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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

마태복음 24: 45~51

김경진 목사

2022.11.27

<교회력의 출발점인 대림절은 인간의 운명을 직시하게 합니다.>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성탄절 앞에 있는 절기로서 교회력으로는 첫 번째 교회 절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일반 달력은 1월 1일이 시작점이지만, 교회력은 대림절 오늘이 시작점입니다. 대림절이 왜 교회력의 시작점일까요? 언뜻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부터 시작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회력은 인간에 대한 처절한 자기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즉 인간에게는 마지막이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교회력이 시작됩니다.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나,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인류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 교회력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울이 말한 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는 고백이 대림절의 출발입니다. 대림절의 신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어지는 바울의 고백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라(7:25a)” – 이 성탄절의 의미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림절과 성탄절은 인간의 허무함, 인간의 유한함, 종말로 치닫고 있는 인간의 운명을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절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대림절의 분위기는 사실 암울합니다. 도저히 꼼짝달싹할 수 없을 것 같은 인간의 운명을 직시하면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곤고한 인간의 운명, 종말로 치닫는 인간의 운명을 두고 성경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인간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날은 세상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끝이 나는 날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핵폭탄이 터지거나 다른 행성과의 충돌로 인하여 지구의 종말이 도래한다고 상상하지만, 성경을 통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의 마지막은 주님이 심판주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간을 선악 간에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이것이 대림절의 신학적인 초점입니다. 결국 대림절은 인류의 종말을 기억하며 준비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나의 죽음과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사실 대림절의 신학이 아니어도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생명을 가진 존재들에게는 자명한 현실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잉태하면 처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아이는 현실이 됩니다. 배가 점점 불러오고 결국은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순간, 이미 마지막이라고 하는 종말이 따라 붙게 됩니다. 죽음이 현실이 되어서 우리 미래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을 이미 잉태합니다. 그리고 종말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대림절이 될 때마다 우리는 대림절 초를 성전 앞에 두곤 합니다. 첫 주일에는 하나를 두고, 두 번째 주일에는 두 개, 세 번째 주일에는 세 개, 네 번째 주일에는 네 개를 두면서 불을 붙입니다. 매주 하나씩 불을 새로 붙이기 때문에 첫 주에 점화한 초는 조금씩 더 타들어 가게 됩니다. 둘째 주의 것은 셋째 주 초보다 조금 더 타들어 갑니다. 대림절 초의 장식은 시간의 타 들어감을 잘 보여 줍니다. 조금씩 소진되어 가는 시간,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우리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대림절 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주님의 오심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이 있는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교훈을 알려 줍니다. 24장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 24:3)

 

그때 주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 24:4~5)

 

우선 첫 번째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종말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은 “속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리스도라 칭하며 사람들을 속일 것을 염두에 두시며 절대로 속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26~27 중)

 

“주님께서 임하셨다! 심판주로 오셨다!” 라는 말이 들릴 때 그 말을 믿지 말고 어디에도 나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번개처럼 순간적으로 임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재림 예수가 와 있다든가, 지금 활동을 하고 있다는 모든 유혹들은 사실상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얼마 전, 이단 세력이 대구 어느 곳에서 10만이라는 큰 숫자를 자랑하면서 모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미혹하는 것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오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때와 관련하여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때다! 지금이다! 말하면서 미혹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주님은 보다 극적으로 다시 오시는 상황을 알려 주셨습니다. 마치 노아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던 것처럼 주님께서 오시는 순간에 한 사람은 밭에 있고, 한 사람은 맷돌질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일상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주님은 재림하실 것인데, 어느 누구도 그날을 맞출 순 없다는 것입니다. 이 날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속에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장)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번개 같이 순간적으로 임하실 텐데 그날을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죠.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고 준비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성경 속에서 여러 가지 지혜를 발견할 수 있지만 오늘은 본문을 통하여서 주님께서 주시는 귀한 지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대전제 속에서 주님은 어떻게 우리가 종말을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주님은 악한 종의 이야기를 통하여 외식하는 행위를 경고하십니다.>

 

말씀 속에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 모두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한 사람은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악한 종입니다. 한 사람은 실패한 유형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성공한 유형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은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에 관하여 먼저 말씀하셨지만 설교의 흐름을 보다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악한 종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악한 종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실패한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주님의 종말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일까요? 우선 흥미로운 한 가지 단서가 보입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마 24:48)

 

첫 번째 악한 종의 잘못이 나타납니다. 그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 곧 재림의 날을 스스로 예측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언제쯤 오실까? 아직은 아니야…’라고 스스로 판단내린 것이죠. 주님은 분명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는 스스로 “아직 아니다”, “아직 멀었다”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날짜를 자기 마음대로 예측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합니다. 그를 향하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마 24:50)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말씀이 ‘아직 아니다’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런데 악한 종은 주님이 오시려면 멀었다고 판단합니다. 이것이 주님 보시기에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관점이 나타나는데 악한 종이 주인이 더디 오신다고 생각하며 한 행동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마 24:49)

 

주님께서 더디 오신다는 생각과 친구들과 함께 술 먹고 동료들을 때린 것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동료들을 때렸다는 말은 약자들을 억압했다는 말로 바꿀 수 있겠고, 친구들과 더불어 술을 마셨다는 것은 주어진 것을 방탕하게 사용하였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더디 오신다는 판단이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아마도 종은 학대하고 낭비하는 삶, 그렇게 자신 마음대로 사는 삶을 살다가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시점이 되면 그때서야 각성하고 좋은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도우며 살면서 위기를 모면해야겠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오신다고 생각되는 그 지점에서 바르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하나님을 속이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사람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 24:51)

 

흥미로운 표현이 나옵니다.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을 그에게 내릴 것이라고 선포하시죠. 외식하는 자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겉으로는 보기 좋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소리로 거리에서 기도하지만 속으로는 주님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도 않는 바리새인,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결국 외식하는 자란 두 얼굴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신앙 고백과 행실이 다른 사람이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행동은 다르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 더디 오실 것이라고 예측하고는 그 시간에만 잘 보이려는 사람, 주님이 오시는 순간에만 위기를 잘 넘기려고 하는 사람. 그러나 주님은 그를 이미 알아보십니다. 가짜로 판정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한다는 것은 섣부른 예단으로 그날을 추측할 수 없고,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그날만 번지르르하게 주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서 모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알려 주신 것입니다.

 

<지혜로운 종은 맡겨 주신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하며 시간을 채워 갑니다.>

 

자, 이와는 반대로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에 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오심을 제대로 준비하는 사람의 유형입니다. 주님이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어떤 주인이 한 종에게 다른 종들을 다스리며 제때에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맡기고 떠났다면 어떻게 하여야 그 종이 과연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마 24:45, 공동번역개정)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한 가지 중요한 관점이 나타납니다. 주인이 맡기고 떠났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주인이 종에게 맡긴 일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인이 다시 돌아오는 일과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언제’ 돌아오실지에 관한 관점이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관점은 주인이 맡겨 놓은 그 일을 종이 제대로 처리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약삭빠른 종은 주인이 언제 올지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는 그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빠르게 모면하려고 하죠. 그러나 진실되고 충성된 종은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별로 갖지 않습니다. 주인이 맡겨 주신 일을 잘 수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종, 충성된 종의 관심은 주인이 언제 올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맡겨 주신 일 자체에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충성된 종의 매우 중요한 태도입니다.

본문을 원어로 읽다 보면 또 다른 매우 중요한 흥미로운 단어를 보게 됩니다. 바로 “때를 따라(24:45)” 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때’라고 하는 단어에 ‘카이로스(καιρός, kairos)’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잘 아실 겁니다. 크로노스라는 단어와 비교해서 주로 사용되죠. 일반적인 시간의 개념, 흘러가는 시간의 개념이 아닌 꼭 필요한 시점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4장은 그날과 시기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날을 의미하는 해매라(ἡμέρα, hémera) 그리고 시간을 의미하는 표현 호라(ὥρα, hóra) 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그 시간, 그날 혹은 그날의 징조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말할 때는 해매라 또는 호라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반면에 주님의 충성된 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충성된 종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시간, 날짜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인이 맡기신 사명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순간순간, 결정적인 시간 속에서 감당해 갑니다. 다시 말해서 충성된 종은 종말의 시간을 살피고 주님이 오시는 시간인 호라 또는 해매라와 같은 것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 시점인 카이로스적 시간에 관심을 가집니다. 즉 종말의 시간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 시점을 살핍니다.

이것은 이후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주렸을 때 너희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내가 헐벗을 때 나에게 입을 것을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카이로스적인 시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충성된 종은 그와 같은 일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하루하루를 가득 찬 시간으로, 결정적인 시간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향하여 주님께서 칭찬하십니다.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6)

 

본문 속에 종말과 관련하여 숨겨진 또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마 24:45b) 라는 말씀입니다. 양식을 나누어 줄 자! 물론 이것은 주인이 종에게 맡긴 사명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주인의 의도가 잘 드러납니다. 필요한 시점에 때를 따라서 주인은 종이 양식을 나누어 주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인의 의도입니다.

그렇다면 양식을 나누어 준다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궁핍한 사람들에게 허기를 채워 줄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이겠죠.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리라는 명령입니다. 희망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일을 주인은 종에게 맡겼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 모든 종들에게 맡겨 주신 사역의 방향성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한 가지 명령을 받습니다. 각각 하는 일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한 가지는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즉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업이 어떠하든지,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지혜란 무엇입니까?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되 사람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카이로스적인 시간을 만들어 가는 사람, 종말의 시간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에 관심을 두고 카이로스적인 시간으로 채워 가는 자세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이런 사람에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4~46)

Our Attitude in Waiting for the End

 

Matthew 24:45-51

 

Today is the first Sunday of Advent. Advent is the season that leads up to Christmas as well as the first season of the church calendar. While the regular calendar starts on January 1, the liturgical calendar starts with Advent, that is, today.

 

Why is Advent the first season of the church calendar? One may think it ought to start on the day of Christ’s birth, but it doesn’t.

 

Instead, it begins with man self-perception—that is, man’s awareness of his reality that things will come to an end. It starts with man’s acknowledgement that humanity is headed toward death and the end.

 

This self-perception, the very foundation of of Advent, has also been expressed by Paul:

 

“What a wretched man I am! Who is rescue me from this body that I subject to death?” (Romans 7:24)

 

Furthermore, Paul’s cry of delight in the following verse is connected to the meaning of Christmas:

 

“Thanks be to God, who delivers m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Romans 7:25a)

 

Truth be told, the atmosphere of Advent is depressing—because the church year starts with man’s encounter with his desperate and miserable fate.

 

The Bible describes this reality of man—whose miserable fate is headed toward the end—as mankind waiting for the return of Christ.

 

The return of Jesus will put an end to all time in this world.

 

While people in this world imagine that doomsday will come through a nuclear war or by earth’s collision with another planet, the Bible tells us that the end will come when Jesus returns in judgement.

 

At the Second Coming He will judge all people and all the good and the bad.

 

This is the theological focus of Advent. Advent, therefore, is a season that remembers and prepares for the end of humanity and, on a personal level, a period to reflect on and prepare for our own death and end.

 

Thus, the theology of Advent is based on man’s perception that he is destined to die and is headed toward the end and that he is subject to judgement at the Second Coming promised by the Lord.

 

Even without this theology, however, allliving things are aware that the end is drawing near.

 

When a woman conceives, she knows that thebaby in her womb is an undeniable reality, even though the fetus is invisible. As time passes, her belly grows, and in nine months the baby is finally born.

 

Our life is also the same. The moment we are born and given life, our reality is thatthe life we have been given will one day end, and we will die. Acknowledging this is crucial.

 

The fact is, all living things are headed toward death, the end.

 

Thusthe end is inherent in all men. Although we have not yet met our deaths and the world has not come to an end yet, the end and death will surely come.

 

DuringAdvent, we light a candle each Sunday.Each week, we light a candle; so at the end of the four weeks a total of four candles are lit. Since the candles are lit consecutively, at the end of Advent the first candle has burned down more than the second, and the second more than the third, and so on. These candles symbolize the passage of time. Just as the Advent candles burn down, our lives, too, are gradually consumed and eventually come to an end.

 

‘Time is melting. The Second Coming of our Lord is getting nearer and nearer. The end is coming. As times goes by, that day is coming even closer.’ This is the very meaning of the Advent candles.

 

Then how must we prepare for the end? Dear brothers and sisters, what must we do to be well prepared for Christ’s Second Coming, the end?

 

Matthew 24 and 25, from which today’s passage is taken, impart valuable lessons on being prepared for theSecond Coming.

 

The passage starts with the disciples’ question to Jesus:

 

“As Jesus was sitting on the Mount of Olives, the disciples came to him privately. ‘Tell us,’ they said, ‘when will this happen, and what will be the sign of your coming and of the end of the age?’” (Matthew 24:3)

 

Jesus starts His answer with these words:

 

“Jesus answered: ‘Watch out that no one deceives you. For many will come in my name, claiming, I am the Messiah, and will deceive many.’”(Matthew 24:4-5)

 

The first thing Jesus says about the end and His comingis a warning not to be deceived. Many will come in My name, claiming to be Christ, but do not be deceived, He says. Jesus is saying that there will be many lies and untruths aboutHis coming and the end of the world.

 

He also says:

 

“So if anyone tells you, ‘There he is, out in the wilderness,’ do not go out; or, ‘Here he is, in the inner rooms,’ do not believe it. For as lightning that comes from the east is visible even in the west, so will be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Matthew 24:26-27)

 

Jesus’ coming will be like a sudden lightening. Therefore, when deceivers say, “The Messiah is here,” or “Jesus is over there,” they are lies.

 

I heard 100,000 members of a heretic group recently gathered proudly in Daegu. However, we must remember that our Lord clearly warned us not to follow deceivers who say, “Here he is,” or “There he is.” Jesus will not come in such a way.

 

Particularly, Jesus warns us that there will be many deceptions regarding the time and day of His coming. Therefore, He stresses something important about the timing of His coming:

 

“But about that day or hour no one knows, not even the angels in heaven, nor the Son, but only the Father.”(Matthew 24:36)

 

Using a more dramatic description, Jesus says His coming will be like the flood that came in the days of Noah. In Noah’s days before the flood, people were eating and drinking, marrying and giving in marriage, up to the day Noah entered the ark. When Jesus comes, it will be like the days of Noah when two men will be in the field; one wi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Two women will be grinding with a hand mill; one wi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Jesus will come on a day like any other day; no one can ever predict it. Only God the Father knows the hour and the day.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on what day your Lord will come. […] So you also must be ready, because the Son of Man will come at an hour when you do not expect him.” (Matthew 24:42, 44)

 

After establishing the above major premises, Jesus tells a story on being prepared for the end, the Second Coming, our text for today.

 

Two types of persons appear in Jesus’ story: a faithful and wise servant and a wicked one. In teaching how to be prepared for His coming, Jesus gives a stark comparison of the servants’ respective attitudes.

 

Although Jesus talks about the faithful and wise servant first, it would be useful to study the wicked servant first in order to better understand the meaning and flow of what Jesus said.

 

The wicked servant refers to the person who fails to prepare for His coming. Then who is the one that fails to be prepared?

 

First, an interesting clue is found in the following verse:

 

“But suppose that servant is wicked and says to himself, ‘My master is staying away a long time,’”(Matthew 24:48)

 

The first mistake of the wicked servant is that he made his own predictions about when his master would return, in other words, the timing of Jesus’ coming. He thought and judged by himself, ‘When will He come? Not yet…’

 

Jesus clearly said that no one knows the hour or day but the Father; yet this wicked servant interpreted this to mean, “Not yet” or “Still far off.”

 

He predicted about the timing as he wished and acted accordingly. But our Lord says,

 

“The master of that servant will come on a day when he does not expect him and at an hour he is not aware of.”(Matthew 24:50)

 

When Jesus says no one knows when He will come, this does not mean, “Not yet.” Yet the wicked servant judged for himself that the master would return in the far future. This, in Jesus’ sight, was wicked and unwise.

 

What is more interesting is the wicked servant’s actions which he carried out based on his prediction that the Lord would be late in His coming:

 

“and he then begins to beat his fellow servants and to eat and drink with drunkards.”(Matthew 24:49)

 

How doeshis prediction that the Lord would come late connect to his actions, such as beating his fellow servants and drinking and eating with drunkards? The beating may be interpreted as an abuse of the weak and the drinking and eating may be seen as a prodigal use of his possessions.

 

Then how did his perception that the Lord would come late lead to such actions?

 

It is possible that the wicked servant thought, ‘Wouldn’t it be okay to do good deeds, to help the needy, and to obey His wordsataround the time of His coming and live licentiously and take advantage of others till He comes? Wouldn’t it be okay to get prepped just before He returns?’

 

His wicked actions would have come from his thinking that it would be fine to get ready at the time of His coming and live as he wanted until then. In short, he is deceiving God.

 

The Lord says to such a person:

 

“He will cut him to pieces and assign him a place with the hypocrites,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Matthew 24:51)

 

It must be noted that such a hypocrite will be punished.

 

What is hypocrisy? It is to act as if one is following God well, but inside he is far from it. Our Lord called such people who prayed loudly on the streets for people to see but whose lives were unworthy in the sight of God “hypocrites.” In short, a hypocrite is a person with two faces, whose confession of faith and actions speak differently, whose words and actions are inconsistent. But our Lord says that such people—who predicted that the Lord would be late in coming, who lived to impress the Lord only at the time of His coming, who thought all they needed to do was to be good at that time—will be punished. In other words, He will judge them as“fakes.”

 

Therefore, man can never predict the day of His coming; but even if he were able to, being prepared does not mean to just be good at around the time of His coming and please Him at that time. This is the lesson Jesus is teaching His disciples.

 

The Lord, however, talks about the faithful and wise servant, who represents the one who is well prepared for the Lord’s coming. Jesus starts with these words:

 

“Who then is the faithful and wise servant, whom the master has put in charge of the servants in his household to give them their food at the proper time?”(Matthew 24:45)

 

Here an important perspective on the Second Coming must be noted: “the master has put in charge.” This perspective also appears in the Parable of the Talents in Matthew 25.

 

The master has put the servant in charge of something. This tells us that the most critical factorin the master’s return is not “when” he will return. More important is “what he has entrusted to the servant”as He left.

 

The wise and faithful servant is not concerned with when the master will return. A true servant is concerned with how he can accomplish the things the master has put him in charge of as he left. Unlike the wicked servant who tries to save his neck by predicting the timing of the master’s return, the faithful servant does his best to do the tasks the master has entrusted him with.

 

Our Lord says that this is the first important attitude required for preparing for Hiscoming.

 

He is saying that the proper attitude of the disciple who lives with an awareness that the end in coming near is to faithfully carry out the precious tasks the Lord has charged him with.

 

In the original Greek text of today’s passage, another interesting word is observed: “at the proper time.”(Matthew 24:45)

 

The Greek word for “proper time” is “kairos (καιρός).”Kairos is a special word that refers not to time in general or time that just passes by, but the“opportune and decisive moment.”

 

Matthew 24 starts with the disciples’ question on the when that day will come. Here the Greek words “hémera (ἡμέρα)” and“hóra (ὥρα), which mean “day” and “time” respectively, are used.

 

But our Lord uses “kairos” in describing the faithful servant.

 

The faithful servant is not interested in the day or timing of His coming. Instead, he is interested in the task that his master has put him in charge of, that is, his mission. He takes on that mission in every decisive moment of his life.

 

In other words, the faithful servant does not try to predict the “day (hémera, ἡμέρα)” or“hour (hora, ὥρα)” of His coming by being concerned with when the end will come, but has his eyes set on “kairos,”that is, the opportune time for those he is serving.

 

In short, he focuses on the opportune momentfor those around him, not when the end will come.

 

The faithful servant turns each day into “kairos,” the opportune time. He transforms each day into decisive and full moments.

 

Our Lord praises such a person.

 

“It will be good for that servant whose master finds him doing so when he returns.”(Matthew 24:46)

 

Today’s passage contains another important lesson on preparing for the end: “to give them their food at the proper time.”(Matthew 24:45b)

 

Who will give them food at the proper time? This may simply refer to the task the master gave his servant as he left. But what is important is the master’s intentrevealed in his command. He wanted his servant to share food with others at the proper time.

 

What does it mean to give out food? This food would have been given to the hungry, the needy. The master put the servant in charge of saving the dying and giving hope to the hopeless.

 

This should be the direction of all ministries that Jesus has entrusted to His servants. Regardless of what we do, we who are living toward the end have all received a mission from the Lord. We do different things, but we all have one task in common: to give food, that is, to save lives. Whatever our jobs may be, whatever we do in life, our ultimate mission through all these is to save souls and the world. “To give food” is to do this work of salvation.

 

Now let’s wrap up. How can we live wisely in the end times? What should be our attitude as we wait for the end? We must be faithful to the work of saving people, while doing our best in the task or job that we have been entrusted with. We must be concerned with the task that the Lord has entrusted us with and carry out that task well by transforming each moment into “kairos,” rather than being concerned with when the end will come. On the day He returns, our Lord will praise such a person as “the faithful and wise servant.”

 

“So you also must be ready, because the Son of Man will come at an hour when you do not expect him. ‘Who then is the faithful and wise servant, whom the master has put in charge of the servants in his household to give them their food at the proper time? It will be good for that servant whose master finds him doing so when he returns.’”(Matthew 24:44-46)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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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 45~51

45~51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교회력의 출발점인 대림절은 인간의 운명을 직시하게 합니다.>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성탄절 앞에 있는 절기로서 교회력으로는 첫 번째 교회 절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일반 달력은 1월 1일이 시작점이지만, 교회력은 대림절 오늘이 시작점입니다. 대림절이 왜 교회력의 시작점일까요? 언뜻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부터 시작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회력은 인간에 대한 처절한 자기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즉 인간에게는 마지막이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교회력이 시작됩니다.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나,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인류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 교회력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울이 말한 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는 고백이 대림절의 출발입니다. 대림절의 신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어지는 바울의 고백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라(7:25a)” – 이 성탄절의 의미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림절과 성탄절은 인간의 허무함, 인간의 유한함, 종말로 치닫고 있는 인간의 운명을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절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대림절의 분위기는 사실 암울합니다. 도저히 꼼짝달싹할 수 없을 것 같은 인간의 운명을 직시하면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곤고한 인간의 운명, 종말로 치닫는 인간의 운명을 두고 성경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인간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날은 세상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끝이 나는 날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핵폭탄이 터지거나 다른 행성과의 충돌로 인하여 지구의 종말이 도래한다고 상상하지만, 성경을 통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의 마지막은 주님이 심판주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간을 선악 간에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이것이 대림절의 신학적인 초점입니다. 결국 대림절은 인류의 종말을 기억하며 준비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나의 죽음과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사실 대림절의 신학이 아니어도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생명을 가진 존재들에게는 자명한 현실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잉태하면 처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아이는 현실이 됩니다. 배가 점점 불러오고 결국은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순간, 이미 마지막이라고 하는 종말이 따라 붙게 됩니다. 죽음이 현실이 되어서 우리 미래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을 이미 잉태합니다. 그리고 종말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대림절이 될 때마다 우리는 대림절 초를 성전 앞에 두곤 합니다. 첫 주일에는 하나를 두고, 두 번째 주일에는 두 개, 세 번째 주일에는 세 개, 네 번째 주일에는 네 개를 두면서 불을 붙입니다. 매주 하나씩 불을 새로 붙이기 때문에 첫 주에 점화한 초는 조금씩 더 타들어 가게 됩니다. 둘째 주의 것은 셋째 주 초보다 조금 더 타들어 갑니다. 대림절 초의 장식은 시간의 타 들어감을 잘 보여 줍니다. 조금씩 소진되어 가는 시간,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우리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대림절 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주님의 오심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이 있는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교훈을 알려 줍니다. 24장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 24:3)

 

그때 주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 24:4~5)

 

우선 첫 번째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종말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은 “속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리스도라 칭하며 사람들을 속일 것을 염두에 두시며 절대로 속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26~27 중)

 

“주님께서 임하셨다! 심판주로 오셨다!” 라는 말이 들릴 때 그 말을 믿지 말고 어디에도 나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번개처럼 순간적으로 임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재림 예수가 와 있다든가, 지금 활동을 하고 있다는 모든 유혹들은 사실상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얼마 전, 이단 세력이 대구 어느 곳에서 10만이라는 큰 숫자를 자랑하면서 모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미혹하는 것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오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때와 관련하여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때다! 지금이다! 말하면서 미혹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주님은 보다 극적으로 다시 오시는 상황을 알려 주셨습니다. 마치 노아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던 것처럼 주님께서 오시는 순간에 한 사람은 밭에 있고, 한 사람은 맷돌질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일상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주님은 재림하실 것인데, 어느 누구도 그날을 맞출 순 없다는 것입니다. 이 날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속에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장)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번개 같이 순간적으로 임하실 텐데 그날을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죠.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고 준비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성경 속에서 여러 가지 지혜를 발견할 수 있지만 오늘은 본문을 통하여서 주님께서 주시는 귀한 지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대전제 속에서 주님은 어떻게 우리가 종말을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주님은 악한 종의 이야기를 통하여 외식하는 행위를 경고하십니다.>

 

말씀 속에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 모두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한 사람은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악한 종입니다. 한 사람은 실패한 유형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성공한 유형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은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에 관하여 먼저 말씀하셨지만 설교의 흐름을 보다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악한 종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악한 종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실패한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주님의 종말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일까요? 우선 흥미로운 한 가지 단서가 보입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마 24:48)

 

첫 번째 악한 종의 잘못이 나타납니다. 그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 곧 재림의 날을 스스로 예측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언제쯤 오실까? 아직은 아니야…’라고 스스로 판단내린 것이죠. 주님은 분명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는 스스로 “아직 아니다”, “아직 멀었다”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날짜를 자기 마음대로 예측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합니다. 그를 향하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마 24:50)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말씀이 ‘아직 아니다’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런데 악한 종은 주님이 오시려면 멀었다고 판단합니다. 이것이 주님 보시기에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관점이 나타나는데 악한 종이 주인이 더디 오신다고 생각하며 한 행동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마 24:49)

 

주님께서 더디 오신다는 생각과 친구들과 함께 술 먹고 동료들을 때린 것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동료들을 때렸다는 말은 약자들을 억압했다는 말로 바꿀 수 있겠고, 친구들과 더불어 술을 마셨다는 것은 주어진 것을 방탕하게 사용하였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더디 오신다는 판단이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아마도 종은 학대하고 낭비하는 삶, 그렇게 자신 마음대로 사는 삶을 살다가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시점이 되면 그때서야 각성하고 좋은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도우며 살면서 위기를 모면해야겠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오신다고 생각되는 그 지점에서 바르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하나님을 속이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사람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 24:51)

 

흥미로운 표현이 나옵니다.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을 그에게 내릴 것이라고 선포하시죠. 외식하는 자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겉으로는 보기 좋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소리로 거리에서 기도하지만 속으로는 주님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도 않는 바리새인,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결국 외식하는 자란 두 얼굴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신앙 고백과 행실이 다른 사람이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행동은 다르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 더디 오실 것이라고 예측하고는 그 시간에만 잘 보이려는 사람, 주님이 오시는 순간에만 위기를 잘 넘기려고 하는 사람. 그러나 주님은 그를 이미 알아보십니다. 가짜로 판정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한다는 것은 섣부른 예단으로 그날을 추측할 수 없고,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그날만 번지르르하게 주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서 모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알려 주신 것입니다.

 

<지혜로운 종은 맡겨 주신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하며 시간을 채워 갑니다.>

 

자, 이와는 반대로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에 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오심을 제대로 준비하는 사람의 유형입니다. 주님이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어떤 주인이 한 종에게 다른 종들을 다스리며 제때에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맡기고 떠났다면 어떻게 하여야 그 종이 과연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마 24:45, 공동번역개정)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한 가지 중요한 관점이 나타납니다. 주인이 맡기고 떠났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주인이 종에게 맡긴 일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인이 다시 돌아오는 일과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언제’ 돌아오실지에 관한 관점이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관점은 주인이 맡겨 놓은 그 일을 종이 제대로 처리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약삭빠른 종은 주인이 언제 올지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는 그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빠르게 모면하려고 하죠. 그러나 진실되고 충성된 종은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별로 갖지 않습니다. 주인이 맡겨 주신 일을 잘 수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종, 충성된 종의 관심은 주인이 언제 올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맡겨 주신 일 자체에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충성된 종의 매우 중요한 태도입니다.

본문을 원어로 읽다 보면 또 다른 매우 중요한 흥미로운 단어를 보게 됩니다. 바로 “때를 따라(24:45)” 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때’라고 하는 단어에 ‘카이로스(καιρός, kairos)’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잘 아실 겁니다. 크로노스라는 단어와 비교해서 주로 사용되죠. 일반적인 시간의 개념, 흘러가는 시간의 개념이 아닌 꼭 필요한 시점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4장은 그날과 시기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날을 의미하는 해매라(ἡμέρα, hémera) 그리고 시간을 의미하는 표현 호라(ὥρα, hóra) 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그 시간, 그날 혹은 그날의 징조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말할 때는 해매라 또는 호라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반면에 주님의 충성된 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충성된 종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시간, 날짜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인이 맡기신 사명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순간순간, 결정적인 시간 속에서 감당해 갑니다. 다시 말해서 충성된 종은 종말의 시간을 살피고 주님이 오시는 시간인 호라 또는 해매라와 같은 것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 시점인 카이로스적 시간에 관심을 가집니다. 즉 종말의 시간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 시점을 살핍니다.

이것은 이후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주렸을 때 너희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내가 헐벗을 때 나에게 입을 것을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카이로스적인 시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충성된 종은 그와 같은 일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하루하루를 가득 찬 시간으로, 결정적인 시간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향하여 주님께서 칭찬하십니다.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6)

 

본문 속에 종말과 관련하여 숨겨진 또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마 24:45b) 라는 말씀입니다. 양식을 나누어 줄 자! 물론 이것은 주인이 종에게 맡긴 사명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주인의 의도가 잘 드러납니다. 필요한 시점에 때를 따라서 주인은 종이 양식을 나누어 주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인의 의도입니다.

그렇다면 양식을 나누어 준다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궁핍한 사람들에게 허기를 채워 줄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이겠죠.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리라는 명령입니다. 희망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일을 주인은 종에게 맡겼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 모든 종들에게 맡겨 주신 사역의 방향성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한 가지 명령을 받습니다. 각각 하는 일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한 가지는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즉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업이 어떠하든지,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지혜란 무엇입니까?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되 사람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카이로스적인 시간을 만들어 가는 사람, 종말의 시간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에 관심을 두고 카이로스적인 시간으로 채워 가는 자세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이런 사람에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4~46)

2022년 11월 2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 (마 24:46-51)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84장, 176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마 24:46-51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1월 2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일반 달력은 새해가 1월 1일부터 시작되지만, 교회력은 대림절부터 시작됩니다. 대림절이 왜 교회력의 시작일까요? 교회력은 인간에 대한 철저한 자기 인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즉 인간에게는 마지막이 있다는 현실인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즉 죽음으로 치닫는 삶,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인류에 대한 인식이 출발점입니다. 대림절의 신학은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며, 또한 마지막을 향하여 가고 있는 존재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이 있는 마태복음 24-25장은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교훈들을 알려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느 때에 종말이 일어나며, 주님의 재림과 종말에는 어떤 징조가 있는지”를 여쭤봅니다. 그때 주님께서 처음으로 말씀하신 것은 “속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주님의 재림과 종말에 관련하여 수많은 이단들이 나타나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칭하며 미혹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주의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은 재림과 종말의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종말을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악한 종입니다. 악한 종은 마음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종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인이 오는 날을 스스로 예측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어느 때인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는데, 악한 종은 이 말씀을 “아직 아니다, 아직 멀었다”고 스스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종은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 믿은 나머지,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셨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주인이 오시는 시점에만 잘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이 사람은 악한 종이었고, 훗날 주인에게 큰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주인이 언제 올지를 추측하거나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이 맡겨주신 일을 어떻게 잘 수행할 것인지에 집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의 첫 번째 자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때를 따라”라는 말씀의 원어는 ‘카이로스’입니다. 즉 일반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 또는 꼭 필요한 시점을 뜻하는 말입니다. 충성된 종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시간이나 날짜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인이 맡기신 사명에 관심을 갖고, 그 사명을 순간순간, 결정적인 시간 속에서 감당합니다. 한마디로 충성된 종은 하루하루를 카이로스적인 시간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하루하루가 가득찬 시간으로, 결정적인 사건의 순간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의 두 번째 자세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45절)고 질문하십니다. 양식을 나누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곧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사역의 방향성이며,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의 세 번째 자세입니다.

 

나누기

1. 나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2. 지금 나의 주변에 ‘양식이 필요한 사람들’, 곧 궁핍하고, 소망이 없고, 고난 중에 있는 이웃들에는 누가 있을까요? 그리고 나는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마무리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주님 앞에 서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늘 헌신하며,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사역을 끝까지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카이로스적인 시간을 만들어 내며 충성되게 살아가는 주님의 종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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