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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버리노라

요한복음 10: 11 ~ 18

곽선희 목사

2003.08.31

날 짜 :2003.08.31
제 목 :스스로 버리노라
본 문 :요한복음 10 : 11 – 18절
저는 몇 일전에 제 친구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살아있는 신화”라고 하는 제목의 책입니다. ‘스티븐 발
머’의 대한 얘기인데요, 그 원 저의 제목은 ‘bad boy Ballmer’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빌 게이츠”라고 하면 모르는 분
이 없을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업해서 세계를 놀라게 한 그런 세계적인 CEO를 우리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그의 친구이며 또 제 2인자인 발 모어의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버드 대학학창 시절에 서로
만난 친구입니다. 그로부터 30년 동안을 서로 가까이 친구로 지내고 있으며 특별히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이루면서 한
가족이 되고 무려 20년 동안 친구며, 동역자이며, 언제나 철저하게 제 2인자로서 봉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전에 게
이츠가 은퇴할 때에 그는 그 회사를 맡게 되었고 회사를 게이츠가 맡았을 때보다 더 훌륭하게 크게 회사를 일으키게
되었고 또한 그 역시 CEO로 많은 사람에게 추앙을 받는 존경받는 경영자요, 기업주요,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거
대한 야망의 사람이다. 혹은 천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고 또 카리스마적 인격이라고도 생각하고 무서운 추진력과 재
물이 많은 사람이다.” 하는 별명과 칭찬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제 2선에 있었습니다. 그가 남기는 중요
한 말이 있습니다. “제 2인자로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1인자가 될 수 없다.” 대단히,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여러분, 그
는 회사를 사랑했습니다. 그의 강연 속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I have four words for you -I love this company 딱
4마디로 내가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회사를 사랑합니다.” 그는 일을 사랑했고, 그는 회사를 사랑했습니다. 그런고
로 그는 2인자로 만족합니다. 20년 동안을 정성을 다해서 그렇게 봉사해왔습니다. 2인자로서의 성공! 여러분, 상상을
해보세요. 모든 것을 비워야 합니다.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회사를,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지극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족할 때만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2인자로 성공하지 못하면 1인자가 될 수 없다. 여러분, 이 사회문제
가 왜 이렇게 복잡해집니까? 2인자가 될 사람이 없어요. 모두가 일인자가 되겠다고 뛰어들어요. 이인자의 경력이 없이
그대로 전부가 일인자만 되겠대요. 어느 회사에 가서 좀 능력이 있을만 하면 “내가 이 꼴 안보지” 당장 나가서 딴 짓을
하야 경쟁을 하고요. 이게 바로 이 사회의 경제가 정치까지 이렇게 혼란해 지는 이유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2인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1인자로 뛰어 드는 사람 때문에 그것이 성공인 것처럼 지극히 잘못하고……. 그래서 이렇게 어려
워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호수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출애굽으로부터 시작해서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가나안까지…… 출애굽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 모세이겠지마는 behind man 여호수아가 같이 있습니다.
그는 충성된 사람입니다. 드라마틱한 장면이 있었지요.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함께 하며 계시를 받을
때, 그는 신비로운 체험 속에 있으니까 40일을 하루같이 지냈겠지만 여호수아는 백성과 모세 사이에 산언덕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40일 동안을 기다렸습니다. 언제 내려올지도 모르는 그 모세를 40일 동안 충성되게 산기슭에
서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입니다. 가나안 정복에 절대로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모세를 빼고 2인자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정복을 성공하게 합니다. 놀라운 얘기가 아닙
니까? 노자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내가 확신하고 한평생 소중히 여기는 것! 내가 깨달은 바 소중한 진리 3가지가 있
다. 첫째는 온유함이요, 둘째는 근면함이요, 셋째는 겸손이다.” 온유한 사람이 되라! 그리하면 당대한 사람이 되리라.
근면한 사람이 되라! 그리하면 자유인이 되리라! 겸손한 사람이 되라! 그리하면 당신은 지도자가 되리라! 겸손해야 지
도자가 되고 겸손해야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어느 순간이라도 교만해지는 순간 그냥 추락하고 맙니다. 지도자의
기본자세가 하나도, 둘도, 셋도 겸손입니다. 그러기위해서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
“스스로 버리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나를 스스로 버리노라.” 여러분, 빼앗기는 것과 잃어버
리는 것이 있고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빼앗기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다른 겁니다. ‘잃어버렸다!’ 이건 뭡니까? 무의
식중에 몰라서 미처 생각지 못하는 틈에 그만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리고 나서 뒤늦게 깨닫고 ‘아차!’ 하는 거예요. 가만
히 생각해 보세요. 잃어버린 거 많지요? 젊음을 잃어버렸지요, 돈도 잃어버렸지요, 재산도 잃어버렸지요, 사랑도 잃어
버렸지요, 이제 생각하니 이게 기가 막힙니다. 어쩌다 이렇게 잃어버렸어요. 이런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
보니까 잘 지내다가 집을 팔더라고요. 그 다음에 집값이 올라가니까 원통해 가지고 내가 어쩌다가 ……. 그냥 앉아 가
지고 그냥 손해보고 그렇게 그것도 잃어버린 건 잊어버려야 되는데 잊어버리지도 못하고 병 걸리더라고요. 이거 미련
한 거 아닙니까? 우리 교인들 가운데 보니까, 이 압구정동에 살다가 집 팔고 어디론가 갔다가 손해보고 뒷구정동으로
온대요. 압구정동에서 나갔다가 뒷구정동으로 온답디다! 이거 알아듣는 사람들은 보통사람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
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사막을 지나가는데 혼자서 가다가 모래 속에 묻혀있는 요술램프를 발겼했답니
다. 요술램프가 뭔지는 만화 본 사람은 압니다. 이걸 하나 얻어 가지고 이게 진짜인가? 가짜인가? 효력이 있나 없나?
궁금해 가지고 그 요술램프를 살∼살∼ 문질러 보았답니다. “펑!” 하더니 요정이 나오더랍니다. “아이구! 이거 진짜구
나!” 요정이 하던 말이 “주인님, 절 부르셨습니까? 한 가지 소원만 말씀하십시오.” 그때 가서 생각을 해봤답니다. ‘한 가
지 소원 뭘 말하지?’ 이것도 생각하고 저것도 생각하고……. 왜 이렇게 소원이 많은지……. 가고 싶은 곳도 많고, 가지
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도 한 가지만 말해야 된다는데 이걸 어떻하나? 그는 요약을 해서 세 가지를 가지고 싶었답니
다. 돈! 여자! 결혼! 그래서 돈! 여자! 결혼! 돈! 여자! 결혼! 그랬답니다. 그랬더니 정신 돈 여자와 결혼했대요. 돈, 여자,
결혼을 합치니까 정신 돈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대요. 여러분, 이것도 다 후회스러운 거예요. 뭔가 참 잃어버렸어요.
이제 와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후회가 많아요. 좋은 기회를 다 놓쳐 버렸어요. 그런가 하면 빼앗긴 것이 있어요. 이건
원치 않지마는 힘이 없어서, 또 빼앗기고 도로 찾을 수가 없어요. 능력이 부족해서 어찌할 수가 없지요. 노하우도 없고,
돈도 없고, 지휘도 없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빼앗기면 그만이죠. 멀쩡하게 빼앗기고 속수무책이야! 그리고 괴로워하
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목자와 양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양과 목자! 양이
목자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면 얘기가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 목자가 양을 위해서 죽습니까? 양은 어디까지나 목자에
게는 소유일 뿐이에요, 또 먼 훗날에 잡아먹을 거예요. 그러나 목자는 양을 사랑합니다. 이 신비로운 관계성을 이해해
야 합니다. 여러분! 이거는 경제적으로 계산할 문제가 아니에요, 손익 계산할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목
자는 양을 사랑합니다. 양이 짐승에게 찢겨 죽는 것을 못 봅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대신 죽기도 합니다. 그만
큼 사랑합니다. 목자가 양을 사랑한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야 목숨을 버린다……. 얼마나 신비롭고 놀라운 것입
니까? 거기에 목자다운 모습이 있어요. 거기에 사람다운 모습이 있어요. 그 사는 사람의 의미가 거기에 있는 것 이예
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스스로 버리노라.” 누가 빼앗는 것도 아니에요. 누가 강조하는 것도 아니에요. 스스로 버
리노라! 자발적이고, 자유적이고, 선택적인……. 그런데 이것은 몰라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다 알고 하는 일입니다. 이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이에요, 모르고 하는 일이 절대
로 아니라는 것이에요. 누가 복음 9장 5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십니다. 그냥 무엇인가 잘못
되어, 유월절이 됐다고 해서 올라갔다가 어떻게 어떻게 잘못돼 가지고 십자가를 졌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기약이 차매
아버지께로 갈 때가 온 줄 아시고 굳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알고,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
을 행해야 당대하게 올라가십니다. 알고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은 보다 큰 것을 알기 때문입
니다. 여러분,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 중요하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아요. 요새 보니까 참! 생명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걸 모르는 사람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 ‘일찍 갔으면 좋을 뻔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안 그렇습
니까? 사는 것만 능사가 아니에요. 죽을 땐 죽어야 해요. 못 죽으면 부끄러워지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보다
큰 것! 그렇지 않습니까? 위가 더 크고, 진리가 더 크고, 명예가 더 크고…… 또 나라 사랑이 더 크고……. 더 큰일이 많
지요. 그런데 오늘 여기서는 더 큰 것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스스로 버리노라! 뜻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목숨을 버
리는 것이죠. 오히려 뜻을 세우는 것! 뜻을 세우고 목숨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목적적인 포기입니다. 뚜
렷한 목적이 있어요, 내가 위하여 죽는 대상이 있어요! 죽어야할 이유가 있어요! 살아야 할 이유도 중요하지만 죽어야
할 이유를 알고 사는 사람이 가장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우리는 봅니다. 사도 바울은 말
합니다. “너희 믿음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리라!” 관제로! 피를 쏟아 부어도 나는 즐겁다. 나
는 행복하다. 왜? 그것이 내 본래의 목적이니까! 확실한 목적이 있는 자기 포기를 말씀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에요. 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양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될 때! 어느 사이에 양을 위해 죽을 수가 있는 거
예요. 그 까짓 거 포기하는 거 문제가 안돼요! 따뜻한 가슴, 그 뜨거운 사랑이 자기를 포기하게 만들었어요. 나아가서는
최종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가 희생하므로 저를 구원하고 저를 구원하므로 나도 구원해 지는 거예요. 저도
살리고 나도 살고! 저와 내가 함께 사는 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도적인 행사입니다. 누가 빼앗
는 것도 아니고 빼앗으라고 설득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 된다고! 그런 얘기가 없어요. 그저 내가 스스로 버리는 것이
에요. 이건 신비로운 것입니다. 예수님 요한복음 12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밀 한 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않으면 열매가 없으리라” 저는 이 성경을 읽을 때 마다 꼭 생각나는 기사가 있습니다. 오래, 오래 전에 타임즈에서 읽
고 그 사진까지 잘라놓았던……. 3000년된 미이라를 해부했습니다. 3000년된 시체를 해부했는데 손에 밀알이 몇
개가 있어요. 딱 손에 쥐어졌어요. 이거를 풀어서 혹시나 하고 땅에다가 심어보았더니 싹이 나더랍니다. 믿거나 말거
나! 얼마나 굉장한 일입니까? 이 말은 뭡니까? 죽은 사람 손에 들어있는 밀알은 싹이 나질 않아요. 땅에 떨어져 죽어야
싹이 나는 거예요. 이 이치를 아주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에요. 예수님! 내가 버려야 네가 살고 내가 산다. 내가 죽
어야 너희가 산다. 마태복음 16장 25절에 보면 “나를 위해 버린 자는 생명을 얻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빼앗는 자가
있는 게 아니에요. 다만 내가 버리는 것이에요. 내가 버리는 것! 슈바이처 박사의 유명한 명언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진실로 행복한 사람은 섬기는 법을 갈구하여 발견하고 사는 사람이다.” 여러분, 섬기는
법을 터득했습니까? 슈바이처 박사는 남들은 아프리카에 가서 고생한다고 하지만 본인은 아닙니다. 이것이 행복의 길
이니까요, 그는 행복을 찾아 사는 것입니다. 행복의 길을 찾아 사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 그것만이 나를 자유하게 하고
나를 지극히 행복하게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요새 보면 섬기는 것이 싫어서 요렇게 저렇게 피해가다
가 절망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자녀도 섬기고, 가정도 섬기고, 직장도 섬기고, 나의 봉사를 필요로 하는 자를 위해서
내 자신을 받쳐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행복! 그게 있는 것이에요. 모든 두려움, 모든 근심, 나약성! 어디서 오는
겁니까? 버리지 못한데서 오는 거예요. 나를 버렸더라면 되는 건데 못 버려서……. 스스로 버렸더라면 되는 건데 버리
지 못함으로 해서 오는 후회와 회환이 있는 것이에요. 17절 하나님 말씀을 들어보십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야 목숨을 버리노라.” 꼭 잊지 마세요, 물질이 아니에요. 돈 몇 푼이 아니에요. 목숨이
에요. 되돌려 받을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이제 버리는 거죠. 목숨을 버릴 때, 스스로 버릴 때 그에게 생명이 있
고 구원케 하는 능력이 있다 말씀입니다. 18절을 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
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스스로 버리노라.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참 많은 세월을 살면서 버려야하는 시간에 버리지 못했고,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것을 빼앗겼
고, 그리고 그 후회와 회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철저하게 나 자신을 버리되 목숨을 버
릴 수 있는 위대한 믿음을 주셔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나도 구원하고 가장 높고 귀한 생명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주
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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