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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도다

마태복음 28: 1 ~ 10

김경진 목사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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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 1 ~ 10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우리 주님은 분명 부활을 예언해 주셨지만 어느 누구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2022년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오는 부활절 환호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환호는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선포이자 고백이며 노래입니다. 단지 축구 경기에서 승리했다는 선포 정도가 아닙니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환호도 아닙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차원도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값지고 멋진 환호가 바로 우리 주님의 부활 소식입니다. 살아 있는 누구라면 예외 없이 맞닥트려야 하는 죽음이 극복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죽음과의 대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다는 선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초해 있습니다.
어느 종교도, 어떤 가르침도 죽음을 이겼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죽음을 극복했다고 말하지도 않죠. 물론 죽음을 일종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하거나, 또 어떻게 하면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을지 가르치는 종교는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결코 이러한 방식으로 극복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죽음의 문제 자체가 해결되는 것 또한 아니죠. 성경은 죽음이 죄의 결과이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숙명임을 끊임없이 말해 줍니다. 사망은 인간에게 가장 크고 상대하기 어려운 원수입니다. 사망은 쏘는 힘이며 인간을 무너트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세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5~57)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죽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망의 힘, 사망의 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고백하는 게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환호하며 노래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선언과 선포로부터 기독교는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하시던 날, 바로 그 새벽에 일어난 일을 알려 줍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아침의 현장을 가감 없이 보여 주죠. 그 모습은 어떠합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함께 기다리면서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고대하거나 기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수난당하신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여러 번 예언하셨습니다. 특별히 마가복음에 따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앙고백을 하자 주님께서 “이야기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시며 수난당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이시니이다 하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29~31)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죽임당하신 후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이 죽으신 후 사흘째 되는 바로 그날에 주님을 기다렸던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사흘 만에 살아나시리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입니다.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마 27:62~64 중)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혹시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옮겨 놓고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우길까봐 걱정합니다. 시신의 도난을 걱정했던 것이죠. 그래서 병사들로 하여금 무덤을 지키도록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 앞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새벽 이른 아침, 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대하면서 산을 올랐을까요?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인들은 돌아가신 예수님에 대한 연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것이죠. 가능하다면 무덤 문을 열고서라도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인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부활을 예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수없이 들었을 겁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하지만 여인들도, 제자들도 모두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죽임당하신 예수님을 안타까워했고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죽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유만이 들려 있었을 뿐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부활 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말씀대로 부활하셨고, 천사를 통하여 그 의미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주님은 천사를 통하여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십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 28:5~6)

중요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숨겨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부활을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까지도 알고 있었던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도 부활을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인간의 믿음으로 이루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인간의 간절한 기다림의 결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간절한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닙니다. 부활 사건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요, 하나님의 선물이요, 기적이었습니다. 부활 소식은 믿음 없는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부활 소식은 여전히 그러합니다. 수많은 인간이 예수의 부활 소식을 끊임없이 듣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는 않습니다. 부활의 신비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열립니다. 바울이 증언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3~8)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게바에게, 열 두 제자에게, 오백여 형제에게, 야고보에게 그리고 사도 바울에게까지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고 보여지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이 좋아서 부활하신 주님을 본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다가와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됨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다”는 천사의 말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우선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 있지 않겠습니까? “그토록 너희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기억하지 못하였느냐?”는 것이죠. 한마디로 질책입니다. 복음서의 이야기 중 어느 곳에서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예상했다거나 준비하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시작은 여인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증언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게 되죠.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 듣는 사람들로 등장합니다. 말씀을 들었지만 믿지 못한 자들로 말입니다. 이 말씀은 부활 소식을 수없이 들으면서도 믿지 못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신 준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다”는 의미는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이 실제가 되었기에,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확실한 지식이자 참이며 지혜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누구도 믿지 않은 부활이 실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이 땅에서 전하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증명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의 말씀, 주님의 능력, 주님의 권위를 우리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신 주님의 말씀이 참이 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 라는 이 말씀이 그저 헛된 말씀이 아니고 공허한 말씀이 아니고 진정한 진리요 참다운 말씀이 됩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이 믿는 자의 부활을 직접적으로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이고 우리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 되는 이유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 11:25~26)

바로 이 말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부활과 생명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 때문에 우리에게도 부활 소망이 주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사흘 만에 부활하겠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시기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1~3)

이 말씀 역시 참이 되고 우리를 기대케 하시는 말씀이 됩니다. 보내 주실 성령을 약속하신 말씀이 그러하고,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고 감사하고 있다면 그분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축복의 말씀으로, 능력 있는 약속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것이 부활을 고백하고 축하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신앙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진리로 받고 그 말씀 따라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다 깊은 차원으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고백은 단순히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일차적인 의미이죠. 즉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은 부활 신앙의 일차적인 단계입니다. 오히려 부활 신앙은 우리를 더 깊은 차원으로 인도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들, 그 약속들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무게를 알아 가는 삶입니다. 그리고 주옥과도 같은 말씀들을 따라 살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5)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분의 말씀이 참임을 증명하셨듯이, 우리도 말씀 따라 살면서 주님의 말씀이 참이 되고 예스가 되는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을 통하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20)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죽으면 다시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고백하는 차원에서 멈춰야 하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부활하신 사실이 우리에게 정말 진리라면, 예수님이 하신 수많은 말씀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부활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하시던 대로 그가 살아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4월 1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도다” (마 28:1-10)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167, 171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요 28:1-10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4월 1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이 부르는 최고의 고백이고 노래입니다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의 쏘는 것으로부터 영원히 풀려났다는 승리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진실로 부활하셨다는 이 부활의 소식이 오늘날도 우리 삶의 현장에서 고대하며 기다리는 선포와 노래가 되고 있습니까?

   

설교의 요약

    성경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그 현장에 있던 자들 중 어느 누구도 고대하거나 기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제자들도예수님의 시신에 향을 바르기 위해 무덤 앞에 섰던 여인들도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죠. “고난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과 여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지만제자들과 여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대하거나 믿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이들에게는 사실 부활신앙이 없었습니다.

    빈 무덤 앞에 두려워하던 여인들을 향해 주의 천사가 말합니다.(마 28:5-6)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의 부활은 결코 숨겨졌던 것이 아닙니다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고이것을 사람들이 들었으나 이를 기대하거나 믿지 않았다는 겁니다오늘날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를 믿지 않습니다부활의 사건은 인간의 믿음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죠간절한 기다림이 이룬 결과도 아닙니다오직 부활의 신비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열렸습니다부활하신 예수님은 여인들에게뿐 아니라 베드로열두 제자오백여 형제들에게그리고 야고보와 사도 바울에게까지 나타나셨습니다이들의 믿음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그러므로 부활신앙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는 부활의 은혜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대로 부활하셨다는 천사의 말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왜 그토록 너희들이 예수님 말씀을 들었는데도 믿지 못하느냐는 안타까움입니다또한 천사의 이 말은 누구도 믿지 않았던 그 부활이 진실로 실제임을예수님의 말씀대로 다 이루어졌음을 증명하고 있는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와 신뢰의 선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말씀하시던 대로 부활하셨다” 선포하고 이를 진정 기뻐하고 감사한다면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을 축복의 말씀으로능력 있는 약속의 말씀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그리고 이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일차적인 의미를 넘어서 더 깊은 차원주님께서 주신 주옥같은 말씀들을 따라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주님의 이 모든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실제가 된 이 말씀을 붙들고 부활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나누기

1. 예수님의 부활소식이 어떻게 들려옵니까부활의 참 기쁨을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의 부활하셨음을 진실로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마무리기도

    아버지 하나님부활하신 예수님 통해 참 생명을 얻습니다내게 주신 인생이 정말 귀하고 값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주님께서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음을 기뻐하며 이 모든 것을 믿기에오늘도 주님 말씀 따라 부활의 삶을 기쁨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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