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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제사를 드리라

레위기 2: 1 ~ 9

김경진 목사

2021.11.21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제사를 받길 원하실까요?>

할렐루야,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다시 찬양의 소리가 들릴까 싶었는데 함께 모여 찬양 부를 수 있는 자리가 허락된 것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마나 예배당에 나오고 싶으셨습니까? 서로를 축복하면서, 특별히 찬양으로 섬겨 주신 시온찬양대를 격려하는 의미에서, 또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드리는 마음으로 함께 박수하면 어떻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추수감사주일, 우리가 함께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림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백신이 개발되어서 치명률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며 삼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림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2년여 동안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치료를 받으신 분들도 계시고, 코로나19로 희생되신 분들도 상당합니다. 사랑하는 젊은 자녀를 보내야 했던 분들도 성도님들 중에 계십니다. 사업을 접은 분들도 계시고, 여러 실패를 맛보야 했던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 감사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 소망을 주신 주님을 우리가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우리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하의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죽음을 이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소망을 주님께서 주셨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여전히 시간이 남아 있고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감사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레위기 2장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다섯 가지 제사 중 하나인 소제가 나옵니다. 소제는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섯 가지 제사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로서의 번제,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속함받는 제사로서의 속죄제와 속건 제사, 하나님과 세상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드리는 화목 제사에 이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제사로서 앞서 말씀드린 소제가 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구약의 제사가 필요한지 질문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우리는 구약 시대와 같은 제사를 드리지는 않습니다. 소제의 규율은 알고 있지만 그 규율대로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모든 제사가 이 땅에 성육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사역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었음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시어 올려 드린 제사를 통해 모든 제사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구약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을 해석할 때에 유비적인 해석으로 온전한 제물이 되시고 제사가 되시는 예수님과 관련하여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본문 말씀의 소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삶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해석의 틀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구약에 나오는 제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서 그 안에 담겨진 정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감사 제사를 명령하셨을 때 그 의도는 무엇이었을지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귀한 가르침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소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매일 번제와 함께 드려지기도 했습니다. 출애굽기 29장 41절, 30장 9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소제는 하나님께 단독으로 올려 드리는 제사이기도 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감사의 제사인 소제의 규례를 통하여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매년 새로운 곡식을 정성스럽게 바치게 하심으로써 소출의 은혜에 감사케 하셨습니다.>

우선 소제는 곡식으로 드려집니다. 나머지 제사들, 번제와 속죄, 속건죄, 화목 제사는 짐승을 바치는 제사이면서 피를 내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유독 소제만큼은 곡식으로 바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곡식은 매년 새롭게 나오는 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매해 추수 때에 거두어들이는 소산물이죠. 즉 올해 생산된 모든 곡식은 작년에는 없었습니다. 봄에는 모종으로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가을에 곡식단이 되어 마당에 가득 쌓인 추수물은 작년에는 없었던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곡식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먼저는 인간인 우리가 봄에 씨를 뿌립니다. 또는 모종을 심죠. 가을에 거두는 곡식들은 산이나 들에서 지나가다가 거둘 수 없는 종류입니다. 곡식은 누군가 반드시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둘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심은 사람이 있어야 하고 심은 사람이 거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을마다 거두는 곡식입니다.
물론 많이 심은 사람이 많이 거둘 것입니다. 많이 뿌린 사람이 많이 거두겠죠. 많은 면적에 심은 사람이 곡식도 더 많이 얻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타작마당에 놓인 곡식들은 전부 우리가 만든 것입니까? 나의 공로로 얻어진 것일까요?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린 이야기입니다. 똑같이 많이 심어도 거두는 양은 다릅니다. 똑같이 열심히 일하였어도 풍년이 될 수도, 흉년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태풍이 오거나 홍수가 오거나 비가 내리지 않거나 기온이 잘 맞지 않거나 또는 열매가 익기도 전에 서리가 내리게 되면 곡식은 익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환경 모두 추수의 과정에 도움을 주어야만 풍년을 맞이할 수 있고 좋은 소산물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작마당에 놓인 많은 곡식단은 자연환경과 내가 합력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연환경을 이끌고 계신다고 굳게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인 곡식단들은 하나님과 내가 함께 일하여 얻은 결과물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셨고 나는 열심히 씨를 뿌립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나는 열심히 가꿉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물이 바로 가을의 추수입니다. 이러한 추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하십니다. “그분이 훈풍을 불어주시지 않았더라면 이만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만큼 일했지만 나에게 더 많이 거두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일이 바로 감사의 제사인 소제입니다.
소제의 의미는 매년을 기준으로 산출할 수 있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젊은 시기에 우리는 열심히 무엇인가를 심습니다. 또 오늘도 심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젊은이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열심히 노력해서 돈도 법니다. 취직도 해서 사업도 일구죠. 중년의 시간에는 놀 틈에 밭을 매듯이 뛰어다니며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삽니다. 드디어 노년의 시간, 추수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멋진 것들을 세어 봅니다. 학위가 있을 수 있고 부유함, 명예, 건강이 있을 수도 있겠죠. 사랑이 있을 수 있고 화목이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요?
전쟁을 거치며 온 땅이 폐허가 되었을 때 하루 한끼를 걱정하며 시작했던 젊은 시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들, 손에 쥐어 있는 것들을 봅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동안 내가 씨를 뿌렸기 때문이지,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야. 참 잘 살았다! 멋지게 살았어! 축하의 박수를 보내자!” 아마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동시에 주위를 살펴봅니다. 똑같이 일했는데, 아니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한 사람도 있는데 도리어 얻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곡식으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나의 노력의 결과이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도움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모두를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감사는 시작됩니다. “내가 모든 것을 했습니다. 전부 내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고 감사할 자격도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감사의 제사인 소제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소제를 바칠 때 곡식단 그대로 가져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나 주에게 곡식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고운 밀가루를 제물로 바치는데, 거기에 기름을 붓고 향을 얹어서 바쳐야 한다. (레위기 2장 1절, 새번역)

하나님은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고운 밀가루를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곡식단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잘라서 껍질을 벗기고 부수어서 가져오라는 말씀입니다. 요리할 수 있는 단계로, 먹을 수 있는 단계로 만들어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을 써서 기름을 붓고 향을 넣어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감사의 제사는 드리는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냄비의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레위기 2장 4~7절)

밀가루에 기름을 넣고 반죽하여서 화덕이나 철판이나 냄비에 넣어서 굽거나 삶아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요리를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감사의 예물은 감사를 드리는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고, 정성이 닿아야 하고, 재능이 닿아야 합니다. 그렇게 드리는 제사가 바로 소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리를 못하셔서 빵을 구워 달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이 작으셔서 조각으로 나누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정성,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손길과 마음이 담기길 원하신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신 분이 있습니까? 지위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길을 찾아보십시오. 큰 부를 얻었습니까? 부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손을 넣어서, 마음을 담아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시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권한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를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길이 닿아야 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다해야 하고 여러분의 생각이 닿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소출을 부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리며, 이웃과 나누는 삶 또한 받길 원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께서는 소제를 드릴 때 남은 것은 아론과 제사장의 자손들에게 주고 그들로 하여금 먹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 성경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된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아론과 그의 자손들은 땅의 분깃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소산물을 받아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제사를 드리고 남은 것을 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직분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계실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모두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각자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인이 제사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아론과 자손들에게 남은 제물을 돌리라는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제사장인 성도 중에서 가난한 사람, 자신의 분깃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작은 시골 교회에서 일하는 목회자들, 생활의 고통을 느끼면서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제사인 소제를 드리고 남은 것은 분깃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이 곧 감사 제사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지난 목요일입니다. 한 분의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또 다른 시골 교회의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소망교회의 어느 권사님께서 시골 교회의 상황을 아시고는 큰 헌금을 보내 주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가지고 있었던 금을 팔아서 헌금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2,750만원에 달하는 거금이었다고 하죠.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감동이 되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전화를 했더랍니다. 그러면서 전화받는 목사님께 말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소망교회 목사님께 전달하면 싫어하시겠지요?” 그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망교회는 그런 분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런 일들이 자주 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께 이야기해도 절대로 놀라지 않으실 겁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어땠겠습니까?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면서 가진 금을 팔아 어려운 목회자를 도우신 것 같습니다. 참 잘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바로 그러한 성도님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 정신이 추수감사주일의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맥락에서 주님께서는 소제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11절입니다.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레위기 2장 11절)

첫 번째로 성경은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감사는 부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외형을 크게 하는 것, 큰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외식입니다.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누가복음 12장 1절 중)

바리새인들은 많이 가진 듯이 치장했지만 사실은 비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누룩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감사는 겉모양을 크게 하거나 멋지게 드러나게 하여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작으면서 큰 척하는 게 아닙니다. 감사는 진심으로, 정직하게 바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꿀도 넣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꿀은 이방 제사에서 흔히 사용하던 재료입니다. 맛을 내는 중요한 요소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꿀을 넣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꿀은 달콤합니다. 꿀을 넣은 음식은 인간에게 먹기 좋고 보기에도 좋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감사는 인간의 입맛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드리는 게 감사가 아닙니다. 나의 만족, 나의 기쁨을 위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 드는 제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흡족한 대로 달콤하게 드려지는 제사가 아니라, 나도 좋고 하나님도 좋은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좋으신 제사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제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룩과 꿀 대신 소금을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레위기 2장 13절)

소금은 썩지 않게 하는 기능, 변질되지 않게 하는 기능, 맛을 내는 기능이 있습니다. 소금도 맛을 내기는 하지만 꿀과는 다릅니다. 꿀이 들어가는 순간 밀가루의 맛은 모두 사라지지만 소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은 소금을 언약과 관련지으며 언약의 소금이라고도 말씀합니다.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감사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럴 때 감사는 부패하지 않고 변질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제사의 원리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멋진 작품, 멋진 요리를 한번 만들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나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무언가를 기획해 보시고 실행해 보십시다. 아주 기쁘면서도 특별한 추수감사절을 우리 모두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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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 1 ~ 9

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4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5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6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7

네가 냄비의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8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가서

9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제사를 받길 원하실까요?>

할렐루야,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다시 찬양의 소리가 들릴까 싶었는데 함께 모여 찬양 부를 수 있는 자리가 허락된 것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마나 예배당에 나오고 싶으셨습니까? 서로를 축복하면서, 특별히 찬양으로 섬겨 주신 시온찬양대를 격려하는 의미에서, 또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드리는 마음으로 함께 박수하면 어떻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추수감사주일, 우리가 함께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림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백신이 개발되어서 치명률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며 삼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림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2년여 동안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치료를 받으신 분들도 계시고, 코로나19로 희생되신 분들도 상당합니다. 사랑하는 젊은 자녀를 보내야 했던 분들도 성도님들 중에 계십니다. 사업을 접은 분들도 계시고, 여러 실패를 맛보야 했던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 감사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 소망을 주신 주님을 우리가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우리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하의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죽음을 이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소망을 주님께서 주셨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여전히 시간이 남아 있고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감사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레위기 2장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다섯 가지 제사 중 하나인 소제가 나옵니다. 소제는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섯 가지 제사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로서의 번제,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속함받는 제사로서의 속죄제와 속건 제사, 하나님과 세상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드리는 화목 제사에 이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제사로서 앞서 말씀드린 소제가 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구약의 제사가 필요한지 질문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우리는 구약 시대와 같은 제사를 드리지는 않습니다. 소제의 규율은 알고 있지만 그 규율대로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모든 제사가 이 땅에 성육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사역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었음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시어 올려 드린 제사를 통해 모든 제사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구약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을 해석할 때에 유비적인 해석으로 온전한 제물이 되시고 제사가 되시는 예수님과 관련하여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본문 말씀의 소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삶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해석의 틀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구약에 나오는 제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서 그 안에 담겨진 정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감사 제사를 명령하셨을 때 그 의도는 무엇이었을지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귀한 가르침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소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매일 번제와 함께 드려지기도 했습니다. 출애굽기 29장 41절, 30장 9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소제는 하나님께 단독으로 올려 드리는 제사이기도 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감사의 제사인 소제의 규례를 통하여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매년 새로운 곡식을 정성스럽게 바치게 하심으로써 소출의 은혜에 감사케 하셨습니다.>

우선 소제는 곡식으로 드려집니다. 나머지 제사들, 번제와 속죄, 속건죄, 화목 제사는 짐승을 바치는 제사이면서 피를 내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유독 소제만큼은 곡식으로 바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곡식은 매년 새롭게 나오는 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매해 추수 때에 거두어들이는 소산물이죠. 즉 올해 생산된 모든 곡식은 작년에는 없었습니다. 봄에는 모종으로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가을에 곡식단이 되어 마당에 가득 쌓인 추수물은 작년에는 없었던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곡식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먼저는 인간인 우리가 봄에 씨를 뿌립니다. 또는 모종을 심죠. 가을에 거두는 곡식들은 산이나 들에서 지나가다가 거둘 수 없는 종류입니다. 곡식은 누군가 반드시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둘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심은 사람이 있어야 하고 심은 사람이 거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을마다 거두는 곡식입니다.
물론 많이 심은 사람이 많이 거둘 것입니다. 많이 뿌린 사람이 많이 거두겠죠. 많은 면적에 심은 사람이 곡식도 더 많이 얻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타작마당에 놓인 곡식들은 전부 우리가 만든 것입니까? 나의 공로로 얻어진 것일까요?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린 이야기입니다. 똑같이 많이 심어도 거두는 양은 다릅니다. 똑같이 열심히 일하였어도 풍년이 될 수도, 흉년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태풍이 오거나 홍수가 오거나 비가 내리지 않거나 기온이 잘 맞지 않거나 또는 열매가 익기도 전에 서리가 내리게 되면 곡식은 익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환경 모두 추수의 과정에 도움을 주어야만 풍년을 맞이할 수 있고 좋은 소산물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작마당에 놓인 많은 곡식단은 자연환경과 내가 합력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연환경을 이끌고 계신다고 굳게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인 곡식단들은 하나님과 내가 함께 일하여 얻은 결과물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셨고 나는 열심히 씨를 뿌립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나는 열심히 가꿉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물이 바로 가을의 추수입니다. 이러한 추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하십니다. “그분이 훈풍을 불어주시지 않았더라면 이만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만큼 일했지만 나에게 더 많이 거두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일이 바로 감사의 제사인 소제입니다.
소제의 의미는 매년을 기준으로 산출할 수 있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젊은 시기에 우리는 열심히 무엇인가를 심습니다. 또 오늘도 심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젊은이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열심히 노력해서 돈도 법니다. 취직도 해서 사업도 일구죠. 중년의 시간에는 놀 틈에 밭을 매듯이 뛰어다니며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삽니다. 드디어 노년의 시간, 추수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멋진 것들을 세어 봅니다. 학위가 있을 수 있고 부유함, 명예, 건강이 있을 수도 있겠죠. 사랑이 있을 수 있고 화목이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요?
전쟁을 거치며 온 땅이 폐허가 되었을 때 하루 한끼를 걱정하며 시작했던 젊은 시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들, 손에 쥐어 있는 것들을 봅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동안 내가 씨를 뿌렸기 때문이지,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야. 참 잘 살았다! 멋지게 살았어! 축하의 박수를 보내자!” 아마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동시에 주위를 살펴봅니다. 똑같이 일했는데, 아니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한 사람도 있는데 도리어 얻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곡식으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나의 노력의 결과이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도움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모두를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감사는 시작됩니다. “내가 모든 것을 했습니다. 전부 내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고 감사할 자격도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감사의 제사인 소제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소제를 바칠 때 곡식단 그대로 가져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나 주에게 곡식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고운 밀가루를 제물로 바치는데, 거기에 기름을 붓고 향을 얹어서 바쳐야 한다. (레위기 2장 1절, 새번역)

하나님은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고운 밀가루를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곡식단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잘라서 껍질을 벗기고 부수어서 가져오라는 말씀입니다. 요리할 수 있는 단계로, 먹을 수 있는 단계로 만들어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을 써서 기름을 붓고 향을 넣어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감사의 제사는 드리는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냄비의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레위기 2장 4~7절)

밀가루에 기름을 넣고 반죽하여서 화덕이나 철판이나 냄비에 넣어서 굽거나 삶아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요리를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감사의 예물은 감사를 드리는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고, 정성이 닿아야 하고, 재능이 닿아야 합니다. 그렇게 드리는 제사가 바로 소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리를 못하셔서 빵을 구워 달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이 작으셔서 조각으로 나누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정성,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손길과 마음이 담기길 원하신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신 분이 있습니까? 지위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길을 찾아보십시오. 큰 부를 얻었습니까? 부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손을 넣어서, 마음을 담아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시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권한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를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길이 닿아야 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다해야 하고 여러분의 생각이 닿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소출을 부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리며, 이웃과 나누는 삶 또한 받길 원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께서는 소제를 드릴 때 남은 것은 아론과 제사장의 자손들에게 주고 그들로 하여금 먹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 성경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된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아론과 그의 자손들은 땅의 분깃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소산물을 받아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제사를 드리고 남은 것을 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직분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계실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모두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각자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인이 제사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아론과 자손들에게 남은 제물을 돌리라는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제사장인 성도 중에서 가난한 사람, 자신의 분깃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작은 시골 교회에서 일하는 목회자들, 생활의 고통을 느끼면서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제사인 소제를 드리고 남은 것은 분깃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이 곧 감사 제사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지난 목요일입니다. 한 분의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또 다른 시골 교회의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소망교회의 어느 권사님께서 시골 교회의 상황을 아시고는 큰 헌금을 보내 주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가지고 있었던 금을 팔아서 헌금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2,750만원에 달하는 거금이었다고 하죠.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감동이 되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전화를 했더랍니다. 그러면서 전화받는 목사님께 말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소망교회 목사님께 전달하면 싫어하시겠지요?” 그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망교회는 그런 분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런 일들이 자주 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께 이야기해도 절대로 놀라지 않으실 겁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어땠겠습니까?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면서 가진 금을 팔아 어려운 목회자를 도우신 것 같습니다. 참 잘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바로 그러한 성도님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 정신이 추수감사주일의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맥락에서 주님께서는 소제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11절입니다.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레위기 2장 11절)

첫 번째로 성경은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감사는 부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외형을 크게 하는 것, 큰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외식입니다.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누가복음 12장 1절 중)

바리새인들은 많이 가진 듯이 치장했지만 사실은 비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누룩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감사는 겉모양을 크게 하거나 멋지게 드러나게 하여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작으면서 큰 척하는 게 아닙니다. 감사는 진심으로, 정직하게 바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꿀도 넣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꿀은 이방 제사에서 흔히 사용하던 재료입니다. 맛을 내는 중요한 요소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꿀을 넣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꿀은 달콤합니다. 꿀을 넣은 음식은 인간에게 먹기 좋고 보기에도 좋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감사는 인간의 입맛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드리는 게 감사가 아닙니다. 나의 만족, 나의 기쁨을 위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 드는 제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흡족한 대로 달콤하게 드려지는 제사가 아니라, 나도 좋고 하나님도 좋은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좋으신 제사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제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룩과 꿀 대신 소금을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레위기 2장 13절)

소금은 썩지 않게 하는 기능, 변질되지 않게 하는 기능, 맛을 내는 기능이 있습니다. 소금도 맛을 내기는 하지만 꿀과는 다릅니다. 꿀이 들어가는 순간 밀가루의 맛은 모두 사라지지만 소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은 소금을 언약과 관련지으며 언약의 소금이라고도 말씀합니다.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감사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럴 때 감사는 부패하지 않고 변질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제사의 원리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멋진 작품, 멋진 요리를 한번 만들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나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무언가를 기획해 보시고 실행해 보십시다. 아주 기쁘면서도 특별한 추수감사절을 우리 모두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1년 11월 2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감사의 제사를 드리라” (레 2:1~9)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138, 588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레 2:1-9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1월 2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하나님께서 명하신 다섯 가지 제사 중 소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제사입니다예수님께서 단번에 드린 희생 제물이 되셨기에 구약의 제사가 오늘도 필요한가생각할 수 있지만그 안에 담긴 정신은 오늘날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소제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어떤 태도와 정신으로 드려야 하는지소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뜻은 무엇일지 돌아보며펜데믹 상황에 여전히 어려운 와중에 있는 분들이 많지만 역전케 하시며 다시 일으켜 세우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는 절기이기를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소제는 곡식으로 드려지는 제사입니다왜 곡식으로 드렸을까요올해 생산된 곡식은 작년에는 없었던 것입니다봄에 누군가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어 거두게 된 것입니다세상 이치와 법칙으로도 심지 않고 거둘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감사와 관련하여 소제를 곡식으로 드리도록 규례를 정하신 이유는 바로 심지 않은 사람은 감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곡식 단들은 내가 만든 것이고 나의 공로로 얻어진 것입니까한편으론 맞고 한편으론 틀린 말입니다자연의 환경이 도와주어야만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습니다결국 타작마당에 놓인 많은 곡식 단들은 자연의 환경과 내가 합력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모든 자연 환경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있음을 믿는다면 이는 곧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셔서 만든 결과물일 것입니다.

참 성실하게 살았고성공의 열매도 맛보았습니다그런데 돌아보면 다 내 노력의 결과물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때마다 도우시고훈풍을 불어주신 하나님이 없었다면 이만큼 거둘 수 없었음을 아는 것그것이 바로 은혜이며 감사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제를 어떻게 드리도록 하셨습니까곡식의 껍질을 벗기고 빻아 고운 밀가루로 드리게 하셨습니다.(레 2:1) 먹을 수 있는 상태로 가져오라는 것입니다기름과 향도 붓도록 하셨습니다이는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나에게 허락된 달란트를 통해 멋진 음식을 만들어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내게 주신 지위와 권한과 부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의 헌물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소제를 드릴 때 남은 것은 아론과 자손제사장에게 돌려 먹도록 명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주신 오늘날에 이 제사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함께 하는 성도들 중에 가난하며아직 분깃을 찾지 못한 이들또는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과 나누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제사인 소제를 드리고 남은 것을 함께 하는 자들과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이것이 감사제사의 정신입니다.

    마지막으로 소제를 드릴 때 함께 넣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누룩과 꿀입니다.(레 2:11) 누룩은 부풀어 오르는 성질이 있습니다감사는 절대 부풀리는 것이 되선 안 됩니다보이려고 하고 외식하는 모습이 되면 안 됩니다꿀은 인간에게 달콤함을 주죠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인간의 맛을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방식대로 드리는 제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소금을 넣으라 하셨습니다소금은 썩지 않게 하고 본연의 맛을 더 내도록 하는 기능을 합니다또 언약과도 관련이 있습니다이것은 언약의 지속성과 영구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추수 감사주일에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내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고민하면서 멋진 요리를 만들어 봅시다하나님께서 그 감사를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나누기

1. 올 한 해를 돌아볼 때 하나님께 어떤 감사를 올려 드리겠습니까?

2. 나에게 주신 것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감사의 요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그것이 무엇일지 고민해보고 이번 한 주 기쁨으로 실천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기도

    좋으신 하나님참 감사합니다돌아보면 참 많이 받았고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물론 힘들고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역전케 하시고 우리 미래를 책임져 주실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어떤 상황에도 감사를 먼저 올려 드립니다오늘 우리 마음이 감사로 넘치게 하시고참 기쁨과 평안 가득케 하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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