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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전을 헐라

요한복음 2: 13 ~ 22

김경진 목사

2020.10.04

< 창립기념주일,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기억하며 우리의 상황을 돌아봅니다. >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소망교회 창립 43주년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온 성도님과 축제와 같은 날을 보내고 싶었는데, 오늘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게 됩니다. 소망교회가 세워지고 4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감회가 깊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소망교회가 설립된 날부터 지금까지 성실하게 교회를 섬겨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곽선희 원로 목사님께서 큰 수고를 하셨고, 김지철 은퇴 목사님께서 많은 사역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더불어 은퇴 장로님들과 원로 장로님들, 은퇴 권사님들과 은퇴 집사님들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많은 제직이 함께 수고하며 아름다운 소망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소망교회의 당회와 제직회, 교역자와 직원이 협력하며 소망교회를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소망교회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알면 알아갈수록 소망교회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너무 훌륭한 성도님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수고를 감당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에 큰 감동이 일어나곤 합니다. 참 자랑스러운 우리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복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창립 43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제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 원로 목사님과 은퇴 목사님께서 훌륭한 목회를 해 오셨는데, 과연 내가 앞으로 소망교회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두렵기도 합니다. 참 당황스러운 국면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코로나19라는 뜻밖의 상황을 맞이했고, 그로 인해 예배당에 모일 수조차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벌써 8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A.D.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로마 군대가 쳐들어와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예루살렘 성전을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사실 그 날의 성전 파괴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뼈저리게 와 닿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난 뒤, 예루살렘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매일같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올랐던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기도하며 찬양하며 행군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유대인이 찾던 예루살렘 성전인데, 성전이 무너진 뒤 그들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어디서 예배드려야 하나? 어디를 향해 예배드려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이제 어떤 방식으로 내 예배를 받으실까?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라는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예배당은 번듯하게 서 있지만, 예배당 문이 열리지 않아 바깥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당 문 앞에 오셔서 간절히 기도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저도 눈물이 납니다. 예배당 앞마당을 계속 돌고 계시는 성도님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언제 이 문을 열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오늘 우리는 ‘창립 43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합니다. 아마 오늘 이 순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대단하고 특별한 행사를 진행할 수도 없지만, 도리어 창립 43주년 기념 예배를 모두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한다는 면에서, 나아가 온라인으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기억에 남을 만한 창립기념주일이 될 것 같습니다.
파괴된 성전을 바라보며 힘들어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 우리도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예배당에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것도 그렇지만, 한국 교회 교인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과 비판이 매섭습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협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발생하는 확진자들로 인해 한국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히 박해의 상황이라 할 만한 정황입니다. 과거에는 성경책을 들고 밖을 나설 때마다 자랑스러웠는데, 이제는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우리를 피하는 세상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바로 이런 상황, 교회의 존립을 걱정하게 되는 상황에서 오늘 우리가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요한복음은 주님으로 인해 ‘옛것’이 ‘새것’으로 대체되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이라는 성서학자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전공한 탁월한 신학자입니다. 이분이 요한복음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매우 중요한 관점을 주장했습니다. 요한복음의 앞부분부터 나오는 본문이 ‘옛것’과 ‘새것’이라는 두 가지 대조적 관점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옛것’이 ‘새것’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요한복음 1장부터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후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고백하는 내용이 이렇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이제 성령으로 세례 주실 분이 오셨다. 내가 그분을 만났다.” 즉 옛것이 ‘물세례’라면 새것은 ‘성령 세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세례가 성령 세례로 대체되는 것을 요한복음 서두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요한복음 2장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가 등장합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새로운 포도주를 만들어 주십니다. 정결례에 사용되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부어 손님에게 내니,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세상의 옛 포도주’가 ‘주님의 새 포도주’로 대체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3장에 나타난 니고데모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관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육적인 탄생’이 아닌 ‘영적인 탄생’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즉 육적인 출생은 영적인 출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을 때도, ‘영과 진리’로 드려져야 할 예배, 곧 새롭게 대체되어야 할 예배에 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6장의 오병이어 사건에서도 ‘육적인 양식’을 넘어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전해 주십니다. 그때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6:48~50)

이렇듯 요한복음을 읽다 보면, ‘옛것’과 ‘새것’이라는 대비가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맨 앞부분도 그렇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중)라고 시작되는 말씀이 14절에서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중)라고 전개됩니다. 이는 또 다른 하나님의 임재의 양식입니다. 과거에는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성막이란 제한된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성전이었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성막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또 다른 하나님의 임재 방식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때문인지 요한복음을 읽다 보면, ‘성전’이란 단어가 공관복음과 다르게 사용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 ‘성전’은 ‘hieron(where God could be met)’이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은 ‘naos(where God dwells)’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새로운 양태로서의 성전을 지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바로 그 성전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무너진 성전을 주님께서 새롭게 세우실 것입니다. >

바로 이런 배경에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일 말씀인 가나의 혼인 잔치에 이어지는 본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후 예루살렘에 오르셨습니다. 공생애 후 첫 번째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맞게 된 시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한 가지 행동을 하셨습니다. 성전에 오르신 예수님이 그곳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죄다 내쫓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쫓아내셨다고 하는데, 이는 아주 강력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2:16 중)
이어 주님은 표적을 구하는 이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중)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을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요2:20 중) 46년 동안 지은 성전인데, 어떻게 3일 만에 다시 지을 수 있겠냐는 물음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가리키신 성전은 자신의 몸이었습니다. 성전 된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을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 말씀의 흐름 가운데 중요한 표현 하나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헐라!”라는 표현입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라는 말씀에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가’라는 것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헐라’라는 말은 명령형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면, 이 말씀은 조건절로 되어 있습니다. 조건절이면서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 드문 표현법입니다. 즉 ‘만일 내가 무엇을 한다면…’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라는 구절을 보다 정확하게 풀이한다면,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 버린다면….”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렇게 들렸을 것입니다. “너희가 보는 이 성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성전을 헐어 버리라.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라고 여기며 너희가 끊임없이 오가며 노력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오늘의 성전의 모습이 어떠하냐? 잘못된 관행과 죄로 망가지지 않았느냐? 거룩한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이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성전을 헐라! 만일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 버리기 원한다면, 내가 새 성전을 일으키리라!”
2020년 창립 43주년을 보내면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까지 네가 보았던 교회, 네가 습관처럼 다녔던 그 성전을 네가 헐어 버린다면, 내가 사흘 안에 새 성전을 일으키리라. 지금까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모습들, 부끄러웠던 모습들, 거짓된 예배자의 삶들, 그 모든 삶이 포함된 성전을 너희가 헐어 버린다면, 내가 새 성전을 지어주리라!”

< 참 성전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의 생명력입니다. >

‘성전’은 ‘예수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이해한다면, 어떤 뜻이 될까요? 역시 조건절이며, 명령형입니다. “너희가 참된 성전인 나를 헐어 버린다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일어나리라.”라는 말씀이 됩니다. 즉 “너희가 이 성전, 참된 성전을 헐어 보아라. 내가 다시 이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울 것이다.”라는 주님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너희가 나를 죽여도 나는 다시 일어나리라.”라는 확고한 주님의 선언입니다. “너희가 성전을 무너뜨려도 참된 성전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라는 주님의 선포인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유월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이 땅에 오신 참된 성전을 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허물어진 성전은 그대로 있지 않았습니다. 사흘 만에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참된 성전을 이 땅에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많은 분이 오늘의 상황을 기독교의 위기의 시간으로 분석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박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호소하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지속적으로 교회를 흔드는 세력들이 있고, 교회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단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코로나19 이후에 한국 교회가 과연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의 단호한 결단을 듣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헌다면, 내가 사흘 안에 일으키리라. 만일 너희가 참다운 교회, 진정한 교회를 무너뜨린다 할지라도, 나는 사흘 안에 다시 거룩한 성전을 세울 것이다. 너희가 아무리 교회를 무너뜨리고 망가뜨려도, 나는 진정한 교회, 진실 된 교회를 다시 세우고 말 것이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유대인들의 성전 개념이 다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 개념이 다르지만, 사흘 안에 성전을 다시 세울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그 성전, 곧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께서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바로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진정한 성전이며, 우리를 살리며 회복시키시는 생명의 근원이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 부활의 능력이 살아 있는 참된 교회가 됩시다. >

‘앞으로 교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 교회의 비전은 무엇인가?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등등의 여러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매우 중요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소망교회가 과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교회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진 공동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부활 생명이 교회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며,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소망교회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것은 ‘부활의 능력’이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능력이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가 갈망해야 할 사항인 것입니다.
또한 부활의 몸이라는 건 단순히 각 신체의 연합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란 나름의 인격을 가진 몸이자 성품과 품격을 가진 몸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 용서를 선포하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 교회 역시 신성한 품격을 지닌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워 주신 교회는 영원한 생명의 능력이 있는 교회입니다. 창립 43주년에 우리 주님께서 새롭게 세워 주시고자 하는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품격, 주님의 품성이 드러나고 있는 교회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창립 43주년을 맞으면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주목합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헌다면, 내가 성전을 세우리라. 너희가 이 성전을 헌다면, 내가 사흘 동안에 새 성전을 세우리라.”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창립 43주년이 되면 좋겠습니다. 옛 성전을 헐어 버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새롭게 세우시는 성전을 받아들이는 귀한 오늘이 되기를 원합니다.

Destroy This Temple

John 2:13~22

Today we celebrate the 43rd anniversary of Somang Church. I thank the Lord for watching over this church and building it up as a precious church that represents the Korean Church. Many of us feel a deep gratitude today. Pastor Kwak Sun-hee,our founding pastor, andPastor Kim Ji-chul,retired head pastor, made enormous sacrifices. Countless others also made this church what it is today, including the retired elders and deacons who served silently and selflessly as well as all the leaders, staff, and pastors who are serving Somang Church today.

The more I come to know about our church, the more I realize how great it is. I am proud thatwe serve with a deep faith in humble silence. I see many members of Somang serve quietly and humbly as a way of life.Our congregantsdeeply love, pray for, and give encouragement to the ministers. They are amazingly steadfast, faithful, and humble.

I am truly grateful and honored to serve this precious church. Today, I had hoped to celebrate this special day with you in person, sharing rice cakes on the church grounds as we do each year, but Covid-19 has prevented us from doing this. Ironically, this year’s anniversary has become a uniquely singular one because of the coronavirus. It is historic in the sense that we are worshiping in an empty church and our congregants are worshiping online, scattered in their homes.

As we celebrate Somang’s 43rd anniversary, we sense a different atmosphere. Our surroundings have changed dramatically compared to last year. With a trembling heart, we are now concerned about the future of our church as well as the Korean Church.

In 70 AD Jerusalem was attacked by Roman soldiers. Its temple was destroyed, and, tragically, Israel ceased to exist from that day.And to this day, the temple of Jerusalem has yet to be rebuilt.

When this tragedy occurred, what went on in the minds of the Israelites? The temple was their place of worship, the place they visited daily and regularly. And when they prayed each morning, they would face the temple from their windows. But this temple was gone, completely destroyed. Now, where must they go to offer sacrifices? How confused and distressed the Israelites would have been when they lost their place for worship!

Something similar is happening to us today. The Covid-19 pandemic has stopped church gatherings. Online services that began in March are continuing to October. Every time I see a church membercome and pray at the church gate, tears well up in my eyes. The Israelites would have cried, too, in the temple courtyards, as they saw the temple in ruins. The difference is we are crying even though the church still stands.

Today, a destruction of the temple is seen not only in the closed churches. Despite the concerted and enormous efforts of the Korean churches to curb the virus, the government and media are reporting that the virus is continuously spreading in a few churches, which has led to enormous criticism and backlash from the world against churches. Due to the coronavirus, Christians are seeing their temple destroyed. Many Christians, therefore, are now deeply concerned for the future of the Korean Church. Can the Church be sustained in such a situation?

We are witnessing a fall of the church, a destruction of the temple. This is the dark reality we are faced with on our anniversary of 2020. On this special day that celebrates the founding of our church, we must worry about the future of the Church.

Raymond E. Brown, a renown theologian, is particularly recognized for his studies on the book of John. He analyzed the first ten chapters of John using an important concept,replacement. He argues that chapters 1 to 10 arestories about replacing the old with the new.

In chapter 1 John the Baptist baptizes with water. But when Jesus comes, He baptizes with the Holy spirit. John says, “And I myself did not know him, but the one who sent me to baptize with water told me, ‘The man on whom you see the Spirit come down and remain is the one who will baptize with the Holy Spirit.’ I have seen and I testify that this is God’s Chosen One.”(John 1:33-34)

As we saw in last week’s sermon, the guests at the wedding in Cana happily drank the wine made miraculously by Jesus after the wine was gone. This means that the old wine has been replaced with the new wine from Jesus.

In today’s passage, which follows the wedding in Cana, Jesus visits the temple in Jerusalem and tells the people to destroy it, implying that He would build a new one. Here the visible temple is replaced with Jesus’ body.

In chapter 3, Jesus meets Nicodemus. He talks about a physical birth and a spiritual birth. Furthermore, He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the spiritual rebirth, that is being born again: “Jesus replied, ‘Very truly I tell you, no one can see the kingdom of God unless they are born again.’” (John 3: 3) A physical birth is replaced by being born again.

In chapter 4, Jesus meets a Samaritan woman at a well. She asks where she must worship—in Jerusalem or in Mount Gerizim. Although her question is about the place of worship, Jesus replies that one must worship in the Spirit and in truth: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the Spirit and in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the Spirit and in truth.” (John 4: 23-24)

In chapter 5, Jesus works even on the Sabbath, replacing the law on the Sabbath with a new law. He changes the concept of the Sabbath: “My Father is always at his work to this very day, and I too am working.” (John 5:17)

The feeding ofthe 6,000 is followed by a story on the bread of life. Bread made of flour is replaced with the bread of life: “I am the bread of life.Your ancestors ate the manna in the wilderness, yet they died.But here is the bread that comes down from heaven, which anyone may eat and not die.”(John 6: 48-50)

As such, John is structured in a way to replace the old with the new. That is why John 1:1 talks about a new way in which God comes upon us, that is, a new “replacement” in terms of His presence.

Hence, Brown considers John 1:14 to be a critical verse: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upon us.”Brownsays that Jesus Christ, who became flesh,is the new form of God’s presence on earth. Brown explains that Jesus Christ became the new replacement for the old tabernacle and the old temple.

In the Synoptic Gospels the temple is usually expressed as “hieron-”, which means “where God could be met,” while in John the word “naos-”,which means “where God dwells,” is specially used to signify the temple.

Today’s passage must be seen from this context.

Today’s Scripture from John 2 describes Jesus entering Jerusalem after starting His ministry and performing His first miracle in Cana. According to John, Jesus drives out all the merchants in the temple, rebuking them: “Stop turning my Father’s house into a market!” (John 2:16)

Then, to the Jews who sought a sign, He said, “Destroy this temple, and I will raise it again in three days.” (John 2:19)When Jesus said this, everyone—including the Jews and those who were with Him at the time—thought that He was talking about the temple in Jerusalem, the one before their eyes. That is why the Jews replied, “It has taken forty-six years to build this temple, and you are going to raise it in three days?”(John 2: 20) But the Bible clearly says that Jesus was referring to His body: “But the temple he had spoken of was his body.” (John 2: 21)In other words, while the Jews thought Jesus was saying, “Destroy the temple before your eyes,” Jesus meant, “Destroy my body.”

Here we must take a look at the original meaning and expression of “destroy the temple” in the original Greek text. In the Greek Bible, “destroy the temple” is not just an ordinary imperative, but one contained in a conditional clause. The grammatical structure of “Destroy the temple, […]”would besomething like this: “If you do such and such, […]” So, a more accurate translation would be “If you destroy this temple, […].”

To the Jews Jesus’ words would have sounded something like this: ‘The building you see in front of you is meaningless. This temple is nothing. Destroy it. You try so hard to meet God here, thinking it’s where God dwells, don’t you? But this temple has deteriorated greatly. So many sins and wrong practices in this temple! Don’t you see all the merchants and money changers doing business here? How can my Father’s house be a market? How can people seek their own interests here? Therefore, I tell you. Destroy this temple. If you do, I will raisea new one.’

In 2020, on our 43rd anniversary, God is giving us such a command. He is commanding us to destroy the temple that we have seen so far, the temple that we come to out of habit. For God will raise a new temple. He is telling us to destroy all the things that hurt Him, all the sinful and embarrassing things that have gone on in His temple, and all the money-changing and business in His temple. For He will build a new one.

Second, if we interpret the temple to be Jesus’ body, what does this passage mean?

As I mentioned, Jesus spoke an imperative in a conditional clause. This verse can be interpreted as a paradoxical command. In other words, Jesus is telling the Jews to destroy His body to see what will happen. “If you destroy my body, the true temple, I will raise it in 3 days.”A more liberal translation would be something like this: “I dare you to destroy my body. If you do, I will raise it again in three days.”This means that He would rise even if they killed Him. Even if they destroyed the temple, the true temple would be rebuilt.

Many Christians believe thatChristianity is going through a crisis today. They believe Christians are experiencing a new form of persecution. There are forces that continuously seek to bring down the Church. Criticisms and attacks against the Church persist. It feels as though Covid-19 is destroying the Church. Accordingly, some Christians argue that we must guard our offline worship at all costs, despite the pandemic.

We also see the powers of the world trying to bring down the Church. Politicians and the media seem to be oppressing the Church, using unfair standards and public sentiment. This has led some to worry about the very existence of the Church.

But in this situation, we hear God speak to us again: “Destroy this temple, and I will raise it again in three days.” (John 2:19)Even if you devastate this temple, I will raise it again. Even if you destroy the Church, I will raise it again in three days. We hear our Lord say, ‘No matter how much you destroy the temple, I will raise it again.’

We interpreted today’s passage by studying the two meanings of the temple. Interestingly, however, in both cases, the new temple that would be rebuilt by Jesus refers to His body. That is, the Lord’s risen body becomes the new temple.

Dear Church, where must the Church be headed? What must it do? What is its future? There is, however,a question far more important than these:Is our church truly serving as the resurrected body of Christ? What does it mean for the Church to be His risen body? Well, it means that the Church must be a community that possesses the life of Christ and the life of resurrection. A church without the power of resurrection is not a church in the true sense.

Furthermore, the body of Christ is more than just an organization or a community. It must possess the character and qualities of Christ Himself. The temple, or the church, that our resurrected Lord raises again must be a church that possess an everlasting life.

The temple, or the church, that our Lord wishes to newly raise up on Somang’s 43rd anniversary is a church that displays the character and qualities of our risen Lord. No matter how hard the world tries to destroy it, our Lord will raise up such a church.

Dear Somang Church, on this special day that marks the 43rd anniversary of our church, let’s receive the word our Lord gives us.

“Destroy this temple, and I will raise it again in three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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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 13 ~ 22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 창립기념주일,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기억하며 우리의 상황을 돌아봅니다. >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소망교회 창립 43주년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온 성도님과 축제와 같은 날을 보내고 싶었는데, 오늘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게 됩니다. 소망교회가 세워지고 4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감회가 깊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소망교회가 설립된 날부터 지금까지 성실하게 교회를 섬겨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곽선희 원로 목사님께서 큰 수고를 하셨고, 김지철 은퇴 목사님께서 많은 사역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더불어 은퇴 장로님들과 원로 장로님들, 은퇴 권사님들과 은퇴 집사님들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많은 제직이 함께 수고하며 아름다운 소망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소망교회의 당회와 제직회, 교역자와 직원이 협력하며 소망교회를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소망교회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알면 알아갈수록 소망교회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너무 훌륭한 성도님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수고를 감당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에 큰 감동이 일어나곤 합니다. 참 자랑스러운 우리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복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창립 43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제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 원로 목사님과 은퇴 목사님께서 훌륭한 목회를 해 오셨는데, 과연 내가 앞으로 소망교회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두렵기도 합니다. 참 당황스러운 국면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코로나19라는 뜻밖의 상황을 맞이했고, 그로 인해 예배당에 모일 수조차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벌써 8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A.D.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로마 군대가 쳐들어와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예루살렘 성전을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사실 그 날의 성전 파괴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뼈저리게 와 닿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난 뒤, 예루살렘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매일같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올랐던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기도하며 찬양하며 행군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유대인이 찾던 예루살렘 성전인데, 성전이 무너진 뒤 그들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어디서 예배드려야 하나? 어디를 향해 예배드려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이제 어떤 방식으로 내 예배를 받으실까?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라는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예배당은 번듯하게 서 있지만, 예배당 문이 열리지 않아 바깥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당 문 앞에 오셔서 간절히 기도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저도 눈물이 납니다. 예배당 앞마당을 계속 돌고 계시는 성도님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언제 이 문을 열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오늘 우리는 ‘창립 43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합니다. 아마 오늘 이 순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대단하고 특별한 행사를 진행할 수도 없지만, 도리어 창립 43주년 기념 예배를 모두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한다는 면에서, 나아가 온라인으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기억에 남을 만한 창립기념주일이 될 것 같습니다.
파괴된 성전을 바라보며 힘들어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 우리도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예배당에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것도 그렇지만, 한국 교회 교인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과 비판이 매섭습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협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발생하는 확진자들로 인해 한국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히 박해의 상황이라 할 만한 정황입니다. 과거에는 성경책을 들고 밖을 나설 때마다 자랑스러웠는데, 이제는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우리를 피하는 세상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바로 이런 상황, 교회의 존립을 걱정하게 되는 상황에서 오늘 우리가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요한복음은 주님으로 인해 ‘옛것’이 ‘새것’으로 대체되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이라는 성서학자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전공한 탁월한 신학자입니다. 이분이 요한복음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매우 중요한 관점을 주장했습니다. 요한복음의 앞부분부터 나오는 본문이 ‘옛것’과 ‘새것’이라는 두 가지 대조적 관점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옛것’이 ‘새것’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요한복음 1장부터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후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고백하는 내용이 이렇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이제 성령으로 세례 주실 분이 오셨다. 내가 그분을 만났다.” 즉 옛것이 ‘물세례’라면 새것은 ‘성령 세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세례가 성령 세례로 대체되는 것을 요한복음 서두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요한복음 2장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가 등장합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새로운 포도주를 만들어 주십니다. 정결례에 사용되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부어 손님에게 내니,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세상의 옛 포도주’가 ‘주님의 새 포도주’로 대체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3장에 나타난 니고데모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관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육적인 탄생’이 아닌 ‘영적인 탄생’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즉 육적인 출생은 영적인 출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을 때도, ‘영과 진리’로 드려져야 할 예배, 곧 새롭게 대체되어야 할 예배에 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6장의 오병이어 사건에서도 ‘육적인 양식’을 넘어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전해 주십니다. 그때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6:48~50)

이렇듯 요한복음을 읽다 보면, ‘옛것’과 ‘새것’이라는 대비가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맨 앞부분도 그렇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중)라고 시작되는 말씀이 14절에서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중)라고 전개됩니다. 이는 또 다른 하나님의 임재의 양식입니다. 과거에는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성막이란 제한된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성전이었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성막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또 다른 하나님의 임재 방식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때문인지 요한복음을 읽다 보면, ‘성전’이란 단어가 공관복음과 다르게 사용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 ‘성전’은 ‘hieron(where God could be met)’이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은 ‘naos(where God dwells)’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새로운 양태로서의 성전을 지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바로 그 성전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무너진 성전을 주님께서 새롭게 세우실 것입니다. >

바로 이런 배경에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일 말씀인 가나의 혼인 잔치에 이어지는 본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후 예루살렘에 오르셨습니다. 공생애 후 첫 번째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맞게 된 시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한 가지 행동을 하셨습니다. 성전에 오르신 예수님이 그곳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죄다 내쫓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쫓아내셨다고 하는데, 이는 아주 강력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2:16 중)
이어 주님은 표적을 구하는 이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중)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을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요2:20 중) 46년 동안 지은 성전인데, 어떻게 3일 만에 다시 지을 수 있겠냐는 물음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가리키신 성전은 자신의 몸이었습니다. 성전 된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을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 말씀의 흐름 가운데 중요한 표현 하나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헐라!”라는 표현입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라는 말씀에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가’라는 것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헐라’라는 말은 명령형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면, 이 말씀은 조건절로 되어 있습니다. 조건절이면서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 드문 표현법입니다. 즉 ‘만일 내가 무엇을 한다면…’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라는 구절을 보다 정확하게 풀이한다면,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 버린다면….”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렇게 들렸을 것입니다. “너희가 보는 이 성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성전을 헐어 버리라.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라고 여기며 너희가 끊임없이 오가며 노력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오늘의 성전의 모습이 어떠하냐? 잘못된 관행과 죄로 망가지지 않았느냐? 거룩한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이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성전을 헐라! 만일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 버리기 원한다면, 내가 새 성전을 일으키리라!”
2020년 창립 43주년을 보내면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까지 네가 보았던 교회, 네가 습관처럼 다녔던 그 성전을 네가 헐어 버린다면, 내가 사흘 안에 새 성전을 일으키리라. 지금까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모습들, 부끄러웠던 모습들, 거짓된 예배자의 삶들, 그 모든 삶이 포함된 성전을 너희가 헐어 버린다면, 내가 새 성전을 지어주리라!”

< 참 성전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의 생명력입니다. >

‘성전’은 ‘예수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이해한다면, 어떤 뜻이 될까요? 역시 조건절이며, 명령형입니다. “너희가 참된 성전인 나를 헐어 버린다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일어나리라.”라는 말씀이 됩니다. 즉 “너희가 이 성전, 참된 성전을 헐어 보아라. 내가 다시 이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울 것이다.”라는 주님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너희가 나를 죽여도 나는 다시 일어나리라.”라는 확고한 주님의 선언입니다. “너희가 성전을 무너뜨려도 참된 성전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라는 주님의 선포인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유월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이 땅에 오신 참된 성전을 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허물어진 성전은 그대로 있지 않았습니다. 사흘 만에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참된 성전을 이 땅에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많은 분이 오늘의 상황을 기독교의 위기의 시간으로 분석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박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호소하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지속적으로 교회를 흔드는 세력들이 있고, 교회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단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코로나19 이후에 한국 교회가 과연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의 단호한 결단을 듣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헌다면, 내가 사흘 안에 일으키리라. 만일 너희가 참다운 교회, 진정한 교회를 무너뜨린다 할지라도, 나는 사흘 안에 다시 거룩한 성전을 세울 것이다. 너희가 아무리 교회를 무너뜨리고 망가뜨려도, 나는 진정한 교회, 진실 된 교회를 다시 세우고 말 것이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유대인들의 성전 개념이 다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 개념이 다르지만, 사흘 안에 성전을 다시 세울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그 성전, 곧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께서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바로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진정한 성전이며, 우리를 살리며 회복시키시는 생명의 근원이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 부활의 능력이 살아 있는 참된 교회가 됩시다. >

‘앞으로 교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 교회의 비전은 무엇인가?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등등의 여러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매우 중요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소망교회가 과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교회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진 공동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부활 생명이 교회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며,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소망교회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것은 ‘부활의 능력’이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능력이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가 갈망해야 할 사항인 것입니다.
또한 부활의 몸이라는 건 단순히 각 신체의 연합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란 나름의 인격을 가진 몸이자 성품과 품격을 가진 몸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 용서를 선포하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 교회 역시 신성한 품격을 지닌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워 주신 교회는 영원한 생명의 능력이 있는 교회입니다. 창립 43주년에 우리 주님께서 새롭게 세워 주시고자 하는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품격, 주님의 품성이 드러나고 있는 교회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창립 43주년을 맞으면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주목합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헌다면, 내가 성전을 세우리라. 너희가 이 성전을 헌다면, 내가 사흘 동안에 새 성전을 세우리라.”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창립 43주년이 되면 좋겠습니다. 옛 성전을 헐어 버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새롭게 세우시는 성전을 받아들이는 귀한 오늘이 되기를 원합니다.

2020년 10월 4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이 성전을 헐라” (요 2:13-22)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08장, 60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요 2:13-22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0월 4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교회 창립 43주년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망교회를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귀한 교회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같은 날, 예배당에 함께 모여서 축제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서, 역설적으로 역사에 남을 만큼 특별한 기념 주일이 된 것 같습니다.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은 ‘옛 것이 새 것으로 대체’되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브라운(Raymond E. Brown)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14)의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즉,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가 이 세상 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새로운 형태의 임재의 모습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과거 성막과 성전의 새로운 대체적 존재가 되신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먼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는 조건절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일 네가 … 한다면”의 구조를 가진 명령형입니다. 즉,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버린다면 …”이 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듣는 다면 이런 말로 들릴 것입니다. ‘너희가 보는 이 건물, 이 성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성전을 헐어 버리라.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라고 여기며 이곳에서 너희가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의 이 성전은 이제 너무나 많은 잘못된 관행과 죄로 망가지고 말았구나. 그러므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새로운 성전을 일으켜 세워 주리라.’ 이런 말씀이지요.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몸, 육체로 생각한다면 어떤 말씀일까요? 이 말씀은 ‘역설적인 명령형’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전을 헐고 즉시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확인해 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기만 해봐라. 그렇게 된다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킬 것이다.’ 이 말씀은 ‘너희가 나를 죽여도, 나는 다시 일어나리라’는 말이고, 이 말씀은 ‘너희가 성전을 무너뜨려도 나의 참된 성전은 다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 성전의 의미를 가지고 이 말씀의 뜻을 살펴보았습니다만, 흥미롭게도 두 경우 모두 주님께서 세우시는 성전은 한 결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즉,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 바로 새롭게 세워지는 성전,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단순히 어떠한 조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부활의 생명을 가진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격, 품격을 가진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세워주시는 성전, 교회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나누기

 1. 창립 43주년을 맞이하며 나에게 가장 감사한 일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의 참된 교회인 ‘소망교회와 개인’에게 새롭게 세우시길 원하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마무리 기도

    창립 43주년을 맞는 소망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너희가 이 성전을 헌다면… ’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희망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상에 생명을 전하는 주님의 교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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