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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손에서 시작된 기적

요한복음 6:5~11

김경진 목사

2024.05.05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곳에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맞춰 하여 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산보와 원족(소풍) 같은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자세 타일러 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 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

(소파 방정환,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선언문’ 중)

 

‘어린이’라고 하는 용어조차 없고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던 시기에,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색동회를 만들고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선언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선언문 중에 일부가 방금 읽어 드린 말씀의 내용입니다. 요즘 이 글을 읽으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2023년 기록으로는 0.72명이라고 합니다. 4분기에는 0.65까지 내려갔던 적도 있었지요. 어린이를 보기가 이렇게 귀합니다. 집집마다 어린애가 태어나면 정말 귀하게 키우고 있는 오늘의 현실의 관점에서 본다면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보내면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위대한 기적 하나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은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사건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이야기 속에 한 어린아이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는 어린아이가 제대로 인간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던 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도 아마 옛날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성경은 흥미롭게도 오병이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 14:20~21)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여자와 어린이를 사람의 수로 계산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어린이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던 시대에 한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어린이가 오병이어 기적의 촉발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잘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을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시고 연민을 느끼셨습니다. 그들을 어떻게든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드셨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배고픔을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을 가지시고 빌립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요 6:5b)

 

예수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빌립은 나름 빠른 계산과 더불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요 6:7)

 

빌립은 사람들의 숫자를 어림잡아 세웠고 그들을 먹일 때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지 빠르게 계산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빌립은 아주 정확한 대답을 예수님께 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제자 중 하나였던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요 6:9)

 

안드레 역시 계산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 앞으로 한 아이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의 손에는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면서 이렇게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께 말하고 있는 중심은 뒷부분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빌립도, 안드레도 모두 어른답고 지혜롭게 대답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먹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는 답이었습니다. 바른 판단입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지,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신지를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대답은 명확한 정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한 변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셨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먹이기 원하셨다.’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사실을 알기를 원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사실을 계산에 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실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른답게 계산할 줄 알죠. 어떤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이것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 거야’, ‘이것은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지’ 등 나름대로 지혜롭게 판단하고 계산할 줄 압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계산의 과정에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 지금도 역사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계산을 넣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러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린아이는 왜 예수님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나왔을까요? 어린아이가 나오면서 ‘내가 이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드리면 예수님께서 아마도 오천 명을 먹이실 수 있을 거야.’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나왔을까요? 아마 그러진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갖다 바치면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보여 주실 거야.’ 이런 믿음을 가지고 나왔을까요? 아마 아이는 그런 믿음을 갖고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아이에게 들려 있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어쩌면 어머니의 손에 의해 그에게 들려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배고프실까 봐 아이의 손에 들려서 어머니가 예수님께 보내는 물건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이 어린아이가 그냥 예수님이 좋아서 자기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을 들고 예수님께 나왔을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작은 의도를 가지고 무작정 드린 선물입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 이거 잡수세요, 예수님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이런 마음으로 예수님께 가져다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선물을 가지고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린아이, 또 이 아이에게 들려 있던 이 오병이어 음식으로부터 놀라운 기적이 시작됩니다. 자그마치 어른 남자만 오천 명이 먹었고 나머지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이 함께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게 되는 놀라운, 풍성한 식사가 이루어졌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어린아이 또한 발전과 신앙의 도상에 있는 온전한 존재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 어린아이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만약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 단번에 여러분께서는 대답하실 것입니다. “당연하죠. 우리가 지금 얼마나 정성스럽게 아이들을 잘 길러 내고 있는데요.”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능력의 부분에서 우리 어른들과 똑같은 능력의 존재로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또 신앙의 영역에서 어린아이들을 신앙의 동역자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도상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나는 존재지요. 자라나고 변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의 능력을 때로는 제한하려고 할 때가 참 많습니다. “너는 아직 크지 않았어, 너는 아직 아니야. 이거 할 때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상상력을 제한하고 아이들을 도리어 묶어 두려고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아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른들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만 되는 존재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제 여름이 되면 아이스크림을 드시는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 막대 아이스크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누가 발명한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1905년 프랭크 에퍼슨(Frank Epperson)이라는 어린아이가 11살 때 발명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 발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 귀를 막는 귀마개도 역시 어린아이가 발명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특별한 신호등 체계가 있지 않습니까? 예측 가능한 신호등 체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맨 처음 발명한 사람이 우리나라 어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999년 목포 용호초등학교 6학년 서대웅 어린이가 생각해 내었고, 그것이 적용되어서 우리나라의 많은 여러 신호체계에 활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은 단지 물건의 발명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라는 스웨덴의 한 어린 소녀는 15살 나이에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홀로 의회 건물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시위’를 벌이면서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홀로였습니다. 그런데 이 한 명의 소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고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지금 전 세계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함께하며 기후 문제를 염려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기후 위기 문제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격려하는 일이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그저 도상에 있는 미완의 존재가 아닙니다. 아직 발전하고 있지만, 단계마다 그 자체로서 온전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우리 어른들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 누가 언제 어른이 됩니까? 13세, 16세 혹은 18세가 되면 어른이 됩니까? 법적으로 그런 규정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른들 역시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여전히 미완이죠. 그럼에도 순간마다 온전하게 존재합니다. 이것이 어른이죠. 아이들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격려하며 키우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어린아이도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힘씁니다.>

 

신앙의 문제에서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어른인 내가 아직 신앙이 온전하지 못한데, 어린아이는 당연히 어림도 없다고 생각하고 어린아이들의 신앙을 폄하하며 약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어린아이일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까? 어린 다윗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두려워하던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들고 돌진하여서 쓰러트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면서 환영했죠. 그때 그 자리에 어린아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숨기고 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1장의 말씀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마태 21:15~17)

 

어린아이가 그저 떠드는 것처럼 들렸던 호산나 소리가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하시는 찬양 소리가 되었다고 예수님께서 다시 재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어린아이도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합니다. 하나님은 어린이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역사를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잘 나오던 어린아이였는데, 그만 소아암에 걸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소아암에 걸렸으니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자신의 아이가 소아암에 걸리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을 믿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겠느냐?”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할 것을 아이에게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소아암을 앓고 있는 그 아이는 신앙이 단단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아빠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빠, 나는 아빠와 엄마를 만나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혹시 내가 일찍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된다고 할지라도 슬퍼하지 마세요. 하늘나라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셔서 나를 잘 돌보아 주실 거예요.” 결국 하나님의 품으로 어린아이는 그만 세상을 떠나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신앙을 붙들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아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이후에 아들이 간 그곳에 나도 가야 하겠다고 말하면서 교회를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믿음이 아빠를 구원하였고 아빠를 신앙으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어린이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지금도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어린아이들은 신앙의 동반자들입니다. 신앙의 함께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어른은 어른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서로 격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린아이는 인생과 믿음을 가르쳐 주는 동반자이자 축복의 통로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어린아이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죠.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어떻게 할 건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제자들이 “누가 큽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어린아이는 우리에게 도리어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줍니다. 어린아이가 우리의 스승이 될 때가 참 많습니다. 어린아이만 어른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도 어린아이에게 배우고 있고 반드시 배워야만 합니다. 정직한 아이, 엄마 아빠를 믿고 완전히 의지하고 있는 아이, 편견이 없는 아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 등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깨닫고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에는 꿈틀거리다가 다음에는 기다가 앉다가 또 일어나고 걷지요. 여러분, 아이가 태어나서 걷는 데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1년도 넘게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아이는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기어가며 끊임없이 앉고 서려고 하고 끊임없이 걸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걸어가지요. 우리가 아이들의 모습에서 인내를 배우고 끊임없는 노력을 배우지 않습니까? 이것이 아이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순 복덩어리다.

마른 잔디에 새 풀이 나고, 나뭇가지에 새 움이 돋는다고,

제일 먼저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봄이 왔다고 종달새와 함께 노래하는 이도 어린이고,

꽃이 피었다고 나비와 함께 춤을 추는 이도 어린이다.

별을 보고 좋아하고, 달을 보고 노래하는 것도 어린이요,

눈 온다고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큰 자연의 모든 것을 골고루 좋아하고,

진정으로 친애하는 이가 어린이요,

태양과 함께 춤추며 사는 이가 어린이다.” (방정환)

 

우리는 어린이를 통해서 인생의 길을 배우게 되고, 참다운 행복의 길도 배웁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어린이는 또한 우리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봅니다.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를 주님께 보이면서 말씀하죠.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요 6:9)

 

이 말은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가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라는 말로 1차적으로 읽히지요. 그런데 이 말은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이 어린아이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변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로 또 다시 읽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린아이의 행동은 절대로 어떤 큰 변화를 이룰 수 없을 거야.’라는 어른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함께하시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어른들은 그 혜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었고, 축복 자체가 되었습니다. 어린이의 헌신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어린이날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 어린이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하는 신앙의 동반자고 능력을 가득 품고 있는 가능성의 사람들이며 우리의 신앙과 삶의 선생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면서, 그들을 귀하게 여기고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he Miracle That Started From A Boy’s Hands

 

John 6:5-11

 

“Do not look down on children, but look at them.

Speak with respect to children, always using kind language.

Make sure that children get haircuts, baths, and proper clothing in time.

Make sure they getsufficient sleep and exercise.

From time to time let them go on walks or have family picnics.

When you rebuke a child, don’t get angry easily but teach them kindly and specifically.

Build facilities like a playground where children can gather and have fun.”

(Bang, Jeong-Hwan. “Declaration of Children’s Rights.” Korea, May 1, 1923.)

 

The above is part of the“Declaration of Children’s Rights,”published on May 1, 1923, by Bang Jeong-Hwan. At a time when the Korean word for “child,”“eorini,” didn’t even exist and the perception of children was poor, Bang and seven other like-minded activists started the The Rainbow Society (Saekdonghoe) and published this declaration.

 

To those of us today, this declaration seems to belong to a different age. ConsideringKorea’scurrent-day reality, where fertility rates have dropped to 0.65 making children scarce and precious in the family, we may say times have changed greatly.

 

Today is Children’s Sunday. Children’s Sundayneither is a festival in the Bible,nor included in the church year; yet Korean churches have observed the first Sunday of May as Children’s Sunday as long as I can remember. The first Children’s Sunday, however, is known to have started in the United States.

 

Ever sinceG. H. Leonald, a reverend ministering inMassachusetts,started observing the second Sunday of June as Children’s Sunday, the American Methodist Church made it a commemorative date in 1868; in 1883, Americans across the nation were celebratingit as Children’s Day too.

 

At first, Korean churches,too, celebrated the second Sunday of June as Children’s Sunday; but in 1956 Children’s Sunday was changed to the first Sunday of May. This was not only closer to May 5, Korea’s Children’s Day, which Koreans had started to observe since 1946, but also promoted the meaning and purpose of Children’s Sunday well.

 

As we celebrate Children’s Sunday today, I wish to look ata great miracle performed by Jesus. Today’s passage from John tells the story of Jesus feeding the five thousand with two fish and five barley loaves, a miracle you are familiar with.

 

This miracle is recounted in all four Gospels, Matthew, Mark, Luke, and John. The reason I chose this story for today is because a little boy appears in it.

 

This was a time when children were not considered persons. The plight of children in Israelin those days was no different from that of Korean children in our past.

 

The Bible indirectly describesthis context in an interesting way at the end of the story of Jesus miraculously feeding the five thousand: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fuls of broken pieces that were left over. The number of those who ate was about five thousand men, besides women and children.”(Matthew 14:20-21)

 

Mark adopts a milder tone in recording the same events:

 

“an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fuls of broken pieces of bread and fish.The number of the men who had eaten was five thousand.”(Mark 6:43-44)

 

This shows us Israel’s cultureat the time which didn’t count women and children in taking a census. The miracle of feeding the five thousand does not hide the fact that women and children were not treated as proper humans in Jesus’ time.

 

Yet it is fascinating that a little boy plays a part in this story. What’s more, he is the trigger of Jesus’miracle.

 

Today’s text, John, shows this very well.

 

The Jewish festival of the Passover was drawing near. Many people flocked to Jesus to hear Him speak. When Jesus saw them who had even forgotten their hunger, He thought of their hunger. And in His heart, He considered feeding them.

 

So He asks Phillip:

 

“Where shall we buy bread for these people to eat?” (John 6:5b)

 

Phillip, who does not understand what Jesus is thinking, calculates the cost of feeding the crowd relatively quickly:

 

“Eight months’ wages would not buy enough bread for each one to have a bite!”(John 6:7)

 

Frankly, we like such people. People like Phillip are quick to take stock of the situation and are precise. They are called“grownups.” They are good at making calculations and understanding the situation at hand. They can roughly count the number of people and calculate the cost of feeding them.

 

In this respect, Phillip’s answer was commendable from a human point of view. Another of His disciples, Andrew, Simon Peter’s brother, answered Jesus in a similar fashion:

 

“Here is a boy with five small barley loaves and two small fish, but how far will they go among so many?”(John 6:9)

 

Andrew also knew how to calculate like a grownup. He saw a little boy come to Jesus with two fish and five barley loaves. But thiswas his assessment: “But how far will they go among so many?”

 

It’s an accurate assessment. Andrew’s core message is at the end of his answer. Phillip and Andrew both answered Jesus very wisely like an adult.

 

In short, they are saying, “Teacher, feeding all these people is impossible.” This is a sound judgement—if, of course, you don’t take into account who Jesus is and how great His power.

 

But that variable was there. Jesus was there. Our Lord wanted His disciples to consider this fact, but they failed to takeit into account.

 

Andrew saysthat a little boy has come to Jesus with two fish and five barley loaves. Then why had this child come to Jesus with these foods? Did he expect Jesus to feed five thousand people with what he had? Did he possess a faith that believedJesus would perform miracle if he gave his food to Him?

 

Perhaps the boy’s mother had pushed him into taking the food to Jesus. Maybe she thought Jesus would be hungry too since she was getting hungry. Perhaps she pushed her boy into taking some of her food to Jesus.

 

Imagine this boy approaching Jesus awkwardly. He may have looked behind his shoulder several times, feeling his mother’s gaze on him. She may have urged him on, motioning with her hands to keep going. The boy would have pressed forward till he reached Jesus. And in his hands,he held two fish and five barley loaves.

 

It was with these that Jesus performed His great miracle. John clearly and distinctively states that the miracle started from the two fish and five barley loaves in the little boy’s hands.

 

The miracle began from this little boy thatappeared incapable of doing anything and the meager foods he had; it became a splendid feast that fed five thousand men as well as all the women and children present, and there were even twelve basketfuls of leftovers.

 

As we celebrate Children’s Sunday today, let’s ask ourselves, “Do we really respect children?” You may answer “Yes, of course!” But think again.

 

Yes, we do love children. We don’t beat or curse at them. Things have changed. We cherish children now. Some people even say Children’s Day has become unnecessarytoday because every day is a “Children’s Day”!

 

This is how much we love and respect children anduphold their rights.

 

But do we really respect them in terms of their ability and faith? Do adults really accept the fact that children are capable of having their own faith and can be used by God?

 

Children are usually considered“adultsin the making.” This is true. Children continuously grow and change. But this does not meanthat they are incapable of doing anything. Let me give you an example. With the weather getting hotter, it will soon be the season for ice cream. And you know what the Popsicle is, right? Well, do you know who invented it? Eleven-year-old Frank Epperson invented the first Popsicle in 1905.

 

And what about earmuffs used frequently in winter? Do you know who invented it? A fifteen-year-old American boy, Cherster Greenwood.

 

Korea has a special pedestrian crossing sign that tells you how many seconds are left till the signal ends. But did you know it was an elementary school boy who first thought of it? In 1999, Seo Dae-Woong, a 6th grader attending Yong-Ho Elementary School in Mokpo invented this predictable light.

 

Theamazing abilities of children are not limited to inventing things.

 

Greta Thunberg is a Swedish girl who first started to voice her opinions on climate change issues at the age of 15. She started a school strike for the climate outside the Swedish parliament building all by herself, urging it to come up with measuresto fight global warming.

 

At first, her voice was just a small and lonely one, but more and more students and citizens joined her. Eventually, millions of people across the globe came to participate in her movement for climate change.

 

A little girl sparked a great movement on climate change.

 

It is important to accept that even little children have infinite abilities and to encourage them. Our children are not just “imperfect beings in the making.” Although they are still growing, they are a whole being as they are. They are no different from adults.

 

This applies to the realm of faith, too. As adults whose faithsare not yet whole or perfect, we may think children don’t stand a chance against us. This is not true. The Bible gives us many examples of God calling children and using them for His ministry.

 

Samuel heard God’s voice when he was just a child. He heard God speaking to him; later, he heard God’s message and plans for Israel and the family of Eli, the priest.

 

When all the other grownup soldiers of Israel were trembling in fear before Goliath, young David slayed the Philistine giant with just a sling and a stone using no armor. God used young David.

 

When Jesus entered Jerusalem to be crucified, many people greeted Him singing, “Hosana!” The Bible describes that children were there too:

 

“But when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saw the wonderful things he did and the children shouting in the temple area, ‘Hosanna to the Son of David,’ they were indignant. ‘Do you hear what these children are saying?’they asked him. ‘Yes,’ replied Jesus, ‘have you never read,From the lips of children and infants you have ordained praise?’And he left them and went out of the city to Bethany, where he spent the night.”(Matthew 21:15-17)

 

The Bible testifies that Jesus was glorified by the praises shouted by little children. Children are far from incomplete in terms of faith. They also praise the Lord with their lips, and God receives those praises with pleasure, making those songs perfect.

 

Children take part in God’s ministry, too. God carries out His work through children. Our little ones are warriors of faith, just like us adults. Of course, children’s faith must grow too—just as ours ought to mature.

 

There was a little boy. He attended church well, but unfortunately, was diagnosed with child cancer. His parents were devastated. The mother knew Jesus, but the father didn’t. So when his son fell ill, he was furious with God. If God existed, how can He do this to his son? He was even bitter toward his wife who believed in God. But the boy possessed an amazing faith. He told his dad, “Dad, I am so grateful for having you and mom as my parents. Even if I die early, please don’t be sad. Don’t worry. I have a Father in heaven.” The boy comforted his dad. And he died. After witnessing his son’s strong faith and how he entered the arms of God, the boy’s father started coming to church. Eventually, he became a man of faith. A little boy’s faith led his father to Jesus.

 

Therefore, the faith of a child is precious. God does wonderful things through children. Furthermore, He makes us reflect on ourselves through them, making us see what we ought to do as God’s children.

 

When the disciples fought among themselves in Jesus’ presence, asking, “Who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God?”, Jesus stood a little boy before them and said: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Matthew 18:3)

 

Yes. Children teach us many things. Children are not just to be taught by adults. Grownups havea lot to learn from them too.

 

We learn many things from children who are honest, who trust in their parents, who are not biased, and who have kind hearts.

 

Moreover, children accomplish things that adults find difficult. I am amazed when I see a little baby squirm, crawl, sit, and finally stand up. He tries and tries and he finally succeeds in taking a few steps after crawling and sitting. What an amazing perseverance!

 

Therefore, this is how Bang Jeong-hwan described children:

 

“Children are a pure blessing. They are the first ones to jump with joy when new grass starts to grow on a dry patch of ground and when theleaves start budding on branches. They sing with the larks when spring comes and dance with the butterflies when the flowers bud. They love to watch the stars, sing at the moon, and jump joyfully in the snow. Children love the mountains and the sea, adore nature, great and small, and dance with the sun.” (Bang)

 

It was a cold winter night. A boy was listening to his mother tell Bible stories in anicy cold room without a fire. The mother told him how God fed Elijah through ravens. Believing the story with purity and innocence,the boy begged his mother to leave the window open so that God will send them ravens too. “Mom, I am certain that God will send us birds to help us.” The loving mother could not resist her son’s plea. A man, the mayor of that town,happened to be passing by. Seeing an open window on a bitter cold night, he walked into the house out of curiosity. Hearing their story, he replied, “I will be your raven.” Ever since, he provided for their needs.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Matthew 18:3)

 

Children are God’s instruments that make us reflect on our lives. In children we find the heart of God that wants us to be pure again and advance to a perfect faith. Therefore, children are a blessing to us all.

 

Let’s return to today’s Scripture. As Andrew brings to Jesus a little boy with two fish and five barley loaves, he says:

 

“Here is a boy with five small barley loaves and two small fish, but how far will they go among so many?”(John 6:9)

 

This may be read as,“These two fish and five barley loaves—how significant would they possibly be among so many people?” However, it may also be read as follows: “Here is a boy who has come forward with two fish and five barley loaves. But what great variable could this little boy’s actions possibly be among so many people?”

 

But when the Lord was with him, the little boy’s commitment created wondrous consequences. I hope we will all be able to view children with such a faith.

 

Children are God’s pathway of blessing, a ble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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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5~11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곳에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맞춰 하여 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산보와 원족(소풍) 같은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자세 타일러 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 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

(소파 방정환,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선언문’ 중)

 

‘어린이’라고 하는 용어조차 없고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던 시기에,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색동회를 만들고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선언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선언문 중에 일부가 방금 읽어 드린 말씀의 내용입니다. 요즘 이 글을 읽으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2023년 기록으로는 0.72명이라고 합니다. 4분기에는 0.65까지 내려갔던 적도 있었지요. 어린이를 보기가 이렇게 귀합니다. 집집마다 어린애가 태어나면 정말 귀하게 키우고 있는 오늘의 현실의 관점에서 본다면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보내면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위대한 기적 하나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은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사건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이야기 속에 한 어린아이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는 어린아이가 제대로 인간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던 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도 아마 옛날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성경은 흥미롭게도 오병이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 14:20~21)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여자와 어린이를 사람의 수로 계산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어린이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던 시대에 한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어린이가 오병이어 기적의 촉발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잘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을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시고 연민을 느끼셨습니다. 그들을 어떻게든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드셨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배고픔을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을 가지시고 빌립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요 6:5b)

 

예수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빌립은 나름 빠른 계산과 더불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요 6:7)

 

빌립은 사람들의 숫자를 어림잡아 세웠고 그들을 먹일 때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지 빠르게 계산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빌립은 아주 정확한 대답을 예수님께 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제자 중 하나였던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요 6:9)

 

안드레 역시 계산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 앞으로 한 아이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의 손에는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면서 이렇게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께 말하고 있는 중심은 뒷부분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빌립도, 안드레도 모두 어른답고 지혜롭게 대답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먹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는 답이었습니다. 바른 판단입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지,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신지를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대답은 명확한 정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한 변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셨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먹이기 원하셨다.’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사실을 알기를 원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사실을 계산에 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실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른답게 계산할 줄 알죠. 어떤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이것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 거야’, ‘이것은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지’ 등 나름대로 지혜롭게 판단하고 계산할 줄 압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계산의 과정에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 지금도 역사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계산을 넣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러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린아이는 왜 예수님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나왔을까요? 어린아이가 나오면서 ‘내가 이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드리면 예수님께서 아마도 오천 명을 먹이실 수 있을 거야.’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나왔을까요? 아마 그러진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갖다 바치면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보여 주실 거야.’ 이런 믿음을 가지고 나왔을까요? 아마 아이는 그런 믿음을 갖고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아이에게 들려 있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어쩌면 어머니의 손에 의해 그에게 들려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배고프실까 봐 아이의 손에 들려서 어머니가 예수님께 보내는 물건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이 어린아이가 그냥 예수님이 좋아서 자기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을 들고 예수님께 나왔을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작은 의도를 가지고 무작정 드린 선물입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 이거 잡수세요, 예수님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이런 마음으로 예수님께 가져다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선물을 가지고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린아이, 또 이 아이에게 들려 있던 이 오병이어 음식으로부터 놀라운 기적이 시작됩니다. 자그마치 어른 남자만 오천 명이 먹었고 나머지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이 함께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게 되는 놀라운, 풍성한 식사가 이루어졌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어린아이 또한 발전과 신앙의 도상에 있는 온전한 존재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 어린아이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만약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 단번에 여러분께서는 대답하실 것입니다. “당연하죠. 우리가 지금 얼마나 정성스럽게 아이들을 잘 길러 내고 있는데요.”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능력의 부분에서 우리 어른들과 똑같은 능력의 존재로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또 신앙의 영역에서 어린아이들을 신앙의 동역자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도상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나는 존재지요. 자라나고 변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의 능력을 때로는 제한하려고 할 때가 참 많습니다. “너는 아직 크지 않았어, 너는 아직 아니야. 이거 할 때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상상력을 제한하고 아이들을 도리어 묶어 두려고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아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른들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만 되는 존재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제 여름이 되면 아이스크림을 드시는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 막대 아이스크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누가 발명한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1905년 프랭크 에퍼슨(Frank Epperson)이라는 어린아이가 11살 때 발명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 발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 귀를 막는 귀마개도 역시 어린아이가 발명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특별한 신호등 체계가 있지 않습니까? 예측 가능한 신호등 체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맨 처음 발명한 사람이 우리나라 어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999년 목포 용호초등학교 6학년 서대웅 어린이가 생각해 내었고, 그것이 적용되어서 우리나라의 많은 여러 신호체계에 활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은 단지 물건의 발명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라는 스웨덴의 한 어린 소녀는 15살 나이에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홀로 의회 건물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시위’를 벌이면서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홀로였습니다. 그런데 이 한 명의 소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고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지금 전 세계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함께하며 기후 문제를 염려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기후 위기 문제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격려하는 일이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그저 도상에 있는 미완의 존재가 아닙니다. 아직 발전하고 있지만, 단계마다 그 자체로서 온전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우리 어른들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 누가 언제 어른이 됩니까? 13세, 16세 혹은 18세가 되면 어른이 됩니까? 법적으로 그런 규정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른들 역시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여전히 미완이죠. 그럼에도 순간마다 온전하게 존재합니다. 이것이 어른이죠. 아이들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격려하며 키우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어린아이도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힘씁니다.>

 

신앙의 문제에서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어른인 내가 아직 신앙이 온전하지 못한데, 어린아이는 당연히 어림도 없다고 생각하고 어린아이들의 신앙을 폄하하며 약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어린아이일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까? 어린 다윗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두려워하던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들고 돌진하여서 쓰러트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면서 환영했죠. 그때 그 자리에 어린아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숨기고 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1장의 말씀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마태 21:15~17)

 

어린아이가 그저 떠드는 것처럼 들렸던 호산나 소리가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하시는 찬양 소리가 되었다고 예수님께서 다시 재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어린아이도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합니다. 하나님은 어린이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역사를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잘 나오던 어린아이였는데, 그만 소아암에 걸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소아암에 걸렸으니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자신의 아이가 소아암에 걸리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을 믿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겠느냐?”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할 것을 아이에게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소아암을 앓고 있는 그 아이는 신앙이 단단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아빠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빠, 나는 아빠와 엄마를 만나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혹시 내가 일찍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된다고 할지라도 슬퍼하지 마세요. 하늘나라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셔서 나를 잘 돌보아 주실 거예요.” 결국 하나님의 품으로 어린아이는 그만 세상을 떠나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신앙을 붙들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아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이후에 아들이 간 그곳에 나도 가야 하겠다고 말하면서 교회를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믿음이 아빠를 구원하였고 아빠를 신앙으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어린이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지금도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어린아이들은 신앙의 동반자들입니다. 신앙의 함께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어른은 어른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서로 격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린아이는 인생과 믿음을 가르쳐 주는 동반자이자 축복의 통로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어린아이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죠.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어떻게 할 건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제자들이 “누가 큽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어린아이는 우리에게 도리어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줍니다. 어린아이가 우리의 스승이 될 때가 참 많습니다. 어린아이만 어른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도 어린아이에게 배우고 있고 반드시 배워야만 합니다. 정직한 아이, 엄마 아빠를 믿고 완전히 의지하고 있는 아이, 편견이 없는 아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 등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깨닫고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에는 꿈틀거리다가 다음에는 기다가 앉다가 또 일어나고 걷지요. 여러분, 아이가 태어나서 걷는 데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1년도 넘게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아이는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기어가며 끊임없이 앉고 서려고 하고 끊임없이 걸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걸어가지요. 우리가 아이들의 모습에서 인내를 배우고 끊임없는 노력을 배우지 않습니까? 이것이 아이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순 복덩어리다.

마른 잔디에 새 풀이 나고, 나뭇가지에 새 움이 돋는다고,

제일 먼저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봄이 왔다고 종달새와 함께 노래하는 이도 어린이고,

꽃이 피었다고 나비와 함께 춤을 추는 이도 어린이다.

별을 보고 좋아하고, 달을 보고 노래하는 것도 어린이요,

눈 온다고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큰 자연의 모든 것을 골고루 좋아하고,

진정으로 친애하는 이가 어린이요,

태양과 함께 춤추며 사는 이가 어린이다.” (방정환)

 

우리는 어린이를 통해서 인생의 길을 배우게 되고, 참다운 행복의 길도 배웁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어린이는 또한 우리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봅니다.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를 주님께 보이면서 말씀하죠.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요 6:9)

 

이 말은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가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라는 말로 1차적으로 읽히지요. 그런데 이 말은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이 어린아이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변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로 또 다시 읽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린아이의 행동은 절대로 어떤 큰 변화를 이룰 수 없을 거야.’라는 어른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함께하시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어른들은 그 혜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었고, 축복 자체가 되었습니다. 어린이의 헌신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어린이날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 어린이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하는 신앙의 동반자고 능력을 가득 품고 있는 가능성의 사람들이며 우리의 신앙과 삶의 선생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면서, 그들을 귀하게 여기고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5월 5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어린이 손에서 시작된 기적” (요 6장 5~11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92장, 563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요 6장 5~1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5월 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정말 어린이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것은 신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인가요?

 

 

설교의 요약

 

오늘의 본문은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 곧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가 모두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 사건 속에 어린아이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어린아이가 제대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시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여자와 어린이가 사람의 수로 계산되지 않는 문화였습니다. 제대로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이 오고 있던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며, 그들의 배고픔을 생각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빌립은 나름 빠른 계산으로 얼마의 비용이 들 것인지 알아챕니다. 사태파악의 능력이 빠르고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계산도 제대로 할 줄 알고, 사태파악이 가능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계셨던 예수님은 어린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셨습니다. 바로 이것을 가지시고 큰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기적이 어린아이의 손에 들렸던 바로 그 오병이어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이이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을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어린아이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하십니다. 정직한 아이, 엄마 아빠를 믿고 의지하는 아이, 편견이 없는 아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어린이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순수함으로 돌아가라는 주님의 마음,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린이의 모습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우리 모두에게 축복입니다. 어린아이의 헌신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 모두가 어린이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계십니까?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2. 신앙의 영역에서, 우리가 어린아이들에게 배울 수 있나요? 어린아이들에게 신앙에 대해 배웠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귀한 자녀들을 허락하시고, 이들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게 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귀한 아이들과 더불어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하며 아름답고 멋진 가정을 이루어 가게 하시고, 신앙을 세워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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