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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가 아기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 2: 40

김지철 목사

2015.05.03

어린이는 웃음을 주는 존재입니다.

어린이는 ‘웃음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이 그치지 않는 가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입니다. 사실 아이를 낳아 성년이 될 때까지 정성을 기울여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통해서 부모가 받는 위로와 기쁨은 힘들고 어려운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자녀들을 키우고 나서 돌아보면, 자녀들이 이미 어릴 때 효도를 다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린 자녀들이 방긋 웃을 때마다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습니까? 아들과 딸의 이름을 부르면 먼 곳에 있다가도 “아빠, 엄마!” 하면서 달려오던 때 얼마나 벅찬 감격이 있었습니까?
요사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손자 손녀가 집에 오면 참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다.”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어려운데 어린 손주들과 놀아주는 것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돌아갈 때 더 반갑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손주들이 떠나고 나면 10분 만에 ‘이 녀석들 언제오지?’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힘들기는 해도 함께 있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어른들에게 생기를 부여합니다. 생명의 순수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은 아주 단순하지만 또 아주 사랑스럽습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어린아이들이 이런 기도문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라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동생이 눈을 찌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 우리 옆집 부부는 맨날 소리를 지르며 싸움만 해요. 아주 사이가 좋은 친구끼리만 결혼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 친구가 그러는데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꽃을 다 만들었대요. 꼭 거짓말 같아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못 갔던 날 있잖아요? 기억하세요? 한 번만 더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남동생이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갖고 싶다고 기도한 건 강아지예요”, “하나님, 요나와 고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래가 요나를 한 입에 삼켜버렸대요.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아빠는 이 이야기가 뻥이래요. 정말 못 말리는 아빠예요”, “하나님, 착한 사람은 빨리 죽는다면서요? 엄마가 말하는 걸 들었어요. 저는요, 항상 착하지는 않아요.”
기도문을 읽으며 느낀 것은 어린아이들의 말 속에 부모의 스승이 되는 말과 표현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바로 나야!』라는 책은 두 아이의 아버지인 유다 아틀라스가 자녀의 심정으로 쓴 글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렸을 때 한 번쯤 해 본 생각일 것입니다. 몇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자꾸 설명하지 마세요, 내가 물어보기 전에는. 놀고 있는데 부르지 마세요, 특히 막 시작했을 때는. 먹기 싫은 때는 먹으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나는 도와주고 싶은데 ‘이건 너 못해’라고 하지 마세요.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마세요, 사람들 앞에서. 모르는 사람 집에 데리고 가지 마세요. 거기서 내가 뭘 하고 놀겠어요? 엄마가 집에 왔는데 밖에서 짜증이 났나봐. 그럼 안 봐도 뻔해. 내가 뭘 하든 상관없이 나는 혼나게 되어 있어. 엄마가 다이어트를 시작해. 그럼 아침마다 똑같아. 엄마는 저울에 올라가서 좀 있다 이렇게 말해. ‘저울이 고장 났나?’ 아빠가 게임에서 지면 나는 너무 너무 신나. 아빠가 일부러 져주는 것 나는 신경 안 써. 아빠,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빠는 항상 그래 그래 그러잖아요? 나도 알아요. 아빠는 내 말 하나도 안 듣잖아요.”
아이가 무심코 있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소리를 다 듣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다 보고 있습니다. 아빠가 정말로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엄마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나를 사랑하는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영혼을 만듭니다.

자녀들을 향한 기도 제목이 많겠지만, 그중 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 이 세 가지일 것입니다. ‘건강하게 자라다오. 지혜롭게 자라다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다오.’ 건강, 지혜, 하나님의 은혜만큼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도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지녀야 할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 2:40)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건강입니다.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 몸이 건강하고 생각과 마음이 건강해야 영혼이 건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특별히 자녀들의 몸 건강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자녀의 몸 건강을 위해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아붓습니다. 자녀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탑니까?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하나님, 제가 대신 아플게요.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기도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모든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참 지혜는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위험한 태도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모든 부모가 똑같지 않습니까? 단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부모의 방식대로 자녀를 사랑하겠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위험한 두 가지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는 헬리콥터 형 부모입니다. 자녀가 요청만 하면 필요한 것을 모아 헬리콥터처럼 투하합니다. 자녀가 구조신호를 보내기만 하면 위기 때마다 건져주는 것입니다. 자녀의 아픔이 내 아픔이고, 자녀의 위기가 내 위기라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모든 것을 부모가 다 해결해 주니 자녀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다른 하나는 교관 형 부모입니다. 아주 엄정한 교관처럼 자녀에게 명령을 합니다. 그리고 자녀는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뭐라고 그랬어?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지?” 그런데 이런 부모를 둔 자녀일수록 건강한 자존감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부모의 강한 말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너는 아직 나약해. 너는 아직 생각할 능력이 없어. 너는 혼자서는 대답을 찾을 수 없어. 그래서 내가 필요한 거야. 그래서 내가 대신 해 주는 거야.”
이 두 가지 유형의 사랑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많다고 해도 말입니다.
우리는 자녀가 지혜롭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배울 수 있다’는 것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때에 배울 수 있을까요? 듣는 마음이 있을 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듣는 마음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솔로몬 왕을 기뻐하신 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다 주겠다는 하나님께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닌 듣는 마음을 구한 그의 모습이 매우 사랑스럽게 느껴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들으셨습니다.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사람들의 소리도 들으셨습니다. 할 말을 가슴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억눌려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한 맺힌 여인들, 인간 대접 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어린아이는 가라!”며 제자들이 냉대한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통해서도 들으셨습니다. “저 공중을 나는 새를 보라. 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자연 속에 가득한 것을 들으셨습니다.
자녀들이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부모가 먼저 자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무슨 할 말이 있니? 어떻게 지내고 있니? 오늘 하루는 어땠니? 요즘 걱정이 있니?” 묻고 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가 먼저 듣는 마음을 가져야 자녀들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는구나. 나도 아버지의 이야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깨달으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축복입니다.
이처럼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듣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배움은 들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몸 건강, 지혜 충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일 무슨 일어날지 우리는 모릅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 부모인 나보다 내 아들, 내 딸을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 자녀와 동행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처럼 좋은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녀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내일 시험이니까, 이제 고3이 되었으니까 교회는 잠깐 쉬고 그 시간에 학원에 가라는 것이 잠깐의 성적을 좋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혼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먼저란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네 인생의 우선이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축복의 시작이란다. 네가 다른 것은 못 해도 예배드리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기도하며 네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해라. 집중력을 달라고 기도해라. 외운 것 잘 기억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라.”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녀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나눈 세 가지 기도의 내용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몸이 강건하게 해주세요. 지혜로 충만하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랑을 받고 살아가게 해 주세요. 인생의 길목 길목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해주세요.”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가 이 기도의 내용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린이는 웃음을 주는 존재입니다.

어린이는 ‘웃음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이 그치지 않는 가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입니다. 사실 아이를 낳아 성년이 될 때까지 정성을 기울여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통해서 부모가 받는 위로와 기쁨은 힘들고 어려운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자녀들을 키우고 나서 돌아보면, 자녀들이 이미 어릴 때 효도를 다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린 자녀들이 방긋 웃을 때마다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습니까? 아들과 딸의 이름을 부르면 먼 곳에 있다가도 “아빠, 엄마!” 하면서 달려오던 때 얼마나 벅찬 감격이 있었습니까?
요사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손자 손녀가 집에 오면 참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다.”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어려운데 어린 손주들과 놀아주는 것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돌아갈 때 더 반갑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손주들이 떠나고 나면 10분 만에 ‘이 녀석들 언제오지?’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힘들기는 해도 함께 있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어른들에게 생기를 부여합니다. 생명의 순수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은 아주 단순하지만 또 아주 사랑스럽습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어린아이들이 이런 기도문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라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동생이 눈을 찌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 우리 옆집 부부는 맨날 소리를 지르며 싸움만 해요. 아주 사이가 좋은 친구끼리만 결혼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 친구가 그러는데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꽃을 다 만들었대요. 꼭 거짓말 같아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못 갔던 날 있잖아요? 기억하세요? 한 번만 더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남동생이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갖고 싶다고 기도한 건 강아지예요”, “하나님, 요나와 고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래가 요나를 한 입에 삼켜버렸대요.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아빠는 이 이야기가 뻥이래요. 정말 못 말리는 아빠예요”, “하나님, 착한 사람은 빨리 죽는다면서요? 엄마가 말하는 걸 들었어요. 저는요, 항상 착하지는 않아요.”
기도문을 읽으며 느낀 것은 어린아이들의 말 속에 부모의 스승이 되는 말과 표현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바로 나야!』라는 책은 두 아이의 아버지인 유다 아틀라스가 자녀의 심정으로 쓴 글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렸을 때 한 번쯤 해 본 생각일 것입니다. 몇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자꾸 설명하지 마세요, 내가 물어보기 전에는. 놀고 있는데 부르지 마세요, 특히 막 시작했을 때는. 먹기 싫은 때는 먹으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나는 도와주고 싶은데 ‘이건 너 못해’라고 하지 마세요.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마세요, 사람들 앞에서. 모르는 사람 집에 데리고 가지 마세요. 거기서 내가 뭘 하고 놀겠어요? 엄마가 집에 왔는데 밖에서 짜증이 났나봐. 그럼 안 봐도 뻔해. 내가 뭘 하든 상관없이 나는 혼나게 되어 있어. 엄마가 다이어트를 시작해. 그럼 아침마다 똑같아. 엄마는 저울에 올라가서 좀 있다 이렇게 말해. ‘저울이 고장 났나?’ 아빠가 게임에서 지면 나는 너무 너무 신나. 아빠가 일부러 져주는 것 나는 신경 안 써. 아빠,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빠는 항상 그래 그래 그러잖아요? 나도 알아요. 아빠는 내 말 하나도 안 듣잖아요.”
아이가 무심코 있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소리를 다 듣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다 보고 있습니다. 아빠가 정말로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엄마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나를 사랑하는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영혼을 만듭니다.

자녀들을 향한 기도 제목이 많겠지만, 그중 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 이 세 가지일 것입니다. ‘건강하게 자라다오. 지혜롭게 자라다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다오.’ 건강, 지혜, 하나님의 은혜만큼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도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지녀야 할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 2:40)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건강입니다.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 몸이 건강하고 생각과 마음이 건강해야 영혼이 건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특별히 자녀들의 몸 건강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자녀의 몸 건강을 위해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아붓습니다. 자녀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탑니까?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하나님, 제가 대신 아플게요.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기도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모든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참 지혜는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위험한 태도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모든 부모가 똑같지 않습니까? 단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부모의 방식대로 자녀를 사랑하겠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위험한 두 가지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는 헬리콥터 형 부모입니다. 자녀가 요청만 하면 필요한 것을 모아 헬리콥터처럼 투하합니다. 자녀가 구조신호를 보내기만 하면 위기 때마다 건져주는 것입니다. 자녀의 아픔이 내 아픔이고, 자녀의 위기가 내 위기라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모든 것을 부모가 다 해결해 주니 자녀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다른 하나는 교관 형 부모입니다. 아주 엄정한 교관처럼 자녀에게 명령을 합니다. 그리고 자녀는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뭐라고 그랬어?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지?” 그런데 이런 부모를 둔 자녀일수록 건강한 자존감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부모의 강한 말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너는 아직 나약해. 너는 아직 생각할 능력이 없어. 너는 혼자서는 대답을 찾을 수 없어. 그래서 내가 필요한 거야. 그래서 내가 대신 해 주는 거야.”
이 두 가지 유형의 사랑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많다고 해도 말입니다.
우리는 자녀가 지혜롭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배울 수 있다’는 것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때에 배울 수 있을까요? 듣는 마음이 있을 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듣는 마음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솔로몬 왕을 기뻐하신 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다 주겠다는 하나님께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닌 듣는 마음을 구한 그의 모습이 매우 사랑스럽게 느껴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들으셨습니다.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사람들의 소리도 들으셨습니다. 할 말을 가슴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억눌려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한 맺힌 여인들, 인간 대접 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어린아이는 가라!”며 제자들이 냉대한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통해서도 들으셨습니다. “저 공중을 나는 새를 보라. 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자연 속에 가득한 것을 들으셨습니다.
자녀들이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부모가 먼저 자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무슨 할 말이 있니? 어떻게 지내고 있니? 오늘 하루는 어땠니? 요즘 걱정이 있니?” 묻고 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가 먼저 듣는 마음을 가져야 자녀들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는구나. 나도 아버지의 이야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깨달으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축복입니다.
이처럼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듣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배움은 들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몸 건강, 지혜 충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일 무슨 일어날지 우리는 모릅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 부모인 나보다 내 아들, 내 딸을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 자녀와 동행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처럼 좋은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녀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내일 시험이니까, 이제 고3이 되었으니까 교회는 잠깐 쉬고 그 시간에 학원에 가라는 것이 잠깐의 성적을 좋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혼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먼저란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네 인생의 우선이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축복의 시작이란다. 네가 다른 것은 못 해도 예배드리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기도하며 네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해라. 집중력을 달라고 기도해라. 외운 것 잘 기억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라.”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녀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나눈 세 가지 기도의 내용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몸이 강건하게 해주세요. 지혜로 충만하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랑을 받고 살아가게 해 주세요. 인생의 길목 길목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해주세요.”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가 이 기도의 내용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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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어린이는 웃음을 주는 존재입니다.

어린이는 ‘웃음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이 그치지 않는 가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입니다. 사실 아이를 낳아 성년이 될 때까지 정성을 기울여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통해서 부모가 받는 위로와 기쁨은 힘들고 어려운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자녀들을 키우고 나서 돌아보면, 자녀들이 이미 어릴 때 효도를 다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린 자녀들이 방긋 웃을 때마다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습니까? 아들과 딸의 이름을 부르면 먼 곳에 있다가도 “아빠, 엄마!” 하면서 달려오던 때 얼마나 벅찬 감격이 있었습니까?
요사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손자 손녀가 집에 오면 참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다.”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어려운데 어린 손주들과 놀아주는 것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돌아갈 때 더 반갑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손주들이 떠나고 나면 10분 만에 ‘이 녀석들 언제오지?’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힘들기는 해도 함께 있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어른들에게 생기를 부여합니다. 생명의 순수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은 아주 단순하지만 또 아주 사랑스럽습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어린아이들이 이런 기도문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라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동생이 눈을 찌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 우리 옆집 부부는 맨날 소리를 지르며 싸움만 해요. 아주 사이가 좋은 친구끼리만 결혼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 친구가 그러는데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꽃을 다 만들었대요. 꼭 거짓말 같아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못 갔던 날 있잖아요? 기억하세요? 한 번만 더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남동생이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갖고 싶다고 기도한 건 강아지예요”, “하나님, 요나와 고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래가 요나를 한 입에 삼켜버렸대요.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아빠는 이 이야기가 뻥이래요. 정말 못 말리는 아빠예요”, “하나님, 착한 사람은 빨리 죽는다면서요? 엄마가 말하는 걸 들었어요. 저는요, 항상 착하지는 않아요.”
기도문을 읽으며 느낀 것은 어린아이들의 말 속에 부모의 스승이 되는 말과 표현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바로 나야!』라는 책은 두 아이의 아버지인 유다 아틀라스가 자녀의 심정으로 쓴 글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렸을 때 한 번쯤 해 본 생각일 것입니다. 몇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자꾸 설명하지 마세요, 내가 물어보기 전에는. 놀고 있는데 부르지 마세요, 특히 막 시작했을 때는. 먹기 싫은 때는 먹으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나는 도와주고 싶은데 ‘이건 너 못해’라고 하지 마세요.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마세요, 사람들 앞에서. 모르는 사람 집에 데리고 가지 마세요. 거기서 내가 뭘 하고 놀겠어요? 엄마가 집에 왔는데 밖에서 짜증이 났나봐. 그럼 안 봐도 뻔해. 내가 뭘 하든 상관없이 나는 혼나게 되어 있어. 엄마가 다이어트를 시작해. 그럼 아침마다 똑같아. 엄마는 저울에 올라가서 좀 있다 이렇게 말해. ‘저울이 고장 났나?’ 아빠가 게임에서 지면 나는 너무 너무 신나. 아빠가 일부러 져주는 것 나는 신경 안 써. 아빠,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빠는 항상 그래 그래 그러잖아요? 나도 알아요. 아빠는 내 말 하나도 안 듣잖아요.”
아이가 무심코 있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소리를 다 듣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다 보고 있습니다. 아빠가 정말로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엄마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나를 사랑하는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영혼을 만듭니다.

자녀들을 향한 기도 제목이 많겠지만, 그중 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 이 세 가지일 것입니다. ‘건강하게 자라다오. 지혜롭게 자라다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다오.’ 건강, 지혜, 하나님의 은혜만큼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도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지녀야 할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 2:40)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건강입니다.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 몸이 건강하고 생각과 마음이 건강해야 영혼이 건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특별히 자녀들의 몸 건강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자녀의 몸 건강을 위해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아붓습니다. 자녀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탑니까?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하나님, 제가 대신 아플게요.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기도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모든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참 지혜는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위험한 태도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모든 부모가 똑같지 않습니까? 단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부모의 방식대로 자녀를 사랑하겠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위험한 두 가지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는 헬리콥터 형 부모입니다. 자녀가 요청만 하면 필요한 것을 모아 헬리콥터처럼 투하합니다. 자녀가 구조신호를 보내기만 하면 위기 때마다 건져주는 것입니다. 자녀의 아픔이 내 아픔이고, 자녀의 위기가 내 위기라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모든 것을 부모가 다 해결해 주니 자녀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다른 하나는 교관 형 부모입니다. 아주 엄정한 교관처럼 자녀에게 명령을 합니다. 그리고 자녀는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뭐라고 그랬어?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지?” 그런데 이런 부모를 둔 자녀일수록 건강한 자존감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부모의 강한 말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너는 아직 나약해. 너는 아직 생각할 능력이 없어. 너는 혼자서는 대답을 찾을 수 없어. 그래서 내가 필요한 거야. 그래서 내가 대신 해 주는 거야.”
이 두 가지 유형의 사랑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많다고 해도 말입니다.
우리는 자녀가 지혜롭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배울 수 있다’는 것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때에 배울 수 있을까요? 듣는 마음이 있을 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듣는 마음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솔로몬 왕을 기뻐하신 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다 주겠다는 하나님께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닌 듣는 마음을 구한 그의 모습이 매우 사랑스럽게 느껴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들으셨습니다.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사람들의 소리도 들으셨습니다. 할 말을 가슴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억눌려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한 맺힌 여인들, 인간 대접 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어린아이는 가라!”며 제자들이 냉대한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통해서도 들으셨습니다. “저 공중을 나는 새를 보라. 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자연 속에 가득한 것을 들으셨습니다.
자녀들이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부모가 먼저 자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무슨 할 말이 있니? 어떻게 지내고 있니? 오늘 하루는 어땠니? 요즘 걱정이 있니?” 묻고 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가 먼저 듣는 마음을 가져야 자녀들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는구나. 나도 아버지의 이야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깨달으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축복입니다.
이처럼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듣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배움은 들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몸 건강, 지혜 충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일 무슨 일어날지 우리는 모릅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 부모인 나보다 내 아들, 내 딸을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 자녀와 동행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처럼 좋은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녀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내일 시험이니까, 이제 고3이 되었으니까 교회는 잠깐 쉬고 그 시간에 학원에 가라는 것이 잠깐의 성적을 좋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혼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먼저란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네 인생의 우선이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축복의 시작이란다. 네가 다른 것은 못 해도 예배드리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기도하며 네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해라. 집중력을 달라고 기도해라. 외운 것 잘 기억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라.”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녀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나눈 세 가지 기도의 내용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몸이 강건하게 해주세요. 지혜로 충만하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랑을 받고 살아가게 해 주세요. 인생의 길목 길목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해주세요.”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가 이 기도의 내용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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