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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살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 13 ~ 15

김경진 목사

2020.07.19

< 복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선사합니다. >

오늘은 복음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나 혼자만 살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처음 준비할 때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말씀을 증거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중 마지막 부분에 있는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라는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서로 싸워서는 안 된다. 서로 물고 뜯으면 안 된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우리 모두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주제의 말씀을 증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제 마음에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정말 이 본문이 그런 내용인가? 이 본문이 과연 내가 말하려는 내용과 같은가?’라는 생각이 제 마음을 계속 울렸습니다.
물론 이 말씀, 이 흐름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이어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정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증거해야겠다.’라는 마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 ‘매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복음의 기초와 핵심에 대한 말씀을 전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날로 받아들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엇 때문에 부르신 걸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주 하면서도, 그에 대한 답을 좀처럼 발견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인 갈라디아서는 이와 같은 질문에 답변을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사도 바울로부터 귀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귀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단이 들어왔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이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점점 번지는 이단의 가르침을 지켜보며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를 향해 복음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왜 그들을 부르셨는지, 그리스도인들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라디아서는 우리 신앙의 기초를 쌓게 하는 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관점에서 갈라디아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부터 4장까지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전하는 복음의 진수와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잘못된 복음이 들어가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자신이 가르친 복음이 무엇인지,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5장부터는 그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결론을 이끌어 갑니다. 5장 1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이단은 어떤 이단이었을까요? 사실은 종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덧붙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할례도 겸하여 받아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할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것은 참된 복음이 아님을 설명한 것입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는 말씀은, ‘다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런 할례는 받지 않아야 한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왜 부르셨습니까? 자유하게 하시고자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자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라고 사도 바울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서에서는 이 말씀을 ‘해방시키려고’라는 말로 바꾸어 번역합니다. 이는 갈라디아서에서 매우 중요한 결론과도 같은 말씀이자 기독교의 본질을 밝히는 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하여’라는 것은 신앙의 핵심과도 같은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라는 말씀이자 ‘예수께서 우리를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기 위하여’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율법으로부터의 해방,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로 연결시켜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죄를 지정하며, 그 죄를 통해 우리 모두가 사망에 이르게 됨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사망입니다. 그 이유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죄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바로 율법이 그것을 알려 줍니다.”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부터 해방’이 매우 중요하다고 바울은 강조하는 바입니다.

< 바울은 복음의 빛 아래 말씀을 해석하고 증언합니다. >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의 교인들이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할례를 받음으로 율법의 종이 되려는 상태에 놓였다고 보았습니다. “할례를 받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례를 겸하여 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라는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면서 할례도 더하여 받으라고 하는 것이니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자체가 복음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허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내용 속에 매우 중요한 복음의 변질이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4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서 5∶4)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율법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만약 율법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진 자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 떨어진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에 율법을 통해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면, 할례만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할례를 포함한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갈라디아서 5∶3)

‘만약 할례를 통해 구원받으려는 자가 있다면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이다.’라는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6절에서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라디아서 5∶6)

바울은 분명히 밝힙니다. 할례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게 아니라, 어떤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이미 바울이 갈라디아서 앞부분에서 자세히 설명한 내용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바울은 할례라는 작은 행위를 덧붙이는 것이 율법에 속하는 것이고, 율법을 따르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로마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이미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로마서 3∶10~12 중, 새번역)

어찌 보면 세상 사람들은 이 말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선한 사람이 왜 없습니까? 자비를 행하는 사람이 왜 없습니까? 착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얼마든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형제나 자매를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또 간음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마음으로 여자를 범한 것이다.” 주님께서 율법을 해석하시면서 주님의 언어로 다시 선포해 주신 말씀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말씀하신 방식으로 율법을 해석한다면, 어느 누가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율법 앞에서 죄가 없다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이런 방법으로, 그러니까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다. 한 사람도 없다.”라는 바울의 말씀은 바로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빛 아래서 바울은 말씀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 구원은 오직 바깥으로부터 임합니다. >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래도 양심껏 살았으니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 또 “나는 나름대로 선하게 살았으니까 하늘나라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적인 잣대로 본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전한 말씀처럼 예수님이 해석해 주신 말씀의 빛으로 우리의 삶을 돌이켜본다면, 어느 누구도 “내가 선하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없고, “내가 나름대로 선하게 살았기 때문에 떳떳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율법 앞에서 죄인이며, 죄의 결과는 사망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구도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형편은 마치 깊은 구덩이에 빠진 자와도 같습니다. 아무리 스스로 힘으로 빠져나오려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갇힌 사람과 같은 운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생명을 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면, 바깥으로부터 구원이 허락되어야 합니다. 손이 내려오고, 밧줄이 내려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상황 속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힘으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인간의 유한한 실존입니다.
이 땅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많은 종교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자신 안에 빛이 숨겨져 있고, 지혜가 담겨져 있고, 그것을 잘 찾아 지혜를 구하고 닦고 밝히면 깨달음에 이르게 될 수 있으며, 구원에 이를 수 있다.”라고 가르치는 종교가 꽤 많습니다. 노력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를 실패로 이끌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정도 정돈된 삶을 살 수는 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선행을 베풀며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삶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밖으로부터 시작된 은혜가 필요합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나에게서부터 시작된 구원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나를 건지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느끼는 것이 바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구원에 도달해야만 한다.”라고 가르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이 정말 우리를 위한 신이겠습니까? “절반쯤은 도와줄 수 있지만, 절반은 네가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너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올라와야만 한다.”라고 가르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과연 그분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 신이며, 전능하신 신이 맞습니까?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구원은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전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능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으로 나가 우주를 바라보고 세상을 보십시오.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가 다시 살아나며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요?
바깥으로부터 오는 은혜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나, 죄가 없으신 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모든 율법의 조건을 폐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속죄의 은혜, 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여기에 어떤 것도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할 이유도 없습니다. 양심이나 도덕, 율법, 그 어떤 것도 보충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미 죄로부터의 자유를, 사망 권세로부터의 자유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얻었습니다.

< 구원받은 자는 참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

갈라디아서는 ‘구원’이란 말 대신 ‘자유’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죄의 노예였던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시고, 사망 권세에 붙잡힌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율법의 종 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자유가 바로 구원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 이후에 부활을 희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참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의 세계는 우는 소리로 가득 찬 세계가 아닙니다. 기도하느라 얼굴이 찌푸려진 세계가 아닙니다. 죄의식으로 사로잡혀 근심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무언가를 더해야 할 것 같아 이리저리 살피며 돌아다니는 세계가 아닙니다. 성경 구절을 많이 외워야 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기도에 분량을 채워야 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내야만 하는 법의 세계가 아닙니다.
환희에 찬 세계입니다.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를 누리는 세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와 은혜를 누리며 모든 것을 만끽하는 세계입니다. 염려가 없고, 근심이 없고, 죽음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참 자유를 누리는 세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을 통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1)

그럼에도 우리는 늘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려 할 때가 많습니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지켜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우리를 도전해 옵니다. 그 굴레로 들어가려 할 때가 많습니다. 갈라디아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속성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정말 너희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조언해 줍니다. 흥미로운 제안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이제까지 율법에 종이었던 우리에게 참 자유가 주어졌으니, 그 자유를 가지고 네가 이것들을 선택하면 어떻겠니?”라고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먼저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까?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번영입니다. 재앙이 아닙니다. 자유입니다. 죄로부터 자유, 사망 권세로부터의 자유, 인간의 한계로부터의 자유, 그것을 허락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시키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노동력이 필요해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에 봉사자가 필요해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궁극적인 하나님의 목적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러한 전제 아래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 선택하면 어떠하겠냐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13~15 중 )

세상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발견합니다. 서로 물고 먹는 세상입니다. 피차 멸망해 가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하라고 우리를 권면하십니다. 구원의 도구로,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나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자발적인 복종이요, 자유로운 결단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멋지게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선택입니다.

<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성령’을 구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합시다. >

사도 바울은 “너희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할례 같은 것을 받지 말고, 이웃 사랑할 것을 결단하라.”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은 또 한 가지, 우리 자유자가 결단해야 할 또 다른 것을 전해 줍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사도 바울은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유자가 되었으므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상태에 있으므로, 그 자유를 가지고 ‘성령’을 선택하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자유자가 된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우리가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선물이 성령이라고 말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9,13)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을 택하면 됩니다. 성령을 받겠다고 주님 앞에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 안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성령을 따라 살 때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지,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도 설명해 줍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성령을 간구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점차 변화시켜 가실 것입니다. 그 안에 사랑이 움트고, 희락이 움트고, 화평과 오래 참음이 나타나고,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내가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를 받아 누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자유를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유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나에게 주신 자유로 ‘이웃’을 섬기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을 섬기는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자유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성령’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성령 안에 살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바꿔 주시는 경험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홀로 살지 않습니다. 성령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웃과 함께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나의 힘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We Cannot Live Alone

Galatians 5: 13-15

If you had freedom, what would you do? Today’s scripture from Galatianschapter 5 must be read in connection to the preceding passages.

The Lord teaches us in Galatians 5:1 through Paul: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Galatians 5: 1)

This can be said to be the conclusion ofGalatians and the sum of the gospel. That Christ has set us free is a pillar of our faith. Jesus liberated us from sin. He set us freefrom the power of death. Paul explains that this is being liberated fromthe law, since it is the law that tells us about sin and its consequence, death.

Misled by legalism, the Galatians were on the verge of becoming slaves to the law by insisting on circumcision. Paul criticizes this, saying it would be better to go the whole way and emasculate themselves, instead of just cutting off their foreskin, if circumcision was so important to them. Accordingly,Paul says in verse 4, “You who are trying to be justified by the law have been alienated from Christ; you have fallen away from grace.”

Furthermore, he says that if one is saved by circumcision according to the law, one is obligated to do more than just circumcise himself and keep the whole law: “Again I declare to every man who lets himself be circumcised that he is obligated to obey the whole law.” (Galatians 5: 3)If someone wishes to be saved by circumcision, it is like wanting to be saved by observing the whole law. If this were true, salvation through Christ would be meaningless.

Therefore, Paul says in verse 6, “For in Christ Jesus neither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has any value. The only thing that counts is faith expressing itself through love.” (Galatians 5: 6) This is the very core of the gospel which is stressed by Paul in the earlier part of Galatians.

“We who are Jews by birth and not sinful Gentiles know that a perso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because by the works of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Galatians 2:15-16)

God made it clear through Paul in Romans: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Romans 3:10)Paul goes on to say, “there is no one who understands;there is no one who seeks God.All have turned away,they have together become worthless;there is no one who does good,not even one.” (Romans 3:11-12)

In Matthew chapter 5, Jesus talks about the kingdom of God in His Sermon on the Mount: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o the people long ago, ‘You shall not murder, and anyone who murders will be subject to judgment.’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is angry with a brother or sister will be subject to judgment. […]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looks at a woman lustfully has already committed adultery with her in his heart.” (Matthew 5:21-22, 27-28)

Jesus is saying that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by observing the law.No one can claim to be righteous before God because he has lived with a good conscience. We cannot say because of our goodness we deserve to enter the kingdom of God since everyone under the law is a sinner and the penalty of sin is death. No one can save himself. This very limitation, that fact that we cannot save ourselves with our own strength, represents man’s finite nature and his state of sin.

All religions have man save himself. They try to find something within man that would save him. Sadly, however, all such endeavors are futile. Religions may help us live a more orderly life and practice a little bit more good. But they will never lead us to a perfect life. We need grace from the outside. We need an external grace that will lift us out of our pit, not a salvation that comes from within.

This intervening grace is the cross. With our might, it is impossible. But we are forgiven all our sins by the precious blood of Jesus, God’s only Son who came to earth to save us. This forgiving grace, a faith that receives Christ on the cross, is what saves us.

Nothing need be added to this. Morals, conscience, the law… nothing can ever complement the sufficiency of God’s salvation. In this sense, we are free. We, who believe in Christ, have been freed from sin, the power of death, and the law.

The Book of Galatians often uses the word “freedom” in lieu of “salvation.” Because God loves us, He wants to set us free. God desires to liberate us from being slaves to sin, death, and the law. This freedom is salvation and God’s grace.

What does it mean to be saved? It is not just about gaining a hope of resurrection, but to live as truly free men with joy on earth. Therefore, a saved man does not cry and pout all the time. He does not frown in prayer. Nor is he anxious due to a sense of guilt. A saved man does not constantly seek to do more. He is not obligated to memorize more verses or to pray more. A saved man does not live in a world governed by the law. He lives in a world of freedom and joy. He is free to love God. By his faith alone that receives Jesus as Savior, he is free to enjoy God’s freedom and grace.

Therefore, the Lord speaks to us through Paul: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Galatians 5:1)

Yet, we often make the mistake of enslaving ourselves to sin. Oftentimes, we take back the yoke of slavery, telling ourselves that we have to do this or keep a certain law. This was what the Galatians were doing.

However, Paul gives them some interesting advice in today’s passage. He tells them to use their God-given freedom to voluntarily humble themselves like slaves, since they, who were once slaves to sin, have received true freedom from God: “You, my brothers and sisters, were called to be free. But do not use your freedom to indulge the flesh; rather, serve one another humbly in love.” (Galatians 5: 13)

Paul defines Christians as people who have been called. Then what have we been called to? Paul says that Christians have been called to be free. This is the good news. God’s purpose and will for us is to prosper and to be free. God called us to free us from sin, the law, death, and man’s finiteness. Paul doesn’t say God called us to do a certain work. God doesn’t say that He called us to serve the church because He needed laborers. The ultimate purpose of His calling is freedom. He wanted to set us free and to liberate us.

However, Paul does not stop here. He admonishes us further: “But do not use your freedom to indulge the flesh; rather, serve one another humbly in love.” (Galatians 5: 13)Paul goes on to say the following: “For the entire law is fulfilled in keeping this one comm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f you bite and devour each other, watch out or you will be destroyed by each other.” (Galatians 5: 14-15)

Paul talks about the people in this world. They bite and devour each other, destroying each other. In such a world, there is something we must do. God doesn’t order us to do it, but it is something that we, ourselves, can discover with our God-given freedom. What is it?

It is to love our neighbor as ourselves. Doing this is a voluntarily obedience and a free decision. Loving our neighbor as ourselves is the most beautiful and magnificent choice of a free man.

In the verse following the one on loving our neighbor as ourselves, Paul demands the free man to make yet another resolution: “So I say, walk by the Spirit, and you will not gratify the desires of the flesh.” (Galatians 5:16) A free man must resolve to live by the Spirit. This must be the voluntary decision of a Christian.

Paul describes the fruit manifested by the person who walks by the Spirit: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forbeara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Galatians 5: 22-23)

Dear Church, who is the Christian? He is one who has received the grace of God, one who has received His calling. What have we been called to? God has called us tofreedom.

Then, what must we do with that freedom? We must serve our neighbors voluntarily with the freedom He has given us. With that freedom, we must choose the Spirit. We must decide to live by the Spirit.

This is the life of the Christian. Christians do not live alone. They live with the Spirit. They live with their neighbors. This is how we must live with our God-given freedom.

We cannot live by our might alone. We live by grace. This is the life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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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 13 ~ 15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 복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선사합니다. >

오늘은 복음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나 혼자만 살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처음 준비할 때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말씀을 증거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중 마지막 부분에 있는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라는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서로 싸워서는 안 된다. 서로 물고 뜯으면 안 된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우리 모두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주제의 말씀을 증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제 마음에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정말 이 본문이 그런 내용인가? 이 본문이 과연 내가 말하려는 내용과 같은가?’라는 생각이 제 마음을 계속 울렸습니다.
물론 이 말씀, 이 흐름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이어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정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증거해야겠다.’라는 마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 ‘매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복음의 기초와 핵심에 대한 말씀을 전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날로 받아들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엇 때문에 부르신 걸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주 하면서도, 그에 대한 답을 좀처럼 발견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인 갈라디아서는 이와 같은 질문에 답변을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사도 바울로부터 귀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귀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단이 들어왔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이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점점 번지는 이단의 가르침을 지켜보며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를 향해 복음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왜 그들을 부르셨는지, 그리스도인들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라디아서는 우리 신앙의 기초를 쌓게 하는 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관점에서 갈라디아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부터 4장까지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전하는 복음의 진수와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잘못된 복음이 들어가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자신이 가르친 복음이 무엇인지,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5장부터는 그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결론을 이끌어 갑니다. 5장 1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이단은 어떤 이단이었을까요? 사실은 종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덧붙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할례도 겸하여 받아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할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것은 참된 복음이 아님을 설명한 것입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는 말씀은, ‘다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런 할례는 받지 않아야 한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왜 부르셨습니까? 자유하게 하시고자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자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라고 사도 바울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서에서는 이 말씀을 ‘해방시키려고’라는 말로 바꾸어 번역합니다. 이는 갈라디아서에서 매우 중요한 결론과도 같은 말씀이자 기독교의 본질을 밝히는 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하여’라는 것은 신앙의 핵심과도 같은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라는 말씀이자 ‘예수께서 우리를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기 위하여’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율법으로부터의 해방,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로 연결시켜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죄를 지정하며, 그 죄를 통해 우리 모두가 사망에 이르게 됨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사망입니다. 그 이유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죄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바로 율법이 그것을 알려 줍니다.”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부터 해방’이 매우 중요하다고 바울은 강조하는 바입니다.

< 바울은 복음의 빛 아래 말씀을 해석하고 증언합니다. >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의 교인들이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할례를 받음으로 율법의 종이 되려는 상태에 놓였다고 보았습니다. “할례를 받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례를 겸하여 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라는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면서 할례도 더하여 받으라고 하는 것이니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자체가 복음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허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내용 속에 매우 중요한 복음의 변질이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4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서 5∶4)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율법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만약 율법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진 자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 떨어진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에 율법을 통해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면, 할례만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할례를 포함한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갈라디아서 5∶3)

‘만약 할례를 통해 구원받으려는 자가 있다면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이다.’라는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6절에서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라디아서 5∶6)

바울은 분명히 밝힙니다. 할례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게 아니라, 어떤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이미 바울이 갈라디아서 앞부분에서 자세히 설명한 내용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바울은 할례라는 작은 행위를 덧붙이는 것이 율법에 속하는 것이고, 율법을 따르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로마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이미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로마서 3∶10~12 중, 새번역)

어찌 보면 세상 사람들은 이 말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선한 사람이 왜 없습니까? 자비를 행하는 사람이 왜 없습니까? 착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얼마든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형제나 자매를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또 간음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마음으로 여자를 범한 것이다.” 주님께서 율법을 해석하시면서 주님의 언어로 다시 선포해 주신 말씀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말씀하신 방식으로 율법을 해석한다면, 어느 누가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율법 앞에서 죄가 없다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이런 방법으로, 그러니까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다. 한 사람도 없다.”라는 바울의 말씀은 바로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빛 아래서 바울은 말씀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 구원은 오직 바깥으로부터 임합니다. >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래도 양심껏 살았으니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 또 “나는 나름대로 선하게 살았으니까 하늘나라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적인 잣대로 본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전한 말씀처럼 예수님이 해석해 주신 말씀의 빛으로 우리의 삶을 돌이켜본다면, 어느 누구도 “내가 선하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없고, “내가 나름대로 선하게 살았기 때문에 떳떳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율법 앞에서 죄인이며, 죄의 결과는 사망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구도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형편은 마치 깊은 구덩이에 빠진 자와도 같습니다. 아무리 스스로 힘으로 빠져나오려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갇힌 사람과 같은 운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생명을 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면, 바깥으로부터 구원이 허락되어야 합니다. 손이 내려오고, 밧줄이 내려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상황 속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힘으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인간의 유한한 실존입니다.
이 땅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많은 종교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자신 안에 빛이 숨겨져 있고, 지혜가 담겨져 있고, 그것을 잘 찾아 지혜를 구하고 닦고 밝히면 깨달음에 이르게 될 수 있으며, 구원에 이를 수 있다.”라고 가르치는 종교가 꽤 많습니다. 노력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를 실패로 이끌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정도 정돈된 삶을 살 수는 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선행을 베풀며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삶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밖으로부터 시작된 은혜가 필요합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나에게서부터 시작된 구원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나를 건지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느끼는 것이 바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구원에 도달해야만 한다.”라고 가르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이 정말 우리를 위한 신이겠습니까? “절반쯤은 도와줄 수 있지만, 절반은 네가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너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올라와야만 한다.”라고 가르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과연 그분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 신이며, 전능하신 신이 맞습니까?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구원은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전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능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으로 나가 우주를 바라보고 세상을 보십시오.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가 다시 살아나며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요?
바깥으로부터 오는 은혜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나, 죄가 없으신 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모든 율법의 조건을 폐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속죄의 은혜, 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여기에 어떤 것도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할 이유도 없습니다. 양심이나 도덕, 율법, 그 어떤 것도 보충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미 죄로부터의 자유를, 사망 권세로부터의 자유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얻었습니다.

< 구원받은 자는 참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

갈라디아서는 ‘구원’이란 말 대신 ‘자유’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죄의 노예였던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시고, 사망 권세에 붙잡힌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율법의 종 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자유가 바로 구원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 이후에 부활을 희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참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의 세계는 우는 소리로 가득 찬 세계가 아닙니다. 기도하느라 얼굴이 찌푸려진 세계가 아닙니다. 죄의식으로 사로잡혀 근심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무언가를 더해야 할 것 같아 이리저리 살피며 돌아다니는 세계가 아닙니다. 성경 구절을 많이 외워야 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기도에 분량을 채워야 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내야만 하는 법의 세계가 아닙니다.
환희에 찬 세계입니다.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를 누리는 세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와 은혜를 누리며 모든 것을 만끽하는 세계입니다. 염려가 없고, 근심이 없고, 죽음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참 자유를 누리는 세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을 통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1)

그럼에도 우리는 늘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려 할 때가 많습니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지켜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우리를 도전해 옵니다. 그 굴레로 들어가려 할 때가 많습니다. 갈라디아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속성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정말 너희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조언해 줍니다. 흥미로운 제안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이제까지 율법에 종이었던 우리에게 참 자유가 주어졌으니, 그 자유를 가지고 네가 이것들을 선택하면 어떻겠니?”라고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먼저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까?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번영입니다. 재앙이 아닙니다. 자유입니다. 죄로부터 자유, 사망 권세로부터의 자유, 인간의 한계로부터의 자유, 그것을 허락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시키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노동력이 필요해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에 봉사자가 필요해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궁극적인 하나님의 목적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러한 전제 아래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 선택하면 어떠하겠냐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13~15 중 )

세상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발견합니다. 서로 물고 먹는 세상입니다. 피차 멸망해 가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하라고 우리를 권면하십니다. 구원의 도구로,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나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자발적인 복종이요, 자유로운 결단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멋지게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선택입니다.

<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성령’을 구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합시다. >

사도 바울은 “너희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할례 같은 것을 받지 말고, 이웃 사랑할 것을 결단하라.”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은 또 한 가지, 우리 자유자가 결단해야 할 또 다른 것을 전해 줍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사도 바울은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유자가 되었으므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상태에 있으므로, 그 자유를 가지고 ‘성령’을 선택하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자유자가 된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우리가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선물이 성령이라고 말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9,13)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을 택하면 됩니다. 성령을 받겠다고 주님 앞에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 안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성령을 따라 살 때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지,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도 설명해 줍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성령을 간구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점차 변화시켜 가실 것입니다. 그 안에 사랑이 움트고, 희락이 움트고, 화평과 오래 참음이 나타나고,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내가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를 받아 누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자유를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유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나에게 주신 자유로 ‘이웃’을 섬기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을 섬기는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자유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성령’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성령 안에 살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바꿔 주시는 경험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홀로 살지 않습니다. 성령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웃과 함께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나의 힘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2020년 7월 19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나 혼자만 살 수 없습니다” (갈 5:13-15)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91장, 22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갈 5:13-1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7월 19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 본문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쓴 편지입니다. 갈라디아의 교인들은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서 할례를 받음으로 율법의 종이 되려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따라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에게, 할례만 해서는 안 될 것이고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갈 5:3). 그렇다면 바울이 강조하는 복음은 무엇일까요?

 설교의 요약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그러므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홀로 구원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힘으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이 제한성이 바로 인간의 유한성이며 죄의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 아들의 보혈로 우리는 보혈이 요구하는 모든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죽음 이후에 부활한다는 희망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참 자유자로 살아간다는 말이며, 기쁨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의 세계는 줄 곳 우는 소리로 가득 찬 세계가 아닙니다. 기도하느라 얼굴이 찌푸러진 세계가 아닙니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근심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환희에 찬 자유의 세계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제 흥미로운 제안을 합니다. 첫째로, 이제까지 율법의 종이었던 우리에게 참 자유가 주어졌으니, 이제는 그 자유를 가지고, 스스로 종처럼 그렇게 자발적으로 낮아져 보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시키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노동력이 필요해서 교회 봉사자가 필요해서 부르셨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갈 5:13). 그 자유로 나의 이웃을 나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발적인 복종이요, 자유로운 결단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멋진 자유자의 선택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성령과 함께 살아가라고 제안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 5:16). 스스로 성령을 따라 살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로운 결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자유를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자유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나에게 주신 그 자유로 이웃을 섬기는 종이 되고, 성령 안에서 살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살지 않습니다. 성령과 이웃과 함께 살아갑니다. 

 나누기

 1. 우리는 복음에 바로 서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믿으십니까?

 2. 내게 구원을 주신 이유, 참 자유를 주신 이유는 홀로 살지 않고 성령과 함께, 이웃과 함께 살기 위함이라 했는데, 이번 한 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께서 주시는 이 자유로 다시는 세상의 종이 되지 않고 성령의 종이 되어 이웃을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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