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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이여 깰지어다

이사야 51: 7 ~ 12

김경진 목사

2019.08.11

<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 깊은 곳에는 ‘유월절 신앙’이 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킬 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묻는 질문인데, 밤이 될 때 이렇게 질문합니다. “다른 날의 밤과 오늘 밤은 무엇이 다른가요? 오늘은 왜 누룩 없는 빵, 마짜만 먹나요? 오늘은 왜 쓴 나물만 먹나요?” 그때 어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른 날엔 우리는 누룩이 들어간 빵을 먹는단다. 하지만 유월절에는 누룩이 없는 빵, 마짜만 먹지.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 하던 시절, 반죽이 누룩으로 발효되는 것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단다. 이 마짜는 고통의 빵이다. 우리 조상이 눈물로 먹던 빵이다. 다른 날에는 다양한 야채를 먹는단다. 하지만 유월절에는 쓴 나물을 먹지. 우리의 인생이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할 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겪었던 쓰디쓴 시절을 기억하기 위함이란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 한 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수천 년 전 일이지만, 그들에게 그 경험은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역사를 기억했기에 오늘의 이스라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시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허락해 주셨지만, 그들은 수없이 다른 민족의 종이 되었고, 수차례 나라와 땅을 잃곤 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고, 앗수르의 포로가 되기도 했으며, 로마의 지배 아래 살기도 했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부터는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 정처 없이 흩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1948년, 다시 독립해 자신의 영토로 나라를 세웁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0년도 아니고, 40년도 아니고, 1900여 년을 흩어져 살던 민족이 어떻게 다시 나라를 세우며 한 민족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그들에게는 ‘유월절’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해마다 출애굽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비록 그들에게 나라가 없었고, 땅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 땅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으며, 유월절을 지켜온 것입니다. 천 년 그리고 또 천 년 동안 유월절을 지켜왔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지켜 보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 8·15 광복절을 어떻게 기억하며 기념하고 있습니까? >

몇 년 전 8월 15일, 일본의 나가사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나름 특별한 방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쟁 패망일인 그날, 공원에서 큰 행사가 개최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패망을 기억하는 행사였습니다. 8월 9일 11시 2분을 가리키는 시계가 여기저기서 보였습니다.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돼 7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은 그 시간, 11시 2분을 가리키는 시계였습니다. 그들은 그날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불행하게도,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기억은 없는 듯 보였습니다. 오직 자신들이 받은 피해만 기억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일본에서, 그동안 한국에서 경험한 것과는 너무 다른 또 다른 8월 15일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8월 15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니, 8월 15일이 늘 방학이어서 학교에서 특별한 행사를 한 기억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몇 번 드린 8.15 광복 기념 예배가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한복을 입고, “대한독립 만세!”를 몇 번 외치던 ‘만세 합창’ 정도가 기억날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왜 우리가 8.15 광복절을 그 정도로만 보내왔는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너무 갑자기 선물로 주어져서 그랬는지, 얼떨결에 얻은 광복이어서 그랬는지, 일제 억압의 고통스러운 시간에서 벗어난 ‘광복의 기쁨’을 기억하는 일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광복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한국전쟁 때문에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광복의 기쁨을 기억하고 누릴 만한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남과 북이 총을 겨누고 동족끼리 싸우느라, 공산주의를 막아내느라,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기억할 만한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아내느라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하는 다급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그날, 나가사키의 작은 역사관을 방문했습니다. 일본의 양심 있는 사람들이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관련된 역사적 자료를 전시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참으로 잔인한 일본을 보았습니다. 작두에 사람의 목을 집어넣고 자르면서도 웃고 있는 일본군의 사진이 보였습니다. 한국인을 포함한 많은 위안부의 사진도 있었습니다. 강제 징용당한 어린 소년과 같은 아이들의 모습, 우리의 형님들과 부모님과 같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날 8월 15일, 어느 공원에서는 자신의 패망과 희생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같은 골목 한 역사관에서는 일본의 만행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 광복 주일을 맞은 오늘,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의 현실을 직시합니다. >

우리는 8월 15일에 무엇을 기억합니까?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는 ‘일본이 과연 어떤 국가인가, 과연 어떤 국가였는가?’라는 사실을 되묻게 되는 역사적 시점에 서 있습니다. 우방국이라고 여겼던 일본이 얼마 전 우리나라를 수출우대국인 백색 국가에서 제외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결과가 우리나라의 외교적 미성숙과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방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그 비판에 반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 일을 통해 우리는 일본의 호전성과 우리나라를 굴복시키려는 지배 욕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던 날, 뉴스를 보면서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요? 왠지 전쟁이 일어난 것 같은 불안감이 오랫동안 마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혹자는 경제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과연 누가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더불어, ‘아니, 이 싸움은 결국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모두가 패자가 되는 싸움이 아닐까?’ 하는 또 다른 두려움도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열강들의 모습이 이전과는 너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는 미국발 신국가주의는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으로, 경제 및 정치 질서를 불안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자국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방이었던 우리나라마저 여러 면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남한을 사정거리로 하는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남한에 대한 협박과 비방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 군사훈련을 했고, 그들의 폭격기가 동해와 독도 영공을 침공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주위의 흐름이 온통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합니다. 온 열강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힘을 겨루며, 패권을 쥐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듯한 모습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런저런 프레임으로 굴레를 씌우고, 당파와 정파가 서로 싸우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많은 이들이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오늘의 현상이 구한말을 닮았다고 하며 두려움을 표합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정치・경제적인 현실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일본의 백색 국가 제외 결의로 갑자기 어려움을 당하게 된 기업인들도 많습니다. 앞뒤가 꽉 막힌 것 같은, 마치 함정에 빠진 것 같은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과도한 경쟁 체제 속에서 기업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기업인들이 많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줄곧 1위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특히 노인 빈곤율이 높아 노인이 자살하는 비율이 세계적으로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오늘도 자신의 빈곤과 불운을 한탄하며 자살을 시도하려는 노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뿐이겠습니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N포 세대’라는 말은 이미 오래된 자조적 용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급격하게 우울증 환자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살고 싶지 않은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두려운 이때, 우리는 광복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믿음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인정합니다. >

74년 전 광복절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해 봅니다. 수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저항했으며,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열강과 열강의 대결 속에서 선물처럼 주어졌습니다. 물론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으로 인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시아의 국가가 독립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들도 선물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74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이 땅에는 참으로 처참한 6.25 한국전쟁이 있었습니다. 동족 간에 죽고 죽이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형제자매임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수많은 청년이 이 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왜 우리가 싸웠습니까?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대립이었지만, 이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주변 열강의 싸움을 우리가 대신한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중국과 소련이라는 열강의 팽창과 미국과 일본이라는 열강의 팽창이 한반도에서 만나, 이념의 대결로 이어진 전쟁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볼모가 되어 그들의 전쟁에 희생당하고 만 것입니다. 전쟁 패망국은 독일과 일본이었습니다. 독일은 둘로 나뉘었는데, 정작 둘로 나눠져야 할 일본은 온전하고, 우리나라가 둘로 나뉘는 참으로 억울하고 한탄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 남한 땅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왕성하게 되고,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이 작은 땅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다른 민족,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교회가 성장했고, 믿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가는 곳마다 십자가가 보이는 나라, 밤마다 십자가가 서울을 지키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이 존재하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위대한 대한민국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주목하고, 세상 속에서 선진국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당당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언제 이 땅 이 백성이 이렇게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기가 있었습니까? ‘조용한 아침의 나라’정도요, 88올림픽 전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북한과 구별되지 않는 조그마한 나라일 뿐이었습니다. 언제 어느 때,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노래하는 이들을 환호하며 구름같이 몰려나온 적이 있었습니까? 어느 때에 세상의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달려드는 때가 있었습니까? 한국, 이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또다시 열강이 꿈틀거리는 지배욕을 경험하며 두려움에 빠집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늘 열강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회만 되면, 우리 민족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미국이라는 든든한 우방이 있었습니다. 세계의 경찰이요, 리더임을 자처하는 미국으로 인해 다른 열강들로부터 우리나라도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도 달라졌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 불안합니다. 더 두렵습니다.
다 아시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르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 이야기와 다르게 설명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관점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푸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다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자신의 관점과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목회자인 저의 생각이라고 여기셔도 좋습니다.

< 민족의 위기 가운데 ‘신앙의 눈’으로 우리의 잘못을 바라봅니다. >

오늘 8.15 광복 주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열강 가운데 여전히 둘러싸여 있으며, 그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고, 일본은 우리를 향해 사죄할 의사가 없으며, 우리 민족의 생존이 위협 받는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오늘 본문 이사야 51장을 받아듭니다. 이사야 51장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후, 하나님이 고레스를 통해 전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주셨지만, 그들은 역사 속에서 또다시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까요? 역사학자들이라면 ‘바빌로니아’라는 새로운 제국의 등장을 꼽을 것입니다. 새로운 큰 나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속국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입니다. 지역의 다른 나라도 모두 같은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유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이사야 1장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전합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사야 1:4)

그렇게 일어난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참외밭의 원두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이사야 1:7~8)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건설된 대한민국,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여기까지 이른 이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진노로 저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은 성공 앞에서 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동시에 주님의 백성은 위기 가운데서도 늘 자신을 말씀으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역사 앞에서 그리고 역사의 위기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이 대한민국의 위기가 어디서부터 도래했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는 이 위기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위기를 진단합니다. 이 위기가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내지 못하는 교회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목회자들,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교회답지 못한 교회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나름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해 왔지만, 하나님의 성도들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 왔지만, 그 일들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기와 엄습하는 불안 앞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야 합니다. 먼저 이 위기가 교회의 타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세상은 알지 못하는 것이지만, 믿음의 원리를 아는 이들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보이기에,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욱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보이는 현상만으로는 낙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세계열강 앞에서 얼마든지 건재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는 우리는, 우리의 죄악이 보이기에 두렵습니다. 교회의 죄악이 보이기에 두렵습니다.

<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신앙인은 ‘하나님의 인도와 동행’을 기억합니다. >

오늘 말씀 이사야 51장은 하나님의 진노로 폐허가 된 이스라엘, 그리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절실히 기도하던 신실한 이들을 향해 주신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51장 첫 절에서 하나님의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신실한 이들을 다음과 같이 부르십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이사야 51:1 중)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생각하여 보라.”라고 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신실한 이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죄악 때문에 이와 같은 고난이 왔다는 사실을 알리며, 마음으로 애통해 하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생각하여 보라.”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이사야 51:1~2 중)

하나님은 신실한 이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기적과 같은 시간을 생각하여 보라.”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어렵습니까? 힘듭니까? 모든 것이 막혀 있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생각하여 보라. 내가 너희와 함께했던 그 시간을 생각하여 보라. 내가 너희에게 기적을 이끌어 주며, 기적을 만들어 주며, 너희를 인도해 준 그날을 생각하여 보라.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었던 그날을 생각하여 보라.” 그리고 7절에서 다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이사야 51:7 중)

그런 뒤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옷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이사야 51:7~8 중)

여기서 비방은 조롱과 멸시를 뜻합니다. 열강의 조롱과 멸시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옷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조금은 답답해집니다. 심판하시려면 완전히 뒤엎어버리셨으면 좋겠는데, ‘옷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참으로 답답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의 신앙 경험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마치 옷에 좀이 먹는 듯 느리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 옷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좀이 먹어 들어가고 있다’는 이 표현, 이는 참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조금 더 강력한 표현으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남지만 말입니다.

< 역사의 위기 앞에서 깨어나야 할 이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

그래서인지 이스라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다시 이렇게 호소합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이사야 51:9~10)

여기서 라합은 기생 라합이 아니라, 바다의 큰 짐승을 가리킵니다. 라합과 용은 애굽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깨어나십시오.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 깨어나십시오.” 신실한 이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이사야 51:12)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상황을 무서워하지 말라. 위로하라. 오직 위로할 분, 소망을 줄 분은 나 자신이다. 하나님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52장 첫 절에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사야 52:1 중)

신실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깨웁니다. “큰일났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죄과입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깨소서, 깨소서. 깨십시오, 깨십시오.”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깨우고 싶어 합니다. 풍랑 속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우던 제자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깨우고 싶어 합니다. “깨소서, 깨소서. 주님,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리어 말씀하십니다. 신실한 종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시온아, 깰지어다! 시온아, 깰지어다! 나는 잠자고 있지 않다. 나는 깰 이유가 없다. 나는 깨어 있다. 너희가 깨어야 한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오늘 광복절을 기억하며, 다시 주님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예루살렘아, 나의 신실한 백성들아,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더럽고 추한 모습을 보이는 교회를 향해 다시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위기입니다. 믿는 자들이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이 민족을 위함입니다. 이 나라를 위함입니다. “깰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초대에 응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Awake, Zion!

Isaiah 51:7-12

At Passover the Israelites always ask this question: Why is today different from other days? The children ask their parents, ‘Why do we eat unleavened bread and bitter herbs?’ The parents answer, ‘We eat bread without yeast, matzah, because our ancestors fled Egypt in such a haste that they couldn’t wait for the dough to rise. Matzah is the bread of affliction. We eat bitter herbs to remember the bitterness of life in Egypt.’

Ever since Exodus, the Israelites have observed Passover without fail. Exodus, a historical event that happened thousands of years ago, is a present-day experience for them. I believe Israel is what it is today because it remembered its history. The history of the Israelites is truly amazing. Since the fall of Jerusalem in AD 70, the Israelites lived as nationless diaspora with no territory. But in 1948 they gained independence and rebuilt their nation—an unprecedented event in modern history. A people that lived nationless for almost 1900 years rebuilt its country. How on earth was this possible? It was because the Israelites always kept Passover. They remembered Exodus. They had God.

A few years ago, I visited Nagasaki, Japan on August 15. A big event was being held in a park to commemorate the end of World War II. The Japanese were commemorating their surrender. Many clocks were on display with the time frozen at 11:02, 9th of August—the time that the atomic bomb fell on Nagasaki, killing more than 70,000 people. The Japanese were remembering that day. This scene was vastly different from Korea’s Liberation Day.

This made me look back on how we, Koreans,celebrate August 15. There weren’t any special ceremonies at school when I was young. Perhaps it was because it was during summer holidays. We had Liberation Day Sunday service at church where we shouted, “Long live Korean independence!” But that was it. Perhaps Koreans don’t remember the joy of liberation as much as we should because it came to us so suddenly, like an unexpected gift. Or perhaps it’s because the tragic Korean War happened only years after and we were busy fighting North Korea and the communists.

On August 15, the same day that I visited the park, I visited a small history museum in Nagasaki. Run by conscientious Japanese, it displayed Japan’s atrocities during World War II, including Korean sex slaves. While some Japanese commemorated Japan’s surrender on August 15, others looked back on its atrocities.

What do Koreans remember on August 15? We are at an important point in history, asking ourselves this question: ‘What is Japan to us?’ Recently, Japan, whom we considered a close ally, removed Seoul from its “white list.” This confirmed Japan’s belligerence and ambition toward Korea. On the day Japan made this decision, I was waiting anxiously, listening to the news. Some call this a trade war. I fear that there will be no winners but only losers in this war.

My fears did not stop there. The powers surrounding the Korean peninsula are behaving differently. The international economy and global order are witnessing unease with the Trump administration intensifying pressure on China on multiple fronts. The United States is also pressuring its ally Korea to maximize its national interest. North Korea continues to fire ballistic missiles, putting South Korea within its range.It continues to threaten and denounce the South. Meanwhile, China and Russia conducted joint military drills, invading our territorial air and sea.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order are making us uneasy. It appears that powerful countries surrounding the Korean Peninsula are struggling for hegemony.

What about our nation? Factionalism is ruining domestic politics—a pitiful sight. Some fearfully point out that Korea’s situation today is similar to that of the Korean Empire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it fell amidsta fierce power struggle among nations.Looking at Korea today, we feel much anxiety. Furthermore, Korea continues record the highest suicide rate among OECD countries. Many people are suffering from depression and mental disorders, too. This week, we are celebrating Liberation Dayamidst such crises.

Let’s look back on Korea’s independence 74 years ago. How was this miracle possible? CountlessKoreans resisted and fought hard for independence. However, liberation was achieved not by our strength. It came to us like a gift amidst a fierce international power struggle.

And 74 years have passed since then. In that time, there was the devastating Korean War, a fratricidal tragedy. We gave our lives to guard free democracy and fight the North that invaded us. It was a war between two ideas, but, at the same time, it was a sort of proxy war. Two forces—China and the Soviet Union on one side and the United States and Japan on the other—clashed on the Korean Peninsula. It was Germany and Japan that lost in World War II and Germany was divided. However, it was Korea that was painfully divided instead of Japan.

Indeed, it was God’s grace that at least South Koreans were able to guard free democracy and their faith. Decades passed. In this small land, we became a people that depended on the Lord. South Korea saw an unprecedented growth of churches and believers. Red neon crosses are seen everywhere in Korea, as if guarding this country at night. The world now has its eyes on Korea. We have become a confident, advanced nation. This is an unprecedented time in Korean history. We were known only as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and in 1988 people could barely distinguish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But now young people across the globe are crazy about Korean singers and learn Korean. When did such a thing ever happen in our history? The Republic of Korea has risen. We, believers, believe that this was God’s grace.

However, we are now anxious as we see great powers vying for power once again. The Korean Peninsula has always been surrounded by great powers. They always wanted to rule this land whenever they had the chance. But, up to now, we had a solid ally, the United States—the world’s policeman that protected Korea from other powerful nations. But that global leader is now changing. Its “America First” policy seems rather crude and cheap. It doesn’t seem to protect us anymore but seems to want to take from us now. This makes us more uneasy and fearful.

I have been talking about things that we all probably know. Some of you may hold different views. But, as we celebrate Liberation Day this week, I just wanted us tobe aware of the fact that Korea continues to be surrounded and threatened by great powers.

Today’s scripture from Isaiah 51is God’s message spoken through Cyrus after Israel is taken captive by Babylon. God’s delivered Israel from Egypt, but it became a captive again—this time to Babylon. How did this happen? Historians explain that it was because of the rise of a new empire, Babylon. With a rising new power, it was only natural that Israel became subject to it, just like many other nations at the time. However, the Bible gives a different explanation. It was because Israel turned from God.

Therefore, Isaiah chapter 1 delivers God’s message of anger: “Woe to the sinful nation,a people whose guilt is great,a brood of evildoers,children given to corruption!They have forsaken the Lord;they have spurned the Holy One of Israeland turned their backs on him.” (Isaiah 1:4) And the result was this: “Your country is desolate,your cities burned with fire;your fields are being stripped by foreignersright before you,laid waste as when overthrown by strangers.Daughter Zion is leftlike a shelter in a vineyard,like a hut in a cucumber field,like a city under siege.” (Isaiah 1:7-8) Since Israel is a chosen people, it is very significant that it understands history in this way.

What about Korea then? Are we a chosen people, too? God wants the gospel to be preached to all peoples and they will all be God’s people, but there is no proof that the Korean people was called as a chosen people. We act and pray as if we are God’s chosen people, but Christians only take up 20% of Korea’s population. This is a high ratio compared to other Asian countries, but, still,it is hard to say that we are a chosen people.

Yet, it is true that Korea’s modern history gave Christians great pride in terms of God’s guidance. During Japanese colonial rule, many believers in this land called out to the Lord. Many Koreans took part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but, at the same time, countless Christians kneeled before God each morning and prayed for Korea’s liberation. And these prayers were answered, miraculously. God gave us a precious gift, liberation.

However, that joyous moment was short-lived for communism emerged, threatening to obliterate Christianity. Koreans fought hard against this anti-Christ force. And we built a free democracy where religious freedom is upheld, and Koreans freely praise and worship our Lord. After this, Korea witnessed amazing growth. Yes, there was dictatorship and, shamefully, Christians failed to live up to their faith in that era. But believers who cherished freedom of faith continued to intercede for their county even in times of limited freedom. To Christians, South Korea was a land of God’s blessings. Democracy flourished and the economy developed. Koreans achieved asuccess unprecedented in the world.

We believers witnessed this. All this was possible because we prayed, and we have come to believe that our nation became powerful and prosperous because of our prayers. Of course, the world does not share this view. It explains Korea’s history and global changes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Yet, we believers believe that we led our nation’s history and, at the center of it, there was God.

However, a new crisis is now emerging. Japan’s decision to remove Korea from its “white list” signals a change in a new power. We are entering a new stage. That is why we are fearful as we see these changing currents.

As a Christian, I believe that at the bottom of Korea’s crisis lie Christians and the corruption of churchesthat made God angry. The world cannot understand this, but Christians who understand the principles of faith can. I see God’s wrath upon us, and that is why I fear for the future of this country.

Today’s scripture from Isaiah chapter 51 is God’s message of consolation to the faithful Israel captives in Babylon who call out to God. It is God’s comforting message to Israel that is now in ruins due to God’s wrath. God says in verse 1: ““Listen to me, you who pursue righteousnessand who seek the Lord:” (Isaiah 51:1) God continues to say,“Look to.” To the faithful in tribulation, God says, “Look to the rock from which you were cutand to the quarry from which you were hewn;look to Abraham, your father,and to Sarah, who gave you birth.When I called him he was only one man,and I blessed him and made him many.” (Isaiah 51:1-2)

In verse 7, he calls the faithful: “Hear me, you who know what is right,you people who have taken my instruction to heart.” (Isaiah 51:7) Then he says to them, “Do not fear the reproach of mere mortalsor be terrified by their insults.For the moth will eat them up like a garment;the worm will devour them like wool.But my righteousness will last forever,my salvation through all generations.” (Isaiah 51:7-8)

We realize one thing from these verses. God says that “the moth will eat them up like a garment” and “the worm will devour them like wool.” These expressions signify that destruction will come gradually. We have had similar experiences. Sometimes, God’s anger feels like a moth eating up a garment. From the outside, it appears the garment is intact. But the expression “the moth will eat them up like a garment” gives us much food for thought. One may wonder why God didn’t comfort the Israelites with a more powerful expression.

Perhaps it was out of this frustration that the Israelites implore, “Awake, awake, arm of the Lord,clothe yourself with strength!Awake, as in days gone by,as in generations of old.Was it not you who cut Rahab to pieces,who pierced that monster through?Was it not you who dried up the sea,the waters of the great deep,who made a road in the depths of the seaso that the redeemed might cross over?” (Isaiah 51:9-10)

God answers them: “I, even I, am he who comforts you.Who are you that you fear mere mortals,human beings who are but grass.” (Isaiah 51:12) He goes on to say in chapter 52, “Awake, awake, Zion,clothe yourself with strength!Put on your garments of splendor,Jerusalem, the holy city.The uncircumcised and defiledwill not enter you again.” (Isaiah 52:1)

The faithful awaken God. They say, “Awake, awake…” But God tells them to be awake instead: “Awake, awake, Zion!” In a storm we want to wake God, like the disciples who woke Jesus who was fast asleep in a storm. But our Lord tells us to be awake instead. Awake, Awake.

As we celebrate Liberation Day this week, I hope we can hold on to God’s words once again. He is telling us to be awake. Awake, awake, Zion! Put on your garments of splendor,Jerusalem, the holy city. This is God’s message to churches that have become ugly and corrupt. He is urging us once again to be awake. We are in a crisis. We believers must, once again, awake—for this nation, for this people. This is God’s calling toward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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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 7 ~ 12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 깊은 곳에는 ‘유월절 신앙’이 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킬 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묻는 질문인데, 밤이 될 때 이렇게 질문합니다. “다른 날의 밤과 오늘 밤은 무엇이 다른가요? 오늘은 왜 누룩 없는 빵, 마짜만 먹나요? 오늘은 왜 쓴 나물만 먹나요?” 그때 어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른 날엔 우리는 누룩이 들어간 빵을 먹는단다. 하지만 유월절에는 누룩이 없는 빵, 마짜만 먹지.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 하던 시절, 반죽이 누룩으로 발효되는 것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단다. 이 마짜는 고통의 빵이다. 우리 조상이 눈물로 먹던 빵이다. 다른 날에는 다양한 야채를 먹는단다. 하지만 유월절에는 쓴 나물을 먹지. 우리의 인생이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할 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겪었던 쓰디쓴 시절을 기억하기 위함이란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 한 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수천 년 전 일이지만, 그들에게 그 경험은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역사를 기억했기에 오늘의 이스라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시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허락해 주셨지만, 그들은 수없이 다른 민족의 종이 되었고, 수차례 나라와 땅을 잃곤 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고, 앗수르의 포로가 되기도 했으며, 로마의 지배 아래 살기도 했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부터는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 정처 없이 흩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1948년, 다시 독립해 자신의 영토로 나라를 세웁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0년도 아니고, 40년도 아니고, 1900여 년을 흩어져 살던 민족이 어떻게 다시 나라를 세우며 한 민족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그들에게는 ‘유월절’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해마다 출애굽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비록 그들에게 나라가 없었고, 땅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 땅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으며, 유월절을 지켜온 것입니다. 천 년 그리고 또 천 년 동안 유월절을 지켜왔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지켜 보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 8·15 광복절을 어떻게 기억하며 기념하고 있습니까? >

몇 년 전 8월 15일, 일본의 나가사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나름 특별한 방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쟁 패망일인 그날, 공원에서 큰 행사가 개최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패망을 기억하는 행사였습니다. 8월 9일 11시 2분을 가리키는 시계가 여기저기서 보였습니다.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돼 7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은 그 시간, 11시 2분을 가리키는 시계였습니다. 그들은 그날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불행하게도,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기억은 없는 듯 보였습니다. 오직 자신들이 받은 피해만 기억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일본에서, 그동안 한국에서 경험한 것과는 너무 다른 또 다른 8월 15일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8월 15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니, 8월 15일이 늘 방학이어서 학교에서 특별한 행사를 한 기억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몇 번 드린 8.15 광복 기념 예배가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한복을 입고, “대한독립 만세!”를 몇 번 외치던 ‘만세 합창’ 정도가 기억날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왜 우리가 8.15 광복절을 그 정도로만 보내왔는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너무 갑자기 선물로 주어져서 그랬는지, 얼떨결에 얻은 광복이어서 그랬는지, 일제 억압의 고통스러운 시간에서 벗어난 ‘광복의 기쁨’을 기억하는 일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광복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한국전쟁 때문에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광복의 기쁨을 기억하고 누릴 만한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남과 북이 총을 겨누고 동족끼리 싸우느라, 공산주의를 막아내느라,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기억할 만한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아내느라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하는 다급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그날, 나가사키의 작은 역사관을 방문했습니다. 일본의 양심 있는 사람들이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관련된 역사적 자료를 전시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참으로 잔인한 일본을 보았습니다. 작두에 사람의 목을 집어넣고 자르면서도 웃고 있는 일본군의 사진이 보였습니다. 한국인을 포함한 많은 위안부의 사진도 있었습니다. 강제 징용당한 어린 소년과 같은 아이들의 모습, 우리의 형님들과 부모님과 같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날 8월 15일, 어느 공원에서는 자신의 패망과 희생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같은 골목 한 역사관에서는 일본의 만행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 광복 주일을 맞은 오늘,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의 현실을 직시합니다. >

우리는 8월 15일에 무엇을 기억합니까?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는 ‘일본이 과연 어떤 국가인가, 과연 어떤 국가였는가?’라는 사실을 되묻게 되는 역사적 시점에 서 있습니다. 우방국이라고 여겼던 일본이 얼마 전 우리나라를 수출우대국인 백색 국가에서 제외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결과가 우리나라의 외교적 미성숙과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방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그 비판에 반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 일을 통해 우리는 일본의 호전성과 우리나라를 굴복시키려는 지배 욕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던 날, 뉴스를 보면서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요? 왠지 전쟁이 일어난 것 같은 불안감이 오랫동안 마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혹자는 경제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과연 누가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더불어, ‘아니, 이 싸움은 결국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모두가 패자가 되는 싸움이 아닐까?’ 하는 또 다른 두려움도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열강들의 모습이 이전과는 너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는 미국발 신국가주의는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으로, 경제 및 정치 질서를 불안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자국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방이었던 우리나라마저 여러 면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남한을 사정거리로 하는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남한에 대한 협박과 비방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 군사훈련을 했고, 그들의 폭격기가 동해와 독도 영공을 침공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주위의 흐름이 온통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합니다. 온 열강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힘을 겨루며, 패권을 쥐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듯한 모습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런저런 프레임으로 굴레를 씌우고, 당파와 정파가 서로 싸우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많은 이들이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오늘의 현상이 구한말을 닮았다고 하며 두려움을 표합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정치・경제적인 현실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일본의 백색 국가 제외 결의로 갑자기 어려움을 당하게 된 기업인들도 많습니다. 앞뒤가 꽉 막힌 것 같은, 마치 함정에 빠진 것 같은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과도한 경쟁 체제 속에서 기업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기업인들이 많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줄곧 1위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특히 노인 빈곤율이 높아 노인이 자살하는 비율이 세계적으로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오늘도 자신의 빈곤과 불운을 한탄하며 자살을 시도하려는 노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뿐이겠습니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N포 세대’라는 말은 이미 오래된 자조적 용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급격하게 우울증 환자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살고 싶지 않은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두려운 이때, 우리는 광복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믿음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인정합니다. >

74년 전 광복절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해 봅니다. 수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저항했으며,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열강과 열강의 대결 속에서 선물처럼 주어졌습니다. 물론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으로 인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시아의 국가가 독립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들도 선물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74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이 땅에는 참으로 처참한 6.25 한국전쟁이 있었습니다. 동족 간에 죽고 죽이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형제자매임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수많은 청년이 이 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왜 우리가 싸웠습니까?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대립이었지만, 이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주변 열강의 싸움을 우리가 대신한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중국과 소련이라는 열강의 팽창과 미국과 일본이라는 열강의 팽창이 한반도에서 만나, 이념의 대결로 이어진 전쟁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볼모가 되어 그들의 전쟁에 희생당하고 만 것입니다. 전쟁 패망국은 독일과 일본이었습니다. 독일은 둘로 나뉘었는데, 정작 둘로 나눠져야 할 일본은 온전하고, 우리나라가 둘로 나뉘는 참으로 억울하고 한탄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 남한 땅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왕성하게 되고,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이 작은 땅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다른 민족,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교회가 성장했고, 믿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가는 곳마다 십자가가 보이는 나라, 밤마다 십자가가 서울을 지키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이 존재하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위대한 대한민국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주목하고, 세상 속에서 선진국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당당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언제 이 땅 이 백성이 이렇게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기가 있었습니까? ‘조용한 아침의 나라’정도요, 88올림픽 전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북한과 구별되지 않는 조그마한 나라일 뿐이었습니다. 언제 어느 때,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노래하는 이들을 환호하며 구름같이 몰려나온 적이 있었습니까? 어느 때에 세상의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달려드는 때가 있었습니까? 한국, 이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또다시 열강이 꿈틀거리는 지배욕을 경험하며 두려움에 빠집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늘 열강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회만 되면, 우리 민족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미국이라는 든든한 우방이 있었습니다. 세계의 경찰이요, 리더임을 자처하는 미국으로 인해 다른 열강들로부터 우리나라도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도 달라졌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 불안합니다. 더 두렵습니다.
다 아시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르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 이야기와 다르게 설명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관점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푸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다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자신의 관점과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목회자인 저의 생각이라고 여기셔도 좋습니다.

< 민족의 위기 가운데 ‘신앙의 눈’으로 우리의 잘못을 바라봅니다. >

오늘 8.15 광복 주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열강 가운데 여전히 둘러싸여 있으며, 그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고, 일본은 우리를 향해 사죄할 의사가 없으며, 우리 민족의 생존이 위협 받는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오늘 본문 이사야 51장을 받아듭니다. 이사야 51장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후, 하나님이 고레스를 통해 전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주셨지만, 그들은 역사 속에서 또다시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까요? 역사학자들이라면 ‘바빌로니아’라는 새로운 제국의 등장을 꼽을 것입니다. 새로운 큰 나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속국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입니다. 지역의 다른 나라도 모두 같은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유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이사야 1장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전합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사야 1:4)

그렇게 일어난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참외밭의 원두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이사야 1:7~8)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건설된 대한민국,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여기까지 이른 이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진노로 저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은 성공 앞에서 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동시에 주님의 백성은 위기 가운데서도 늘 자신을 말씀으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역사 앞에서 그리고 역사의 위기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이 대한민국의 위기가 어디서부터 도래했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는 이 위기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위기를 진단합니다. 이 위기가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내지 못하는 교회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목회자들,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교회답지 못한 교회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나름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해 왔지만, 하나님의 성도들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 왔지만, 그 일들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기와 엄습하는 불안 앞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야 합니다. 먼저 이 위기가 교회의 타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세상은 알지 못하는 것이지만, 믿음의 원리를 아는 이들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보이기에,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욱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보이는 현상만으로는 낙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세계열강 앞에서 얼마든지 건재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는 우리는, 우리의 죄악이 보이기에 두렵습니다. 교회의 죄악이 보이기에 두렵습니다.

<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신앙인은 ‘하나님의 인도와 동행’을 기억합니다. >

오늘 말씀 이사야 51장은 하나님의 진노로 폐허가 된 이스라엘, 그리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절실히 기도하던 신실한 이들을 향해 주신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51장 첫 절에서 하나님의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신실한 이들을 다음과 같이 부르십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이사야 51:1 중)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생각하여 보라.”라고 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신실한 이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죄악 때문에 이와 같은 고난이 왔다는 사실을 알리며, 마음으로 애통해 하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생각하여 보라.”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이사야 51:1~2 중)

하나님은 신실한 이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기적과 같은 시간을 생각하여 보라.”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어렵습니까? 힘듭니까? 모든 것이 막혀 있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생각하여 보라. 내가 너희와 함께했던 그 시간을 생각하여 보라. 내가 너희에게 기적을 이끌어 주며, 기적을 만들어 주며, 너희를 인도해 준 그날을 생각하여 보라.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었던 그날을 생각하여 보라.” 그리고 7절에서 다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이사야 51:7 중)

그런 뒤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옷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이사야 51:7~8 중)

여기서 비방은 조롱과 멸시를 뜻합니다. 열강의 조롱과 멸시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옷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조금은 답답해집니다. 심판하시려면 완전히 뒤엎어버리셨으면 좋겠는데, ‘옷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참으로 답답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의 신앙 경험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마치 옷에 좀이 먹는 듯 느리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 옷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좀이 먹어 들어가고 있다’는 이 표현, 이는 참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조금 더 강력한 표현으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남지만 말입니다.

< 역사의 위기 앞에서 깨어나야 할 이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

그래서인지 이스라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다시 이렇게 호소합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이사야 51:9~10)

여기서 라합은 기생 라합이 아니라, 바다의 큰 짐승을 가리킵니다. 라합과 용은 애굽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깨어나십시오.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 깨어나십시오.” 신실한 이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이사야 51:12)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상황을 무서워하지 말라. 위로하라. 오직 위로할 분, 소망을 줄 분은 나 자신이다. 하나님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52장 첫 절에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사야 52:1 중)

신실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깨웁니다. “큰일났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죄과입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깨소서, 깨소서. 깨십시오, 깨십시오.”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깨우고 싶어 합니다. 풍랑 속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우던 제자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깨우고 싶어 합니다. “깨소서, 깨소서. 주님,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리어 말씀하십니다. 신실한 종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시온아, 깰지어다! 시온아, 깰지어다! 나는 잠자고 있지 않다. 나는 깰 이유가 없다. 나는 깨어 있다. 너희가 깨어야 한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오늘 광복절을 기억하며, 다시 주님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예루살렘아, 나의 신실한 백성들아,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더럽고 추한 모습을 보이는 교회를 향해 다시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위기입니다. 믿는 자들이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이 민족을 위함입니다. 이 나라를 위함입니다. “깰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초대에 응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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