다.
만약 경청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 공동체는 회복이 가능합니다. 무너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회복이 불가능한 게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공동체에 있다면, 그것은 괜찮은 공동체입니다. 질병에 걸려도 회복이 가능하면, 질병이 무섭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회복이 가능할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 하나님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회복이 시작됩니다. 그들을 통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삶의 현장에서 이 하나님의 아픔을 가슴으로 안으면서 내가 속한 공동체를 바르게 이끌어 가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삼고, 이를 통해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2016년 11월 2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하나님의 아픔, 모세의 아픔이 되다 – 모세이야기 5-”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03, 29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출 3:5-10 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순종’이란 영화는 소외된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 선교사님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선교사님들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물이 있는 곳, 슬픔과 탄식이 있는 곳, 아픔과 외로움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신다는 고백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은 하나님의 그 아픔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며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 가지입니다. 곧 하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을 품을 때 가능할 수 있습니다.

설교의 요약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길 원하셔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속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아픔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질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 안타까이 여기는 마음이 필요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공의와 정의의 마음만 가지고서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안타깝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도자가 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백성이라고 말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소유임을 말씀하십니다. 권력자가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욕심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셨다고 말씀하십니다.(7절) 주목하여 보신 것입니다. 관심을 갖고 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의 시력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을 너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고 고통 받는 백성에 대한 아픔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국민의 아픔을 알아야 좋은 정치적 지도자가 되고, 성도들의 아픔을 알아야 좋은 영적인 지도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의 신음소리,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말씀하십니다.(7절) 귀를 기울이고 경청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신경이 거기에 가 있다는, 내가 선택하고 집중하겠다는 선언이십니다. 경청함이 없으면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해력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공감능력입니다. 보고, 듣고, 아셨습니다. 감각적인 인식기관과 마음의 인식기관이 총동원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낮은 곳을 향하여 내려가셔서 구원의 손길을 펴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8절) 이것의 궁극적 실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신 이유는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6절)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용기를 내고 인내함으로 주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모세가 자기교만 속에 빠져 있을 때 세우시지 않았습니다. 교만과 트라우마를 내려놓게 하시고, 모세를 새롭게 만나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9절)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공동체의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의 아픔을 품어야 합니다. 슬픔을 안을 때 가정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가, 나라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곳곳에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아픔을 품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믿음의 사람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나누기
1. 삶의 어려움 속에서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함으로 믿음으로 견뎌냈던 경험을 나눠봅시다.
2. 자신의 삶과 가정, 교회와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품고 계신 아픔이 무엇일지 이야기해봅시다.
3. 내가 지도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공동체가 어디인지 생각해보고, 그 공동체 속에서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어떠한 모습을 가져야 할지 생각해봅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아픔을 듣고 깨달으라 도전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듣고, 보고, 깨닫게 하셔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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