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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깨어 있으라

마태복음 24: 36 ~ 44

김경진 목사

2019.12.01

<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

2019년 12월 1일입니다. 12월의 첫날이자 대림절 첫 주일이기도 합니다. 대림절은 ‘주님의 강림을 기다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대림절을 성탄절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대림절이 담고 있는 기다림의 의미는 예수님의 초림보다 재림에 가깝습니다. 특히 장차 오실 주님, 심판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가 대림절입니다. 성경 맨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을 붙잡고 “아멘! 주 예수여, 다시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계 교회가 대림절을 보낼 때 첫 주일 말씀으로 지정한 세 본문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읽은 말씀은 세계의 많은 교회에서 읽히는, 특히 대림절에 읽히는 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함께 읽고 나누며, 온 세계 교회와 더불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귀한 절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4장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을 분명히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재림과 관련해 하신 말씀,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매우 중요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라는 내용입니다.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자신도 그 날이 언제일지는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단, 우리 주님은 자신이 다시 오시는 그 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생생히 일러 주셨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입니다.
두 사람이 밭에 나가 있습니다. 일을 한참 하는데,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는데, 그 날이 이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긴박한 내용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주님은 그 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이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42,44)

즉 오늘 본문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날이 반드시 임할 것이다. 그 날이 언제일지 알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 날을 기다려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다.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 주님의 재림에 관한 해석은 거시적인 안목을 요구합니다. >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 주님께서 “깨어 있으라!”, “준비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깨어 있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준비한다면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 주님께서 “지금 준비하라!”라고, “깨어 있으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라고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문자 그대로 ‘깨어 있다’라는 말로 이해하면 될까요? 잠을 자지 않으면 됩니까? 아마 잠을 자지 않으면 곧 주님을 만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만남이 아니라 스스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겠지요. ‘잠을 자지 않는다’라는 말로 ‘깨어 있으라’라는 말을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즉, 문자 그대로 해석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을 암송하고 있으라’는 말씀일까요? 혹은 ‘일정한 기도의 분량을 채우라’는 말씀일까요? 도대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종종 이 문제를 너무 쉽게 문자적으로 이해하거나 때로는 매우 자의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이단들이나 왜곡된 신앙을 가진 분들이 이 문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1990년대 초 세상의 종말을 주장한 ‘다미선교회’가 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지구가 종말할 것이라고 주장한 선교단체입니다.
그 단체가 주장한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날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지요. 책도 발간했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라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준비는 이런 것들입니다. 휴거를 믿어야 하고, 재림과 관련해 특별한 직통 계시가 임하고 있으니 그 직통 계시에 순종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을 넘어서는 직통 계시를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집을 버리고 기도원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다 팔아 하나님께 바치고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예언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예언자의 명령에 복종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기 위해, 그 예언자 앞에서 벌레를 먹게 하는 일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긴급한 전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정해졌으므로 이제 밤낮으로 자지 말고, 함께 깨어 기도하고 찬송하며 그 날을 맞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예수님이라고 해도, 그 날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종말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과연 옳은 방법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그 날과 그때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시며 “깨어 있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다른 이야기를 몇 가지 더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마태복음 24~25장에서 이어집니다. 거기에는 4가지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4가지 비유를 함께 읽고, 그 말씀을 거시적으로 보아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깨어 있는 것 그리고 준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그 부분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 깨어 있는 삶이란 아는 것을 넘어 준비하는 삶입니다. >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하신 뒤에 예수님은 4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앞에 2개의 비유가 있고, 또 뒤에 2개의 비유가 있습니다. 첫째 비유는 ‘악한 종에 관한 비유’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무엇인가를 맡기고, 먼 길을 떠났다 돌아왔는데 악한 종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지 않았고, 주인이 종을 혼냈다는 내용입니다. 이어 두 번째 비유가 나오는데,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는데, 나머지 다섯 처녀는 준비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이 두 비유의 말씀이 있은 후, 한 번 더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먼저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은 24장 42절에 위치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라고 말씀하셨는데, 열 처녀의 비유가 있은 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두 비유를 말씀하시면서도 여전히 ‘깨어 있어야 한다’라는 논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뒤 이어지는 비유가 두 개입니다. 첫 번째 비유는 ‘달란트 비유’이며, 두 번째 비유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는 비유’입니다.
이렇게 중간에 깨어 있으라는 말씀과 더불어 나타나는 4가지 비유를 조금 먼발치에서 거시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나타난 이야기는 종에게 일을 맡기고 먼 길을 떠났다 돌아온 주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내용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했던 종들에게 있습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악한 종들은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때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각에,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그 시각에 주인이 왔습니다. 주인은 종을 엄히 때리고, 벌을 내렸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이 비유의 말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종들이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다’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이 열 처녀의 비유는 여러분도 너무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모두가 신랑을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신랑이 도착했을 때는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다섯 처녀는 기름이 있긴 했지만 충분하지 못해 당황하게 되었고, 결국 더 많은 기름을 얻기 위해 나갔다가 혼인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열 처녀 비유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기름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데 관심을 쏟곤 합니다. ‘이 기름이 무엇일까? 무엇을 준비하라는 말인가? 기름을 준비하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래서 많은 사람이 기름은 충분한 기도라든지, 보혈이라든지, 성례라든지, 선행이라든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라든지, 헌신이라든지 등으로 기름을 해석하곤 합니다. 때로는 자의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은혜로운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열 처녀의 비유는 기름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데 핵심이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름이 떨어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데 의미와 핵심이 있습니다. 열 처녀 비유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는 단순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 뒤에 나오는 나머지 두 비유가 서로 연결되고, 그 의미를 더해가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들은 따로 떼어 볼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함께 붙여서 이해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 처녀의 비유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우 중대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분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는데, 기다리는 것은 좋은데, 과연 ‘실제적으로 준비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열 처녀 모두 신랑이 올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들은 모두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신랑이 왔을 때, 그들은 정작 자신의 등불을 밝힐 기름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재림이 있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는 것과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라는 교훈을 열 처녀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준비가 되어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의 날짜가 있습니다. 시험을 알고 있습니다. 시험의 날짜가 오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험이 준비된 것은 아닙니다. 시험에 합격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열 처녀 비유는 바로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이 도래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알고 있는 바를 죽음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에게 이것을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것을 믿고 있지요? 그렇다면 정말 그 날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까? 정말 그 날을 위해 준비된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 처녀 비유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앞서 나오는 이 두 비유, 악한 종의 비유와 열 처녀의 비유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기다림 자체, 즉 더디 올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며,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꼬집고 있습니다. 또 만약 그 시기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실제적인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을 다시 강조합니다. 열 처녀 비유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신 후, 이제 본격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깨어 있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말씀하십니다. 그 비유가 이어지는 두 개의 비유입니다.

< 내게 허락하신 달란트를 선용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

첫 번째 비유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여러분이 너무 잘 아시는 비유일 것입니다. 달란트를 받은 종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있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이 있으며,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 있습니다. 주인은 멀리 여행을 떠납니다. 이후 한참 뒤에 돌아오지요. 돌아와서 종들에게 달란트를 어떻게 했는지 묻습니다. 그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 주인에게 보여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겨 주인에게 알립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무서워하다 땅속에 묻어 둔 한 달란트를 그대로 꺼내 돌려줍니다. 그때 주인이 그 종을 호되게 야단칩니다. 이것이 달란트 비유의 내용입니다. 이 달란트의 비유가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는 흐름의 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 비유, 즉 달란트 비유가 이곳에 있을까’라는 점입니다. 달란트라는 말은 ‘재능’을 의미합니다. ‘talent’입니다. 이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이것이 재림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입니까?
우리 예수님이 재림과 관련해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신 데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각자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 있습니다.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달란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실 때 바로 그것을 계산하신다.’라는 힌트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를 얼마나 잘 활용했느냐, 나에게 주신 재능과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를, 주님께서 오실 때 계산하시겠다는 말씀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바로 ‘나의 재능과 나의 능력, 나에게 주신 모든 것들,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힘으로 과연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나의 재능과 소유를 올바로 사용해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삶의 태도임을 우리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또 다른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는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오른쪽과 왼쪽에 사람들을 구별하시는 내용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 사람들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구별하여 세우십니다. 양과 염소를 구별하여 세우듯이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구별하시는 방법을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25~3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내가 언제 주님을 그렇게 대했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니라.”(마25:40)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의 말씀이 재림의 이야기 속에 들어있습니다. 핵심적인 열쇠가 이곳에 있습니다. 재림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시게 될 매우 중요한 근거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였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 ‘그들에게 어떻게 대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보면서 우리 주위에 있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외롭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공헌과 같은 내용으로 한정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이보다 넓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만나는 모든 관계에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을 내가 어떻게 대했는가?’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을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종말에 우리를 판단하시는 근거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가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네가 살았던 바로 그동안에, 만났던 그 사람들과 너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느냐? 그들을 도와주었느냐? 그들을 위로한 적이 있느냐? 그들의 삶을 살펴준 적이 있었느냐?” 그것을 우리 주님께서는 물으십니다.
사실 굳이 성경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우리의 삶만 반추해 봐도, 얼마든지 이와 같은 내용을 우리의 삶에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의사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일종의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 의학적인 검사 끝에 의학적인 선고를 내립니다. “선생님은 이제 3개월밖에 살 수 없습니다.” 혹은 “6개월밖에 살 수 없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삶을 정리하십시오.”라는 선고를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종말의 날이 이르고 있습니다. 곧 심판의 날이 다가오지요.” 그와 같은 선고를 받으면, 여러분은 무엇부터 생각할 것 같습니까?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 삶의 족적은 어떠했는가, 내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나는 과연 정말 뜻있게 사용했는가, 내게 주셨던 그 많은 기회를 부끄러움 없이 사용했는가,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왔는가?’ 아마 그렇게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졌던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내게 주어졌던 재능은 어떠했는가? 내게 주어진 그 많은 기회를 어떻게 사용했는가? 이제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모든 것을 잘 사용하고 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서 던질 질문은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옆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일 것입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내가 이제 떠나게 되면, 그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가 될까? 내 아내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의 남편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의 아들과 딸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어떤 존재를 남을까? 그들에게 나는 무엇이 될까? 그들은 나를 통해 기쁨을 얻었을까? 나를 통해 그동안 기쁨을 얻었을까? 아니면 생각하고도 싶지 않은 사람이었을까? 내가 이 세상에 더 있기를 원할까? 아니면 차라리 빨리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마태복음 25장은 바로 이와 같은 평범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매우 평범하지만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마땅히 해야 할 삶의 모범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 내 삶의 자리에서부터 종말을 준비합시다. >

이제 생각해 봅시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달란트의 비유와 양과 염소를 가르신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그 달란트, 온전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서 하나님께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 주위에 주님께서 보내주셨던 가난한 자들, 어려운 사람들, 이웃들, 가족들, 친구들, 그 사람들에게 나는 유익한 사람으로 남아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는 그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그분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한복음 17:4)

예수님은 자신의 소명을 완전히 이루어 내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완전하게 이루어 아버지 이름을 영화롭게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분은 예수님 한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이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한 번 더 생각해 봅니다. 가난한 사람들, 이웃들을 어떻게 돌보았느냐고 물으셨던 주님, 그 주님의 삶은 어떠하셨습니까? 로마서 5장 8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우리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들 한 사람에게 그저 옷가지 하나 주신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목숨을 그들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이웃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을 믿으십니까? 성경은 인류의 종말이 주님의 재림과 함께 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종말이 믿어지지 않으신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일 년에 일억 명의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주님의 재림은 용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각자 자신의 죽음이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는 없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날에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주님 앞에 무엇을 내어놓을 것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재림을 준비하는 일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을 주시고, 사람들을 주시고, 시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재림을 준비할 것입니다. 종말의 준비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것에 있지 않습니다. 탈 일상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태어난 삶의 목적을 온전하게 이루는 일에서부터 재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이 하나님인 것처럼 대하며, 사랑을 전하는 삶에서 재림이 준비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귀한 대림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3)

Therefore, Keep Watch

Matthew 24:36-44

Today is the First Sunday of Advent. Advent is a time of preparing and waiting for the coming of Jesus. In the very last part of the Bible, Revelation 22:20, it says, “H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says, ‘Yes,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Like this confession, Advent is a season of expectant waiting for Jesus. Then what does it mean to wait for the coming of Christ?

Historically, the coming of Jesus has been interpreted by Christians in two ways: first, the First Coming or the Nativity and, second, the Second Coming of Christ. During Advent, many churches in Korea tend to focus on the former.So, in awaiting the birth of baby Jesus 2000 years ago in Bethlehem, Christians also expectantly wait for Him to come into our hearts and to be reborn in it. From this perspective, Advent is commonly understood as a season to prepare for Christmas.

However, the true meaning of Advent is somewhat different: it is more closely related to the Second Coming. If we understand Advent from this perspective, “waiting for the coming of Jesus” means to wait for the day He will return in judgement. The significance of Advent lies in waiting for our Lord who ascended to heaven as the disciples watched and promised to return.

Today’s passage from Matthew chapter 24 is one of the three scriptures commonly chosen by world churches to be read on the First Sunday of Advent. It emphasizes that the day of Jesus’ coming is unknown. No one—not even the angels or the Son—knows. Only the Father knows. In this chapter, Jesus depicts a vivid picture of how it will be when He returns. Two men will be in the field: one wi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Jesus continues,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on what day your Lord will come.” (Matthew 24:42) He also says, “So you also must be ready, because the Son of Man will come at an hour when you do not expect him.” (Matthew 24:44)

Then what does it mean “to be ready” for the return of Christ? What does it mean to “keep watch”? Does it mean to be awake at all times and not sleep? We tend to interpret these questions either too literally or too arbitrarily. Many heresies deceived people with arbitrary interpretations. For example, the Dami Mission prophesied that the rapture and the end of the world would come on October 28, 1992. As many of you may recall, many Koreans were deceived and tempted by it. It said that, in order to prepare for the coming of Christ, people had to believe in the rapture, strictly obey the revelations on the Second Coming, abandon their homes, live in prayer houses, give all their possessions to God, and obey the commands of the prophet.

Dear Church, what do you make of such arguments? Is this the right way to prepare for the Second Coming? Hardly. Then how should we be ready for the Second Coming of Christ? More realistically, how are you preparing for the end, your death? To answer these questions, we must look at today’s scripture from a broader perspective. We must widen our view and look at not only Matthew chapter 24 but also chapter 25.

Jesus tells us that the day or hour is unknown. He makes no mention of a special sign or a revelation from a prophet as the day nears. It would be good to have a special sign or prophet, wouldn’t it? But none of these are mentioned by Jesus in Matthew chapter 24.

First, we must pay attention to an expression that is intentionally repeated. Matthew 24:42 says,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on what day your Lord will come.” In Matthew 25:13 it also says,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the day or the hour.” This repetition tells us that the stories in chapter 24 and 25 are somehow connected to each other. Then, let’s have a look at the stories.

In chapter 24, a prophecy on His Second Coming is given, and Jesus advises us to “keep watch”and “be ready.” Then, in the last part of chapter 24, there is a story about a wise, faithful servant. And, very naturally, the message of this story is connected to the three parables in chapter 25. All of these stories and parables are related to Jesus’ Second Coming.

First, the story of the wise and faithful servant whom the master put in charge while he was gone. The emphasis of this story is in the master who will punish the servant if he finds him eating with drunkards and beating his fellow servants upon his return at an unknown hour.

This story is followed by three parables in chapter 25: the parable of the ten virgins, the parable of the talents, and the parable of the sheep and the goats. In the parable of ten virgins, Jesus tells us that,while five virgins were wise and prepared oil when they went out to meet the bridegroom, the other five were foolish and did not take oil with them. The foolish five could not go to the wedding banquet with the groom.

Although there are many interpretations on what the “oil” signifies, the key message of this parable is clear: Are we preparing for the Second Coming of Christ in substantial ways? “Knowing” that He will come and “being ready” are two different things. We sometimes mistakenly believe that we are ready because we are aware of His Second Coming. However, knowing and being prepared are two very different things. Thus, the parable of the ten virgins asks us whether we are truly ready for the SecondComing. Dear Church, are you really preparing yourself for His coming, the end, the judgement?

However, the parable of the ten virgins does not tell us how exactly we must prepare for His coming. The two parables that follow do. They tell us about Jesus’ criteria for judgement when He returns.

In the parable of the talents, a master gives his servants one, two, and five talents, respectively, as he goes off on a journey. When he returns, he finds that some of his servants had gained more, while the one given one talent hid his money in the ground. The talents refer to our personal talents, abilities, money, wealth, power, honor, and all that He has given us. Jesus is telling us that He will judge us on what we have done with these when He returns. He is telling us that we must bear fruit in this world with the abilities that He has given us. This is how we should keep watch and prepare for the end.

The third parable is the one on the goat and the sheep. Jesus tells us that the sheep will be put on His right, while the goats on His left. Strikingly, the criteria for separation is how we treat the people around us. Our relationship with the people in this world counts. Jesus says, “For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something to eat,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something to drink, I was a stranger and you invited me in,I needed clothes and you clothed me, I was sick and you looked after me, I was in prison and you came to visit me.” (Matthew 25:35-36) Upon His return, Jesus will judge us on how we treated the people we met, what we did to them, and how we interacted with them. We tend to understand this parable as Jesus’ teaching on how we should treat the poor, sick, and lonely. This is also true. But, from a broader perspective, Jesus is telling us that, when He judges us, He will examine how we treated all those we have encountered.

Dear Church, imagine that you have been diagnosed with a terminal illness today. How will you live the rest of your life?First, you might reflect on whether your life has been meaningful. This may lead you to consider whether you have used all that you have—your abilities, your strengths, your opportunities—well. You may ask yourself, ‘What am I leaving behind with what was given to me in this life?’ Second, you might ask yourself, ‘What kind of person was I to the people around me? Who was Ito my spouse and children? What am I to them? Did they receive joy through me?’

Through these very simple and ordinary parables, Matthew chapter 25 is telling us to “keep watch.” Now, let’s look at how Jesus lived. Jesus told us that He would separate the sheep and the goats. He also told us that He would punish the lazy servant who put his talent in the ground. Then how did Our Lord live His life?

John 17:4 says, “I have brought you glory on earth by finishing the work you gave me to do.” In other words, Jesus fulfilled His mission. With all the time, environment, and resources given to Him, He did the will of God. He gave all that He had for the work of God. He lived a full, complete life. Think of the parable of the sheep and the goats. After asking us what we gave Him when He was thirsty, He asks us how we treated others. Then, how did He treat us? He gave His life as a sacrifice for us. As Romans 5:8 states,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Jesus died for us, demonstrating God’s love for us. Yes, Jesus gave his life for us.

Dear Church, do you believe that the world will come to an end? The Bible teaches us that it will. If you don’t have this eschatological belief, then consider this. One hundred million people are said to die each year. Some may arguethat Christ’s Second Coming is an all-too-distant future. But consider the fact that all of us, without exception, will surely face death one day. After we are dead, we have no chance. We don’t have much time. There’s not much time left before each of us faces the Lord. On that day, we will all stand before God’s judgement. On that day, what can we show Him?

Preparing for the Second Coming, which the Lord requires of us, is a very realistic matter. It is because God has given us land, people, and time. Preparing for the Second Coming or preparing for the end is not about doing abnormal, unordinary things. It is to fully realize the purpose of our lives, to sincerely love the people given to us, to treat them as if they were Christ, and to live in harmony with them. May this Advent be a precious season to prepare for the Second Coming of our Lord.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the day or the hour.” (Matthew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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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 36 ~ 44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

2019년 12월 1일입니다. 12월의 첫날이자 대림절 첫 주일이기도 합니다. 대림절은 ‘주님의 강림을 기다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대림절을 성탄절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대림절이 담고 있는 기다림의 의미는 예수님의 초림보다 재림에 가깝습니다. 특히 장차 오실 주님, 심판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가 대림절입니다. 성경 맨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을 붙잡고 “아멘! 주 예수여, 다시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계 교회가 대림절을 보낼 때 첫 주일 말씀으로 지정한 세 본문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읽은 말씀은 세계의 많은 교회에서 읽히는, 특히 대림절에 읽히는 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함께 읽고 나누며, 온 세계 교회와 더불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귀한 절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4장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을 분명히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재림과 관련해 하신 말씀,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매우 중요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라는 내용입니다.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자신도 그 날이 언제일지는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단, 우리 주님은 자신이 다시 오시는 그 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생생히 일러 주셨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입니다.
두 사람이 밭에 나가 있습니다. 일을 한참 하는데,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는데, 그 날이 이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긴박한 내용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주님은 그 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이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42,44)

즉 오늘 본문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날이 반드시 임할 것이다. 그 날이 언제일지 알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 날을 기다려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다.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 주님의 재림에 관한 해석은 거시적인 안목을 요구합니다. >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 주님께서 “깨어 있으라!”, “준비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깨어 있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준비한다면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 주님께서 “지금 준비하라!”라고, “깨어 있으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라고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문자 그대로 ‘깨어 있다’라는 말로 이해하면 될까요? 잠을 자지 않으면 됩니까? 아마 잠을 자지 않으면 곧 주님을 만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만남이 아니라 스스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겠지요. ‘잠을 자지 않는다’라는 말로 ‘깨어 있으라’라는 말을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즉, 문자 그대로 해석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을 암송하고 있으라’는 말씀일까요? 혹은 ‘일정한 기도의 분량을 채우라’는 말씀일까요? 도대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종종 이 문제를 너무 쉽게 문자적으로 이해하거나 때로는 매우 자의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이단들이나 왜곡된 신앙을 가진 분들이 이 문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1990년대 초 세상의 종말을 주장한 ‘다미선교회’가 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지구가 종말할 것이라고 주장한 선교단체입니다.
그 단체가 주장한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날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지요. 책도 발간했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라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준비는 이런 것들입니다. 휴거를 믿어야 하고, 재림과 관련해 특별한 직통 계시가 임하고 있으니 그 직통 계시에 순종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을 넘어서는 직통 계시를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집을 버리고 기도원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다 팔아 하나님께 바치고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예언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예언자의 명령에 복종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기 위해, 그 예언자 앞에서 벌레를 먹게 하는 일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긴급한 전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정해졌으므로 이제 밤낮으로 자지 말고, 함께 깨어 기도하고 찬송하며 그 날을 맞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예수님이라고 해도, 그 날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종말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과연 옳은 방법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그 날과 그때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시며 “깨어 있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다른 이야기를 몇 가지 더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마태복음 24~25장에서 이어집니다. 거기에는 4가지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4가지 비유를 함께 읽고, 그 말씀을 거시적으로 보아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깨어 있는 것 그리고 준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그 부분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 깨어 있는 삶이란 아는 것을 넘어 준비하는 삶입니다. >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하신 뒤에 예수님은 4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앞에 2개의 비유가 있고, 또 뒤에 2개의 비유가 있습니다. 첫째 비유는 ‘악한 종에 관한 비유’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무엇인가를 맡기고, 먼 길을 떠났다 돌아왔는데 악한 종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지 않았고, 주인이 종을 혼냈다는 내용입니다. 이어 두 번째 비유가 나오는데,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는데, 나머지 다섯 처녀는 준비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이 두 비유의 말씀이 있은 후, 한 번 더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먼저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은 24장 42절에 위치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라고 말씀하셨는데, 열 처녀의 비유가 있은 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두 비유를 말씀하시면서도 여전히 ‘깨어 있어야 한다’라는 논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뒤 이어지는 비유가 두 개입니다. 첫 번째 비유는 ‘달란트 비유’이며, 두 번째 비유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는 비유’입니다.
이렇게 중간에 깨어 있으라는 말씀과 더불어 나타나는 4가지 비유를 조금 먼발치에서 거시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나타난 이야기는 종에게 일을 맡기고 먼 길을 떠났다 돌아온 주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내용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했던 종들에게 있습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악한 종들은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때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각에,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그 시각에 주인이 왔습니다. 주인은 종을 엄히 때리고, 벌을 내렸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이 비유의 말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종들이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다’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이 열 처녀의 비유는 여러분도 너무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모두가 신랑을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신랑이 도착했을 때는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다섯 처녀는 기름이 있긴 했지만 충분하지 못해 당황하게 되었고, 결국 더 많은 기름을 얻기 위해 나갔다가 혼인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열 처녀 비유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기름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데 관심을 쏟곤 합니다. ‘이 기름이 무엇일까? 무엇을 준비하라는 말인가? 기름을 준비하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래서 많은 사람이 기름은 충분한 기도라든지, 보혈이라든지, 성례라든지, 선행이라든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라든지, 헌신이라든지 등으로 기름을 해석하곤 합니다. 때로는 자의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은혜로운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열 처녀의 비유는 기름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데 핵심이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름이 떨어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데 의미와 핵심이 있습니다. 열 처녀 비유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는 단순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 뒤에 나오는 나머지 두 비유가 서로 연결되고, 그 의미를 더해가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들은 따로 떼어 볼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함께 붙여서 이해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 처녀의 비유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우 중대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분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는데, 기다리는 것은 좋은데, 과연 ‘실제적으로 준비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열 처녀 모두 신랑이 올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들은 모두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신랑이 왔을 때, 그들은 정작 자신의 등불을 밝힐 기름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재림이 있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는 것과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라는 교훈을 열 처녀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준비가 되어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의 날짜가 있습니다. 시험을 알고 있습니다. 시험의 날짜가 오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험이 준비된 것은 아닙니다. 시험에 합격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열 처녀 비유는 바로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이 도래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알고 있는 바를 죽음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에게 이것을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것을 믿고 있지요? 그렇다면 정말 그 날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까? 정말 그 날을 위해 준비된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 처녀 비유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앞서 나오는 이 두 비유, 악한 종의 비유와 열 처녀의 비유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기다림 자체, 즉 더디 올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며,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꼬집고 있습니다. 또 만약 그 시기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실제적인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을 다시 강조합니다. 열 처녀 비유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신 후, 이제 본격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깨어 있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말씀하십니다. 그 비유가 이어지는 두 개의 비유입니다.

< 내게 허락하신 달란트를 선용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

첫 번째 비유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여러분이 너무 잘 아시는 비유일 것입니다. 달란트를 받은 종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있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이 있으며,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 있습니다. 주인은 멀리 여행을 떠납니다. 이후 한참 뒤에 돌아오지요. 돌아와서 종들에게 달란트를 어떻게 했는지 묻습니다. 그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 주인에게 보여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겨 주인에게 알립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무서워하다 땅속에 묻어 둔 한 달란트를 그대로 꺼내 돌려줍니다. 그때 주인이 그 종을 호되게 야단칩니다. 이것이 달란트 비유의 내용입니다. 이 달란트의 비유가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는 흐름의 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 비유, 즉 달란트 비유가 이곳에 있을까’라는 점입니다. 달란트라는 말은 ‘재능’을 의미합니다. ‘talent’입니다. 이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이것이 재림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입니까?
우리 예수님이 재림과 관련해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신 데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각자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 있습니다.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달란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실 때 바로 그것을 계산하신다.’라는 힌트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를 얼마나 잘 활용했느냐, 나에게 주신 재능과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를, 주님께서 오실 때 계산하시겠다는 말씀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바로 ‘나의 재능과 나의 능력, 나에게 주신 모든 것들,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힘으로 과연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나의 재능과 소유를 올바로 사용해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삶의 태도임을 우리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또 다른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는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오른쪽과 왼쪽에 사람들을 구별하시는 내용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 사람들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구별하여 세우십니다. 양과 염소를 구별하여 세우듯이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구별하시는 방법을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25~3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내가 언제 주님을 그렇게 대했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니라.”(마25:40)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의 말씀이 재림의 이야기 속에 들어있습니다. 핵심적인 열쇠가 이곳에 있습니다. 재림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시게 될 매우 중요한 근거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였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 ‘그들에게 어떻게 대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보면서 우리 주위에 있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외롭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공헌과 같은 내용으로 한정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이보다 넓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만나는 모든 관계에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을 내가 어떻게 대했는가?’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을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종말에 우리를 판단하시는 근거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가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네가 살았던 바로 그동안에, 만났던 그 사람들과 너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느냐? 그들을 도와주었느냐? 그들을 위로한 적이 있느냐? 그들의 삶을 살펴준 적이 있었느냐?” 그것을 우리 주님께서는 물으십니다.
사실 굳이 성경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우리의 삶만 반추해 봐도, 얼마든지 이와 같은 내용을 우리의 삶에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의사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일종의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 의학적인 검사 끝에 의학적인 선고를 내립니다. “선생님은 이제 3개월밖에 살 수 없습니다.” 혹은 “6개월밖에 살 수 없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삶을 정리하십시오.”라는 선고를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종말의 날이 이르고 있습니다. 곧 심판의 날이 다가오지요.” 그와 같은 선고를 받으면, 여러분은 무엇부터 생각할 것 같습니까?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 삶의 족적은 어떠했는가, 내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나는 과연 정말 뜻있게 사용했는가, 내게 주셨던 그 많은 기회를 부끄러움 없이 사용했는가,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왔는가?’ 아마 그렇게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졌던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내게 주어졌던 재능은 어떠했는가? 내게 주어진 그 많은 기회를 어떻게 사용했는가? 이제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모든 것을 잘 사용하고 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서 던질 질문은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옆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일 것입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내가 이제 떠나게 되면, 그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가 될까? 내 아내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의 남편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의 아들과 딸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어떤 존재를 남을까? 그들에게 나는 무엇이 될까? 그들은 나를 통해 기쁨을 얻었을까? 나를 통해 그동안 기쁨을 얻었을까? 아니면 생각하고도 싶지 않은 사람이었을까? 내가 이 세상에 더 있기를 원할까? 아니면 차라리 빨리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마태복음 25장은 바로 이와 같은 평범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매우 평범하지만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마땅히 해야 할 삶의 모범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 내 삶의 자리에서부터 종말을 준비합시다. >

이제 생각해 봅시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달란트의 비유와 양과 염소를 가르신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그 달란트, 온전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서 하나님께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 주위에 주님께서 보내주셨던 가난한 자들, 어려운 사람들, 이웃들, 가족들, 친구들, 그 사람들에게 나는 유익한 사람으로 남아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는 그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그분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한복음 17:4)

예수님은 자신의 소명을 완전히 이루어 내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완전하게 이루어 아버지 이름을 영화롭게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분은 예수님 한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이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한 번 더 생각해 봅니다. 가난한 사람들, 이웃들을 어떻게 돌보았느냐고 물으셨던 주님, 그 주님의 삶은 어떠하셨습니까? 로마서 5장 8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우리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들 한 사람에게 그저 옷가지 하나 주신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목숨을 그들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이웃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을 믿으십니까? 성경은 인류의 종말이 주님의 재림과 함께 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종말이 믿어지지 않으신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일 년에 일억 명의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주님의 재림은 용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각자 자신의 죽음이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는 없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날에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주님 앞에 무엇을 내어놓을 것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재림을 준비하는 일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을 주시고, 사람들을 주시고, 시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재림을 준비할 것입니다. 종말의 준비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것에 있지 않습니다. 탈 일상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태어난 삶의 목적을 온전하게 이루는 일에서부터 재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이 하나님인 것처럼 대하며, 사랑을 전하는 삶에서 재림이 준비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귀한 대림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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