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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마태복음 16: 13~20

곽선희 목사

2022.10.02

<사람과 달리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다윗 왕을 아실 겁니다.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다윗 왕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다윗이라는 말이 800번 나옵니다. 사람의 이름 중에 가장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사랑했습니다.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말씀하실 때마다 “내 종 다윗처럼” 하고 복을 주셨고, 벌을 주실 때는 “내 종 다윗 같지 아니하니라”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축복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이 표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본래 베들레헴 들의 목장입니다. 그저 양을 치는 소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명령하십니다. “아무래도 사울 왕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네가 비밀리에 이새의 집에 가서 한 아들을 택하고 기름을 부어라.” 이건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가 기름병을 준비해 가지고 이새의 집에 찾아갑니다. “너희 집 아들 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세울 사람이 있다. 내가 그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하니 아들을 보여라.”
이새에게는 아들이 8명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를 빼놓고 일곱 사람만을 불러 사열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이 영감을 주시고 계시해 주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물어봅니다. “아들이 이게 전부인가?” 그러자 아버지 이새는 한 명 더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는 아닐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를 불러놓고 보니 다윗이었고, 하나님이 택하신 자였습니다.
왜소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감성이 있고, 그리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얼굴이 불그스레한데 하나님이 택하신 자인 걸 알고서 꿇어 앉혀 놓고는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이 왕이 되는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는 형제들이 볼 때나, 아버지가 볼 때도 외모가 시원치 않았어요. 이 점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리고는 다윗을 왕으로 지명하십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다윗 그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대장을 물맷돌로 때려눕힌 자가 아닙니까? 그 어린 소년이 글쎄, 물맷돌을 가지고 블레셋의 골리앗을 향해 던질 때 했던 말이 너무나 유명하지 않습니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이 유명한 신앙고백을 다윗이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고 사람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심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다윗 왕도 역시 인간이었습니다. 왕이 되고 영광을 누릴 때 밧세바 사건이 일어납니다. 크게 실수합니다. 자기의 충성된 장수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아 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큰 죄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나단 선지자가 와서 지적할 때, 다윗은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는 장수를 향해서 “저 놈의 목을 베라.” 하고 말했다면 끝났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훌륭한 점입니다. 오히려 나단 선지자의 충고를 듣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습니다.
외모는 시원치 않았지만 그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했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허물도 많았고, 실수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는지, 모든 인류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표본이 되었는지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그 사랑이 진실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었습니다.

<중심에서 향하는 하나님 사랑은 성전 중심으로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로만 합니다. 그런데 정작 행동은 진실하지 않아요. 그러나 다윗은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가 왕이 되어 다윗 성을 건설한 다음에 백향목 궁전을 크게 짓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영광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수달피 가죽 천막 속에 있는 하나님의 법궤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 나는 이렇게 영광을 누리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천막 속에 있도다! 이건 안 된다.’ 해서 나단 선지자를 불러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의 법궤를 위하여,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성전 지을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말씀드려 주세요.” 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합니다. 그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가 나옵니다. 마치 하나님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죠. “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 다윗아.” 왜 그러셨을까요? 자발적으로 한 것이니깐요.
그뿐이 아닙니다. 더 귀중한 게 있어요. 가장 영광을 누리고 있는 때에 생각한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 영광된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기도하면 위대한 겁니다. 오늘 다윗은 최고로 영광을 누리는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집을 지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표현하겠습니다. “너는 네 집을 지어라. 나는 네 나라 위를 영원히 존귀케 하리라.” 여기서 ‘영원히’는 예수님 탄생까지를 말씀합니다. 바로 이런 축복을 다윗에게 주신 거예요.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형통하는 날에 더 기도해야 합니다. 소망교회 있을 때 낮에 잠깐 들어오면 한 20분 정도 여기저기 기도를 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만나고 나갈 때 “기도하러 오셨어요?” 하고 물으면 “예, 그렇습니다.” 하시면서 누구는 아들이 병이 들고, 남편이 병원에 있고, 사업이 망했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기도하러 온 사람 중에 “일이 잘 되어서요. 아이가 성공해서요. 그래서 기도하러 왔어요.”라고 말하는 분들은 없어요. 우리 인간의 얄팍한 생각이지요. 대학 시험 볼 때 되면 수백 명이 와서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저를 붙들고 “기도해 주세요. 기도해 주세요.” 하십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기도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게 인간입니다.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다윗이 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까요? 그는 자신이 영광스러울 때, 성공했을 때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아주 귀중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를 사랑하십니다.
다윗의 사랑은 추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이었어요. 성전을 사모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구체적인 신앙고백을 합니다. 시편 84편에 절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제가 소망교회를 창립한 이후에 분당에도 짓고 하면서 은퇴한 다음에 다섯 교회를 창립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네 번째 이천에다가 교회를 시작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할아버지가 세운 교회인데 언덕을 넘을 때 보니까 교회가 불에 타고 있었어요. 빨갛게 불타는 걸 보면서 엎드려서 울었어요. “하나님, 교회를 짓게 해 주세요! 제 생전에 이 교회를 보고 살게요.” 그래서 목사가 되고 교회를 짓는 일을 나름대로 열심히 해 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이 성전에 파이프 오르간이 있죠. 이거 지을 때 핍박 참 많이 받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피아노도 없는 교회가 많고, 전자 오르간도 있는데 왜 파이프 오르간이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 집은 얼마짜리요?” 하고 물이니 “5억”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이건 4억 5천입니다. 당신 집값이랑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건 400년 쓴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그게 잘못된 겁니까?” 하고 말했어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솔로몬 왕이 다윗의 명령을 받아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습니다. 짓고 나서 그가 헌당식 할 때 하나님 앞에 드린 기도가 절절합니다. “하나님, 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세요. 성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 멀리 갔거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는 복을 주세요. 죄를 짓고 포로로 되어 간 그 자리에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다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는 것,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에도 언제든지 그렇게 합니다. 성전을 향하고, 성전을 사랑하고, 여호와의 집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며,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회심을 말할 때, 우리는 그가 방탕한 삶을 살다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사도가 될 줄 압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어거스틴은 그런 경우였지만 바울은 아닙니다. 그는 바리새파 사람입니다. 엄격한 율법을 따라 산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납니다.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깜짝 놀랍니다. 그가 핍박한 건 교회였지 예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여러분, 여기서 사도 바울의 회심이 일어납니다. 교회관이 바뀝니다. 교회관이 중생합니다. 이것이 신학의 근본이요 오늘의 교회를 이룬 겁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는 하나입니다. 별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울을 향하여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교회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교회를 공동체로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전 그래서 ‘공동체’란 단어 자체를 싫어합니다. 교회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이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 신령한 진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또 어떤 분은 구제 기관으로도 생각하고, 정치구현의 단체로도 생각하고, 인권 운동을 하는 곳으로도 생각하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교회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예수 이름을 부르는 곳, 그곳이 교회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역사합니다. 여러분, 초대 교회가 어떻게 그렇게 급속도로 세워졌는지 생각할 만하지만 그 사건은 하나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갑니다. 기도 시간에 올라가는데 교회 문간에 앉은뱅이가 앉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있어요. 하루 종일 손을 내밀고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는 길에 아무 생각 없이 그가 또 손을 내밉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한 말이 중요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앉은뱅이는 생각했을 거예요. ‘은과 금이 없어? 그럼 그냥 지나가라.’ 그런데 엉뚱한 말이 들립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그러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벌떡 일어납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기초입니다. 이 사건이 온 마을에 불붙듯이 일어나면서 초대 교회가 된 겁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름.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 예수님의 생명력이 작용합니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 예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때 하나님이 함께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그곳에 주의 영광이 함께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오늘 본문에 또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더니 예수님이 아주 기뻐하시면서 이상한 대답을 하십니다. 베드로 입장에서는 섭섭했을 말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면 “아, 3년 동안 많이 배웠구나 베드로야. 많이 나아졌구나. 제법 쓸 만하구나.” 이런 대답을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서 “네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네게 알게 한 것이다. 네 지식이 아니다. 이건 하나님의 축복이다. 선택적 축복이다.”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런 다음 말씀을 잘 보세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노니”(마 16:20 중) 여러분, 주님을 제외하고 교회를 말하면 안 됩니다.교회는 천국 문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 자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리고 그를 택하신 백성으로 하늘나라로 옮겨 가십니다. 하늘문, 이 얼마나 귀한 이야기입니까? 참 귀한 이야기입니다.
작년 이때에 제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보니까 며칠 동안 기도를 하는데, 그 소리가 제법 커요. “하나님, 하늘문을 열어 주세요. 하늘문을 열어 주세요.” 계속 기도하길래 제가 그랬습니다. “그만하면 되었다. 하나님도 다 들으셨을 거야.” 그런데 정말 하늘문이 열리는 걸 보고 “오, 하나님!” 하더니 갔어요.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고백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땅에서 잘 살고 복 받는 것입니까?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늘문,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생명의 신비를 아셔야 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생명의 신비는 어떤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식물을 한번 보세요. 조그마한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고. 얼마나 신기합니까? 그야말로 식물적 생명의 신비입니다. 동물적 생명의 신비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영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성. 이것이 사람에게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한 다음에 생명,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적 단계의 생명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는 ‘부활’이란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연구해 보면 ‘부활’보다 ‘변화’라는 말이 더 많습니다. 40회나 나옵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그 첫 단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셨고, 그 다음에 우리가 따라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스도적 단계의 생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부활 생명을 위한 에이전트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를 통해서 믿음을 얻고, 시련을 이기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적 생명의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주님 만나는 감격을 얻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의 생명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병자가 치유받고, 능력을 얻고, 문제의 해결을 얻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이뿐만 아니라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서 능력을 체험하고, 또 능력을 얻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I Will Build My Church

Matthew 16:13-20

Dear Church, you all know King David. Although we have never met him, we all know him. Everyone who knows the Bible knows David. The Bible mentions his name about 800 times, making it the most mentioned name among men.

God loved David. God’s immense love for him is revealed in the fact that whenever He spoke, he often mentioned David, saying He would bless someone “like my servant David” or punish someone “unlike my servant David.” David was a criterion for blessings. He served as the model of the man chosen by God. This was the depth of God’s immense love for David.

But what kind of a man was David? Think about it. He was originally a shepherd in the fields of Bethlehem—just a shepherd boy. God told Samuel that He was displeased with King Saul and commanded him to go to the house of Jesse discreetly, choose one of his sons, and secretly anoint him to be king over Israel. This was God’s command. This was a dangerous task. But Samuel took the horn of oil and visited the home of Jesse, saying, “There is a king among your sons. I have come to anoint him, so show me your sons.”

Jesse had eight sons. Seven, excluding one, were called up. They all lined up before Samuel who carefully examined their faces. But however hard he looked, none of them was the one God had chosen, the one God’s Spirit told him he was the one. So Samuel asked Jesse, “Are they all of your sons?” Jesse replied there was one more, his youngest. Although Jesse didn’t say this, let me add to his words: “There is one more, but I don’t think it’s him. He is out in the fields shepherding the sheep. Even if a king were to come from our household, it would not be him. Not him.” Jesse neither believed nor wanted David to be king. So he just called this leftover boy as Samuel commanded. But when he was called, it was revealed that the chosen one was him. God had chosen David to be king over Israel.

David was rather slender, loved music, was sensitive, and had faith. The Bible says he was glowing with health. When God said he was the one, Samuel made him kneel and anointed him king over Israel.

This was how David became king. But think about it. Even his father and brothers thought that even if a king were to come from their household, it would not be David. This reveals that David’s appearance was not that handsome. This is important. But at this moment God speaks through Samuel: “People look at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s at the heart. This is the one.”

As you well know, David really was a man of faith. Didn’t he slay the giant Goliath with a sling and a stone? Didn’t this young boy rise up against the Philistine giant on the battlefield and speak these famous words of faith? “For the battle is the Lord’s. This day the Lord will deliver you into my hands.” Yes. The battle is not ours, but God’s. Battles do not belong to man. God’s will and punishment lie in battles. David was the one who made this great confession of faith: “For the battle is the Lord’s.”

As such, David was a great man, but he was still human. You all know what he did after he became king. He sinned greatly in the incident with Bathsheba. He murdered his faithful general, Uriah, and stole his wife. An unspeakable thing this was. David committed serious sins.

Yet we must think highly of the fact that David did not make excuses when the prophet Nathan came to him and pointed out his sins. To my mind, I think it would have been entirely possible to just have the prophet beheaded. David could easily have done this and put an end to it all. But he didn’t. Immediately after hearing Nathan’s advice, he knelt and admitted his sins—his awful and unspeakable sins. He acknowledged them.

Consequently, God loved David. He received God’s special love. Although his appearance was not great, God was pleased with his heart. He was a man of faith, from beginning to end. He had many weaknesses. He made many mistakes. But you must consider this. Why did God love him so? How did he become the model of a man who received God’s great love and blessings?

It was because David loved God. He had a heart that loved God. His love for God was not only sincere but also specific. People love with words only. Not with their actions. Not with their hearts. But David loved God from the bottom of his heart.

After David establishes the City of David, he builds a palace of cedar—a big palace made of cedar. There he thinks, ‘Thank you, Lord, for giving me this glory.’ But at that very moment, he realizes that while he is here in this glorious place, the ark of the Lord is under a tent made of animal skin. This must not be! So he calls Nathan. He says that this should not be. He tells Nathan that he wants to build a temple for the name of the Lord, for the ark of the Lord. He asks Nathan to speak to the Lord on his behalf.

So Nathan prays to God. And in the scene where he prays, we see in the Bible how pleased God is. When I read this part, I see God so full of joy—just like a child. But God replies, “When did I ever tell you to build a temple for me? When did I ever say this tent was uncomfortable? How did you come up with this idea?” How? It was because David himself had this idea. He thought of it voluntarily. Out of a willing heart.

But this was not all. There was something more precious about David. He thought about building a temple for God when he was at his highest moment of glory.

Brothers and sisters, people pray when they are sick. But a healthy person’s prayer is better than a sick man’s cries. When business is failing, people pray, fast, and do all kinds of things. But these prayers are not as powerful as those of the one whose business is thriving. Do you get it? A person can pray when he is sick and in need. But when a person prays even when he is in a high place of glory, that prayer is truly great.

David thought of God and of building a house for the Lord at the very moment he tasted the highest glory of his life. When he asked Nathan to ask God on his behalf, what did God say? I won’t go into that long response. But let me just mention one thing. God said, “You build your house, David. I will establish your kingdom forever.” In these words, God is thinking of the birth of Jesus. This was the blessing God gave David.

But you must deeply consider this. We pray to God in trials. But we must pray all the more when we are doing well.

When I was serving this church, I would come into the main sanctuary during the day and find about twenty people praying. I would speak with them as they finished their prayer and left. “Did you come to pray?” I would ask. “Yes,” they would answer. And what did they usually say? My son is sick, my husband is in the hospital, my business has gone under, and so on. They don’t say they have come to pray because things are great, because their kids are doing well, because they have entered a good school, and so on. No one says things like that. This is how shallow human thoughts are. Hundreds of parents come to pray when the CSAT is coming up. They do all-night vigils. Whenever they catch sight of me, they ask, “Pastor, please pray for me!” Please pray for this, please for that… So many people asking me for prayers! But after the tests are over, no one comes to pray about passing the test. This is man. But this must not be.

Why did David receive such a great love from God? It was because he remembered the Lord when he was most successful and most glorious. God loved David because he loved God. His love for God was specific, not abstract. He longed for the temple of God. He confessed his God-centered faith in a specific way.

Psalm 84 reveals David’s heart with deeply moving words. As he flees, David yearns to be in the dwelling place of the Lord. He sings that even the sparrow and the swallow have a nest near the Lord’s altar, but he is running away in the valleys. He sings that he yearns to be in the house of the Lord. “Blessed are those who dwell in His house. Blessed are those whose hearts are set on pilgrimage till each appears before God in Zion.” This was David’s song. We must know this. We are in the house of the Lord. How amazing is this?

I planted and built this church, but after establishing Somang Church, I also moved to Bundang and built a church there too. After retirement, I wanted to plant five churches. Recently, the fourth one was started in Icheon. Why am I doing all this?

When I left my hometown, I saw our church, the one that my grandfather built, burning up in flames on top of a hill. As I saw the fiery flames consume our church, I fell to the ground, crying. I prayed, ‘Lord, let me build a church for You. I want to see your church in my life.’ That is why I became a pastor and tried my best to build churches. Because this is the proof of my love for Him.

When we built Somang Church, we installed a pipe organ. We were persecuted a lot for it. Some people came to me directly, protesting, “You’re installing a pipe organ when some churches don’t even have pianos?” I replied, “I am sorry, but may I ask how much your house costs?” “500 million won,” one replied. I answered, “Well, this organ costs about 450 million won, which is nearly as expensive as your house. But it will be played for 400 years—for God’s glory. Something wrong with that?” We please God when we give glory to God. We must not forget this.

Solomon was the one who received David’s command and built the temple in Jerusalem. His prayer at the dedication ceremony after its completion is deeply moving. The Bible records his prayer. He prays, “Lord, answer all those who pray here. May You bless all those who pray in this house. May You bless those who pray toward this temple, even if they are far away and cannot enter this place. Lord, bring back your people to their land when they pray toward this temple—even if they have sinned and have become prisoners in a faraway land.” This was Solomon’s prayer.

I don’t know how you pray at home, but, if possible, pray toward the temple. This was how the Israelites prayed. This was what they did when they built their homes. When they prayed, they always prayed toward Jerusalem. David’s heart was one that sought and loved the temple, one that yearned for the house of the Lord. And God blessed him.

When we talk about Paul’s conversion, we tend to think he formerly lived a life of debauchery, but repented and came to Jesus. Far from it. Augustine’s conversion was like that. He became a saint after encountering the Lord in the midst of his licentious life. But not Paul. He was a Pharisee, a man who strictly followed the law. He met Jesus on the road to Damascus, on his way to persecute the followers of Jesus. Jesus called out to him, “Saul, Saul, why do you persecute me?” Paul was shocked. He had been persecuting the church, but Jesus said that he was persecuting Him. “Why do you persecute me?”

Then and there, not only does Paul’s conversion take place, but his view of the church is transformed. His view of the church is reborn. This is the very foundation of theology and the church today. We must know this.

The church and Christ are one. They cannot be separate. They are one. Jesus said, “Why do you persecute me?” because Paul was persecuting the church. We must not forget this. Doesn’t Jesus say the following in today’s Scripture? “I will build my church. I will build it. And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 Jesus says this Himself. “I will build my church.”

Brothers and sisters, there are many misunderstandings about the church. One of them is that the church is a “community.” In whatever gathering I attend, I don’t like the word “community” being used. Why? Because the church is not a community. The church is the body of Christ. We must not abandon this holy truth.

Another misunderstanding is that the church is an institution that gives to the poor. We think that doing church work is to help the poor and to do good work, but these are not the work of God. Some mistake the church for a social organization, a group striving for a political goal, or a human rights group. But they are wrong.

The church is the body of Christ. The church is Christ, and Christ is the church. The Lord says,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He will be where two or three gather in His name. Where His name is called, that is the church. There, the life of Christ is at work.

When we think of the early church, we cannot but wonder how 5,000 people suddenly gathered and established it, but there was an incident. One day, Peter and John went up to the temple. It was the time of prayer, and there was a lame man at the temple gate. This man was a real, professional beggar. He was always sitting there. Of course he was always sitting because he was lame. When he was put there every day, he would stretch out his hand all day, begging for money. As they were going up to the temple, Peter and John stretched out their hand toward him unconsciously. What they said to him at that very moment is important: “Silver or gold I do not have.” Up to that point, the lame beggar was only thinking about money. He would have thought, ‘You don’t have money? Well, then, just pass by. Go on.’ But then he heard something unusual. “Silver and gold I do not have, but what I do have I give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alk. Get up!” At these words, the man born lame got up instantly.

This was the foundation of the early church. There was no stopping it. This incident ignited the whole town and the early church was built.

Brothers and sisters, do not forget. The moment you call upon the name of Jesus, His life works in us. Do you get this? When we glorify the name of Christ, God is with us. Where we call upon the name of Jesus, the Lord’s glory dwells. This is the church.

Today’s Scripture from Matthew tells us something that the church must not forget. Peter confesses that the Lord is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Jesus immensely pleased, but He says something strange after expressing His joy—something quite upsetting to Peter. Think about it. If one of His disciples answered,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it would be fitting for Jesus to say, “Well done. You have learned much for the past three years. You have improved and understood much. You have become a useful disciple.” Isn’t this what Jesus is supposed to say? But no. Jesus does not say such things. He says that Peter’s confession was not of his doing. It was God’s Spirit that made him make such a confession. It was God’s blessing that allowed him to make such a confession.

Not everyone can make a confession of faith. You don’t believe just because you want to. God must give you faith. We must always remember this. That is why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This means that Peter’s confession was revealed to him by God. It is not something he learned. It is not Peter’s knowledge. It is a gift. It is God’s glory, His blessing, His elective blessing. This is what Jesus is saying.

We must pay careful attention to what Jesus says next. We often gloss over this next part when we read this passage. But Jesus says to Peter, “I wi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We cannot talk about the church without talking about Jesus. The church is heaven, the gate of heaven. Through the church we come to confess our faith, and this confession in itself is a gift from God. When a person confesses his faith, he becomes God’s chosen people and is moved to heaven. The gates of heaven are opened to him. How precious is this?

My wife passed away about a year ago last fall. I noticed that she was praying very loudly for several days. It was probably because she had hearing loss. She prayed, “Lord, open the gates of heaven. Open the doors for me.” She prayed so hard and so loud that I said, “I think that’s enough. You’ve said that many times, so I am sure God has heard your prayer.” But you know what? God really opened the gates of heaven to her, and she went to Him, crying, “O, Lord!”

Dear church, you must not forget this. What is the crux of our confession of faith? To live well and be blessed on earth? Stop it. Living a good life is nothing. In a few days we will all meet our end. So what’s the use of living well? That’s not important. The gates of heaven is what is important. We must not forget this.

We must know the mystery of life. Even the most sophisticated science cannot explain this mystery. Look at mysterious things—plants, for example. A tiny seed, like a mustard seed, falls to the ground, becomes a tree, and bears fruit. How amazing is this? A tiny seed grows into a great tree! This is the mystery of plants. Then there is the mystery of life in animals. Even if they are left alone, they meet and have cubs, and these cubs have cubs too. Watch them. The mystery of life found in animals is amazing.

And what about the mystery of life found in humans? Man has the traits of both plants and animals, but he also has spirituality. God gave man a spirit to know and meet God. He created us in His image. Man has spirituality.

Man has lived to this day. But Jesus died on the cross and rose from the dead. Then what is life after resurrection? How can you explain this phase of life shown to us by Christ, this Christ-like phase of life? The word “resurrection” is mentioned many times in the Bible. Jesus told His disciples that He would be resurrected. He said He is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owever, upon a careful study, we will find that the word “transform” appears more frequently than “resurrection” in the Bible. The former is mentioned 40 times. Transformation. How does this happen? The Bible says we will be transformed like Christ. That is why Jesus became the first fruit of resurrection by opening the door to resurrection. Then we will be next to go through that door. The transformation that happens at Christ’s level. Today our Lord gives us the agent that allows that transformation. And He speaks to us: “I will be with you. I will be with you forever.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You believe in God; believe also in me. My Father’s house has many rooms.”

Transformation at the level of Christ. This is resurrection. We must think of our church with this in mind. The church is the agent for this purpose. Through the church we come to have faith and confess it. Through the church we overcome trials and hear the word of God.

Dear brothers and sisters, what is the church? It is the very substance of the life of Christ. Therefore, we must hear the word of Christ through the church. We must see the Lord’s face through the church. We feel the joy of meeting God through the church. We experience His power through the church. This is the church. Who do we meet at church? The Lord. We must hear His voice at church. We must experience the joy of meeting Him. No, we must experience His life. Through this, we heal the sick, we receive power, and our problems are solved. We must know this. This is the church.

Dear church, Jesus speaks to us today: “I will build my church.” Furthermore, He says, “I will be with you. I will be with you.” Still, it is through the church that we meet the Lord, that we are able to be with Him, that we are guided by Him. Therefore, we must have a faith that puts the church at center, a faith that loves the church, a faith that experiences power at church, a faith that gets power from the church. Let us pray:

Heavenly Father, thank you that You have built this church 45 years ago. Through this church you have entered the lives of many people, called them, baptized them, and made them Yours. Lord, make Somang Church more church-like. May You bless those who pray toward this church, extend Your grace to all those who enter it, and give Your power of life to those who preach and worship here. May they live as witnesses to all these and become men of God who live victorious lives with Your power. In Jesus’ nam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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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 13~20

13~20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사람과 달리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다윗 왕을 아실 겁니다.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다윗 왕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다윗이라는 말이 800번 나옵니다. 사람의 이름 중에 가장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사랑했습니다.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말씀하실 때마다 “내 종 다윗처럼” 하고 복을 주셨고, 벌을 주실 때는 “내 종 다윗 같지 아니하니라”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축복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이 표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본래 베들레헴 들의 목장입니다. 그저 양을 치는 소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명령하십니다. “아무래도 사울 왕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네가 비밀리에 이새의 집에 가서 한 아들을 택하고 기름을 부어라.” 이건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가 기름병을 준비해 가지고 이새의 집에 찾아갑니다. “너희 집 아들 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세울 사람이 있다. 내가 그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하니 아들을 보여라.”
이새에게는 아들이 8명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를 빼놓고 일곱 사람만을 불러 사열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이 영감을 주시고 계시해 주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물어봅니다. “아들이 이게 전부인가?” 그러자 아버지 이새는 한 명 더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는 아닐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를 불러놓고 보니 다윗이었고, 하나님이 택하신 자였습니다.
왜소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감성이 있고, 그리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얼굴이 불그스레한데 하나님이 택하신 자인 걸 알고서 꿇어 앉혀 놓고는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이 왕이 되는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는 형제들이 볼 때나, 아버지가 볼 때도 외모가 시원치 않았어요. 이 점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리고는 다윗을 왕으로 지명하십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다윗 그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대장을 물맷돌로 때려눕힌 자가 아닙니까? 그 어린 소년이 글쎄, 물맷돌을 가지고 블레셋의 골리앗을 향해 던질 때 했던 말이 너무나 유명하지 않습니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이 유명한 신앙고백을 다윗이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고 사람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심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다윗 왕도 역시 인간이었습니다. 왕이 되고 영광을 누릴 때 밧세바 사건이 일어납니다. 크게 실수합니다. 자기의 충성된 장수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아 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큰 죄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나단 선지자가 와서 지적할 때, 다윗은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는 장수를 향해서 “저 놈의 목을 베라.” 하고 말했다면 끝났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훌륭한 점입니다. 오히려 나단 선지자의 충고를 듣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습니다.
외모는 시원치 않았지만 그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했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허물도 많았고, 실수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는지, 모든 인류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표본이 되었는지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그 사랑이 진실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었습니다.

<중심에서 향하는 하나님 사랑은 성전 중심으로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로만 합니다. 그런데 정작 행동은 진실하지 않아요. 그러나 다윗은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가 왕이 되어 다윗 성을 건설한 다음에 백향목 궁전을 크게 짓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영광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수달피 가죽 천막 속에 있는 하나님의 법궤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 나는 이렇게 영광을 누리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천막 속에 있도다! 이건 안 된다.’ 해서 나단 선지자를 불러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의 법궤를 위하여,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성전 지을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말씀드려 주세요.” 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합니다. 그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가 나옵니다. 마치 하나님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죠. “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 다윗아.” 왜 그러셨을까요? 자발적으로 한 것이니깐요.
그뿐이 아닙니다. 더 귀중한 게 있어요. 가장 영광을 누리고 있는 때에 생각한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 영광된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기도하면 위대한 겁니다. 오늘 다윗은 최고로 영광을 누리는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집을 지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표현하겠습니다. “너는 네 집을 지어라. 나는 네 나라 위를 영원히 존귀케 하리라.” 여기서 ‘영원히’는 예수님 탄생까지를 말씀합니다. 바로 이런 축복을 다윗에게 주신 거예요.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형통하는 날에 더 기도해야 합니다. 소망교회 있을 때 낮에 잠깐 들어오면 한 20분 정도 여기저기 기도를 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만나고 나갈 때 “기도하러 오셨어요?” 하고 물으면 “예, 그렇습니다.” 하시면서 누구는 아들이 병이 들고, 남편이 병원에 있고, 사업이 망했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기도하러 온 사람 중에 “일이 잘 되어서요. 아이가 성공해서요. 그래서 기도하러 왔어요.”라고 말하는 분들은 없어요. 우리 인간의 얄팍한 생각이지요. 대학 시험 볼 때 되면 수백 명이 와서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저를 붙들고 “기도해 주세요. 기도해 주세요.” 하십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기도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게 인간입니다.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다윗이 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까요? 그는 자신이 영광스러울 때, 성공했을 때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아주 귀중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를 사랑하십니다.
다윗의 사랑은 추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이었어요. 성전을 사모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구체적인 신앙고백을 합니다. 시편 84편에 절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제가 소망교회를 창립한 이후에 분당에도 짓고 하면서 은퇴한 다음에 다섯 교회를 창립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네 번째 이천에다가 교회를 시작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할아버지가 세운 교회인데 언덕을 넘을 때 보니까 교회가 불에 타고 있었어요. 빨갛게 불타는 걸 보면서 엎드려서 울었어요. “하나님, 교회를 짓게 해 주세요! 제 생전에 이 교회를 보고 살게요.” 그래서 목사가 되고 교회를 짓는 일을 나름대로 열심히 해 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이 성전에 파이프 오르간이 있죠. 이거 지을 때 핍박 참 많이 받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피아노도 없는 교회가 많고, 전자 오르간도 있는데 왜 파이프 오르간이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 집은 얼마짜리요?” 하고 물이니 “5억”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이건 4억 5천입니다. 당신 집값이랑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건 400년 쓴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그게 잘못된 겁니까?” 하고 말했어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솔로몬 왕이 다윗의 명령을 받아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습니다. 짓고 나서 그가 헌당식 할 때 하나님 앞에 드린 기도가 절절합니다. “하나님, 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세요. 성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 멀리 갔거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는 복을 주세요. 죄를 짓고 포로로 되어 간 그 자리에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다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는 것,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에도 언제든지 그렇게 합니다. 성전을 향하고, 성전을 사랑하고, 여호와의 집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며,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회심을 말할 때, 우리는 그가 방탕한 삶을 살다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사도가 될 줄 압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어거스틴은 그런 경우였지만 바울은 아닙니다. 그는 바리새파 사람입니다. 엄격한 율법을 따라 산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납니다.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깜짝 놀랍니다. 그가 핍박한 건 교회였지 예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여러분, 여기서 사도 바울의 회심이 일어납니다. 교회관이 바뀝니다. 교회관이 중생합니다. 이것이 신학의 근본이요 오늘의 교회를 이룬 겁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는 하나입니다. 별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울을 향하여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교회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교회를 공동체로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전 그래서 ‘공동체’란 단어 자체를 싫어합니다. 교회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이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 신령한 진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또 어떤 분은 구제 기관으로도 생각하고, 정치구현의 단체로도 생각하고, 인권 운동을 하는 곳으로도 생각하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교회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예수 이름을 부르는 곳, 그곳이 교회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역사합니다. 여러분, 초대 교회가 어떻게 그렇게 급속도로 세워졌는지 생각할 만하지만 그 사건은 하나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갑니다. 기도 시간에 올라가는데 교회 문간에 앉은뱅이가 앉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있어요. 하루 종일 손을 내밀고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는 길에 아무 생각 없이 그가 또 손을 내밉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한 말이 중요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앉은뱅이는 생각했을 거예요. ‘은과 금이 없어? 그럼 그냥 지나가라.’ 그런데 엉뚱한 말이 들립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그러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벌떡 일어납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기초입니다. 이 사건이 온 마을에 불붙듯이 일어나면서 초대 교회가 된 겁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름.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 예수님의 생명력이 작용합니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 예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때 하나님이 함께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그곳에 주의 영광이 함께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오늘 본문에 또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더니 예수님이 아주 기뻐하시면서 이상한 대답을 하십니다. 베드로 입장에서는 섭섭했을 말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면 “아, 3년 동안 많이 배웠구나 베드로야. 많이 나아졌구나. 제법 쓸 만하구나.” 이런 대답을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서 “네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네게 알게 한 것이다. 네 지식이 아니다. 이건 하나님의 축복이다. 선택적 축복이다.”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런 다음 말씀을 잘 보세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노니”(마 16:20 중) 여러분, 주님을 제외하고 교회를 말하면 안 됩니다.교회는 천국 문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 자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리고 그를 택하신 백성으로 하늘나라로 옮겨 가십니다. 하늘문, 이 얼마나 귀한 이야기입니까? 참 귀한 이야기입니다.
작년 이때에 제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보니까 며칠 동안 기도를 하는데, 그 소리가 제법 커요. “하나님, 하늘문을 열어 주세요. 하늘문을 열어 주세요.” 계속 기도하길래 제가 그랬습니다. “그만하면 되었다. 하나님도 다 들으셨을 거야.” 그런데 정말 하늘문이 열리는 걸 보고 “오, 하나님!” 하더니 갔어요.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고백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땅에서 잘 살고 복 받는 것입니까?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늘문,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생명의 신비를 아셔야 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생명의 신비는 어떤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식물을 한번 보세요. 조그마한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고. 얼마나 신기합니까? 그야말로 식물적 생명의 신비입니다. 동물적 생명의 신비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영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성. 이것이 사람에게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한 다음에 생명,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적 단계의 생명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는 ‘부활’이란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연구해 보면 ‘부활’보다 ‘변화’라는 말이 더 많습니다. 40회나 나옵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그 첫 단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셨고, 그 다음에 우리가 따라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스도적 단계의 생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부활 생명을 위한 에이전트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를 통해서 믿음을 얻고, 시련을 이기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적 생명의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주님 만나는 감격을 얻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의 생명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병자가 치유받고, 능력을 얻고, 문제의 해결을 얻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이뿐만 아니라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서 능력을 체험하고, 또 능력을 얻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2022년 10월 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마 16:13-20)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⑵ 찬송가 208, 21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⑷ 마 16:13-20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0월 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허물도 많고 실수도 많은 그였습니다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의 표본이 되었습니다왜 하나님은 그토록 다윗을 사랑하셨을까요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다윗의 중심을 보시곤 기뻐하셨지만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다윗의 모습을 더욱 기뻐하셨습니다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모습을 성전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의 표본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설교의 요약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한 것은 자발적인 마음이었습니다그는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생각을 했습니다사람들은 뭔가 어려움이 있을 때나기도의 응답을 요할 때 하나님을 찾기 마련입니다그러나 다윗은 가장 영광스러운 때에 하나님을 먼저 생각했습니다그 구체적이고 고백적인 모습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사모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시편 84편에 다윗은 피난길에서도 내가 여호와의 전을 사모한다고 절절히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자는 복이 있다, “시온의 대로가 그 마음에 있는 자는 복이 있다”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여호와의 전을 사모하는 구체적인 신앙고백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이후 솔로몬이 성전을 헌당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옵소서죄를 짓고 포로 된 그 자리에서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다시 돌아오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곧 교회는 다분히 공동체나 구제기관인권운동으로 착각해선 안 됩니다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입니다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교회는 그리스도요곧 그리스도는 교회입니다그곳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만나고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오늘 본문 말씀에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 16:16)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고백을 하나님이 너에게 이런 고백을 하게 한 것이라” 말씀합니다하나님의 영이 임한 자가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신앙고백을 드린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의 영광(16:19)을 주십니다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임을 천명하면서 교회를 통하여 신앙고백을 하고이 고백도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요그리고 택하신 백성으로 천국 열쇠를 주어 하늘나라의 영광을 누리게 하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음부의 권세가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교회에 와서 나를 만나라교회에 올 때 내가 함께 할 것이다너의 생명을 내가 세울 것이다.” 여러분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들로서교회 중심적 신앙생활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와 함께 하는 거룩한 생활로 말미암아 예수의 생명력과 능력을 얻고 경험하는 그런 신앙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주님의 몸 된 소망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지금껏 내게 주신 은혜는 무엇입니까?

2. 앞으로도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 중심의 생활을 놓고 구체적이며 고백적 실천을 어떻게 이뤄 가겠습니까?

마무리기도

하나님 아버지주님의 몸 된 교회에 주님을 만나기 위해 왔고 주의 음성을 듣고 주의 생명력을 체험하기 원합니다주님강하게 역사하사 영적 어둔 그림자를 물리치게 하시고 주이 음성을 가까이 들으며 주의 생명력 안에 사는 나를 발견케 하여 주옵소서생명력 있는 교회를 통하여 주의 능력 나타내 보여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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