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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무리 속에서 나를 보시다

누가복음 8: 40 ~ 48

김경진 목사

2020.11.22

< 한 여인이 혈루증을 앓고 있습니다. >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이 본문은 샌드위치 구조라는 독특한 형태를 이룹니다. 본문 전후로 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사이에 또 다른 본문이 등장하는 형태입니다. 즉 오늘 본문 전후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등장하며, 그 사이에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을 고치신 예수님의 기적 사건이 소개됩니다. 또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중요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고 치유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한 여인이 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입니다. 성경이 전하는 혈루증이 어떤 질병이었는지 오늘날의 정확한 의학 용어로는 밝히기 어렵습니다. 대개 ‘만성자궁출혈’, ‘자궁내막염’, ‘자궁암’ 등으로 추정하곤 합니다. 여성에게 혈이 멈추지 않는 질병으로, 오늘 본문의 여인은 무려 12년 동안 이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마가는 당시 여인의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묘사해 줍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마가복음 5:25~26)

여인은 적어도 12년 동안 이 질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많은 의원을 찾으며 회복을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병은 위중해졌고, 도리어 괴로움만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가진 재산도 다 잃었습니다. 그렇게 애썼는데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도리어 병이 깊어졌으니, 그녀가 느꼈을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도 각자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한두 개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해결되지 않는 삶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를 끈질지게 붙들고 있는 문제, 나를 떠나지 않고 괴롭히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혈루증이란 ‘유출병’의 일종으로 유대인이 부정하게 여기는 질병이었습니다. 레위기 15장은 유출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그의 유출이 피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그가 불결할 동안에는 그가 누웠던 자리도 다 부정하며 그가 앉았던 자리도 다 부정한즉 그의 침상을 만지는 자는 다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레위기 15:19~21)

유대 사회에서 유출병은 부정한 질병이었습니다. 특히 피를 유출한 경우 접촉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부정하다는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녀와의 접촉을 피했을 것입니다. 사랑받고 살아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기피 대상이었습니다. 이웃과 가족도 그녀를 외면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계속해서 피가 유출되니, 위생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물이 귀한 고대 근동 지역에서 그녀는 제대로 씻을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혈이 몸을 타고 흘러 내려왔을 것입니다. 겉옷에 묻어 고역을 겪어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에게서 늘 악취가 진동했을 테고, 사람들의 역겨워하는 시선을 감내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12년을 살았습니다.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여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간입니다. 누구에게도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이 여인의 처지를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주님을 만납니다. >

그렇게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로 오시던 그 날, 이미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였습니다.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모두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죽을 위기에 놓인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주님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언제나 위엄 있고 멋져 보이던 회당장 야이로에게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도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간절히 비는 심정으로, 예수께 무릎을 꿇어 엎드렸습니다.
아마 여인은 멀찍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옵니다. 여전히 밀고 당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때 여인은 생각합니다. ‘내가 저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저 사이로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나를 보고 피하겠지? 내가 들어가는 순간 모두를 부정하게 만들 수 있는데, 나는 어떻게 저분을 만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여인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이 정하게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부정함이 온전하게 회복될 수 있다면, 결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에게는 예수님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마태는 당시 여인의 믿음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마태복음 9:20~21)

여인은 자신이 부정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 나아가 차마 “나를 고쳐 주십시오.”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을 용기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끌어당길 만한 용기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저 조용히 예수께로 다가갑니다. 그리곤 예수님의 옷자락에 가만히 손을 댑니다. 그저 한 번의 터치, 한 번의 접촉일 뿐이었습니다. 여인에게는 ‘이 한 번의 접촉만으로도 예수께서 무언가를 하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해도, 그분의 정함이 내 부정함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정말 완전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와의 접촉이 어떤 변화를 초래하겠습니까? 아마 완전한 존재를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하나님을 보는 순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대우하십니다. 완전하신 주님께서 불완전한 우리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십니다. 그래서 나의 어떤 부정함도 부정함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의 불완전함이 그분의 완전하심 속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나의 연약함을 감쌉니다. 주님의 온전하심이 나의 질병을 치유합니다. 완전하신 그분과 접촉함으로써 죽음도 생명으로 뒤바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로 이 믿음이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있었습니다.

<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부정함이 정결함을 입습니다. >

어느 문학가의 이야기입니다. 오랫동안 예수를 믿지 않고 있다가 특별한 계기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분입니다. 이분을 오랜 기간 전도하신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저에게 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그 문학가를 찾아가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유하면 그분이 항상 이런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온 지구의 수십억 명이 예수님에게 매달려 있는데,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라도 그 수고를 조금 덜어 드려야지요.” 이렇게 농담하며 너스레를 떨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붙들고 있다고 해서, 과연 예수님이 힘들어하실까요? 내가 빠져 주는 게 그분께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내게 기회가 없는 것일까요? 내가 양보하는 게 교양 있는 행위일까요? 혹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조금 더 잘 가꾸고 갖춘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야 할까요?
예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꾸미고 온전해지려고 노력한들, 주님 앞에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의 죄를 아무리 감추고 덮으려 해도, 그분 앞에서는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한 가지뿐입니다. 나의 부족함과 부정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온전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믿음이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하신 주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의 입과 손으로 부정한 일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지식과 지혜로 인해 어려움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부정함이 다른 이와의 관계를 어렵게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이자 실존입니다. 아무리 죄악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해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빠져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의 부정함이 예수님의 온전하심과 만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나의 더러움이 깨끗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나의 부족함이 온전함으로 바뀝니다. 예수님과 접촉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하심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중 44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누가복음 8:44 중)

<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순간, 혈루증이 멈추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자신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을 찾으십니다. 누가복음 8장 45~4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누가복음 8:45~46)

예수님은 그녀가 접촉한 즉시 알아채셨습니다.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을 아셨던 것입니다. 사실 얼마든지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자리였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을 지경에 놓였으니, 바삐 걸음을 옮기셔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에 서셨습니다. 걸음을 멈추시곤 자신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을 찾기 시작하십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관심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과 같이 비천한 자를 눈여겨봐 주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회당장 같이 높은 사람에게는 관심을 가져도, 자신처럼 부정한 사람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눈길조차 피했습니다. 그분께 말 한마디 걸지 못했습니다. 그저 뒤로 살며시 돌아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을 뿐입니다.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가에 손을 대니 (누가복음 8:44 중)

그 순간 예수님이 돌아보십니다.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여인을 바라보십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여인, 외면하던 그 여인을 예수님이 찾으십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주변에 몰려 있었습니다. 숱한 군중이 예수님의 뒤를 좇았고, 그분을 만나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삶의 문제를 해결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과 접촉했지만, 오직 소원을 가지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여인만이 정함을 입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간 여인만이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군중 속에서 여인을 찾아내시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8:48)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오직 믿음만을 보셨습니다. 겉모습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녀의 더러움도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녀에게 율법 준수 여부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따지지도 않으셨습니다. 오직 예수께 희망을 두고 찾아온 여인에게 자유와 구원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리 중에 끼어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님은 무리 가운데서 도리어 나를 찾고 계십니다.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기만 한다면,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He Notices Me in the Crowds

Luke 8:40-48

There was a woman who had an issue of blood for 12 years. The exact medical name of this illness is unknown. It may have been chronic uterine bleeding or uterine cancer, but it was not the usual menstrual bleeding. The woman sought many doctors to be healed, but with no avail. She only got worse. Mark records her situation in detail:

“And a woman was there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 She had suffered a great deal under the care of many doctors and had spent all she had, yet instead of getting better she grew worse.” (Mark 5: 25-26)

She had gone to many doctors, but had only suffered and spent all that she had. She only got worse.

This type of bleeding, categorized as a “discharge” under the law by the Israelites, was an uncleanly disease. Leviticus chapter 15 talks about the bleeding of women as follows:

“When a woman has her regular flow of blood, the impurity of her monthly period will last seven days, and anyone who touches her will be unclean till evening.Anything she lies on during her period will be unclean, and anything she sits on will be unclean. Anyone who touches her bed will be unclean; they must wash their clothes and bathe with water, and they will be unclean till evening.” (Leviticus 15:19-21)

According to the law, this woman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was unclean.

Furthermore, she herself would have considered herself unclean since was constantly bleeding. Since sanitation was poor in those days and water scarce, it would have been hard to maintain her cleanliness. Her clothes would have been soiled and the stench would have been great.

What a cruel punishment for a woman who wished to be beautiful and loved! Even the woman herself would have thought herself dirty and unclean, and she would have kept her distance with people.

Yet, a one-in-a-lifetime opportunity comes. A chance to meet Jesus. The day Jesus returned to Galilee He was met with a huge crowd. Jesus was a star. People flocked to Him with a wish or a plea, pushing against one another to get near Him.

Among them was Jairus, a brave and respected synagogue leader. Despite his social status, he knelt before Jesus unashamedly. It was a desperate plea to save his 12-year-old dying daughter. Even this esteemed leader had a desperate plea. Even when people seem fine on the outside, they all become a beggar with a desperate plea before Jesus, the powerful Healer and Savior.

The woman would have seen all that was happening around Jesus from a distance. She would have seen Jesus listening to Jarius and heading toward his house to heal the girl. And she would have seen all the people pressing against Jesus.

She would have thought, ‘Will I be able to reach Him in that crowd? Even if I did, what’s the use? Would Jesus notice me? What if I really got hold of Him? I am unclean. Anyone who touches me would become unclean too. So, how can I go into that crowd?’

Yet, she had a faith. ‘Even if everyone who touches me becomes unclean, the only way for me to become clean is to meet Jesus in that crowd. If only I could touch Him… Then I would be healed and become clean!’

Matthew describes her faith as such: “Just then a woman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 came up behind him and touched the edge of his cloak. She said to herself, ‘If I only touch his cloak, I will be healed.’” (Matthew 9: 21)

Anyone who touched an unclean person became unclean. So the woman could not even call out to Jesus to get Him to stop and see her. She did not even have the courage to grab Him or pull at his cloak.

She only had this one faith—that she would be healed if she touched Him. She was unclean, but His cleanliness would heal her. She was sick, but His perfection would heal her. Just a single touch would heal her. This was her faith.

Dear Church, let’s think about this more deeply. If there really was a perfect being, what would happen if we touched him? It is, of course, entirely possible that we may perish. But, if that perfect being was someone who loved us, and wished to convey his perfectness to us, then what would happen?

All uncleanliness would become clean, and all imperfectness would become whole. All diseases would be healed, and even death transformed to life. The woman who was subject to bleeding for 12 years had this faith.

Once there was a famous writer. His friend, also a writer, tried to evangelize him. But this is what the friend said: “Whenever I try to talk about the gospel, do you know what he says? He says, ‘Can you imagine Jesus’ pain, with billions of people on earth clinging to him? It’d be best for me to just not go to him and ease his burden.’”

What do you make of this? Do you think it would be best not to go to Jesus since you have too many sins? Do you think you are too messed up to go to Him? Should you get your act together a bit and make yourself presentable before going to Jesus?

Jesus is so whole and perfect that no one can “make himself presentable” to mee Him. Before Him, our sins and weaknesses only stand out more. The only heart’s attitude to take is this: ‘When my uncleanliness touches Him, I will be healed! When my weakness touches Him, I will become whole!’

Our weaknesses only cause problems for other people. Our uncleanliness only burdens others. Anyone who meets an unclean person becomes unfortunate, and anyone who meets such a person suffers because of the sins, weaknesses, and uncleanliness of that person.

But when our uncleanliness meets Jesus, it’s a completely different story. Our mess becomes clean, and we become whole.

When the woman touched Jesus cloak, how did He react?Jesus stopped and sought the person who touched Him:“‘Who touched me?’ Jesus asked.When they all denied it, Peter said, ‘Master, the people are crowding and pressing against you.’ But Jesus said, ‘Someone touched me; I know that power has gone out from me.’” (Luke 8:45-46)

Jesus could surely have just passed by this woman, even after sensing that she had been healed by Him. He stopped—not because he didn’t like the fact that somebody had used His power without His permission. He had no intention of rebuking the person who “stole” His power.

He stopped and noticed the woman—despite the fact that He was making haste to go to Jairus’ house on an emergency, a dying girl. He deliberately sought the woman who had secretly touched the edge of his cloak. He saw her in the midst of the crowd.

‘Will Jesus pay attention to someone like me? Of course, He won’t. Not someone like me. He may pay attention to someone like Jairus, a synagogue leader, but not me. He rushes to Jairus’ house… to save his daughter. But not me.I’m just a smelly, dirty, worthless woman. He probably won’t be interested in me.’

But she was wrong. Jesus stopped in His tracks and asked who had touched Him.

This is grace. ‘Even if Jesus does not notice the likes of me, I do not have any right whatsoever to protest. When already thousands of people are clinging to Jesus for His grace, would He turn His gaze to the likes of me and answer my plea?’

But He did. Jesus not only answered her plea, but also answered her deepest, unspoken wishes.

Thousands of people had brushed against Jesus and had touched His cloak, but none of them were made clean or healed. None of them were blessed with wholeness. Only this woman who touched Him with a desperate wish received His grace.

In the crowd, Jesus saw her. Then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Luke 8:48)

Jesus saw her faith—only her faith. He didn’t see her appearance, or her uncleanliness. He did not even ask what her illness was. Nor did He ask if she had been following the law.

He gave salvation to the woman who had put her hope in Him.

Dear Church, where are you now? Are you perhaps in that crowd, following and gazing at Jesus from a distance? Our Lord sees us in that crowd.

He hears our unspoken prayers. If we would only take a step toward Him in faith, He will gift us with a miracle.

Our Lord speaks to us:“Then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Luke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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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 40 ~ 48

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4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 한 여인이 혈루증을 앓고 있습니다. >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이 본문은 샌드위치 구조라는 독특한 형태를 이룹니다. 본문 전후로 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사이에 또 다른 본문이 등장하는 형태입니다. 즉 오늘 본문 전후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등장하며, 그 사이에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을 고치신 예수님의 기적 사건이 소개됩니다. 또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중요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고 치유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한 여인이 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입니다. 성경이 전하는 혈루증이 어떤 질병이었는지 오늘날의 정확한 의학 용어로는 밝히기 어렵습니다. 대개 ‘만성자궁출혈’, ‘자궁내막염’, ‘자궁암’ 등으로 추정하곤 합니다. 여성에게 혈이 멈추지 않는 질병으로, 오늘 본문의 여인은 무려 12년 동안 이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마가는 당시 여인의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묘사해 줍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마가복음 5:25~26)

여인은 적어도 12년 동안 이 질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많은 의원을 찾으며 회복을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병은 위중해졌고, 도리어 괴로움만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가진 재산도 다 잃었습니다. 그렇게 애썼는데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도리어 병이 깊어졌으니, 그녀가 느꼈을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도 각자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한두 개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해결되지 않는 삶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를 끈질지게 붙들고 있는 문제, 나를 떠나지 않고 괴롭히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혈루증이란 ‘유출병’의 일종으로 유대인이 부정하게 여기는 질병이었습니다. 레위기 15장은 유출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그의 유출이 피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그가 불결할 동안에는 그가 누웠던 자리도 다 부정하며 그가 앉았던 자리도 다 부정한즉 그의 침상을 만지는 자는 다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레위기 15:19~21)

유대 사회에서 유출병은 부정한 질병이었습니다. 특히 피를 유출한 경우 접촉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부정하다는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녀와의 접촉을 피했을 것입니다. 사랑받고 살아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기피 대상이었습니다. 이웃과 가족도 그녀를 외면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계속해서 피가 유출되니, 위생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물이 귀한 고대 근동 지역에서 그녀는 제대로 씻을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혈이 몸을 타고 흘러 내려왔을 것입니다. 겉옷에 묻어 고역을 겪어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에게서 늘 악취가 진동했을 테고, 사람들의 역겨워하는 시선을 감내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12년을 살았습니다.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여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간입니다. 누구에게도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이 여인의 처지를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주님을 만납니다. >

그렇게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로 오시던 그 날, 이미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였습니다.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모두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죽을 위기에 놓인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주님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언제나 위엄 있고 멋져 보이던 회당장 야이로에게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도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간절히 비는 심정으로, 예수께 무릎을 꿇어 엎드렸습니다.
아마 여인은 멀찍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옵니다. 여전히 밀고 당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때 여인은 생각합니다. ‘내가 저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저 사이로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나를 보고 피하겠지? 내가 들어가는 순간 모두를 부정하게 만들 수 있는데, 나는 어떻게 저분을 만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여인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이 정하게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부정함이 온전하게 회복될 수 있다면, 결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에게는 예수님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마태는 당시 여인의 믿음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마태복음 9:20~21)

여인은 자신이 부정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 나아가 차마 “나를 고쳐 주십시오.”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을 용기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끌어당길 만한 용기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저 조용히 예수께로 다가갑니다. 그리곤 예수님의 옷자락에 가만히 손을 댑니다. 그저 한 번의 터치, 한 번의 접촉일 뿐이었습니다. 여인에게는 ‘이 한 번의 접촉만으로도 예수께서 무언가를 하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해도, 그분의 정함이 내 부정함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정말 완전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와의 접촉이 어떤 변화를 초래하겠습니까? 아마 완전한 존재를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하나님을 보는 순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대우하십니다. 완전하신 주님께서 불완전한 우리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십니다. 그래서 나의 어떤 부정함도 부정함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의 불완전함이 그분의 완전하심 속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나의 연약함을 감쌉니다. 주님의 온전하심이 나의 질병을 치유합니다. 완전하신 그분과 접촉함으로써 죽음도 생명으로 뒤바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로 이 믿음이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있었습니다.

<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부정함이 정결함을 입습니다. >

어느 문학가의 이야기입니다. 오랫동안 예수를 믿지 않고 있다가 특별한 계기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분입니다. 이분을 오랜 기간 전도하신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저에게 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그 문학가를 찾아가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유하면 그분이 항상 이런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온 지구의 수십억 명이 예수님에게 매달려 있는데,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라도 그 수고를 조금 덜어 드려야지요.” 이렇게 농담하며 너스레를 떨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붙들고 있다고 해서, 과연 예수님이 힘들어하실까요? 내가 빠져 주는 게 그분께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내게 기회가 없는 것일까요? 내가 양보하는 게 교양 있는 행위일까요? 혹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조금 더 잘 가꾸고 갖춘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야 할까요?
예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꾸미고 온전해지려고 노력한들, 주님 앞에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의 죄를 아무리 감추고 덮으려 해도, 그분 앞에서는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한 가지뿐입니다. 나의 부족함과 부정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온전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믿음이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하신 주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의 입과 손으로 부정한 일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지식과 지혜로 인해 어려움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부정함이 다른 이와의 관계를 어렵게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이자 실존입니다. 아무리 죄악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해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빠져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의 부정함이 예수님의 온전하심과 만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나의 더러움이 깨끗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나의 부족함이 온전함으로 바뀝니다. 예수님과 접촉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하심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중 44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누가복음 8:44 중)

<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순간, 혈루증이 멈추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자신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을 찾으십니다. 누가복음 8장 45~4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누가복음 8:45~46)

예수님은 그녀가 접촉한 즉시 알아채셨습니다.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을 아셨던 것입니다. 사실 얼마든지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자리였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을 지경에 놓였으니, 바삐 걸음을 옮기셔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에 서셨습니다. 걸음을 멈추시곤 자신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을 찾기 시작하십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관심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과 같이 비천한 자를 눈여겨봐 주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회당장 같이 높은 사람에게는 관심을 가져도, 자신처럼 부정한 사람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눈길조차 피했습니다. 그분께 말 한마디 걸지 못했습니다. 그저 뒤로 살며시 돌아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을 뿐입니다.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가에 손을 대니 (누가복음 8:44 중)

그 순간 예수님이 돌아보십니다.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여인을 바라보십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여인, 외면하던 그 여인을 예수님이 찾으십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주변에 몰려 있었습니다. 숱한 군중이 예수님의 뒤를 좇았고, 그분을 만나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삶의 문제를 해결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과 접촉했지만, 오직 소원을 가지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여인만이 정함을 입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간 여인만이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군중 속에서 여인을 찾아내시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8:48)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오직 믿음만을 보셨습니다. 겉모습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녀의 더러움도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녀에게 율법 준수 여부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따지지도 않으셨습니다. 오직 예수께 희망을 두고 찾아온 여인에게 자유와 구원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리 중에 끼어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님은 무리 가운데서 도리어 나를 찾고 계십니다.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기만 한다면,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2020년 11월 2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예수, 무리 속에서 나를 보시다” (눅 8:40-48)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531장, 53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눅 8:40-48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1월 2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혈루증으로 12년을 앓아온 한 여인이 있습니다. 고친다는 의사들에게 보였겠지만, 고생만 하였습니다. 가진 재산도 모두 허비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병은 더 중하여 졌습니다. (막 5:25-26).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사랑받기 원하는 여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과 같은 병이었습니다. 여인 스스로도 자신이 너무 부정하고 불결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설교의 요약

    이런 여인에게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용기가 없습니다. 내가 저 무리 속에 들어가면 저들도 다 부정하게 될 것을 알았기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동네의 높은 사람인 야이로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죽을 위기에 놓인 12살 난 자신의 딸을 살려달라는 애절한 요구였습니다. 위엄 있는 회당장에게도 간절한 사연은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잘 살고 있는 듯 보였지만,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모든 것을 치유하시고, 살려내시는 예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간절한 소원을 가진 구걸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인은 용기를 냅니다. ‘내가 부정하여 나를 만지는 사람이 모두 부정하게 된다 할지라도, 내가 정하게 되는 한 가지 방법은 저 부정들 사이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지는 것이다. 그분을 내가 만지게 된다면, 그분의 온전함이 나의 부정함을 온전함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녀는 그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여인은 한 가지, ‘그분과의 터치, 접촉이 나를 정하게 할 것이다. 나는 부정하나, 그분의 정하심이 나를 정하게 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어느 유명한 문학가는 그를 전도하려고 애써온 다른 문학가에게 늘 이런 말로 전도를 피했다고 합니다: “온 지구의 수십억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두 매달려 있는데,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라도 그 수고를 조금 덜어드려야지요.” 우리 하나님이 온 인류도 품지 못하는 분이실까요? 내가 너무나 많은 죄를 지어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을까요? 내가 너무 지저분해서 예수님을 만나서는 안될까요? 이제 그분을 만나야 나의 부정함이 나음을 얻습니다.

    이제 여인은 예수님의 옷깃을 만집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무시하고 지나가셔도 되는데 걸음을 멈추시고 한 여인을 찾으십니다. 무리 중에서 그를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같이 지저분한 사람, 냄새나는 사람은 관심도 없으실 거야.’ 그렇게 생각하던 여인을 향해 예수님은 멈추시고 그를 찾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리 중에 끼어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님은 무리 중에서 나를 보고 계십니다. 나의  기도, 말하지 않는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나누기

 1. 나에게 이 여인과 같이 예수님만 알고 있는 아픔, 고통, 기도제목은 무엇인가요? 

 2. 이런 기도제목으로 기도할 때,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 멈추시고 찾고 계심을 경험하시나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예수님,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바로 나입니다. 숨고 싶고, 피하고 싶은 나에게 오늘 찾아오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 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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