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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자의 노래

출애굽기 15: 1 ~ 5

김경진 목사

2020.08.09

< 자유에 대한 기대는 희망을 잃지 않게 합니다. >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미국 독립운동을 촉발한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의 애국 연설(Patriotic Speech, 1775)의 마지막 명문장입니다. ‘자유’란 무엇입니까? 저는 ‘자유’를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자유란 마치 갈증 같은 게 아닐까?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끊임없이 솟아나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자유가 아닐까?’
우리는 흔히 이런 일을 경험합니다. 이제 막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 일을 시킬 때, 힘이 쭉 빠지면서 하려던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경험 말입니다. 자녀들도 그럴 때가 있고, 어른인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기꺼이 하려고 했던 일인데, 누군가 강요하거나 명령하면 갑자기 하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내 자유가 침해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즉 자유를 박탈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1994년에 제작된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촉망받던 은행 부지점장 앤디라는 인물이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종신형을 받게 된 앤디는 쇼생크 감옥에 수감되는데, 그곳은 굉장히 거친 감옥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생존 방식을 찾는데, 은행 부지점장이었던 경험을 살려 간수장과 간수들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을 맡습니다. 비공식적으로 회계사 역할을 해 준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도 앤디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애씁니다. 어느 날 그에게 무죄를 입증할 만한 기회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증언을 해 줄 사람마저 살해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더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20년이란 세월이 흐릅니다. 20년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앤디가 감옥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요? 그가 갇힌 방 안에 한 여인의 그림이 붙어 있었는데, 그 그림을 떼고 나니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파여 있었습니다. 앤디가 무려 20년 동안 파고 또 파서 만들어 낸 탈출로였던 것입니다.
한편 앤디는 감옥 생활을 하면서 레드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레드는 앤디에게 여러 물건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앤디가 조그만 망치 하나를 구해 달라고 하니, 성경책을 도려낸 후 망치를 끼워 몰래 전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앤디는 매일 성경을 보는 것처럼 위장해 20년 동안 망치로 구멍을 뚫을 수 있었습니다. 그 탈출구를 통해 앤디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됩니다. 도저히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명대사로 꼽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레드가 앤디에게 말합니다. “희망? 내가 충고 하나 하지. 희망은 위험한 것이네.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 감옥에서 필요 없는 거라고. 명심하게나.” 그러자 앤디가 대답합니다. “레드, 희망은 좋은 것이에요. 어쩌면 제일 좋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앤디가 20년 동안 바라고 찾았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자유’였습니다. ‘자유’에 대한 희망이 20년 동안 그를 참고 기다리게 했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벽을 뚫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참된 해방과 자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

인간의 역사를 ‘자유를 쟁취하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인 상황 속에서 유럽과 서구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발견된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합니다. 또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도 전해 듣습니다. 서구 사람들 가운데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이렇게 이해하곤 합니다. “오랜 기간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 온 서구 정신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즉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도 내 것이다. 나에겐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가 있다. 나는 그 자유를 놓치고 싶지 않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토록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며 투쟁해 온 서구 역사이기에, 거기서부터 그와 같은 정신의 발로가 잉태되지 않았겠는가?’라는 해석입니다.
그만큼 인간에게는 자유가 중요합니다. 20년을 기다려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자유’고, 36년을 기다려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자유’입니다.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 민족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국권의 회복, 자유의 회복입니다.
오늘 우리는 8.15 광복 75주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8.15 광복은 진실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역사도 그 사실을 알려 주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광복을 위해 애썼습니다. 애국지사들이 열심히 노력했고, 광복군도 열심히 투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노력을 통해 이 땅에 광복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열강의 상관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 광복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한국의 상황과 이스라엘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별히 구약에 나오는 출애굽의 상황과 우리의 광복이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기까지는 430여 년이 걸렸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요셉과 더불어 애굽에 들어가고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점점 그들은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43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지.’라고 기대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죽어갔을 것입니다. 1대가 지나고 2대, 3대, 4대가 지나도록 기다려야 했습니다. 물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란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약속을 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저 애굽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살다 죽어간 사람들도 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를 택하셔서 불붙는 떨기나무 아래서 소명을 허락하시고, 그를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 이스라엘을 구하려고 했으나, 바로는 좀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 주지 않습니다. 열 번의 재앙을 거치고 난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주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재앙에서 장자들이 죽어 나간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들이 길을 나서자 바로가 군사들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잡아 오게 명합니다.
바로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기적을 경험합니다. 홍해는 극적인 자리였습니다. 마른 땅처럼 바다가 열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고, 애굽의 군대가 수장되는 놀라운 기적이 벌어집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자리가 바로 홍해입니다. 홍해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노래하는 장면입니다.

<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해 카이로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홍해 사건도 카이로스적인 사건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걸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애굽 군대가 한꺼번에 바다에 수장된 사건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놀라운 사건이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를 되찾은 그 자리에서 크게 기뻐하며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출애굽기 15:3~5)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출애굽기 15:10~13)

또 그들은 여호와를 향해 찬송과 노래를 부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애굽기 15:2)

얼마나 극적인 장면인지 모릅니다. 죽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기쁨으로 노래합니다. 자신들을 살리시고 자유를 주신 구원의 하나님께 찬송을 부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한 가지 든 생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이 모든 사람에게 카이로스적인 시간이었을까? 모든 사람이 홍해 기적을 카이로스로 경험했을까? 또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된 자유로 받아들여졌을까?’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뒷부분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잘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을 불렀는데, 이후 마라의 쓴 물을 경험하고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불만을 쏟아 내기 때문입니다. 또 신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자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게다가 다시 애굽을 그리워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게 도리어 나을 뻔했다.”라고 한탄까지 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애굽기 16:3)

이스라엘 백성은 외적으로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더는 애굽의 군대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독립했습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해방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참된 자유를 허락해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또 다른 것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배고픔의 노예가 되었고, 목마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는 얻었지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참 자유는 도피를 넘어 지향을 추구합니다. >

우리는 ‘자유’에 대해 말할 때,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이 있습니다. 먼저 ‘무엇으로부터의 도피’라는 개념인데, 근대의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추구한 것이 ‘무엇으로부터의 도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어떤 것으로부터 도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본능으로부터 도피하고, 자연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 하며, 신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 하고, 종교로부터 자유를 얻으려 하고, 권위로부터 자유를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의 도피,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는 결국 온전한 자유가 될 수 없음을 프롬은 이야기합니다. 이런 자유를 ‘소극적인 자유’라고 말합니다. 프롬은 이보다 더 ‘적극적인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으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무엇으로 향하는, 무엇으로 향하여 들어가는’ 자유입니다.
‘출애굽’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반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으로 향하는 자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쉽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홍해에서의 노래를 기억했다면, 보다 쉽게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홍해의 노래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또 다른 것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계명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에게 몰려온 두려움을 어찌해야 할 줄 몰랐습니다. 결국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사를 드립니다.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경험했던 헛된 제사의 문화로부터 탈피하지 못했습니다.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문제였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역사로 읽힙니다. 나라, 인종, 남녀, 종교, 장애, 가난, 무지, 노예, 계급, 기근, 홍수 등 끊임없이 우리를 옥죄는 문제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그래서 자유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가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방식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선사해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탕자는 자유를 찾기 위해 아버지를 떠납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떠나는 자유는 얻었지만, 이내 본능에 예속되었고, 정욕의 노예가 되었으며, 악한 세상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쇼생크 탈출’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50년 동안이나 수감 생활을 했던 한 사람이 세상으로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석방이 두렵습니다. 감옥 밖에서 사는 것보다 감옥 안에서 사는 게 더 행복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은 넘었기에, 세상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세상으로 나와 몸은 자유로워졌으나, 그는 두려움에 속박되고 맙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결국 그는 자유의 몸으로 죽을 곳을 찾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로 자신의 목숨을 죽이고 마는 자유를 선택하고 맙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출애굽은 자유를 향한 출발이었습니다. 몸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른 노예의 삶을 살아갑니다. 영적인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자유 또한 얻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애굽에서의 노예근성을 탈피하지 못했습니다. 애굽 문화에 사로잡힌 채, 그 땅을 그리워하며 광야에서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세대 가운데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었지만, 그 외 모든 사람은 광야에서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참된 자유를 주셨지만,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해 결국은 광야에서 죽어간 사람들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을 때,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10명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골격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힘과 능력을 보았습니다. 도저히 그들을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결심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았지만, 그들은 홍해에서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불가능성 속에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립시다. >

우리나라가 광복된 지 75주년이 되었습니다. 광복 후 우리나라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처음에는 육체적인 자유가 주어졌지만, 곧 혼란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일본 제국으로부터 육체적인 해방과 국권을 회복했지만, 또 다른 것의 노예가 되어 갔습니다. 이념의 노예, 물질의 노예, 일제 문화의 노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와 방종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도덕의식, 법질서 의식에서 노예근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분노와 원한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또 우리는 6.25 전쟁을 겪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공산주의가 북한을 점령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독재 정권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광복 75주년을 보내는 우리 자신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해방되었는가?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그와 같은 삶의 주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자유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애굽 군사를 물리쳤을 때, 그 자리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노래했습니다. 만약 그 노래를 잊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사건, 카이로스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홍해 사건과 같은 카이로스적인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살렸고,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그 자리를 우리가 기억한다면, 그 믿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는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는 자유입니다. 무엇으로부터 탈피하는 자유가 아니라, 주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으로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믿음이 우리를 온전하고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The Song of Free Men

Exodus 15:1-5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This was the last sentence of the “Patriotic Speech” of 1775 made by Patrick Henry, the man who ignited a movement for American independence.

What is freedom to man? I think it is like a thirst. An endless, unquenchable thirst that leaves him thirsty even after a drink.

There is one thing that our children—actually, we, ourselves—hate. It’s when somebody tells you to do something, especially when you were planning to do it yourself. Why do we hate this? Because we cherish our freedom. We desire autonomy.

The Shawshank Redemption is a movie of 1994 based on Stephen King’s novel.Andy Dufresne, a promising banker, is sentenced to life imprisonment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rutally murdering his wife and her lover. Any hope of provingAndy’s innocence is shattered when the man who could have proved it is murdered.

Twenty years pass. One day, Andy vanishes from his cell. He escaped by digging a tunnel out of his cell. For twenty years, he had used a small rock hammer,given to him by his friend Red, to dig a hole in his cell wall, hidden behind a poster. Against all hope, Andy had not given up hope.

In the movie, Red says to Andy, “Let me tell you something my friend. Hope is a dangerous thing. Hope can drive a man insane.” Andy later replies, “Red,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What did Andy crave for 20 years? Freedom. He was able to endure and not give up because of his hope for freedom.

It would not be an exaggeration to say that modern history was a fight for freedom. The West, in particular, endlessly pursued freedom and liberty in all areas, including religion, race, sex, slavery, and national sovereignty. Today, the resistance of some Americans to wearing face masks amidst the Covid-19 pandemic can be understood in connection to this longstanding pursuit for freedom in the West. Such Americans want the freedom “not” to wear masks.

Freedom is precious to man. Two decades couldn’t force Andy to give it up. Thirty-six years couldn’t make the Korean people give it up. Nothing is more frustrating than oppression. What can be harder to bear than losing freedom?

After Japanese colonial invasion, the one thing that the Korean people never gave up and tried to regain was national sovereignty, the freedom of the Korean people.

This week we celebrate the 75th anniversary of Korea’s liberation on August 15, 1945. We thank and praise the Lord who gave us liberation. Looking back on Korea’s history, we can only but say that Korea’s liberation was wholly by God’s grace.

We didn’t do anything forliberation. Yes, there were patriots and activists and the Korean Liberation Army. But we know from history that liberation did not come as a result of such efforts. It was a gift from God.

Interestingly, Israel’s Exodus from Egypt and Korea’s liberation are somewhat similar.

Today’s Scripture from Exodus contains a joyous freedom song sung by the Israelites after finally being freed from 430 years of slavery. The backdrop of this song is the Red Sea. The Israelites have crossed it as if on dry ground, and the Egyptian army have drowned. No horses or chariots are chasing them now. The waters have parted the Israelites and Egypt for good. They are free at last! With joy, they sing to the Lord for granting them freedom and liberation. And today’s passage is that song.

The journey to freedom was hard. The Israelites first had to spend 430 years in Egypt. Many of them died hoping in Egypt, never reachingthat hope for freedom. Yet, they did not lose the hope that they would return to their home, the promised land.

Actually, no. Perhaps the Israelites had given up on that dream. But God hadn’t. God didn’t forget His promise with Abraham that He would lead His people to the promised land.

Israel’s liberation project starts with God calling Moses from the burning bush. Following God’s command, Moses tries to set his people free, but it wasn’t easy. Pharaoh refused to let the Israelites go, while God struckEgypt with ten plagues.

Finally when God struck every firstborn in Egypt, Pharaoh relented. He agreed to let them go. Shortly after, however, he changed his mind and chased them all the way to the Red Sea. It was herethat God killed all the Egyptians. It was God’s victory. The Israelites were finally free.

I talked about “Kairos” last week. This event at the Red Sea was a “Kairos” moment for the Israelites, carved into their memory forever. Who could ever forget such a scene where a peoplewalked across the sea on dry ground with a whole army drowning behind them? It would have been an amazing sight, a precious and thankful moment.

This is why Moses and the Israelites sang these lyrics:

“The Lordis a warrior;the Lordis his name.Pharaoh’s chariots and his armyhe has hurled into the sea.The best of Pharaoh’s officersare drowned in the Red Sea.The deep waters have covered them;they sank to the depths like a stone.”(Exodus 15: 3-5)

They continue to sing the following:

“But you blew with your breath,and the sea covered them.They sank like leadin the mighty waters.Who among the godsis like you, Lord?Who is like you—majestic in holiness,awesome in glory,working wonders?You stretch out your right hand,and the earth swallows your enemies.In your unfailing love you will leadthe people you have redeemed.In your strength you will guide themto your holy dwelling.” (Exodus 15:10-13)

So, the Israelites sing to the Lord, praising Him:

“The Lordis my strength and my defense;he has become my salvation.He is my God, and I will praise him,my father’s God, and I will exalt him.” (Exodus 15: 2)

At the Red Sea, the Israelites saw God’s deliverance. And at this very scene of deliverance and freedom, they sing to God for His salvation. They are singing a song of freedom and liberation.

This scene is somewhat similar to that in Shawshank Redemption where Andy Dufresne finally crawls out of the sewer and revels in his newfound freedom in the rain. A “Kairos” moment of freedom was given to the Israelites, too.

I sometimes wonder about Andy’s life after his escape. Of course, in the movie, Andy and Red meet up, and it is implied that they spend blissful moments together. But I wonder. Did Andy really find freedom? True freedom?

I wonder because I know the story of the Israelites. After singing this freedom song at the Red Sea, the Israelites immediately start to grumble in the Wilderness of Sin. In chapter 15 of Exodus we see them singing ecstatically, but in chapter 16 they start complaining to God:

“The Israelites said to them, ‘If only we had died by the Lord’s hand in Egypt! There we sat around pots of meat and ate all the food we wanted, but you have brought us out into this desert to starve this entire assembly to death.’” (Exodus 16: 3)

Outwardly, they had become free men. No army on their tail, free, and independent at last. They were liberated from forced labor, too. They had escaped the whip of the Egyptians and the daily quotas. They had finally reached a free, liberated state.

Yet, they continued to beenslaved. By hunger and thirst. Every time they felt hungry or thirsty, they missed Egypt. A slave mentality also imprisoned them. The Book of Exodus depicts how the Israelites were incapable of enjoying freedom, even after being freed from forced labor.

When we talk about freedom, we often talk about “freedom from”.But the Israelites were still not free from their slave mentality. They longed to go back to Egypt,regretting having left the land. They were incapable of enjoying their hard-won freedom.

In his book Escape From Freedom, Erich Fromm talks about “freedom from.”According to Fromm, the modern man has always sought “freedom from,” a freedom that tries to escape something. For example, he sought freedom from instinct and nature, freedom from God and religion, and freedom from authority. Frommsays that man’s struggle for freedom was a pursuit for “freedom from.” But such a freedom cannot be a perfect one. It is a passive freedom. He goes on to argue that man must pursue an active freedom, that is, “freedom to.”

We dream about freedom and struggle for it, but, in truth, the freedom we seek often turns out to be a limited and imperfect one. When the Israelites escaped Egypt, they first gained freedom from hard labor, the whip, and torture. Moreover, theysought a freedom to worship God freely in the wilderness.

But even after gaining those freedoms, some things still imprisoned them. As I mentioned earlier, they had yet to free themselves from hunger and thirst. In the wilderness, they had to deal with these issues continuously.

They couldn’t fight off the fear that overwhelmed them while Moses went off to Mount Sinai to receive the Ten Commandments. They finally made and worshipped a golden calf. They failed to free themselves from fear. They failed to escape idol-worship, a worthless practice they had learned in Egypt.

Freedom from always accompanies such transitional and imperfect aspects. It also accompanies an endless desire for more freedom. Mankind’s history is a chronicle of man’s pursuit for freedom from. Throughout history, man has strived to escape the things that oppress him, such as nation, race, sex, disability, poverty, ignorance, slavery, class, famine, floods, and so on.

However, Fromm says that sometimes freedom from oppresses and kills us in turn.

Such a phenomenon appears also in Shawshank Redemption. Brooks, an old man who had been in Shawshank for 50 years, is finally set free. But instead of being happy, he is anxious. He cannot adapt to the outside world and finally commits suicide. He finally gets the freedom to do whatever he wants, but, ironically, with that freedom he kills himself.

Sadly, the Israelites experienced something similar after theirExodus. Their escape from Egypt marked the beginning of their freedom. They had earned a physical freedom, but not a spiritual or mental one yet. They still had a slave mentality. They continued to follow the cultures of Egypt. They envied Egypt and wanted to return.

What was the result? Death. The Israelites had escaped Egypt and entered the wilderness in search of freedom, but they all ended up dead there. Death in the wilderness became their fate. In worldly terms, theyhad failed to find true freedom after escaping Egypt in pursuit of it. On the surface—and in terms of their physical condition—they were free. Yet they had not found true freedom.

Among the Israelites who sang the freedom song at the Red Sea, only Joshua and Caleb entered the Canaan.

There is “freedom from.” But there is also “freedom to.”The former leads to an unquenchable thirst for more. Of course, freedom from must be pursued, but this alone does not guarantee true, perfect freedom. If the Exodus was a “freedom from” event, entering Canaan was a “freedom to” one.

The Exodus was the beginning of freedom. We see God leading us when we make that Exodus. After that, with faith, we must enter the land promised by God.

When twelve spies were sent out to spy out the land of Canaan, only Joshua and Caleb reported back that the Israelites could defeat the Canaanites. The rest reported that their opponents were indomitable, seeing only their size and strength. What made the two, Joshua and Caleb, make a positive report?

Joshua and Caleb probably remembered the overwhelming joy they experienced at the Red Sea. They recalled that the God who parted the sea was with them. They had this faith, which was why they could enter Canaan.

It has been 75 years since Korea’s liberation. After liberation, what happened? What came after our long-awaited freedom? Yes, we recovered our sovereignty, but this recovery also accompanied all sorts of confusion.

We were liberated from Japanese colonial rule, but a host of things continued to enslave us: ideology, materialism, past culture and practices connected to Japanese rule, and so on. Koreans failed to distinguish between freedom and self-indulgence. We remained entrapped in a slave mentality in terms of our ethics, law, and order. We became slaves to anger and hate, which had been lurking in us when we were slaves.

Finally, the Korean War erupted, killing countless Koreans. The North became communized, and our brethren continue to suffer to this day under oppression and dictatorship. But what about the South? South Korea became what it is today through an endless pursuit of freedom. Yet, South Koreans are still slaves to materialism.

As we celebrate the 75th anniversary of our liberation, we must ask ourselves: Are we truly free? Are we really enjoying freedom? From what have we freed ourselves?

As Christians and as God’s children, we must remember this. The Exodus was only the beginning of freedom and liberty. Freedom from will never stop asking for more until we reach God, the One who gives perfect freedom. There must be a “freedom to”, a freedom that comes by entering Canaan, the promised land.

God crushed the Egyptian army at the Red Sea. Our Lord defeated death and sin on the cross. For us, believers, the Cross is like the Red Sea. His blood redeems us.

We have been rescued from death and sin. We live with this faith. But as we saw in Israel’s Exodus, God’s people became slaves to fear, hunger, and thirst in the wilderness. Our old self, our old character, and secular culture continue to ensnare us. But this is certain. God achieved victory. We must have faith in this.

A faith that marches into the promised land will set us free. The Lord speaks to us: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Galatians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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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5: 1 ~ 5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4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5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 자유에 대한 기대는 희망을 잃지 않게 합니다. >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미국 독립운동을 촉발한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의 애국 연설(Patriotic Speech, 1775)의 마지막 명문장입니다. ‘자유’란 무엇입니까? 저는 ‘자유’를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자유란 마치 갈증 같은 게 아닐까?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끊임없이 솟아나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자유가 아닐까?’
우리는 흔히 이런 일을 경험합니다. 이제 막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 일을 시킬 때, 힘이 쭉 빠지면서 하려던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경험 말입니다. 자녀들도 그럴 때가 있고, 어른인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기꺼이 하려고 했던 일인데, 누군가 강요하거나 명령하면 갑자기 하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내 자유가 침해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즉 자유를 박탈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1994년에 제작된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촉망받던 은행 부지점장 앤디라는 인물이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종신형을 받게 된 앤디는 쇼생크 감옥에 수감되는데, 그곳은 굉장히 거친 감옥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생존 방식을 찾는데, 은행 부지점장이었던 경험을 살려 간수장과 간수들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을 맡습니다. 비공식적으로 회계사 역할을 해 준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도 앤디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애씁니다. 어느 날 그에게 무죄를 입증할 만한 기회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증언을 해 줄 사람마저 살해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더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20년이란 세월이 흐릅니다. 20년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앤디가 감옥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요? 그가 갇힌 방 안에 한 여인의 그림이 붙어 있었는데, 그 그림을 떼고 나니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파여 있었습니다. 앤디가 무려 20년 동안 파고 또 파서 만들어 낸 탈출로였던 것입니다.
한편 앤디는 감옥 생활을 하면서 레드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레드는 앤디에게 여러 물건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앤디가 조그만 망치 하나를 구해 달라고 하니, 성경책을 도려낸 후 망치를 끼워 몰래 전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앤디는 매일 성경을 보는 것처럼 위장해 20년 동안 망치로 구멍을 뚫을 수 있었습니다. 그 탈출구를 통해 앤디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됩니다. 도저히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명대사로 꼽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레드가 앤디에게 말합니다. “희망? 내가 충고 하나 하지. 희망은 위험한 것이네.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 감옥에서 필요 없는 거라고. 명심하게나.” 그러자 앤디가 대답합니다. “레드, 희망은 좋은 것이에요. 어쩌면 제일 좋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앤디가 20년 동안 바라고 찾았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자유’였습니다. ‘자유’에 대한 희망이 20년 동안 그를 참고 기다리게 했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벽을 뚫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참된 해방과 자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

인간의 역사를 ‘자유를 쟁취하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인 상황 속에서 유럽과 서구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발견된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합니다. 또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도 전해 듣습니다. 서구 사람들 가운데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이렇게 이해하곤 합니다. “오랜 기간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 온 서구 정신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즉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도 내 것이다. 나에겐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가 있다. 나는 그 자유를 놓치고 싶지 않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토록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며 투쟁해 온 서구 역사이기에, 거기서부터 그와 같은 정신의 발로가 잉태되지 않았겠는가?’라는 해석입니다.
그만큼 인간에게는 자유가 중요합니다. 20년을 기다려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자유’고, 36년을 기다려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자유’입니다.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 민족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국권의 회복, 자유의 회복입니다.
오늘 우리는 8.15 광복 75주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8.15 광복은 진실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역사도 그 사실을 알려 주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광복을 위해 애썼습니다. 애국지사들이 열심히 노력했고, 광복군도 열심히 투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노력을 통해 이 땅에 광복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열강의 상관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 광복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한국의 상황과 이스라엘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별히 구약에 나오는 출애굽의 상황과 우리의 광복이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기까지는 430여 년이 걸렸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요셉과 더불어 애굽에 들어가고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점점 그들은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43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지.’라고 기대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죽어갔을 것입니다. 1대가 지나고 2대, 3대, 4대가 지나도록 기다려야 했습니다. 물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란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약속을 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저 애굽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살다 죽어간 사람들도 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를 택하셔서 불붙는 떨기나무 아래서 소명을 허락하시고, 그를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 이스라엘을 구하려고 했으나, 바로는 좀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 주지 않습니다. 열 번의 재앙을 거치고 난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주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재앙에서 장자들이 죽어 나간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들이 길을 나서자 바로가 군사들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잡아 오게 명합니다.
바로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기적을 경험합니다. 홍해는 극적인 자리였습니다. 마른 땅처럼 바다가 열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고, 애굽의 군대가 수장되는 놀라운 기적이 벌어집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자리가 바로 홍해입니다. 홍해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노래하는 장면입니다.

<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해 카이로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홍해 사건도 카이로스적인 사건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걸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애굽 군대가 한꺼번에 바다에 수장된 사건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놀라운 사건이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를 되찾은 그 자리에서 크게 기뻐하며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출애굽기 15:3~5)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출애굽기 15:10~13)

또 그들은 여호와를 향해 찬송과 노래를 부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애굽기 15:2)

얼마나 극적인 장면인지 모릅니다. 죽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기쁨으로 노래합니다. 자신들을 살리시고 자유를 주신 구원의 하나님께 찬송을 부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한 가지 든 생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이 모든 사람에게 카이로스적인 시간이었을까? 모든 사람이 홍해 기적을 카이로스로 경험했을까? 또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된 자유로 받아들여졌을까?’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뒷부분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잘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을 불렀는데, 이후 마라의 쓴 물을 경험하고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불만을 쏟아 내기 때문입니다. 또 신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자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게다가 다시 애굽을 그리워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게 도리어 나을 뻔했다.”라고 한탄까지 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애굽기 16:3)

이스라엘 백성은 외적으로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더는 애굽의 군대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독립했습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해방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참된 자유를 허락해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또 다른 것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배고픔의 노예가 되었고, 목마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는 얻었지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참 자유는 도피를 넘어 지향을 추구합니다. >

우리는 ‘자유’에 대해 말할 때,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이 있습니다. 먼저 ‘무엇으로부터의 도피’라는 개념인데, 근대의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추구한 것이 ‘무엇으로부터의 도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어떤 것으로부터 도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본능으로부터 도피하고, 자연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 하며, 신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 하고, 종교로부터 자유를 얻으려 하고, 권위로부터 자유를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의 도피,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는 결국 온전한 자유가 될 수 없음을 프롬은 이야기합니다. 이런 자유를 ‘소극적인 자유’라고 말합니다. 프롬은 이보다 더 ‘적극적인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으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무엇으로 향하는, 무엇으로 향하여 들어가는’ 자유입니다.
‘출애굽’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반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으로 향하는 자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쉽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홍해에서의 노래를 기억했다면, 보다 쉽게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홍해의 노래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또 다른 것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계명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에게 몰려온 두려움을 어찌해야 할 줄 몰랐습니다. 결국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사를 드립니다.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경험했던 헛된 제사의 문화로부터 탈피하지 못했습니다.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문제였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역사로 읽힙니다. 나라, 인종, 남녀, 종교, 장애, 가난, 무지, 노예, 계급, 기근, 홍수 등 끊임없이 우리를 옥죄는 문제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그래서 자유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가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방식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선사해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탕자는 자유를 찾기 위해 아버지를 떠납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떠나는 자유는 얻었지만, 이내 본능에 예속되었고, 정욕의 노예가 되었으며, 악한 세상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쇼생크 탈출’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50년 동안이나 수감 생활을 했던 한 사람이 세상으로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석방이 두렵습니다. 감옥 밖에서 사는 것보다 감옥 안에서 사는 게 더 행복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은 넘었기에, 세상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세상으로 나와 몸은 자유로워졌으나, 그는 두려움에 속박되고 맙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결국 그는 자유의 몸으로 죽을 곳을 찾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로 자신의 목숨을 죽이고 마는 자유를 선택하고 맙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출애굽은 자유를 향한 출발이었습니다. 몸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른 노예의 삶을 살아갑니다. 영적인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자유 또한 얻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애굽에서의 노예근성을 탈피하지 못했습니다. 애굽 문화에 사로잡힌 채, 그 땅을 그리워하며 광야에서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세대 가운데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었지만, 그 외 모든 사람은 광야에서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참된 자유를 주셨지만,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해 결국은 광야에서 죽어간 사람들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을 때,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10명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골격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힘과 능력을 보았습니다. 도저히 그들을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결심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았지만, 그들은 홍해에서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불가능성 속에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립시다. >

우리나라가 광복된 지 75주년이 되었습니다. 광복 후 우리나라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처음에는 육체적인 자유가 주어졌지만, 곧 혼란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일본 제국으로부터 육체적인 해방과 국권을 회복했지만, 또 다른 것의 노예가 되어 갔습니다. 이념의 노예, 물질의 노예, 일제 문화의 노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와 방종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도덕의식, 법질서 의식에서 노예근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분노와 원한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또 우리는 6.25 전쟁을 겪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공산주의가 북한을 점령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독재 정권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광복 75주년을 보내는 우리 자신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해방되었는가?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그와 같은 삶의 주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자유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애굽 군사를 물리쳤을 때, 그 자리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노래했습니다. 만약 그 노래를 잊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사건, 카이로스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홍해 사건과 같은 카이로스적인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살렸고,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그 자리를 우리가 기억한다면, 그 믿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는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는 자유입니다. 무엇으로부터 탈피하는 자유가 아니라, 주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으로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믿음이 우리를 온전하고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2020년 8월 9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자유자의 노래” (출 15:1-5)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98장, 301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출 15:1-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8월 9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 우리는 815광복 75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에게 해방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홍해 앞에서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살리시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자유와 해방의 노래를 부릅니다.  

 설교의 요약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 15:2). 그러나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 신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홍해 앞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출 15장에 나오지만, 바로 이어지는 16장에서는 배가 고파 불평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출 16:3).

    그들은 외적으로는 자유인이 되어있었습니다. 더 이상 애굽의 군대가 따라오지도 않고 그들은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채찍을 맞으면서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고, 하루 일당 량을 채우기 위해 고되게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상황은 자유입니다. 해방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들은 참 자유를 찾았을까요?

    몸은 자유였지만 그들은 배고픔의 노예였습니다. 목마름의 노예였습니다. 그 때마다 그들은 애굽을 그리워합니다. 또 다른 노예의 근성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말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극적인 자유 즉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 자유 즉 적극적인 자유는 무엇으로부터 나오는 자유가 아니라, 무엇을 향하여 들어가는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는 끊임없는 갈증을 만들어 냅니다. 물론 우리는 이것도 포기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만, 이것만으로 우리는 온전한 자유, 해방을 맛볼 수 없습니다. 출애굽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이라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으로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출애굽은 자유와 해방의 시작입니다. 무엇으로부터의 해방,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는 온전한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까지 줄어들지 않으며,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자유, 약속에 들어가는 해방이 있어야 합니다. 

    광복 75주년을 보내며 다시 스스로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해방되었는가? 우리 믿는 이들에게 홍해는 십자가의 자리와 같습니다. 그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살리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구원 받았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나 광야의 길을 살아가는 우리는 계속되는 공포와 두려움, 목마름과 배고픔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옛 성품과 옛 세상의 문화가 우리를 사로잡으려 합니다. 하지만,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나누기

 1. 나는 언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난 사건(카이로스), 즉 홍해, 십자가를 통한 참 자유가 있었나요? 

 2. 영적 해방(십자가를 통한 자유)이 있지만 아직 내가 노예 되어 사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향하여의 자유’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출애굽을 넘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주님께 드리는 주님의 종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홍해의 가슴 벅찬 노래를 늘 간직하며 가나안에 까지 이르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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