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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용서입니다

누가복음 17: 1~4

김경진 목사

2023.04.23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용서하는 자로 세우십니다.>

 

지난주 우리는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나 주신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여인, 두려워서 떨고 있는 제자들, 의심하는 도마를 만나 주신 주님을 함께 생각하였습니다.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 말씀을 하셨지만, 그중에서도 ‘용서’와 관련된 말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적의를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나, 주님을 그토록 괴롭힌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에게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그들을 찾아가 징계하실 수도 있으셨을 겁니다. 십자가에 손을 못 박은 군인들을 찾아가셔서 책망하실 수도 있으셨겠죠.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때에 모든 사람을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고, 부활하셨을 땐 어떤 분노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 중)

예수님을 버리고 떠난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간 제자들이었죠. 그런데 그들을 향하여 평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중) 평안을 전하신 다음에 그들을 어딘가로 보내시겠다는 말씀을 이어 가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22~23)

 

무엇을 향하여 보내신다고 말씀하신 걸까요? 또 어떤 사명을 주시며 제자들을 보내신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방금 전 읽은 말씀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용서하는 자, 제자들로 하여금 용서하는 자로 보내시겠다는 주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위하여 숨을 길게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정 원하시는 것, “너희가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주님은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고난받고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용서’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자 하신 듯 보입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용서라는 것이 참으로 신비하다고 생각합니다. 용서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어떤 작용일까요? 짐승들에게는 과연 용서라는 것이 있을까요? 성경은 끊임없이 용서할 것을 권면합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7장도 공생애 기간 용서를 부탁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록합니다.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눅 17:4)

 

일곱 번이라도 똑같은 일로 와서 회개한다고 말한다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렇게 권면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골로새서 3장 13절 말씀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골 3:13, 새번역)

 

이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용서하여 주셨다는 사실이 말씀의 근거가 됩니다. 사실 누가 감히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용서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 속에서 용서할 수 있는 비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 채찍질하는 사람을 향하여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탄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그들이 행한 바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생일파티가 있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파티를 여는데 어린 손주가 장난질을 합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케이크를 드는 순간, 손주가 그만 할아버지에게 돌진하더니 할아버지 바지 옷자락에 케이크를 묻히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할아버지라면 어떻게 할까요? 벌떡 일어나서 아이를 야단치시겠습니까? 호되게 꾸중하실까요? 만약에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치매 초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할아버지라면 허허 웃으며 아이를 꼭 안아 주시겠죠. 손주가 잘 모르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실수여도 그저 귀엽게 여기며 받아주실 것입니다.

‘잘 몰라서,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라고 생각하면 용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판단합니다. 이 사람이 고의로 한 것인가, 모르고 한 것인가. 고의로 했다고 생각되면 용서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을 향하여 “저들이 지금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은 그들이 고의로 하였을지라도 사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주님의 탄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용서가 잘 안되시면 먼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주님은 명하신 용서는,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용서일까요? 이사야서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5)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데 그 죄를 도말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더 이상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데이터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놓고 계속해서 보시는 분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면 친히 지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분입니다.

설교 예화 중에 하나입니다. 지어낸 이야기 같습니다만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을 보면 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은사였다죠. 그래서 한 신실하신 목사님이 그가 자신의 과거를 볼 수 있는지 궁금해졌답니다. 목사님에게는 숨겨진 하나의 비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되어서 신실하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모든 죄를 고백하며 용서받았다고 믿고는 있지만, 오래 전 지은 큰 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 사람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나를 보시고, 내 안에 숨겨진 죄가 있는지 살펴봐 주십시오.” 그러자 그분을 뚫어지게 살펴보더니 이야기했답니다. “당신의 죄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지워졌네요.”

하나님의 용서란 어떤 것입니까? 완전히 지워 주시는 것, 완전히 도말하시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잊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런 용서를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 특히나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만나실 때조차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책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따뜻하게 물으시며 그를 살리셨습니다. 도망가고 배반한 제자들을 향하여서도 이유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평안을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잊어버리신 것입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용서입니다.

종종 부부들과 상담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신혼부부들을 볼 때면 꼭 해 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가는 것 같지만, 부부 싸움을 하게 되면 다시 나오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도 삶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용서한다고 말은 하였지만, 그래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 같지만, 어느 날 다시 싸우게 되면 모든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신혼 첫날부터 시작해서 잘못한 것이 다시 살아나서 옭아매는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용서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이라는 책을 쓴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dgar McGrath)가 그의 책에서 용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용서란 내가 망가뜨린 정말 중요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영영 망가뜨려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리 주님께서 용서를 통하여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관계 회복이 용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용서는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망가진 관계, 틀어진 관계를 이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는 회복하는 힘을 가진 특효약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가정생활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더 이상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어떤 사람이 용서하기 시작하면 조그마한 길이 열리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용서에는 그와 같은 힘이 있습니다.

2006년 평양 노회에서 파면당한 주기철 목사님을 복권시키고, 참회 예배를 드리는 특별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위원으로 함께한 기억이 있습니다. 평양 노회는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주기철 목사님을 1939년에 면직시켰습니다. 그 잘못을 참회하고, 주기철 목사님을 복권시키는 예배였습니다. 그날 강연으로 참가하신 교회사가 김인수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교단은 신사 참배라는 창피한 역사를 가진 교단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교단입니다.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교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교단(고신 교단)은 작은 교단이 되었고, 한국교회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에게는 용서의 정신이 없었습니다. 신사 참배한 사람들을 정죄하면서 그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용서가 없었기에 보다 큰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말씀이 제 마음속 깊이 들어왔습니다.

요즘 사회적 운동이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의라는 표제도 있고요. 평화라는 표제도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증오로, 때로는 나눔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여 주신 사랑과 용서의 방법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정의와 평화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땅에는 관계가 살아나지 못하고, 평안도 임하지 못합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용서를 경험하는 것이고, 동시에 용서하는 방법을 배워 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용서하는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우리 자신부터 용서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의 좋은 관계를 갖지 못하여 힘들게 살아갑니다. 내면에 있는 나,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깊숙한 내 자신, 그 사이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받으시고 인정해 주셨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자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들도 많고요. 제가 미국에서 목회하는 중에 청년들과 나눈 기도 제목 중 대다수가 부모와의 관계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부모님들이 유학비용까지 대주시며 보조해 주시지만 정작 자녀와의 관계는 뒤틀어진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부모를, 자식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교우끼리 서로 미워하고 반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워하는 순간 관계는 깨어지고 회복될 길은 없습니다. 용서를 통해서만이 관계가 세워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한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목사님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이혼하기로 결정한 부부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싸늘했고 증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서로의 잘못을 얼마든지 나열하고 증명할 태세였습니다. “목사님, 저희들 이혼하지 않으려고 모든 것 다 해 보았습니다. 할 수 있는 것 다 해 보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네요.” 그러자 목사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였답니다. “한 가지를 시도하지 않으셨네요. 용서해 보신 적 있습니까? 용서를 하고도 해결되지 않으면, 그때 저에게 다시 찾아오십시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도 우리를 대하여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기쁨 누리길 원하셨지만,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만큼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고 특별하게 대우하셨지만, 그들은 부르심의 가치대로 살지 못하였습니다. 애굽에서 탈출시키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셨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계명을 주시면서까지 백성들을 이끄셨지만 정작 그들은 기쁨이 되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일하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심으로 무조건적인 용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로 말미암아 마침내 풀려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기쁨의 50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종종 부활에 참여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겠지만 용서와 관련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용서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용서는 누군가를 살려 냅니다. 분노와 살인은 죽음으로 몰고 갈 뿐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살려 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다시 부르셨고, 제자들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용서하노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지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한마디로 그들을 다시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 중)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골 3:15a, 새번역)

 

여러분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저도 용서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습니다.” 깊이 한탄하는 분들을 향하여 주님 말씀하십니다. 다시 요한복음으로 돌아갑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22~23)

 

예수님도 아셨습니다. 제자들이 성령 받지 않고는 용서하는 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 절기 마지막에 성령강림주일을 기다립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보여 주신 용서의 삶을 우리도 살아내기 위하여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분노와 성냄, 증오는 우리를 결코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평화로 이끌지 못합니다. 오직 용서를 통해서만이 평화의 길이 열립니다. 생명의 길이 열립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Resurrection is Forgiveness

 

Luke 17:1-4

 

 

Last week I spoke aboutwhom Jesus appeared to after being raised. Today I want to look at what our Lord said after resurrection. In particular, let’s look at what He commanded us about forgiveness.

 

As I mentioned last week, Jesus could very well have appeared to people with the intent to have revenge on them, but He didn’t. After being raised, He didn’t show Himself to, punish, or judge the Pharisees or the teachers of the law who had oppressed Him so cruelly. He neither showed Himself to Pontius Pilate nor to the soldiers who crucified Him with the intent to punish them.

 

He had already forgiven all of them on the cross; and when He was resurrected, He had no hostility or anger against them at all.

 

According to the Gospel of John, Jesus showed Himself to the disciples who were trembling in fear. Showing Himself to them who had hidden behind locked doors, the first thing He said was “Peace be with you!” His cry to the disciples, who had betrayed Him and run away, was “Peace.” Furthermore, He proved to them Hetruly was alive by showing them His nail-pierced hands and His side.

 

Then He says to them again:

 

“Peace be with you! As the Father has sent me, I am sending you.” (John 20:21)

 

He tells them that He will send them. Then He says:

 

“And with that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the Holy Spirit. If you forgive anyone’s sins, their sins are forgiven; if you do not forgive them, they are not forgiven.’” (John 20:22-23)

 

As such, one of our risen Lord’s words to the disciples was about forgiveness.

 

To change the disciples into men capable of forgiveness, our Lord first breathes on them and tells them to receive the Holy Spirit. Then He commands them to forgive. If we link John 20:22-23 to His previous words, Jesus is saying He will now send the disciples into the world as forgiving men.

 

This was the very command that our risen Lord gave to the disciples.

 

The Bible continually teaches us to forgive one another.

 

Jesus also says in today’s Scripture from Luke:

 

“Even if they sin against you seven times in a day and seven times come back to you saying ‘I repent,’ you must forgive them.” (Luke 17:4)

 

Furthermore, this is what Jesus teaches the church through Paul in Ephesians 4:32:

 

“Be kind and compassionate to one another, forgiving each other, just as in Christ God forgave you.” (Ephesians 4:32)

 

Colossians 3:13 also says:

 

“Bear with each other and forgive one another if any of you has a grievance against someone. Forgive as the Lord forgave you. And over all these virtues put on love, which binds them all together in perfect unity.” (Colossians 3:13)

 

Then how can we forgive? How can we have a forgiving heart?

 

Let me tell you a story. At a birthday party, a toddler got a piece of cake and smeared it all over his grandpa’s pants. It happened in an instant, while everyone was thinking, ‘Uh-oh…’ What happened next? Did the grandpa get up and scold him? The accident may have caught him off guard, but immediately everyone burst out laughing. Why? Everyone knew that it was just a little boy. Therefore, it was completely forgivable. It was only natural to forgive.

 

Let’s again look at what Jesus said as He was dying on the cross: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Luke 23:34)

 

As Jesus saw the people—us, actually—commit evil, slander Him, whip Him, and mock Him, He asked His Father to forgiven them, saying they did not know what they are doing.

 

This is how the Bible describes the scene of Stephen’s martyrdom:

 

“Then he fell on his knees and cried out, ‘Lord, do not hold this sin against them.’ When he had said this, he fell asleep.” (Acts 7:60)

 

Let’s say someone wronged you. If you think he/she did it intentionally, it will be impossible to forgive. But if you think it was because he/she didn’t know better, that it was not intentional, that it just happened, then youwill be able to forgive.

 

On the cross our Lord pleaded with God to forgive the people for they did not know what they were doing.

 

Then what does it mean to forgive?

 

“I, even I, am he who blots out your transgressions, for my own sake, and remembers your sins no more.” (Isaiah 43:25)

 

When God forgave us, He declared that He would not remember our sins.

 

Once there was a man who received a special gift from God: he could see people’s past, present, and future. A very devout pastor was curious to know ifhereally could see the past. Although he had become a pastor, confessed all his sins to God, and asked for forgiveness, his past sinsalways weighed heavily on him. So he asked the man with the gift, “What do you see in my past? I committed a sin; do you see that too?” The man replied, “I don’t see anything. I see nothing because all your sins have been swept clean.”

 

Remembering no more as if our sins did not exist—this is God’s forgiveness.

 

After Jesus was resurrected and appeared to the disciples, He did not rebuke them for their sins. He did not interrogate Peter about his denial. In John 21 Jesus does mention the past when He comes to Peter. He had already forgotten everything. He doesnot say to Peter, “Know you sins!”  Nor does He say, “Why did you do that at the time?”He merely asks, “Peter, do you love me?”

 

He does not ask His disciples, “Where did you run off to?” Nor does He ask, “Where were you when I was on the cross?” He merely says, “Peace be with you!”

 

This is forgiveness. It is to forget the past, to never remember it again. Jesus did not just bury the past, knowing it all. To Him the past is not a topic that He will bring up again. He does not remember it at all. This is the forgiveness of our Lord.

 

Husbands and wives fight. I tell this to newly-weds a lot: “Don’t say hurtful things. Everything piles up; not one word goes away. When you have quarrels, these hurtful words will eventually come up.”If they do, it means none of the past has been forgiven.This is not true forgiveness. True forgiveness is to erase everything from your memory. This is forgiveness.

 

Then what happens when we forgive?

 

Alister Edgar McGrath, who wrote The Journey: A Pilgrim in the Lands of the Spirit, defines forgiveness as such: forgiveness restores crucial relationships that we have destroyed. He emphasizes the restorative power of forgiveness. He also writes that through forgiveness our Lord restored our relationship with God which had been ruined forever by our foolish actions.

 

Forgiveness has the power to restore relationships. It has the power to reconnect broken and ruined relationships. This is forgiveness.

 

Only the one who forgives can create this restoration.

 

When the risen Jesus comes to the disciples at Lake Tiberius, He asks Peter, “Do you love me?” Then Hesays to him, “Feed my sheep.” After this, Peter recommits himself to Jesus as a disciple. He becomes a disciple who was faithful to the very end. By forgiving, Jesus called His disciples again and made them true followers of Christ. Through forgiveness He called them again to where they ought to be.

 

In 2006 the Pyongyang Presbytery held a special service to repent its past sin of expelling Pastor Ju Gi-cheol (also spelled Chu Ki-Chol)who suffered martyrdom for opposing Japan’s demands to worship Shinto shrines during itscolonial rule over Korea. The Pyongyang Presbytery repented dismissing Pastor Ju in 1939 and reinstated him during the service.

 

At the service Professor Kim In-soo, a professor of church history, said in his lecture:

 

“In fact our denomination,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has a shameful history of accepting Shinto practices during Japanese occupation. In this sense, we are unable to raise our heads. But there were exceptional Christians in those times who did not accept this practice and created their own denomination: the Kosin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Therefore, the Kosin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may be said to be the ‘legitimate’ denomination of Korea.”

 

“But this denominationonly grew to a small to medium-sized denomination and does not play a dominant role in Korean churches today. Why is that? It is because itdid not have a forgiving spirit. It judged other denominations that accepted Shinto worship,never accepting them. It succeeded in maintaining purity, but becauseit did not forgive, it failed to take on greater works of the Lord.”

 

Becoming a Christian means to experience the forgiveness that comes from God; but at the same time it means learning to forgive. We are people who forgive.

 

First, we must learn to forgive ourselves. Many people have difficult relationships with themselves. They struggle internally, unable to resolve their inner conflicts. It is because they cannot forgive themselves. Why can’t we forgive ourselves when God has already forgiven us and accepts us as we are? We must forgive and accept ourselves.

 

Many cannot forgive their parents. When I was doing ministry in the United States, I received prayer requests many of which were about parent-child relationships: countless sons were struggling to forgive their fathers and daughters their mothers.

 

Our Lord forgave. He forgave us too. That Lord speaks to us: forgive your parents. We must forgive. Only then can new relationships begin.

 

There are those who despises their spouse. There are parents who hate their children. There are people who hate their relatives. Friends hate each other too.

 

The moment we hate or despise someone, relationships break down.

 

Only through forgiveness arerelationships restored. We become happy only when we forgive. We must forgive unconditionally.

 

Just as our Lord forgave us, we also must forgive. Only then can new relationships begin. Only then can tangled problems become untangled. We must forgive unconditionally and reach out to others first. Just as our Lord did to us. A beautiful community will be created where this is done.

 

A married couple came to a pastor. They were thinking of getting a divorce; but as Christians they decided to at least tell their pastor before splitting up. Their faces were cold, full of hatred. They were more than ready to list and prove all the past wrongs of the other side.

 

They said, “Pastor, we really did everything we could to avoid getting a divorce. We did and tried everything possible, but now we have no choice. So we are getting a divorce.” The pastor replied, “There is one thing you haven’t tried yet: forgiving each other. If things still don’t get better even after forgiving, come to me.”

 

Participating in resurrection is to be reborn as someone who forgives as Jesus did.

 

Forgiveness is a power that saves. There is a saving power toforgiveness.

 

Anger and hatred drive us to death. But forgiveness saves us.

 

It is a power that saves not just me, but everyone. Relationships are created. Relationships between me and you are built. Th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Peter was built.

 

Even though Jesus did not utter a word of forgiveness, He forgave Peter; He forgave His disciples.

 

Through forgiveness Peter was reinstated. Through forgiveness the disciples were re-edified.

 

Do you know just how much forgiveness protects you? Just how much it saves you?

 

Where there is forgiveness there is peace.

 

“Peace be with you!” (John 20:21)

“Let the peace of Christ rule your hearts, […]” (Colossians 3:15a)

 

‘I cannot do it. It is impossible for me.’ If this is what you are thinking, return to the passage in John:

 

“And with that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the Holy Spirit. If you forgive anyone’s sins, their sins are forgiven; if you do not forgive them, they are not forgiven.’” (John 20:22-23)

 

The reason we wait so earnestly for the Holy Spirit is toagain receive the power to forg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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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 1~4

1~4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용서하는 자로 세우십니다.>

 

지난주 우리는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나 주신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여인, 두려워서 떨고 있는 제자들, 의심하는 도마를 만나 주신 주님을 함께 생각하였습니다.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 말씀을 하셨지만, 그중에서도 ‘용서’와 관련된 말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적의를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나, 주님을 그토록 괴롭힌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에게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그들을 찾아가 징계하실 수도 있으셨을 겁니다. 십자가에 손을 못 박은 군인들을 찾아가셔서 책망하실 수도 있으셨겠죠.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때에 모든 사람을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고, 부활하셨을 땐 어떤 분노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 중)

예수님을 버리고 떠난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간 제자들이었죠. 그런데 그들을 향하여 평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중) 평안을 전하신 다음에 그들을 어딘가로 보내시겠다는 말씀을 이어 가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22~23)

 

무엇을 향하여 보내신다고 말씀하신 걸까요? 또 어떤 사명을 주시며 제자들을 보내신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방금 전 읽은 말씀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용서하는 자, 제자들로 하여금 용서하는 자로 보내시겠다는 주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위하여 숨을 길게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정 원하시는 것, “너희가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주님은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고난받고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용서’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자 하신 듯 보입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용서라는 것이 참으로 신비하다고 생각합니다. 용서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어떤 작용일까요? 짐승들에게는 과연 용서라는 것이 있을까요? 성경은 끊임없이 용서할 것을 권면합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7장도 공생애 기간 용서를 부탁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록합니다.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눅 17:4)

 

일곱 번이라도 똑같은 일로 와서 회개한다고 말한다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렇게 권면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골로새서 3장 13절 말씀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골 3:13, 새번역)

 

이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용서하여 주셨다는 사실이 말씀의 근거가 됩니다. 사실 누가 감히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용서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 속에서 용서할 수 있는 비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 채찍질하는 사람을 향하여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탄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그들이 행한 바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생일파티가 있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파티를 여는데 어린 손주가 장난질을 합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케이크를 드는 순간, 손주가 그만 할아버지에게 돌진하더니 할아버지 바지 옷자락에 케이크를 묻히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할아버지라면 어떻게 할까요? 벌떡 일어나서 아이를 야단치시겠습니까? 호되게 꾸중하실까요? 만약에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치매 초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할아버지라면 허허 웃으며 아이를 꼭 안아 주시겠죠. 손주가 잘 모르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실수여도 그저 귀엽게 여기며 받아주실 것입니다.

‘잘 몰라서,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라고 생각하면 용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판단합니다. 이 사람이 고의로 한 것인가, 모르고 한 것인가. 고의로 했다고 생각되면 용서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을 향하여 “저들이 지금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은 그들이 고의로 하였을지라도 사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주님의 탄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용서가 잘 안되시면 먼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주님은 명하신 용서는,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용서일까요? 이사야서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5)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데 그 죄를 도말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더 이상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데이터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놓고 계속해서 보시는 분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면 친히 지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분입니다.

설교 예화 중에 하나입니다. 지어낸 이야기 같습니다만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을 보면 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은사였다죠. 그래서 한 신실하신 목사님이 그가 자신의 과거를 볼 수 있는지 궁금해졌답니다. 목사님에게는 숨겨진 하나의 비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되어서 신실하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모든 죄를 고백하며 용서받았다고 믿고는 있지만, 오래 전 지은 큰 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 사람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나를 보시고, 내 안에 숨겨진 죄가 있는지 살펴봐 주십시오.” 그러자 그분을 뚫어지게 살펴보더니 이야기했답니다. “당신의 죄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지워졌네요.”

하나님의 용서란 어떤 것입니까? 완전히 지워 주시는 것, 완전히 도말하시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잊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런 용서를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 특히나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만나실 때조차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책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따뜻하게 물으시며 그를 살리셨습니다. 도망가고 배반한 제자들을 향하여서도 이유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평안을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잊어버리신 것입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용서입니다.

종종 부부들과 상담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신혼부부들을 볼 때면 꼭 해 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가는 것 같지만, 부부 싸움을 하게 되면 다시 나오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도 삶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용서한다고 말은 하였지만, 그래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 같지만, 어느 날 다시 싸우게 되면 모든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신혼 첫날부터 시작해서 잘못한 것이 다시 살아나서 옭아매는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용서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이라는 책을 쓴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dgar McGrath)가 그의 책에서 용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용서란 내가 망가뜨린 정말 중요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영영 망가뜨려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리 주님께서 용서를 통하여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관계 회복이 용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용서는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망가진 관계, 틀어진 관계를 이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는 회복하는 힘을 가진 특효약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가정생활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더 이상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어떤 사람이 용서하기 시작하면 조그마한 길이 열리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용서에는 그와 같은 힘이 있습니다.

2006년 평양 노회에서 파면당한 주기철 목사님을 복권시키고, 참회 예배를 드리는 특별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위원으로 함께한 기억이 있습니다. 평양 노회는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주기철 목사님을 1939년에 면직시켰습니다. 그 잘못을 참회하고, 주기철 목사님을 복권시키는 예배였습니다. 그날 강연으로 참가하신 교회사가 김인수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교단은 신사 참배라는 창피한 역사를 가진 교단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교단입니다.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교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교단(고신 교단)은 작은 교단이 되었고, 한국교회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에게는 용서의 정신이 없었습니다. 신사 참배한 사람들을 정죄하면서 그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용서가 없었기에 보다 큰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말씀이 제 마음속 깊이 들어왔습니다.

요즘 사회적 운동이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의라는 표제도 있고요. 평화라는 표제도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증오로, 때로는 나눔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여 주신 사랑과 용서의 방법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정의와 평화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땅에는 관계가 살아나지 못하고, 평안도 임하지 못합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용서를 경험하는 것이고, 동시에 용서하는 방법을 배워 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용서하는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우리 자신부터 용서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의 좋은 관계를 갖지 못하여 힘들게 살아갑니다. 내면에 있는 나,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깊숙한 내 자신, 그 사이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받으시고 인정해 주셨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자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들도 많고요. 제가 미국에서 목회하는 중에 청년들과 나눈 기도 제목 중 대다수가 부모와의 관계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부모님들이 유학비용까지 대주시며 보조해 주시지만 정작 자녀와의 관계는 뒤틀어진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부모를, 자식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교우끼리 서로 미워하고 반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워하는 순간 관계는 깨어지고 회복될 길은 없습니다. 용서를 통해서만이 관계가 세워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한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목사님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이혼하기로 결정한 부부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싸늘했고 증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서로의 잘못을 얼마든지 나열하고 증명할 태세였습니다. “목사님, 저희들 이혼하지 않으려고 모든 것 다 해 보았습니다. 할 수 있는 것 다 해 보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네요.” 그러자 목사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였답니다. “한 가지를 시도하지 않으셨네요. 용서해 보신 적 있습니까? 용서를 하고도 해결되지 않으면, 그때 저에게 다시 찾아오십시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도 우리를 대하여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기쁨 누리길 원하셨지만,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만큼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고 특별하게 대우하셨지만, 그들은 부르심의 가치대로 살지 못하였습니다. 애굽에서 탈출시키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셨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계명을 주시면서까지 백성들을 이끄셨지만 정작 그들은 기쁨이 되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일하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심으로 무조건적인 용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로 말미암아 마침내 풀려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기쁨의 50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종종 부활에 참여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겠지만 용서와 관련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용서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용서는 누군가를 살려 냅니다. 분노와 살인은 죽음으로 몰고 갈 뿐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살려 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다시 부르셨고, 제자들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용서하노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지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한마디로 그들을 다시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 중)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골 3:15a, 새번역)

 

여러분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저도 용서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습니다.” 깊이 한탄하는 분들을 향하여 주님 말씀하십니다. 다시 요한복음으로 돌아갑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22~23)

 

예수님도 아셨습니다. 제자들이 성령 받지 않고는 용서하는 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 절기 마지막에 성령강림주일을 기다립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보여 주신 용서의 삶을 우리도 살아내기 위하여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분노와 성냄, 증오는 우리를 결코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평화로 이끌지 못합니다. 오직 용서를 통해서만이 평화의 길이 열립니다. 생명의 길이 열립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23년 4월 23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부활은 용서입니다 (눅 17장 1~4)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170장, 438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눅 17장 1~4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4월 2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특별히 용서의 관점에서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설교의 요약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복수의 마음으로 나타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토록 괴롭혔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시며 징벌하거나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그들을 용서하셨고, 부활하셨을 때에도 어떤 적의나 분노를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시며 숨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시며 용서하는 자가 되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용서하는 자로써 세상에 보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을 보시며, 저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하나님께 사람들의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며 깨끗하게 잊어버리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무엇인가를 알고 기억하고 있어서 묻어 두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꺼내 쓸 때 사용할 수 있는 어떤 재료가 아닙니다. 완전히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게 되면 망가진 관계, 틀어진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힘이 생깁니다.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용서를 하는 사람은 이러한 회복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용서를 경험하는 것이며, 동시에 용서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용서하고, 부모를 용서하고, 배우자와 자녀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하는 사람들입니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순간 관계는 깨어지게 되지만, 용서를 통해서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용서하면 새로운 관계가 열립니다. 풀 수 없는 것이 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이와 같이 용서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용서하는 자로 다시 능력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나누기

  1. 인생을 살다보면 다른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떤 종류의 일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2. 나로 인하여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사람들이 다시 웃음을 찾았던 경험이 있나요? 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그 소명을 마음에 새깁니다. 용서하는 자로, 용서를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용서를 통하여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며, 사회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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