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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님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지난주에 故장영희 서강대 교수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와 오른팔에 장애를 입었습니다. 그는 또한 7년 동안 유방암과 척추암이라는 병마와 싸웠습니다. 영문학을 가르치던 장 교수님이 번역한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깃발을 꺼내라 그대가 인류를 위해
몸 바치는 것을 모든 이가 다 보도록
깃발을 꺼내라 그리고 흔들어라
지나는 모든 이가 기쁨의 들뜨도록
옆길로 비켜서 선 사람들
이전에 자부심을 잃은 사람들
모두 다 그 깃발을 보고, 그리고
다시 힘주어 정진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소망과 도전의식을 주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인도했던 장 교수님이 번역한 에드거 A. 게스트(Edgar A. Guest)의 ‘깃발을 꺼내라’라는 시의 일부분입니다. 그는 이 시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자기고백을 합니다.
과녁을 향한 날카로운 눈,
고통의 일그러진 얼굴,
혼신을 다해 질주하는 다리의 불끈 솟는 힘줄,
조국의 영광을 위해 사투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태하고 풀죽은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젠 그만 걷겠다고 옆길로 비켜선 사람들, 자신만만했던 시절은 옛 말일뿐,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포기해버린 사람들도 자랑스런 그들을 위해서 깃발을 흔듭니다.
그들과 함께 우리도 남은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나야겠습니다. 일어나서 내 안에 있는 용기와 인내, 열정에 깃발을 다시 흔들어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고 떠났습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닳을지언정 녹슬지 않는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고통을 이겨내며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셨던 또 다른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방지일 목사님이십니다. 며칠 전 신문에 방 목사님을 소개하는 기사 재고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닳을지언정 녹슬지 않겠다.
이것은 방 목사님의 좌우명입니다. 평소에 방 목사님은 ‘가만히 있으면 녹이 슬지, 멀쩡한 쇠파이프에 녹이 슬면 못쓰지 않겠느냐’ 말씀하시면서 열심히 살자고 후배들을 격려해 주십니다. 방 목사님은 백수가 다 되신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월요일이면 후배 목사님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시며 많은 분들에게 신앙과 인생의 귀감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방 목사님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님을 모시고 전도사 시절을 보내신 한국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이십니다. 목사님은 1937년 목사 안수를 받으시자마자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20여 년간 복음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중국의 공산화 된 뒤, 총회에서 귀국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서 9년간 수 천 명의 난민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러다가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서 강제추방 당하여 고국에 돌아오셨고 여전히 그 땅을 위해 선교하고 계십니다.
목사님은 지금도 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말씀을 전하실 만큼 총기가 있으시고 설교원고를 준비하셔서 설교하십니다. 지금도 공부하시고 책을 읽으시며 후배들을 가르치십니다. 흐르는 냇물 속에서 매끈한 돌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분은 녹슬 틈이 없습니다. 방 목사님의 좌우명처럼, 정녕 그분의 삶이 닳아 없어질 수는 있어도 녹이 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방 목사님은 참으로 멋진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젊음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은 녹이 슬고 있지 않습니까? 몸이 늙어가면서 우리의 정신과 영적인 자세도 녹이 슬어가는 것은 아닙니까?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 라는 글 속에 헤밍웨이의 삶을 표현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사람의 삶이 때로는 조각나 부서질 수 있을지라도, 결코 궁극적으로 패배할 수는 없다는 삶에 대한 도전과 용기를 가르쳐주는 말입니다. 젊다는 말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상태를 말할 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그렇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뜻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삶, 생기로 가득 찬 삶, 곧 날마다 젊음의 삶을 누리는 권리를 받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었다 할지라도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호흡하며 살아가는 축복과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삶이 곧 젊음입니다.
85세 된 갈렙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도 한 노인이 등장합니다. 신앙의 선배 갈렙입니다. 그런데 그는 놀라운 투지와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여호수아 14:10)
갈렙의 나이는 85세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젊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이 있었습니다. 85세라는 나이는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기대’, ‘소망’이라는 말보다, ‘관조’, ‘회고’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가능성 보다는, 조용함과 정리가 더 어울리는 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85세 된 갈렙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여전히 약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력과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 인생을 녹슬지 않게 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갈렙은 나이가 어릴 때도 용기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정탐할 사람들을 뽑아 가나안으로 보낼 때 그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12명이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겁에 질린 보고를 했습니다. 어쩌면 10명의 보고가 사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너무 거대해서 우리는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대나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더 초라하게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10명이 보고를 마치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합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이렇게 고통을 당하게 하는가? 우리를 광야에서 죽이려고 데려왔느냐? 가나안에 들어가서 죽느니 여기서 죽는 것이 낫겠다.” 그때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사람들 앞에 섭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그가 오히려 분통을 터뜨리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민수기 14:8-9)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인하면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을 하더라도 괜찮은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갈렙이 여호수아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갈렙에게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내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수기 14:24)
갈렙은 시기와 질투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갈렙도 고통이 있었습니다. 본래 모세는 자기의 후계자를 두 명 세웁니다. 하나는 갈렙이고 다른 하나는 여호수아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모세의 후계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여호수아보다는 더 열정적인 갈렙에게 마음이 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호수아를 가나안 정복을 위한 후계자로 삼게 됩니다.
그런 모세의 결정에 갈렙은 마음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인정을 못 받은 실패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경쟁자 여호수아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2인자로 지내는 아픔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40년의 광야 생활이 지났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지도 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갈렙은 철저하게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이 된 갈렙 역시 안주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자기 인생을 끝마칠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옛날의 동료이자 경쟁자이며 지금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모세가 옛날 자기에게 말씀했던 도전과 기대의 산에 다시 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산을 취하겠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11-12)
갈렙이라고 해서 어찌 40세와 85세 때의 마음이 같았겠습니까? 분명히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에 도전할 수는 있습니다. 그의 마음의 담력이 85세가 된 지금도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안주하려는 마음을 잊어버렸습니다.
나이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나이로 인해 사명과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연로함이나 연소함이 하나님의 꿈을 무너뜨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새벽마다 성전에 나와서 부르짖는 아흔이 넘으신 권사님의 교회를 위한 기도를 누가 소홀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여든이 넘은 장로님이 학교와 병원을 다니며 복음쪽지를 전하는 전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설 수 있었던 것은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섬기기를 지지치 않으시는 ‘젊은’ 신앙인들이 계속해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 교회에 축복의 역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호수아 14:12)
우리 안에 이런 마음이 있으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만 있다면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셔도 될 것입니다.
갈렙이 품었던 마음은 연소하여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큰 꿈을 망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로하기 때문에 안주하며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리며 순종하고 절제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까지 지치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대로 꿈을 받았습니다. 갈렙에게는 이런 젊음과 생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꿈꾸며 이루는 젊은이들이 되십시오.
오늘은 총회가 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하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기대하기 위해 청년주일을 제정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젊은이들이 못마땅해질 때가 없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의 예의 없음과 이기적이고 다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도 청년 시절에는 부모님들로부터 그런 걱정과 꾸중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 걱정과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왔음을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빙출어수 빙어수(氷出於水 氷於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낫고, 딸이 어머니보다 나은 가정, 후배가 선배보다 낫고,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사회가 축복받은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젊은이의 마음, 꿈을 꾸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사도행전 2:17-18)
하나님께서 영을 불어 주실 때, 우리는 약속의 꿈을 꾸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젊은이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어른들도 청년의 마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달려갈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말씀과 사랑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와 가정, 이 민족과 사회가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 가운데 새로워지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역사가 믿음의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통해서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우리 마음이 젊어지게 하시고 성령을 받고 가슴이 뜨거워지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청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호수아 14: 6 ~ 15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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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장영희 교수님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지난주에 故장영희 서강대 교수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와 오른팔에 장애를 입었습니다. 그는 또한 7년 동안 유방암과 척추암이라는 병마와 싸웠습니다. 영문학을 가르치던 장 교수님이 번역한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깃발을 꺼내라 그대가 인류를 위해
몸 바치는 것을 모든 이가 다 보도록
깃발을 꺼내라 그리고 흔들어라
지나는 모든 이가 기쁨의 들뜨도록
옆길로 비켜서 선 사람들
이전에 자부심을 잃은 사람들
모두 다 그 깃발을 보고, 그리고
다시 힘주어 정진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소망과 도전의식을 주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인도했던 장 교수님이 번역한 에드거 A. 게스트(Edgar A. Guest)의 ‘깃발을 꺼내라’라는 시의 일부분입니다. 그는 이 시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자기고백을 합니다.
과녁을 향한 날카로운 눈,
고통의 일그러진 얼굴,
혼신을 다해 질주하는 다리의 불끈 솟는 힘줄,
조국의 영광을 위해 사투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태하고 풀죽은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젠 그만 걷겠다고 옆길로 비켜선 사람들, 자신만만했던 시절은 옛 말일뿐,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포기해버린 사람들도 자랑스런 그들을 위해서 깃발을 흔듭니다.
그들과 함께 우리도 남은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나야겠습니다. 일어나서 내 안에 있는 용기와 인내, 열정에 깃발을 다시 흔들어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고 떠났습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닳을지언정 녹슬지 않는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고통을 이겨내며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셨던 또 다른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방지일 목사님이십니다. 며칠 전 신문에 방 목사님을 소개하는 기사 재고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닳을지언정 녹슬지 않겠다.
이것은 방 목사님의 좌우명입니다. 평소에 방 목사님은 ‘가만히 있으면 녹이 슬지, 멀쩡한 쇠파이프에 녹이 슬면 못쓰지 않겠느냐’ 말씀하시면서 열심히 살자고 후배들을 격려해 주십니다. 방 목사님은 백수가 다 되신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월요일이면 후배 목사님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시며 많은 분들에게 신앙과 인생의 귀감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방 목사님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님을 모시고 전도사 시절을 보내신 한국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이십니다. 목사님은 1937년 목사 안수를 받으시자마자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20여 년간 복음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중국의 공산화 된 뒤, 총회에서 귀국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서 9년간 수 천 명의 난민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러다가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서 강제추방 당하여 고국에 돌아오셨고 여전히 그 땅을 위해 선교하고 계십니다.
목사님은 지금도 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말씀을 전하실 만큼 총기가 있으시고 설교원고를 준비하셔서 설교하십니다. 지금도 공부하시고 책을 읽으시며 후배들을 가르치십니다. 흐르는 냇물 속에서 매끈한 돌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분은 녹슬 틈이 없습니다. 방 목사님의 좌우명처럼, 정녕 그분의 삶이 닳아 없어질 수는 있어도 녹이 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방 목사님은 참으로 멋진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젊음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은 녹이 슬고 있지 않습니까? 몸이 늙어가면서 우리의 정신과 영적인 자세도 녹이 슬어가는 것은 아닙니까?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 라는 글 속에 헤밍웨이의 삶을 표현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사람의 삶이 때로는 조각나 부서질 수 있을지라도, 결코 궁극적으로 패배할 수는 없다는 삶에 대한 도전과 용기를 가르쳐주는 말입니다. 젊다는 말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상태를 말할 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그렇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뜻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삶, 생기로 가득 찬 삶, 곧 날마다 젊음의 삶을 누리는 권리를 받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었다 할지라도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호흡하며 살아가는 축복과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삶이 곧 젊음입니다.
85세 된 갈렙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도 한 노인이 등장합니다. 신앙의 선배 갈렙입니다. 그런데 그는 놀라운 투지와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여호수아 14:10)
갈렙의 나이는 85세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젊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이 있었습니다. 85세라는 나이는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기대’, ‘소망’이라는 말보다, ‘관조’, ‘회고’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가능성 보다는, 조용함과 정리가 더 어울리는 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85세 된 갈렙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여전히 약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력과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 인생을 녹슬지 않게 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갈렙은 나이가 어릴 때도 용기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정탐할 사람들을 뽑아 가나안으로 보낼 때 그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12명이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겁에 질린 보고를 했습니다. 어쩌면 10명의 보고가 사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너무 거대해서 우리는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대나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더 초라하게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10명이 보고를 마치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합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이렇게 고통을 당하게 하는가? 우리를 광야에서 죽이려고 데려왔느냐? 가나안에 들어가서 죽느니 여기서 죽는 것이 낫겠다.” 그때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사람들 앞에 섭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그가 오히려 분통을 터뜨리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민수기 14:8-9)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인하면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을 하더라도 괜찮은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갈렙이 여호수아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갈렙에게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내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수기 14:24)
갈렙은 시기와 질투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갈렙도 고통이 있었습니다. 본래 모세는 자기의 후계자를 두 명 세웁니다. 하나는 갈렙이고 다른 하나는 여호수아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모세의 후계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여호수아보다는 더 열정적인 갈렙에게 마음이 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호수아를 가나안 정복을 위한 후계자로 삼게 됩니다.
그런 모세의 결정에 갈렙은 마음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인정을 못 받은 실패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경쟁자 여호수아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2인자로 지내는 아픔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40년의 광야 생활이 지났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지도 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갈렙은 철저하게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이 된 갈렙 역시 안주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자기 인생을 끝마칠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옛날의 동료이자 경쟁자이며 지금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모세가 옛날 자기에게 말씀했던 도전과 기대의 산에 다시 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산을 취하겠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11-12)
갈렙이라고 해서 어찌 40세와 85세 때의 마음이 같았겠습니까? 분명히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에 도전할 수는 있습니다. 그의 마음의 담력이 85세가 된 지금도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안주하려는 마음을 잊어버렸습니다.
나이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나이로 인해 사명과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연로함이나 연소함이 하나님의 꿈을 무너뜨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새벽마다 성전에 나와서 부르짖는 아흔이 넘으신 권사님의 교회를 위한 기도를 누가 소홀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여든이 넘은 장로님이 학교와 병원을 다니며 복음쪽지를 전하는 전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설 수 있었던 것은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섬기기를 지지치 않으시는 ‘젊은’ 신앙인들이 계속해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 교회에 축복의 역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호수아 14:12)
우리 안에 이런 마음이 있으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만 있다면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셔도 될 것입니다.
갈렙이 품었던 마음은 연소하여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큰 꿈을 망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로하기 때문에 안주하며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리며 순종하고 절제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까지 지치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대로 꿈을 받았습니다. 갈렙에게는 이런 젊음과 생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꿈꾸며 이루는 젊은이들이 되십시오.
오늘은 총회가 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하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기대하기 위해 청년주일을 제정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젊은이들이 못마땅해질 때가 없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의 예의 없음과 이기적이고 다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도 청년 시절에는 부모님들로부터 그런 걱정과 꾸중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 걱정과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왔음을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빙출어수 빙어수(氷出於水 氷於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낫고, 딸이 어머니보다 나은 가정, 후배가 선배보다 낫고,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사회가 축복받은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젊은이의 마음, 꿈을 꾸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사도행전 2:17-18)
하나님께서 영을 불어 주실 때, 우리는 약속의 꿈을 꾸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젊은이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어른들도 청년의 마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달려갈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말씀과 사랑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와 가정, 이 민족과 사회가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 가운데 새로워지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역사가 믿음의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통해서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우리 마음이 젊어지게 하시고 성령을 받고 가슴이 뜨거워지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청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