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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가 경히 여긴 것

창세기 25: 27~34

김경진 목사

2023.05.21

<세계사적으로 어리석은 거래는 종종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난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거래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제정 러시아가 미국에 알래스카를 매도한 사건을 첫 번째로 꼽지 않을까 싶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대영제국의 팽창을 막으려 한 의도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거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래스카의 면적이 1,717,854㎢ 입니다. 감이 잘 안 오시죠. 평수로 말씀드리자면 5천196억 5083만 5000평이라고 합니다. 어떤가요? 한 평만 갖고 싶지 않으신가요? 당시 매매 가격은 720만 달러였습니다. 86억 정도에 매매가 이루어진 셈이죠.

거래를 성사시킨 사람은 미국의 국무장관 윌리엄 시워드(William Henry Seward, 1801~1872)라는 분이었습니다. 당시에 미국으로서는 쓸데없이 돈을 주고 땅을 사느냐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거래를 두고 ‘시워드의 어리석음이다(Seward’s Folly)’라고 비아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의 4분의 1이 알래스카에서 나오고 있고요. 산림자원, 수산자원을 비롯하여 천연가스, 백금과 같은 천연자원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미국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1995년, 미합중국의 49번째 주로 편입이 되면서 미국 전체 영토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영토가 바로 알래스카입니다. 그러니 당시에는 미국이 어리석은 거래를 했다고 비난받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러시아가 참 어리석은 거래를 했구나 싶습니다.

또 다른 어리석은 거래를 꼽으라면 인디언들이 맨해튼을 매도한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626년에 네덜란드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인디언들로부터 맨해튼을 사게 되었는데, 그때 지불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60길더에 해당되는 물품이었는데요. 한 수레 정도의 가죽, 냄비, 그리고 럼주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한 220년이 지나서 1846년 즈음에 그 땅의 가치를 가늠해 보았는데, 24달러 정도에 달하는 가치였다고 합니다. 2014년에 학자들이 당시 현물 가격으로 다시 환산하였더니 2,600~15,600달러 정도가 되었답니다.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한다면, 2014년으로부터 9년 정도 지났으니 3만불 정도 될까요? 5만불, 크게 해서 10만불 정도 잡아볼 수 있겠죠. 그래도 정말 싼 가격에 맨해튼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 면적이 87.5㎢, 2,646만평이고요. 쓸 만한 땅들만 모아도 59㎢, 1,784만평으로 계산됩니다. 10만불을 주고 샀다고 가정하더라도 178평을 1불씩 내고 산 셈입니다. 178평만 있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요.

어리석은 또 다른 거래를 꼽으라면, 이 엄청난 맨해튼을 네덜란드인이 영국에게 양도한 것입니다. 당시 영국이 가지고 있었던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 식민지와 뉴욕 맨해튼의 식민지를 맞교환합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소유가 되고, 영국 사람들이 맨해튼을 차지하게 됩니다. 사실상 네덜란드인이 미국의 심장부 같은 곳을 놓치게 된 안타까운 거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리석은 거래를 생각한다면야 어디 한두 개이겠습니까? 이미 많은 분들이 어리석은 거래를 경험하셨을 줄로 압니다. ‘그때 그 집을 팔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그때 팔아가지고….’ 어떤 분은 평생에 가장 어리석은 거래가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가장 어리석은 거래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넘긴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왔습니다. 중요하고 귀한 것을 하찮게 여기고 내동댕이친, 참으로 미련한 사례로 에서의 이야기는 우리 가운데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거래가 가장 활발한 사회입니다. 수많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거래할 때마다 이익을 계산하지만 언제나 좋은 거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탐욕스런 거래도 있고, 나쁜 거래도 있습니다. 위험한 거래도 있고요. 불법적인 거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의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에서의 이야기를 통해서 거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성경에도 장자권과 팥죽 한 그릇을 교환한 어리석은 거래가 소개됩니다.>

 

다시 한번 성경을 살펴봅니다. 에서가 팥죽을 꽤나 좋아했나 봅니다. 그의 별명 ‘에돔’은 ‘붉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그가 야곱에게 와서 “팥죽을 달라”라고 하는 말에서 에돔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알려 줍니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가 팥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계획하며 팥죽을 만들었는데, 예상대로 사냥하고 들에서 돌아온 에서가 야곱에게 요청합니다.

 

“그 붉은 죽을 좀 빨리 먹자. 배가 고파 죽겠다.” (창 25:30 중, 새번역)

 

그러자 야곱이 응수합니다.

 

“형은 먼저, 형이 가진 맏아들의 권리를 나에게 파시오.” (창 25;31, 새번역)

 

사실 이것은 성사될 수 없는 조건의 거래였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자권을 팔기로 맹세합니다.

 

“이것 봐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지금 나에게 맏아들의 권리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 (창 25:32, 새번역)

 

그리고는 정말 쉽게 맏아들의 권리를 팔아넘기고, 팥죽을 먹고 떠나게 됩니다. 성경은 이 일을 두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 25:34 중)

 

결국 에서는 맏아들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받아서 누릴 복을 야곱에게 전부 빼앗기고 맙니다. 그렇다면 에서의 잘못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먼저 그의 표현을 살펴보십시다.

 

“이것 봐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창 25:32 중, 새번역)

 

원어로 살펴보면 ‘지금’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글의 흐름으로 볼 때, ‘지금’이라는 표현이 들어가야 의미가 사는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표준 새번역, 새번역 성경은 ‘지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번역하고 있습니다. 에서의 말은 “지금 죽는다면 나의 미래가 없는데 미래의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매우 중요한 관점이 대두됩니다. 하나는 ‘지금’이라는 현재를 가리키는 단어이고, 다른 하나는 ‘죽게 되었다’는 표현입니다. 죽을 지경이라는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그냥 과장해서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 표현 안에 한 가지 중요한 관점이 들어 있습니다. 에서는 자신의 배고픔을 매우 크게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배가 고프다는 정도가 아니라 죽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부모님 간의 대화를 보게 됩니다. 공부 안하고 계속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이야기하죠. “얘야, 이제 많이 놀았으니 공부 좀 해야지?” 그러면 아이가 대답합니다. “배고파 죽겠어!” 아, 그래서 서둘러 간식을 만들어 주고는 또다시 말합니다. “이제 좀 먹었으니까 공부 좀 해야지?” 그러자 아이가 대답합니다. “피곤해서 죽겠어!” “힘들어서 죽겠어!” 엄마, 아빠 눈에는 그저 빈둥거리며 노는 아이인데 아이는 계속해서 죽겠다고, 죽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전형적인 예이겠지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

 

<배고픔을 죽을 지경으로 여긴 에서의 어리석음이 우리 주변에도 쉽게 보입니다.>

 

오늘은 청년들을 위한 주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청년들이 들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늘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살다 보면 현실에 맞닥트린 문제가 크게 보이고, 그래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되기도 하고요. 요즘 젊은 청년들 중에는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어렵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봐도 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이야, 죽겠구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죠. 여러분, 아직 미래가 있지 않습니까? 그 미래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제가 소망교회에서 목회한 지 5년이 되어 갑니다. 이제는 저의 비밀을 하나씩 열어 보여도 될 것 같네요. 소망교회에 오기 전 저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장신대 교수가 되기까지 9번의 임용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아홉 번 만에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교수가 꼭 되어야겠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정의를 묻는 관점에서 지원하고, 또 지원했습니다. 때마다 이사회에 명단이 올라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 낙방하는 시간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8번쯤 시도했을 때인데 마침 그 자리가 그만 채워지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전임 교수 자리였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자리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야말로 희망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당시 저는 어떤 직함도 갖지 못했고, 1년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참 많이도 실망하는 중에 위로를 받을 겸 가족들과 미국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랜드캐니언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그러니까 2005년이네요. 처음으로 가 본 곳입니다. 그때 제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조용하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힘들지 않니? 이제 좀 내려갈까?’ 굉장히 강한 충동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이를 안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저는 그 자리에서 끝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 이런 일들이 저에게만 일어나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실 저도, 여러분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2년이 지난 다음 제가 장신대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14년 후 지금 저는 소망교회 담임목사로 부름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2년 후에 장신대 교수가 될 것을 알았고, 이후 소망교회 목사가 될 것을 알았다면 실망하지 않았겠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당당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참으로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미래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나의 현실이 막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우리는 자칫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막장이 아닙니다. 조금 배고플 뿐이고, 조금 어려울 뿐입니다. 죽을 상황이 아닙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에서는 일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영구적인 가치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가 팥죽 한 그릇으로 얻은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팥죽 한 그릇을 먹고 여섯 시간 정도 버티는 정도였겠죠. 배는 또다시 고파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의 권리는 어떠합니까? 이것은 에서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대대로 이어지는 권위였습니다. 그저 한 번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그럼에도 에서는 잠깐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영원한 복을 내어 주는 미련한 일을 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마약에 손을 대면서 쾌락과 순간의 기쁨에 빠져들다가 결국 삶을 망가트리게 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잠시 잠깐 기쁘게 해 주는 것, 그런 마약을 의지하는 동안 몸도, 영혼도 망가지지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어리석은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혼을 내주고 환락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대판 에서의 어리석은 거래가 얼마나 많이 행해지고 있는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에서가 얻고자 한 것은 생리적이고 말초적인 욕망의 해결이었습니다. 후에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실수를 이렇게 전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 12:16~17)

 

히브리서 기자는 에서의 실수를 음행과 연결시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적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잠깐의 기쁨, 잠깐의 쾌락, 그것을 위해서 도리어 큰 것들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게 됩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실패를 절대로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시며 40일간의 굶주림에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거래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거래는 에서의 거래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주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금식 후에 사탄이 예수님께 거래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돌로 떡이 되게 하라.” 한마디로 생리적인 욕구를 먼저 채우라는 거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단호히 거부하셨습니다. 사실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까요? 40일 동안 금식하셨으니 배가 고파 죽겠다고 말한 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배고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생리적인 만족을 위해, 잠시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본래적 가치를 팔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이 또 유혹합니다. “나에게 절하면 세상 영광을 모두 주겠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받으실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에게 절해서 얻는 영광은 일시적인 영광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생명을 아버지 나라의 영원한 생명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자,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희망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승리를 거두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참을 수 없는 거래의 자리에서 주님은 어떻게 당당히 이기실 수 있으셨을까요? 하찮은 것에 매이지 않고, 일시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고, 생리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에 넘어가지 않으신 비결은 예수님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계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누구인가? 메시야로 이 땅에 온 존재이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온 존재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분명하게 인지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이 예수님을 혼란으로 끌고 가지 않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많은 연예인들이 마약을 비롯하여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정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마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일에 그들이 ‘내가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죠. ‘내가 얼마나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했더라면, ‘나를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라는 생각을 했다면 마약에 손을 댈 수 있었을까요.

사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하찮은 존재로 생각한 것입니다. 에서가 그러했습니다. 맏아들이라는 장자의 신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약속의 자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26장 34절에서 에서가 40세 되는 해에 헷 족속 유딧과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했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였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과 결혼합니다. 성경은 이것이 리브가의 근심거리였다고 말합니다.

제가 비밀 하나를 말씀드렸으니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신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신학교에 들어갈 때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 다닐 때 옷에 배지를 달고 다녔습니다. 당시 저희 세대 중에는 배지를 다는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다니시는 분들은 서울대 배지를 달았고요. 또 연대, 고대, 이대 … 배지를 달고 다니는 일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 학교 재학생이 아닌데 가짜로 달고 다니는 분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장로회신학대학교 배지를 달고 다니면서 전도사니까 웬만하면 양복을 입고, 007 가방 같은 것을 구해서 들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합니다만은 당시에는 신학생이라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러웠습니다. 사람들에게 제 배지를 가르쳐 주면서까지 자랑스러워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 오늘의 저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40일 동안 굶으셨지만 당당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유혹 앞에서도 승리하신 이유는, 주님이 가지고 계신 정체성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정체성을 저는 생득적 권리라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에서가 가진 맏아들의 권리가 우리들에게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구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정체성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 바로 나의 편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부쩍 어려운 현실 때문에 소망을 포기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그러겠습니까? 지금도 은밀한 곳에서는 검은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언제까지 감추어질 수 있을까요?

여러분, 어리석은 거래로 말미암아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는 이때에 ‘내가 누구인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 일은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죄로부터 건져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What Esau Showed Contempt For

 

Genesis 25:27-34

 

What was the most foolish deal in history? The Russian Empire’s sale of Alaska in 1867 was probably it. Although Russia claims at the time it was intended tocounter Great Britain’s expansion, now,as we look back on it, it was a truly foolish deal.

 

The sheer size of Alaska is1,717,854 ㎢.The United States bought it at a mere 7.2 million dollars.

 

The man who clinched the deal was William Henry Seward(1801~1872), who was then the U.S. Secretary of State. At the time, however, criticism was high on why he purchased a wasteland at such a price. Americans even made fun of the deal, calling it “Seward’s Folly.”

 

But what happened? Today one fourth of America’s total crude oil production comes from Alaska;and the land has now become the country’s gem possessing abundant natural resources, including forestry, fisheries, natural gas, and platinum. After becoming the 49th state in 1959, Alaska is now the state representing 20% of America’s territory.

 

“Seward’s Folly” became “Russia’s Folly.”

 

Another foolish deal in history was the Native Americans’ sale of Manhattan to the Dutch settlers.

 

In 1626 the Dutch who came to the New World purchased Manhattan from the Native Americans in exchange for traded goods valued at 60 guilders. The goods included a cartload of leather, pots, and rum. The converted value of these goods in 1846 was a paltry 24 dollars. In 2014 scholars calculated that it would be somewhere between 2,600 and 15,600 dollars in current terms. Today the converted value would besomewhere between 30,000 and 100,000 dollars.

 

The total size of Manhattan is 87.5㎢, including 59 square kilometers of land. So taking the maximum converted value of 100,000 dollars, you could say in today’s terms that the Dutch paid 1$ for every 590 squares meters of land in Manhattan.

 

A third foolish deal in history would be, however, the Dutch’s sale of this enormous Manhattan to the British. The Dutch traded Manhattan for a British colony in Indonesia. At the time the latter was probably deemed more valuable to the Netherlands. But from today’s perspective I would say the Dutch struck a more foolish deal than the Native Americans.

 

Hearing these stories, many of you may feel bitter inside. You may be regretting, ‘I shouldn’t have sold that house back then… Why did I sell it then? I shouldn’t have invested all my money there…’

 

In the Bible, the stupidest deal would be Esau’s sale of his birthright to Jacob for a mere bowl of lentil soup. This story has been used as a parable, a metaphor, and a prime example for teaching Christians never to treat important and precious things lightly by casting them away.

 

Today we live in a day and age where transactions abound. Countless deals take place. Everyone considers their own interests when they make deals, but not all deals are good. Some are motivated by greed; some are dangerous; while others are illegal.

 

In this ancient biblical story of Esau I hope to find God’s wisdom on deals.

 

It appears Esau loved lentil soup. His nickname was Edom,which means red. He was called Edom because he liked to eat red soup. It is possible that Jacob intentionally prepared the red lentil soup, knowing this. But, unaware of this scheme,this is what Esau says to Jacob, who was making the soup when he got back from hunting:

 

“Quick, let me have some of that red stew! I’m famished!”(Genesis 25:30)

 

It is natural for a starving man to want food. But at this very moment, Jacob quickly presents an offer with one condition attached: “First sell me your birthright.”(Genesis 25:31)

 

Actually this condition is inexecutable. Yet this is what Esau says as he swears to sell his birthright:

 

“Look, I am about to die. What good is the birthright to me?”(Genesis 25:32)

 

The Bible’s assessment of the incident is as follows: “So Esau despised his birthright.” (Genesis 25:34b) Because of this deal, all of Esau’s blessings were taken from him and given to Jacob, even though Esau was the firstborn. Even though Esau was the firstborn of a special family with whom God made a covenant, his life was a miserable one that missed out on all the blessings entitled to him.

 

So what did Esau do wrong?

 

First let’s look the expression Esau uses: “Look, I am about to die.”(Genesis 25:32)

 

Although in the original Hebrew text or in the English translation there is no mention of “now” in this verse, the Revised New Korean Standard Version translates it as something like “Look, I am now on the point of dying.” The insertion of “now,” I think, captures the meaning well.

 

So Esau is in effect asking, if he is going to die now and if there is no future for him, what use is his birthright?

 

Two perspectives must be noted here. First, Esau’s focus on the present; and second, his expression “about to die.”Although this expression may simply be seen as a hyperbole, an important clue is found in it.

 

Esau has an excessive perception of reality, that is, his hunger.

 

Often this is the dialogue that takes place between children who don’t study and their parents.

 

“Sweetie, you’ve had enough playtime. Why don’t you do some study now?”

“Mom, I’m starving to death!”

“Okay, I’ll make you a snack.” [A while later…] “Now, will you study?”

“Mom, I’m tired to death!”

 

In the parents’ eyes the child has only been playing all day, but he complains he is tired to death. Isn’t this the typical child who doesn’t study? How do I know? I have my ways.

 

Since we are celebrating this Sunday as “Youth Sunday,” I have a message for the young people today.

 

As you live life, real-life problems may appear enormous, and you may feel as if you are about to die. You may think there is no hope. Many young people these days are dejected and frustrated. Yes, it is hard. Life looks hopeless. Yet, brothers and sisters, there is still hope. The future has not yet come. You don’t know what the future will bring. What I am telling you is the truth.

 

You feel as if you are about to die. But you’re not dead yet. In the present, you may have nothing. But nobody knows what the future will bring.

 

The moment we think the reality we now see is the end, we are apt to make a mistake. It is not the end. We are just a bitstarved, that’s all. We won’t die. So we must come to our senses. By coming to our senses, we make the future ours.

 

Second, Esau gave away a permanent value in order to solve a temporary problem. What did he gain from a bowl of stew? Feeling full for about 6 hours? But he would soon become hungry again and would have to fill that hunger. But what about his birthright? That is a right and a blessing that would continue exist from his birth to his death—no, even beyond it. His birthright was a condition incomparable to a meal. Yet to satisfy that momentary hunger and to solve a fleeting issue, Esau gave away an everlasting blessing.

 

By doing drugs young people these days are falling into the trap of momentary pleasures and temporary happiness. Unable to resist a fleeting moment of pleasure, they fail to break free from drugs, even knowing they are destroying their bodies and souls. How it saddens us.

 

Even among those around us, many are making foolish deals in life. Some give up their souls for hedonic pleasures. There are not enough words for all the stupid transactions, like that of Esau, that take place in our modern society today. What Esau wanted from his deal was a satisfaction of his physical and sensual desires.

 

Later, the author of Hebrews connected Esau’s mistake to sexual immorality:

 

 

“See that no one is sexually immoral, or is godless like Esau, who for a single meal sold his inheritance rights as the oldest son. Afterwards, as you know, when he wanted to inherit this blessing, he was rejected. Even though he sought the blessing with tears, he could not change what he had done.” (Hebrews 12:16-17)

 

Hunger, sexual desire, and a need to stimulate our senses are the conditions of man. However, these desires must be satisfied in the right and legitimate ways. But Esau paid an insanely excessive price for them. What a foolish deal.

 

Our Lord faced a deal too. But His transaction was unlike that of Esau’s. When Jesus had fasted for forty days and forty nights, Satan made tempting offers to Him. “Turn this stone into bread.” The enemy first tempted Jesus to satisfy Hisphysical needs, telling Him to solve the problem of the “now.” However, our Lord firmly refused. He did not sell His essential value as the Son of God to satisfy His physical needs.

 

Next, Satan took Jesus to a mountaintop and offered to give Him all the world’s glory if He bowed down to him. But Jesus replied that God, and only God, is to be worshiped. If we worship Satan, we may live gloriously in this world, but Jesus knew that such a glory was only transient. Our Lord did not trade eternal life for a life in this world. He did not sell eternal values in order to gain the temporary glory and satisfaction of the present.

 

The secret to not being tempted by trivial, temporary things and resisting sensual, physical pleasures is knowing who I am clearly.

 

Who am I? Actor Yoo Ah-in is being investigated for drug abuse. It is truly unfortunate. I do not want to condemn him, but I cannot help thinking, ‘What if he had asked himself, Who am I? Just how many people love me? How many watch me and feel happy because of me?’ If only he had thought of such things, I think he would have been able to resist the temptation of drugs that give him only sensual pleasures.

 

How was Jesus able to resist the enemy’s temptations? It was because He knew His identity clearly as the Son of God. This gave Him confidence even after starving for 40 days. This was why He was able to resist Satan’s massive temptation to give Him all the power and glory of this world.

 

What innate rights do we possess?

 

God came to earth to save me. He died on the cross to save a sinner like me. I am one who has received such a love from God.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now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Galatians 2:20)

 

Recently, we are hearing many cases of people giving up their lives and hope for the future because of their difficulties in reality. On the one hand, I can understand the deep pain and struggles that made them put an end to their own lives so brutally.

 

Furthermore, even as I speak, dark deals are taking place in secret places. The consequences of these dark deals will not be good and cannot be concealed forever. Yet pitiful things are occurring as a result of these foolish deals.

 

Who are we? We are children of God bought and saved by Him at a priceless price. We are loved by God.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the Mighty Warrior who saves. He will take great delight in you; in his love he will no longer rebuke you, but will rejoice over you with singing.”(Zephaniah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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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5: 27~34

27~34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세계사적으로 어리석은 거래는 종종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난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거래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제정 러시아가 미국에 알래스카를 매도한 사건을 첫 번째로 꼽지 않을까 싶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대영제국의 팽창을 막으려 한 의도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거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래스카의 면적이 1,717,854㎢ 입니다. 감이 잘 안 오시죠. 평수로 말씀드리자면 5천196억 5083만 5000평이라고 합니다. 어떤가요? 한 평만 갖고 싶지 않으신가요? 당시 매매 가격은 720만 달러였습니다. 86억 정도에 매매가 이루어진 셈이죠.

거래를 성사시킨 사람은 미국의 국무장관 윌리엄 시워드(William Henry Seward, 1801~1872)라는 분이었습니다. 당시에 미국으로서는 쓸데없이 돈을 주고 땅을 사느냐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거래를 두고 ‘시워드의 어리석음이다(Seward’s Folly)’라고 비아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의 4분의 1이 알래스카에서 나오고 있고요. 산림자원, 수산자원을 비롯하여 천연가스, 백금과 같은 천연자원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미국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1995년, 미합중국의 49번째 주로 편입이 되면서 미국 전체 영토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영토가 바로 알래스카입니다. 그러니 당시에는 미국이 어리석은 거래를 했다고 비난받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러시아가 참 어리석은 거래를 했구나 싶습니다.

또 다른 어리석은 거래를 꼽으라면 인디언들이 맨해튼을 매도한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626년에 네덜란드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인디언들로부터 맨해튼을 사게 되었는데, 그때 지불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60길더에 해당되는 물품이었는데요. 한 수레 정도의 가죽, 냄비, 그리고 럼주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한 220년이 지나서 1846년 즈음에 그 땅의 가치를 가늠해 보았는데, 24달러 정도에 달하는 가치였다고 합니다. 2014년에 학자들이 당시 현물 가격으로 다시 환산하였더니 2,600~15,600달러 정도가 되었답니다.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한다면, 2014년으로부터 9년 정도 지났으니 3만불 정도 될까요? 5만불, 크게 해서 10만불 정도 잡아볼 수 있겠죠. 그래도 정말 싼 가격에 맨해튼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 면적이 87.5㎢, 2,646만평이고요. 쓸 만한 땅들만 모아도 59㎢, 1,784만평으로 계산됩니다. 10만불을 주고 샀다고 가정하더라도 178평을 1불씩 내고 산 셈입니다. 178평만 있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요.

어리석은 또 다른 거래를 꼽으라면, 이 엄청난 맨해튼을 네덜란드인이 영국에게 양도한 것입니다. 당시 영국이 가지고 있었던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 식민지와 뉴욕 맨해튼의 식민지를 맞교환합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소유가 되고, 영국 사람들이 맨해튼을 차지하게 됩니다. 사실상 네덜란드인이 미국의 심장부 같은 곳을 놓치게 된 안타까운 거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리석은 거래를 생각한다면야 어디 한두 개이겠습니까? 이미 많은 분들이 어리석은 거래를 경험하셨을 줄로 압니다. ‘그때 그 집을 팔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그때 팔아가지고….’ 어떤 분은 평생에 가장 어리석은 거래가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가장 어리석은 거래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넘긴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왔습니다. 중요하고 귀한 것을 하찮게 여기고 내동댕이친, 참으로 미련한 사례로 에서의 이야기는 우리 가운데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거래가 가장 활발한 사회입니다. 수많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거래할 때마다 이익을 계산하지만 언제나 좋은 거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탐욕스런 거래도 있고, 나쁜 거래도 있습니다. 위험한 거래도 있고요. 불법적인 거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의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에서의 이야기를 통해서 거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성경에도 장자권과 팥죽 한 그릇을 교환한 어리석은 거래가 소개됩니다.>

 

다시 한번 성경을 살펴봅니다. 에서가 팥죽을 꽤나 좋아했나 봅니다. 그의 별명 ‘에돔’은 ‘붉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그가 야곱에게 와서 “팥죽을 달라”라고 하는 말에서 에돔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알려 줍니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가 팥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계획하며 팥죽을 만들었는데, 예상대로 사냥하고 들에서 돌아온 에서가 야곱에게 요청합니다.

 

“그 붉은 죽을 좀 빨리 먹자. 배가 고파 죽겠다.” (창 25:30 중, 새번역)

 

그러자 야곱이 응수합니다.

 

“형은 먼저, 형이 가진 맏아들의 권리를 나에게 파시오.” (창 25;31, 새번역)

 

사실 이것은 성사될 수 없는 조건의 거래였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자권을 팔기로 맹세합니다.

 

“이것 봐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지금 나에게 맏아들의 권리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 (창 25:32, 새번역)

 

그리고는 정말 쉽게 맏아들의 권리를 팔아넘기고, 팥죽을 먹고 떠나게 됩니다. 성경은 이 일을 두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 25:34 중)

 

결국 에서는 맏아들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받아서 누릴 복을 야곱에게 전부 빼앗기고 맙니다. 그렇다면 에서의 잘못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먼저 그의 표현을 살펴보십시다.

 

“이것 봐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창 25:32 중, 새번역)

 

원어로 살펴보면 ‘지금’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글의 흐름으로 볼 때, ‘지금’이라는 표현이 들어가야 의미가 사는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표준 새번역, 새번역 성경은 ‘지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번역하고 있습니다. 에서의 말은 “지금 죽는다면 나의 미래가 없는데 미래의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매우 중요한 관점이 대두됩니다. 하나는 ‘지금’이라는 현재를 가리키는 단어이고, 다른 하나는 ‘죽게 되었다’는 표현입니다. 죽을 지경이라는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그냥 과장해서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 표현 안에 한 가지 중요한 관점이 들어 있습니다. 에서는 자신의 배고픔을 매우 크게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배가 고프다는 정도가 아니라 죽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부모님 간의 대화를 보게 됩니다. 공부 안하고 계속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이야기하죠. “얘야, 이제 많이 놀았으니 공부 좀 해야지?” 그러면 아이가 대답합니다. “배고파 죽겠어!” 아, 그래서 서둘러 간식을 만들어 주고는 또다시 말합니다. “이제 좀 먹었으니까 공부 좀 해야지?” 그러자 아이가 대답합니다. “피곤해서 죽겠어!” “힘들어서 죽겠어!” 엄마, 아빠 눈에는 그저 빈둥거리며 노는 아이인데 아이는 계속해서 죽겠다고, 죽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전형적인 예이겠지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

 

<배고픔을 죽을 지경으로 여긴 에서의 어리석음이 우리 주변에도 쉽게 보입니다.>

 

오늘은 청년들을 위한 주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청년들이 들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늘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살다 보면 현실에 맞닥트린 문제가 크게 보이고, 그래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되기도 하고요. 요즘 젊은 청년들 중에는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어렵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봐도 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이야, 죽겠구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죠. 여러분, 아직 미래가 있지 않습니까? 그 미래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제가 소망교회에서 목회한 지 5년이 되어 갑니다. 이제는 저의 비밀을 하나씩 열어 보여도 될 것 같네요. 소망교회에 오기 전 저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장신대 교수가 되기까지 9번의 임용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아홉 번 만에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교수가 꼭 되어야겠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정의를 묻는 관점에서 지원하고, 또 지원했습니다. 때마다 이사회에 명단이 올라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 낙방하는 시간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8번쯤 시도했을 때인데 마침 그 자리가 그만 채워지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전임 교수 자리였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자리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야말로 희망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당시 저는 어떤 직함도 갖지 못했고, 1년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참 많이도 실망하는 중에 위로를 받을 겸 가족들과 미국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랜드캐니언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그러니까 2005년이네요. 처음으로 가 본 곳입니다. 그때 제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조용하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힘들지 않니? 이제 좀 내려갈까?’ 굉장히 강한 충동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이를 안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저는 그 자리에서 끝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 이런 일들이 저에게만 일어나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실 저도, 여러분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2년이 지난 다음 제가 장신대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14년 후 지금 저는 소망교회 담임목사로 부름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2년 후에 장신대 교수가 될 것을 알았고, 이후 소망교회 목사가 될 것을 알았다면 실망하지 않았겠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당당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참으로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미래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나의 현실이 막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우리는 자칫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막장이 아닙니다. 조금 배고플 뿐이고, 조금 어려울 뿐입니다. 죽을 상황이 아닙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에서는 일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영구적인 가치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가 팥죽 한 그릇으로 얻은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팥죽 한 그릇을 먹고 여섯 시간 정도 버티는 정도였겠죠. 배는 또다시 고파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의 권리는 어떠합니까? 이것은 에서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대대로 이어지는 권위였습니다. 그저 한 번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그럼에도 에서는 잠깐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영원한 복을 내어 주는 미련한 일을 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마약에 손을 대면서 쾌락과 순간의 기쁨에 빠져들다가 결국 삶을 망가트리게 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잠시 잠깐 기쁘게 해 주는 것, 그런 마약을 의지하는 동안 몸도, 영혼도 망가지지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어리석은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혼을 내주고 환락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대판 에서의 어리석은 거래가 얼마나 많이 행해지고 있는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에서가 얻고자 한 것은 생리적이고 말초적인 욕망의 해결이었습니다. 후에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실수를 이렇게 전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 12:16~17)

 

히브리서 기자는 에서의 실수를 음행과 연결시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적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잠깐의 기쁨, 잠깐의 쾌락, 그것을 위해서 도리어 큰 것들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게 됩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실패를 절대로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시며 40일간의 굶주림에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거래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거래는 에서의 거래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주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금식 후에 사탄이 예수님께 거래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돌로 떡이 되게 하라.” 한마디로 생리적인 욕구를 먼저 채우라는 거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단호히 거부하셨습니다. 사실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까요? 40일 동안 금식하셨으니 배가 고파 죽겠다고 말한 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배고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생리적인 만족을 위해, 잠시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본래적 가치를 팔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이 또 유혹합니다. “나에게 절하면 세상 영광을 모두 주겠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받으실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에게 절해서 얻는 영광은 일시적인 영광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생명을 아버지 나라의 영원한 생명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자,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희망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승리를 거두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참을 수 없는 거래의 자리에서 주님은 어떻게 당당히 이기실 수 있으셨을까요? 하찮은 것에 매이지 않고, 일시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고, 생리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에 넘어가지 않으신 비결은 예수님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계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누구인가? 메시야로 이 땅에 온 존재이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온 존재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분명하게 인지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이 예수님을 혼란으로 끌고 가지 않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많은 연예인들이 마약을 비롯하여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정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마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일에 그들이 ‘내가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죠. ‘내가 얼마나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했더라면, ‘나를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라는 생각을 했다면 마약에 손을 댈 수 있었을까요.

사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하찮은 존재로 생각한 것입니다. 에서가 그러했습니다. 맏아들이라는 장자의 신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약속의 자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26장 34절에서 에서가 40세 되는 해에 헷 족속 유딧과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했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였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과 결혼합니다. 성경은 이것이 리브가의 근심거리였다고 말합니다.

제가 비밀 하나를 말씀드렸으니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신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신학교에 들어갈 때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 다닐 때 옷에 배지를 달고 다녔습니다. 당시 저희 세대 중에는 배지를 다는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다니시는 분들은 서울대 배지를 달았고요. 또 연대, 고대, 이대 … 배지를 달고 다니는 일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 학교 재학생이 아닌데 가짜로 달고 다니는 분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장로회신학대학교 배지를 달고 다니면서 전도사니까 웬만하면 양복을 입고, 007 가방 같은 것을 구해서 들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합니다만은 당시에는 신학생이라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러웠습니다. 사람들에게 제 배지를 가르쳐 주면서까지 자랑스러워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 오늘의 저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40일 동안 굶으셨지만 당당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유혹 앞에서도 승리하신 이유는, 주님이 가지고 계신 정체성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정체성을 저는 생득적 권리라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에서가 가진 맏아들의 권리가 우리들에게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구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정체성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 바로 나의 편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부쩍 어려운 현실 때문에 소망을 포기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그러겠습니까? 지금도 은밀한 곳에서는 검은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언제까지 감추어질 수 있을까요?

여러분, 어리석은 거래로 말미암아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는 이때에 ‘내가 누구인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 일은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죄로부터 건져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2023521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에서가 경히 여긴 것 (25:27~34)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526장, 314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창 25:27-34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5월 2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거래 중 하나는 1867년 제정 러시아가 알레스카를 미국에 매도한 것입니다.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약 5천억평의 땅을 720만 달러(약 89억원)에 매입했습니다. 이 거래를 성사시킨 사람은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시워드였는데, 당시 그는 국내에서 수많은 질타와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떨까요? 알레스카는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많은 천연자원이 나오는 미국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설교의 요약

성경에 나오는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은 거래 중 하나는 바로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넘긴 일입니다. 에서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먼저 그는 자신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먼 미래에나 받는 장자의 권리가 뭐가 중하냐고 생각합니다.(창 25:32) 그는 지나치게 현재의 상태와 자신의 상황에만 집착했습니다. 그래서 배고파 죽겠다는 이 현재의 문제를 속히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그는 자신의 배고픔이라는 현실을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현실의 문제가 크게 보이고, 그래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재의 문제 때문에 미래의 가능성까지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에서는 현재의 문제에 집중한 나머지 그 귀한 장자권을 아무 의미없이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나의 현실이 막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자칫 이와 같이 실수하게 됩니다. 아직 죽을 상황이 아닙니다. 정신을 차려야 미래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에서는 일시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영구적인 가치를 내주었습니다. 그가 팥죽 한 그릇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그저 대여섯 시간 배부를 뿐입니다. 그러나 장자의 권리는 그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또한 죽어서도 대대로 이어지는 복이자 권리입니다. 그런데도 에서는 잠깐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영원한 복을 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마약과 같은 순간적인 쾌락과 말초적인 자극을 추구하다가, 자신의 몸과 정신을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혼을 내주고 환락을 사는 것입니다. 현대판 에서와 같은 이 어리석은 일들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거래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모든 유혹과 일시적인 만족을 제시하는 달콤한 사탄의 유혹을 철저히 물리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일시적인 만족이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본래적 가치를 잃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한다면, 에서와 같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우리 주님처럼 모든 유혹과 시험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나누기

  1. “죽을 것같이” 힘들거나 견디기 어려웠던 고난의 시간이나 유혹 등이 있었나요?
  2. 어떤 유혹과 시험이 와도, 꼭 지켜야 할 영속적인 가치들에는 무엇이 있나요? (신앙, 가정, 건강 등)

 

마무리 기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비록 고난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마침내 우리에게 주실 귀한 축복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일시적이고 말초적인 것에 매몰되어 우리의 삶을 낭비하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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