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구독

ic_info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c_info

은혜를 은혜라 말하지 않은 죄

역대하 32:24~26

김경진 목사

2024.02.18

<히스기야의 마지막에는 당혹스러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 관한 내용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남유다의 13대 왕이죠.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 이후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왕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성전을 깨끗이 정리하고, 또 정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다시 살려내는 일을 하였습니다. 여러 곳에 있는 산당을 제거하고, 바알과 아세라의 상들을 다 부수어 없애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유월절 예배를 모든 백성들과 함께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열왕기서와 이사야서에 유월절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자세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의 신앙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노력한 왕이었습니다. 제사장 및 레위인과 조직들을 재정비하고, 자발적인 헌금을 독려해서 많은 선물과 헌물들이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많은 헌물들을 모을 창고를 만들고, 그것을 배분할 방법도 간구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 지하수로를 만들어서 예루살렘 성을 더욱 강력하고 안전한 성으로 만들기도 한 왕입니다. 열왕기서는 히스기야 왕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왕하 18:3,5~7a)

 

이렇게 형통했던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도 녹록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번에 걸쳐 앗수르의 군대가 쳐들어오기도 했고, 병에 걸려서 죽을 뻔한 위기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건강한 모습으로 15년을 더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했는지, 어떻게 나음을 얻게 되었는지는 열왕기서와 이사야서가 자세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날 가망이 없는 병에 걸린 것을 알고 하나님께 눈물 어린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고 계획하셨던 것들을 바꾸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사야를 보내셔서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15년 동안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징표를 주시기 위해 해시계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가는 기적도 보여 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와 같이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치유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움을 당하거나 불치병이 걸렸을 때 이 말씀 붙잡고 기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놀라운 히스기야의 이야기 속에 한 가지 흥미로우면서도 불필요해 보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에서 나음을 받은 후에 그를 찾아 온 바벨론의 신하들에게 자신의 왕궁에 있는 많은 보물들을 보여 준 내용입니다. 그는 군기고까지 열어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히스기야는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됩니다. 왕의 후손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가고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보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 주시는 사건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참으로 혹독한 미래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인간적으로는 지혜롭게 행했습니다.>

 

오늘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다가 나음을 얻은 후에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보물을 보여 준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런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첫째로 왜 히스기야는 병문안으로 온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신의 보물 창고를 보여 주었을까요? 두 번째로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창고를 열어서 보여 준 일이 그토록 하나님에게 책망받을 만한 일이었을까요? 언뜻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창고에 많은 보물들이 쌓여 있는 것을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보여줌으로 그들이 탐욕을 갖게 되었고 결국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들의 탐심을 자극했냐고, 왜 지혜롭지 못했냐고 나무라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많은 보물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주변의 나라들이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예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솔로몬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솔로몬이 가지고 있었던 부는 세상에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스바여왕이 예루살렘을 찾아와서 그것을 직접 확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녀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왔을 뿐만 아니라 소원만큼 많은 재물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많은 보물이 주변 나라들에 드러났다고 해도 예루살렘을 침공하거나 탐욕을 부리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번영된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침략할 마음을 갖지 않기도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을 찾아온 바벨론 신하들에게 창고를 열어준 일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히스기야와 남유다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 확실하게 보입니다. 우선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산헤립으로부터 이미 두 번의 침공을 받았고 나름대로 어렵게 이겨 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바벨론이라고 하는 다른 나라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이 얼마나 커져서 그들을 위협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에 사신을 보낸 것으로 보아서는 아직 바벨론과 유다 사이에 외교적으로 나름 좋은 관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두 가지 목적으로 창고를 열어 보여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과 군사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줌으로써 바벨론과의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입니다. 두 번째는 급부상하는 바벨론에게 자신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잘못한 일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외교적인 전술입니다. 요즘 나라들이 서로 자신의 부유함과 경제력, 군사력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자랑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자랑함으로써 전쟁 억제력을 가지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식으로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책망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오늘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대기서는 히스기야의 발병과 치유를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합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대하 32:24)

 

역대기의 내용을 보면 열왕기서 보다 많이 축소되어 있습니다. 그가 병이 들어 하나님께 어떻게 간절하게 기도했는지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 그의 뜻을 어떻게 바꾸셨는지도 생략되어 있습니다. 15년의 시간을 주신 내용도 없습니다. 또, 해시계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나는 사건도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죽게 되었을 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과 기적을 보여 주셨다는 단순한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역대기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중점을 두고자 하는 일이 이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나음을 얻은 후에 어떻게 하였는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대하 32:25~26)

 

이 내용에도 바벨론 포로의 이야기라든지 보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은 모두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으로 압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뉘우침을 통해서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진노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지적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하였고, 받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대하 32:25)

 

왜 하나님은 이것을 히스기야의 교만으로 보셨을까요? 우선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창고를 보여 준 일은 앞의 말씀처럼 단순하게 외교적이기만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만 떼어 본다면 충분히 외교적이고 전략적이며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 주신 일과 연결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히스기야의 치유 사건과 연속성 상에 이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병에서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불치의 병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바벨론의 사신들이 오고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신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해야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의 병을 고쳐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였더라면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은 예루살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도 이방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자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들과 무기들을 자랑하였습니다. 그가 나음을 입은 다음에 하나님께 감사한 후 그것을 자랑했다는 내용이 열왕기서와 이사야서에도 나오지 아니하고 오늘 역대기 본문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그가 교만하였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흥미로운 구조가 오늘 본문이 있는 역대기에 발견됩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했지만 뉘우쳤다는 내용 다음에 히스기야가 누린 부와 영광에 대한 내용이 27절부터 30절까지 이어집니다. 교만하던 왕이 뉘우치자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큰 부와 축복을 주신 것인지 맥락상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31절에서 바벨론 사신들의 이야기가 재등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샌드위치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주신 축복의 내용이 소개됩니다.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대하 32:31)

 

아주 적확하게 성경은 바벨론의 사신들이 방문했을 때 히스기야의 문제를 짚어 내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사신들이 히스기야를 찾아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는지 듣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병이 들어 죽어 가던 히스기야가 살아날 수 있었는지 기적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것에 대해서는 증언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의 창고를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떠나가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재물이 그를 살렸습니까? 그가 가지고 있었던 무기가 병을 고쳤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그의 무기와 재물을 보여 주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았습니다. 외교적으로 강성한 나라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지요. 중요한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병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그 시점에서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찬송하고 증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책망받은 내용입니다.

이 메시지가 오늘 본문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 이야기 앞뒤로 바벨론의 사신들이 나오는 구조를 말씀드렸습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큰 축복의 내용이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대하 32:27~29a)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창고와 외양간이 모자랄 정도로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대하 32:29b)

 

재산조차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을 자랑해야죠. 그런데 히스기야는 재물을 주신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재물을 사람들에게 보여 줍니다. 마치 자기 것인 양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사신들이 그를 방문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대하 32:30b~31)

 

그는 형통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고 병도 나았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사신들이 와서 어떻게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는지 묻자 히스기야는 진정한 정답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나에게 주신 재물, 가족들, 그리고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얻게 된 많은 것을 놓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매일 새벽마다 기도의 제목들이 올라옵니다. 우리는 매일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결과를 다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놀라운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불가능했던 일들과 놀라운 치유의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놀라운 기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가 참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부담스러운 이유 중에 하나는 설교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교가 이렇게 부담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제가 목회를 즐겁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렵지만 목회의 길을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병에서 나으면 나를 낫게 해 주신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고 드러냅니까? 목사님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다고 고백하지만 세상에서는 좋은 의사 만나서, 좋은 약을 발견해서 다행이라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재물의 경우도 그렇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나는 정말 가치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많은 것을 주신 것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가 이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증언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일생일벗’, 한 영혼을 구원하고자 마음을 먹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무엇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힘, 사회적인 위치 등을 소개하는 것이 전도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법은 단순합니다. 여러분의 일생일벗에게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주셨으니 당신도 이 놀라운 경험을 해 보았으면 좋겠어. 이것이 증언이고 전도 아닙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바벨론의 사신들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난 기적을 듣고 싶어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당신은 예수를 믿는 겁니까?”라고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을 마치 내 것인 양 자랑하지 않습니까?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은혜를 은혜로 말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전도이고 증언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이 일에 모두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하나님을 증언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일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증언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e Sin of Not Calling Grace “Grace”

 

2 Chronicles 32:24-26

 

Today’s Scripture is about King Hezekiah of Judah. Hezekiah, the 13th king of the southern Kingdom of Judah, may be considered the greatest ruler of the people of Israel since David and Solomon.

 

Hezekiah purified the Temple and restored proper worship of God in the Temple. Restoring festival worship, he particularly ensured that all the people of Judah observe the Passover and also made great efforts to restore and edify the faith of his people.

 

He re-established the organization of priests and Levites, restored voluntary offerings and tithes, made storerooms for tithes and other items dedicated for use in the Temple, and created a system for the distribution of voluntary offerings to support the priests, Levites, and the poor.

 

By constructing a tunnel to bring fresh water into Jerusalem, he contributed to strengthening the city and its security.

 

The Book of Kings gives this assessment about Hezekiah: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just as his father David had done.Hezekiah trusted in the LORD, the God of Israel. There was no one like him among all the kings of Judah, either before him or after him.He held fast to the LORD and did not cease to follow him; he kept the commands the LORD had given Moses.And the LORD was with him; he was successful in whatever he undertook.” (2 Kings 18:3, 5-7a)

 

Even though God was with Hezekiah, he too had crises. During his reign, Judah was attacked twice by Assyria, and he almost died due to an illness. Yet Hezekiah overcame all these difficulties with God’s help.

 

In particular, the Book of Kings and the Book of Isaiah tell us in detail how earnestly he prayed to God when he became sick with a deadly illness and how he recovered as a result of that prayer.

 

Hearing his tearful prayer, God sends Isaiah the prophet to him, promises to heal him, and adds 15 years to his life. As a sign, God performs the miracle of making the shadow of the sundial go back ten steps. Hezekiah’s prayer and God’s healing have served as a hope to all those suffering incurable diseases.

 

The Bible, however, adds an interesting but somewhat unnecessary story to the description of Hezekiah’s miraculous recovery. It adds that after he was healed, Hezekiah showed all his wealth, arms, and stores to the envoys sent by the rulers of Babylon.

 

Because of this, God rebukes him through Isaiah. Hezekiah hears an unexpected prophesy from the prophet: because of what he did when the Babylonian envoys came, his descendants will be taken captive to Babylon, and all the treasures of Jerusalem taken there.

 

Today, we will concentrate on this part of the story, that is, how Hezekiah displayed all his treasures to the Babylonian envoys after recovering from his illness.

 

Some questions come to mind. First, why did King Hezekiah open up all the storehouses of Jerusalem and show everything in them to the Babylonian envoys who had come to congratulate him on his recovery?

 

Second, what was so wrong about showing them all to the delegation? Why did God rebuke Hezikiah for his actions?

 

My first impression is that perhaps God rebuked him because by showing all his wealth Hezekiah stirred the Babylonian king’s desire to conquer Jerusalem militarily and take its riches. In this sense, God’s rebuke may have been something like this: “Why did you stir their greed?”

 

But is this really so? When neighboring countries come to know about Jerusalem’s treasures, they may want to invade it and take its riches. Historic precedent, however, tells us this is not always so. The period of King Solomon is an example. Solomon’s wealth was well known to all neighboring nations. Even the queen of Sheba visited Jerusalem herself to see Solomon’s splendor. Not only did she present manygifts to him, but also received many herself as she left.

 

Not all countries felt tempted to invade Jerusalem and possess its treasures due to Solomon’s display of them. Instead these nations would possibly have felt fear at Jerusalem’s prosperity, which prevented the thought of invasion.

 

Then why did Hezekiah show all his treasures to the Babylonian envoys who had visited his country?

 

To answer this, we must take stock of the reality that Hezekiah and the Kingdom of Judah was facing at the time. First, Jerusalem had already been attacked by King Sennacherib of Assyria twiceduring Hezekiah’s rule. Hezekiah overcame those attacks with difficulty. But now a new power was rising—Babylon. It could get stronger and attack Judah.

 

The fact that the king of Babylon sent a delegation to Hezekiah after hearing of his illness tells us that the two countries were still on good terms diplomatically.

Therefore, Hezekiah may havehad two objectives in showing his storerooms to the Babylonian delegation. First, by putting on displayJudah’s economic and military capacity, he may have wanted to foster an alliance with Babylon, keeping Assyria in check. Meanwhile, he may have wanted to send a warning signal to Babylon, a rapidly rising power,whichsaid Judah must not be underestimated.

 

From a human perspective, Hezekiah’s actions were not wrong at all; they were, in fact, a diplomatic tactic. Don’t countries today also show off their economic and military power? They do this as a means of deterrence against war. What Hezekiah did was something similar.

 

But why did it displease God? Why did God rebuke Hezekiah for his actions through Isaiah?

 

The reason is found in today’s text from 2 Chronicles. The Book of Chronicles summarizes the cause of Hezekiah’s illness and his recovery in one simple sentence:

 

“In those days Hezekiah became ill and was at the point of death. He prayed to the LORD, who answered him and gave him a miraculous sign.” (2 Chronicles 32:24)

 

In this summary there is no mention of his tearful prayers, or God adding fifteen years to his life, or how the shadow of the sundial moved back ten steps. It only gives the facts, that he prayed to God and God showed him a miraculous sign.

 

What the Book of Chronicles wishes to examine more closely is what happened after the healing. This is its description of the events that came after Hezekiah’s recovery:

 

“But Hezekiah’s heart was proud and he did not respond to the kindness shown him; therefore the LORD’s wrath was on him and on Judah and Jerusalem.Then Hezekiah repented of the pride of his heart, as did the people of Jerusalem; therefore the LORD’s wrath did not come upon them during the days of Hezekiah.” (2 Chronicles 32:25-26)

 

Here too the story about the Babylonian envoys is omitted. Nor does it mention Isaiah’s prophesy on Judah’s Babylonian exileand Babylon taking all its treasures. Chronicles merely describes the Babylonian captivity as “the Lord’s wrath,” adding that it did not happen during the lifetime of Hezekiah because he repented.

 

Furthermore, 2 Chronicles explains why God was angry with Hezekiah for displaying his wealth and arms to the Babylonian embassy: it was because his heart was proud and he did not respond to the kindness (or grace) shown to him:

 

“But Hezekiah’s heart was proud and he did not respond to the kindness shown him; therefore the LORD’s wrath was on him and on Judah and Jerusalem.” (2 Chronicles 32:25)

 

Why is this pride? Why was Hezekiah’s actions seen as pride by God?

 

First, we must understand that what he did, showing his treasuries to the Babylonian envoys, was not an independentevent done merely to display Judah’s power for diplomatic and strategic purposes. It must be seen as an actconnected to and continuing from God’s healing of Hezekiah.

 

In other words, Hezekiah was healed through God’s help. Right after this healing, the Babylonian delegation came. Then what message should Hezekiah have spoken to them? What should he have said to them?

 

He ought to have proclaimed that it was God who had healed him. He ought to have testified about and made known what God had done for him. If he had done so, the messengers from Babylon would have seen the God who was with Israel, Judah.

 

God wants us to boast about Him. He wants us to show off His salvation. But Hezekiah did not do so. He boasted about what he possessed instead. He displayed his riches with pride. He showed off his weapons in the arsenal.

 

In 2 Kings, Isaiah, or Chronicles we see no mention of Hezekiah boasting about God after his recovery. The Bible simply summarizes this as pride.

 

We see an interesting structure in the Book of Chronicles. Immediately after its summary of Hezekiah’s pride and repentance, it talks about all the riches and honor Hezekiah enjoyed in verses 27-30. It is a bit hard to understand how God could bless such a proud king with great wealth. But after talking abouthow God allowed Hezekiahgreat wealth, the Bible resumes the story about the Babylonian envoysin verse 31. This is what is says:

 

“But when envoys were sent by the rulers of Babylon to ask him about the miraculous sign that had occurred in the land, God left him to test him and to know everything that was in his heart.”(2 Chronicles 32:31)

 

The Bible, very appositely, brings up the matter of the Babylonian envoys at this point. The reason for their visit was to find out how such a miracle was possible, that is, how the dying king of Judah was restored.

 

In other words, when the Babylonian envoys visited Judah after Hezekiah’s recovery, God wanted him to proclaim how he was healed. However, Hezekiah did not show them the God who healed him.

 

He only displayed the treasures in his storehouses and the weapons organized in the arsenal. Was it wealth that healed him? Was it weapons? No. Then why do you not show them the God who healed you? This was God’s rebuke.

 

Diplomatically, showing the Babylonian delegation the image of a powerful Judah may have been fitting. But God did not want this from Hezekiah. He wanted him to testify about and praise the Lord who had healed him. This was the reason for God’s rebuke.

 

As if to give proof, the Book of Chronicles describes the great riches and honor that Hezekiah enjoyed.

 

“Hezekiah had very great riches and honor, and he made treasuries for his silver and gold and for his precious stones, spices, shields and all kinds of valuables.He also made buildings to store the harvest of grain, new wine and oil; and he made stalls for various kinds of cattle, and pens for the flocks.He built villages and acquired great numbers of flocks and herds, […].” (2 Chronicles 32:27-29a)

 

However, the Bible states that all these were given to him from God:

 

“[…] for God had given him very great riches.” (2 Chronicles 32:29b)

 

Since God gave him all these, he ought to have boasted about God. But Hezekiah failed to display the God who gave him all these rich and only showed off his wealth.

 

So… when the Babylonian envoys came to ask Hezekiah about the miracle that happened in Judah, the Bible says that God left him:

 

“He succeeded in everything he undertook.But when envoys were sent by the rulers of Babylon to ask him about the miraculous sign that had occurred in the land, God left him to test him and to know everything that was in his heart.”(2 Chronicles 32:30b-31)

 

WhenHezekiah ought to have made God known, he showed off what God  had given him as if they came from his own power. This disappointed God. And it caused His wrath.

 

Brothers and sisters, how about you? How do you regard all the wealth, family, and possessions you enjoy? How do you regard the many amazing things God has done for you in response to your desperate prayers in times of trouble? How do we consider all these?

 

Every day, early in the morning, we pray to God with our prayer topics. We alsopray together for them. Many amazing things happen because of our prayers, even though we may not talk so much about the results. Impossible things happen, and amazing healing takes place. Of course, not all prayers for healing are answered with miracles, but a fair number of medical miracles do happen. I believe theseare God’s special gifts to us.

 

Yet after such healings, we do not talk so such about the God who healed us. We do not testify. We continue to boast about our wealth, power, and other things.

 

What pleases our Lord? Calling the grace of God “grace” is what pleases Him. Testifying about His grace pleases Him. Making His grace known pleases Him. When we do so, God receives glory in that place.

 

Somang Church is praying to save souls with the slogan “Il-saeng-il-beot,” which means “one friend you can show to God at the end of your life.” What must we show to our loved ones, the people with whom we wish to share the Gospel? Our wealth, power, ability, and social position?

 

Sharing the Gospel is rather simple. All you have to do is talk about what God has done for you. You simply have to testify about this. This is evangelizing. This is what we must do to win that one soul to show our Lord.

 

The people of this world can be compared to the Babylonian envoys who wanted to hear about the miracle that happened to Hezekiah. What happened to you that made you come toChrist? They are looking at us with this question in their minds. What shall we say in response to this question? It is my hope that we will all be able to say, “God did it!” and show them the grace God has given us.

 

Sharing that great love of Christ, talking about what God has done for us is what we ought to do and what pleases the Lord.

btn_switch

역대하 32:24~26

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히스기야의 마지막에는 당혹스러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 관한 내용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남유다의 13대 왕이죠.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 이후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왕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성전을 깨끗이 정리하고, 또 정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다시 살려내는 일을 하였습니다. 여러 곳에 있는 산당을 제거하고, 바알과 아세라의 상들을 다 부수어 없애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유월절 예배를 모든 백성들과 함께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열왕기서와 이사야서에 유월절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자세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의 신앙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노력한 왕이었습니다. 제사장 및 레위인과 조직들을 재정비하고, 자발적인 헌금을 독려해서 많은 선물과 헌물들이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많은 헌물들을 모을 창고를 만들고, 그것을 배분할 방법도 간구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 지하수로를 만들어서 예루살렘 성을 더욱 강력하고 안전한 성으로 만들기도 한 왕입니다. 열왕기서는 히스기야 왕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왕하 18:3,5~7a)

 

이렇게 형통했던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도 녹록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번에 걸쳐 앗수르의 군대가 쳐들어오기도 했고, 병에 걸려서 죽을 뻔한 위기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건강한 모습으로 15년을 더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했는지, 어떻게 나음을 얻게 되었는지는 열왕기서와 이사야서가 자세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날 가망이 없는 병에 걸린 것을 알고 하나님께 눈물 어린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고 계획하셨던 것들을 바꾸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사야를 보내셔서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15년 동안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징표를 주시기 위해 해시계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가는 기적도 보여 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와 같이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치유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움을 당하거나 불치병이 걸렸을 때 이 말씀 붙잡고 기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놀라운 히스기야의 이야기 속에 한 가지 흥미로우면서도 불필요해 보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에서 나음을 받은 후에 그를 찾아 온 바벨론의 신하들에게 자신의 왕궁에 있는 많은 보물들을 보여 준 내용입니다. 그는 군기고까지 열어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히스기야는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됩니다. 왕의 후손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가고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보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 주시는 사건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참으로 혹독한 미래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인간적으로는 지혜롭게 행했습니다.>

 

오늘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다가 나음을 얻은 후에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보물을 보여 준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런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첫째로 왜 히스기야는 병문안으로 온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신의 보물 창고를 보여 주었을까요? 두 번째로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창고를 열어서 보여 준 일이 그토록 하나님에게 책망받을 만한 일이었을까요? 언뜻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창고에 많은 보물들이 쌓여 있는 것을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보여줌으로 그들이 탐욕을 갖게 되었고 결국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들의 탐심을 자극했냐고, 왜 지혜롭지 못했냐고 나무라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많은 보물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주변의 나라들이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예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솔로몬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솔로몬이 가지고 있었던 부는 세상에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스바여왕이 예루살렘을 찾아와서 그것을 직접 확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녀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왔을 뿐만 아니라 소원만큼 많은 재물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많은 보물이 주변 나라들에 드러났다고 해도 예루살렘을 침공하거나 탐욕을 부리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번영된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침략할 마음을 갖지 않기도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을 찾아온 바벨론 신하들에게 창고를 열어준 일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히스기야와 남유다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 확실하게 보입니다. 우선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산헤립으로부터 이미 두 번의 침공을 받았고 나름대로 어렵게 이겨 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바벨론이라고 하는 다른 나라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이 얼마나 커져서 그들을 위협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에 사신을 보낸 것으로 보아서는 아직 바벨론과 유다 사이에 외교적으로 나름 좋은 관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두 가지 목적으로 창고를 열어 보여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과 군사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줌으로써 바벨론과의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입니다. 두 번째는 급부상하는 바벨론에게 자신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잘못한 일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외교적인 전술입니다. 요즘 나라들이 서로 자신의 부유함과 경제력, 군사력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자랑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자랑함으로써 전쟁 억제력을 가지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식으로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책망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오늘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대기서는 히스기야의 발병과 치유를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합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대하 32:24)

 

역대기의 내용을 보면 열왕기서 보다 많이 축소되어 있습니다. 그가 병이 들어 하나님께 어떻게 간절하게 기도했는지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 그의 뜻을 어떻게 바꾸셨는지도 생략되어 있습니다. 15년의 시간을 주신 내용도 없습니다. 또, 해시계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나는 사건도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죽게 되었을 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과 기적을 보여 주셨다는 단순한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역대기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중점을 두고자 하는 일이 이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나음을 얻은 후에 어떻게 하였는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대하 32:25~26)

 

이 내용에도 바벨론 포로의 이야기라든지 보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은 모두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으로 압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뉘우침을 통해서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진노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지적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하였고, 받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대하 32:25)

 

왜 하나님은 이것을 히스기야의 교만으로 보셨을까요? 우선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창고를 보여 준 일은 앞의 말씀처럼 단순하게 외교적이기만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만 떼어 본다면 충분히 외교적이고 전략적이며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 주신 일과 연결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히스기야의 치유 사건과 연속성 상에 이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병에서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불치의 병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바벨론의 사신들이 오고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신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해야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의 병을 고쳐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였더라면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은 예루살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도 이방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자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들과 무기들을 자랑하였습니다. 그가 나음을 입은 다음에 하나님께 감사한 후 그것을 자랑했다는 내용이 열왕기서와 이사야서에도 나오지 아니하고 오늘 역대기 본문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그가 교만하였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흥미로운 구조가 오늘 본문이 있는 역대기에 발견됩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했지만 뉘우쳤다는 내용 다음에 히스기야가 누린 부와 영광에 대한 내용이 27절부터 30절까지 이어집니다. 교만하던 왕이 뉘우치자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큰 부와 축복을 주신 것인지 맥락상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31절에서 바벨론 사신들의 이야기가 재등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샌드위치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주신 축복의 내용이 소개됩니다.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대하 32:31)

 

아주 적확하게 성경은 바벨론의 사신들이 방문했을 때 히스기야의 문제를 짚어 내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사신들이 히스기야를 찾아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는지 듣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병이 들어 죽어 가던 히스기야가 살아날 수 있었는지 기적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것에 대해서는 증언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의 창고를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떠나가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재물이 그를 살렸습니까? 그가 가지고 있었던 무기가 병을 고쳤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그의 무기와 재물을 보여 주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았습니다. 외교적으로 강성한 나라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지요. 중요한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병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그 시점에서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찬송하고 증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책망받은 내용입니다.

이 메시지가 오늘 본문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 이야기 앞뒤로 바벨론의 사신들이 나오는 구조를 말씀드렸습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큰 축복의 내용이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대하 32:27~29a)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창고와 외양간이 모자랄 정도로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대하 32:29b)

 

재산조차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을 자랑해야죠. 그런데 히스기야는 재물을 주신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재물을 사람들에게 보여 줍니다. 마치 자기 것인 양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사신들이 그를 방문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대하 32:30b~31)

 

그는 형통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고 병도 나았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사신들이 와서 어떻게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는지 묻자 히스기야는 진정한 정답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나에게 주신 재물, 가족들, 그리고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얻게 된 많은 것을 놓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매일 새벽마다 기도의 제목들이 올라옵니다. 우리는 매일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결과를 다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놀라운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불가능했던 일들과 놀라운 치유의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놀라운 기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가 참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부담스러운 이유 중에 하나는 설교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교가 이렇게 부담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제가 목회를 즐겁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렵지만 목회의 길을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병에서 나으면 나를 낫게 해 주신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고 드러냅니까? 목사님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다고 고백하지만 세상에서는 좋은 의사 만나서, 좋은 약을 발견해서 다행이라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재물의 경우도 그렇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나는 정말 가치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많은 것을 주신 것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가 이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증언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일생일벗’, 한 영혼을 구원하고자 마음을 먹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무엇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힘, 사회적인 위치 등을 소개하는 것이 전도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법은 단순합니다. 여러분의 일생일벗에게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주셨으니 당신도 이 놀라운 경험을 해 보았으면 좋겠어. 이것이 증언이고 전도 아닙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바벨론의 사신들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난 기적을 듣고 싶어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당신은 예수를 믿는 겁니까?”라고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을 마치 내 것인 양 자랑하지 않습니까?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은혜를 은혜로 말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전도이고 증언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이 일에 모두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하나님을 증언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일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증언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2월 18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은혜를 은혜라 말하지 않은 죄” (대하 32장 24~26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72장, 497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대하 32장 24~26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2월 18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우리의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요? 이 물음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혹시 세상 사람들은 이 물음을 가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설교의 요약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여 나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의 눈물 어린 기도에 응답하여 주셔서 그의 생명을 15년간 연장시켜 주십니다. 놀라운 히스기야의 치유 이야기에 한가지 흥미로운, 그러면서도 불필요해 보이는 이야기가 하나 덧붙어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에서 나은 후에, 그를 찾아온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신의 창고에 있는 보물과 무기와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에게 창고를 열어 보여 준 것에 대해 역대기는 히스기야가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대하 32:25). 이것이 왜 교만일까요? 왜 하나님은 이것을 히스기야의 교만으로 보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병을 고쳐 주셨다”라는 고백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증언하고 드러냈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였다면 바벨론의 사신들은 이스라엘, 유다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재물이 그를 살리지 않았고, 무기가 그의 병을 낫게 하지 않았습니다.

 

외교적으로 강성한 나라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증언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내야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마치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자랑하고 있는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서 실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바벨론의 사신과 같아서, 우리 안에서 일어난 기적을 듣고 싶어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가 라는 물음을 가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말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드러내며,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 바랍니다.

 

 

나누기

 

  1. 나에게 주신 재물, 나에게 주신 가족,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 또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많은 일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하셨는가?”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주셨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은혜라고 말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능력의 하나님,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놀라운 기적과 사건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기도로 치유함을 받았지만, 정작 그가 나은 후에는 하나님을 증언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지 못하였던 것을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드러내고 전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함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Connection Car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