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구독

ic_info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c_info

거짓말하지 말지니라

레위기 19: 11 ~ 12

김경진 목사

2020.06.14

< 인간은 하루에도 수백 번 거짓을 일삼습니다. >

얼마 전 한 지인이 경험한 일입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상대방이 잘못한 사건이었습니다. 상대방 운전자가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보험사에 연락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후 상대편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본인에게 책임을 묻더라는 것입니다. 이쪽 과실이니 책임을 지라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전해 왔습니다. 왜 이렇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알아보니, 자신의 차에 블랙박스가 없는 것을 알게 된 상대방 측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 파출소와 경찰서를 찾아다니면서 사고 주변 CCTV를 살펴보았습니다. 이후 경찰서에서 판정을 해 주었는데, 상대편이 완전히 잘못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 일을 겪고 많이 화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블랙박스가 없는 것을 알고는 거짓말할 용기가 생기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도대체 왜 인간은 거짓말을 할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할까요?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아니 나 자신만 살펴봐도, 거짓말은 인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보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라도, 예의상 “아름답습니다. 참 멋지십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선의의 거짓말로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사람이 살면서 다 볼 수 없고 다 알 수 없기에, 잘못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차원을 넘어 악의적으로, 또 계획적으로 사람을 속이거나 거짓말하는 경우는 다릅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거짓을 일삼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할까요?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쯤 거짓말을 하십니까? 한 번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분은 거짓말 하나를 더 추가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오래전에 진행되었는데, 재밌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범죄심리학 분야의 석학인 폴 에크만(Paul Ekman) 박사가 진행한 연구인데, 사람은 8분마다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약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연구는 거짓말의 범위를 넓혀 진행한 것입니다. 예의상으로 하는 거짓말이라든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라든지, 의례적인 인사와 같은 것들도 포함했을 때, 하루에 200번 정도 거짓말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제가 이 결과를 이야기하니까 어떤 분이 그것도 거짓말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하셨습니다.
범죄를 수사하는 한 검사가 쓴 책이 있습니다. 최근에 많은 사람에게 읽힌 책인데, 그 책에 보면 여러 범죄자를 수사한 경험담이 들어 있습니다. 워낙 다양하고 이상한 일들도 많아서 ‘아, 세상에 이런 인간도 있구나!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치 스포츠 게임을 하듯이 거짓말하고 속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에는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서로 만나지 않고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거짓말이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매체를 통해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 죄가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입니다. 보이스피싱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의 사기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속고 속이는 세상임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 인간은 스스로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그렇다면 거짓말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하나님도 거짓말하시는 분입니까?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민수기 23:19 중)

참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시지만, 인간은 거짓말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거짓말과 속임수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입니까? 성경을 살펴보면, 거짓말이 시작되는 시점이 있습니다. 바로 선악과나무 아래서 뱀과 사람이 함께 있을 때입니다. 그때 뱀이 처음으로 사람에게 거짓말을 쏟아냅니다.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거짓말, 곧 뱀의 속임수는 이것이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4~5)

이는 사탄의 거짓말이었습니다. 이 거짓말이 세상에 등장하고 난 후 사람들이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뒤 그들도 거짓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핑계를 대었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며, 하나님 앞에서도 거짓말했습니다. 거짓말이 인간에게 들어오고 난 뒤부터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거짓은 거짓을 만들고, 또 다른 거짓을 낳았습니다. 거짓말하는 인간, 이는 인간이 죄인이란 증거이자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의 거짓말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시편 5:4,6)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신다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들을 싫어하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과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의 이를 수 없습니다. 패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거짓말하는 인간의 마지막은 파멸이자 멸망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거짓말과 속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그 굴레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스스로 거짓말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레위기 19장 11~12절입니다.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11~12)

“여호와께서 이렇게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너희는 거짓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지. 거짓말하지 말자. 거짓말하면 안 되지. 거짓말하지 않도록 결심하자.’ 아마 이스라엘 백성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떻습니까? 숱하게 거짓말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그들의 역사는 실수와 실패, 부끄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험은 어떻습니까? 스스로 거짓말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지만, 또다시 속이고 거짓말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우리가 거짓말하지 말아야지. 우리 함께 결심해 보자. 이제부터 멋지게 살아보자.’라는 마음으로 본문을 묵상하며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본문을 묵상하다 보니, ‘우리 인간이 과연 스스로 결심해서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여러 차례 읽고 묵상하던 중, 하나님께서 제게 또 다른 생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 거짓된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뤄 가십니다. >

요즘 흥미롭게 읽어 내려가고 있는 새벽기도회 본문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도 야곱과 관련된 본문입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특히 속임수와 거짓말과 잘 연관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후에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되는 인물입니다.
저는 야곱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시조가 되는 야곱의 이야기에 속임수와 거짓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넣으셨을까? 성경에 왜 그토록 부끄러운 이야기를 담으셨을까?’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조상의 이야기라면 좀 더 화려하고 멋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왜 이렇게 초라하고 부끄러운 내용으로 야곱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대로 야곱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가로챈 인물입니다. 그리고 형 에서로 하여금 얼떨결에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게끔 속인 자가 야곱입니다. 이렇게 속이는 인생을 산 야곱은, 이후 자신이 속였던 것과 똑같이 속는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 있는 삼촌 라반에게 가는데, 그에게 보기 좋게 속고 맙니다.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을 일했지만, 결혼하던 날 밤 라반은 라헬이 아닌 그녀의 언니 레아를 야곱의 방에 들여보냈습니다. 라헬을 얻으려고 7년 동안 봉사한 것인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른 여인이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철저히 속았습니다. 라헬을 얻고 싶었던 야곱은 다시 7년을 일해야 했습니다. 속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야곱은 자신이 아버지를 속였던 것처럼 아들에게도 속임 당하게 됩니다.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긴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요셉이 죽은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완전히 속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간 자신이 속이고 거짓말하는 삶을 살아왔는데, 결과적으로 자신도 아들에게 속고 다른 사람에게 속는 불운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의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아넘기는 일을 주도한 자가 유다입니다. 이후 아버지에게 와서는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처럼 거짓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데 앞장선 인물입니다. 그런데 훗날 유다는 보기 좋게 자신의 며느리에게 속임 당합니다. 창녀인 척 유다에게 다가가 아이를 낳고 가문의 씨를 이어간 다말의 이야기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에게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갑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다가 다윗의 선조가 된다는 것이며, 마침내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부끄러운 이야기가 가득 넘치는데, 어떻게 그 가문에서 예수님이 나실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속고 속이는 인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인 대가로 야곱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밧단아람에서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를 만나 아내로 삼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낳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거짓의 형벌로 주어진 타향살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그 가운데서도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여 라헬 대신 레아를 먼저 아내로 준 사건도 비슷합니다. 이 속임 때문에 두 자매는 평생 경쟁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경쟁하듯이 아이를 낳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야곱에게 더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여종들까지 야곱의 침상으로 보내는 일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질투와 시기심 한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열두 아들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를 형성해 가십니다.
요즘 새벽기도회 시간에 읽어 내려가고 있는 유다의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며느리 다말에게 속아 아들을 얻게 되는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바로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부끄러운 일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문이 이어지고, 그 가문에서 다윗 왕이 탄생하며,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뜻 보면, 이 두 이야기가 전해 주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속인 자는 반드시 속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야기에서 이 원리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셨습니다. 둘째, 인간의 거짓과 속임과 죄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구속 사역을 도도하게 이루어 가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덕분입니다. >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전개하는 것이라면, 조금 더 특별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사용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인물의 이야기에 왜 이런 속임과 거짓, 부끄러운 사건이 들어가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저 ‘뿌린 대로 거둔다’ 정도의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빌려 교훈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사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든지,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든지,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뿌린 대로 거둔다는 교훈을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굳이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도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유다의 이야기를 통해 그 교훈을 가르치시며, 그 과정에서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의 뿌리인 다윗, 또 그 조상인 유다. 사실 거기에는 온갖 거짓과 속임수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자 합니다.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그 역사를 직시하도록 인도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참 진리이시고 생명이시며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오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분이 태어나시는 가문이 어떤 가문입니까? 위대한 가문이 아닙니다. 도리어 실패와 수치로 가득 찬 가문입니다. 부끄러움과 거짓으로 가득 찬 가문이자 속임과 술수로 가득 찬 가문입니다. 바로 그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잉태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선택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거룩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순수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선택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조금 더 나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인간과 똑같이 거짓말하고, 똑같이 속이고, 똑같이 불륜하고, 똑같이 문제를 일으키는 종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 피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 가장 순수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고, 이것이 복음입니다.

< 참말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 거짓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거짓말로부터 해방될 길이 없습니다. 속임과 거짓은 사탄의 노예가 된 우리 인간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거짓으로 점철된 인간의 가문 안으로 들어오셔서 거짓말이 아닌 참말을 하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마태복음 4장 17절에서 첫 번째 일성으로 던진 참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17 중)

이 말씀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처음으로 하신 진리의 말씀이자 참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2:49~50)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그대로 전하시는 아들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또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속임과 거짓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까? 사탄이 아담에게 거짓말을 심어준 후 모든 인간은 거짓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짓을 나누고, 거짓을 선포하고, 거짓을 전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주님께서 오셔서 처음으로 참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말씀을 우리 안에 심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거짓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 참 말씀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운동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거짓과 속임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거짓말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은 온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참말로 우리의 영혼을 채울 때, 참말로 우리의 영혼이 채워져 가고 있을 때, 거짓의 말은 점점 자리를 잃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거짓을 버리고 참말을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분명히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세상은 온갖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의 죄성의 결과이며, 이러한 죄성이 나날이 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 죄성이 우리를 얽매고 있습니다. 시간이 간다고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강력해질 뿐입니다. 더 피폐해질 뿐입니다.
우리 영혼과 마음 가운데 참 말씀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모셔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참말로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래전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거짓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로새서 3:9~10)

이제 우리는 새롭습니다. 지식으로 새롭습니다. 참말로 새롭습니다. 참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거짓말을 삼가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주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며 다시 결단합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우리의 영혼에 주님의 말씀, 참 말씀을 새겨 넣는 것입니다. 그 일을 끊임없이 이어 가다 보면, 우리 안에 있는 죄악과 거짓이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Do Not Lie

Leviticus 19: 11-12

I.

Recently one of our pastors had a car accident. It was the other driver’s fault, but knowing that our pastor did not have a black box camera, the other driver lied to the insurance company that it was the pastor’s fault and claimed damages. Later, through a CCTV nearby, our pastor was able to prove to the police that it was not his wrongdoing at all. The other driver then apologized and offered compensation.

How strange it is! Why do we humans lie? Lying is a deeply rooted, ugly habit of humans. Polite lies, such as saying someone is pretty when in fact she isn’t, is understandable to some degree. But there are so many evil, malicious lies.

How often do we lie? According to a study conducted by Paul Ekman, a renown criminal psychologist, people lie once every 8 minutes and at least 200 times a day. These lies include those said for self-protection, politeness, and the maintenance of relationships. Isn’t it surprising?

Some common lies include saying you were late because of a traffic jam when in fact you were not andtelling customers that the promotion is only for today. These lies are not so bad. Nevertheless, we must note that human beings are relentless liars.

I once read a book written by a retired prosecutor who wrote on his experiences with frauds and criminals. Some of the incidents he mentioned were simply astounding. I was appalled at how these criminals lied and tricked other people without end, as if it were just a game.

It is regrettable that man’s sinful habit of lying seems to be getting worse with the spread of social media. Indeed,sin is pervasive in our society today.

II.

Where do lies come from? Does the fact that we were created in God’s image mean that God lies too? The Bible clearly rejects this notion:“God is not human, that he should lie,not a human being, that he should change his mind.” (Numbers 23:19)We learn two remarkably simple, but precious truths from this verse: man lies, and God doesn’t.

Then where do lies and deceits come from? We know that the first lie came from the serpent in the Garden of Eden. After Adam and Eve ate the frui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ey started to lie too,as they blamed each other for their sin. Therefore, man’s tendency to lie and deceivecomes from his fallen state. After the serpent’s lie, Adam and Eve lied, too. This was how lies started.

“‘You will not certainly die,’ the serpent said to the woman. ‘For God knows that when you eat from it your eyes will be opene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Genesis 3:4-5)

When the lie entered man, everything was altered. The lie led to liesand more lies. Lying man is proof of his fallenness, evidence that he is slave to sin. The fact that we lie is evidence that we are fallen, too, like Adam and Eve who took from the tree of knowledge.

III.

With regard to man’s lies, God clearly says in the Bible: “For you are not a God who is pleased with wickedness;with you, evil people are not welcome.You destroy those who tell lies.The bloodthirsty and deceitfulyou, Lord, detest.” (Psalms 5:4, 6)God is not pleased with liars or sinners, and He will destroy them.

God cannot live with lies. Liars cannot reach salvation. They will be destroyed. The endpoint of liars is death and destruction. Yet, still trapped in the fetters of man, we continue to lie.

IV.

Then how can we break away from these fetters?

First, we can start by not lying. When I first started to write this sermon, I thought that this was the answer. In this sense, the title “Do Not Lie” prompts us to make an ethical resolve.

But after meditating on today’s passage more deeply, God put these thoughts in me: ‘Can you really stop lying altogether from now on? Are you confident that you will always be able to tell truth? Is this possible with your own strength? Can you really do it?’

I may succeed for a little while, but,surely, I would find myself trapped again in man’s sinfulness. Then how can we be unfettered?

V.

It is fascinating that Jacob’s story in Genesis is full of lies and deceit. Jacob, later called Israel by God, marks the very beginning of the Israelite people. Abraham was the one who received God’s covenant, and Isaac the one who passed down the blessing, but it was Jacob who fathered the twelve tribes of Israel.

So I always wondered why God included so many embarrassing incidents, lies, and deceits in Jacob’s story. After all, Jacob is the great and holy father of the Israelites. Yet, the Bible makes it no secret that Jacob was a liar. He lied his way into being blessed by his father and tricked Esau into selling his firstborn rights with a bowl of lentil soup.

But Jacob himself was tricked in worse ways by his uncle Laban. He found not Rachel but Leah in his tent on his wedding night and had to work an extra 7 years for Rachel. Later, he was deceived by his own sons, just as he had lied to his father. His sons let him think that Joseph, his favorite son, was killed by a beast. Indeed, we reap what we sow.

The story of Judah, one of Jacob’s sons, is also similar. Judah, who lies to his father about Joseph’s death, is tricked by his own daughter-in-law. Tamar gets Judah to sleep with her by posing as a prostitute in order to carry on the family line. The astounding part is that this line leads to David and Jesus.

God achieves His will by using even man’s sins and lies according to His good purpose. Jacob had to flee to Paddan Aram because he tricked his father and brother. But it was there that he met Leah, Rachel, Zilpah, and Bilhah. God used Jacob’s lies and escape to do His work.

On the surface, Jacob’s story teaches us two lessons. First, we reap what we sow. Deceiverswill be deceived. Second, despite man’s lies, deceits, and fallenness, God does His will.

VI.

But isn’t it strange? If these are to be the themes of Jacob’s story, wouldn’t it be possible, and better, to integrate them intosomeone else’s story? Why does God have to place these themes in the story of the very person who became the great father of the Israelites? Why couldn’t God have conveyed the themes of lies and deceits through someone else, someone less important than Jacob?

Ultimately, what is God’s message through Jacob’s and Judah’s story? Ultimately, the message is the gospel. God hides the gospel in their stories. And, today, God wants us to know this precious fact.

God wants to be absolutely clear that Jesus’s lineage that comes from David and Judah is full of lies, deceit, and sin. This is what the Bible wishes to convey to us. The Bible does not embellish or lie about this truth. It leads us to see it clearly.

Who is Jesus? He is the Truth, the Life, God’s Son without sin. The Bible is telling us that this Jesus came from a lineage full of errors, sins, lies, tricks, and deceit.

And that lineage oflying and deceiving Jacob now receives Jesus, God’s holy Son impervious to man’s dirty lies. The Son, who is the Truth, will renew Israel by injecting the Israelites with the truth.

This is the gospel. This is grace. Although sin was born from the serpent and Adam, salvation starts with Jesus Christ.

VII.

We can never free ourselves from lies with our own strength. Man, after becoming enslaved to Satan, was destined to lie and to deceive. But the One, Jesus Christ, entered the lineage dirtied by lies and deceit. The Lord speaks to us:

“For I did not speak on my own, but the Father who sent me commanded me to say all that I have spoken.I know that his command leads to eternal life. So whatever I say is just what the Father has told me to say.” (John 12: 49-50)

The Lord also says, “Very truly I tell you,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judged but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John 5: 24)

Jesus sai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John 14:6)

To those who rejected His words, Jesus said, “Why is my language not clear to you? Because you are unable to hear what I say.You belong to your father, the devil, and you want to carry out your father’s desires. He was a murderer from the beginning, not holding to the truth, for there is no truth in him. When he lies, he speaks his native language, for he is a liar and the father of lies.” (John 8: 43-44)

The Lord also says, “There is a judge for the one who rejects me and does not accept my words; the very words I have spoken will condemn them at the last day.” (John 12:48)

Dear Church, how can we escape lies and deceit? Just as lies lived on in man after the first lie was sown by Satan, our Lord came and planted the word of truth in us. By receiving that word, we can free ourselves from lies. Accepting Jesus’ words, the truth, is the answer. This is the only way to escape lies. Resolving not to lie cannot be a complete solution. Filling our souls with the truth is the solution, the gospel.

What does it mean to reject lies and tell the truth? The Bible says, “Who is the liar? It is whoever denies that Jesus is the Christ. Such a person is the antichrist—denying the Father and the Son.” (1 John 2:22)

Dear brothers and sisters, our world today is full of lies and deceit. This owes to man’s sinfulness which is only getting worse by the day. How can we escape this painful trap? By receiving the promise of Jesus Christ, the Truth, who came to this world and proclaimed the word of God, the truth.

Filling our souls with the truth is the solution. This is the very way to salvation, the way to accomplish the word of today’s scripture that was prophesied long ago in the Old Testament to the Israelites.

God continues to speak to us today: “Do not lie to each other, since you have taken off your old self with its practices and have put on the new self, which is being renewed in knowledge in the image of its Creator.”(Colossians 3:9-10)

btn_switch

레위기 19: 11 ~ 12

11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12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 인간은 하루에도 수백 번 거짓을 일삼습니다. >

얼마 전 한 지인이 경험한 일입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상대방이 잘못한 사건이었습니다. 상대방 운전자가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보험사에 연락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후 상대편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본인에게 책임을 묻더라는 것입니다. 이쪽 과실이니 책임을 지라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전해 왔습니다. 왜 이렇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알아보니, 자신의 차에 블랙박스가 없는 것을 알게 된 상대방 측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 파출소와 경찰서를 찾아다니면서 사고 주변 CCTV를 살펴보았습니다. 이후 경찰서에서 판정을 해 주었는데, 상대편이 완전히 잘못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 일을 겪고 많이 화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블랙박스가 없는 것을 알고는 거짓말할 용기가 생기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도대체 왜 인간은 거짓말을 할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할까요?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아니 나 자신만 살펴봐도, 거짓말은 인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보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라도, 예의상 “아름답습니다. 참 멋지십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선의의 거짓말로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사람이 살면서 다 볼 수 없고 다 알 수 없기에, 잘못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차원을 넘어 악의적으로, 또 계획적으로 사람을 속이거나 거짓말하는 경우는 다릅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거짓을 일삼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할까요?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쯤 거짓말을 하십니까? 한 번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분은 거짓말 하나를 더 추가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오래전에 진행되었는데, 재밌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범죄심리학 분야의 석학인 폴 에크만(Paul Ekman) 박사가 진행한 연구인데, 사람은 8분마다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약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연구는 거짓말의 범위를 넓혀 진행한 것입니다. 예의상으로 하는 거짓말이라든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라든지, 의례적인 인사와 같은 것들도 포함했을 때, 하루에 200번 정도 거짓말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제가 이 결과를 이야기하니까 어떤 분이 그것도 거짓말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하셨습니다.
범죄를 수사하는 한 검사가 쓴 책이 있습니다. 최근에 많은 사람에게 읽힌 책인데, 그 책에 보면 여러 범죄자를 수사한 경험담이 들어 있습니다. 워낙 다양하고 이상한 일들도 많아서 ‘아, 세상에 이런 인간도 있구나!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치 스포츠 게임을 하듯이 거짓말하고 속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에는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서로 만나지 않고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거짓말이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매체를 통해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 죄가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입니다. 보이스피싱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의 사기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속고 속이는 세상임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 인간은 스스로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그렇다면 거짓말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하나님도 거짓말하시는 분입니까?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민수기 23:19 중)

참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시지만, 인간은 거짓말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거짓말과 속임수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입니까? 성경을 살펴보면, 거짓말이 시작되는 시점이 있습니다. 바로 선악과나무 아래서 뱀과 사람이 함께 있을 때입니다. 그때 뱀이 처음으로 사람에게 거짓말을 쏟아냅니다.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거짓말, 곧 뱀의 속임수는 이것이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4~5)

이는 사탄의 거짓말이었습니다. 이 거짓말이 세상에 등장하고 난 후 사람들이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뒤 그들도 거짓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핑계를 대었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며, 하나님 앞에서도 거짓말했습니다. 거짓말이 인간에게 들어오고 난 뒤부터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거짓은 거짓을 만들고, 또 다른 거짓을 낳았습니다. 거짓말하는 인간, 이는 인간이 죄인이란 증거이자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의 거짓말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시편 5:4,6)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신다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들을 싫어하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과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의 이를 수 없습니다. 패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거짓말하는 인간의 마지막은 파멸이자 멸망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거짓말과 속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그 굴레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스스로 거짓말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레위기 19장 11~12절입니다.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11~12)

“여호와께서 이렇게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너희는 거짓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지. 거짓말하지 말자. 거짓말하면 안 되지. 거짓말하지 않도록 결심하자.’ 아마 이스라엘 백성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떻습니까? 숱하게 거짓말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그들의 역사는 실수와 실패, 부끄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험은 어떻습니까? 스스로 거짓말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지만, 또다시 속이고 거짓말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우리가 거짓말하지 말아야지. 우리 함께 결심해 보자. 이제부터 멋지게 살아보자.’라는 마음으로 본문을 묵상하며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본문을 묵상하다 보니, ‘우리 인간이 과연 스스로 결심해서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여러 차례 읽고 묵상하던 중, 하나님께서 제게 또 다른 생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 거짓된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뤄 가십니다. >

요즘 흥미롭게 읽어 내려가고 있는 새벽기도회 본문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도 야곱과 관련된 본문입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특히 속임수와 거짓말과 잘 연관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후에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되는 인물입니다.
저는 야곱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시조가 되는 야곱의 이야기에 속임수와 거짓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넣으셨을까? 성경에 왜 그토록 부끄러운 이야기를 담으셨을까?’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조상의 이야기라면 좀 더 화려하고 멋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왜 이렇게 초라하고 부끄러운 내용으로 야곱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대로 야곱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가로챈 인물입니다. 그리고 형 에서로 하여금 얼떨결에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게끔 속인 자가 야곱입니다. 이렇게 속이는 인생을 산 야곱은, 이후 자신이 속였던 것과 똑같이 속는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 있는 삼촌 라반에게 가는데, 그에게 보기 좋게 속고 맙니다.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을 일했지만, 결혼하던 날 밤 라반은 라헬이 아닌 그녀의 언니 레아를 야곱의 방에 들여보냈습니다. 라헬을 얻으려고 7년 동안 봉사한 것인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른 여인이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철저히 속았습니다. 라헬을 얻고 싶었던 야곱은 다시 7년을 일해야 했습니다. 속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야곱은 자신이 아버지를 속였던 것처럼 아들에게도 속임 당하게 됩니다.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긴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요셉이 죽은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완전히 속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간 자신이 속이고 거짓말하는 삶을 살아왔는데, 결과적으로 자신도 아들에게 속고 다른 사람에게 속는 불운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의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아넘기는 일을 주도한 자가 유다입니다. 이후 아버지에게 와서는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처럼 거짓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데 앞장선 인물입니다. 그런데 훗날 유다는 보기 좋게 자신의 며느리에게 속임 당합니다. 창녀인 척 유다에게 다가가 아이를 낳고 가문의 씨를 이어간 다말의 이야기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에게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갑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다가 다윗의 선조가 된다는 것이며, 마침내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부끄러운 이야기가 가득 넘치는데, 어떻게 그 가문에서 예수님이 나실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속고 속이는 인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인 대가로 야곱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밧단아람에서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를 만나 아내로 삼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낳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거짓의 형벌로 주어진 타향살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그 가운데서도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여 라헬 대신 레아를 먼저 아내로 준 사건도 비슷합니다. 이 속임 때문에 두 자매는 평생 경쟁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경쟁하듯이 아이를 낳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야곱에게 더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여종들까지 야곱의 침상으로 보내는 일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질투와 시기심 한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열두 아들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를 형성해 가십니다.
요즘 새벽기도회 시간에 읽어 내려가고 있는 유다의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며느리 다말에게 속아 아들을 얻게 되는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바로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부끄러운 일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문이 이어지고, 그 가문에서 다윗 왕이 탄생하며,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뜻 보면, 이 두 이야기가 전해 주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속인 자는 반드시 속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야기에서 이 원리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셨습니다. 둘째, 인간의 거짓과 속임과 죄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구속 사역을 도도하게 이루어 가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덕분입니다. >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전개하는 것이라면, 조금 더 특별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사용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인물의 이야기에 왜 이런 속임과 거짓, 부끄러운 사건이 들어가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저 ‘뿌린 대로 거둔다’ 정도의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빌려 교훈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사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든지,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든지,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뿌린 대로 거둔다는 교훈을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굳이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도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유다의 이야기를 통해 그 교훈을 가르치시며, 그 과정에서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의 뿌리인 다윗, 또 그 조상인 유다. 사실 거기에는 온갖 거짓과 속임수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자 합니다.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그 역사를 직시하도록 인도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참 진리이시고 생명이시며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오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분이 태어나시는 가문이 어떤 가문입니까? 위대한 가문이 아닙니다. 도리어 실패와 수치로 가득 찬 가문입니다. 부끄러움과 거짓으로 가득 찬 가문이자 속임과 술수로 가득 찬 가문입니다. 바로 그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잉태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선택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거룩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순수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선택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조금 더 나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인간과 똑같이 거짓말하고, 똑같이 속이고, 똑같이 불륜하고, 똑같이 문제를 일으키는 종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 피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 가장 순수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고, 이것이 복음입니다.

< 참말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 거짓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거짓말로부터 해방될 길이 없습니다. 속임과 거짓은 사탄의 노예가 된 우리 인간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거짓으로 점철된 인간의 가문 안으로 들어오셔서 거짓말이 아닌 참말을 하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마태복음 4장 17절에서 첫 번째 일성으로 던진 참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17 중)

이 말씀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처음으로 하신 진리의 말씀이자 참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2:49~50)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그대로 전하시는 아들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또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속임과 거짓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까? 사탄이 아담에게 거짓말을 심어준 후 모든 인간은 거짓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짓을 나누고, 거짓을 선포하고, 거짓을 전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주님께서 오셔서 처음으로 참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말씀을 우리 안에 심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거짓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 참 말씀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운동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거짓과 속임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거짓말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은 온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참말로 우리의 영혼을 채울 때, 참말로 우리의 영혼이 채워져 가고 있을 때, 거짓의 말은 점점 자리를 잃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거짓을 버리고 참말을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분명히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세상은 온갖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의 죄성의 결과이며, 이러한 죄성이 나날이 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 죄성이 우리를 얽매고 있습니다. 시간이 간다고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강력해질 뿐입니다. 더 피폐해질 뿐입니다.
우리 영혼과 마음 가운데 참 말씀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모셔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참말로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래전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거짓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로새서 3:9~10)

이제 우리는 새롭습니다. 지식으로 새롭습니다. 참말로 새롭습니다. 참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거짓말을 삼가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주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며 다시 결단합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우리의 영혼에 주님의 말씀, 참 말씀을 새겨 넣는 것입니다. 그 일을 끊임없이 이어 가다 보면, 우리 안에 있는 죄악과 거짓이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2020년 6월 14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거짓말하지 말지니라” (레 19:11-12)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86장, 283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레 19:11-12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6월 14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범죄심리학 분야의 석학인 폴 에크만(Paul Ekman) 박사는 사람은 8분마다 한 번씩 거짓말을 하고, 하루에 최소 200번 정도는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폴 에크만 박사가 연구에 포함시킨 거짓말의 유형에는 ‘의례적인 인사, 인간관계를 위한 거짓말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 등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의 이러한 거짓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설교의 요약

   첫 번째 거짓말은 첫 인간 아담과 하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먹고서도 다른 이에게 핑계를 대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은 이 거짓과 속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야곱의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들, 속이고 속는 이러한 인간들의 죄악을 선용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인 결과,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피하여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갔기 때문에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를 만나게 됩니다. 거짓의 형벌로 주어진 타향살이였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그것을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요즈음 새벽기도회 시간에 읽어가고 있는 유다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다말에게 속아서 며느리로부터 아들을 얻게 되는 수치스러운 일을 경험하게 되는 유다입니다. 그런데, 이 부끄러운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가문이 이어지고, 그 가문에서 다윗 왕이 탄생하고, 후에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야곱의 이야기, 유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는 그 가지 다윗, 그리고 그의 조상 유다… 그런데 이들이 온통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보다 분명하게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직시하여 보도록 인도합니다. 

   그 거짓과 속임이 가득한 야곱의 가문은 이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들 안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 아들의 거룩은 인간의 속임이나 거짓에 오염되지 않습니다. 진리이시고, 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을 다시 새롭게 하고, 이제 그 속에 참말을, 진리를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고, 이것이 복음입니다. 죄가 뱀으로부터, 아담으로부터 왔으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속임과 거짓말로부터 벗어 날 수 있습니까? 사탄이 아담에게 거짓말을 심어 준 이후, 인간이 거짓 속에서 살아왔듯이,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참 진리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심어 주셨습니다. 그 참이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거짓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하는 것은 온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참말(진리)로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나누기

 1. 내가 자주 속는 거짓은 무엇입니까? 또한 내가 자주하는 거짓은 무엇입니까?  

 2. 거짓으로 만연한 세상 속에서, 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참말(말씀)을 내 영혼에 채우겠습니까?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참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모든 세상의 말, 인간의 말, 속이는 말들을 내어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담은 참 진리의 사람으로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Connection Car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