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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신에게 잡힌 사람

역대하 25:14~16

김경진 목사

2024.02.11

<남유다의 왕 아마샤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방송에서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라는 멘트로 시작되는 프로그램처럼 오늘은 ‘해외에 계신 성도 여러분’이라고 부르면서 설교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설 명절을 보내면서 여러분의 모든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 넘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온 가정이 하나님을 믿는 가정으로 우뚝 설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마샤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아마샤’라는 왕의 이름을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최근 역대기를 함께 읽어 가면서 아마샤 왕에 대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새벽 기도하신 분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일 수 있겠지만, 함께하지 못한 분들은 처음 듣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먀사 왕은 남유다의 왕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경외하려고 노력했던 왕으로 꼽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흠도 있던 왕이기도 합니다. 요아스 왕의 아들인 아마사야는 요아스 왕이 암살된 후에 왕위를 이어 갑니다.

요아스 왕은 어려서 1살 때 성전에 숨은 후, 7살 때 다시 왕위를 찾았던 왕입니다. 그때부터 성전과 성전 예배를 복원했습니다. 요아스 왕이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충실했지만, 후에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마지막에는 신하들에게 살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이어서 왕으로 등극한 사람이 아마샤입니다. 아마샤와 관련된 내용은 열왕기하 12장부터 14장까지, 그리고 역대하 24장부터 26장까지 두 곳에 자세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말씀에서 25장 1절은 아마샤의 통치 기간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마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대하 25:1)

 

25세가 되었을 때 왕이 되었고, 29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다는 내용입니다. 총체적인 통치 기간을 설명한 이후에 그에 대한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대하 25:2)

 

조금은 모호한 표현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다는 말인가요? 정확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혹시 영어로 보면 조금 더 의미가 살아날까요.

 

Even though Amaziah obeyed the LORD by doing right, he refused to be completely faithful. (2 Chronicles 25:2, CEV)

 

뒷부분에 “he refused to be completely faithful.”이라는 말이 매우 와닿습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아마샤가 하나님의 말씀에 나름대로 정직하게 따라가려 노력은 하였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것은 거절하였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씀이 어쩌면 나에 대한 말씀이 아닐까요.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심으로 따르기까지는 못 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아마샤는 어떻게 살았기에 이와 같은 평가를 받았을까요. 만약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면 아마샤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아마샤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마샤에 대한 평가가 이어진 다음에 이어서 두 개의 큰 사례들이 나옵니다.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갔는지, 어떻게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예가 두 사건에 걸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마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처형한 내용입니다. 열왕기하 12장 21절에 그 신하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말씀에 따르면 “요사갈과 여호사바드”라는 두 신하가 요아스를 죽였습니다. 두 신하는 정권을 탈취 하려는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고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한동안은 그가 힘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처형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힘이 생긴 뒤에야 그들을 처단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처단하면서 그 자녀들은 처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율법을 따라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대하 25:3~4)

 

말씀대로 왕은 자신의 정적,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은 죽였지만 그 자녀들까지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이 성경의 증언을 보면 그는 마치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처럼 비추어집니다. 그러나 다음 이야기를 보면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는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계명을 따르기는 했지만, 전적으로 의지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전쟁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지략, 자신의 책략을 의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아마샤가 유다 사람들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 만한 자 삼십만 명을 얻고 또 은 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 명을 고용하였더니 (대하 25:5~6)

 

아마샤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병력을 준비합니다. 그는 병력이 모자라자 은 100달란트를 들여서 북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용병을 십만 명 구해옵니다. 이렇게 에돔과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아마샤는 자신의 군사 삼십만, 용병들 십만 명을 구성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내용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계산만이 드러나고 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아마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서 이렇게 조언하셨습니다.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를 왕과 함께 가게 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적군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하니 (대하 25:7~8)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이스라엘 용병들을 데리고 가지 마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습니다. 왕은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주어지자 아마샤는 고민에 빠집니다. 이미 은 100달란트를 지불했던 모양입니다. 이미 다 계산이 끝난 걸 알지만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앞으로 주실 터이니 그렇게 하십시오.” 결국 용병들을 돌려보내고 그들에게 돈을 준 셈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훌륭한 신앙인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남유다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소금 골짜기에 이르러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이고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 (대하 25:11~12)

 

얼마나 극적인 성공이었는지 성경에 나오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고, 또 만 명을 사로잡아서 바위 꼭대기까지 몰고 올라가서 그들을 떨어뜨려 다 죽게 했습니다. 얼핏 지나가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말씀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범죄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로잡은 포로를 만 명이나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게 한 것은 살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그가 어떤 율법은 지키고 있고 어떤 율법은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샤가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하의 자녀들을 죽이지 않은 것도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봅니다. 백성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너그러운 정치인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려져 있는 전쟁의 상황이 되자 그의 잔인한 성격이 드러납니다.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고, 만 명이나 되는 포로들을 죽이는 그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던 아마샤가 다른 신에게도 경배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전쟁에 성공하고 돌아오는 모습이 비춰집니다마는 이어지는 이야기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하며 돌아오는 길에 그는 하나님께 찬양하거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성경에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세일 자손이 가지고 있었던 신상을 가지고 왔고, 그 신들에게 경배하고 분향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대하 25:14)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을 따랐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 전쟁에까지 나아갔고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전쟁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아마샤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 앞으로 나와 기도하지도 영광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돌아오면서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상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책망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대하 25:15)

 

어떻게 자기 백성도 구하지 못한 그 신을 가지고 와서 절하며 그 신을 분향한단 말입니까. 그렇게 힘없는 약한 신을 왜 경배한단 말입니까. 선지자는 이렇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샤 왕은 도리어 그 선지자를 책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습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말머리를 꺼내는데, 왕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우리가 언제 너를 왕의 고문으로 추대하였느냐? 맞아 죽지 않으려거든 그쳐라!” 하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고 그쳤다. “임금님께서 나의 충고를 받지 않고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임금님을 망하게 하시기로 결심하셨다는 것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대하 15:16, 새번역)

 

왜 아먀사 왕은 이 부분에서 양보하지 않았을까요. 왜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왜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았을까요. 왕은 도리어 선지자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4장 4절은 그 일에 대한 단서를 이렇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왕하 14:3~4)

 

이 평가를 토대로 한다면, 아마샤가 왜 에돔 땅에서 돌아올 때 그들이 섬기던 신상을 가지고 왔는지, 왜 그 신상에 경배하고 분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다른 신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은 이렇게 생각했겠죠. “나는 여호와의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산당에서 다른 신에게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에돔에서 돌아올 때에도 다른 신을 가지고 와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결국 온전히 하나님만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서 사온 용병들이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을 돌려보냈으나 그들이 쉽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지역을 약탈했고, 사람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북이스라엘과 전쟁이 시작됩니다. 결국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남유다는 패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이 약탈되고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전에 있던 금과 은과 모든 것들이 빼앗기게 됩니다. 또 왕궁에 있던 재물 역시 다 빼앗기게 됩니다. 사람들도 볼모로 잡혀갑니다. 완전한 패전이었습니다. 참당한 비운을 맞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대하 25:20)

 

에돔 사람의 신을 섬긴 일이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아마샤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됩니다.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 간 생존하였더라 (대하 25:25)

 

‘통치하였다’, ‘다스렸다’라는 말이 아닌 ‘생존하였다’, ‘죽지 못해 살았다’라는 말입니다. 몇몇 학자들은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에게 패전했을 때 볼모로 잡혀갔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에 에돔 신을 가지고 왔던 그의 불신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왜 그는 자신의 백성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에돔의 신을 경배하려고 했을까요.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참 무식하고 미련하다. 어떻게 에돔 신상을 가져다가 섬길 생각을 했을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미련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많이 묵상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중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떤 전쟁에서 승리를 할 때가 있죠. 간절히 구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승리하게 되고, 차지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리품 같은 것들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에돔의 신상 같은 것들을 전리품으로 얻을 때가 꽤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전리품이자 선물이고, 하나님 승리의 표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전리품을 도리어 섬기고 그것이 나의 신이 되어 하나님은 사라지는 경험을 할 때가 상당히 있습니다. 내가 경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복 자체가 마치 신처럼 내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경험을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재물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적절한 재물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전리품과 같은 것입니다.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재물이 나의 신이 되어 내가 그것을 의지하고, 재물이 나를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도리어 에돔의 신상을 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얻게 된 많은 응답들이 있습니다. 마치 전투에서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얻는 전리품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직장들이 그럴 수 있고, 이것만큼은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특별한 자리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는 배우자나 어렵게 얻은 자녀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때로는 하나님의 자리에 어렵게 얻은 자녀가, 어렵게 가진 자리가, 어떤 직장이 놓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인데 도리어 그것을 숭배하느라 하나님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신이 될 때,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분노하십니다.

완전히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다면 더 분명히 우리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동시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에게는 큰 함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아마샤가 겪었던 함정이기도 합니다. 아마샤 역시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고, 율법도 지키고,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도 청종했습니다. 나름대로 말씀 따라 자신의 계획도 수정합니다. 그렇게 전투에 나가 승리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신도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재물의 신일 수도 있고, 자리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고, 에돔의 신상일 수도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는 많은 신이 필요할까요. 왜 아마샤는 하나님만 아닌, 다른 산당의 신들도 필요로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지치셨을 때 다른 신도 동원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을까요. 마치 운동선수들이 지쳤을 때를 대비해 교체 선수를 두는 것처럼 다른 신을 모시는 걸까요. 아니면 신마다 전문분야가 따로 있어서 특별한 분야에는 다른 신이 필요해서였을까요. 실제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총체적인 하나님이시지만, 바알 신상은 풍요를 상징하는 신이고, 아세라는 다산을 상징하는 신이었습니다. 특별하게 다산과 풍요를 주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도 섬기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지침이 없으신 분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고, 능력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외에 어떤 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려 하면 하나님은 질투하시죠. 그 신이 대단해서 질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나무, 어떤 돌 등의 피조물들을 하나님과 동일한 선상에 놓는 것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진노하고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4년을 맞이하고 설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생각해 봅시다. 나의 삶을 다시 되짚어 봅시다. 과연 나와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기고 있는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신도 함께 슬그머니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서 불러왔던 용병들. 결국 그 용병들이 아마샤를 무너지게 만드는 역사적인 단초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셔서 포로처럼 잡아 온 에돔의 신상. 그것에 경배한 것이 아마샤를 결국 무너지게 만드는 영적인 단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결코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를 한번 깊이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The Man Captured by the Gods He Captured

 

2 Chronicles 25:14-16

 

King Amaziah of Judah, son of Joash, took the throne after the assassination of his father by his subjects. The life ofKing Amaziah is chronicled mainly in 2 Kings 12-14 and 2 Chronicles 24-26.

 

Second Chronicles 25:1 summarizes the term of his rule as follows:

 

“Amaziah was twenty-fiv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in Jerusalem twenty-nine years.”(2 Chronicles 25:1)

 

Then Chronicles assesses him as such: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but not wholeheartedly.”(2 Chronicles 25:2)

 

What an interesting assessment. What is the meaning of this?Perhaps we will be able to better understand its meaning through a different translation:

 

“Even though Amaziah obeyed the LORD by doing right, he refused to be completely faithful.” (2 Chronicles 25:2 CEV)

 

The Bible says, “he refused to be completely faithful.” He followed the word of God, but he was not completely faithful.

 

What was Amaziah’s life likeso as to receive such an ambivalent evaluation?

 

Second Chronicles tells two stories about Amaziah which allow us to understand its appraisal of him.

 

First, Chronicles tells us that after Amaziah came to the throne he executed the officials who murdered his father, but allowed their children to live.

 

Second Kings provides the names of the men who killed King Joash: Jozachar and Jehozabad. In telling the story of how Amaziah executed the two assassins but not their children, the Bible says that Amaziah acted in accordance with the Mosaic Law in Deuteronomy 24:16. In short, Amaziah obeyed the Law:

 

“After the kingdom was firmly in his control, he executed the officials who had murdered his father the king.Yet he did not put their sons to death, but acted in accordance with what is written in the Law, in the Book of Moses, where the LORD commanded: ‘Fathers shall not be put to death for their children, nor children put to death for their fathers; each is to die for his own sins.’” (2 Chronicles 25:3-4)

 

As such, Amaziah was a king who followed the word of God, but in starting a war, he judged for himselfinstead of depending on God:

 

“Amaziah called the people of Judah together and assigned them according to their families to commanders of thousands and commanders of hundreds for all Judah and Benjamin. He then mustered those twenty years old or more and found that there were three hundred thousand men ready for military service, able to handle the spear and shield.He also hired a hundred thousand fighting men from Israel for a hundred talents of silver.” (2 Chronicles 25:5-6)

 

As he prepared to fight against Edom, Amaziah engaged 100,000 men of the Kingdom of Israel as mercenaries in addition to mobilizing 300,000 men of his own—perhaps because he felt his men were not enough.

 

He believed in God, but he also trusted his own calculations.

 

However, this is what a man of God, a prophet, says to Amaziah regarding his decision:

 

“But a man of God came to him and said, ‘O king, these troops from Israel must not march with you, for the LORD is not with Israel–not with any of the people of Ephraim.Even if you go and fight courageously in battle, God will overthrow you before the enemy, for God has the power to help or to overthrow.’”(2 Chronicles 25:7-8)

 

After hearing these words, Amaziah asks what he must do with the 100 talents of silver he paid the mercenaries. The prophet replies that he should let the men leave with the silver for God is able to give him more than that.

 

Thus the war begins, and with the help of God it ends in Amaziah’s victory:

 

“Amaziah then marshaled his strength and led his army to the Valley of Salt, where he killed ten thousand men of Seir.The army of Judah also captured ten thousand men alive, took them to the top of a cliff and threw them down so that all were dashed to pieces.” (2 Chronicles 25:11-12)

 

Death is a part of war, but taking captives to the top of a cliff and throwing them down to their death is murder. Amaziah is violating the Law of God.

 

We see him obey some laws and violate other laws.

 

Come to think of it, he may have had a political intention in not executing the children of his father’s assassins. However, the circumstances of war unveil his brutal character. We see him kill men ruthlessly.

 

Then Chronicles goes on to state that after killing the Edomites in such a fashion and winning the war,Amaziah brought back the gods of the descendants of Seir and worshipped them:

 

“When Amaziah returned from slaughtering the Edomites, he brought back the gods of the people of Seir. He set them up as his own gods, bowed down to them and burned sacrifices to them.” (2 Chronicles 25:14)

 

Consequently, God sends a messenger to rebuke him.

 

“The anger of the LORD burned against Amaziah, and he sent a prophet to him, who said, ‘Why do you consult this people’s gods, which could not save their own people from your hand?’”(2 Chronicles 25:15)

 

But Amaziah only admonishes the prophet and refuses to listen to God’s warning.

 

When the prophet starts to deliver God’s warning, Amaziah interrupts him with this rebuke, “Have we appointed you an adviser to the king? Stop! Why be struck down?”

 

So the prophet ends his speech with these words:

 

“I know that God has determined to destroy you, because you have done this and have not listened to my counsel.” (2 Chronicles 25:16)

 

What a fascinating turn of events. Why did Amaziah rebuke the prophet and reject the word of God? He did not repent at this point. Why? Second Kings 14:4 explains how Amaziah did not do as David had done to the Lord: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but not as his father David had done. In everything he followed the example of his father Joash.The high places, however, were not removed; the people continued to offer sacrifices and burn incense there.” (2 Kings 14:3-4)

 

Based on this assessment, we may guess why Amaziah brought the gods of Seir from Edom and set them up as his gods and worshiped them.

 

In short, Amaziah was a man who worshiped many gods. He worshiped God, but he also worshiped other gods. Clearly, this did not please God spiritually.

 

Most of the time he worshiped God and followed His word, but at the same time he worshiped other gods too.

 

Eventually, the result of his incomplete faith in God led to a war with Israel.

 

First of all, the mercenaries he hired due to his lack of faith in God caused great trouble. Even though Amaziah sent them back, they did not leave without a row. On their way back they raided many regions of Judah from Samaria to Beth Horon, killing 3,000 people and looting their towns.

 

This served as a cause for war with Israel, which ended in Judah’s defeat. Judah met a tragic fate: Jerusalem was plundered, its walls were destroyed, all the gold and silver articles in the Temple of God and valuables in the palace were taken, and the people of Judah became captives.

 

The Bible testifies that the reason for all this was as follows:

 

“Amaziah, however, would not listen, for God so worked that he might hand them over to Jehoash , because they sought the gods of Edom.”(2 Chronicles 25:20)

 

After all these events, Amaziah lived a life that was as good as dead. The Bible says that he lived 15 more years after the death of King Jehoash of Israel:

 

“Amaziah son of Joash king of Judah lived for fifteen years after the death of Jehoash son of Jehoahaz king of Israel.”(2 Chronicles 25:25)

 

The remainder of his life was merely one of survival.

 

The starting point of all this was his disbelief in God, shown by his worship of the Edomite gods. Then why did he worship them?

 

The prophet says to Amaziah, “Aren’t these gods of Edom the gods who couldn’t save their own people from you? Aren’t these the gods of the people you have conquered? God made you defeat Edom, while the gods of Edom failed to protect it.”

 

How then could Amaziah worship such gods? How could such a thing have happened?

 

Readers of this passage may think they themselves will never do such a foolish thing. But will they really not worship other gods? We may not physically bow down to visible gods. But such idol worship of Amaziah can happen very easily in our lives too.

 

There are times when we experience a victory through God’s helping hand. We may gain great wealth because He is with us. This wealth is something God  has given us. But after that victory, what we gained may become a form of idol. In other words, that wealth we gained may take the place of a god. Sometimes it is not God who is seated at the throne of our hearts, but wealth.

 

Doesn’t this happen in life often? When God blesses us with wealth, we ought to worship Him only, but we end up worshiping the possessionsHe gave us.

 

We are blessed with certain things through prayer. This can be compared to receiving God’s help in a battle. We may, for instance, get a good job, a coveted position, a spouse, or a child through prayer. All these are God-given blessings; yet sometimes we end up forgetting God because we are busy worshiping the very things He has given us.

 

When these God-given things become gods, God is angered.

 

This goes for the gods of Edom too. They were just spoils of war. They are merely things God gives us as a result of a victory gained through His strength. These things must never be worshiped. Nor should they ever become gods. They cannot take the place of a god.

 

In life we often serve other gods while serving God. But we must know this. Our God is a jealous God. And the fact remains that He is the one true God in the universe.

 

Everything comes from God; all that we enjoy are His gifts to us. We have no other gods.

 

The things we have gained by God’s grace must never become gods. Nothing—including money, honor, position, children, and degrees—should ever take the place of God.

 

The problem is that we want to worship these things together with God. We worship in the Temple of God in Jerusalem, but at the same time we worship other gods, gods without names, here and there in the high places. Just as Amaziah worshiped the gods he brought back from Seir, we too serve other gods along with God.

 

This was the life of Amaziah. But isn’t this our lives too today?

 

The mercenaries Amaziah invited due to his incomplete faith in God eventually led to his historical demise; his worship of the gods of Edom and Seir—the gods he brought back from Edom like “captives” from the land he defeated with the help of God—eventually caused his spiritual demise.

 

We cannot serve God “and” other gods.

 

Therefore our Lord speaks to us: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Matthew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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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5:14~16

14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16

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남유다의 왕 아마샤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방송에서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라는 멘트로 시작되는 프로그램처럼 오늘은 ‘해외에 계신 성도 여러분’이라고 부르면서 설교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설 명절을 보내면서 여러분의 모든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 넘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온 가정이 하나님을 믿는 가정으로 우뚝 설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마샤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아마샤’라는 왕의 이름을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최근 역대기를 함께 읽어 가면서 아마샤 왕에 대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새벽 기도하신 분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일 수 있겠지만, 함께하지 못한 분들은 처음 듣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먀사 왕은 남유다의 왕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경외하려고 노력했던 왕으로 꼽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흠도 있던 왕이기도 합니다. 요아스 왕의 아들인 아마사야는 요아스 왕이 암살된 후에 왕위를 이어 갑니다.

요아스 왕은 어려서 1살 때 성전에 숨은 후, 7살 때 다시 왕위를 찾았던 왕입니다. 그때부터 성전과 성전 예배를 복원했습니다. 요아스 왕이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충실했지만, 후에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마지막에는 신하들에게 살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이어서 왕으로 등극한 사람이 아마샤입니다. 아마샤와 관련된 내용은 열왕기하 12장부터 14장까지, 그리고 역대하 24장부터 26장까지 두 곳에 자세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말씀에서 25장 1절은 아마샤의 통치 기간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마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대하 25:1)

 

25세가 되었을 때 왕이 되었고, 29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다는 내용입니다. 총체적인 통치 기간을 설명한 이후에 그에 대한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대하 25:2)

 

조금은 모호한 표현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다는 말인가요? 정확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혹시 영어로 보면 조금 더 의미가 살아날까요.

 

Even though Amaziah obeyed the LORD by doing right, he refused to be completely faithful. (2 Chronicles 25:2, CEV)

 

뒷부분에 “he refused to be completely faithful.”이라는 말이 매우 와닿습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아마샤가 하나님의 말씀에 나름대로 정직하게 따라가려 노력은 하였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것은 거절하였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씀이 어쩌면 나에 대한 말씀이 아닐까요.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심으로 따르기까지는 못 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아마샤는 어떻게 살았기에 이와 같은 평가를 받았을까요. 만약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면 아마샤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아마샤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마샤에 대한 평가가 이어진 다음에 이어서 두 개의 큰 사례들이 나옵니다.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갔는지, 어떻게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예가 두 사건에 걸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마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처형한 내용입니다. 열왕기하 12장 21절에 그 신하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말씀에 따르면 “요사갈과 여호사바드”라는 두 신하가 요아스를 죽였습니다. 두 신하는 정권을 탈취 하려는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고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한동안은 그가 힘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처형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힘이 생긴 뒤에야 그들을 처단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처단하면서 그 자녀들은 처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율법을 따라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대하 25:3~4)

 

말씀대로 왕은 자신의 정적,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은 죽였지만 그 자녀들까지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이 성경의 증언을 보면 그는 마치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처럼 비추어집니다. 그러나 다음 이야기를 보면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는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계명을 따르기는 했지만, 전적으로 의지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전쟁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지략, 자신의 책략을 의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아마샤가 유다 사람들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 만한 자 삼십만 명을 얻고 또 은 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 명을 고용하였더니 (대하 25:5~6)

 

아마샤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병력을 준비합니다. 그는 병력이 모자라자 은 100달란트를 들여서 북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용병을 십만 명 구해옵니다. 이렇게 에돔과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아마샤는 자신의 군사 삼십만, 용병들 십만 명을 구성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내용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계산만이 드러나고 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아마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서 이렇게 조언하셨습니다.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를 왕과 함께 가게 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적군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하니 (대하 25:7~8)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이스라엘 용병들을 데리고 가지 마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습니다. 왕은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주어지자 아마샤는 고민에 빠집니다. 이미 은 100달란트를 지불했던 모양입니다. 이미 다 계산이 끝난 걸 알지만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앞으로 주실 터이니 그렇게 하십시오.” 결국 용병들을 돌려보내고 그들에게 돈을 준 셈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훌륭한 신앙인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남유다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소금 골짜기에 이르러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이고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 (대하 25:11~12)

 

얼마나 극적인 성공이었는지 성경에 나오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고, 또 만 명을 사로잡아서 바위 꼭대기까지 몰고 올라가서 그들을 떨어뜨려 다 죽게 했습니다. 얼핏 지나가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말씀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범죄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로잡은 포로를 만 명이나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게 한 것은 살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그가 어떤 율법은 지키고 있고 어떤 율법은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샤가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하의 자녀들을 죽이지 않은 것도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봅니다. 백성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너그러운 정치인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려져 있는 전쟁의 상황이 되자 그의 잔인한 성격이 드러납니다.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고, 만 명이나 되는 포로들을 죽이는 그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던 아마샤가 다른 신에게도 경배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전쟁에 성공하고 돌아오는 모습이 비춰집니다마는 이어지는 이야기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하며 돌아오는 길에 그는 하나님께 찬양하거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성경에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세일 자손이 가지고 있었던 신상을 가지고 왔고, 그 신들에게 경배하고 분향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대하 25:14)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을 따랐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 전쟁에까지 나아갔고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전쟁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아마샤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 앞으로 나와 기도하지도 영광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돌아오면서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상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책망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대하 25:15)

 

어떻게 자기 백성도 구하지 못한 그 신을 가지고 와서 절하며 그 신을 분향한단 말입니까. 그렇게 힘없는 약한 신을 왜 경배한단 말입니까. 선지자는 이렇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샤 왕은 도리어 그 선지자를 책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습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말머리를 꺼내는데, 왕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우리가 언제 너를 왕의 고문으로 추대하였느냐? 맞아 죽지 않으려거든 그쳐라!” 하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고 그쳤다. “임금님께서 나의 충고를 받지 않고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임금님을 망하게 하시기로 결심하셨다는 것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대하 15:16, 새번역)

 

왜 아먀사 왕은 이 부분에서 양보하지 않았을까요. 왜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왜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았을까요. 왕은 도리어 선지자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4장 4절은 그 일에 대한 단서를 이렇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왕하 14:3~4)

 

이 평가를 토대로 한다면, 아마샤가 왜 에돔 땅에서 돌아올 때 그들이 섬기던 신상을 가지고 왔는지, 왜 그 신상에 경배하고 분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다른 신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은 이렇게 생각했겠죠. “나는 여호와의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산당에서 다른 신에게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에돔에서 돌아올 때에도 다른 신을 가지고 와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결국 온전히 하나님만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서 사온 용병들이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을 돌려보냈으나 그들이 쉽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지역을 약탈했고, 사람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북이스라엘과 전쟁이 시작됩니다. 결국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남유다는 패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이 약탈되고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전에 있던 금과 은과 모든 것들이 빼앗기게 됩니다. 또 왕궁에 있던 재물 역시 다 빼앗기게 됩니다. 사람들도 볼모로 잡혀갑니다. 완전한 패전이었습니다. 참당한 비운을 맞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대하 25:20)

 

에돔 사람의 신을 섬긴 일이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아마샤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됩니다.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 간 생존하였더라 (대하 25:25)

 

‘통치하였다’, ‘다스렸다’라는 말이 아닌 ‘생존하였다’, ‘죽지 못해 살았다’라는 말입니다. 몇몇 학자들은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에게 패전했을 때 볼모로 잡혀갔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에 에돔 신을 가지고 왔던 그의 불신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왜 그는 자신의 백성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에돔의 신을 경배하려고 했을까요.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참 무식하고 미련하다. 어떻게 에돔 신상을 가져다가 섬길 생각을 했을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미련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많이 묵상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중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떤 전쟁에서 승리를 할 때가 있죠. 간절히 구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승리하게 되고, 차지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리품 같은 것들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에돔의 신상 같은 것들을 전리품으로 얻을 때가 꽤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전리품이자 선물이고, 하나님 승리의 표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전리품을 도리어 섬기고 그것이 나의 신이 되어 하나님은 사라지는 경험을 할 때가 상당히 있습니다. 내가 경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복 자체가 마치 신처럼 내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경험을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재물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적절한 재물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전리품과 같은 것입니다.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재물이 나의 신이 되어 내가 그것을 의지하고, 재물이 나를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도리어 에돔의 신상을 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얻게 된 많은 응답들이 있습니다. 마치 전투에서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얻는 전리품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직장들이 그럴 수 있고, 이것만큼은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특별한 자리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는 배우자나 어렵게 얻은 자녀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때로는 하나님의 자리에 어렵게 얻은 자녀가, 어렵게 가진 자리가, 어떤 직장이 놓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인데 도리어 그것을 숭배하느라 하나님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신이 될 때,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분노하십니다.

완전히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다면 더 분명히 우리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동시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에게는 큰 함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아마샤가 겪었던 함정이기도 합니다. 아마샤 역시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고, 율법도 지키고,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도 청종했습니다. 나름대로 말씀 따라 자신의 계획도 수정합니다. 그렇게 전투에 나가 승리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신도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재물의 신일 수도 있고, 자리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고, 에돔의 신상일 수도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는 많은 신이 필요할까요. 왜 아마샤는 하나님만 아닌, 다른 산당의 신들도 필요로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지치셨을 때 다른 신도 동원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을까요. 마치 운동선수들이 지쳤을 때를 대비해 교체 선수를 두는 것처럼 다른 신을 모시는 걸까요. 아니면 신마다 전문분야가 따로 있어서 특별한 분야에는 다른 신이 필요해서였을까요. 실제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총체적인 하나님이시지만, 바알 신상은 풍요를 상징하는 신이고, 아세라는 다산을 상징하는 신이었습니다. 특별하게 다산과 풍요를 주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도 섬기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지침이 없으신 분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고, 능력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외에 어떤 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려 하면 하나님은 질투하시죠. 그 신이 대단해서 질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나무, 어떤 돌 등의 피조물들을 하나님과 동일한 선상에 놓는 것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진노하고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4년을 맞이하고 설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생각해 봅시다. 나의 삶을 다시 되짚어 봅시다. 과연 나와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기고 있는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신도 함께 슬그머니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서 불러왔던 용병들. 결국 그 용병들이 아마샤를 무너지게 만드는 역사적인 단초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셔서 포로처럼 잡아 온 에돔의 신상. 그것에 경배한 것이 아마샤를 결국 무너지게 만드는 영적인 단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결코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를 한번 깊이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2024년 2월 1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잡은 신에게 잡힌 사람” (대하 25장 14~16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46장, 311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대하 25장 14~16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2월 1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역대하 25장 2절에 나오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아마샤는 왕위에 오를 때 25세였고, 예루살렘에서 29년 동안 다스린 왕입니다. 아마샤는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하들을 처형하였지만, 그들의 자녀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인 신명기 24장 16절의 말씀을 따라 행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아마샤이지만, 전쟁에 나갔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판단을 합니다. 에돔과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군사 30만 명을 동원하였는데, 이것으로 부족할 것 같았는지 북 이스라엘의 용병 10만 명을 고용합니다. 하나님도 믿었지만, 자신의 계산을 믿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히 돕기도 하시며 패하게도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마샤는 그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하지만 그는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를 바위에서 떨어뜨려 죽게 만듭니다.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사로잡은 만 명의 포로를 이렇게 죽인 것은 잔인한 살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아마샤는 어떤 율법은 지키고, 어떤 율법은 어기고 있습니다. 이후 잘못된 것에 대한 선지자의 책망, 곧 하나님의 경고를 또한 듣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여러 신을 섬기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도 따라가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신을 경배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경험을 할 때, 전리품으로 큰 재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만, 승리 이후 얻게 된 재물이 또 다른 신상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 재물이 신의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내가 경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이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전쟁에서 가질 수 있게 하시는 것은 결코 숭배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나누기

 

  1.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땅에서 포로처럼 잡아온 에돔의 신, 세일의 신상이 아마샤를 무너지게 하는 영적인 단초가 됩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2.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신을 함께 섬기는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경우가 그러할까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감사합니다.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설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들을 올려놓았던 것들이 있었다면 다시 돌아보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정돈하게 하옵소서.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정직하게 행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헛된 신을 경배하느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우리가 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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