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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앞에서 숨겨지지 못하리라

시편 139: 1 ~ 10

김경진 목사

2020.07.12

<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 분입니다. >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되는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실까요? 정말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제가 몇몇 분에게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냥 그래야 할 것 같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한 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니까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과학이 하나님의 편재하심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과학은 자연과 세상의 질서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보다 분명한 원리로 자연법칙을 증명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예레미야 23:24)

하나님께서 예언자의 입을 통해 증언하시길 “나는 천지에 충만하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숨을 수 없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39편은 다윗이 성령의 영감으로 말씀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에게 알리는 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그는 어디서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편재성을 찬송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어떤 차원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어디나 계시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오늘은 이 본문을 하나씩 읽어 가며 하나님의 편재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편 139:1)

다윗은 먼저 “하나님이 어디나 계십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살펴보셨고 나를 아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는 말의 속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어떤 부피를 가지고 이 세상과 우주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다.’라는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곳에 계시므로 우리를 살피시고 우리를 아신다.’라는 의미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윗의 “하나님이 우리를 살피시고 계신다.”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래서 늘 나를 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나를 잘 아십니다.”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재하심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고백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그곳에 계셨습니다. >

그렇다면 어느 수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펴보시며, 우리를 알고 계실까요? 오늘 본문 중 2절입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시편 139:2)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신다.”라고 합니다. 이어 “나의 길을 아신다.”라고 했고, “내가 눕는 것도 아신다.”라고 합니다. 나의 모든 행위를 아신다는 고백입니다. 또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편 139:4)

이 말씀은 원어로 조금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번역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시편 139:4, 새번역)

이 두 가지 모두 의미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각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십니다. 우리가 한 말도 다 알고 계시며, 우리가 하지 않은 말도 알고 계십니다.” 다윗은 이 놀라운 지식을 깨달았습니다. 이 놀라운 지식을 알게 해 주심에 너무 감사해서 감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시편 139:5~6, 새번역)

“하나님께서 나를 둘러싸시고 나에게 안수해 주셔서 내가 이 지식을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놀랍다.”라고 감탄합니다. 그런 뒤 이 모든 깨달음을 종합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7~10)

다윗은 하나님의 편재성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 끝에도 계시고, 바다 끝에도 계시며, 어떤 곳에 갈지라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십니다.”라고 말입니다. 다윗의 깨달음은 한 걸음을 더 나아갑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3,15~16)

다윗은 자신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를 추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편 139:14)

“내 형질이 이루어지던 그때도 하나님은 이미 그곳에 계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보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께 감사하는 것은 나를 지으신 그 일이, 그 자리가, 그때 그곳이 너무 기묘한 까닭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까? 다윗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셨다. 하나님은 내가 가는 모든 길에 함께하셨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삶의 자리에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내 생각의 자리에도 계신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도 계신다. 내가 말하지 않은 마음 한구석에도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내 행위를 아시고, 내 생각을 아시며,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는 말이 담고 있는 속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편재를 믿는 자는 늘 하나님 앞에 선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라고 고백할 때, 이 고백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 고백을 하는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어디나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겠습니까?
첫 번째로, 이 믿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정말 하나님이 어디나 계심을 믿는다면, 늘 하나님 앞에 서는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삶과 행동, 언어를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어디나 계심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악한 일을 도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억울하게 내몰지 못할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치지 않을 것입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내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지키고 계시기 때문에, 쉽게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15:3)라는 말씀처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직하고 성결하게 삶을 유지해 나가려 할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았을 때, 그 자리에는 둘뿐이었습니다. 그 여인과 자신 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세기 39:9 중)

그는 그곳에 두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하나님도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언어를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존경하는 은퇴 장로님을 뵈었습니다. 은퇴 장로님께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예배 시간이 되면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정중하게 예배의 자리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는 시간에 함께 일어나고, 앉는 시간에 함께 앉고,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우리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 예배당에만 계시는 것은 아니라 우리 가정에도 계시고, 어디든지 계신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디서든지 예배할 수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말을 사용할 때는 한 가지 꼭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다.”라는 말은 우리의 편의를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는 말, 그래서 “어디서든지 우리를 보고 계시며 살피신다.”라는 이 말을 바꾸어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디나 계셔서 우리를 감찰하시며 살펴보시기에, 우리는 가정 예배와 온라인 예배 중에도 하나님 앞에 서 있듯이 예배드려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양할 때도, 기도할 때도, 말씀을 들을 때도, 봉헌할 때도 하나님 앞에 서 있듯이 예배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는 말의 참뜻입니다.

< 하나님의 편재를 믿는 자는 위기 속에서도 평안과 용기를 얻습니다. >

두 번째로,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큰 평안과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펴주시고 감찰하심을 믿는 까닭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기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의 현장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가던 중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그는 여기에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중)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이라고 합니다. 자기 혼자 있던 장소입니다. 광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기도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믿는 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감옥에 있든지, 스올에 있든지, 죽음의 자리에 있든지, 병원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하갈이 이스마엘과 함께 아브라함으로부터 쫓겨났습니다.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물이 떨어졌습니다. 아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었을 때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그곳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을 주시고 새로운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며 기도했을 때도 홀로 있는 것 같았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도망가다 그만 풍랑을 만나 배에서 던져지고, 큰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물 깊은 곳, 물고기 뱃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며 도우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는 믿음은 우리에게 용기와 평안을 허락해 줍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편재를 믿는 자는 솔직하게 자신을 대면합니다. >

세 번째로,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솔직하게 모든 것을 대면하게 이끕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39편은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어색하게 마무리됩니다. 다윗은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며 모든 것을 살피고 아신다는 놀라운 비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전개됩니다.
자신과 하나님에게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저주하며 하나님께 고자질하는 듯한 내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웅장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존재의 비밀, 신비한 존재의 모습을 이야기하던 앞부분을 지나,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은 사소해 보이는 개인적인 탄원과 같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출합니다.

하나님, 오, 주님께서 악인을 죽여만 주신다면…! 피 흘리게 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거라. (시편 139:19, 새번역)

나는 그들을 너무나도 미워합니다. 그들이 바로 나의 원수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시편 139:22~23 중, 새번역)

하나님의 편재를 말하는 웅장한 장면에서 다윗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사소해 보이는 자신의 속마음을 왜 드러내 보이는 것일까요?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의 속뜻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 심지어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영혼 깊은 곳의 은밀한 것까지 살피시고 아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 안의 모든 것, 자신 안의 억울한 마음, 분노,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 그 모든 마음조차 하나님이 모두 알고 계심을 알았기에 숨기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숨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내가 말하지 않은 것도 아시고, 은밀한 속까지 꿰뚫어 보시는데, 과연 무엇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당당히 고백합니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솔직한 감정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디나 계심을 믿게 되면,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나아가도록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고 고백한다면 우리는 솔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편재가 은혜요 복음이 됩니다. >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네 번째 더 깊은 차원의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살피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내 은밀한 마음속까지 알고 계심을 믿는다면, 과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설 수 있겠습니까? 과연 누가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겠습니까? 내 안의 나쁜 생각, 나쁜 의도, 심지어 하나님을 조금 불편하게 여기는 생각,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마음을 닫고, 우리의 삶을 정돈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깨끗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살피시는 주님 앞에서 사실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살피시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숨겨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위기가 됩니다. 우리에게 절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데,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살피신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10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감으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편 103:8~9,13~14)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고백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어디서든지 우리를 살피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형질이 만들어지던 그때, 주님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으로 지어졌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근본까지도 꿰뚫어 보시며, 우리의 체질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시는 분,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질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우리를 살피신 하나님은 우리의 근본까지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도 아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피시고 낱낱이 아시는 분이지만, 그래서 우리의 허다한 죄악과 허물과 악한 의도를 다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태어나는 시점부터 지금까지 저질러 왔던 모든 악한 생각과 악한 행실마저 알고 계시지만, 우리의 근본과 체질을 아시기에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소망 없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죄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분도 우리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낱낱이 아시는 그 주님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악까지도 알고 계시는 그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며 복음입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살피시고 다 아시는 하나님,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한 구원 활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를 마침내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We Are Not Hidden From You

Psalm 139:1-10

Is God really omnipresent? If so, what does that mean to us? These are the themes of my sermon today.

Do you really believe that God exists everywhere all at once? If you do, how did you come to know this? When I asked this question around, the majority answered, “I just assume He would be.” The majority thought, “If God truly is an almighty God, I just think He would be omnipresent.” On the other hand, there were a few who answered that their observance of nature and the universe made them feel that God was everywhere.

But can science prove that God exists everywhere all at once? While science may be capable of unveiling the mysteries of nature and the universe, it is incapable of proving God’s omnipresence. It may sound a bit blunt, but God’s omnipresence is just something “felt” by the soul. Our souls just know it. The fact that we say “I just think He is everywhere” is proof.

However, we believers can confidently say that God is omnipresent because God Himself said so. This is what God said to Jeremiah: “‘Who can hide in secret places so that I cannot see them?’ declares the Lord. ‘Do not I fill heaven and earth?’ declares the Lord.” (Jeremiah 23:24) God Himself describes Himself as filling the heaven and earth. For this reason, God says no one can hide from Him.

Psalm 139, our scripture for today, contains God’s revelation to David. This beautiful, God-inspired psalm tells us in detail about the various aspects and dimensions of God’s omnipresence.

First, David says in verse 1, “You have searched me, Lord, and you know me.” (Psalm 139:1) Before David talks about God being everywhere, he states the fact that God has searched him and knows him. Does God’s omnipresence simply mean that He fills all spaces? Surely not. It means that God searches all things. God’s omnipresence means, “God is everywhere. Therefore, He always searches and knows me.” Believing in His omnipresence is to believe this.

Then, specifically how does He search and know us? David sings, “You know when I sit and when I rise; you perceive my thoughts from afar.” (Psalm 139:2) David says that God knows whether he is sitting or standing, that is, his every move. Furthermore, verse 3 says that God discerns his going out and his lying down, that God is familiar with all his ways. David confesses that God searches not just his actions but also his thoughts. In verse 4, David says, “Before a word is on my tongue you, Lord, know it completely.” (Psalm 139: 4)

In conclusion, God is everywhere. He searches all aspects of our life. He is aware of our every move, whether we sit or rise. Not only that, He even knows our every thought. He knows not just what we have said, but also what we have not yet said. God searches even our thoughts and hearts.

David sings that God revealed this amazing knowledge to him and that such a knowledge is too wonderful for him: “You hem me in behind and before, and you lay your hand upon me. Such knowledge is too wonderful for me, too lofty for me to attain.” (Psalm 139:5-6)

He sings further about this knowledge:

“Where can I go from your Spirit?
Where can I flee from your presence?
If I go up to the heavens, you are there;
if I make my bed in the depths, you are there.
If I rise on the wings of the dawn,
if I settle on the far side of the sea,
even there your hand will guide me,
your right hand will hold me fast.”
(Psalm 139: 7-10)

David sings that God is everywhere, in the heavens and in the depths. This knowledge is so wonderful that David expresses it in a strong and beautiful poetic language.

David’s knowledge of God’s omnipresence does not stop there:

For you created my inmost being;
you knit me together in my mother’s womb.
My frame was not hidden from you
when I was made in the secret place,
when I was woven together in the depths of the earth.
Your eyes saw my unformed body;
all the days ordained for me were written in your book
before one of them came to be.
(Psalm 139: 13, 15-16)

David sings not of the present but traces back to the past when he was being formed in his mother’s womb. He sings that even then God knew him and saw him. He is awed by this amazing knowledge: “I praise you because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your works are wonderful, I know that full well.” (Psalm 139: 14)

Where is God? How can we describe Him who lays His hand on David, helps him see and understand, and reveals His awesomeness to him? God was there even before I was born, when I was being formed in my mother’s womb. God was there, on every path that I took. He is here now, in every step that I take. He knows my every action, whether I sit or stand. He is even in my thoughts and my heart.

When we confess that God is everywhere at once, we should be singing about God as David does in Psalm 139. God is not someone who is always there, but indifferent. He searches us, knows our thoughts, reads our minds, and knows how we were formed. God was, is, and will be in our past, present, and future.

This is a heavenly secret that God has revealed to us through David—one that tells us about how God and I exist in relation to each other. Taking all these awesome dimensions into consideration, we say, “God is omnipresent.”

Then what does God’s omnipresence mean to us? How does this knowledge impact and benefit our lives? That is, if we truly believe that God is everywhere all at once, what will happen in our lives?

First, our belief in God’s omnipresence creates a fear in us. If we really believe that God is everywhere all at once, we will always be careful about what we say and do with a God-consciousness and a fearful heart. We will not lie. We will not plot evil, steal, murder, practice injustice, or engage in violence. In Proverbs, it says, “The eyes of the Lord are everywhere, keeping watch on the wicked and the good.” (Proverb 15:3) One’s knowledge of God’s omnipresence will make him fear God and live an honest, holy life.

When Joseph was tempted by Potiphar’s wife, he knew that God was with him. He knew that God was watching and searching him. So Joseph says, “No one is greater in this house than I am. My master has withheld nothing from me except you, because you are his wife. How then could I do such a wicked thing and sin against God?” (Genesis 39: 9) One who believes in God’s omnipresence is always careful about his actions, words, and thoughts.

Today many of us are worshipping online. A respected retired elder whom I met recently talked about how he worshipped online. He said that he goes into his study wearing his best clothes—jacket and all—and stands up whenever the leader asks the the congregation to rise. He was worshipping online just as he would have offline. I believe this is exactly how we should act, if we know that God is always before us.

With online worship these days, some have questioned, “God is everywhere, right? He is not just in the chapel, so we are free to worship anywhere we want.” This is not entirely false. But we must remember that when we talk about His omnipresence it should not be for our own convenience.

Since God is everywhere and searches us wherever we are, we must worship Him as if we are before Him wherever we are—whether it be at church or at home. To be more clear, we must worship “before God” at all times. We must sing praises, pray, listen to the word, and give offerings as if we are before Him.

What did Jesus most despise on earth? Hypocrisy. He lashed out against the hypocrisy of 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because they acted holily only in front of people. God who searches all things would have found this intolerable. Having faith in His omnipresence means that we must live holily and carefully as if we are always before God.

Second, faith in God’s omnipresence gives great peace and courage to the people of God. These come from the faith that God searches us and protects us. We do not fear even when we walk through the shadows of the valley of death for our all-present God helps us.

God appeared to Jacob at Bethel as he was running away to Paddan Aram. God said, “I am with you and will watch over you wherever you go, and I will bring you back to this land.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done what I have promised you.” (Genesis 28: 15) At this, Jacob awoke and thought, “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and I was not aware of it.” (Genesis 28: 16)

When we say we believe in His omnipresence, we are saying that we believe God listens to our prayers and watches over us wherever we are. Whether we are in prison, in Sheol, or facing death, belief in His omnipresence gives us strength and courage.

Hagar cried out to God when she and her son Ishmael were banished from Abraham’s home and about to die of thirst. But God was there. Blessing her and her son, God gave them water to drink. When Elijah wanted to die after escaping death threats from Queen Jezebel, God was there with him under the broom tree. God gave him something to eat so he could regain strength. God was also with Jonah when he was deep inside the fish’s belly.

Thus, faith that He is there with us—wherever we are—gives us strength and courage. We must believe that He is with us wherever we are. We must believe that God will guide us in His goodness.

Third, faith in God’s omnipresence helps us be honest in all the things that we face. The last part of Psalm 139 testifies to this. In the first part of Psalm 139, David sings about the wonderful mystery of God being everywhere and searching all things. However, as he concludes his song, David says something puzzling. He tells on his wicked opponents, cursing them. While David makes grandiose statements about God’s greatness and His mystery in the early part of the psalm, he brings up rather “petty” stuff in the latter part, such as himself and his opponents. And he is very candid about how he feels: “If only you, God, would slay the wicked! Away from me, you who are bloodthirsty!”(Psalm 139: 19) “I have nothing but hatred for them; I count them my enemies. Search me, God, and know my heart; test me and know my anxious thoughts.” (Psalm 139: 22-23) Why does David raise such “petty” issues at this grandiose scene where he is singing about God’s awesome omnipresence?

As I explained earlier, “God who is everywhere” means God is One who searches our hearts, our thoughts, and even our unspoken words. Therefore, for David, there is absolutely nothing to hide from his all-knowing Lord. David places before Him all that he feels within—his pain, his anger, and even his desire for revenge. There is no reason for him to conceal these. God already knows them. So why should we hold back any of it?

Therefore, faith in His omnipresence leads us to pray honest prayers. It also allows us to call upon the Lord whatever the circumstance. God is there even in our anger, even when we sin. Dear Church, there is no reason to conceal. God knows all about us—even our past. He searches all our thoughts and our minds. So, what is there to hide?

Fourth, if we acknowledge these facts, our faith will take on a deeper dimension.

Dear Church, if God knows everything—even your deepest thoughts and heart—can you be absolutely confident before the Lord? Can you? Can we really stand before our omnipresent Lord? If God knows all my wicked thoughts and even my uncomfortable feelings toward Him, how can we ever stand before Him in purity and be praised by Him? Even if we took the utmost care to be pure and upright before Him, this would be impossible.

Yes. Indeed, we will never be hidden from our omnipresent, all-knowing God. Everything is laid bare before Him. This may feel like a crisis, leading us to despair. But the amazing thing is that our all-searching God views us with compassion.

This is David’s confession in Psalm 103:

“The Lord is compassionate and gracious,
slow to anger, abounding in love.
He will not always accuse,
nor will he harbor his anger forever;
he does not treat us as our sins deserve
or repay us according to our iniquities.
For as high as the heavens are above the earth,
so great is his love for those who fear him;
as far as the east is from the west,
so far has he removed our transgressions from us.
As a father has compassion on his children,
so the Lord has compassion on those who fear him;
for he knows how we are formed,
he remembers that we are dust.”
(Psalm 103: 8-14)

David sings of God’s compassion toward us. Why? God knows and searches all things. He is everywhere. Yet, He also knows what we are made of. He knows our very foundation. He knows how we were formed. He remembers that we are nothing but dust. This is the reason for His compassion toward us.

Our God, who knew us even before we were formed, knows our very depths and foundation. He knows our weaknesses and sins. This is the gospel. God is One who searches every aspect of us and, therefore, knows all our sins and wicked intentions. But, since He knows how we are formed, He has compassion on us. Out of this compassion, He sent his only Son without sin to redeem us. Out of His compassion, He gave hope and salvation to us, the hopeless. Our God—who knows every one of our sins, who is in our past, present, and future, and who sees all our weaknesses—sacrificed His Son to redeem us.

This faith is pivotal. We can never hide from our omnipresent God who searches and knows us. God redeems us. Serve the Lord with a fearful heart. Knowing how we were formed, He will save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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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9: 1 ~ 10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 분입니다. >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되는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실까요? 정말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제가 몇몇 분에게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냥 그래야 할 것 같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한 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니까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과학이 하나님의 편재하심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과학은 자연과 세상의 질서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보다 분명한 원리로 자연법칙을 증명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예레미야 23:24)

하나님께서 예언자의 입을 통해 증언하시길 “나는 천지에 충만하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숨을 수 없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39편은 다윗이 성령의 영감으로 말씀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에게 알리는 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그는 어디서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편재성을 찬송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어떤 차원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어디나 계시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오늘은 이 본문을 하나씩 읽어 가며 하나님의 편재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편 139:1)

다윗은 먼저 “하나님이 어디나 계십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살펴보셨고 나를 아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는 말의 속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어떤 부피를 가지고 이 세상과 우주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다.’라는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곳에 계시므로 우리를 살피시고 우리를 아신다.’라는 의미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윗의 “하나님이 우리를 살피시고 계신다.”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래서 늘 나를 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나를 잘 아십니다.”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재하심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고백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그곳에 계셨습니다. >

그렇다면 어느 수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펴보시며, 우리를 알고 계실까요? 오늘 본문 중 2절입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시편 139:2)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신다.”라고 합니다. 이어 “나의 길을 아신다.”라고 했고, “내가 눕는 것도 아신다.”라고 합니다. 나의 모든 행위를 아신다는 고백입니다. 또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편 139:4)

이 말씀은 원어로 조금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번역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시편 139:4, 새번역)

이 두 가지 모두 의미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각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십니다. 우리가 한 말도 다 알고 계시며, 우리가 하지 않은 말도 알고 계십니다.” 다윗은 이 놀라운 지식을 깨달았습니다. 이 놀라운 지식을 알게 해 주심에 너무 감사해서 감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시편 139:5~6, 새번역)

“하나님께서 나를 둘러싸시고 나에게 안수해 주셔서 내가 이 지식을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놀랍다.”라고 감탄합니다. 그런 뒤 이 모든 깨달음을 종합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7~10)

다윗은 하나님의 편재성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 끝에도 계시고, 바다 끝에도 계시며, 어떤 곳에 갈지라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십니다.”라고 말입니다. 다윗의 깨달음은 한 걸음을 더 나아갑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3,15~16)

다윗은 자신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를 추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편 139:14)

“내 형질이 이루어지던 그때도 하나님은 이미 그곳에 계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보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께 감사하는 것은 나를 지으신 그 일이, 그 자리가, 그때 그곳이 너무 기묘한 까닭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까? 다윗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셨다. 하나님은 내가 가는 모든 길에 함께하셨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삶의 자리에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내 생각의 자리에도 계신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도 계신다. 내가 말하지 않은 마음 한구석에도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내 행위를 아시고, 내 생각을 아시며,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는 말이 담고 있는 속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편재를 믿는 자는 늘 하나님 앞에 선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라고 고백할 때, 이 고백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 고백을 하는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어디나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겠습니까?
첫 번째로, 이 믿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정말 하나님이 어디나 계심을 믿는다면, 늘 하나님 앞에 서는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삶과 행동, 언어를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어디나 계심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악한 일을 도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억울하게 내몰지 못할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치지 않을 것입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내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지키고 계시기 때문에, 쉽게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15:3)라는 말씀처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직하고 성결하게 삶을 유지해 나가려 할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았을 때, 그 자리에는 둘뿐이었습니다. 그 여인과 자신 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세기 39:9 중)

그는 그곳에 두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하나님도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언어를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존경하는 은퇴 장로님을 뵈었습니다. 은퇴 장로님께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예배 시간이 되면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정중하게 예배의 자리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는 시간에 함께 일어나고, 앉는 시간에 함께 앉고,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우리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 예배당에만 계시는 것은 아니라 우리 가정에도 계시고, 어디든지 계신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디서든지 예배할 수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말을 사용할 때는 한 가지 꼭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다.”라는 말은 우리의 편의를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는 말, 그래서 “어디서든지 우리를 보고 계시며 살피신다.”라는 이 말을 바꾸어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디나 계셔서 우리를 감찰하시며 살펴보시기에, 우리는 가정 예배와 온라인 예배 중에도 하나님 앞에 서 있듯이 예배드려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양할 때도, 기도할 때도, 말씀을 들을 때도, 봉헌할 때도 하나님 앞에 서 있듯이 예배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는 말의 참뜻입니다.

< 하나님의 편재를 믿는 자는 위기 속에서도 평안과 용기를 얻습니다. >

두 번째로,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큰 평안과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펴주시고 감찰하심을 믿는 까닭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기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의 현장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가던 중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그는 여기에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중)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이라고 합니다. 자기 혼자 있던 장소입니다. 광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기도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믿는 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감옥에 있든지, 스올에 있든지, 죽음의 자리에 있든지, 병원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하갈이 이스마엘과 함께 아브라함으로부터 쫓겨났습니다.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물이 떨어졌습니다. 아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었을 때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그곳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을 주시고 새로운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며 기도했을 때도 홀로 있는 것 같았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도망가다 그만 풍랑을 만나 배에서 던져지고, 큰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물 깊은 곳, 물고기 뱃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며 도우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는 믿음은 우리에게 용기와 평안을 허락해 줍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편재를 믿는 자는 솔직하게 자신을 대면합니다. >

세 번째로,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다.”라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솔직하게 모든 것을 대면하게 이끕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39편은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어색하게 마무리됩니다. 다윗은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며 모든 것을 살피고 아신다는 놀라운 비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전개됩니다.
자신과 하나님에게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저주하며 하나님께 고자질하는 듯한 내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웅장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존재의 비밀, 신비한 존재의 모습을 이야기하던 앞부분을 지나,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은 사소해 보이는 개인적인 탄원과 같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출합니다.

하나님, 오, 주님께서 악인을 죽여만 주신다면…! 피 흘리게 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거라. (시편 139:19, 새번역)

나는 그들을 너무나도 미워합니다. 그들이 바로 나의 원수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시편 139:22~23 중, 새번역)

하나님의 편재를 말하는 웅장한 장면에서 다윗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사소해 보이는 자신의 속마음을 왜 드러내 보이는 것일까요?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의 속뜻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 심지어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영혼 깊은 곳의 은밀한 것까지 살피시고 아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 안의 모든 것, 자신 안의 억울한 마음, 분노,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 그 모든 마음조차 하나님이 모두 알고 계심을 알았기에 숨기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숨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내가 말하지 않은 것도 아시고, 은밀한 속까지 꿰뚫어 보시는데, 과연 무엇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당당히 고백합니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솔직한 감정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디나 계심을 믿게 되면,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나아가도록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라고 고백한다면 우리는 솔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편재가 은혜요 복음이 됩니다. >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네 번째 더 깊은 차원의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살피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내 은밀한 마음속까지 알고 계심을 믿는다면, 과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설 수 있겠습니까? 과연 누가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겠습니까? 내 안의 나쁜 생각, 나쁜 의도, 심지어 하나님을 조금 불편하게 여기는 생각,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마음을 닫고, 우리의 삶을 정돈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깨끗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살피시는 주님 앞에서 사실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살피시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숨겨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위기가 됩니다. 우리에게 절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데,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살피신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10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감으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편 103:8~9,13~14)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고백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어디서든지 우리를 살피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형질이 만들어지던 그때, 주님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으로 지어졌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근본까지도 꿰뚫어 보시며, 우리의 체질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시는 분,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질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우리를 살피신 하나님은 우리의 근본까지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도 아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피시고 낱낱이 아시는 분이지만, 그래서 우리의 허다한 죄악과 허물과 악한 의도를 다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태어나는 시점부터 지금까지 저질러 왔던 모든 악한 생각과 악한 행실마저 알고 계시지만, 우리의 근본과 체질을 아시기에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소망 없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죄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분도 우리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낱낱이 아시는 그 주님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악까지도 알고 계시는 그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며 복음입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살피시고 다 아시는 하나님,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한 구원 활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를 마침내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2020년 7월 1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주 앞에서 숨겨지지 못하리라” (시 139:1-10)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59장, 73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시 139:1-10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7월 1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하나님은 정말 어디에나 계시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이 있는가? 이것이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의 주제입니다.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자리에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다고 정말 믿는 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설교의 요약

    첫 째, 이 믿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다고 믿는다면, 늘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우리의 행동과 언어를 조심할 것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악한 일을 도모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억울하게 내 몰지 못할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치거나, 폭력을 행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다는 믿음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큰 평안과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펴 주시고, 감찰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 때에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에나 하나님이 계셔서 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다는 믿음은 우리에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대면’하게 합니다. 시편 139편에서 웅장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를 이야기 하던 다윗은 조금은 사소해 보이는 자신의 이야기, 악인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말합니다. “하나님, 오, 주님께서 악인을 죽여만 주신다면..! 피 흘리게 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거라.” (19절, 새번역). 왜 다윗은 자신의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를 꺼낸 걸까요? 다윗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신다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솔직하게 기도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시 103편 8-14절 말씀대로 우리의 형질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우리를 살피신 하나님은 우리의 근본까지도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부족함도 아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허다한 죄악과 악한 의도도 모두 아시는 분이시지만, 인간의 근본을 아시기에, 체질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낱낱이 아시는 하나님,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자리에 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이 믿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를 살피시고 아시는 하나님,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 그분 앞에서 우리는 숨겨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마침내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나누기

 1.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어떤 상황에서 그렇습니까?

 2. 하나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아신다는 것이 왜 나에게 좋은 소식(복음) 입니까? 나의 죄와 나쁜 의도가 다 드러나는데도 그것이 정말 좋은 소식(복음)일까요? 

 마무리 기도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주님, 우리는 먼지요, 우리는 흙으로 돌아갈 ‘아담’(히브리어, 흙/먼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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