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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에서 물이 나오리라

출애굽기 17: 5 ~ 7

김경진 목사

2020.06.07

<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시는가? 하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가?” 이 질문은 많은 성도님이 하나님께 또는 자신에게 자주 던지는 물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하시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말입니다.
제가 전에 목회하던 교회에서 꽤 큰 사업을 하던 분이 계셨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시고, 결국 사업을 정리하신 뒤 작은 가게를 여셨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가게를 운영하며 재기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조차 여의치 않았습니다. 힘든 시간을 견디며 신앙도 깊어진 것 같았지만, 사업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게 문을 닫기로 결정했습니다.
가게를 닫는 날 저녁, 저는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켜고 두 사람이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드물게 해 본 폐업 예배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경건한 예배였습니다. 저는 그분이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위로하며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분은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으려는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분이 저에게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목사님, 정말 하나님을 믿어도 될까요? 아무래도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닌 것 같아요.” 그 말을 하며 돌아서시는 그분의 뒷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후에도 수많은 성도로부터 이런 항의와 절규, 질문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비극이 일어났을 때,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듯 던지는 성도들의 질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녀를 먼저 보내야만 했던 분들로부터, 어렵게 아기를 가졌는데 안타깝게 유산한 임산부로부터, 대학 입시에 계속 실패하는 어느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결혼했다가 실패한 분으로부터, 기대를 품고 사업을 시작했으나 손해를 입고 문을 닫게 된 분으로부터 들었던 질문입니다.

< 하나님의 임재와 우리 삶의 불행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

오늘 본문에 바로 이 질문이 등장합니다. 7절 후반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출애굽기 17:7 중)

수천 년 전의 일입니다. 수십 만, 수백 만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던진 질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진 쳤을 때입니다. 큰 무리가 정착했는데, 그곳에 물이 없습니다. 갈증이 난 사람들이 마실 물을 달라며 모세에게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흐름으로 본다면, 폭동이 일어날 정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백성을 향해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출애굽기 17:2 중)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합니다. 모세가 그들을 향해 “너희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라고 꾸짖습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왜 이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오히려 정당한 불평이 아닐까요? 또는 정당한 절규 혹은 질문은 아닐까요?
종종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지를 알기 위해,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요청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이것을 주십시오.”, “하나님, 내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저 사람과 꼭 결혼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번에 꼭 승진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번 시험만큼은 반드시 합격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고 확신합니다. 반면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과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죽게 된 것’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 별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자연의 일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실 수 있습니다. 아니, 분명히 함께 계십니다.
스데반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하늘에서 주님은 스데반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면서도 그를 응원하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데반은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려지는 경험을 당해야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절규하신 예수님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까지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십시오.”라며, 내가 원하는 일을 증거로 주문할 때가 많습니다. 버릇없는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이것을 사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 주지 않으면,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억지 부리는 아이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말한 의미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십시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물 없는 장소에 이르자 어린아이처럼 거칠게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도 발견하게 됩니다.

< 르비딤에서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셨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 전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살펴본다면, 참으로 놀랍기도 하고 부끄러워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열 재앙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몰랐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까?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이후 마라에서 쓴 물을 마시고 잠시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나아가 물이 풍부한 엘림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경험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 앞장인 16장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 기적도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홍해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알게 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 기적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하심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 모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과거를 잊은 것입니다. 게다가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느냐, 안 주시느냐’의 관점에서 주님께 투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이고, 지금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며, 감히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판가름하려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이 모습에서도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편 81편에서는 이스라엘이 아닌 ‘하나님이 므리바에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셨다’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시편 81:7 중)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 곧 므리바에서 물을 달라며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출애굽기가 그 사실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81편은 반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셨다고 전합니다. 무슨 시험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움 속에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는가’ 하는 것을 시험하셨다는 뜻입니다. 므리바에 도착했으나 물이 없음을 발견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자 시험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습니까? 그 시험에 당당히 통과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 모세를 압박했습니다. 폭력을 행사하려는 듯, 폭동을 일으키려는 듯 급박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를 질문하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신실한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모세를 향한 폭동은 하나님을 향한 폭동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에도 하나님은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르비딤에 도착해 물이 없음을 알고 원망하며 폭동을 일으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보시고 시험하셨지만, 그들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형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들에게 바위에서 솟아나는 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광야 르비딤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솟아난 물은 이스라엘의 열정적인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솟아난 물은 이스라엘이 열심히 주야로 기도했기 때문에 이루어 낸 응답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솟아난 물은 그들이 회개했기 때문에 주어진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솟아난 물은 사람들의 반항적인 소리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만큼 복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가 이만큼 복 받을 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차고 넘치게 많은 것을 주신 것은 우리가 착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바쳤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최고의 예배를 온전히 드려왔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광야에서 솟아나는 물은 우리의 열정적인 믿음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사람들의 반항적인 소리에 대한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르비딤에서 솟아난 물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이지, 마땅하고 당연한 우리의 행위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저 ‘은혜’일 뿐입니다. 인간의 원망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광야의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그분의 신실한 사랑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조건 없는 은총으로 우리를 선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앞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경험했으면서도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없는 모습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그저 인간적으로만 생각해 본다면, 르비딤의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십 만, 수백 만의 사람들이 물 없는 곳에 정착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준비해 온 물은 점점 떨어져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 같다는 예상이 듭니다. 과거에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물이 없는 땅에서 어떻게 잠잠할 수 있었겠습니까? 마라에서는 쓴 물이라도 있었습니다. 그 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무슨 일이라도 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쓴 물조차 없습니다. 그저 돌무더기만 있을 뿐입니다. 황량한 벌판입니다. 이곳에서 어떻게 물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당황했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눈에 이런 장소는 분명 희망 없는 장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할 만한 재료조차 없는 자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마른 땅, 돌무더기에서 희망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좋은 말로 바위지, 그저 돌무더기 속에 있던 큰 돌 하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곳으로 보내시고, 그 바위에서 물을 내어주셨습니다. 바위가 물을 낼 수 있습니까? 계곡에서 물을 머금은 바위라면 조금씩 물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막 한가운데 박힌 바위, 마르고 마른 그 바위에서 무슨 물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바위에서 물을 내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물이 이 세상의 물줄기와는 다른 차원의 물줄기라고 믿습니다. 이 땅 어딘가에 있는 물줄기로부터 가져온 물이 아니라, 정말 물이 나올 수 없는 자리에서 물을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활동이라는 말씀입니다.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물이 아니라 세상에서 먹어 보지 못한 전혀 다른 새로운 물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 생명의 샘물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

요한복음 4장이 생각납니다. 수가성에서 사마리아의 한 여인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3~14)

르비딤의 반석에서 나왔던 물은 먼 훗날 예수께서 수가성에서 말씀하신 이 샘물이었습니다. 즉 이 물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물이요,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신령한 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신령한 물을 르비딤에서 미리 맛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신약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의 말씀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린도전서 10:3~4)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5절 이후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출애굽기 17:5~6 중)

이 말씀에서 굉장히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 앞에 내가 서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반석 위, 그 위에 내가 서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반석을 네가 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는 분명히 지팡이를 들고 바위를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에 서 계신 하나님도 함께 쳐야 했을 것입니다. 바위가 물을 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물을 내어주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을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한복음 7:37~38 중)

‘그 배에서’ 다시 말하면, ‘그 허리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될 것이란 예언을 주님께서 친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이 덧붙여집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9) 척박한 상황, 광야와 같은 길, 물을 발견할 수 없는 곳, 당황스럽고 고통스러운 바로 그곳에서 절망하며 두려움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하나님께서 바위에서 물을 내어주십니다. 바위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내어주시는 생수는 ‘성령’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적시고, 우리의 목을 축이십니다. 그 생수가 우리를 광야에서도 거뜬히 살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갑시다. >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했습니까? 원망과 불평, 거친 항의를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위를 치게 하심으로 그들에게 신령한 음료를 선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음료를 마시도록 해 주셨습니다. 치신 바위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창에 허리를 찔리셨습니다. 그분의 몸에서 물과 피가 흘러내렸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생명의 음료가 세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우리 중 누가 감히 예수 그리스도로에게서 나오는 생명의 샘물을 마실 수 있는 자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불평할 뿐이고, 우왕좌왕할 뿐이며, 작은 실망에도 악을 써 대는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자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물을 나누어 주십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은 생명수를 부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참으로 척박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르비딤과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선한 게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장소를 우리 모두가 거쳐 가고 있지 않습니까? 사업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내가 설 곳은 어디인가?”라고 물으며,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 것인가? 계신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고 절규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 주님께서 반석으로부터 신령한 샘물을 길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사야 55:1)

생명의 음료를 공급하시는 성령, 그 성령을 분여하시는 주님의 애타는 초청입니다. 이 음료를 마시는 사람은 세상이 변하지 않아도, 광야에 있어도 목마르지 않습니다. 이 음료를 마시는 사람은 아무것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습니다. 전적인 은혜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보내고 첫 번째로 맞이하는 이 주일, 주님의 성령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Water Will Come Out Of The Rock

Exodus 17: 5-7

Is God really with me? This is a question many Christians ask. If God is with me, how can this happen? If God is with me, how can He allow such terrible things to happen? These are questions believers ceaselessly ask in their lives.

In the church that I previously ministered at a man started a small shop after his business went under. He started it with faith and hope to make ends meet, but even this didn’t work out. So he had to close it. Before shutting it down, he and I had a small service in the dark shop lit by a candlelight. It was a rare business closure service, holier than any. Encouraging him, I earnestly prayed that he would not lose faith. Tears fell from his face all throughout the service. As he tried to hold himself together, he finally asked this question after the service: “Pastor, can I really believe in God? He doesn’t seem to be on my side.” I cannot forget the way he walked away after saying these last words.

“How can such a thing happen if God is with me?” This is a question—an outcry, really—that I have heard many a time.

People ask this question with a bitterness toward God when something awful or tragic happens, or when they are denied a desperate wish. Parents who had to bury their child, a woman who miscarried, a mother whose son continues to fail college exams, divorcees, and people whose see their businesses go under… They all ask this question in anguish. Listening to their stories, I have often asked God bitterly myself, ‘Why did You not protect them? Why did You not fulfill their wishes?’

Interestingly, today’s passage from Exodus contains this same question, a question that we ourselves ask so often: “they tested the Lord saying, ‘Is the Lord among us or not?’” (Exodus 17:7) This was a question that the Israelites asked in the wilderness thousands of years ago.

After the Israelites left the Wilderness of Sin and made camp in Rephidim, there was no water, even though the people were many. The Israelites started to quarrel with Moses, with the situation almost ending in a riot. Moses rebuked them: “Why do you quarrel with me? Why do you put the Lord to the test?” (Exodus 17:2)

Moses is saying that the Israelites are putting the Lord “to the test.” I can imagine the Israelites’ fear at discovering there was no water at Rephidim. Water was life. How would millions survive without it? Their fear and frustration are understandable. But Moses says that they are testing God. What does this mean? Why was this putting God to the test?

Sometimes we ask God for what we want to know that He is really with us. “Lord, give me this, give me that. Give me success in my business. Give me that person as my spouse. Give me this promotion. Lord, please make me pass this test.” If we get what we wanted, we believe God is with us, but if we don’t, we think He is not.

The truth is God being with us and God giving me what I want are two separate things. He may not give me what I want even though He is with me. To put it in extreme terms, facing death and God being with us are two separate things. For example, Stephen looked toward heaven and saw God, but was stoned to death. Jesus was also abandoned by God as He died on the cross.

Yet, we often persist that God must prove He is with us by giving us what we want, like a spoiled child who puts on a tantrum crying, “Mommy, if you really love me, buy me this!” This is what Moses meant by rebuking the Israelites, “Why do you put the Lord to the test?” ‘If You exist, give me what I want. If I get it, then You exist. If I don’t, You don’t exist.’ The Israelites were threatening God by saying, “Give us water to drink.” In these words and actions of the Israelites who bitterly cried out to God like a spoiled child, we see ourselves.

The Israelites’ actions are all the more alarming and embarrassing, considering all that they had experienced before arriving at Rephidim. Even if they had missed or forgotten the Ten Plagues of Egypt, there was the parting of the Red Sea in chapter 14. And in chapter 15, they saw how the bitter water in Marah miraculously became drinkable. They were also led to Elim after that, a lush place with an oasis. In chapter 16, which comes right before today’s passage, God sent them manna and quail when they complained about food.

In the chapters preceding today’s passage, God repeatedly confirmed that He was with them. Nevertheless, the Israelites became trapped in fear, nearly starting a riot, when they found out there was no water in Rephidim. And they blamed Moses for it. Aren’t we so like them?

God already showed the Israelites that He was with them—with miracles and wonders. But they forgot everything of the past. All they were interested in was whether God would give them what they wanted, then and there, and whether He would solve their problems immediately. And they linked these to His existence. How pathetic we are!

It is fascinating, however, that Psalm 81 sings that “God” put the Israelites to the test at Meribah, not the other way around: “In your distress you called and I rescued you, I answered you out of a thundercloud; I tested you at the waters of Meribah.” (Psalms 81:7) While Exodus says that it was the Israelites who tested God by asking Him for water, Psalm 81 says the opposite.

What kind of test was it? Through this test, God wanted to see what the Israelites would do when they discovered there was no water. It was God who wanted to see their response. So it was God who tested them. This is what Psalm 81 is saying.

Then did the Israelites pass the test? Did they prove themselves to be faithful? No. They complained to God, quarreled with their leader, and almost started a riot. They asked in disbelief, “Is there God or not?” They failed miserably in showing an unwavering faith. Furthermore, a riot against Moses was akin to one against God.

But did God deny them water? No. In today’s passage, we see a manifestation of His absolute grace. God did not punish the Israelites, not one bit, even after they complained and almost started a riot. He gave them water from a rock instead.

This water from the rock was not God’s answer to their passionate faith. Nor was it the result of their faithful, ceaseless prayers or repentance. This water in the wilderness was God’s response to the complaints and dissidence of His people. Therefore, something amazing is revealed in today’s scripture.

It is the same with us. We are blessed—not because we deserve it. We are blessed so abundantly—not because we are good or because we have given Him much. Our blessings do not come from a most perfect and blameless worship.

It wasn’t passionate faith that brought water from the rock. That water was just the Father’s merciful answer to our rebellious cries. Therefore, the water at Rephidim was the consequence of His absolute grace, not the result of our actions or what we deserved. This is grace. And it is what gives us hope.

Despite our anguish, cries, and bitterness toward Him, our faithful and loving God gives us water from the rock. Through God’s infinite love, such miracles and unconditional grace are possible.

I pointed out how faithless the Israelites were when they tested God, even after experiencing His greatness and miracles. However, as humans, we can fully connect to their distress at Rephidim. Imagine millions of people with no water. How would they survive?

It would have been, of course, more desirable if they had waited with faith, reminiscing what God had done for them in the past. But keeping calm after finding out that there was no source of water, none at all, was almost impossible. At Marah, they had bitter water, at least. But, here, there were only dry rocks around them. It was complete wilderness. How could they possibly get water here?

In man’s eyes, it was a hopeless place—with nothing for God to work with. When we encounter such a place, fear grips us. But God created hope even from dead rocks. God led Moses there and made water come out of those rocks. Water springing from a parched rock? Impossible! Yet God led Moses to a dry rock and made water gush from it.

I am confident that this water i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e water of this world. God gave the Israelites water that cannot be found in this world. He provided them with a completely different water. This, too, is God’s grace. God gives us water that the world cannot offer so that we will never thirst.

This reminds us of John 4. Remember what Jesus said to the Samaritan woman when He visited the town of Sychar? “Everyone who drinks this water will be thirsty again, but whoever drinks the water I give them will never thirst. Indeed, the water I give them will become in the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John 4:13-14)

That’s right. This water at Meribah foreshadows the living water that comes from Christ, a spiritual water that the world cannot give. The Israelites drank this spiritual drink in the Wilderness of Sin.

The New Testament describes this incident as such: “They all ate the same spiritual food and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accompanied them, and that rock was Christ.” (1 Corinthians 10: 3-4) First Corinthians interprets the rock in Meribah as Jesus Christ.

Today’s passage also tries to reveal this deep truth in its own way. Let’s look at verses 5 and after. The Lord says to Moses, “Go out in front of the people. Take with you some of the elders of Israel and take in your hand the staff with which you struck the Nile, and go. I will stand there before you by the rock at Horeb. Strike the rock, and water will come out of it for the people to drink…”

These words seem vague and are hard to interpret. While God stands right before Moses by the rock, He tells him to strike the rock. In other words, it is telling us that God Himself became the rock. Though Moses hit the rock, it was in truth God he struck. Though water came out of the rock, it was actually God who brought forth the water.

Jesus Himself said in John 7: “On the last and greatest day of the festival, Jesus stood and said in a loud voice, ‘Let anyone who is thirsty come to me and drink. Whoever believes in me, as Scripture has said, rivers of living water will flow from within them.’” (John 7:37-38) And in verse 39 the Bible adds, “By this he meant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later to receive.” (John 7: 39)

In a destitute situation, in the dry wilderness, in a water-less place full of only rocks, God gave the Israelites water. He brought forth water from a rock when the Israelites were desperate, hopeless, fearful, frustrated, and miserable.

This rock is none other than Jesus Christ, and the water the living water of Christ—that is, the Holy Spirit. The Holy Spirit is our water that quenches our thirst. This living water is what makes us survive the desert.

Let’s go back to today’s scripture. What did the Israelites do in the wilderness? They complained and protested angrily. Yet, despite their bitterness, complaints, and protests, God gave them water to drink, by making Moses strike a rock. The rock was none other than Jesus.

Who among us deserves to drink from the living water that comes from Jesus Christ? We, humans, are always complaining, we have lost our way, and we become disappointed in the littlest things.

Yet, God shares with us the water of life that flows from His Son Jesus Christ, the Rock. He pours us this water that never makes us thirsty.

Dear Church, would you like to drink from this living water? Who is the One who satisfies our unquenchable thirst that comes from endless passions, desires, greed, and ambitions? Jesus Christ. Only Him.

The Bible says, “Come, all you who are thirsty, come to the waters; and you who have no money, come, buy and eat! Come, buy wine and milk without money and without cost.” (Isaiah 55:1)

This is the heartfelt invitation of our Lord who offers us the drink of life and bestows the Holy Spirit on us. It is His invitation to absolute grace.

Today is the first Sunday since Pentecost. May the Spirit of the Lord be upo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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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7: 5 ~ 7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시는가? 하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가?” 이 질문은 많은 성도님이 하나님께 또는 자신에게 자주 던지는 물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하시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말입니다.
제가 전에 목회하던 교회에서 꽤 큰 사업을 하던 분이 계셨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시고, 결국 사업을 정리하신 뒤 작은 가게를 여셨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가게를 운영하며 재기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조차 여의치 않았습니다. 힘든 시간을 견디며 신앙도 깊어진 것 같았지만, 사업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게 문을 닫기로 결정했습니다.
가게를 닫는 날 저녁, 저는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켜고 두 사람이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드물게 해 본 폐업 예배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경건한 예배였습니다. 저는 그분이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위로하며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분은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으려는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분이 저에게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목사님, 정말 하나님을 믿어도 될까요? 아무래도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닌 것 같아요.” 그 말을 하며 돌아서시는 그분의 뒷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후에도 수많은 성도로부터 이런 항의와 절규, 질문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비극이 일어났을 때,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듯 던지는 성도들의 질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녀를 먼저 보내야만 했던 분들로부터, 어렵게 아기를 가졌는데 안타깝게 유산한 임산부로부터, 대학 입시에 계속 실패하는 어느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결혼했다가 실패한 분으로부터, 기대를 품고 사업을 시작했으나 손해를 입고 문을 닫게 된 분으로부터 들었던 질문입니다.

< 하나님의 임재와 우리 삶의 불행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

오늘 본문에 바로 이 질문이 등장합니다. 7절 후반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출애굽기 17:7 중)

수천 년 전의 일입니다. 수십 만, 수백 만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던진 질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진 쳤을 때입니다. 큰 무리가 정착했는데, 그곳에 물이 없습니다. 갈증이 난 사람들이 마실 물을 달라며 모세에게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흐름으로 본다면, 폭동이 일어날 정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백성을 향해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출애굽기 17:2 중)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합니다. 모세가 그들을 향해 “너희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라고 꾸짖습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왜 이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오히려 정당한 불평이 아닐까요? 또는 정당한 절규 혹은 질문은 아닐까요?
종종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지를 알기 위해,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요청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이것을 주십시오.”, “하나님, 내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저 사람과 꼭 결혼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번에 꼭 승진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번 시험만큼은 반드시 합격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고 확신합니다. 반면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과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죽게 된 것’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 별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자연의 일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실 수 있습니다. 아니, 분명히 함께 계십니다.
스데반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하늘에서 주님은 스데반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면서도 그를 응원하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데반은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려지는 경험을 당해야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절규하신 예수님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까지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십시오.”라며, 내가 원하는 일을 증거로 주문할 때가 많습니다. 버릇없는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이것을 사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 주지 않으면,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억지 부리는 아이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말한 의미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십시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물 없는 장소에 이르자 어린아이처럼 거칠게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도 발견하게 됩니다.

< 르비딤에서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셨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 전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살펴본다면, 참으로 놀랍기도 하고 부끄러워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열 재앙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몰랐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까?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이후 마라에서 쓴 물을 마시고 잠시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나아가 물이 풍부한 엘림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경험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 앞장인 16장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 기적도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홍해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알게 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 기적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하심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 모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과거를 잊은 것입니다. 게다가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느냐, 안 주시느냐’의 관점에서 주님께 투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이고, 지금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며, 감히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판가름하려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이 모습에서도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편 81편에서는 이스라엘이 아닌 ‘하나님이 므리바에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셨다’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시편 81:7 중)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 곧 므리바에서 물을 달라며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출애굽기가 그 사실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81편은 반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셨다고 전합니다. 무슨 시험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움 속에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는가’ 하는 것을 시험하셨다는 뜻입니다. 므리바에 도착했으나 물이 없음을 발견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자 시험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습니까? 그 시험에 당당히 통과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 모세를 압박했습니다. 폭력을 행사하려는 듯, 폭동을 일으키려는 듯 급박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를 질문하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신실한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모세를 향한 폭동은 하나님을 향한 폭동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에도 하나님은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르비딤에 도착해 물이 없음을 알고 원망하며 폭동을 일으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보시고 시험하셨지만, 그들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형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들에게 바위에서 솟아나는 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광야 르비딤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솟아난 물은 이스라엘의 열정적인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솟아난 물은 이스라엘이 열심히 주야로 기도했기 때문에 이루어 낸 응답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솟아난 물은 그들이 회개했기 때문에 주어진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솟아난 물은 사람들의 반항적인 소리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만큼 복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가 이만큼 복 받을 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차고 넘치게 많은 것을 주신 것은 우리가 착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바쳤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최고의 예배를 온전히 드려왔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광야에서 솟아나는 물은 우리의 열정적인 믿음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사람들의 반항적인 소리에 대한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르비딤에서 솟아난 물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이지, 마땅하고 당연한 우리의 행위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저 ‘은혜’일 뿐입니다. 인간의 원망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광야의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그분의 신실한 사랑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조건 없는 은총으로 우리를 선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앞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경험했으면서도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없는 모습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그저 인간적으로만 생각해 본다면, 르비딤의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십 만, 수백 만의 사람들이 물 없는 곳에 정착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준비해 온 물은 점점 떨어져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 같다는 예상이 듭니다. 과거에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물이 없는 땅에서 어떻게 잠잠할 수 있었겠습니까? 마라에서는 쓴 물이라도 있었습니다. 그 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무슨 일이라도 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쓴 물조차 없습니다. 그저 돌무더기만 있을 뿐입니다. 황량한 벌판입니다. 이곳에서 어떻게 물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당황했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눈에 이런 장소는 분명 희망 없는 장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할 만한 재료조차 없는 자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마른 땅, 돌무더기에서 희망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좋은 말로 바위지, 그저 돌무더기 속에 있던 큰 돌 하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곳으로 보내시고, 그 바위에서 물을 내어주셨습니다. 바위가 물을 낼 수 있습니까? 계곡에서 물을 머금은 바위라면 조금씩 물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막 한가운데 박힌 바위, 마르고 마른 그 바위에서 무슨 물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바위에서 물을 내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물이 이 세상의 물줄기와는 다른 차원의 물줄기라고 믿습니다. 이 땅 어딘가에 있는 물줄기로부터 가져온 물이 아니라, 정말 물이 나올 수 없는 자리에서 물을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활동이라는 말씀입니다.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물이 아니라 세상에서 먹어 보지 못한 전혀 다른 새로운 물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 생명의 샘물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

요한복음 4장이 생각납니다. 수가성에서 사마리아의 한 여인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3~14)

르비딤의 반석에서 나왔던 물은 먼 훗날 예수께서 수가성에서 말씀하신 이 샘물이었습니다. 즉 이 물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물이요,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신령한 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신령한 물을 르비딤에서 미리 맛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신약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의 말씀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린도전서 10:3~4)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5절 이후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출애굽기 17:5~6 중)

이 말씀에서 굉장히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 앞에 내가 서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반석 위, 그 위에 내가 서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반석을 네가 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는 분명히 지팡이를 들고 바위를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에 서 계신 하나님도 함께 쳐야 했을 것입니다. 바위가 물을 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물을 내어주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을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한복음 7:37~38 중)

‘그 배에서’ 다시 말하면, ‘그 허리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될 것이란 예언을 주님께서 친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이 덧붙여집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9) 척박한 상황, 광야와 같은 길, 물을 발견할 수 없는 곳, 당황스럽고 고통스러운 바로 그곳에서 절망하며 두려움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하나님께서 바위에서 물을 내어주십니다. 바위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내어주시는 생수는 ‘성령’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적시고, 우리의 목을 축이십니다. 그 생수가 우리를 광야에서도 거뜬히 살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갑시다. >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했습니까? 원망과 불평, 거친 항의를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위를 치게 하심으로 그들에게 신령한 음료를 선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음료를 마시도록 해 주셨습니다. 치신 바위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창에 허리를 찔리셨습니다. 그분의 몸에서 물과 피가 흘러내렸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생명의 음료가 세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우리 중 누가 감히 예수 그리스도로에게서 나오는 생명의 샘물을 마실 수 있는 자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불평할 뿐이고, 우왕좌왕할 뿐이며, 작은 실망에도 악을 써 대는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자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물을 나누어 주십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은 생명수를 부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참으로 척박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르비딤과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선한 게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장소를 우리 모두가 거쳐 가고 있지 않습니까? 사업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내가 설 곳은 어디인가?”라고 물으며,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 것인가? 계신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고 절규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 주님께서 반석으로부터 신령한 샘물을 길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사야 55:1)

생명의 음료를 공급하시는 성령, 그 성령을 분여하시는 주님의 애타는 초청입니다. 이 음료를 마시는 사람은 세상이 변하지 않아도, 광야에 있어도 목마르지 않습니다. 이 음료를 마시는 사람은 아무것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습니다. 전적인 은혜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보내고 첫 번째로 맞이하는 이 주일, 주님의 성령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0년 6월 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반석에서 물이 나오리라” (출 17:5-7)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421장, 388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출 17:5-7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6월 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어쩌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삶속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출 17:7).

 설교의 요약

   이스라엘 자손이 신 광야를 떠나서 노정대로 르비딤에 진을 쳤을 때, 그 곳에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갈증이 난 사람들이 마실 물을 달라고 모세에게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정도의 상황이었습니다. 물이 없는 장소를 만나자 버릇없는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거칠게 원망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 81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시험하였다고 말합니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시 81: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믿음을 시험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그 시험에 합격 하였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물을 주시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물이 없음을 알고 원망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백성들에게 어떠한 형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들에게 바위에서 솟아나는 물을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솟아난 물은 우리의 열정적인 믿음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사람들의 반항적인 소리에 대한 자비로운 아버지의 응답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주신 것은 우리가 착하기에, 많이 바쳤기에, 최고의 예배를 드렸기에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바위에서 물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물은 이 세상의 물줄기와 다른 차원의 물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물, 완전히 다른 물을 공급해 주십니다. 요 4장의 ‘물’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또한 요 7장의 ‘물’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38). 그리고 성경은 이 말씀을 덧붙입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39). 바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내어 주시는 생수와 같은 물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생명의 물을 받아 마시어 보았습니까?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사 55:1). 생명의 음료를 공급하시는 성령을 분여하시는 우리 주님의 애타는 초청이 여기 있습니다. 전적인 은혜의 초청입니다. 성령의 강림 주일을 보내고 첫 번째 맞이하는 주일, 주님의 성령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빕니다.

 나누기

 1. 혹시 나에게 ‘르비딤’과 같이 ‘물’이 없어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까? 

 2. 정말 예수님이 나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됩니까? 정말 성령님이 나의 ‘생수’가 되나요?

 마무리 기도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 진정한 주님의 은혜를 깨달아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고, 기쁨이 넘치게 하시며, 참으로 목마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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