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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물으신 다섯 가지 질문

열왕기상 3: 4 ~ 10

김경진 목사

2021.04.11

<인간이 던지는 질문에는 그 사람의 관심사가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학교 나왔니? 그 친구 전공은 무엇이니? 직업은 어떻니? 어디에 사니? 부모님 직업은? 부모님 고향은? 잘 생겼니? 예쁘니? 몸이 약하지는 않니?’ 여러분, 어떤 질문일까요? 자녀가 사귀는 이성을 소개할 즈음에 부모님들이 묻고 싶어 하는 질문이랍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참고하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뭐 먹을까? 밥 먹었어? 어디 갈까? 잘 잤니?’ 그러고 보니 먹고, 자고, 노는 일에 관련한 질문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던지는 질문 속에는 관심사가 있지요. 관심사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 주고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질문 안에 한 사람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펴보았지만 인간이 던지는 질문들, 특별히 가정에서 오고 가는 질문들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자니 ‘참 별것 아닌 것에 관심을 두고 사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관심이 생겼고, 성경 속 인물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일이 옳습니까? 왜 당신들은 안식일 날 음식을 먹습니까?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어찌하여 저런 여인과 말씀을 나누십니까? 주님, 당신을 팔 자가 누구입니까? 저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 저는 아니죠?’ 이와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젊은 청년이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던진 질문이 그나마 괜찮은 질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을 읽으면서 인간이 던지는 질문이 비본질적이고 때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조우할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기회였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쳐야 합니까? 아닙니까?’와 같은 질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질문을 주님께 던지고 계십니까? 어떤 물음을 주님께 드리며 대답을 찾고 계십니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런 물음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으론 문제를 깊이 끌어안고 고민하면서 던지는 질문들이 있지요. “인간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질병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일부이긴 합니다만 철학자들과 종교인들, 지식인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며 지금까지 씨름해 왔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동물들은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질문에는 그분을 위함이 아닌 인간을 향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계실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요.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시는 질문이 있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시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질문을 간추리다보니 약 10가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흥미롭게도 구약에서 다섯 개, 신약에서 다섯 개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질문 다섯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이 ‘하나님이 물으신 다섯 가지 질문’이지만 다섯이라는 숫자에 얽매이지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신 질문 속에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 그분의 뜻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씀을 전하기 이전에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과연 주님은 질문을 던지실 필요가 있으신 분이신가?’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세밀하게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문은 모르는 것을 알고 보충하시기 위해 가지신 질문이 아닙니다. 그분이 인간을 향해 질문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하여 질문을 던지십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교육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시죠. 이 질문은 본질적인 질문이고 우리를 더 높은 단계로, 더 나은 단계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질문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생각해 볼 점은 하나님의 질문에는 철학자들이 주로 가졌던 물음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은 무엇인가? 질병은 어디에서 오는가?’와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실 필요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존재의 시작과 마지막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질문하실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물론 비슷한 질문이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욥을 향해 쏟아 내시는 질문들이 있지요. 그러나 이 질문들조차 인간의 한계를 알게 하시려는 의도로 던지신 질문일 뿐 대답을 원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첫 번째 질문은 그분을 떠난 인간 존재를 찾으시는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물으신 질문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주신 첫 번째 질문은 너무도 유명한 질문이지요. 창세기 3장 9절 말씀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장 9절 중)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던지신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아담이 정말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셔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위치를 알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물으시죠. “네가 어디에 있느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이후 그들이 에덴동산에 있을 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위치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찾기 시작하셨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서 물으셨을 때 인간은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자리에 있었습니다. 불순종의 자리, 악의 자리에 처해 있던 것입니다. 시편 139편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편 139편 1~8절)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모르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주님 앞에서 숨을 곳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아담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 질문은 지리적인 위치를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화장실에 있는지, 안방에 있는지를 물으신 질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있는 그 자리,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하고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계시는 겁니다. “너는 지금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니”라는 물음입니다. 이 말씀 배후에는 “너는 지금 하나님을 떠난 자리에 있다”는 선언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한편 이 질문은 하나님의 슬픈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자마자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시작하십니다. 멀리 나와 있는 인간, 죄로 물들어 숨어 있는 인간,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도망다니는 인간, 이들을 부르시며 애타게 찾으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물으신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애타게 부르시며 찾고 계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너는 지금 너의 자리에,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다. 너는 하나님을 떠났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두 번째 질문은 홀로 살 수 없는 인간 존재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신 두 번째 질문은 창세기 4장 9절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시자 이를 분하게 여긴 가인이 아벨을 꾀어내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는 아벨의 시신을 땅에 묻습니다. 그 가인을 향해 하나님이 질문하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세기 4장 9절 중)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건네신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설교가들은 종종 이 질문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물으시는 질문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결코 틀린 해석이 아닙니다. 아우 아벨을 죽인 현실이 가인의 현실이었습니다. 형제를 죽이고 이기심과 경쟁심,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는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 형제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땅 속에 묻혀 있던 아벨의 억울한 소리를 들으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가인에게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러므로 이 질문은 “네가 아벨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너에게 주어서 함께 사랑하라고 보낸 아우, 그 아우를 너는 어떻게 했느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 아내는 어디에 있느냐? 너는 아내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네 남편은 어디에 있느냐? 너는 남편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네 형제들은 어디에 있느냐? 네 부모는 어디에 있느냐? 네 자식들은 어디에 있느냐? 네 이웃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 성도들, 교구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들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이런 질문을 향해 가인은 도리어 하나님께 대들며 대답합니다. “모릅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창 4:9 중) 어쩌면 우리도 가인처럼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릅니다. 내가 남편을 지키는 자입니까? 내가 이웃을 지키는 자입니까? 내가 그들을 지키는 자입니까?” 지독한 개인주의, 스스로만 생각하는 고집스런 마음으로 우리 마음이 병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너에게 주어 함께 살고 함께 사랑하고 함께 지내라고 주었던 그 동생 아벨을 너는 어떻게 하였느냐?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건네신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세 번째 질문은 마음 안의 깊은 소원을 아뢰라는 요청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신 세 번째 중요한 질문은 열왕기상 3장 5절에 나타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천 마리의 제물을 바친 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질문을 하시는데 이 장면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하여 주길 원하느냐? 네 소원이 무엇이냐?”는 물음이셨습니다. 열왕기상 3장 5절 말씀입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열왕기상 3장 5절)

참 놀라운 일이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 질문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대답할 말이 있으신지요. 지혜롭게 답변할 대답을 가지고 계십니까? 단호하고도 결연한 소원의 내용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에게 무엇을 하여 줄까?”라고 물으신다면 그동안 기도도 열심히 하고 주님을 애타게 찾았다는 심정에 할 말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6절에 예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제자들을 향해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야고보와 요한이 대답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여러분,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2,000년 전 단 한 번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그들이 만났고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내가 너희들에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음성에 대답하니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지는 않으실까요? “너는 지금 네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도다. 네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구나.”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는 부를 구하지도, 장수를 구하지도, 힘과 능력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성을 잘 다스리고 재판을 잘 할 수 있도록 지혜 곧 듣는 마음을 요청합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요청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줄까?”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단 한 가지의 기도 제목, 이것을 여러분 마음에 굳게 세워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네 번째 질문은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물으신 네 번째 중요한 질문은 욥기 38장 5절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의인에게 고통을 주시는가?’ 스스로 안타까워하며 기도하고 있는 욥을 향해 하나님이 질문하십니다.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욥기 38장 5절)

의인 욥을 향해 하나님께서 던지신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너는 아느냐? 네가 알면 얼마나 아느냐?” 그리고는 물으십니다. “네가 알면 대답해 보아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욥 38:4 중)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욥 38:17 중)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욥 38:29)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욥 38:33 중)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욥 38:36 중)

“해가 뜨는 곳에 가 본 적이 있느냐? 천둥과 번개가 가는 길을 아느냐? 바다 속 깊은 곳 물의 근원으로 들어가 보았느냐···”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네가 아느냐?”라고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는 “네가 도대체 아는 것이 얼마나 되느냐?”라는 혹독한 질문이자 “알면 어디 대답해 보아라!”라는 준엄한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을 설득해 보라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묻고 계실지 모릅니다. “네가 과연 이것을 아느냐? 네가 안다면 얼마나 많이 아느냐? 너는 정말 모든 것을 알아서 믿고 산다고 생각하느냐?” 과거의 사람들에게 동정녀 탄생은 완전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과학적 지식을 통해 이것이 허구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지식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대화를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말의 의미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GPS를 통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과학적 설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너희가 정말 아느냐? 너희가 알면 얼마나 더 알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계십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철저하게 인정하라 명하시며 무지함을 깨우쳐 주시고,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다섯 번째 질문은 하나님나라의 그루터기를 찾는 초청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물으신 다섯 번째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사야 6장 8절 말씀에 있습니다. 멸망해 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시기로 결정하시며 질문을 던지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 6장 8절 중)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멸망을 예언하며 그 길을 걸어가 줄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능력이 없으셔서 질문을 던지시며 발을 동동 구르신 게 아니셨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신데 능력이 모자라 사람을 찾으셨겠습니까? 주님은 이 질문을 통해 이사야를 초대하고 계셨습니다. 그의 결단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멸망해 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그를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거룩한 씨, 그루터기를 만드는 일, 멸망해 가는 세상 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일, 구원의 씨앗을 보존하는 일, 그 일을 맡아 줄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꼬?”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동역자를 찾고 계시는 음성입니다. 모두들 한국 교회, 한국 사회가 썩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누가 그루터기가 될 것인가?”
오늘 우리는 우리를 향해 물어 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버린 사람을 찾으시며 던지시는 질문입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함께 거하고 사랑하라고 주신 형제, 자매, 이웃들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고 물으신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또한 사랑스럽게 다가오셔서 물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주면 좋을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 무엇인지를 말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물으십니다. “너는 아느냐? 그렇다면 네가 얼마나 많이 아느냐?” 믿음을 요구하시는 또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질문을 던지십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 것이냐”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그분의 진실한 동역자를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인에게, 욥에게, 솔로몬에게, 그리고 이사야에게 주셨던 질문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던지고 계십니다. 이 질문 속에는 하나님의 초청이 있고 배려와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인생을 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다섯 가지 물음, 이 물음은 여러분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Five Questions From God

First Kings 3: 4-10

Which school did he go to? Where does she live? What is his major, her job? What do their parents do? Is he handsome? Is she pretty? Is he healthy? These are some questions we absolutely want to ask our kids when they are dating seriously. Would you agree? Well, I am told that kids nowadays don’t like being asked these questions, something that you may want to consider.

Here are some of the most frequently asked questions at home: What shall we have for lunch/dinner? Did you eat? How much rice to you want? Shall we go out? Where to? Did you sleep well? Now that I have listed them, I can see that they are mostly related to eating, sleeping, and having fun.

Questions reflect our interests. Since we ask the above type of questions often, you can guess where our interests lie.

After developing a sudden interest in people’s questions, I skimmed through the questions that humans asked in the Bible. The type of questions that people asked Jesus were as follows: Is it right to pay taxes to Caesar? Why do You and Your disciples eat on the Sabbath? Why don’t You fast? How many times do we have to forgive a person who has wronged us? Why are You talking to such a woman? Jesus, tell us who will betray You. It’s not me, is it?

Out of all these rather not-so-holy questions, the one that seemed decent, at least compared to the others, was “How can I gain eternal life?”, posed by the young man who came to Jesus. Looking at all the questions humans asked Jesus, I realized that they were most nonessential and pathetic.

A few humans—very few, in fact—struggle with, and ask, questions concerning the problem of man. What is man? Who am I? Where am I headed? Where do illnesses come from? What is death? Religious people and philosophers have asked and struggled with these questions. Suchsophisticated inquiries can only be made by man—not animals. However, it is also the case that we humans, after posing such questions, have yet to find the answers.

After pondering what humans ask, I thought about what God asks. So I delved into the Bible. I found that God posed more questions than what I had originally anticipated. In the Old Testament (OT) it was God who asked questions, while in the New Testament (NT) it was usually Jesus. However, I realized that these questions were not the kind asked in passing.

While it would be impossible to deal with all of God’s questions in the Bible, I extracted what I thought were the ten most important. Interestingly, five of them are from the OT, while the other five are from the NT. Today,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the former, as we hear the voice and heart of God.

Thus, the title of today’s message is “Five Questions From God.” Please don’t make too much of the number five or ten. I just wanted to know what our Lord’s interests are by extracting a certain number of questionsasked by God in the Bible.

Before we go into God’s questions, we must consider a few things. First, does God “need” to ask questions at all? That is, why does our all-knowing God pose questions to humans? As we all know, God is omniscient, knowing and seeing all things. Then why does God ask us questions? It is not because He lacks knowledge. He knows everything. He asks not for His benefit, but for ours. God asks humans questions for their benefit—just as a teacher asks his students questions to approach a subject. God approaches us with questions. His questions are fundamental, leading us to a higher and better dimension. Therefore, His questions are beneficial to us. Therefore, considering and answering them are of supreme importance.

Second, if there are many questions asked by God in the OT, why just look at five of them? As I mentioned, don’t make too much of the number. Yes, God asks many questions in the Bible—the most notable case being God bombarding Job with a myriad of questions.

Another interesting point to consider is that our Lord’s questions are not the existential and philosophical type, such as, ‘What is man?’, ‘Where does he come from?’, ‘What is death?’, or ‘Where to diseases come from?’ God and Jesus probably didn’t think it was necessary to ask humans such questions—most probably because He knows us through and through, from the beginning of our existence to our end. Of course, it is not that He does not ask such type of questions at all in the Bible. God’s questions to Job are quite existential and philosophical. In the Book of Job, God has a myriad of questions to Job. Yet they are asked not to get an answer from humans, but to enlighten us about our limitations.

Then, let’s delve into God’s questions to humans.

The first important question comes in Genesis 3:9. “But the Lord God called to the man, ‘Where are you?’” (Genesis 3: 9) The first question God asked humans was, “Where are you?”

As I explained, God does not ask us question because He doesn’t know. Before Adam and Eve sinned, God did not once ask Adam or Eve where they were in the Garden of Eden when they roamed it freely. However, after eating from 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God sought out Adam and Eve: “Where are you?”

When God asked Adam his whereabouts, man was in a state of sin, in a situation where he had violated God’s commands. He was in a place of disobedience, a place of evil.

Psalm 139 begins with these words:

You have searched me, Lord,
and you know me.
You know when I sit and when I rise;
you perceive my thoughts from afar.
You discern my going out and my lying down;
you are familiar with all my ways.
Before a word is on my tongue
you, Lord, know it completely.
You hem me in behind and before,
and you lay your hand upon me.
Such knowledge is too wonderful for me,
too lofty for me to attain.
Where can I go from your Spirit?
Where can I flee from your presence?
If I go up to the heavens, you are there;
if I make my bed in the depths, you are there.
(Psalm 139: 1-8)

How on earth can we hide from God? Yet God—even though He knew everything—asked Adam, “Where are you?” This is not a question asking Adam’s geographical location. God is not asking him if he is in the bathroom or in the bedroom. He is asking an existential question, ‘Where is the place that you are in?’ or ‘What kind of existence are you leading at this moment?’

Meanwhile, this question is a sad inquiry of God. After Adam and Eve ate from the tree of knowledge, they became separated from God. God, of course, knew where they were, location-wise, but in essence they had left God. That is why God was seeking them out. From then on, God had to seek out humans—humans who had gone astray, humans who were steeped in sin, and humans who ran away from God after doing the most atrocious things. God desperately sought out these runaway humans, calling out, “Where are you?” This was God’s first question to man.

The second question God asked us appears in Genesis 4:9. God did not receive the sacrifice of Cain, but only accepted that of Abel. Cain, furious at this, killed his brother and buried him in the ground. After this murder, God asked Cain, “Where is your brother Abel?” (Genesis 4:9) This question has been often understood and preached as one asking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s, which is not off the mark.

The realityCain put himself in was that he had killed his brother. And God asked Cain, a murderer full of selfishness, rivalry, and hate, where his brother was. God had already heard the innocent cries of Abel. Still, God asked Cain, “Where is your brother Abel?”—another question that God knew the answer to.

The same God asks us a similar question to us today: “Where is your wife? Where is your husband?Where is your brother?Where are your parents?Where are your children? Where are your neighbors?” Cain responded in rebellion: “I don’t know. Am I my brother’s keeper?”

Kim Tae Hyun is a name that came up in the media a lot these past few days. Kim stalked a woman he came to know on an online game, entered her house, killed the woman, her sister, and her mother, and stayed in the victims’ house for a few days after this atrocity. It was a crime that left us speechless. This is the reality we are living in.

Perhaps we, too, are inclined to answer as Cain did: “I don’t know. I don’t know where my husband, wife, or neighbor is. Am I their keeper?” It is my fear that perhaps our minds have all become diseased with an evil selfishness and stubbornness. Our Lord asks us today, “Where is your brother Abel?”

The third major question from God in the OT is found in First Kings 3:5. After Solomon built the temple and offered a thousand burnt offerings, God appeared to him in a dream. He asked Solomon, “What do you want from Me?”

“At Gibeon the Lord appeared to Solomon during the night in a dream, and God said, ‘Ask for whatever you want me to give to you.’” (First Kings 3:5)

Today, our Lord continues to ask this question: “What do you want Me to give you?” Dear brothers and sisters, do you have a wise answer to this question? Do you have a firm and resolute wish? What would you ask from God?

In Mark 10:36, Jesus asked the same question to His disciples: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At this, James and John replied that they wanted one of them to sit at His right and the other on His left when He received glory. Jesus replied, “You do not know what you are asking for.” We must look back on ourselves to see if we are not like James or John, wasting precious opportunities offered to us by Jesus by asking for things that we do not know about. Jesus is asking you today,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Are you ready to reply?

The fourth important question asked by God is the one in Job 38:5. God answered Job’s question on why the righteous suffer with a question: “Who marked off its dimensions? Surely you know! Who stretched a measuring line across it?” (Job 38:5) God is asking Job, “Do you know? If you do, how much?” From chapter 38 to 41, God asks Job a barrage of questions. God tells Job to answer Him if he knows the answer after bombarding him with the following questions:

“Where were you when I laid the earth’s foundation? Tell me, if you understand.” (Job 38:4)
“Have the gates of death been shown to you? Have you seen the gates of the deepest darkness?”(Job 38:17)
“From whose womb comes the ice? Who gives birth to the frost from the heavens?”(Job 38:29)
“Do you know the laws of the heavens? Can you set up God’s dominion over the earth?”(Job 38:33)
“Who gives the ibis wisdom or gives the rooster understanding?”(Job 38: 36)

God is asking Job if he has been to where the sun rises, seen the trajectory of the thunder and lighting, and been to the source of the water deep in the sea. In a word, God is asking, “How much do you know?” It is as if God is saying, “Please do tell if you do.”

Today our Lord is asking us the same questions. To the proud lot who say they cannot believe in God, rebelliously demanding that God persuade them from their disbelief, He asks back, “How much do you know?”

To the people in the past, a virgin giving birth was something impossible. But today’s scientific knowledge tells us that it is not a fabrication. With our past knowledge we could not fathom how God could hear all our conversations. However, today we see how technology can record all that we ever say or hear. Some people could not understand how God knows our whereabouts, wherever we are. But we are now living in a society where this can be explained easily with the science of GPS.

Yet, our Lord asks us, “Do you know? If you do, how much?” This is God’s question that prompts us to accept our finite nature. He is asking us to confess that we are mere creations.

God’s fifth question appears in Isaiah 6:8. As God decides to pour His wrath on the declining Israel, God asks, “Whom shall I send? And who will go for us?” (Isaiah 6:8) With these questions, God called Isaiah to a ministry of prophesizing to the falling Israel. He had to proclaim and prophesize about God’s anger toward Israel, until nothing was left of them but a stump, a holy seed.

“Who will go for us?” Our mighty God was not anxious about finding someone to go in His stead. This was not why He asked this question. What is there that cannot be done by the Creator of the universe? Yet God invited Isaiah with this question. He waited for his resolution, and sent him to the perishing Israel.

What did our Lord really want? He wanted a person who would prepare a stump, a holy seed, who would create hope in a perishing world, who would preserve that seed of salvation. “And who will go for us?” This is God’s bold invitation to become a person who would bravely work for God in a perishing world, a person who would prepare a stump and prepare a holy seed in that declining world.

That same Lord asks us the same question to us today. “Whom shall I send? And who will go for us?” They say Korean politics is rotten. But, in the face of this reality, God asks us, “Who will go for us? Who will be the stump?”

Today we hear God’s voice, asking us questions. God is asking us five questions.

Where are you? What is your relationship with Me? This is God’s question to the one lost soul, our Lord seeking His lost child.

Where is your brother Abel? What is your relationship with the people I have given you to love? Your brothers, sisters, and neighbors? What are your neighbors to you? Your parents, children, family, church family, fellow Koreans, people you meet… What are they to you? This is God’s question to us.

What do you want from Me? What can I do for you? Our loving Lord asks us to tell Him our wishes. What is it that you really want? If you had to tell Him one wish, what would you say to Him? What is that one thing you want from God? God asks us what we want because He wishes to give.

Do you know? This is another question from God. If you do, how much? God is firmly telling us that we must not deny His existence or complain just because we cannot understand. He is demanding us to have a faith that trusts to the end, that leaves everything up to Him who is greater than us, who knows more than us, who is perfect, who is the Creator of the universe, and who leads us even now.

Finally, He asks, “Who will go for us?” God does not seek workers because He is incapable. God wants to work with us. That is why He seeks out people who will work for Him. This question is also God’s invitation to work with Him.

Dear Church, God is asking us today the very questions that He asked Adam and Eve, Cain, Job, Solomon, and Isaiah. God’s questions hold God’s invitation, loving kindness, and grace. I hope that today’s message will resonate deeply—especially in the hearts of those who are desperately seeking answers to “How should I live my life?” God is asking you these five questions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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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 4 ~ 10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인간이 던지는 질문에는 그 사람의 관심사가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학교 나왔니? 그 친구 전공은 무엇이니? 직업은 어떻니? 어디에 사니? 부모님 직업은? 부모님 고향은? 잘 생겼니? 예쁘니? 몸이 약하지는 않니?’ 여러분, 어떤 질문일까요? 자녀가 사귀는 이성을 소개할 즈음에 부모님들이 묻고 싶어 하는 질문이랍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참고하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뭐 먹을까? 밥 먹었어? 어디 갈까? 잘 잤니?’ 그러고 보니 먹고, 자고, 노는 일에 관련한 질문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던지는 질문 속에는 관심사가 있지요. 관심사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 주고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질문 안에 한 사람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펴보았지만 인간이 던지는 질문들, 특별히 가정에서 오고 가는 질문들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자니 ‘참 별것 아닌 것에 관심을 두고 사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관심이 생겼고, 성경 속 인물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일이 옳습니까? 왜 당신들은 안식일 날 음식을 먹습니까?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어찌하여 저런 여인과 말씀을 나누십니까? 주님, 당신을 팔 자가 누구입니까? 저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 저는 아니죠?’ 이와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젊은 청년이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던진 질문이 그나마 괜찮은 질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을 읽으면서 인간이 던지는 질문이 비본질적이고 때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조우할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기회였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쳐야 합니까? 아닙니까?’와 같은 질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질문을 주님께 던지고 계십니까? 어떤 물음을 주님께 드리며 대답을 찾고 계십니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런 물음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으론 문제를 깊이 끌어안고 고민하면서 던지는 질문들이 있지요. “인간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질병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일부이긴 합니다만 철학자들과 종교인들, 지식인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며 지금까지 씨름해 왔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동물들은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질문에는 그분을 위함이 아닌 인간을 향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계실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요.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시는 질문이 있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시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질문을 간추리다보니 약 10가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흥미롭게도 구약에서 다섯 개, 신약에서 다섯 개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질문 다섯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이 ‘하나님이 물으신 다섯 가지 질문’이지만 다섯이라는 숫자에 얽매이지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신 질문 속에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 그분의 뜻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씀을 전하기 이전에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과연 주님은 질문을 던지실 필요가 있으신 분이신가?’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세밀하게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문은 모르는 것을 알고 보충하시기 위해 가지신 질문이 아닙니다. 그분이 인간을 향해 질문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하여 질문을 던지십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교육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시죠. 이 질문은 본질적인 질문이고 우리를 더 높은 단계로, 더 나은 단계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질문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생각해 볼 점은 하나님의 질문에는 철학자들이 주로 가졌던 물음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은 무엇인가? 질병은 어디에서 오는가?’와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실 필요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존재의 시작과 마지막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질문하실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물론 비슷한 질문이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욥을 향해 쏟아 내시는 질문들이 있지요. 그러나 이 질문들조차 인간의 한계를 알게 하시려는 의도로 던지신 질문일 뿐 대답을 원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첫 번째 질문은 그분을 떠난 인간 존재를 찾으시는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물으신 질문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주신 첫 번째 질문은 너무도 유명한 질문이지요. 창세기 3장 9절 말씀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장 9절 중)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던지신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아담이 정말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셔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위치를 알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물으시죠. “네가 어디에 있느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이후 그들이 에덴동산에 있을 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위치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찾기 시작하셨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서 물으셨을 때 인간은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자리에 있었습니다. 불순종의 자리, 악의 자리에 처해 있던 것입니다. 시편 139편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편 139편 1~8절)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모르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주님 앞에서 숨을 곳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아담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 질문은 지리적인 위치를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화장실에 있는지, 안방에 있는지를 물으신 질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있는 그 자리,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하고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계시는 겁니다. “너는 지금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니”라는 물음입니다. 이 말씀 배후에는 “너는 지금 하나님을 떠난 자리에 있다”는 선언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한편 이 질문은 하나님의 슬픈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자마자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시작하십니다. 멀리 나와 있는 인간, 죄로 물들어 숨어 있는 인간,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도망다니는 인간, 이들을 부르시며 애타게 찾으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물으신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애타게 부르시며 찾고 계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너는 지금 너의 자리에,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다. 너는 하나님을 떠났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두 번째 질문은 홀로 살 수 없는 인간 존재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신 두 번째 질문은 창세기 4장 9절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시자 이를 분하게 여긴 가인이 아벨을 꾀어내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는 아벨의 시신을 땅에 묻습니다. 그 가인을 향해 하나님이 질문하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세기 4장 9절 중)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건네신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설교가들은 종종 이 질문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물으시는 질문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결코 틀린 해석이 아닙니다. 아우 아벨을 죽인 현실이 가인의 현실이었습니다. 형제를 죽이고 이기심과 경쟁심,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는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 형제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땅 속에 묻혀 있던 아벨의 억울한 소리를 들으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가인에게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러므로 이 질문은 “네가 아벨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너에게 주어서 함께 사랑하라고 보낸 아우, 그 아우를 너는 어떻게 했느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 아내는 어디에 있느냐? 너는 아내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네 남편은 어디에 있느냐? 너는 남편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네 형제들은 어디에 있느냐? 네 부모는 어디에 있느냐? 네 자식들은 어디에 있느냐? 네 이웃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 성도들, 교구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들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이런 질문을 향해 가인은 도리어 하나님께 대들며 대답합니다. “모릅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창 4:9 중) 어쩌면 우리도 가인처럼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릅니다. 내가 남편을 지키는 자입니까? 내가 이웃을 지키는 자입니까? 내가 그들을 지키는 자입니까?” 지독한 개인주의, 스스로만 생각하는 고집스런 마음으로 우리 마음이 병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너에게 주어 함께 살고 함께 사랑하고 함께 지내라고 주었던 그 동생 아벨을 너는 어떻게 하였느냐?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건네신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세 번째 질문은 마음 안의 깊은 소원을 아뢰라는 요청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신 세 번째 중요한 질문은 열왕기상 3장 5절에 나타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천 마리의 제물을 바친 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질문을 하시는데 이 장면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하여 주길 원하느냐? 네 소원이 무엇이냐?”는 물음이셨습니다. 열왕기상 3장 5절 말씀입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열왕기상 3장 5절)

참 놀라운 일이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 질문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대답할 말이 있으신지요. 지혜롭게 답변할 대답을 가지고 계십니까? 단호하고도 결연한 소원의 내용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에게 무엇을 하여 줄까?”라고 물으신다면 그동안 기도도 열심히 하고 주님을 애타게 찾았다는 심정에 할 말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6절에 예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제자들을 향해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야고보와 요한이 대답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여러분,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2,000년 전 단 한 번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그들이 만났고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내가 너희들에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음성에 대답하니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지는 않으실까요? “너는 지금 네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도다. 네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구나.”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는 부를 구하지도, 장수를 구하지도, 힘과 능력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성을 잘 다스리고 재판을 잘 할 수 있도록 지혜 곧 듣는 마음을 요청합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요청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줄까?”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단 한 가지의 기도 제목, 이것을 여러분 마음에 굳게 세워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네 번째 질문은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물으신 네 번째 중요한 질문은 욥기 38장 5절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의인에게 고통을 주시는가?’ 스스로 안타까워하며 기도하고 있는 욥을 향해 하나님이 질문하십니다.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욥기 38장 5절)

의인 욥을 향해 하나님께서 던지신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너는 아느냐? 네가 알면 얼마나 아느냐?” 그리고는 물으십니다. “네가 알면 대답해 보아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욥 38:4 중)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욥 38:17 중)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욥 38:29)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욥 38:33 중)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욥 38:36 중)

“해가 뜨는 곳에 가 본 적이 있느냐? 천둥과 번개가 가는 길을 아느냐? 바다 속 깊은 곳 물의 근원으로 들어가 보았느냐···”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네가 아느냐?”라고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는 “네가 도대체 아는 것이 얼마나 되느냐?”라는 혹독한 질문이자 “알면 어디 대답해 보아라!”라는 준엄한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을 설득해 보라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묻고 계실지 모릅니다. “네가 과연 이것을 아느냐? 네가 안다면 얼마나 많이 아느냐? 너는 정말 모든 것을 알아서 믿고 산다고 생각하느냐?” 과거의 사람들에게 동정녀 탄생은 완전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과학적 지식을 통해 이것이 허구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지식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대화를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말의 의미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GPS를 통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과학적 설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너희가 정말 아느냐? 너희가 알면 얼마나 더 알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계십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철저하게 인정하라 명하시며 무지함을 깨우쳐 주시고,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다섯 번째 질문은 하나님나라의 그루터기를 찾는 초청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물으신 다섯 번째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사야 6장 8절 말씀에 있습니다. 멸망해 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시기로 결정하시며 질문을 던지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 6장 8절 중)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멸망을 예언하며 그 길을 걸어가 줄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능력이 없으셔서 질문을 던지시며 발을 동동 구르신 게 아니셨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신데 능력이 모자라 사람을 찾으셨겠습니까? 주님은 이 질문을 통해 이사야를 초대하고 계셨습니다. 그의 결단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멸망해 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그를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거룩한 씨, 그루터기를 만드는 일, 멸망해 가는 세상 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일, 구원의 씨앗을 보존하는 일, 그 일을 맡아 줄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꼬?”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동역자를 찾고 계시는 음성입니다. 모두들 한국 교회, 한국 사회가 썩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누가 그루터기가 될 것인가?”
오늘 우리는 우리를 향해 물어 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버린 사람을 찾으시며 던지시는 질문입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함께 거하고 사랑하라고 주신 형제, 자매, 이웃들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고 물으신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또한 사랑스럽게 다가오셔서 물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주면 좋을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 무엇인지를 말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물으십니다. “너는 아느냐? 그렇다면 네가 얼마나 많이 아느냐?” 믿음을 요구하시는 또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질문을 던지십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 것이냐”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그분의 진실한 동역자를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인에게, 욥에게, 솔로몬에게, 그리고 이사야에게 주셨던 질문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던지고 계십니다. 이 질문 속에는 하나님의 초청이 있고 배려와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인생을 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다섯 가지 물음, 이 물음은 여러분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2021년 4월 1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하나님이 물으신 다섯 가지 질문” (왕상 3:4~10)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164, 31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왕상 3:4~10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4월 1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그들의 정체성과 생각이 담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 앞에 드리고 싶은 질문은 무엇입니까인간의 문제를 끌어안고 깊은 고뇌 속에 던지는 질문들도 있습니다하지만 그런 질문을 던져 놓고도 답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음도 사실입니다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계실까요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굳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질문은 인간들을 위해서입니다그 질문은 인간을 본질적이고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귀중한 질문들입니다그 질문에 숙고하여 답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그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은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설교의 요약

    하나님께서 물으신 질문들 중 첫 번째는, “네가 어디에 있느냐?”(창 3:9)는 물음입니다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이 질문을 던지실 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자리에 있었습니다이 물음은 그들의 좌표를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현재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있다는 존재론적인 질문이었고하나님의 애통의 목소리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애타게 찾으며 물으십니다.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두 번째 질문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창 4:9)는 것이었습니다형제를 죽이고 적개심으로 가득한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 형제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묻고 계십니다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어떤 관계에 놓였는지를 묻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 아내남편네 형제이웃함께 하는 성도들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너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 이 질문에 우리는 가인처럼 답할지 모릅니다. “내가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왜 내가 그들을 지켜야 합니까?” 지독한 개인주의나만 생각하는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우리 마음이 병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세 번째 질문은, “내가 네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왕상 3:5)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했던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주셨던 물음이셨습니다솔로몬은 하나님의 질문에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물음에 우리가 답해야 할 그 한 가지는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네 번째 질문은, “너는 나를 아느냐네가 알면 얼마나 아느냐?”(욥 38:5)는 것이었습니다하나님은 왜 의인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묻는 욥을 향해 정말 네가 나를 아느냐나를 안다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되느냐?” 되묻고 있습니다오늘 주님은 똑같은 질문을 우리들에게 하고 계십니다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며 나를 설득해보라는 자들에게 네가 얼마나 알아서 하나님을 알겠다고 말하는 것이냐그때서야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하는 것이냐너는 정말 다 아느냐?” 우리의 무지를 깨우치며 알도록 하시는 주님의 물음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 이사야갸 받은 사명은 멸망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이었습니다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 질문을 던지셨을까요주님께서는 주님의 동역자를 찾고 계셨습니다그루터기구원의 씨앗을 찾는 물음이었습니다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꼬누가 나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이처럼 하나님의 질문 속에 우리를 향한 초청이 있고 사랑스러운 배려와 은혜가 있습니다하나님의 이 다섯 가지 물음이 오늘 하나님 앞에 선 우리를 향하여 열려 있습니다.

나누기

1. 나는 오늘 하나님께 어떤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까?

2. 하나님께서 물어 오시는 다섯 가지 질문 중에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무엇입니까그 물음에 대한 나의 겸허하고 솔직한 답은 무엇입니까?

마무리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오늘도 나를 향하여 물어 오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그 질문 앞에주님의 그 엄숙한 초청 앞에 겸허하고 솔직하게 답하기를 원합니다우리에게 용기를 주시어 주님의 초청에 손을 내밀고 답하게 하여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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