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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안식

신명기 5: 12 ~ 15

김경진 목사

20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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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5: 12 ~ 15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광복절을 맞이하여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에 해방과 안식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광복 77주년을 맞이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 절기 안에 나라의 역사와 관련된 날을 포함하기가 신학적 타당성의 관점에서 쉽지는 않지만, 소망교회와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삼일절과 광복절을 공적 예배의 자리에서 기억하며 예배를 드려 왔습니다. 놀랍게도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사건과, 바벨론으로 잡혀가 포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사건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 아래 35년간 신음하다가 해방된 사건과 너무나도 유사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광복의 날을 우리나라에 허락해 주신 출애굽의 날 혹은 포로 해방의 날로 생각하며, 예배를 드려 옵니다.
우리나라의 광복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해방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과 포로 귀환, 그리고 우리나라의 해방은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자 선물로서 주어진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나라의 해방을 기억할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라고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복 77주년을 맞아 우리는 오늘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다면 광복 77주년을 보내면서 우리가 기억하고, 또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신명기서에 나오는 십계명 중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모세가 받은 십계명에 대한 내용은 성경에서 크게 두 곳에 나타납니다. 하나는 출애굽기 20장이고, 다른 하나는 신명기 5장입니다. 출애굽기 20장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는 장면을 마치 실시간 중계하듯이 묘사합니다. 이에 비하여 신명기 5장은 광야에서 40년의 시간을 보낸 후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백성들을 모아 놓고 설교하는, 즉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 사이에는 대략 38년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계명의 내용 중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큰 맥락에서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조항을 설명하고 부연하는 부분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안식일 계명이죠.
안식일 계명은 십계명에 나오는 두 개의 긍정 계명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은 ‘하지 말라’는 형태로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중에 두 개, 즉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과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긍정의 형태로 주어져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안식일 계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8~11)

출애굽기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이 날이 여호와의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들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쉬신 날이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쉬어야 한다는 명령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출애굽기에 따른 안식일의 기본 정신입니다.
신명기 5장도 안식일 계명을 말씀하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신 5:12)

그런데 출애굽기와 달리 신명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르게 말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 5:15)

<흥미롭게도 출애굽기와 신명기 모두 안식일 계명을 다루지만 그 배경에는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 두 말씀 사이의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말씀드린 대로 출애굽기서에는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신명기서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이루어 갈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진 안식일의 내용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창조와 연결되기보다 애굽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시고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구원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 곧 안식일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차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변함없지만 신학적인 강조점에는 차이가 납니다. 저는 출애굽기와 신명기 내용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출애굽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안식하셨기 때문에 너희도 안식하라는 말씀을 들었다면, 그로부터 38여 년이 지난 후 새로운 세대의 백성들은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시고 쉬신 날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일하신 날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쉬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쉬셨고, 인간을 쉬게 하기 위해 모세를 애굽에 보내셨고, 홍해 앞에서 기적도 일으키시며 일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의 중심에는 인간의 쉼, 인간의 안식, 인간의 해방이 자리합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신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들의 보고를 듣고 그만 겁을 먹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로부터 약 38년 동안 광야 생활에 들어갑니다. 요한복음은 이 38년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두 사건을 연결시키며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베데스다라는 작은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마다 그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만을 기다리던 38년 된 병자가 있었죠. 그 모습이 마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빙빙 돌던 이스라엘 민족과 맞닿아 있는 듯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를 보시고는 불쌍히 여기시며 말씀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령이 떨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갑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날이 바로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안식일 법은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치료하는 일도 금기시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의 눈에 예수님은 안식일 법을 어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하는데,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 5:17~18)

안식일은 쉬는 날인데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유대인에게 이 말씀은 참으로 불경스럽게 들렸을 겁니다. 하나님은 분명 쉬라고 명하셨는데 도리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신다고 하니, 백성들은 놀라며 예수를 박해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신명기서 말씀을 근거로 본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을 인용하시며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일하시는 하나님의 길을 따라 예수님 자신도 구속의 일, 해방의 일을 하고 계심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창조와 안식일을 연결하는 출애굽기와 달리 신명기는 애굽에서 해방된 사건과 안식일을 관련짓습니다.>

자,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오늘 본문 말씀인 신명기로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신명기의 안식일 법은 무엇을 요구합니까? 흥미로운 비교가 출애굽기와 신명기 사이에 가능합니다. 우선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 20:10)

반면에 신명기서는 이렇습니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신 5:14)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신명기서에는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라는 구절이 두 번 반복되어 표현됩니다. 남종과 여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출애굽기 경우,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신명기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는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이들도 안식하게 하라는, 보다 강조된 표현이 사용된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언뜻 보면 다른 사람들이 쉬는지, 안 쉬는지 감시하라는 뜻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문의 앞과 뒤를 연결해서 살펴보면 그보다 훨씬 더 은혜로운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후손은 말 그대로 안식일에 쉬는지, 안 쉬는지 감독하고 감시하는 뜻으로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셨을 때 예수님을 박해하려 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신명기 말씀은 본래 다른 뜻을 가집니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구절과 연결해서 살펴볼 때 그 의미가 살아납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 5:15 중)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너희를 구속하시고 해방시켜 주셨다. 애굽의 압제 속에서 끌어내시고 참된 자유를 주셨다. 그러므로 새로운 땅에 들어가 그곳에서 함께하는 남종과 여종,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가축들에게 안식일이 될 때마다 해방을 경험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주님은 안식일에 일하시며 병자들을 고치셨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참된 자유를 얻고 포로 된 자가 구원받게 하시기 위하여 일하셨던 주님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해방, 인간의 자유를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나타난 안식일 법의 다른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다. 빵이 하나 있습니다. 이 빵을 친구에게 먹게 하고 싶습니다. 양보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난 점심 먹고 왔어.” 그리고 다시 말합니다. “나는 빵을 안 좋아해.” 전혀 다른 두 말이지만 사실 같은 의도를 가지죠. “네가 이 빵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출애굽기와 신명기 말씀의 차이점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시고 쉬셨기 때문에 너희가 쉬어야 한다고 출애굽기서는 말하고 있고, 신명기서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셨기 때문에 쉬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의도는 사실 동일합니다. 우리가 쉬길 원하시는 것이죠. “너희는 쉬어라. 너희의 모든 것들이 쉬도록 하여라. 그들에게 안식을 주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이 억압이나 매임에서 풀려나 참된 안식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규정하신 안식일 법입니다.

<하나님은 해방을 먼저 경험한 자들로 함께하는 피조물을 그분 안으로 인도하며 모두가 참되게 안식하기를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광복절 77주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속의 은혜, 해방의 선물을 감사하며 그 손길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일제 강점 가운데 희망 없이 살고 있었던 우리에게 기대치 못했던 해방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해방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속과 해방을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구속하여 해방을 주었기에, 너희는 너희 남종과 여종과 가축들과 모든 것들에게 쉼을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도 해방을 맛보게 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안식일 법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법은 해방의 법이기도 합니다. 모든 얽매여진 것에서 해방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한번 깊이 생각하며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가깝게는 북한의 동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셨지만 사상에 얽매이고 독재정권에 매여서 포로 된 자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는 일이야말로 광복을 선물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먼 나라에서 온 이웃 백성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종처럼 살아가며 어렵고 힘든 곳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안식을 주는 것, 해방의 기쁨과 자유의 기쁨을 누리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해방의 참된 의미는 스스로의 안식이 우선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주님 안에서 안식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중에는 8·15 해방은 맞았지만 또 다른 이념과 사상에 매여 헤어나오지 못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물질만능주의, 과학만능주의 등에 매여 또다시 노예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참된 평화와 쉼이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는 모든 이웃과 자연에게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광복의 절기를 맞아 해방과 안식이 우리 안에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8월 14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해방과 안식” (신 5:12-15)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582장, 55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신 5:12-1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8월 14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광복절 77주년입니다. 우리 소망교회와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삼일절과 광복절을 공적 예배의 자리에서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할만큼 우리나라의 광복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기와 유사점이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해방이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자유와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설교의 요약

십계명은 성경의 두 곳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출애굽기 20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명기 5장입니다. 십계명의 내용이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것을 부연하는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어본 안식일 계명입니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즉 구원의 역사가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출애굽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음을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나 이제 약속의 땅을 들어가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은 인간을 쉬게 하시기 위해 구원의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즉 모든 안식일의 중심에는 인간의 쉼, 안식 그리고 해방과 구원의 사건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베데스다 연못에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면서, 안식일의 근본정신이 바로 하나님의 구속행위, 해방의 역사임을 강조하셨습니다.(요 5:17-18)

신명기에서는 우리만 안식할 것이 아니라, 남종과 여종들 모두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처럼 안식하게 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신 5:14) 그것은 다른 사람이 쉬나 안 쉬나를 감시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구원과 해방을 얻은 우리처럼 다른 사람들도 해방시켜 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안식은, 우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이 억압이나 매임에서 벗어나 참된 안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의도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가깝게는 북한의 동포가 있고,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도 있고, 공산주의, 사회주의, 물질만능주의, 과학만능주의 등 잘못된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참된 안식과 해방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나누기

1. 우리 주위에 아직도 종의 모습처럼, 무언가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에는 누가 있나요?

2. 내가 해방과 안식의 복음을 증거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마무리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에게 해방의 기적을 경험하게 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손으로는 할 수 없었던 광복을 주셔서 우리가 이 땅에서 번영케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오나 여전히 이 해방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의 참된 자유와 해방의 역사가 이땅에서 계속 이어지게 하시고 그 밝음과 안식에 거하는 사람들이 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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