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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예배하는 이유

히브리서 10: 19 ~ 25

김경진 목사

2020.10.18

< 초대 교회는 함께 모여 예배하는 데 힘썼습니다. >

오늘은 많은 성도님과 함께 예배당에서 현장 예배를 드리는 특별한 날입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분들뿐만 아니라 예배당에 나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마스크를 벗고 인사를 나누고 싶지만, 조금 더 인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로 현장 예배가 제한되면서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의 형태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2월 23일,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예배당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예배당 문을 닫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목사로서 평생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기에,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님들께서 잘 협조해 주시고 모범적으로 방역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3월 첫 주일 설교를 할 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살인하지 말지니라.”라는 계명 및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지니라.”라는 주님의 명령을 연결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많은 성도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첫 번째 온라인 예배를 드리셨고, 특별히 그 주일에 드린 예물은 대구·경북 지역을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익숙한 자리를 떠나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드린 지 8개월이 지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온라인 예배에 푹 빠진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교회에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다는 분들도 계시고, 가족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때보다 말씀이 더 잘 들린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다른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도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처럼 코로나19라는 위기의 상황을 잘 극복해 가시는 성도님들의 모습에 참 감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코로나19의 상황이 지난 뒤에도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싶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있다는 데서 조금은 긴장감을 느낍니다. 온라인 예배의 편의성이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예배는 여러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임시적으로 드리는 예배이지, 상시로 드리는 예배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주제도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하는 이유.”
저는 지난 3월 첫 주일에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우리가 각 처소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려야 할 이유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일에는 우리가 예배당에 모여 함께 예배드려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함께 기도로 준비하며, 마침내 모두가 모여 예배드릴 날을 기대하고 기다리기를 원합니다.
먼저 초대 교회의 예배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은, 초대 교회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배드렸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성전에서도 모였고, 회당에서도 함께 모여 예배드렸습니다. 가정에서도, 솔로몬 행각에서도, 카타콤이라는 공동묘지에서도 함께 모여 예배드렸습니다. 안식일에만 모인 것도 아니며,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함께 모였습니다. 매일같이 성전에 모여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이 일정한 장소를 정해 예배드리기 시작한 것은 4세기가 지나서였습니다. 로마 교회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 즉 각 교회에 예배 처소를 만들어 주기 전까지 교회는 특별한 예배 장소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예배드릴 때마다 어떤 장소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지는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 예배의 핵심은 공동체가 서로 함께 모인다는 데 있었지, 어떤 장소에 모이는 것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동체가 자주 함께 모인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구약의 말씀을 재해석하기 시작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구약의 말씀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성전이라고 믿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라고 전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어떤 장소로서의 성전이 아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 되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으며, 두세 사람이 함께 하나님을 찬미할 때 거기서부터 예배가 시작됨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믿음의 공동체는 함께 모여 예배합니다. >

초대 교회가 거룩한 장소를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의 모임 가운데 예배의 감격을 이어간 데는 나름의 원인과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구약 시대부터 내려온 희생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로써 더는 구약의 희생 제사가 필요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자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즉 그들은 구약의 제사는 하나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제사는 온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완성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자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인간의 모든 죄악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성전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을 초대 교회 교인들은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의 신앙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어떤 장소나 거룩한 공간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큰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느냐 아니냐’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초대 교회의 행보가 히브리서 10장 1~18절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12~14절과 18절이 그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2~14,18)

일반적으로 종교인들이 모이는 이유는 제사 드리기 위함일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이 제사 드리기 위해 성전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제사 드리기 위해 성전에 모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모여야 했을까요?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가 완전히 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힘써 모여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언제까지 이 땅에서 예배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의 예배가 지속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믿음의 공동체는 ‘도리의 소망’을 붙잡기 위해 함께 모여 예배합니다. >

흥미롭게도 히브리서 10장 25절 말씀에는 당시 상황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히10:25 중)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정황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신학적인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는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는 함께 모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 말입니다.
두 번째는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상황’과 연결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한 공동체를 지향했습니다. 가난한 자나 부한 자, 남자나 여자, 유대인과 이방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가 됨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하나 된 모임을 폐하고자 했습니다.
세 번째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 곧 ‘게으름’ 때문입니다. 함께 모여야 함을 알면서도 게을러서 모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태함에 빠져 모이기를 폐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 오직 서로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여야 한다.”
그렇다면 초대 교회는 무슨 이유로 모였을까요? 어떤 목적 아래 함께 모였을까요? 오늘 본문에 그 이유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 이유는 우리 각자의 ‘믿음’과 ‘소망’의 내용을 더욱 굳건하게 하며, 확실히 붙잡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히브리서 10:23)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붙잡기 위해 함께 모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믿음만 가지고, 모이지 않고 흩어져 지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자세히 알 수 있었을까요? 십자가 죽음과 부활, 주님의 승천과 재림, 사도들의 복음 증언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을까요? 믿음의 선배들이 함께 모여 그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더라면, 100년, 200년, 500년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할 수 있는 건, 수천 년 동안 성도들이 함께 모여 믿음의 내용을 공유하며 예배드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모여야 할 이유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성경 연구를 열심히 해도, 기독교 공동체는 함께 모이지 않으면 믿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희망이 되는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우리의 신앙도 단단해지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운동할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홀로 결단하여 끝까지 운동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반면 함께 모여 운동하면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이유가 이처럼 매우 실제적인 차원이란 사실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초대 교회 교인들도 매일같이 함께 모여 예배드렸던 것입니다. 함께 주님을 찬양했고, 함께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함께 기도드렸습니다.
오늘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리는 분들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찬양하니까 어떻습니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하나님께서 이 찬양을 기쁘게 받고 계신다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의 공동체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입니다.

<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함께 모여 예배합니다. >

또한 초대 교회 공동체는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 말씀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브리서 10:24)

이것이 초대 교회 교인들이 함께 모여 했던 일입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선물에 감사하는 데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은혜에 감격해 세상으로 나아갔고, 사랑과 선행을 실천했습니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었으며, 배고픈 자들과 과부와 고아들을 섬겼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섬기는 자의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선행을 실천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 교인들의 섬김과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사도행전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사도행전 2장 44~47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4~47)

공동체 안에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에 대한 그들의 감사 표현이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선행을 통해 서로를 자극하며 격려했습니다. 다른 이들도 선행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따뜻하게 사랑을 실천하며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 약한 이들에게 다가가 마음 쓰는 일, 가난한 이들에게 찾아가 용기를 북돋워 주는 일을 함께하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가 함께 모였던 이유입니다. 단순히 복 받기 위해 모인 게 아닙니다. 더 받기 위해, 더 누리기 위해 모였던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모였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고, 찬송하기 위해 모였으며, 함께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 믿음의 공동체는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바라며 함께 모여 예배합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려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4~5)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함께 모여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하셨습니다. 함께 모인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모인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날 성도들이 함께 모인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였듯이, 우리가 함께 모인 자리에 주님의 성령이 임할 것입니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성령의 선물이 허락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모입니다. 함께 모여 기도합니다. 함께 선행을 격려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새로운 신비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예배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힘써 모여야겠습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셨기에, 성령을 기대하기에, 우리는 힘써 모여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그래서 우리가 온전히 함께 모이지는 못하지만, 함께 모이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며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일 그 날을 고대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구원을 노래하며, 서로의 선행을 격려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Why We Must Gather For Worship

Hebrews 10: 19-25

Dear Church, I have missed you so much. I want to worship with you face-to-face, masks off, but we will have to wait a bit longer since the coronavirus continues to spread.

It has been eight months since worship was limited. Somang Church has exerted many efforts to stop the spread of the virus. It closed its buildings on February 23, the day the president raised the alert level to the highest level.

As the head pastor I had my concerns, but with your cooperation we played an exemplary role as the first church to participate in the prevention of Covid-19. I felt bad and heavy-hearted about closing our church doors because being the first to close them was not something to be proud of.

In my sermon on the first Sunday of March, I explained the inevitability of worshiping online and sought your cooperation, since we are in the midst of a pandemic. Faced with seemingly conflicting commands—such as keep the Sabbath, love your neighbor, and do not murder—worshiping online was inevitable. Many of us cried as we worshiped online at home. Leaving our familiar form of worship, we started to worship at home or in each of our places.

Eight months have passed.

How would you describe your worship now? How do you feel about online worship? Some say that the new form of worship is actually good. They can save time since they don’t have to travel to church. Some like it because they can worship with their family. Some because they can concentrate on the message better than worshiping at church. Some because they can listen to many pastors, not just one. Hence, some say that they are inclined to worship online, even after the pandemic is over.

Of course, it isn’t over yet, and it is only fitting that we worship online now. But it would be dangerous to say that this new form of worship is better or more convenient.

I am not saying this because of church management or the problem of tithes. Yes, these issues are not completely irrelevant, but they are not the fundamental reason.

Despite the convenience and usefulness of online worship, there are some clear reasons why we must gather for worship, which is why today’s sermon is titled “Why We Must Gather For Worship.”

If I explained the reason for “online” worship in my sermon back in March, today I wish to share with you why we must await and work toward “gathering” for worship.

First, let’s think about how the early church worshiped. Scriptures that tell us about the early church, such as Acts, reveal that the early Christians did not have a designated place for worship.

They gathered in the temple, in synagogues, in homes, in the catacombs, and even in the streets. They did not just gather on the Sabbath. They also gathered on the day after the Sabbath, which was the day Jesus was resurrected. In fact, the Bible says that they continued to meet together every day.

The early Christians designated a place for worship only after Christianity was granted legal status in the 4th century. Till then, they did not have a special place for worship. The heart of Christianity is not the place of worship. This was all the more true for the early church.

The essence of the early church’s worship was that it gathered continually. The place of gathering was not important, but the fact they met often was.

According to the New Testament, a fresh interpretation of Scripture, the early Christians believed that they themselves were the temple. The temple was not a place. They believed that each believer was himself a temple and that the Lord was with them whenever two or three gathered in His name.

The reason why the early church did not consider a certain place holy and emphasized gathering was because it realized and confessed with faith that sacrifices according to the longstanding Jewish religion were no longer necessary.

They believed that the sacrifices of the Old Testament were a shadow—that is, the sacrifices themselves did not have the power to forgive sins or to reconcile them with God. The sacrifices and the temple were just a model, or shadow, of the ultimate sacrifice, Jesus Christ.

The true temple was Jesus Christ for He came to earth and made us truly reconciled with God. To believe in Christ meant that sacrifices were no longer needed to be reconciled with God and to be forgiven of one’s sins. To believe in Him was to declare that one was forgiven of his sins in Christ.

This attitude of the early church is well explained in Hebrews 10:1-18, which can be summed as follows:

“But when this priest had offered for all time one sacrifice for sins, he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God, and since that time he waits for his enemies to be made his footstool. For by one sacrifice he has made perfect forever those who are being made holy.” (Hebrews 10:12-14)

“And where these have been forgiven, sacrifice for sin is no longer necessary.” (Hebrews 10:18)

If this was the case, then why did the early Christians gather? Most religions, including the Jews, gathered to offer sacrifices. Without this purpose there really was no reason to meet. Yet, the early church met often and continually, which isalso seen intoday’s scripture.

Although the Lord tells us in Hebrews that sacrifices are no longer necessary for the forgiveness of sins, He emphasizes that we must still gather: “Not giving up meeting together, as some are in the habit of doing, but encouraging one another—and all the more as you see the Day approaching.” (Hebrews 10: 25)

Through these words of our Lord we learn two important aspects of worship: First, it tells us until when worship must continue. The Lord orders us to gather “all the more as you see the Day approaching.” That is, our worship must continue until Jesus comes again. We must gather all the more as the Day approaches.

Interestingly, it seems that in that time some gave up gathering. Although we cannot know the exact reasons for this, we may presume some.

First, from a theological point of view, the people who gave up gathering may have thought that meeting together for the purpose of offering sacrifices was no longer necessary, since Christ already reconciled us to God by making the ultimate sacrifice. Therefore, they believed that believers did not have to gather.

Second, social discrimination, a pervasive problem of the time, may have prevented them from gathering. Some believers did not want to be with the lower class, such as servants and the poor, despite Jesus’ command that all believers were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Third, pure laziness. Some wanted a comfortable life. These people just wanted to believe and live a comfortable life after being saved by Christ. Yet, our Lord commands us through today’s scripture: “Do not give up meeting together, as some are in the habit of doing, but encourage one another—and all the more as you see the Day approaching.”

Then why did the early Christians meet together? For what purpose? If sacrifices were no longer necessary, why then did they gather frequently and continually? Today’s passage tells us two reasons why we must gather.

First, we must come together in order to steadfastly hold on to our faith and our hope: “Let us hold unswervingly to the hope we profess, for he who promised is faithful.” (Hebrews 10: 23)

If the early Christians and the Christians that followedhad not met and worshiped together, what would have happened? We would never have known what God did for us, how we came to be saved, or what God has in plan for us. We would never have come to know how Christ’s crucifixion 2000 years ago cleansed our sins, or the hope that His resurrection brings. In this harsh, dark, evil, and unjust world where evil defeats good, we would not have known why we must go on living. We would not have realized the meaning of life.

When we stand alone, we are weak and fall. Faith is all the more so. It’s not that we can’t reach salvation by reading and meditating on Scripture alone. What I am saying is that because man is weak, he needs a community. And Christians need a faith community.

Without this, we become lazy and ungrateful, we forget, and we lose our joy of salvation. That is why the early Christians met together every day, every week, whenever they could.

What did they do when they gathered? They praised God for His deeds, prayed to God asHe commanded them, shared the word and the mystery of salvation, remembered Christ who died for them, and sang praises. This,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is worship.

Second, we must gather for worship because of this advice from the Lord: “And let us consider how we may spur one another on toward love and good deeds.” (Hebrews 10: 24)

The worship of the early church went beyond giving thanks for salvation. It practiced good in the world for the overwhelming grace it received. It gave to the poor by selling its possessions. It served the hungry, orphans, and widows.

Such acts were done not for their salvation. Already, faith in the cross gave them salvation. They voluntarily served the world with a thankful heart toward God, as people already saved and indebted to Christ. This led them to do good deeds and charity, to serve, and to love.

The early Christians encouraged one another and spurred each other on: “All the believers were together and had everything in common. They sold property and possessions to give to anyone who had need. Every day they continued to meet together in the temple courts. They broke bread in their homes and ate together with glad and sincere hearts, praising God and enjoying the favor of all the people. And the Lord added to their number daily those who were being saved.” (Acts 2: 44-47)

When we serve and love someone in need in our church communities or when we give offerings with commitment, we are not only committing ourselves to God but also encouraging His holy people. This is what the early church did.

How beautiful! I am deeply saddened by the Korean society today. We are living in a world where people criticize and hurt one another and consider people of different ideas enemies and criminals.

We must practice God’s love, look after orphans and widows and the needy, draw close to and care for the weak, and encourage the poor. By doing these works together, we encourage good deeds and acts of love. And this was the reason the early church met together.

It did not gather to be blessed. Early Christians did not come to their place of worship to get more or to gain more. They gathered for worship continually to be encouraged to love more and to do more good.

Third, we must gather for worship because it is what the Lord commanded. Before Jesus went up to heaven, this is what He said to His disciples:

“On one occasion, while he was eating with them, he gave them this command: ‘Do not leave Jerusalem, but wait for the gift my Father promised, which you have heard me speak about.For John baptized with water, but in a few days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Acts 1: 4-5)

Our risen Lord called His disciples and commanded them not to leave Jerusalem and wait for the Holy Spirit—together. And, as we know, they gathered and received the Holy Spirit on Pentecost. So, there is a clear reason why we must gather. As the Lord said, it is to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we gather, remember God’s works, and praise Him, when we share our stories of salvation, our faith, and hope, and when we encourage one another to love and to do good, our Lord gives us the Spirit He promised us. Through the power of the Spirit, we come to know the gospel and God’s truth more deeply and we are able to practice love.

Dear Church, we must therefore strive to gather. We must meet together to build up each other’s faith, to encourage one another to love, and to receive the Holy Spirit.

Although Covid-19 has not completely disappeared and the situation is stillserious, I hope that you will not let down your desire to gather for worship. I dearly hope that the day we all gather to sing Him praises and glorify Him for His work of salvation, the day we come together to encourage one another in love, and the day we await the Holy Spirit’s presence together will come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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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0: 19 ~ 25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초대 교회는 함께 모여 예배하는 데 힘썼습니다. >

오늘은 많은 성도님과 함께 예배당에서 현장 예배를 드리는 특별한 날입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분들뿐만 아니라 예배당에 나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마스크를 벗고 인사를 나누고 싶지만, 조금 더 인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로 현장 예배가 제한되면서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의 형태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2월 23일,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예배당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예배당 문을 닫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목사로서 평생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기에,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님들께서 잘 협조해 주시고 모범적으로 방역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3월 첫 주일 설교를 할 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살인하지 말지니라.”라는 계명 및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지니라.”라는 주님의 명령을 연결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많은 성도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첫 번째 온라인 예배를 드리셨고, 특별히 그 주일에 드린 예물은 대구·경북 지역을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익숙한 자리를 떠나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드린 지 8개월이 지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온라인 예배에 푹 빠진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교회에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다는 분들도 계시고, 가족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때보다 말씀이 더 잘 들린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다른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도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처럼 코로나19라는 위기의 상황을 잘 극복해 가시는 성도님들의 모습에 참 감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코로나19의 상황이 지난 뒤에도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싶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있다는 데서 조금은 긴장감을 느낍니다. 온라인 예배의 편의성이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예배는 여러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임시적으로 드리는 예배이지, 상시로 드리는 예배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주제도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하는 이유.”
저는 지난 3월 첫 주일에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우리가 각 처소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려야 할 이유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일에는 우리가 예배당에 모여 함께 예배드려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함께 기도로 준비하며, 마침내 모두가 모여 예배드릴 날을 기대하고 기다리기를 원합니다.
먼저 초대 교회의 예배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은, 초대 교회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배드렸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성전에서도 모였고, 회당에서도 함께 모여 예배드렸습니다. 가정에서도, 솔로몬 행각에서도, 카타콤이라는 공동묘지에서도 함께 모여 예배드렸습니다. 안식일에만 모인 것도 아니며,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함께 모였습니다. 매일같이 성전에 모여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이 일정한 장소를 정해 예배드리기 시작한 것은 4세기가 지나서였습니다. 로마 교회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 즉 각 교회에 예배 처소를 만들어 주기 전까지 교회는 특별한 예배 장소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예배드릴 때마다 어떤 장소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지는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 예배의 핵심은 공동체가 서로 함께 모인다는 데 있었지, 어떤 장소에 모이는 것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동체가 자주 함께 모인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구약의 말씀을 재해석하기 시작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구약의 말씀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성전이라고 믿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라고 전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어떤 장소로서의 성전이 아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 되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으며, 두세 사람이 함께 하나님을 찬미할 때 거기서부터 예배가 시작됨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믿음의 공동체는 함께 모여 예배합니다. >

초대 교회가 거룩한 장소를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의 모임 가운데 예배의 감격을 이어간 데는 나름의 원인과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구약 시대부터 내려온 희생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로써 더는 구약의 희생 제사가 필요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자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즉 그들은 구약의 제사는 하나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제사는 온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완성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자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인간의 모든 죄악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성전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을 초대 교회 교인들은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의 신앙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어떤 장소나 거룩한 공간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큰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느냐 아니냐’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초대 교회의 행보가 히브리서 10장 1~18절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12~14절과 18절이 그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2~14,18)

일반적으로 종교인들이 모이는 이유는 제사 드리기 위함일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이 제사 드리기 위해 성전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제사 드리기 위해 성전에 모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모여야 했을까요?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가 완전히 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힘써 모여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언제까지 이 땅에서 예배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의 예배가 지속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믿음의 공동체는 ‘도리의 소망’을 붙잡기 위해 함께 모여 예배합니다. >

흥미롭게도 히브리서 10장 25절 말씀에는 당시 상황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히10:25 중)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정황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신학적인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는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는 함께 모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 말입니다.
두 번째는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상황’과 연결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한 공동체를 지향했습니다. 가난한 자나 부한 자, 남자나 여자, 유대인과 이방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가 됨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하나 된 모임을 폐하고자 했습니다.
세 번째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 곧 ‘게으름’ 때문입니다. 함께 모여야 함을 알면서도 게을러서 모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태함에 빠져 모이기를 폐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 오직 서로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여야 한다.”
그렇다면 초대 교회는 무슨 이유로 모였을까요? 어떤 목적 아래 함께 모였을까요? 오늘 본문에 그 이유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 이유는 우리 각자의 ‘믿음’과 ‘소망’의 내용을 더욱 굳건하게 하며, 확실히 붙잡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히브리서 10:23)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붙잡기 위해 함께 모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믿음만 가지고, 모이지 않고 흩어져 지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자세히 알 수 있었을까요? 십자가 죽음과 부활, 주님의 승천과 재림, 사도들의 복음 증언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을까요? 믿음의 선배들이 함께 모여 그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더라면, 100년, 200년, 500년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할 수 있는 건, 수천 년 동안 성도들이 함께 모여 믿음의 내용을 공유하며 예배드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모여야 할 이유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성경 연구를 열심히 해도, 기독교 공동체는 함께 모이지 않으면 믿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희망이 되는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우리의 신앙도 단단해지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운동할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홀로 결단하여 끝까지 운동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반면 함께 모여 운동하면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이유가 이처럼 매우 실제적인 차원이란 사실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초대 교회 교인들도 매일같이 함께 모여 예배드렸던 것입니다. 함께 주님을 찬양했고, 함께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함께 기도드렸습니다.
오늘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리는 분들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찬양하니까 어떻습니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하나님께서 이 찬양을 기쁘게 받고 계신다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의 공동체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입니다.

<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함께 모여 예배합니다. >

또한 초대 교회 공동체는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 말씀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브리서 10:24)

이것이 초대 교회 교인들이 함께 모여 했던 일입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선물에 감사하는 데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은혜에 감격해 세상으로 나아갔고, 사랑과 선행을 실천했습니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었으며, 배고픈 자들과 과부와 고아들을 섬겼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섬기는 자의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선행을 실천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 교인들의 섬김과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사도행전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사도행전 2장 44~47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4~47)

공동체 안에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에 대한 그들의 감사 표현이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선행을 통해 서로를 자극하며 격려했습니다. 다른 이들도 선행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따뜻하게 사랑을 실천하며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 약한 이들에게 다가가 마음 쓰는 일, 가난한 이들에게 찾아가 용기를 북돋워 주는 일을 함께하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가 함께 모였던 이유입니다. 단순히 복 받기 위해 모인 게 아닙니다. 더 받기 위해, 더 누리기 위해 모였던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모였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고, 찬송하기 위해 모였으며, 함께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 믿음의 공동체는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바라며 함께 모여 예배합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려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4~5)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함께 모여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하셨습니다. 함께 모인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모인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날 성도들이 함께 모인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였듯이, 우리가 함께 모인 자리에 주님의 성령이 임할 것입니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성령의 선물이 허락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모입니다. 함께 모여 기도합니다. 함께 선행을 격려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새로운 신비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예배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힘써 모여야겠습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셨기에, 성령을 기대하기에, 우리는 힘써 모여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그래서 우리가 온전히 함께 모이지는 못하지만, 함께 모이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며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일 그 날을 고대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구원을 노래하며, 서로의 선행을 격려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2020년 10월 18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우리가 함께 예배하는 이유” (히 10:19-25)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87장, 22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히 10:19-2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0월 18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요즘 온라인 예배로 드리시는 여러분, 어떠신가요? 어떤 분들은 교회에 오고 가는 시간이 없어서 시간이 절약되어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족들과 함께 예배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십니다. 예배당에서 드리는 것 보다 설교 말씀을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교회 목사님의 설교만 아니라 다른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코로나 19의 상황이 지나가도 그냥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설교의 요약

    하지만 온라인 예배가 더 편리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말입니다. 온라인 예배의 편리성이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초대교회 교인들이 왜 자주 그리고 열심히 모였던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우리도 함께 모여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믿음, 우리의 소망을 확실하게 붙잡기 위해서입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히 10:23). 이 어둡고 힘든 세상, 악이 편만하고 부조리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홀로 있으면 우리는 연약하여 쓰러지고 무너지고 맙니다. 이렇게 한 공동체로 묶이지 않으면 우리는 게을러지고, 나태해 지고, 감사가 사라지며, 구원의 기쁨을 잊게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함께 모일 이유는 ‘함께 모여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기 위함’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 10:24).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믿음 그 자체로 구원을 주시기에 충분하지만, 그 구원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빚진 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섬길 마음을 자발적으로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모일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자극을 주고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우리가 함께 예배의 자리에 모여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 1:4-5). 우리가 아는 대로, 제자들은 함께 모였고, 오순절에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찬양할 때, 구원의 이야기를 서로 나눌 때, 믿음과 소망을 서로 나눌 때, 그리고 우리의 선행과 사랑을 서로 격려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분여하십니다. 비록, 감염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는 마음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함께 모여 온전히 예배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누기

 1.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어떤 점이 가장 좋으신가요?

 2. 온라인 예배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다시 성전에 모여야 할까요? 본인에게 다가오는 말씀을 구역식구들과 나눠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힘써 모이라, 성령을 받으리라,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떠난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서로 격려하며, 우리의 믿음을 단단하게 하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참된 예배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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