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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분별법

마태복음 8: 18~22

김경진 목사

2022.11.13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어떤 기준을 가집니까?>

 

어느 날 한 젊은 목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머뭇머뭇 자신을 소개하고는 소망교회 교역자로 채용해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어느 교회를 섬길지 고민하다가 소망교회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교회 홈페이지 등 여러 곳을 살펴보면서 몇 달 동안 소망교회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생각하며 나름의 목회적인 방식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저를 찾아와서 제안해 주신 것은 고맙지만, 몇 가지 오해를 하고 계시네요. 첫 번째로 교회 인사는 담임목사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적법한 인사 위원회가 있고 절차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다른 교회에서 전임 사역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그 교회를 소홀히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참 잘못된 일이죠.”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소망교회와 저를 돕겠다는 생각은 고맙지만, 사실 우리 교회는 큰 교회입니다. 개척교회를 도우시겠다고 하면 감사한 일이겠지만 지금 저에게 하신 제안은 조금 우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차라리 개척교회를 잘 연구해서 그 교회를 돕겠다고 말씀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게 말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하고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슬픈 얼굴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의 심사 기준을 통과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함께 일할 동료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십니까?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을 뽑을 때 어떤 사람을 뽑고 싶으신가요? 제가 제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입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유독 아내가 차던 시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카시오 시계였습니다. 그저 숫자만 보이는 시계였는데 당시 젊은이들은 거의 차지 않는, 아주 오래된 시계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저런 시계를 차고 있을까?’ 생각이 들면서 호감이 갔습니다. ‘아, 나는 목사이기 때문에 아내를 제대로 잘 살게 해 줄 수도 없고 검소하게 살아야 할 텐데, 나에게는 어쩌면 저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잘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것이죠. 물론 보다 많은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결혼했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첫인상은 좀처럼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정말 검소하게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본 게 맞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시계 하나가 어쩌면 표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종종 사람들 앞에서 할 때마다 제 아내는 매우 불쾌해 합니다.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고 잘 못 해 줄 것만 생각하면서 자기를 골랐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제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저를 선택한 이유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아내가 대답을 합니다. 잘 생겼기 때문이라네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장로 장립 예식이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함께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누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누가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과연 주님의 일꾼으로서, 제자로서 자격이 있는가 질문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하나의 성향이나 성격, 성품만이 답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한 제자들도 다양했습니다. 베드로, 마태, 요한이 있었고요. 또 바울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성품과 성향의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하나만을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본문을 통하여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과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제자를 부르셨을까요?>

 

오늘 본문은 짧습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마 8:18~19)

 

그러고 나서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마 8:22)

 

본문은 짧지만 이 말씀 속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따르려는 제자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주님을 따랐느냐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단호한 결단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오늘 말씀은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하였다면 그분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또 주님의 일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주님이 찾으신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죠. 한 사람이 말합니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마 8:21 중, 새번역)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마 8:22 중, 새번역)

 

이 말씀을 전하는 또 다른 평행 본문인 누가복음은 이 부분을 조금 더 과격하게 표현합니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눅 9:61 중)

 

라는 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을 하시죠.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눅 9:62 중)

 

여러분,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상당히 부담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종교적인 열광주의자들, 광신주의자들, 이단들은 이 말씀을 아주 애용하기도 하지요.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향하여서 가족을 버리라고 쉽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집도 팔고, 모든 재산을 다 바쳐서 주님을 섬기라고도 종용합니다. 예수를 따르려면 그 정도 각오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제자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오늘 본문 말씀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말씀 가운데 분명한 결단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어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또한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서로 다른 헌신의 태도를 비교하면서 그중에서 주님이 더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로 한창 붐비고 있는 때에, 다시 말해 사람들이 막 몰려오고 있는 때에 서기관이 찾아옵니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하여 주님께서 건너편으로 가시려는 시점입니다. 서기관이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마 8:19 중)

 

아주 단호하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누구였다고 했습니까? 바로 서기관입니다. 새번역은 율법학자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은 예수님께 적대적인 사람으로 묘사되는 사람들입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본문을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주님은 서기관의 단호한 결단 안에 숨어 있는 동기를 보셨습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 서기관은 유대인 중에서는 종교 지도자로서 추앙받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인물이 제 발로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선생님이여,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제가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저 어부들이고 세리들입니다. 제대로 배운 사람들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지식인이 찾아왔습니다.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을 변호해 줄 수도 있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재해석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야말로 좋은 인재가 스스로 찾아온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주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서기관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저 예수라는 분을 찾아가서 인생을 맡겨도 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결국 그가 결단을 내렸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당신만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왜 이런 결단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가 주님께로 나오기까지의 여정은 마태복음의 앞선 내용으로 추측이 가능해 보입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놀라운 하늘나라의 지식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흔히 산상수훈이라고 알려진 본문입니다. 이 지혜는 당시 율법학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율법, 아니 복음이었던 것이죠. 이 놀라운 지혜의 말씀이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8장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이야기입니다. 나병 환자를 고치시고, 중풍 병자를 고치시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분을 옆에서 보면서 단지 말만 잘하시는 분이 아니라 능력을 베푸시는 분, 치유의 은총을 베푸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을 목도한 서기관의 마음속에는 피가 용솟음쳤을지도 모릅니다. ‘저분이다! 저분이구나! 내 인생을 저분에게 맡겨도 되겠다. 그래서 나도 성공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 유명한 말씀이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 8:20 중)

 

주님의 말씀은 조금 엉뚱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숨어 있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네가 나를 따르겠다고나는 네가 무엇 때문에 나를 따르려는지 알고 있다. 너는 지금 너의 명예와 너의 성공을 위해서 지금 나를 따르려고 한다. 그러나 네가 원하는 성공 그리고 네가 바라는 영광은 나에게는 없다.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는 존재이다. 이래도 나를 따르겠다는 말이냐?” 서기관의 제안에 예수님의 대답은 한마디로 “노! 너는 아니다.”였습니다. 문맥의 흐름상 주님께서는 그 서기관을 제자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그의 제안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율법학자의 단호함이 얼마나 멋집니까? 집도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그는 주님을 따를 완벽한 준비를 하고 나왔습니다. 물론 주님을 향한 열정도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종교적 열광주의자를 찾으시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께 나오는 병사들을 찾으시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을 부르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하늘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 땅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풀고,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이 하늘나라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바로 자기의 목적, 자신의 야망,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그 일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일해 온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로 마지막에 받을 형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단호한 결단을 가지고 찾아온 서기관을 제자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그 안에 다른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르려는 이유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도가 중요합니다. 목적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인간적인 순수한 정을 가진 사람을 제자로 세우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서기관에 이어서 또 다른 한 사람이 나섭니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하죠.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어찌 보면 참 분위기를 못 맞추는 사람 같습니다. 단호하게 결단하며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한테도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지금 이 사람은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와서야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는 나를 따르라 (마 8:22b)

 

아버지에 대한 장례를 치르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을 향하여서 주님은 도리어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이 두 사람을 갈랐을까요? 이런 미적거리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시고 주님은 따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정입니다. 인간적인 정을 가지고 인륜의 도리를 다하려는 한 사람의 순수한 마음, 순수한 사랑을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 어려운 사람에 대한 사랑, 가족들에 대한 사랑, 이러한 것들을 가진 사람을 주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님은 죽은 사람은 죽은 자들로 장례를 치르도록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단호하게 따르며 섬기는 일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단호한 요구는 아버지를 장례하고 오고 싶어 하는 인간적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 주어진, 따뜻한 권면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만일 오늘 본문이 단호한 결단만을 촉구하는 것이었다면 주님께서는 오히려 율법사의 결단을 칭찬하셨을 겁니다. 그렇게 끝나는 것이 옳았겠죠.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어떤 사람이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되묻고 있습니다. 자기 욕심, 명예를 따라서 결단을 내리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도리어 주님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돌보고,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그분을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경험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또 주님의 일을 하고 싶을 때가 많죠. 주님의 일을 하고는 싶은데 시부모님 돌보느라 힘이 들기도 하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섬긴 다음에 주님을 섬기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아이를 잘 키운 다음에 주님을 섬기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자격이 없어. 나 같은 사람은 주님께서 부르지 않으실 거야. 주님 섬기겠다고 모든 것 다 버리고 결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오늘 말씀의 흐름으로 본다면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진 사람을 향하여서 너가 나에게는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결단하며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연민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을 가다듬고 주님을 섬기도록 작정할 때, 그런 자를 주님은 제자로 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 부족해 보이는 우리이지만 연민으로 가득한 자에게 오셔서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며 순종함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Jesus’ Screening Test for Disciples

 

 

Matthew 8:18-22

 

 

One day, a young pastor came by my office. In his hand he held a thick document. After a moment of hesitation, he started talking to me. After introducing himself, he boldly requested that I hire him as a minister at our church. He had been consideringwhich church to serve and concludedthat Somang Church was “the one.”

 

After months of researchingour church by studying our website and so on, he had analyzed Somang Church’s problems, and he wanted me to review his analysis. He said he wanted to help me and Somang Church.

 

Dear brothers and sisters, what do you make of him? Do you think he was hired?

 

Well, this is what I said to him, “Pastor, I appreciate you visiting me and making such an offer, but you have some misunderstandings.”

 

“First, although I am Senior Pastor, I do not decide whom we hire. Somang Church has a legitimate and well-functioning personnel committee that does the hiring.”

 

“Second, you just introduced yourself as a full-time minister at the church you are currently serving. Yet you spent months trying to identify the problems of our church and wracked your brain for solutions. How on earth were you able to serve your church? Wouldn’t it be right to have studied the problems of your church and come up with their solutions? By doing what you did, you have disappointed your church, failing to meet its expectations for you.”

 

“Third, I appreciate your concern for Somang Church and me and your offer would indeed have been awesome had we been a small, struggling, newly planted church, but don’t you think your offer is a little ludicrous?Why don’t you visit a small, struggling church instead and tell them that after a lot of praying you wanted to serve them? Surely, they would begrateful. Do you have a heart to do this?”

 

Crestfallen, he left my office. Such incidents happen many times a year at our church. Pastors like the one I described above will likely fail my screening test for hiring pastors.

 

What are your criteria for choosing people to work with? If you were to hire someone at your office, what qualities would you consider? How would you find a business partner? What are some of your important criteria for making such decisions?

 

When I first met my wife, one thing impressed me:her watch. It was a small Casio that simply told the time, a cheap gadget that young women almost never wore in those days when I was dating. I was impressed by her frugality. Since pastors had to live a simple life, I thought she would make a good pastor’s wife.

 

Of course, it was not just that. She had many other charms that drew me to her. Yet I cannot forget that first impression of her.

 

She is a frugal person even to this day, and I feel truly blessed to have met her. My wife, however, is not so happy about my saying this. She lovingly jokes of how I only thought about making her “unhappy” instead of making her happy when I was looking for a wife. I am always apologetic to her about that.

 

Then you may be wondering why my wife chose me.Believe it or not, it was my looks.

 

Today, as we ordain elders, I want to ask this important question:who is fit to work for the church of Christ? Who makes a good disciple? Answers may vary. Jesus’ disciples had diverse attributes and qualities. When Jesus chose people who would minister alongside Him, He certainly chose a diverse group.

 

But in today’s Scripture we find one attribute that Jesus regarded highly. Let’s look at that trait Jesus wanted in the person who would be used by Him.

 

Today’s passage starts with these words:

 

“When Jesus saw the crowd around him, he gave orders to cross to the other side of the lake. Then a teacher of the law came to him and said, ‘Teacher,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 (Matthew 8:18-19 NIV)

 

The passage ends with these words:

 

“But Jesus told him,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own dead.’” (Matthew 8:22 NIV)

 

Today’s passage is clear about the attitude that followers of Jesus must have. Our Lord states, “Let the dead bury their own dead. You just follow Me!” How firm He is! Doesn’t it tell us that Jesus clearly wanted such a person as His disciple?

 

Today’s text contains Jesus’ directive about placing our firstand foremost priority on serving Jesus and exerting our best efforts to follow Him, once we have resolved to follow Him. This is the kind of person Jesus is looking for.

 

When a man came to Him and asked, “Lord, first let me return home an bury my father” (Matthew 8:21 NLT), Jesus clearly said, “Follow me now. Let the spiritually dead bury their own dead.”(Matthew 8:22 NLT)

 

In a parallel passagein Luke 9, Jesus speaks in a more radical way. When someone said to Him, “I will follow you, Lord; but first let me go back and say goodbye to my family”(Luke 9:61), Jesus replied, “No one who puts a hand to the plow and looks back is fit for service in the kingdom of God.” (Luke 9:62 NIV)

 

What qualities did Jesus seek in a disciple? Jesus wanted someone who would not look back after putting his hand to the plow, someone who would dedicate himself completely to Hiswork,letting the dead bury their own dead. According to the above passages from Matthew and Luke, this was the kind of person that Jesus wanted when choosing His disciples.

 

Certainly, this demand of our Lord weighs heavily on the hearts of believers. When we read this part of the Bible where Jesus seems displeased with even our saying goodbye to our loved ones, we get anxious: ‘Will I ever be able to please the Lord with my life? Will I be able to become His faithful servant who pleases Him?’

 

It is also true that many heretical and fanatical groups have taken advantage of this passage to back their perverse doctrines. They accuse people who are hesitant aboutabandoning everything in their lives of being “unfaithful,”arguingthat what the Lord wants is a radical commitment that is willing to forsake everything, including their family and entire possessions, and offer them to the Lord. It is true that when the above passage of the Bible is abused by such fanatical religious groups, it becomes extremely burdensome to those who are reading it.

 

But does the passage truly demand of us such an extreme form of commitment?

 

Jesus is, indeed, asking us to make a firm resolution. However, upon a careful study of the text, you will find that He is comparing two types of commitments and esteeming one above the other.

 

Let’s go deeper into the passage.

 

As crowds gathered, a teacher of the law came to Jesus and said:

 

“Teacher,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Matthew 8:19 NIV)

 

Who came to Jesus? A teacher of the law. The NLT says it was “one of the teachers of the religious law.” In short, this man is a religious leader who studies and teaches the law. Teachers of the law, Pharisees, and priests were people who had antagonistic relationships with Jesus, according to Matthew. This is a point we must consider in studying today’s passage.

 

Conside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the religious leaders, the teacher of the law’s vow to follow Jesus is nothing short of astounding. This man, a religious leader in Jesus’ time, came to Jesus voluntarily andvowed to follow Him wherever He went.

 

From a human point of view, we should be ecstatic about his firm resolution. This teacher of the law would have contemplated his decision seriously. ‘Can I trust my life with Jesus?’ After much thought, he would have reached the conclusion to follow Jesus. Then he would have come to Jesus in order to passionately professhis resolve tofollow Him and Him only: “Teacher,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 (Matthew 8:19, NLT)

 

Then how did he reach this decision? His thought process can be guessed from the chapters precedingMatthew 8.

 

From Matthew 5 and onwards Jesus preaches about the kingdom of God on a mountain, which is called the Beatitudes. This series of wise teachings would have more than astonished the teachers of the law in Jesus’ time. They were teachings on a completely new level, going beyond the law of Moses. In fact, it was the gospel. The Beatitudes are recorded in Matthew 5-7. Then in Chapter 8 Jesus heals the sick, including lepers, the paralyzed, and Peter’s mother-in-law who had a fever.

 

When the teacher of the law in today’s passage witnessed all this, he would have felt a boiling passion in his blood. “It’s Him! He is the One that I must follow! I will follow Him!” This is probably how he reached his decision to follow Jesus. After reaching his conclusion, he finally came to Jesus to tell Him about his commitment.

 

But what was Jesus’ reply? To this man Jesus gave this famous reply:

 

“Foxes have dens and birds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s no place to lay his head.”(Matthew 8:20)

 

How odd! Yet we can decipher Jesus’ hidden message in these words: ‘You say you will follow Me. But I know why you want to. You want to follow me for your own fame and success. But the kind of success and glory you have in mind won’t come. I do not even have a place to lay My head. Will you follow me still?’

 

What was Jesus’ response to this offer made by the teacher of the law? An outright “No.” Jesus is saying he will not do. From the flow of the text we may infer that our Lord did not choose him as His disciple. He declined the offer.

 

Let’s think about this. The firm resolution of the teacher of the law is truly admirable. He is totally prepared to follow Jesus, forsaking his home, his wife, his all. He comes to the Lord with this passionate confession: “I will follow You, Lord, wherever You go.”

 

The man’s passion and commitment for the Lord seems more than enough. Yet our Lord did not choose him.

 

We may sometimes think Jesus is looking for a religious fanatic. We mistakenly think that He wants “crusaders” who will throw away everything and come to Him. But today’s passage tells us that He did not call the man who was ready to do this as His disciple.

 

In Matthew 7:21 Jesus tells uswhat it will be like in the kingdom of heaven:

 

“Many will say to me on that day, ‘Lord, Lord, did we not prophesy in your name and in your name drive out demons and in your name perform many miracles?’ Then I will tell them plainly, ‘I never knew you. Away from me, you evildoers!’” (Matthew 7:22-23)

 

We know only too well that there were countless religious fanatics who lifted the banner of God in His name but deceived us. Vowing to follow the Lord, and Him alone, they went on witch-hunts in His name, condemning and killing countless people. After branding innocent souls with the scarlet letter, they condemned them, as if they were proud of their religious fervor.

 

Our Lord did not call the teacher of the law who came to Him with a firm resolution to be His disciple. It was because he had a different motive. He wanted to follow Jesus for the wrong reasons.

 

However, in the very presence of the teacher of the law, another man approached Jesus. He said, “Lord, let me first attend my father’s funeral.”

 

Does this make sense? A most resolute teacher of the law comes to Jesus, vowing to follow Him no matter what, but our Lord flatly turns him down. But seconds later, this clueless man says he will follow Jesus after burying his father! How senseless of him!

 

Yetread the passage carefully. What does our Lord say? He says, “Follow me.”(Matthew 8:22a)

 

To this man—who wants to follow Jesus but is worried about his father’s funeral and asks Jesus to let him take care of itbefore following Him—Jesus says, “Follow me.”

 

What caused Jesus’ vastly different response? What did He see in the man who procrastinated about following Him? He saw a love and an innocence in this man who had a heart for those he loved and wanted to fulfill his duties as a human being.And so Jesus said, “Follow me.”

 

Yes. Our Lord wants people with a love and sympathy for others.

 

Our Lord lovingly tells this man to “let the dead bury their own dead.” Through these words, Jesus is urging him to resolve to do greater things than fulfilling human obligations. Our Lord called the man who,out of a deep humane love, wanted to attend his father’s funeral.

 

If today’s passage wassimply a teaching on the need for a firm resolution in becoming a disciple of Jesus, our Lord would have praised and accepted the vow of the teacher of the law. End of story.

 

But today’s passage does not end that way. It asks the crucial question “Who should be the one that firmly resolves to follow Jesus?” Our Lord valued the heart of the man who wanted to bury his father first. Jesus knew that when such a person resolves to follow Him, he would make a true disciple.

 

When we read Jesus command to “Follow me,” we are humbled by His voice that seems to be inviting even such an unworthy person like me. There are so many competent people out there, people who would make even better servants than the teacher of the law who vowed to follow Jesus, but Jesus doesn’t call them but us, who are caught up in our personal affairs at home and elsewhere, asking Jesus to let us “first bury our fathers.”Yet Jesus is calling out to such unworthy people like us, saying, “Follow Me.”

 

Yes. Our Lord comes to people like us and says, “Follow Me.” This is the gospel our Lord gives us. We did not go to him. Yet He calls us, unworthy people like me. Today, our Lord calls out to us again: “Follow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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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 18~22

18~22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어떤 기준을 가집니까?>

 

어느 날 한 젊은 목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머뭇머뭇 자신을 소개하고는 소망교회 교역자로 채용해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어느 교회를 섬길지 고민하다가 소망교회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교회 홈페이지 등 여러 곳을 살펴보면서 몇 달 동안 소망교회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생각하며 나름의 목회적인 방식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저를 찾아와서 제안해 주신 것은 고맙지만, 몇 가지 오해를 하고 계시네요. 첫 번째로 교회 인사는 담임목사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적법한 인사 위원회가 있고 절차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다른 교회에서 전임 사역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그 교회를 소홀히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참 잘못된 일이죠.”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소망교회와 저를 돕겠다는 생각은 고맙지만, 사실 우리 교회는 큰 교회입니다. 개척교회를 도우시겠다고 하면 감사한 일이겠지만 지금 저에게 하신 제안은 조금 우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차라리 개척교회를 잘 연구해서 그 교회를 돕겠다고 말씀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게 말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하고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슬픈 얼굴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의 심사 기준을 통과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함께 일할 동료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십니까?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을 뽑을 때 어떤 사람을 뽑고 싶으신가요? 제가 제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입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유독 아내가 차던 시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카시오 시계였습니다. 그저 숫자만 보이는 시계였는데 당시 젊은이들은 거의 차지 않는, 아주 오래된 시계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저런 시계를 차고 있을까?’ 생각이 들면서 호감이 갔습니다. ‘아, 나는 목사이기 때문에 아내를 제대로 잘 살게 해 줄 수도 없고 검소하게 살아야 할 텐데, 나에게는 어쩌면 저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잘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것이죠. 물론 보다 많은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결혼했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첫인상은 좀처럼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정말 검소하게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본 게 맞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시계 하나가 어쩌면 표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종종 사람들 앞에서 할 때마다 제 아내는 매우 불쾌해 합니다.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고 잘 못 해 줄 것만 생각하면서 자기를 골랐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제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저를 선택한 이유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아내가 대답을 합니다. 잘 생겼기 때문이라네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장로 장립 예식이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함께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누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누가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과연 주님의 일꾼으로서, 제자로서 자격이 있는가 질문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하나의 성향이나 성격, 성품만이 답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한 제자들도 다양했습니다. 베드로, 마태, 요한이 있었고요. 또 바울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성품과 성향의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하나만을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본문을 통하여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과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제자를 부르셨을까요?>

 

오늘 본문은 짧습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마 8:18~19)

 

그러고 나서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마 8:22)

 

본문은 짧지만 이 말씀 속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따르려는 제자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주님을 따랐느냐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단호한 결단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오늘 말씀은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하였다면 그분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또 주님의 일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주님이 찾으신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죠. 한 사람이 말합니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마 8:21 중, 새번역)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마 8:22 중, 새번역)

 

이 말씀을 전하는 또 다른 평행 본문인 누가복음은 이 부분을 조금 더 과격하게 표현합니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눅 9:61 중)

 

라는 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을 하시죠.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눅 9:62 중)

 

여러분,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상당히 부담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종교적인 열광주의자들, 광신주의자들, 이단들은 이 말씀을 아주 애용하기도 하지요.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향하여서 가족을 버리라고 쉽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집도 팔고, 모든 재산을 다 바쳐서 주님을 섬기라고도 종용합니다. 예수를 따르려면 그 정도 각오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제자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오늘 본문 말씀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말씀 가운데 분명한 결단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어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또한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서로 다른 헌신의 태도를 비교하면서 그중에서 주님이 더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로 한창 붐비고 있는 때에, 다시 말해 사람들이 막 몰려오고 있는 때에 서기관이 찾아옵니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하여 주님께서 건너편으로 가시려는 시점입니다. 서기관이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마 8:19 중)

 

아주 단호하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누구였다고 했습니까? 바로 서기관입니다. 새번역은 율법학자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은 예수님께 적대적인 사람으로 묘사되는 사람들입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본문을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주님은 서기관의 단호한 결단 안에 숨어 있는 동기를 보셨습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 서기관은 유대인 중에서는 종교 지도자로서 추앙받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인물이 제 발로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선생님이여,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제가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저 어부들이고 세리들입니다. 제대로 배운 사람들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지식인이 찾아왔습니다.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을 변호해 줄 수도 있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재해석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야말로 좋은 인재가 스스로 찾아온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주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서기관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저 예수라는 분을 찾아가서 인생을 맡겨도 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결국 그가 결단을 내렸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당신만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왜 이런 결단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가 주님께로 나오기까지의 여정은 마태복음의 앞선 내용으로 추측이 가능해 보입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놀라운 하늘나라의 지식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흔히 산상수훈이라고 알려진 본문입니다. 이 지혜는 당시 율법학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율법, 아니 복음이었던 것이죠. 이 놀라운 지혜의 말씀이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8장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이야기입니다. 나병 환자를 고치시고, 중풍 병자를 고치시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분을 옆에서 보면서 단지 말만 잘하시는 분이 아니라 능력을 베푸시는 분, 치유의 은총을 베푸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을 목도한 서기관의 마음속에는 피가 용솟음쳤을지도 모릅니다. ‘저분이다! 저분이구나! 내 인생을 저분에게 맡겨도 되겠다. 그래서 나도 성공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 유명한 말씀이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 8:20 중)

 

주님의 말씀은 조금 엉뚱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숨어 있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네가 나를 따르겠다고나는 네가 무엇 때문에 나를 따르려는지 알고 있다. 너는 지금 너의 명예와 너의 성공을 위해서 지금 나를 따르려고 한다. 그러나 네가 원하는 성공 그리고 네가 바라는 영광은 나에게는 없다.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는 존재이다. 이래도 나를 따르겠다는 말이냐?” 서기관의 제안에 예수님의 대답은 한마디로 “노! 너는 아니다.”였습니다. 문맥의 흐름상 주님께서는 그 서기관을 제자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그의 제안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율법학자의 단호함이 얼마나 멋집니까? 집도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그는 주님을 따를 완벽한 준비를 하고 나왔습니다. 물론 주님을 향한 열정도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종교적 열광주의자를 찾으시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께 나오는 병사들을 찾으시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을 부르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하늘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 땅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풀고,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이 하늘나라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바로 자기의 목적, 자신의 야망,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그 일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일해 온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로 마지막에 받을 형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단호한 결단을 가지고 찾아온 서기관을 제자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그 안에 다른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르려는 이유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도가 중요합니다. 목적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인간적인 순수한 정을 가진 사람을 제자로 세우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서기관에 이어서 또 다른 한 사람이 나섭니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하죠.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어찌 보면 참 분위기를 못 맞추는 사람 같습니다. 단호하게 결단하며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한테도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지금 이 사람은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와서야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는 나를 따르라 (마 8:22b)

 

아버지에 대한 장례를 치르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을 향하여서 주님은 도리어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이 두 사람을 갈랐을까요? 이런 미적거리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시고 주님은 따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정입니다. 인간적인 정을 가지고 인륜의 도리를 다하려는 한 사람의 순수한 마음, 순수한 사랑을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 어려운 사람에 대한 사랑, 가족들에 대한 사랑, 이러한 것들을 가진 사람을 주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님은 죽은 사람은 죽은 자들로 장례를 치르도록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단호하게 따르며 섬기는 일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단호한 요구는 아버지를 장례하고 오고 싶어 하는 인간적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 주어진, 따뜻한 권면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만일 오늘 본문이 단호한 결단만을 촉구하는 것이었다면 주님께서는 오히려 율법사의 결단을 칭찬하셨을 겁니다. 그렇게 끝나는 것이 옳았겠죠.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어떤 사람이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되묻고 있습니다. 자기 욕심, 명예를 따라서 결단을 내리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도리어 주님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돌보고,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그분을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경험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또 주님의 일을 하고 싶을 때가 많죠. 주님의 일을 하고는 싶은데 시부모님 돌보느라 힘이 들기도 하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섬긴 다음에 주님을 섬기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아이를 잘 키운 다음에 주님을 섬기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자격이 없어. 나 같은 사람은 주님께서 부르지 않으실 거야. 주님 섬기겠다고 모든 것 다 버리고 결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오늘 말씀의 흐름으로 본다면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진 사람을 향하여서 너가 나에게는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결단하며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연민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을 가다듬고 주님을 섬기도록 작정할 때, 그런 자를 주님은 제자로 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 부족해 보이는 우리이지만 연민으로 가득한 자에게 오셔서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며 순종함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11월 13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예수님의 제자분별법” (마 8:18-22)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11장, 45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마 8:18-22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1월 1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여러분은 함께 일할 사람들을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까? 회사에서 함께 일할 직원을 선택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으며, 함께 일할 동업자를 구할 때, 어떻게 찾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보고자 하는 중요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누가 주님의 일꾼으로 적합할까요?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의 유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한 서기관과 아버지의 장례를 다녀오고 따르겠다고 말하는 제자가 나옵니다. 문제는 이 본문이 극단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종교적 열광주의자들이나 신천지 같은 이단들에 의해 헌신을 무척 강요하는 말씀으로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마음속에 큰 부담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먼저 서기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율법학자이고,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지도자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런 서기관이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한 것은 무척 귀한 헌신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의 열성과 헌신, 그 어느 것도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을까요? 우선 그는 산상수훈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계속해서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목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분이다! 저분이야 말로 내가 따라야 할 분이다!” 그는 열정적으로 주님을 따르겠노라 다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제자됨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가 자신의 명예와 성공을 위해서 주님을 쫓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은 주님을 따르려는 이유가 달랐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종교적 열광주의자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만 따르겠노라 나선 사람들이 피도 눈물도 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박해한 역사가 너무 깁니다. 그들은 주홍글씨를 새기고 자신들의 종교적 열정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사람들을 비난하고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이들을 제자로 부르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기관 앞에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께, 자신의 아버지 장례를 먼저 치르고 따르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이번에 주님은 장례를 치르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기준일까요? 인간적인 정을 가지고 인륜의 도리를 다하려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주님은 순수함과 사랑을 본 것입니다. 즉 인간에 대한 연민, 사랑을 가진 사람을 주님은 원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단지 단호한 결단만을 촉구하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은 서기관의 결단을 칭찬하셨어야 옳습니다. 그리고 그 서기관이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연하고 단호한 결단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되 인간의 도리와 사랑과 연민을 가진 자, 그래서 때로는 미적미적하고 때로는 우유부단한 사람들, 즉 우리같이 부족한 자들에게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 우리가 나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나같이 못나고 부족한 사람을 부르시며 친히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게 하십니다. 그런 주님의 제자들,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나에게 동역자(회사, 사업, 교회 등)를 뽑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2. “너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 앞에, 아버지의 장례를 이유로 고민한 제자처럼, 나에게 미적거리고 고민이 되는 문제들은 무엇인가요?

 

마무리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누가 주님의 제자가 되며 누가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겠습니까? 미적거리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고 명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 우리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꾼이 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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