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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말씀으로 오신 아기 예수

요한복음 1: 1~5, 9~14

김경진 목사

2022.12.25

<별이 빛나는 밤에 아버지의 결단이 이루어집니다.>

 

별이 빛나는 밤. stary, stary night! 별들이 반짝이던 어느 날 밤입니다. 한 늙은 아버지가 무거운 마음으로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 가득 별들이 반짝이는데 그의 마음은 기쁘지가 않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중)

 

제물로 아들을 바치기 위해 떠난 길, 사흘 날 사흘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밤이 오고 하늘에 별들이 가득할 때마다 아브라함은 과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합니다. 어느 날 저녁,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나가셔서 밤하늘의 별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죠.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5 중)

 

그러나 이 약속은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아들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은 얻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또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백세가 되었을 때, 정말 나이가 들어 생산할 능력조차 없을 그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선물로 주신 아들의 이름은 이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웃음이 되는 아들이었죠. 그를 마침내 웃게 한 기쁨이었습니다. 이삭이 자라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십니다. “너의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나에게 제물로 바치라.”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기적처럼 나이 백세에 얻은 아들인데, 아이를 바치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단 말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을 별과 같이 만드시겠다는 그 말씀 말입니다.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갑니다. 저는 모리아 산을 향하던 사흘 길을 생각할 때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하였을지 생각하곤 합니다. 그가 정말 일관되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아들을 바쳐야겠다는 마음이 한결같았을까 묻게 됩니다.

특히나 아들과 함께 밤을 보낼 때마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봅니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데, 그리고 그 별들을 보게 하시며 그의 자손이 이와 같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니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사흘이 지나고 마침내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올라 이삭을 제물로 바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급하게 부르십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중)

 

그리고 그날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하여 바쳐질,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 한 마리를 보게 하시며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모든 제사가 다 드려진 후에 하나님이 사자를 통하여 이렇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창 22:16b~17)

 

그리고 수천 년의 지났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이 빛나는 밤이 수없이 지나가고, 또 지나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방의 박사들이 별빛이 찬란한 그 밤에 한 큰 별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온 하늘을 채우던 별들 중 그 별은 유독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강한 빛을 내며 그들을 인도하고 있었죠. 별이 지시하는 곳을 따라가는 일이 그들에겐 신비로운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이 큰 별이 뭇 별들과 함께 빛나던 밤, 그 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그날이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보낸 밤과 연관하여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시던 밤에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아들이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그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죄 없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맞으실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과연 어떠하셨을까요. 아마도 한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그 밤을 보내지 않으셨을까 생각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기 위해 떠난 사흘 밤처럼 하나님께는 성탄의 밤, 별이 빛나던 그 밤에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밤에 하나님은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시기로 결단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의 행동과 결단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 3:16a)

 

요한일서 4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일 4:9)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내어놓았다면, 하나님은 베들레헴에서 하나님의 외아들을 내어놓으십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내어놓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드러냈다면, 하나님은 베들레헴에서 자신의 외아들을 내어놓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별이 빛나던 그 밤,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확증이었습니다. 사랑의 징표였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결단을 따라 아들이 이 땅에 몸을 입고 옵니다.>

 

수많은 별들 가운데 특별하게 빛나던 그 별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처럼 많아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모든 별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상징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인류를 상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별들 중에 유독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큰 별이 있었습니다. 그 별을 동방의 박사들이 보게 됩니다. 이 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특별한 별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별이 왕의 별임을 직감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경배하기 위하여 길을 떠납니다.

물론 세상의 임금인 줄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별은 인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별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별들과 함께 빛나고 있었지만 그 별은 다른 별들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들어오신 하나님, 바로 성육신의 신비가 모든 별들과 함께 반짝이되 또한 유독 빛나는, 모든 별들과 함께 움직이는 듯 보이나 우주의 질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 큰 별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요한복음 1장은 성육신의 놀라운 신비,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1~5)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표현하며, 또 빛으로 표현합니다. 빛으로 표현된 예수님에 대한 표현은 우리에게 하나의 그림을 그려 줍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은 빛이 비쳤으나 세상이 알지 못했다고 증언합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동방박사를 향해 비추어진 그 빛을 대입해 봅니다. 거룩한 성탄의 밤, 한 별이 그의 오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그것을 보고 경배하러 왔지만, 대부분은 그가 온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셔서 보게 하신 이들만이 주님의 오심을 알 뿐입니다. 참 빛은 왔으나 세상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한복음이 말하는 빛은 우리가 보고 식별하는 차원의 빛이 아닙니다. 요한은 이 빛을 생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빛을 ‘참 빛’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참 빛이 있고, 그렇지 않은 빛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적어도 두 가지 차원의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선 창세기가 알려 주는 빛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창 1:3~5a)

 

창세기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빛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만드신 빛입니다. 어둠과 대비되는 빛입니다. 그러니깐 ‘밝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것들이 보이도록 만드는 어떤 것이며 모든 것을 드러내는 어떠한 것입니다. 우리는 빛을 통하여 눈으로 인식된 것들을 봅니다. 빛이 없다면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말하는 빛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말하는 참 빛은 전혀 다른 차원의 빛입니다. 요한복음은 세상이 이 빛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참 빛은 생명과 관계되는 빛입니다. 창세기의 빛이 어둠과 대비되는 빛이라면, 이 빛은 도리어 죽음과 대비됩니다. 그래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창세기의 빛은 창조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빛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말하는 빛은 만물을 지으신 빛입니다. 그러므로 창조하는 빛입니다. 창조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의 원인으로서의 빛입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가 말하는 빛은 보이게 하는 빛이지만, 요한복음이 말하는 빛은 존재하게 하는 빛입니다. 그래서 생명입니다.

 

<참 빛과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다시 태어납니다.>

 

요한은 이 빛을 창세기와 연결시키면서 이야기합니다. 빛이 곧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만드셨듯이, 이 빛은 모든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며 존재케 하는 힘입니다. 이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이 빛이 이 땅에 왔으나 세상이 알아차리지 못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요 1:9~11, 새번역)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2년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성탄절에서 범종교적인 가르침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박애와 사랑, 겸손과 낮아짐, 어린이와 평화와 같은 주제들을 떠올리고 그 의미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성탄절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값진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의미에만 머문다면 성탄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외아들을 고통 속에 내어놓으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완연하게 드러난 바로 그 날입니다.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참 빛, 존재케 하는 빛, 창조의 빛, 그 빛이 세상에 와서 우리를 비춘 날입니다. 창조와 함께 계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은 이 땅에 생명을 불어 넣으시는 분이시며, 새로운 창조의 물꼬를 트신 분이십니다. 생명을 주어서 온 세상을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죽음으로 신음하는 이 땅에 생명을 다시 낳으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죽음으로 치닫던 세상이 아기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하여 숨통을 트게 된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 3:1 중)

 

사데교회를 향하신 말씀은 사실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존재하는 것 같으나 실은 존재하지 않는 우리입니다. 살아는 있으나 죽음이 내재된 자들입니다. 결국은 파멸로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우리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오셔서 온전한 존재로 세워 주십니다. 생명을 가졌으나 실은 죽음을 품은 우리들이 드디어 죽음을 넘어서 생명으로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오신 주님의 선물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요 1:11~12, 새번역)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참 빛으로, 또 말씀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다시 세워 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오심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에게는 소망입니다. 죽음에 둘러싸여 탄식하는 우리에게 희망의 소식입니다. 세상살이에 지쳐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소망이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죽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다시 만드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떠는 모든 자들에게 또다시 희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 성탄의 기쁨이 함께 예배드리는 소망의 모든 성도들 위에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Baby Jesus Who Came As the Light and the Word

 

John 1:1-5, 9-14

 

Stary, stary night!Anold manlooksupintothenightsky, his heartheavy.Theskyislitwithstars,but there is no joy in his heart.

 

“Takeyourson,youronlyson,whomyoulove—Isaac—andgototheregionofMoriah.Sacrificehim there asaburntofferingonamountain I willshowyou. ”(Genesis 22:2)

 

Threedaysand three nightshavepassedsinceAbrahamleft on his journey tosacrificehisonly son.Everynight,wheneverheseestheskybrightlylitwithmillions ofstars,hisheartissadand heavy,fortheyremindhimofGod’s promise.

 

HeremembersthenightwhenGodtookhimouttoseethestars, promising, “Lookupatthesky and countthestars—ifindeedyoucancountthem.Soshallyour offspring be.”(Genesis 15:5)

 

Frustratingly,however, it seemed that the promise would not be fulfilled. Hewaitedandwaited,buttherewasnoson.HegotIsmael, a son through hisservantHagar,butGodsaidhewasnothisheir.Yearswentby.

 

Finally, at100yearsold,whenhehadlostallabilitytoproduceachild,Godgavehimachild:Isaac.IsaacwasAbraham’ssmile.Hewashisjoywhofinallymadehimsmile.

 

ButwhenIsaaccameofage,GodcommandedAbraham, “SacrificeyourbelovedIsaac,youronlyson,asaburntoffering.”

 

Howcanthisbe?Thiswashisson,hismiracle!IfAbrahamsacrificedhim,howwouldGodever keep His promise to make his descendants as countless asthestarsinthesky?

 

WheneverImeditateon the story ofAbrahamtakingthat three-day trip tosacrificehisson,Iwonderhowhewouldhavefeltduringthosethreedays.Wouldhis hearthavebeenunswervingandfixedtowardGodall the time?Wouldhehavebeenresolute throughout, thinking only of sacrificinghisson?

 

Moreover,howwouldhehavefelteachnightashesleptwithhisson?Theskywouldhavebeenfilledwithstars.GodtoldhimundersuchaskythatHewouldmakehisoffspringasnumerousasthe stars.HowwouldAbrahamhavefeltashe anticipated thedeathofhisonlyson?

 

Afterthethree-dayjourney,AbrahamfinallyattemptstosacrificehissononMountMoriah.Atthatverymoment, however,Godurgentlycallsout to him, “Abraham!Abraham!”

 

“Donotlayahandon the boy.Donotdoanythingtohim.NowIknowthatyoufearGod,becauseyouhavenotwithheldfrommeyourson,youronlyson.”(Genesis 22:12)

 

ThenGodmakesAbrahams look up to see aramcaughtbyitshorns thatwouldserveasthesacrifice.Abraham sacrifices this ram to God instead of Isaac.Aftermaking the offering,Godtellshimthroughanangel:

 

“[…] because youhavedonethisandhavenotwithheldyouson,youronlyson,Iwillsurelyblessyou and makeyourdescendantsasnumerousasthestarsintheskyandas the sandontheseashore.Yourdescendantswilltakepossessionofthecitiesoftheirenemies,” (Genesis 22:16b-17)

 

Thousandsofyearspass. Millionsofstarrynightsgo by,asifoblivioustothispromiseofGod.

 

Butthenonestarry night…

 

Some wise men from theEast are traveling a long way, followingabig,brightstar!

 

Thestartheysawwasnotanordinarystar.Amongthemyriadofstars in the sky,thisone wasbrighterandmore powerfulthantherest,and it caughttheirattention.Sotheystarteda long journey to reach the placeitwas pointing.

 

Thatnight—whenthisbigstarwasshining brightly inthestarrynight—wastheverynightthatGodsentHisone and only Sonto be born onearth.

 

As Abraham’s story of journeying to Mount Moriah to sacrifice his son overlapped with the story of the Nativity, I wondered, ‘HowwouldGodhavefeltonthatverynightwhenHesentHisSontotheworld?’

 

GodknewwhatHisSon mustdoon earth.Whatwouldhave gone on in the heart of the Father?CanyouimagineGod’sheartasHeanticipatedthedeathofHisSonon the cross?That night, when Christ was born, God’s heart would have been restless.

 

On that starry Christmas night, God would have been tormented—just as Abraham was torn during the journey to Mount Moriah.

 

Yetitwasthevery night thatGodsentHis one and onlySontosave theworld.

 

ThisishowJohn3:16describesGod’s decision and resolve:

 

“ForGodsolovedtheworldthathegavehisoneandonlySon,”(John 3:16a)

 

John1alsotestifies:

 

“ThisishowGodshowedhisloveamongus:HesenthisoneandonlySonintotheworldthatwemightlivethroughhim.”(John1 4:9)

 

IfAbrahamsacrificedhisoneandonlysonatMountMoriah,GodsacrificedHisoneandonlySonatBethlehem.IfAbrahamprovedhisfearfortheLordbygivinghissonatMountMoriah,GodshowedHisloveforusbygiving usHisoneandonlySonatBethlehem.

 

Yes.Onthat starrynightinBethlehem,the birth ofbabyJesuswasGod’sconfirmationofHisamazing loveforus.

 

Let’sconsiderthatbig,brightstarthatstoodoutfrom the rest.Godclearlypromised that Abraham’sdescendantswouldbeasnumerousasthestarsinthesky.SoallstarswouldhavesymbolizedAbraham’soffspring.Ina broader sense,theywouldhaverepresented the wholeofhumanity.

 

Buttherewasonespecialstarthatshonemorebrightlythatalltherest.Thiswastheverystar spotted bythe Magi.

 

Thatstarrepresented adescendantofAbraham;butitwasspecial.The Magiknewinstinctivelythatitpointed toaking.Thatiswhytheyset off on ajourneyto worship thatking.They,ofcourse, believedthatthe star implied aking of this world. In truth, however,itrepresentedtheSonofGod,theSaviorofmankind.

 

Itshonealightlikeallthe other stars,butitwaswholly different.TheoneandonlySonofGodhadenteredtheworld.Godhad come tothisworldinhumanform.This mystery of theIncarnationismanifestedin thatbig,brightstarthatstoodoutfromalltherest, that special star thatmovedinawholly different wayfromtheorderoftheuniverse,althoughoutwardly itseemedtomovewiththerestof the stars.

 

John Chapter 1 describes this amazing mystery of the Incarnation, the coming of baby Jesus, as such: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He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all mankind.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John 1:1-5)

 

John describes Jesus as the Word, the Light.

 

Describing Jesus as the Light helps us draw a mental picture.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

 

John says that the Light shone, but the world did not know it.

 

Reading this Word in John, Iwas reminded of the light in Matthew that the Magi saw in the sky. On that holy night, that bright star displayed the coming of the true Star. The Magi, after studying that star, came to worship baby Jesus, but the rest of the world did not know that the King had come. Only those whose eyes were opened by God knew that the Christ was born.

 

The true Light came, but the world did not recognize Him.

 

In fact, however, the Light that John talks about is not the light visible to our eyes. John calls it the Light of the world, the true Light. Does this mean there is a “true Light” and a “false light”? Yes, it does.

 

In fact, the Bible tells us about two different lights.

 

First there is the “light” that Genesis talks about: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and he separat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Genesis 1:3-5a)

 

This light in Genesis is the light God created when He created the universe. It is the light—or brightness—as opposed to darkness. It is what makes everything visible, that which reveals all things. Through this light, we perceive things with our eyes. Without it, we cannot see.

 

But the “true Light” that John talks about is a light on a completely different level. John implies that the world did not have this Light. This true Light has to do with life. If the light in Genesis is in contrast to darkness, this true Light is opposed to death. That is why this Light is life.

 

The light in Genesis came to exist as a result of creation; it was made bythe Word of God. But the Light in John is the Light that creates all things. Therefore, it is the Light that creates. It is not the result of creation, but the source of it.

 

Therefore, the light in Genesis is the light that causes us to see. But the Light in John is the Light that causes us to exist. That is why it is life.

 

Therefore, John connects this Light to the Word, as he makes a connection to Genesis. This Light is the Word.

 

Just as God created the universe in the beginning with His Word, this Light is the power that creates all things and causes all things to exist. This Light is none other than Jesus Christ.

 

The Light came into this world, but the world, the darkness, did not recognize Him. This is the mystery of Christmas. The Bible says: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 He was in the world, and though the world was made through him, the world did not recognize him. He came to that which was his own, but his own did not receive him.”(John 1:9-11)

 

Dear brothers and sisters, we are celebrating Christmas of 2022.

 

At Christmas men often search for a pan-religious teaching, values that embrace all religions. We consider themes such as fraternity, love, humility, lowliness, children, and peace. Of course, these are precious values gifted to men by Christmas.

 

However, if we hold on only to such values, we may lose the true meaning of Christmas.

 

What is Christmas? It is the day on which the true Light came into this world to shine upon us. It is the day on which the Word, who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when the world was created, came to us.

 

Therefore, baby Jesus is the One who gives life to this world, the One who creates all things. He is the One that causes all things to exist, by giving life.

 

He is the One who came to breathe life into this world full of death.

 

Therefore, the birth of baby Jesus means that the world,headed toward death, is finally living and breathing through Him.

 

Jesus said to the church in Sadis, “you have a reputation of being alive, but you are dead.” (Revelation 3:1) We—who appear to be alive but are actually dead like the church in Sardis—come to exist and finally have meaning through Christ’s coming.

 

The gift of the Nativity is that we, who look alive but are actually dead, have finally become whole, possessing life beyond death. Therefore the Bible says:

 

“He came to that which was his own, but his own did not receive him. Yet to all who did receive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John 1:11-12)

 

The One who causes us to be reborn and become children of God, the One who causes us to exist and have life is the true Light. He is our Lord, the Word.

 

Therefore, the birth of baby Jesus is our hope. It is hope to us who are surrounded by death, groaning under its deadly grip. It is hope for all who are suffering in this world. Therefore, today, we can shout, “Merry Christmas! Our Lord is come! He came to deliver us! He came to save us, to transform us, who were dead, into new beings! The Lord is com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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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 1~5, 9~14

1~5, 9~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별이 빛나는 밤에 아버지의 결단이 이루어집니다.>

 

별이 빛나는 밤. stary, stary night! 별들이 반짝이던 어느 날 밤입니다. 한 늙은 아버지가 무거운 마음으로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 가득 별들이 반짝이는데 그의 마음은 기쁘지가 않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중)

 

제물로 아들을 바치기 위해 떠난 길, 사흘 날 사흘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밤이 오고 하늘에 별들이 가득할 때마다 아브라함은 과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합니다. 어느 날 저녁,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나가셔서 밤하늘의 별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죠.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5 중)

 

그러나 이 약속은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아들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은 얻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또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백세가 되었을 때, 정말 나이가 들어 생산할 능력조차 없을 그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선물로 주신 아들의 이름은 이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웃음이 되는 아들이었죠. 그를 마침내 웃게 한 기쁨이었습니다. 이삭이 자라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십니다. “너의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나에게 제물로 바치라.”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기적처럼 나이 백세에 얻은 아들인데, 아이를 바치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단 말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을 별과 같이 만드시겠다는 그 말씀 말입니다.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갑니다. 저는 모리아 산을 향하던 사흘 길을 생각할 때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하였을지 생각하곤 합니다. 그가 정말 일관되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아들을 바쳐야겠다는 마음이 한결같았을까 묻게 됩니다.

특히나 아들과 함께 밤을 보낼 때마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봅니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데, 그리고 그 별들을 보게 하시며 그의 자손이 이와 같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니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사흘이 지나고 마침내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올라 이삭을 제물로 바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급하게 부르십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중)

 

그리고 그날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하여 바쳐질,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 한 마리를 보게 하시며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모든 제사가 다 드려진 후에 하나님이 사자를 통하여 이렇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창 22:16b~17)

 

그리고 수천 년의 지났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이 빛나는 밤이 수없이 지나가고, 또 지나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방의 박사들이 별빛이 찬란한 그 밤에 한 큰 별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온 하늘을 채우던 별들 중 그 별은 유독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강한 빛을 내며 그들을 인도하고 있었죠. 별이 지시하는 곳을 따라가는 일이 그들에겐 신비로운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이 큰 별이 뭇 별들과 함께 빛나던 밤, 그 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그날이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보낸 밤과 연관하여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시던 밤에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아들이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그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죄 없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맞으실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과연 어떠하셨을까요. 아마도 한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그 밤을 보내지 않으셨을까 생각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기 위해 떠난 사흘 밤처럼 하나님께는 성탄의 밤, 별이 빛나던 그 밤에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밤에 하나님은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시기로 결단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의 행동과 결단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 3:16a)

 

요한일서 4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일 4:9)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내어놓았다면, 하나님은 베들레헴에서 하나님의 외아들을 내어놓으십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내어놓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드러냈다면, 하나님은 베들레헴에서 자신의 외아들을 내어놓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별이 빛나던 그 밤,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확증이었습니다. 사랑의 징표였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결단을 따라 아들이 이 땅에 몸을 입고 옵니다.>

 

수많은 별들 가운데 특별하게 빛나던 그 별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처럼 많아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모든 별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상징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인류를 상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별들 중에 유독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큰 별이 있었습니다. 그 별을 동방의 박사들이 보게 됩니다. 이 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특별한 별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별이 왕의 별임을 직감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경배하기 위하여 길을 떠납니다.

물론 세상의 임금인 줄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별은 인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별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별들과 함께 빛나고 있었지만 그 별은 다른 별들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들어오신 하나님, 바로 성육신의 신비가 모든 별들과 함께 반짝이되 또한 유독 빛나는, 모든 별들과 함께 움직이는 듯 보이나 우주의 질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 큰 별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요한복음 1장은 성육신의 놀라운 신비,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1~5)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표현하며, 또 빛으로 표현합니다. 빛으로 표현된 예수님에 대한 표현은 우리에게 하나의 그림을 그려 줍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은 빛이 비쳤으나 세상이 알지 못했다고 증언합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동방박사를 향해 비추어진 그 빛을 대입해 봅니다. 거룩한 성탄의 밤, 한 별이 그의 오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그것을 보고 경배하러 왔지만, 대부분은 그가 온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셔서 보게 하신 이들만이 주님의 오심을 알 뿐입니다. 참 빛은 왔으나 세상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한복음이 말하는 빛은 우리가 보고 식별하는 차원의 빛이 아닙니다. 요한은 이 빛을 생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빛을 ‘참 빛’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참 빛이 있고, 그렇지 않은 빛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적어도 두 가지 차원의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선 창세기가 알려 주는 빛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창 1:3~5a)

 

창세기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빛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만드신 빛입니다. 어둠과 대비되는 빛입니다. 그러니깐 ‘밝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것들이 보이도록 만드는 어떤 것이며 모든 것을 드러내는 어떠한 것입니다. 우리는 빛을 통하여 눈으로 인식된 것들을 봅니다. 빛이 없다면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말하는 빛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말하는 참 빛은 전혀 다른 차원의 빛입니다. 요한복음은 세상이 이 빛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참 빛은 생명과 관계되는 빛입니다. 창세기의 빛이 어둠과 대비되는 빛이라면, 이 빛은 도리어 죽음과 대비됩니다. 그래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창세기의 빛은 창조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빛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말하는 빛은 만물을 지으신 빛입니다. 그러므로 창조하는 빛입니다. 창조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의 원인으로서의 빛입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가 말하는 빛은 보이게 하는 빛이지만, 요한복음이 말하는 빛은 존재하게 하는 빛입니다. 그래서 생명입니다.

 

<참 빛과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다시 태어납니다.>

 

요한은 이 빛을 창세기와 연결시키면서 이야기합니다. 빛이 곧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만드셨듯이, 이 빛은 모든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며 존재케 하는 힘입니다. 이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이 빛이 이 땅에 왔으나 세상이 알아차리지 못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요 1:9~11, 새번역)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2년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성탄절에서 범종교적인 가르침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박애와 사랑, 겸손과 낮아짐, 어린이와 평화와 같은 주제들을 떠올리고 그 의미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성탄절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값진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의미에만 머문다면 성탄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외아들을 고통 속에 내어놓으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완연하게 드러난 바로 그 날입니다.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참 빛, 존재케 하는 빛, 창조의 빛, 그 빛이 세상에 와서 우리를 비춘 날입니다. 창조와 함께 계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은 이 땅에 생명을 불어 넣으시는 분이시며, 새로운 창조의 물꼬를 트신 분이십니다. 생명을 주어서 온 세상을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죽음으로 신음하는 이 땅에 생명을 다시 낳으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죽음으로 치닫던 세상이 아기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하여 숨통을 트게 된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 3:1 중)

 

사데교회를 향하신 말씀은 사실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존재하는 것 같으나 실은 존재하지 않는 우리입니다. 살아는 있으나 죽음이 내재된 자들입니다. 결국은 파멸로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우리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오셔서 온전한 존재로 세워 주십니다. 생명을 가졌으나 실은 죽음을 품은 우리들이 드디어 죽음을 넘어서 생명으로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오신 주님의 선물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요 1:11~12, 새번역)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참 빛으로, 또 말씀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다시 세워 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오심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에게는 소망입니다. 죽음에 둘러싸여 탄식하는 우리에게 희망의 소식입니다. 세상살이에 지쳐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소망이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죽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다시 만드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떠는 모든 자들에게 또다시 희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 성탄의 기쁨이 함께 예배드리는 소망의 모든 성도들 위에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12월 25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빛과 말씀으로 오신 아기 예수” (요 1:1-5, 9-14)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125장, 126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요 1:1-5, 9-14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2월 2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이제 나이가 들어 생산할 능력이 없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삭,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웃음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자라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창 22:2) 이삭과 사흘동안 모리아 땅으로 가던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특별히 아들과 함께 밤을 보낼 때마다, 그는 밤하늘의 가득한 별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브라함 때로부터 수천 년이 지났습니다. 수없이 많은 밤과 별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방의 박사들은 별빛이 찬란한 밤에 한 큰 별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별이 빛나던 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던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설교의 요약
모리아의 밤과 베들레헴의 밤을 비교해서 묵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던 그날 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아들이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을 알고 계신 하나님, 그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내어 놓았다면, 하나님은 베들레헴에서 그 외아들을 내어 놓으십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아들을 내어 놓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드러냈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외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별이 빛나던 그 밤,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확증이었습니다. 수많은 별들 가운데에서 특별히 빛나던 그 별을 다시 한번 묵상해봅시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상징하며, 넓게 보아 모든 인류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특별히 빛나는 별, 그 별은 바로 인류의 구원자이신 우리 주님의 별이었습니다. 그 별은 다른 모든 별들과 함께 빛나고 있었지만, 전혀 달랐습니다. 모든 별들과 함께 반짝이되 동시에 유난히 빛나는, 그리고 모든 별들과 함께 운행하되 우주의 질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큰 별,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 큰 별이 우리 주님의 성육신의 신비를 나타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빛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입니다. 이는 어둠과 반대되는 개념의 빛입니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어떤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빛을 통하여 사물을 인식하고 또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참 빛은 전혀 다른 차원의 빛입니다. 이 빛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이 아니라, 도리어 모든 만물을 지으신 빛입니다. 창조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의 원인입니다. 또한 이 빛은 보이게 하는 빛이 아니라, 존재하게 하는 빛 곧 생명의 빛입니다. 이 참된 빛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비밀입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단순히 범종교적이고 보편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참된 빛이 우리를 비춘 날입니다. 생명의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날입니다. 그리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온전한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누기
1. 성경(창세기/요한복음)이 말하는 빛에는 어떤 빛들이 있고, 무슨 차이가 있나요?

마무리기도
사랑의 하나님, 죽음이 만연하고 절망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 주님의 외아들을 보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새로운 생명의 빛으로 오신 주님, 말씀으로 오신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주님께서 창조하시는 새 생명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어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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