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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한복음 3: 16 ~ 21

김지철 목사

2018.01.07

성경에는 사랑의 메시지가 가득합니다.

올해 신년 예배부터 ‘사랑’을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 관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좋아하게 된 성경 구절이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마가복음 1장 11절을 되뇌곤 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세례 받으신 예수께 하나님께서 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되뇔 때마다 용기와 힘이 솟아납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또 저녁에 잠이 들 때는 다윗의 노래였던 시편 18편 1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아침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저녁에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 “이 밤에 단잠을 주옵소서.”라고 간구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여러분은 어떤 성경 구절을 좋아하십니까? 혹시 아직 그런 구절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말씀 가운데 한두 구절을 선택하셔서 기억해 놓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사람을 만나다가도, 그 구절을 떠올리면 말씀이 삶의 양식이 되고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온라인 성경 사이트인 ‘바이블 게이트’라는 곳에서 기독교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성경 구절이 무엇인지 조사했습니다. 영어권 국가의 1억6천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1년 동안 스마트폰 앱과 인터넷 홈페이지를 방문한 16억 회의 조회를 분석해 가장 많이 찾고 좋아하는 성경 구절 100개를 공개했는데, 그 순위가 다음과 같습니다. 1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었고, 2위는 예레미야 29장 11절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말씀이었으며, 3위는 빌립보서 4장 13절, 4위는 로마서 8장 28절이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1위와 4위의 성경 구절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2위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위로가 담긴 말씀입니다. 3위는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랑이 중심이 되는 말씀들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혹은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중심 메시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역설의 힘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평생 듣고 또 듣고 싶은 말은 ‘나는 사랑 받는 존재다.’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여기에 나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기억이 나십니까? 그때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입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다. 내 사랑하는 딸이란다. 네가 있어서 너무 기쁘고 좋구나.”라고 말씀하시면, 우리 가슴이 뛰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존경해 주길 바라는 것 역시 사랑에 대한 갈구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인기를 먹고 산다는 것도 같은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정치인들이 여론 조사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호감이 생기고 사랑이 싹트면서 서로의 기쁨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합니다.

사랑은 우리 삶에 근본적으로 잠재해 있습니다. 우리 삶에 수없이 등장하는 주제가 사랑이며, 수많은 노래를 들어봐도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가사입니다. 그럼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다 두 정의가 제 마음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은 가장 강력하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무력하다.’라는 정의입니다. 인간의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가 사랑이므로 가장 강력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만큼 난공불락(難攻不落)인 요새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마음 문을 여는 것이 사랑입니다. 유일하게 인간 마음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또한 동시에 가장 무력한 것도 사랑입니다. 왜입니까? 사랑은 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동의를 필요로 합니다. 상대방의 동의가 없이는 사랑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상대방이 거절하면 그 사랑은 멈춰지고 맙니다. 짝사랑에 멈춥니다. 짝사랑을 해 보신 적 있습니까? 얼마나 가슴 아픕니까? 가슴 찢어지도록 상대방을 그리워하는데, 상대방은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강력한 동시에 가장 무력한 것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사랑이란 마치 “손들어!”와도 같다.’라는 정의입니다. 손들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항복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내 지위와 체면, 자랑거리들을 내려놓기 때문입니다. 무장해제 되는 것입니다. 강제로 무장해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장해제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발적인 무장해제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내 모든 것을 쏟아붓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내가 하나가 되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이란 자발적인 항복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몇 가지 언어가 있습니다. 사랑하면서 가장 자주 하게 되는 말이 “너는 내 꺼야.”라는 것입니다. 독점적 소유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내게서 누구도 너를 빼앗아 갈 수 없어. 너는 나만 독차지할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선언만 있다면, 완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 곧 노예 관계일 뿐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말을 꺼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널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내 생명조차 줄 수 있고, 내 목숨까지 널 위해 바칠 수 있어. 널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을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갑니다. “이제 나는 당신 뜻대로 할 거야. 지금까지는 내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당신 뜻을 우선으로 생각할 거야. 내가 갖고 있던 황소고집도 꺾을 거야. 자발적으로 당신 뜻을 따라갈 거야.”

이러한 대화는 사랑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자발적인 순종과 스스로 낮아지는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고통보다 상대방의 고통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지금 슬프더라도 상대방이 아픔 가운데 있다면, 내 슬픔을 감추고 상대방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을 높여주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이 인생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조연도 아니라, 주인공으로 승격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삼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자아상을 형성합니다. 나아가 이는 인생의 자존감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부터 “너는 내 꺼야.”라는 소유권 주장에서 사랑이 멈춘다면, 그때부터 사랑이 식습니다.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줄 거라는 헌신의 메시지도 사라집니다. 사랑에 금이 가고 일방적으로 변해 갑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랑의 본체가 아닌 까닭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순 있지만, 사랑의 발광체는 아닙니다. 그저 사랑의 반사체일 뿐입니다. 사랑 자체가 아니라 사랑 받아야 사랑할 줄 아는 존재인 것입니다.

사랑의 본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체는 누구일까요? 사랑의 발광체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그분이 당신의 아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이 바로 사랑의 원천입니다. 기독교의 복음 역시 여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즉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 3장 16절도 이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함께 그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세상이란 우리 인간을 뜻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선언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너비, 높이는 무한대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독생자까지 우리를 위해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이 궁극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의 특성은 짝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을 거부한 인간을 추적하셨습니다. 사랑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한 인간을 끊임없이 찾고 또 찾으시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사랑을 구걸하듯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랑의 추적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면 인간은 이 사랑을 외면하는 도망자로 묘사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참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마어마한 자기 포기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항복 선언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갖고 계신 계급장과 권위 의식을 다 버리셨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처럼 되셨습니다. 거룩하신 분이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영원하신 분이 안개와 같은 인간 실존에 참여하시며, 실제로도 그와 같은 존재가 되셨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마음은 이런 것일 것입니다. ‘내가 너희처럼 되겠다. 내가 너희의 연약한 자리에 참여하겠다. 너희가 갖고 있는 슬픔과 탄식의 자리에 내가 함께, 너희들과 함께 있겠다.’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소유된 우리를 회복시키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사탄의 종이 아니라 내 아들, 내 딸이다. 더 이상 너희가 사탄에게 종노릇하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존재 가치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더는 죄에 얽매어 살지 않도록, 용서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그리하여 평안과 기쁨을 누리도록 인도하십니다.

더욱이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감사와 기쁨의 고백을 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즉 사랑스럽지도 않고 버림받은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실 정도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명백한 증거가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의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도 연애할 때 느끼는 에로스의 사랑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라고…. 또 “너는 내 소유된 존재다. 나 외에 누구도 너를 소유할 수 없다. 너는 내게 속한 나의 것이다.” 이사야 43장 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중)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겠다.”라는 말씀도 덧붙이십니다. “내가 가진 것 중의 최고이자 가장 아끼는 존재인 아들도 너를 위해 내놓겠다.”라고 하시며,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놓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으시며, 앞으로도 결코 놓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어머니가 자기 태에서 나온 자식을 어떻게 잊겠냐고, 혹 잊을지라도 하나님만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기억하시며, 당신에게로 초청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최고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내주심으로 우리를 양자 삼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아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강제로 예수님을 믿게 했다면 우리는 거부했을 것입니다. 강제나 강요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십니다. 우리를 먼저 기꺼이 사랑하시며,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가 문 열어 주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셨습니다. 당신의 아들도 보내셨습니다. 이후에는 성령까지 보내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습니다.

혹시 교회는 여러 번 나왔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을 열어 그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며,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하나님, 이 믿음과 사랑을 내게 허락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해서 믿고 계십니까? 그런 분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란다.” 이때 우리가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 맞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을 주었단다.” 그때 우리도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 맞습니다. 저도 저의 마음과 생각, 온 삶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나의 사랑의 사건, 사랑의 추억을 만들어 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이웃과도 사랑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길 바랍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이웃도 사랑합시다. 특히 먼 곳에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려 하지 마시고,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십시오. 이미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 이웃을 사랑하며, 내가 속한 공동체를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주님의 복된 자녀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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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 16 ~ 21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성경에는 사랑의 메시지가 가득합니다.

올해 신년 예배부터 ‘사랑’을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 관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좋아하게 된 성경 구절이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마가복음 1장 11절을 되뇌곤 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세례 받으신 예수께 하나님께서 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되뇔 때마다 용기와 힘이 솟아납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또 저녁에 잠이 들 때는 다윗의 노래였던 시편 18편 1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아침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저녁에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 “이 밤에 단잠을 주옵소서.”라고 간구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여러분은 어떤 성경 구절을 좋아하십니까? 혹시 아직 그런 구절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말씀 가운데 한두 구절을 선택하셔서 기억해 놓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사람을 만나다가도, 그 구절을 떠올리면 말씀이 삶의 양식이 되고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온라인 성경 사이트인 ‘바이블 게이트’라는 곳에서 기독교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성경 구절이 무엇인지 조사했습니다. 영어권 국가의 1억6천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1년 동안 스마트폰 앱과 인터넷 홈페이지를 방문한 16억 회의 조회를 분석해 가장 많이 찾고 좋아하는 성경 구절 100개를 공개했는데, 그 순위가 다음과 같습니다. 1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었고, 2위는 예레미야 29장 11절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말씀이었으며, 3위는 빌립보서 4장 13절, 4위는 로마서 8장 28절이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1위와 4위의 성경 구절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2위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위로가 담긴 말씀입니다. 3위는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랑이 중심이 되는 말씀들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혹은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중심 메시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역설의 힘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평생 듣고 또 듣고 싶은 말은 ‘나는 사랑 받는 존재다.’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여기에 나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기억이 나십니까? 그때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입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다. 내 사랑하는 딸이란다. 네가 있어서 너무 기쁘고 좋구나.”라고 말씀하시면, 우리 가슴이 뛰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존경해 주길 바라는 것 역시 사랑에 대한 갈구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인기를 먹고 산다는 것도 같은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정치인들이 여론 조사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호감이 생기고 사랑이 싹트면서 서로의 기쁨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합니다.

사랑은 우리 삶에 근본적으로 잠재해 있습니다. 우리 삶에 수없이 등장하는 주제가 사랑이며, 수많은 노래를 들어봐도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가사입니다. 그럼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다 두 정의가 제 마음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은 가장 강력하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무력하다.’라는 정의입니다. 인간의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가 사랑이므로 가장 강력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만큼 난공불락(難攻不落)인 요새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마음 문을 여는 것이 사랑입니다. 유일하게 인간 마음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또한 동시에 가장 무력한 것도 사랑입니다. 왜입니까? 사랑은 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동의를 필요로 합니다. 상대방의 동의가 없이는 사랑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상대방이 거절하면 그 사랑은 멈춰지고 맙니다. 짝사랑에 멈춥니다. 짝사랑을 해 보신 적 있습니까? 얼마나 가슴 아픕니까? 가슴 찢어지도록 상대방을 그리워하는데, 상대방은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강력한 동시에 가장 무력한 것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사랑이란 마치 “손들어!”와도 같다.’라는 정의입니다. 손들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항복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내 지위와 체면, 자랑거리들을 내려놓기 때문입니다. 무장해제 되는 것입니다. 강제로 무장해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장해제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발적인 무장해제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내 모든 것을 쏟아붓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내가 하나가 되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이란 자발적인 항복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몇 가지 언어가 있습니다. 사랑하면서 가장 자주 하게 되는 말이 “너는 내 꺼야.”라는 것입니다. 독점적 소유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내게서 누구도 너를 빼앗아 갈 수 없어. 너는 나만 독차지할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선언만 있다면, 완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 곧 노예 관계일 뿐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말을 꺼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널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내 생명조차 줄 수 있고, 내 목숨까지 널 위해 바칠 수 있어. 널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을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갑니다. “이제 나는 당신 뜻대로 할 거야. 지금까지는 내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당신 뜻을 우선으로 생각할 거야. 내가 갖고 있던 황소고집도 꺾을 거야. 자발적으로 당신 뜻을 따라갈 거야.”

이러한 대화는 사랑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자발적인 순종과 스스로 낮아지는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고통보다 상대방의 고통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지금 슬프더라도 상대방이 아픔 가운데 있다면, 내 슬픔을 감추고 상대방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을 높여주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이 인생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조연도 아니라, 주인공으로 승격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삼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자아상을 형성합니다. 나아가 이는 인생의 자존감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부터 “너는 내 꺼야.”라는 소유권 주장에서 사랑이 멈춘다면, 그때부터 사랑이 식습니다.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줄 거라는 헌신의 메시지도 사라집니다. 사랑에 금이 가고 일방적으로 변해 갑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랑의 본체가 아닌 까닭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순 있지만, 사랑의 발광체는 아닙니다. 그저 사랑의 반사체일 뿐입니다. 사랑 자체가 아니라 사랑 받아야 사랑할 줄 아는 존재인 것입니다.

사랑의 본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체는 누구일까요? 사랑의 발광체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그분이 당신의 아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이 바로 사랑의 원천입니다. 기독교의 복음 역시 여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즉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 3장 16절도 이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함께 그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세상이란 우리 인간을 뜻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선언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너비, 높이는 무한대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독생자까지 우리를 위해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이 궁극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의 특성은 짝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을 거부한 인간을 추적하셨습니다. 사랑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한 인간을 끊임없이 찾고 또 찾으시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사랑을 구걸하듯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랑의 추적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면 인간은 이 사랑을 외면하는 도망자로 묘사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참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마어마한 자기 포기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항복 선언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갖고 계신 계급장과 권위 의식을 다 버리셨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처럼 되셨습니다. 거룩하신 분이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영원하신 분이 안개와 같은 인간 실존에 참여하시며, 실제로도 그와 같은 존재가 되셨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마음은 이런 것일 것입니다. ‘내가 너희처럼 되겠다. 내가 너희의 연약한 자리에 참여하겠다. 너희가 갖고 있는 슬픔과 탄식의 자리에 내가 함께, 너희들과 함께 있겠다.’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소유된 우리를 회복시키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사탄의 종이 아니라 내 아들, 내 딸이다. 더 이상 너희가 사탄에게 종노릇하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존재 가치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더는 죄에 얽매어 살지 않도록, 용서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그리하여 평안과 기쁨을 누리도록 인도하십니다.

더욱이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감사와 기쁨의 고백을 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즉 사랑스럽지도 않고 버림받은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실 정도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명백한 증거가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의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도 연애할 때 느끼는 에로스의 사랑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라고…. 또 “너는 내 소유된 존재다. 나 외에 누구도 너를 소유할 수 없다. 너는 내게 속한 나의 것이다.” 이사야 43장 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중)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겠다.”라는 말씀도 덧붙이십니다. “내가 가진 것 중의 최고이자 가장 아끼는 존재인 아들도 너를 위해 내놓겠다.”라고 하시며,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놓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으시며, 앞으로도 결코 놓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어머니가 자기 태에서 나온 자식을 어떻게 잊겠냐고, 혹 잊을지라도 하나님만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기억하시며, 당신에게로 초청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최고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내주심으로 우리를 양자 삼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아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강제로 예수님을 믿게 했다면 우리는 거부했을 것입니다. 강제나 강요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십니다. 우리를 먼저 기꺼이 사랑하시며,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가 문 열어 주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셨습니다. 당신의 아들도 보내셨습니다. 이후에는 성령까지 보내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습니다.

혹시 교회는 여러 번 나왔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을 열어 그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며,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하나님, 이 믿음과 사랑을 내게 허락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해서 믿고 계십니까? 그런 분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란다.” 이때 우리가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 맞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을 주었단다.” 그때 우리도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 맞습니다. 저도 저의 마음과 생각, 온 삶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나의 사랑의 사건, 사랑의 추억을 만들어 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이웃과도 사랑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길 바랍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이웃도 사랑합시다. 특히 먼 곳에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려 하지 마시고,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십시오. 이미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 이웃을 사랑하며, 내가 속한 공동체를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주님의 복된 자녀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2018년 1월 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 교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라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⑵ 찬송가 270, 29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⑷ 요 3:16-21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예수님을 믿으면서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까온라인 성경 사이트인 바이블게이트웨이(Biblegateway)’는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많이 찾아본 성경구절 100’을 공개했습니다. 1위는 요3:16, 2위는 렘29:11, 3위는 빌4:13, 4위는 롬8:28절입니다각자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러분의 마음에 기억하고 있는 성경구절은 무엇입니까?

설교의 요약

   사람들이 듣고 들어도 또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말입니다우리가 매일 수없이 듣는 사랑의 말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1. 사랑이란 가장 강력하면서 가장 무력한 것입니다난공불락의 마지막 자리인 인간의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이기에 강력하며동시에 사랑은 상대방의 동의를 필요하기 때문에 무력합니다동의가 없으면 그것은 단지 짝사랑에 불과합니다. 2. 사랑이란 마치 손들어와도 같습니다사랑하면 내가 항복하기 때문입니다내 지위체면자랑도 내려놓고나 자신을 완전 무장해체 시키는 힘이란 오직 사랑뿐입니다그것도 자발적으로 무장해제 합니다왜냐하면 사랑이란 상대방의 삶에 나 자신을 전부 쏟아 붓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연애하는 에로스의 사랑이 바로 그렇습니다그래서 「① 너는 내꺼야(나의 독점적 사랑을 선언② 나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③ 당신 뜻대로 하겠소」라고 말합니다사랑은 나 자신의 뜻보다 상대방의 뜻에 따르는 것을 자발적으로 행합니다자발적인 순종자발적인 낮아짐그럼에도 자원해서 스스로 노예 상태가 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그래서 자기 자신의 고통보다 상대방의 고통에 더 마음을 기울입니다자신의 슬픔보다 상대방의 슬픔이 더 커서 상대방을 위로하는 것이 사랑입니다그래서 사랑은 놀랍게도 사랑하는 대상을 삶의 주인공으로 치켜세웁니다사랑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자아상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너는 내꺼야라고 말합니다소유권을 주장합니다그 때부터 사랑은 금이 가고식어지고일방적이 됩니다사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랑의 발광체가 아닙니다오히려 반사체입니다우리는 사랑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을 받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발광체는 어디에 있습니까곧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그것도 자기 아들을 버리면서까지 사랑하십니다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3:1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① 엄청난 짝사랑입니다그 분께서 사랑을 먼저 시작하셨습니다② 어마어마한 자기 포기의 사랑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거룩한 분이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의 소유에 대한 회복을 선언하십니다우리가 사탄의 종으로 죄에 얽매어 사는 것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5:8). 하나님이 주신 아가페의 사랑도 연애하는 에로스의 사랑과 공통성이 있습니다하나님도 우리를 향해 너는 내 꺼야!’라고 큰 소리 치십니다(43:1).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어?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울를 위해 보내셨습니다뿐만아니라 나는 너를 결코 잊을 수가 없어(49:15)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아직도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까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문밖에 서서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나누기

1.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여러분은 어떻게 그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십니까?

2.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말과 행동은 무엇입니까?

3. 새롭게 시작하는 2018년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해야 할 대상자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까?

마무리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그동안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하며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누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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