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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부활신앙

고린도전서 15:51~58

김경진 목사

2026.04.12

<‘죽으면 살리라라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 주님께서 반드시 부활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지난 부활주일에 우리는 ‘죽으면 살리라’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말씀을 함께 상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 이후에 있을 영원한 나라에 대한 보장이나 정의의 승리, 죄의 용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복음의 선포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진정 사는 길’에 대한 계시적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버둥거릴수록 더 깊이 빠지는 수렁 같은 세상입니다. 아등바등 힘겹게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은 도리어 피폐해집니다. 더 열심히 움직이지만 그물에 갇힌 것처럼 더 어려워지는 경우를 우리는 끊임없이 경험합니다. 수영을 배울 때 힘을 빼라고 합니다. 힘을 모두 빼 버리면 물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힘을 빼고 하늘을 바라봐야 살 수 있는 것처럼,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힘을 빼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말씀합니다.

‘죽으면 살리라’라는 말씀은 힘을 빼고 완전히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그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자신의 목숨을 던지셨습니다.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히고 주님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모든 목숨을 마치게 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서 사흘이 지났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시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여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부활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살리라’라는 선언은 나의 모든 문제와 고통,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어놓겠다는 선언입니다. 또한 주님께만 진정한 살길이 있다고 말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혜로 풀 수 없을 때, 우리는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 온전히 우리의 문제를 맡겨야 합니다. 그분의 손에 우리 목숨과 사업, 가정, 교회, 나라, 그리고 역사를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부활 신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활절은 우리에게 매우 뜻깊습니다.

 

<부활 신앙은 무책임한 내어놓음이 아니라 세상의 끄트머리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신앙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활 신앙이 열심을 다해 사는 것을 포기하라거나 그저 하늘만 바라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자칫 부활 신앙이 가져오는 오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이 될 것입니다. ‘죽으면 산다’라는 말을 ‘주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으로 이해하되, 그것을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거나 사업의 구상도 하지 않고 큰 이윤을 얻는다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부활 신앙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매우 황당한 예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일들이 우리 삶 속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죽으면 살리라’라는 부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도록 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는 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주님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끝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일, 자신을 내어 주시는 일, 십자가를 지시는 일, 그 사랑의 행위를 하나도 놓침 없이 감당해 내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살아 내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에서 마침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예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의 운명을 짊어지시며 자신의 사명을 다 감당하고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흘 만에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 내십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할 일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되,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한편으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을 자칫 세상의 삶을 하찮게 여기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악하고 모순투성이니, 이 세상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부활 이후의 삶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신앙과 연결되면 현실도피의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 중에 ‘이생망’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짧은 세 글자 속에 우리 청년들이 느끼는 깊은 절망과 무력감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탄식의 말입니다. 수렁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은 때로 청년들을 극단적인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마치 생명을 리셋하듯이 쉽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문화가 오늘날 만연해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 신앙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도록 부추기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부활 신앙은 도리어 그렇게 망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완벽한 망함이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망한 것, 완전히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자리에서 주님은 생명으로의 부활을 일으켜 내십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은 세상의 어려움을 겪을 때 포기하는 마음으로 다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끄트머리에서조차도 다시 부활할 것을 꿈꾸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입니다.

 

<부활을 목격한 초대교회 중에서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어떻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지난 부활주일 ‘죽으면 살리라’는 말씀에 이어서 오늘은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붙잡고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던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 그 문제를 하나씩 나열하며 들추어냅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바른길을 하나씩 제시합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의 흐름이자 전체적인 주제입니다. 우선 분열과 갈등이 만연했던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고전 1:11~12)

 

고린도 교회에는 심각한 분열과 파벌 싸움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서신을 보낼 때 이 파벌 싸움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파벌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자와 부자가 나뉘어 있었음을 바울은 또 지적합니다.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고전 11:21~22)

 

계파 간, 사회적 신분 간의 갈등이 있던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교회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서 서로 고발하는 일들이 고린도 교회에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고전 6:6~7)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은사를 받았다는 성숙한 성도들조차도 분열해 있었습니다. 병 고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 방언하는 은사,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 자기 은사를 자랑하면서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의 몸과 많은 지체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모두가 한 몸에 속해 있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지체로서 감당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을 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며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5~27)

 

이렇듯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모습으로 분열해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도덕적으로도 매우 타락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전 5:1)

 

계모, 즉 어머니뻘 되는 사람을 자신의 아내로 취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습니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고전 6:8)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고린도 교회 안에는 서로 불의와 거짓을 행하며 속이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또한 몸은 어차피 썩을 것이니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6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전 6:13b, 15)

 

<고린도 교회가 겪는 갈등의 중심에는 부활 신앙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하나씩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얽힌 엉망진창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초대교회입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사람들도 있었고, 강력한 성령의 강림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능력 있는 교회입니까? 그런데 그 교회의 모습이 이런 모양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또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교회 모습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미디어에 올라오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교회 안에 분열과 싸움이 일어나고 서로 자랑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자 고린도 교회가 지닌 현실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진단하며 바른길을 제시한 서신입니다. 1~4장은 바울파와 아볼로파로 분열된 모습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5~7장은 윤리적인 타락을 겪고 있는 모습이, 8~14장은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 예배 시의 무질서의 문제, 은사를 자랑하는 문제 등 교회 공동체가 겪고 있는 갈등들이 하나씩 거론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부분인 15장에서 바울은 마지막 문제를 거론합니다. 그것은 ‘부활’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먼저 기억하며 말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3~5, 8)

 

바울은 “우리는 부활을 본 사람들이다. 우리는 부활을 증언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책망합니다. 바울은 부활 신앙이 우리의 믿음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전 15:12)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14, 19)

 

바울은 부활과 관련된 긴 선명을 한 후에 마지막으로 부활의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 15:51~52)

 

그리고 바울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전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5, 57)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참으로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파벌을 나누어 싸우고, 세상 사람들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으며, 예배는 무질서하고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령의 은사가 풍성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의 가치관과 육신의 정욕이 뒤엉킨 아수라장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문제를 하나씩 다루다가 마지막 결론에서 부활의 주제를 꺼내 듭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향한 책망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 그저 하나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흐름을 곰곰이 살펴보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를 한 가지 주제로 마무리하며 교훈을 남기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서로 분열하고, 윤리적으로 타락해 있으며,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이 묻고 싶던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에게 부활 신앙이 정말 있느냐?”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절에서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고린도전서 전체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접속사입니다. 이 단어는 앞선 부활 논쟁의 결론 부분이기도 하고, 동시에 1장부터 14장까지의 모든 문제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결론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들의 결론을 말하기 위해 ‘그러므로’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너희에게 정말 부활 신앙이 있느냐? 그렇다면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자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믿음 안에서 이 땅에 맡은 일을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가 힘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은 나를 죽이고 연합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왜 바울과 아볼로파로 나뉘고 서로 은사를 자랑하며 싸웠습니까? 그들이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자기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을 내고, 내 주장을 관철하며, 내 파벌을 만들고 있던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너희는 죽었는가? 부활을 이야기하려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죽지 않은 자가 어떻게 부활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 죽지 않은 신앙이 어떻게 부활 신앙을 말할 수 있겠느냐?”

부활 신앙이 무엇입니까?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무슨 자존심과 파벌이 필요하겠습니까?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삽니다. 그것을 알고 실행하는 사람이 부활의 증인입니다. 자기 자존심을 내려놓고 화평을 구하는 수고가 세상을 바꿉니다. 세상에서 내가 죽지 않는 사람은 부활의 소망을 말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은 몸의 거룩함을 지켜 내기 위해 투쟁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중요성을 다시 이야기합니다. 몸은 어차피 썩을 것이니 마음대로 즐기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지금 쓰고 있는 몸이 부활의 날에 변화될 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 15:52)

 

우리의 몸은 껍데기가 아닙니다. 장차 영광스럽게 부활할 주님의 성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적인 삶은 하나님 앞에 성전으로서의 삶을 살아 내야 합니다.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는 자신의 몸을 정욕의 도구로 내던지지 않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힘씁니다. 음란을 멀리하고 중독에서 벗어나며 생명을 존중히 여깁니다. 이것이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는 부활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셨을 때 손의 못 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을 드러내며 육신의 자국이 남아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상상만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흔적이 부활하신 몸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여 주님을 만날 때, 우리의 육신에는 어떤 자국, 어떤 기록이 남아 있을까요? 그때 우리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너희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로,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은 소망을 가지고 일상의 자리를 지켜 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약속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b)

 

부활 신앙은 오늘의 현실을 긍정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수고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을 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수고를 기억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위로입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는 모든 수고를 기억해 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선함을 번져 가게 해야 합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b)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선행을 베풀고, 주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교회를 위해 희생하며 사회 속 필요로 하는 곳에서 눈물과 땀을 흘리며 일을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수고를 아십니다. 그리고 부활의 순간, 우리는 주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장로님이 평생 어떤 한 기관에 정성을 다해 후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단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힘과 생명을 얻으며 성공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장로님은 재물과 정성, 그리고 시간을 그곳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단체가 그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섬기던 단체가 사라지고 말았으니 얼마나 허무하실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장로님께 물었습니다. “장로님 어떤 마음이세요? 허망하시지 않습니까.”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그 단체를 위해서 한 일인가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일이니, 주님께서 아시면 됩니다.” 그 말씀이 저의 마음을 도리어 부끄럽게 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너희 ‘성공’이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닌 것이 참 은혜입니다. 성공이든 실패이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한 모든 수고들, 드러난 일이든 드러나지 않은 일이든 모든 수고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 말씀을 붙잡고 부활의 날을 기다리며 나의 가정, 나의 교회, 우리나라, 이 사회를 충성스럽게 섬길 때 우리는 진정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선함의 번짐”이라는 주제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 “선함의 번짐”은 부활 신앙 안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지저분한 현실을 뚫고 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사회와 교회를 바꾸며, 진정 죽고 진정 살아나는 주님의 부활의 증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을 통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고전 15:58)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surrection Faith That Changes the World

 

1 Corinthians 15:51-58

 

Last Resurrection Sunday, I preached a message titled “He who dies will live.”

 

Jesus’ resurrection is not only a guarantee of the eternal kingdom after our death, nor merely the victory of justice, or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that our sins are forgiven and we are reconciled with God. It is a revelatory event showing what the true way of living is for everyone in this world.

 

Many people want to live well, yet they fall into a mire. The world we live in is like a mire that makes us sink deeper the more we struggle. We struggle and strive, but our lives only become impoverished; like being caught in a net, situations become more tangled and more difficult.

 

When we learn to swim, we are told to relax. You think you’ll sink if you let go, but if you relax and look toward the sky, you can stay afloat. Just like this, resurrection faith teaches us to let go of our own strength.

 

The words “He who dies will live” means to relinquish all my strength and entrust everything to the Lord. Our Lord did exactly that. He gave up His life and yielded His body on the Cross. He let go of everything, and three days passed. After that, God raised Jesus, who had died. This is the history of the resurrection.

 

If we entrust everything to God, the Lord will raise us up again and revive our lives. This is resurrection faith. Therefore, the declaration “He who dies will live” is a proclamation that I will lay down all my problems, all my pains, and all my heavy burdens before the Lord, and that true life is found only in the Lord.

 

We live in an unpredictable age. News of war comes from many places. These are not small local conflicts; great powers are asserting themselves violently, expanding their territory. What path should Korea take, politically and diplomatically? What plans should our businesses make?

 

One essential truth that we must remember in such circumstances is that the Almighty God reigns over everything in this world—including history, politics, and economy. When our wisdom cannot solve things and there is no escape, we must go to the Lord and entrust our problems fully to Him. We must commit everything—our lives, businesses, families, churches, nation, and history—into His hands. This is the resurrection faith we must have.

 

But this resurrection faith does not mean giving up on reality or doing nothing while only looking to heaven.

 

We may easily misunderstand resurrection faith. If we think that resurrection faith is doing nothing and merely waiting for God’s grace without making any effort, that is a mistaken faith.

 

We must understand that “He who dies will live” means to entrust everything to the Lord. But if, for example, a student interprets it to mean “you can get good grades even without studying,” he has misunderstood the meaning of the resurrection. If a businessman reads “He who dies will live” as meaning he can gain great profits without planning or building factories, he will not succeed.

 

These may sound like absurd examples, but similar things can often happen.

 

The resurrection faith captured by the statement “He who dies will live” tells us to entrust everything to God, but we must firmly remember it does not mean doing nothing and only looking to heaven.

 

When Jesus bore the Cross, He fulfilled His mission to the very end. He completed the work of loving humanity, offering Himself for us to the end. The Bible says:

 

“Jesus knew that the hour had come for him to leave this world and go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John 13:1 NIV)

 

Jesus lived faithfully to the end. Then He entrusted everything to God. On the Cross, He finally said,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Luke 23:46 NIV) Jesus did not do nothing, did not avoid the Cross, and did not merely hand everything over to God. He lived a whole and faithful life, fulfilled His mission given to Him like a destiny, and died on the Cross. After that, God raised Him on the third day.

 

To have resurrection faith is to live our lives with this same heart.

 

Faith in resurrection may be misunderstood as looking down on life in this world. Some think, “This world is evil, harsh, full of contradictions, and hard to live in; so life here is worthless.” Such people just look to the next world. If such thoughts become linked with faith, that faith becomes an escape from reality.

 

These days, there’s a phrase popular among young people in Korea: “yi-saeng-mang,” which means “this life is ruined.” In those three short syllables is the deep despair and helplessness felt by our youth. No matter how hard they try, the world does not change, and the hopelessness of being unable to escape the quagmire can drive some to the extreme choice of suicide. A culture that considers death lightly, as if it is a way to reset one’s life, is widespread.

 

But resurrection faith is not a teaching that encourages people to give up their lives, shouting, “this life is ruined.” Rather, resurrection faith is the conviction and confession that God works even when it seems everything is ruined. The Cross, by the world’s standards, was utter ruin, yet God turned it into life again. This is the resurrection.

 

Then how, in more concrete terms, should we live in this world? If we live with resurrection faith, what does that look like? Following last Resurrection Sunday’s message “He who dies will live,” today we will hold to the words in 1 Corinthians to seek that answer.

 

As we know, the Corinthian church had many problems. Through 1 Corinthians, Paul addresses these many issues one by one and points the Corinthian church to the right way. This is the overall theme and flow of the epistle.

 

First, the Corinthian church was plagued by division and conflict:

 

“My brothers and sisters, some from Chloe’s household have informed me that there are quarrels among you. What I mean is this: One of you says, ‘I follow Paul’; another, ‘I follow Apollos’; another, ‘I follow Cephas’; still another, ‘I follow Christ.’” (1 Corinthians 1:11–12 NIV)

 

The Corinthian church was deeply divided and factionalized. These factions were not of the past but ongoing.

 

The church was split into Paul’s party, Apollos’s party, Cephas’s party, and Christ’s party. And it was not only factions.

 

Paul also points out that the poor and the rich were divided:

 

“for when you are eating, some of you go ahead with your own private suppers. As a result, one person remains hungry and another gets drunk. Don’t you have homes to eat and drink in? Or do you despise the church of God by humiliating those who have nothing? What shall I say to you? Shall I praise you? Certainly not in this matter!” (1 Cor 11:20–22)

 

Both factional conflict and social-status division were happening within the Corinthian church.

Not only that: they could not resolve internal disputes and were taking one another to secular courts, suing each other before unbelievers:

 

“But instead, one brother takes another to court—and this in front of unbelievers! The very fact that you have lawsuits among you means you have been completely defeated already. Why not rather be wronged? Why not rather be cheated?” (1 Corinthians 6:6–7 NIV)

 

Even members who had received spiritual gifts were divided.

 

Those with gifts of healing, prophecy, discerning spirits, tongues, and interpretation of tongues were boasting and displaying their gifts, causing great disorder in the church.

 

Paul uses the analogy of one body with many members to emphasize that all are one body and each person’s role builds up the Lord’s body, urging them to be united in love:

 

“so that there should be no division in the body, but that its parts should have equal concern for each other. If one part suffers, every part suffers with it; if one part is honored, every part rejoices with it. Now you are the body of Christ, and each one of you is a part of it.” (1 Corinthians 12:25–27 NIV)

 

Thus, the Corinthian church was split in many ways. And that was not all.

 

There were also morally corrupt members:

 

“It is actually reported that there is sexual immorality among you, and of a kind that even pagans do not tolerate: A man is sleeping with his father’s wife.” (1 Corinthians 5:1 NIV)

 

Apparently, someone had taken his stepmother as his wife. This was only the tip of the iceberg.

 

“Instead, you yourselves cheat and do wrong, and you do this to your brothers and sisters.” (1 Corinthians 6:8 NIV) As these words show, there were people in the Corinthian church practicing injustice, lying, and deceiving one another.

 

Also, a hedonistic spirit prevailed at the time, as people thought, “the body will rot away anyway, so enjoy life now.” So Paul says in chapter 6:

 

“The body, however, is not meant for sexual immorality but for the Lord, and the Lord for the body. […]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ies are members of Christ himself? Shall I then take the members of Christ and unite them with a prostitute? Never!” (1 Corinthians 6:13, 15 NIV)

 

We have reviewed the problems of 1 Corinthians in some detail. 1 Corinthians is an epistle in which the Apostle Paul lists the church’s problems one by one, diagnoses them, and points the Corinthian church to the right way.

 

First, chapters 1–4 deal with a church divided into factions such as the Paul-party and Apollos-party. Chapters 5–7 address the church’s ethical corruption. And chapters 8–14 treat the chaotic situations facing the community—eating food offered to idols, disorder in worship, boasting of spiritual gifts, and so on.

 

Then, in the final section of the letter, Paul deals with the issue of resurrection. First, he summons the fact of Christ’s resurrection:

 

“For what I received I passed on to you as of first importance: that Christ died for our sins according to the Scriptures, that he was buried, that he was raised on the third day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that he appeared to Cephas, and then to the Twelve. […] and last of all he appeared to me also, as to one abnormally born.” (1 Corinthians 15:3–5, 8 NIV)

 

Paul then rebukes those who say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explains in detail how central resurrection faith is to our belief:

 

“But if it is preached that Christ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how can some of you say that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1 Corinthians 15:12 NIV)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our preaching is useless and so is your faith. […] If only for this life we have hope in Christ, we are of all people most to be pitied.” (1 Corinthians 15:14, 19 NIV)

 

After a long discussion about resurrection, Paul speaks once more about the mystery of resurrection:

 

“Listen, I tell you a mystery: We will not all sleep, but we will all be changed— in a flash, in the twinkling of an eye, at the last trumpet. For the trumpet will sound, the dead will be raised imperishable, and we will be changed.” (1 Corinthians 15:51–52 NIV)

 

Then Paul makes one of the most powerful declarations we should remember:

 

“Where, O death, is your victory? Where, O death, is your sting? […] But thanks be to God! He gives us the victory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1 Corinthians 15:55, 57 NIV)

 

Now let us summarize what we’ve covered so far. As we have seen, the Corinthian church had many problems indeed. They split into factions and fought; they were morally corrupt beyond what even pagans might tolerate; worship was disorderly; those with gifts were proud. Outwardly the Spirit’s gifts seemed abundant, but inwardly it was a chaotic mess steeped in worldly values and fleshly desires.

 

But after dealing with each and one of these problems and the church’s corrupt reality, Paul talks about resurrection as his final conclusion at the end of the letter. Of course, when he starts talking about resurrection, he mentions that some deny it, which makes us wonder if he is pointing out yet another problem of the Corinthian church.

 

But looking at the flow closely, we find that Paul ties all the issues of the Corinthian church together under one theme, leaving a final lesson for the church: resurrection faith.

 

You can see this in the final verse of 1 Corinthians 15.

 

This verse begins with the conjunction “therefore.”

 

“Therefore,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1 Corinthians 15:58 NIV)

 

The “therefore” here is an extremely meaningful connector in the whole of 1 Corinthians. It is the bridge linking Paul’s whole resurrection argument in chapter 15 with the church problems of chapters 1–14. It is the word that reveals the conclusion.

 

“Do you truly believe in the resurrection? If so, then live like this!” This is what Paul is strongly demanding.

 

So what concrete “work of the Lord” should those with resurrection faith give themselves fully to? Reading 1 Corinthians through the lens of resurrection faith, we can summarize as follows.

 

First, to give oneself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is to kill the self and choose unity.

 

Why did the Corinthians fight? Why did they split into Paul and Apollos parties? Because while claiming to do the Lord’s work, they were actually serving themselves. Promoting one’s own name, insisting on one’s own opinion, and forming factions are never the work of the Lord.

 

What is resurrection faith? It is dying with the Lord on the Cross and rising with Him. What pride or faction can one have if he/she has died to himself/herself? The person who knows that when I die the church will live, when I die my home will live—that person is the witness to the resurrection. The labor of laying down your pride and seeking peace is the Lord’s work that changes the world.

 

Second, to give oneself fully to the Lord’s work is the struggle of life to preserve the holiness of the body.

 

In Corinth at the time, hedonism—“the body will rot away anyway, so let’s enjoy ourselves”—was widespread. Our age is no different. People seek hedonistic pleasures as they want, believing, “My body is my own,” and a “culture of death” pervades that thinks, “When life gets hard, I can end it as I choose.” The youths who cry “yi-saeng-mang (this life is ruined)!” and treat life lightly are rooted in a nihilism that fails to recognize the true value of the body.

 

But Paul proclaims:

 

“For the trumpet will sound, the dead will be raised imperishable, and we will be changed.” (1 Corinthians 15:52 NIV)

 

Our bodies are not mere shells. They are the Lord’s temple that will be resurrected gloriously. Therefore, those who give themselves fully to the Lord’s work do not cast their bodies as instruments of lust. They strive to live a holy life. Living a life that shuns sexual immorality, breaks free from addictions, and cherishes life—that is the powerful practice of the resurrection that turns a culture of death into a culture of life.

 

Third, to give oneself fully to the Lord’s work is to be faithful to the roles given us in our daily lives, with hope.

 

Satan constantly whispers to us, “Do you think the world will change because you try? It’s all in vain. Don’t try too hard.” This whisper shakes us. We fall into a mire and struggle, and eventually give up.

 

But today’s Scripture promises,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1 Corinthians 15:58b NIV)

 

Dear friends, this is the greatest consolation the resurrection gives us.

 

Since there is resurrection, nothing done in the Lord is ever lost. The prayers poured out in tears for your children, the losses endured to keep integrity at work, the small things done to ease a neighbor’s pain, the sacrifices we make when no one is looking…

 

Though the world may call them “failures” or “vain efforts,” our Risen Lord never forgets them.

 

Because the Lord who conquered death determines the final outcome, our labors will be resurrected as the fruits of God’s eternal kingdom. So do not be discouraged. Do not give up. Your workplace today, your kitchen, your daily lives—these are holy mission fields where you fulfill the Lord’s work. Giving yourself fully in these places is the resurrection faith that changes the world.

 

Dear friends, this year we are practicing the spread of goodness. How can we cause goodness to spread? We must have resurrection faith. Won’t we become witnesses of the resurrection when we hold on to the words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1 Corinthians 15:58b), await the day of resurrection, faithfully do the tasks given to us on this earth, and serve our family, church, nation, and society? Won’t goodness spread when we do this?

 

Dear friends, the resurrection is not a myth from two thousand years ago, nor a vague insurance to be confirmed only after death. The resurrection is God’s power penetrating our messy reality today.

 

Just as you relax to float in the water, let go of the power of your desires and your will, and entrust your life wholly to the Almighty God. When we do so, the Lord will lift us from the mire of death and lead us into the sea of life.

 

Through Paul the Lord speaks to us:

 

“Therefore,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1 Corinthians 15:58 NIV)

 

Giving thanks to God who gives us the victory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may we become those who change the world by the power of this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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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51~58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죽으면 살리라라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 주님께서 반드시 부활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지난 부활주일에 우리는 ‘죽으면 살리라’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말씀을 함께 상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 이후에 있을 영원한 나라에 대한 보장이나 정의의 승리, 죄의 용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복음의 선포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진정 사는 길’에 대한 계시적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버둥거릴수록 더 깊이 빠지는 수렁 같은 세상입니다. 아등바등 힘겹게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은 도리어 피폐해집니다. 더 열심히 움직이지만 그물에 갇힌 것처럼 더 어려워지는 경우를 우리는 끊임없이 경험합니다. 수영을 배울 때 힘을 빼라고 합니다. 힘을 모두 빼 버리면 물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힘을 빼고 하늘을 바라봐야 살 수 있는 것처럼,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힘을 빼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말씀합니다.

‘죽으면 살리라’라는 말씀은 힘을 빼고 완전히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그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자신의 목숨을 던지셨습니다.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히고 주님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모든 목숨을 마치게 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서 사흘이 지났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시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여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부활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살리라’라는 선언은 나의 모든 문제와 고통,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어놓겠다는 선언입니다. 또한 주님께만 진정한 살길이 있다고 말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혜로 풀 수 없을 때, 우리는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 온전히 우리의 문제를 맡겨야 합니다. 그분의 손에 우리 목숨과 사업, 가정, 교회, 나라, 그리고 역사를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부활 신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활절은 우리에게 매우 뜻깊습니다.

 

<부활 신앙은 무책임한 내어놓음이 아니라 세상의 끄트머리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신앙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활 신앙이 열심을 다해 사는 것을 포기하라거나 그저 하늘만 바라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자칫 부활 신앙이 가져오는 오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이 될 것입니다. ‘죽으면 산다’라는 말을 ‘주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으로 이해하되, 그것을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거나 사업의 구상도 하지 않고 큰 이윤을 얻는다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부활 신앙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매우 황당한 예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일들이 우리 삶 속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죽으면 살리라’라는 부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도록 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는 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주님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끝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일, 자신을 내어 주시는 일, 십자가를 지시는 일, 그 사랑의 행위를 하나도 놓침 없이 감당해 내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살아 내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에서 마침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예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의 운명을 짊어지시며 자신의 사명을 다 감당하고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흘 만에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 내십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할 일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되,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한편으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을 자칫 세상의 삶을 하찮게 여기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악하고 모순투성이니, 이 세상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부활 이후의 삶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신앙과 연결되면 현실도피의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 중에 ‘이생망’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짧은 세 글자 속에 우리 청년들이 느끼는 깊은 절망과 무력감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탄식의 말입니다. 수렁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은 때로 청년들을 극단적인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마치 생명을 리셋하듯이 쉽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문화가 오늘날 만연해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 신앙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도록 부추기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부활 신앙은 도리어 그렇게 망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완벽한 망함이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망한 것, 완전히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자리에서 주님은 생명으로의 부활을 일으켜 내십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은 세상의 어려움을 겪을 때 포기하는 마음으로 다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끄트머리에서조차도 다시 부활할 것을 꿈꾸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입니다.

 

<부활을 목격한 초대교회 중에서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어떻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지난 부활주일 ‘죽으면 살리라’는 말씀에 이어서 오늘은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붙잡고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던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 그 문제를 하나씩 나열하며 들추어냅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바른길을 하나씩 제시합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의 흐름이자 전체적인 주제입니다. 우선 분열과 갈등이 만연했던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고전 1:11~12)

 

고린도 교회에는 심각한 분열과 파벌 싸움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서신을 보낼 때 이 파벌 싸움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파벌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자와 부자가 나뉘어 있었음을 바울은 또 지적합니다.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고전 11:21~22)

 

계파 간, 사회적 신분 간의 갈등이 있던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교회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서 서로 고발하는 일들이 고린도 교회에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고전 6:6~7)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은사를 받았다는 성숙한 성도들조차도 분열해 있었습니다. 병 고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 방언하는 은사,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 자기 은사를 자랑하면서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의 몸과 많은 지체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모두가 한 몸에 속해 있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지체로서 감당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을 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며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5~27)

 

이렇듯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모습으로 분열해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도덕적으로도 매우 타락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전 5:1)

 

계모, 즉 어머니뻘 되는 사람을 자신의 아내로 취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습니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고전 6:8)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고린도 교회 안에는 서로 불의와 거짓을 행하며 속이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또한 몸은 어차피 썩을 것이니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6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전 6:13b, 15)

 

<고린도 교회가 겪는 갈등의 중심에는 부활 신앙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하나씩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얽힌 엉망진창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초대교회입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사람들도 있었고, 강력한 성령의 강림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능력 있는 교회입니까? 그런데 그 교회의 모습이 이런 모양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또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교회 모습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미디어에 올라오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교회 안에 분열과 싸움이 일어나고 서로 자랑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자 고린도 교회가 지닌 현실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진단하며 바른길을 제시한 서신입니다. 1~4장은 바울파와 아볼로파로 분열된 모습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5~7장은 윤리적인 타락을 겪고 있는 모습이, 8~14장은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 예배 시의 무질서의 문제, 은사를 자랑하는 문제 등 교회 공동체가 겪고 있는 갈등들이 하나씩 거론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부분인 15장에서 바울은 마지막 문제를 거론합니다. 그것은 ‘부활’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먼저 기억하며 말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3~5, 8)

 

바울은 “우리는 부활을 본 사람들이다. 우리는 부활을 증언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책망합니다. 바울은 부활 신앙이 우리의 믿음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전 15:12)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14, 19)

 

바울은 부활과 관련된 긴 선명을 한 후에 마지막으로 부활의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 15:51~52)

 

그리고 바울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전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5, 57)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참으로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파벌을 나누어 싸우고, 세상 사람들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으며, 예배는 무질서하고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령의 은사가 풍성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의 가치관과 육신의 정욕이 뒤엉킨 아수라장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문제를 하나씩 다루다가 마지막 결론에서 부활의 주제를 꺼내 듭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향한 책망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 그저 하나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흐름을 곰곰이 살펴보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를 한 가지 주제로 마무리하며 교훈을 남기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서로 분열하고, 윤리적으로 타락해 있으며,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이 묻고 싶던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에게 부활 신앙이 정말 있느냐?”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절에서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고린도전서 전체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접속사입니다. 이 단어는 앞선 부활 논쟁의 결론 부분이기도 하고, 동시에 1장부터 14장까지의 모든 문제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결론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들의 결론을 말하기 위해 ‘그러므로’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너희에게 정말 부활 신앙이 있느냐? 그렇다면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자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믿음 안에서 이 땅에 맡은 일을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가 힘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은 나를 죽이고 연합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왜 바울과 아볼로파로 나뉘고 서로 은사를 자랑하며 싸웠습니까? 그들이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자기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을 내고, 내 주장을 관철하며, 내 파벌을 만들고 있던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너희는 죽었는가? 부활을 이야기하려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죽지 않은 자가 어떻게 부활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 죽지 않은 신앙이 어떻게 부활 신앙을 말할 수 있겠느냐?”

부활 신앙이 무엇입니까?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무슨 자존심과 파벌이 필요하겠습니까?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삽니다. 그것을 알고 실행하는 사람이 부활의 증인입니다. 자기 자존심을 내려놓고 화평을 구하는 수고가 세상을 바꿉니다. 세상에서 내가 죽지 않는 사람은 부활의 소망을 말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은 몸의 거룩함을 지켜 내기 위해 투쟁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중요성을 다시 이야기합니다. 몸은 어차피 썩을 것이니 마음대로 즐기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지금 쓰고 있는 몸이 부활의 날에 변화될 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 15:52)

 

우리의 몸은 껍데기가 아닙니다. 장차 영광스럽게 부활할 주님의 성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적인 삶은 하나님 앞에 성전으로서의 삶을 살아 내야 합니다.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는 자신의 몸을 정욕의 도구로 내던지지 않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힘씁니다. 음란을 멀리하고 중독에서 벗어나며 생명을 존중히 여깁니다. 이것이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는 부활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셨을 때 손의 못 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을 드러내며 육신의 자국이 남아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상상만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흔적이 부활하신 몸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여 주님을 만날 때, 우리의 육신에는 어떤 자국, 어떤 기록이 남아 있을까요? 그때 우리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너희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로,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은 소망을 가지고 일상의 자리를 지켜 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약속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b)

 

부활 신앙은 오늘의 현실을 긍정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수고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을 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수고를 기억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위로입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는 모든 수고를 기억해 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선함을 번져 가게 해야 합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b)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선행을 베풀고, 주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교회를 위해 희생하며 사회 속 필요로 하는 곳에서 눈물과 땀을 흘리며 일을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수고를 아십니다. 그리고 부활의 순간, 우리는 주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장로님이 평생 어떤 한 기관에 정성을 다해 후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단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힘과 생명을 얻으며 성공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장로님은 재물과 정성, 그리고 시간을 그곳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단체가 그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섬기던 단체가 사라지고 말았으니 얼마나 허무하실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장로님께 물었습니다. “장로님 어떤 마음이세요? 허망하시지 않습니까.”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그 단체를 위해서 한 일인가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일이니, 주님께서 아시면 됩니다.” 그 말씀이 저의 마음을 도리어 부끄럽게 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너희 ‘성공’이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닌 것이 참 은혜입니다. 성공이든 실패이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한 모든 수고들, 드러난 일이든 드러나지 않은 일이든 모든 수고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 말씀을 붙잡고 부활의 날을 기다리며 나의 가정, 나의 교회, 우리나라, 이 사회를 충성스럽게 섬길 때 우리는 진정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선함의 번짐”이라는 주제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 “선함의 번짐”은 부활 신앙 안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지저분한 현실을 뚫고 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사회와 교회를 바꾸며, 진정 죽고 진정 살아나는 주님의 부활의 증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을 통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고전 15:58)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부활신앙” (고전15:51~58)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59, 162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내가 애쓰고 수고했지만 헛수고처럼 느껴졌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부활 신앙은 단순히 죽음 이후의 영생에 대한 소망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삶의 방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통해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봅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뉜 파벌 갈등,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의 차별, 도덕적 타락, 은사를 자랑하는 혼란까지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수많은 문제들을 다루다가 마지막 결론으로 부활의 주제를 꺼내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이 “그러므로”는 고린도전서 전체를 연결하는 결론의 단어입니다. “너희가 정말 부활을 믿느냐?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가 힘써야 할 주의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나를 죽이고 연합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파벌로 싸운 이유는 주의 일을 한다면서 실상은 자기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바로 부활의 증인입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화평을 구하는 수고가 바로 세상을 바꾸는 주의 일입니다. 둘째, 몸의 거룩함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장차 영광스럽게 부활할 주님의 성전입니다. 음란을 멀리하고, 중독에서 벗어나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삶이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는 강력한 부활의 실천입니다. 셋째, 소망을 가지고 일상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네가 이렇게 노력한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아?” 그러나 성경은 약속합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자녀를 위한 눈물의 기도, 정직을 지키기 위해 감수한 손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드린 헌신, 부활의 주님은 이 모든 것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의 일터와 가정과 일상이 바로 주의 일을 수행하는 거룩한 선교지입니다. 이 부활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이 힘써야 할 주의 일 세 가지 중 나에게 가장 도전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2.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 주의 일을 실천할 한 가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죽음과 절망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린도교회처럼 우리 삶에도 수많은 문제와 허물이 있지만,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결론이 되심을 믿습니다. 이제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음을 확신하며, 흔들리지 않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주의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우리를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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